라디오헤드와 키에슬롭스키. 쥘 에 짐. 밀란 쿤데라와 뒤라스.
네가 내게 심어다준 것들.
당신은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쓰지 않았던 사람.
아침을 음악으로 오후를 홍차로 시작하던 사람.
에스프레소 안에 설탕을 넣고, 다 마신 다음 설탕을 따로 긁어먹던 사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음악으로 가져다준 사람.
고양이보다 개를 좋아했던 사람.
멀리 멀리서 나를 보러 오는 길을 너만의 실크로드라고 이름붙여준 사람.
미지근한 맥주를 밤새 마시고 길을 같이 걸어준 사람.
딱히 무엇을, 보다는 여전히 곁에서, 를 지켜보여준 사람.
멀리서 보이던 너의 그림자 너의 냄새.
너는 내게 가장 성실해준 사람.
오늘은 너만 기억하는 날.
오늘은 너의 기일.
너의 사무치는.

나는,
잊지 않는다. 너에 대해서라면 나는 잊는 방법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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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11-1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오셔서 반가웠는데 글이 너무 슬퍼요.... 여긴 지금 지금 폭우가 옵니다. 쟌느님.

Jeanne_Hebuterne 2019-12-22 04:0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제가 게으르게 가끔만 들러도 여기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

moonnight 2020-02-16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님 달밤입니다. 비오는 일요일이에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잔님 글 읽고 싶어서 왔는데.. 슬픈 일 겪으신 잔님의 마음을 감히 생각해봅니다. 좋은 하루 보내셨으면..

Jeanne_Hebuterne 2020-02-23 09:05   좋아요 0 | URL
달밤님,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있지요. 그냥 이런 말들이 참 좋아요. 그저 이런저런 일들, 이라고 말하게 되는 과정을 어쩐지 달밤님은 알아주실 것 같아서요. 고마워요, 언제나처럼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1465





 인간이 왜 동물을 학대하는가에 관한 정보는 모든 폭력을 종결시키기 위한 전략의 필수 요소이다(Arluke and Luke, 1997). 아시온(Ascione, 1993)은 동물을 향한 폭력이 인간폭력과 맺는 관계를 우리가 더 많이 이해할수록, 폭력의 예방 및 대처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의 효과도 그만큼 더 커진다고 주장한다. 솔롯(Solot, 1997)의 말대로 "모든 생명이 존업과 존중의 대우를 받는, 폭력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작업이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솔롯은 이야기한다.

 모든 유형의 폭력 간에 연계성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각각의 폭력이 갖는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아이를 때리는 여성, 여자친구를 강간하는 10대 소년, 고양이를 불태워 죽이는 청소년 등 이들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생명other living beings'을 대상으로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기 때문이지, 그들이 언젠가 더 나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책 속에서


 온도차가 극명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다듬으려 해도, 어쩌면 내가 사는 세상과 네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다른지 알 길이 없다. 오늘은 도저히 조용하고 차분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었다.

 띄엄띄엄 지나치는 그곳의 소식에, 친구 한 명이 링크를 보내주었다. 청원 링크였는데 새삼 동물학대가 어제오늘의 일인지, 오늘과 내일이 또 같지 않을지, 회의적이었는데 친구가 덧붙였다. 

 '우리는 너무 급해. 너무 급해서..혹시 했다면 괜찮은데 안했다면 좀 해줘.'



  급했구나, 안했다면 해야 하는 거로구나, 이 생각 대신 많이 부끄러웠다. 

 내가 사는 동네는 길고양이들이 낮에도 가끔 어슬렁 길을 걷는 동네다. 산책다니는 고양이들도 있어서 자기 집에서 밥먹고 나한테 배고프다고 엉겨서 깜찍하게도 두번째 야참을 챙겨먹고 다녔던 고양이들도 있었다. 나는 내 집 뒷마당에서 매일저녁 카오스 자매와 까망이, 털복숭이 고양이에게 캔따개 노릇을 한다. 그것도 아주 기쁘게. 

 대형견들이 입마개를 굳이 하고 다니지 않아도 이곳에서는 무서워본 적이 없다. 견주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내 개가 사람을 만약에 물었다...그래서 그 사람이 다쳤다..만에 하나 지병이라도 있어서 병이 심해지거나 아..생각하기도 끔찍하다. 내 개가 행동 잘못 하면 내 인생까지 종쳐. 내가 돈 많고 시간 많아서 훈련 받으러 다니고 늘 신경쓰는게 아니야. 당연히 해야하니까 하는거야.' 라는 답이 돌아온다. 물론 우리집 옆옆집 다리 세 개 달린 요크셔 테리어 맥스는 나만 보면 사생결단을 내겠다는듯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데 마침 오늘 주인과 함께 있는 맥스를 보고 깨달았다. 천사견이었구나. 

