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된 효과 = 약물의 특이적 효과 + 자연적 치유 과정 + 잔여 효과
이 마지막 잔여 효과를 잠정적으로 위약효과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위약효과’도 알고 보면 서로 다른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위약, 이것은 과연 존재하는가? 위약물은 분명 존재한다! 의학 연구에서 필수적인 대조군 임상실험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미래에 위약물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위약의 효과the effect of the placebo’에 대해 말하자면 위약에 효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위약효과placebo effect’라 부르는 효과의 경우는,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나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슬롯머신은 스키너의 간헐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의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 어리석은 쥐처럼 어리석은 사람을 계속해서 손잡이를 잡아당기게 하려면 그저 가끔씩 보상으로 강화를 해주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사람 마음이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우연의 일치들의 합은 확실성과 같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우연의 일치들은 대부분 잊기 때문에,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는 기억하고 무의미한 일치는 무시하는 것이다.

증명의 부담은 창조론자들에게 있다. 진화론이 왜 틀렸고 창조론이 왜 맞는지 창조론자들이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진화론자들에게는 자기들을 지켜내야 할 증명의 부담이 없다.

하지만 과학혁명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려면, 이론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낡은 이론으로 설명되는 ‘정상’ 데이터와 낡은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상’ 데이터를 모두 설명해내는 이론으로 그걸 대신해야만 한다. 달리 말해서 더 뛰어난 모형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상대편에 반대되는 증거만이 아니라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까지 제시해야만 한다.

중복의 오류, 논점 회피, 동어반복이라고도 하며, 결론이나 주장이 전제 가운데 하나를 단순하게 다시 말한 것에 불과할 때 일어나는 오류다. 기독교 변증론(신을 변론하는 것)은 동어반복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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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 어린이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거나 효과가 영원히 지속되는, 혹은 어느 상황에나 척척 적용할 수 있는 마법의 해결책은 없다. 따라서 지능의 주요 요소?특히 작업 기억, 비언어적 추론, 의도적 통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특별 중재 프로그램은 어린이에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성인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주의집중과 자제력을 학습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으로 5세 어린이 24명의 작업 기억을 5일간 훈련시켰다. 그러나 훈련이 끝난 뒤 이 어린이들은 훈련을 받지 않은 대조군 어린이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음악을 듣는 것 역시 IQ를 향상시키지 못했다

실제로 마음의 미스터리는 머지않아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게 될 것으로 카쿠는 보고 있다. 뇌란 고기로 만들어진 컴퓨터이며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실제로 공학적 문제임이 틀림없다고 그는 확신한다. 모든 것은 물리적이고 그 근본 법칙은 이미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카쿠에 따르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의 두뇌를 뉴런 하나까지 그대로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을 것이다.

‘성 호르몬’이란 개념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안드로겐과 에스트로겐은 성과 관계없는 생리적 과정에 폭넓게 관여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안드로겐과 에스트로겐을 분비한다. 종마는 인간 여성보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더 높다. 임신 기간 동안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기는 하지만 종마의 에스트로겐 수치보다는 훨씬 낮다. 남성의 전형적인 특정 행동은 테스토스테론이 뇌에서 에스트로겐으로 바뀐 뒤에만 촉발된다.

모든 영역에서 50/50의 비율을 달성하려는 시도나 가설에 근거한 이상적인 비율을 달성하려는 행동은 더 나은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는 비합리적이다. 대신 불공평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남아 있는 장애물을 찾아내서 최소화하며 문화적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양육 태도에서 오는 차이점을 극복하려 노력할 수 있고 누구나 무슨 일에든 도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생물적 차이를 보상할 수도 있다(산모와 수유를 위한 시설 등). 결과가 어찌 되든 간에, 우리는 그저 얼마나 많은 남성과 여성이 자기 일을 잘해내는지 지켜보면 된다.

젠더의 차이는 집단의 차이다. 그것은 개개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각 개인이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이런 차이는 무시해도 된다. 평균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힘이 세다. 하지만 남성보다 더 힘이 센 여성도 존재한다. 여성 직업군인은 이제 전투에도 투입된다. 어떤 여성은 자격을 얻어 전투에 참여할 수 있지만 어떤 남성은 자격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전투에 투입되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 직업은 개인적인 선호도와 능력에 따라 주어져야 하며 젠더의 평균이나 고정관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성과 젠더 개념 자체를 거부하고 사람을 분류하는 것을 멈춰야 할까? 절대 아니다! 이분법적 분류는 대부분의 실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며 매우 유용하다. 의학에서 실제 성의 차이는 중요하다. 많은 심리적, 의학적 장애의 발생률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다. 소년은 자폐증, 난독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투렛 증후군에 더 잘 걸린다. 여성은 우울증을 더 많이 앓고 류마티즘 관절염과 다발성 경화증에 더 많이 걸린다. 어떤 약은 여성과 남성에 따라 반응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에서는 환자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아는 것이 진단과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페미니스트는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면서 남성과 여성에게 내재된 차이점을 부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남성과 여성에게 명백한 생물학적 차이점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의심스럽고 서로 상반된 데이터를 과대 해석했다. 진실을 찾는 과학 연구는 내재된 차이점이 아마도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고 이를 계속 연구할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더 나은 방법을 찾기 바란다.)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성별, 젠더, 혹은 인종의 차이점을 연구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발견이 정치적 집단의 비도덕적인 목적에 도용되거나 오용될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천적 차이점이 존재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모든 것을 차이점 탓으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이다.

진화심리학이 과학으로 자리 잡지 못한 주된 이유는 진화론을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적절히 적용하는 법을 아직 찾지 못한 탓이다. 초기 연구들은 적합도를 최대화하기 위해 진화된 다양한 심리적 전략들을 제시했지만, 우리가 그런 전략을 어떻게 이행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진화심리학은 이런 전략을 실행하는 진화된 심리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진화심리학의 목표는 차등 번식 성공differential reproductive successa에 유리한 형질이 자연선택에 따라 일어나는 인지적, 동기적, 감