 강아지 공장과 고양이 공장이 없는 곳. 펫숍에서 개와 고양이를 파는 것이 올해부터 법으로 금지된 곳. 이런 곳에서 나는 내 고양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전적으로 내 불찰이었는데 하루동안 고양이만 찾으러 돌아다닌 끝에 고양이가 스스로 내게 돌아와주었다. 그 일을 말하자 친구가 말한다.

 '만약 여기서 잃어버렸는데 못찾았으면 .... 건강원에 갔겠지. 고양이가 관절에 좋다고 잡아먹는단다.'



 너무 많은 일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고양이를 입양하려던 친구는 그들이 달라는 입양신청서를 내고, 근무지와 직위, 연봉도 적어내고 기다렸다 한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미리 방묘문과 방묘창도 설치해두고, 가정방문을 기다렸다고. 유력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해서 용품도 사두고 기다렸는데 한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수소문해보았더니 처음부터 본인은 미혼에 남자라서 아예 제껴두고, 다른 가정에 입양을 갔단다. 너무 화가 나서 그냥 고양이 펫샵에서 살거야. 라는 말에 다른 이가 만류했다. 너 그게 어떤건지 알잖아. 

 


 미혼에 남자라서 제꼈다는 그 입양담당자의 마음도, 화가 난 친구의 마음도, 둘 다 뭐라 말할 것이 못된다. 멀쩡히 잘 있는 고양이를 아스팔트 바닥에 패대기쳐서 일부러 죽이는 사람들이 있고 고양이 발톱에 매니큐어 칠해서 투견 훈련용으로 쓰고 꼬리 털가죽을 벗겨 지지는 사람들이 어디엔가 버젓이 다닌다. 어느 구름 뒤에 해가 있고 어느 구름 뒤에 폭풍이 올지 도저히 겉을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가 너무나도 선한 천사들의 동네라고 생각지도, 내가 떠나온 동네가 악의 구렁텅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파렴치와 몰상식은 어디에나 있고 선한 마음은 징벌 제도와 상관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아직도 개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부끄럽다. 이것은 입장의 차이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도살장을 보고나니 생각이 싹 가셨다. 식물도 죽을 때 비명을 지른다는데, 그것은 어찌 먹느냐고 말한다면 '저를 아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지겠지. 

 나는 단지, '불법적이고 임박한(unlawful and imminent)' 법익의 침해가 존재해도 항변할 수 없는 생명이었던 자두라는 고양이가 패대기쳐지는걸 몇 번이고 보면서 자두 뒤에 보이지도 않는 개와 고양이가 셀 수 없이 많았겠구나, 싶었다. 

 박찬욱의 말을 떠올린다.

 여러분, 희망을 버려요. 그리고 힘냅시다. 



 

 잔인한 덧붙임

 동물과 일하는 사람들은 비밀이 많을 수도 있다. 동물들은 말을 못하니까.

 미국의 어느 주법에는 소와 섹스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 주가 있다던데, 난 차라리 그 법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엔 무려 수간협회까지 있다. 경찰에게 신고해도 경찰이 제대로 출동하지도 않던.

 


 이 고양이는 우리집에 밥먹으러 오는 털복숭이. 

 이 아이가 한국에 있었어도 이렇게 때깔 곱게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까. 그랬으면 진심으로 좋겠다. 

 나처럼 눈치보지 않고 밥주고 싶으면 밥주고, 만지고 싶으면 냥이 허락받고 만지고. 

 




다행히도 청원이 숫자를 넘어섰다.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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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무르다 보면 겨울 쯤에는 진짜로 부드러운 정말 곶감이 되거든? 겨울이 와야 정말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는 거야.





 딸과 달리 무심하고 태평해 보이는 엄마의 입에서는 딸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이 아닌 응당 엄마가 해야 할 말이 흘러나온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한순간도 관객의 추측을 비켜나가는 호흡이 없다. 대신 느릿느릿 쉬엄쉬엄 흘러가는 사계가 펼쳐지고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하는 시골이 펼쳐진다. 제목 그대로  작은 숲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고받는 편지처럼 떠오른다. 주인공 혜원은 떠나려다 돌아오고 돌아오려다 떠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생활의 결을 친구들과 나누고 이미 떠난 엄마와 생각을 나누게 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흘러가는 혜원은, 한번쯤 누구나의 속에나 들어앉았을 법한 캐릭터다.


 





 서울에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다 고향 미성리로 돌아온 혜원은 집에 불을 피우고 언 땅의 배추로 국을 끓여 먹는다. 다음 날에는 눈을 치운 다음 얼큰한 수제비로 꽁꽁 언 몸을 녹인다.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와 과수원을 꾸린 재하와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은숙이 혜원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직접 영글어낸 사과를 건넨다. 스트레스 끝까지 받은 날의 매운 떡볶이, 화해의 크림 브륄레, 겨울을 녹이는 막걸리, 그리고 엄마의 감자빵과 오코노미야끼가 시골의 말끔한 햇빛과 함께 영화를 채운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가 발굴한 것은 세련된 전원일기의 힘이다. 돌아갈 수 있는 시골집이 있고, 땅에서 작물을 거둘 수 있는 힘이 있으며 그것을 함께 나눌 친구가 있다. 그러나 정작 혜원을 채운 것은 배고픔의 기억이다. 편의점 도시락의 쉰 밥을 뱉어야 하고 자기는 떨어지고 남자친구는 붙은 시험 결과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엄마는 수능 얼마 지나고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 엄마의 부엌에서 요리하고 엄마의 마당에서 장작을 패다가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데'라고 생각한다. '고모는 이모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쫄래쫄래 따라가 허겁지겁 집밥을 비우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 대잔치에 온몸이 비비 꼬인다. 가득 찬 프레임과 바삭바삭한 조명 아래 깔밋한 장면들을 보다 보면, 의외로 서울 편의점의 차가운 불빛, 가득 찼는데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혜원의 서울 집이 상처에 소금 뿌리듯 지나간다. 가득인데, 없는 것이 더 눈에 들어온다.





 때는 이제 2018년, 사람들은 세련된 식기, 깔끔한 인테리어와 결로방지 열선을 깔아둔 풍광 좋은,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집을 짓고 농어촌으로 스며들기를 시도한다. 집은 깨끗해야 하고, 소품은 정갈해야 한다. 

 봄 양배추로 전을 부쳐 먹고, 꽃으로는 튀김을 만들어 먹는다. 쌀을 빚어 막걸리를 나누고 치자 물과 시금치 물을 내어 팥을 곁들인 떡을 찐다. 자연과 대화하는 법으로 이 영화는 부엌에서 일하는 손과 그 손이 빚는 한 상을 소담스럽게 담아낸다. 이 개별 요리를 등장시키지 않고는 어리고 젊은 혜원이가 엄마를 떠올리고, 낙방한 시험 다음의 길을 찾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 수 없다는 듯이. 계절의 차이와 요리의 차이는 다정한 단짝처럼 붙어 다녀서, 시도 때도 없이 테이크아웃 요리를 먹고 마트에서는 늘 알록달록한 과일과 봉지에 든 과자를 살 수 있는 현실에서 눈을 돌려서 '아, 나도 저런 한 끼를 차려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손수 해와 바람, 흙으로 만들어낸 제철 재료. 그것을 마트나 인터넷 택배가 아닌, 우리 집 밭이나 마당에서 거실로 순서 옮긴 다음 조용하고 정갈한 부엌에서 요리한 다음 친구들 혹은 우리 집의 강아지, 마당을 채운 공기의 결과 함께 나누는 것이 요즘은 판타지가 되었다. '생계 걱정이라고는 1도 없는 판타지'라는 감상이 슬픈 것은,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생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은 복잡해졌다. 옥상 텃밭이나 베란다 정원, 주말농장을 생산적인 먹거리 취미로 삼고 바쁨을 정신이상자 수준으로 강조하며 살아내는 것이 마치 바람직한 2018년의 구성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내게 지금이 씨앗을 뿌릴 시기임을 일깨워준 이상, 노는 뒷마당 땅을 다시금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물론 영화에서는 나지 않던 내가 만들어낸 거름 상자에서는 아름다운 향내가 나고 땡볕에서 밭을 맬 때마다 열사병에 걸린 것처럼 나는 허덕대다 초주검이 되어 흙 묻는 작업화를 털어내겠지. 참, 농사를 업으로 하는 내 친구는 아예 농협 빚과 독한 농약 묻은 옷 처리용 세탁기를 처음부터 따로 사용했었다고 말했는데 그에 비교하면 나 역시 탱자탱자 나른하고 게으른 일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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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제멋대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에도 요가는 괜찮은 운동이다. 그 시간만큼은 나는 내 몸을 요가 선생님의 주문에 맞춰 움직인다. 이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야 했다면 정말로 엄두가 안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착실한 학생이 되어 내 몸을 움직인다.

 학창 시절에 착실한 학생 노릇을 할 때는 자괴감 비슷한 것이 들었다. 나는 그때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자괴감인지도 몰랐다. 자괴감이라는 것은 자신이 뿌리부터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당연하다. 누구나 12년을 남이 시키는 대로, 남이 만든 시간표 안에서, 원치 않는 공간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인생이 오롯이 내 책임이다. 내 인생뿐만 아니라 남의 인생도 내 책임이다. 가끔은 남이 하라는 대로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요가 수업을 듣는다. 선생님의 주문에 맞춰 앉았다 일어섰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기를 반복한다. 아무리 민망한 자세를 시켜도 나는 군말 없이 따라 한다. 호흡을 깊게 하며 내 근육의 가동 범위를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오로지 요가 선생님의 주문에 맞춰서. 착실한 학생이 되어서.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다. 그런 것이 썩 마음에 든다.

 -온전히 나답게, 한수희. 부분발췌







심호흡. 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 대신 커다란 프렌치 윈도, 다른 쪽은 거울. 먼저 도착했을 땐 조심조심 스트레칭 하며 준비를 한다. 삭신이 쑤시겠지. 오금이 저리겠지. 남들 보기엔 엉거주춤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 바쁘겠지. 발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조금씩 풀어주며 코어에 힘을 주며 혼잣말을 한다. 오늘도 잘 부탁해.




 발레를 시작했다. 새로운 운동이다. 테니스를, 수영을, 요가를, 이제는 발레를 배운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지 않다. 몸을 움직이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귀찮다. 고등학교 때 유연성 시험에서 는 최하 점수를 받아서 울고 싶었다. 몸이 마음대로 가주질 않았으나 자존심은 쓸데없이 고개를 들어서, 나는 그 뒤로 다시는 이거 안 해! 하고 혼자 되뇌었다. 




 테니스는 공이 무서웠다. 라켓은 무거웠다. 함께 연습하던 언니는 내게 '이건 피구가 아니잖아'라고 했다. 발을 빠르게, 시선은 민첩하게. 가족들은 펄펄 날아다니는데 나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전등 옆의 날파리가 된 심정이었다. 죽어라 지구 자전 방향을 찾아냈는데 그게 아니란다. 공은 이미 멀리 가버렸다. 더군다나 빠르고, 힘 있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나를 테니스 꿈나무로 만들려는 듯 다시, 다시, 다시, 다시를 연발했다. 나도 나같이 겁 많은 아이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기에 나는 무서운 게 너무 많은 아이였다. 




 수영은 그보다는 오래 했으나 하루가 지나치게 길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수영을 했고, 회사에 출근한 다음 퇴근 후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일주일에 두 번 했다. 그 틈에 다른 일도 하고 있었다. 하루를 견디기에 물 속은 조용했으나 물 밖은 시끄러웠다. 몇 가지 영법을 배웠지만 내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영법은 배영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수영장에서 햇빛을 한가득 품은 수영장 물이 찰랑거릴 때면 내가 그 위를 천천히 유영하는 것이 행복했다. 그 감정은 과연 오래 지속되지 않아 행복이라 부를만 했다. 그 느낌이 더 길었다면 그것은 쾌락이었고 나는 중독되었겠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가는 그보다 훨씬 오래, 몇 년을 했다. 가끔은 화장실까지 참고 오랜 시간 매일 앉아 일하다 보니 어느날 허리가 파업했다. 잘할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이 동작을 선보이면 회원들은 제각각 다른 동작을 했다. 실은 모두 같은 동작이었으나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다른 정도였다. 처음에는 몸을 갈대처럼, 풀처럼 휙휙 눕히고 다리를 찢는 잘하는 회원이 부러웠으나 며칠 후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경쟁하지 않는 운동, 시체 자세인 사바 아사나가 있는 운동. 나는 몇 년을 요가를 하면서도 요가복 하나 없었다. 요가복을 사야 하나요, 하는 나의 물음에 선생님은 추리닝도 괜찮아요. 아무거나 편한 거 입고 오면 됩니다. 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대로 집에서 입던 추리닝을 입고 몇년간 요가원을 다녔었다.




 그러다 배우게 된 발레는, 내가 했던 어떤 운동과도 다르면서도 같았다. 선생님은 강단이 있어 빈말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첫 시간, 자세를 한 번 볼까요. 라는 말에 제대로 앉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은 그저 편하게 앉아 계시는데 나에게는 앉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리를 뻗으세요. 발끝을 쭉! 허리 코어를 세우고! 어깨 활짝! 턱을 들지 말고 머리끝에 추가 천장에 매달렸다고 생각해봐요. 허리 나온다 허리 집어넣고! 

 요가를 할 때 끊임없이 머릿속에 돌던 딴생각이, 레오타드를 입은 내게는 들어설 틈이 없다. 시간이 남으면 완결되지도 않는 생각의 문장이 머릿속에 쉴 새 없이 떠돌았다. 요가를 할 때 돌고래 포획에서부터 집 냉장고에 남겨둔 케잌까지 온갖 생각에 몇 년 전 그 자식이 내게 했던 치사한 말까지... 아, 나는 속 좁고 기억력 좋으며 뒤끝까지 있는 인간이었다. 이런 생각이 치고 들어오려는 찰나 선생님은 내게 다가와서 내 몸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허점을 짚어낸다. 




 힘들고 벅찬데도 계속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이 평온해서이다. 1번 자세 없는 2번 자세는 없다. 요령을 피워서도 안 된다. 

 몸을 젖힐 때엔 뒤틀지 말고 똑바로 넘어가야 해요. 다리가 힘들 땐 배에 힘을 주세요. 제대로 돌려면 제대로 설 수 있어야 해요. 바는 몸 전체를 지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짝 도와주기 위해 있는 겁니다. 중심은 내가 코어로 잡는 거에요. 

 시선부터 발 뒤꿈치 틀기까지 선생님은 나를 만나면 쉴새없이 바쁘다. 나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가뭄에 단비처럼, 건빵 속 별사탕처럼 칭찬을 들으면 기쁘다. 





 유독 그 칭찬이 좋은 것은 그가 빈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될까요? 라고 물으면 '되도록 연습해야죠.'라고 말한다. 그저 언젠가는 될 것이다, 그런 말은 없다. 집에서 쉴 때 허리 펴고 목 세우고 쉬세요! 라는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 





 내주는 숙제를 매일같이 하지는 않는다. 국립발레단 입단을 목표로 둔 것도 아니고, 이미 뼈가 굳은 성인이다.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몸을 다루는 것이 발레를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비법일 테니. 오래전 유연성 시험에서 최하 점수를 받던 그 아이가 이걸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계단을 오르듯 외국어를 배우듯 하나씩 조금씩 해나가는 것. 공간은 열려 있어 숨을 구석이 없고 음악 소리는 내가 멈출 수 없을 만큼 정해진 박자로 이어진다. 기본을 지적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늘 힘이 가득차 있고, 가끔 잘했어요! 바로 그거죠! 하는 말을 들으면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거였어. 아마 이전이었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가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배에 이렇게 힘이 들어가고, 등이 다져지고, 손끝에 살짝 마주친 중력에 반대되는 순간. 곧 지나가고 사라지겠지만 다시 몸을 곧게 편다. 

 다시금 내 몸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이것은 내게 하나의 로맨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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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3-27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아요! 글도 아름답고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머릿속 풍경도 너무 좋고요.
그리고 쟌 님께 가장 잘 어울리는 운동인 것 같아요.
사람은 결국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걸 찾아가기 마련인가봐요.
응원합니다. 발레일기를 자주 적어주세요!

Jeanne_Hebuterne 2018-04-11 10:18   좋아요 0 | URL
후훗, 고맙습니다 으하하하핫

blanca 2018-03-2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쟌느님 찌찌뿡. 저도 요가, 발레 다 회사 다니면서 조금씩 했어요. 그 느낌!!! 특히 발레는 곧 중독되실 겁니다. 저는 백팔십 도 다리 찢기 욕심에 시달리다가 실패만 하다 그만두긴 했지만 천천히 꾸준히 하면 그 어떤 유연성의 벽을 천천히 다 넘어가게 된다고 해요. 저는 요새 참고 달립니다. 이십분 만 넘어가면 다 때려치고 싶어지는 게 문제지만요. ㅋㅋ 화이팅!!!!

Jeanne_Hebuterne 2018-04-11 10:21   좋아요 0 | URL
인간에게는 적당량의 착취에의 열망이 있나봐요. 으아아 으어어어 소리가 절로 나면서도 조금만 더, 하고 다시 하게 되는 현상 말이어요. 물론 다른 이들은 한계에 도전하겠지만 저는 달팽이처럼 더듬이 두 개 앞세우고 조금씩 조금씩을 목표로 할 뿐입니다. 이십분이 뭡니까. 그냥 1분만에 다 때려치고 싶어지곤 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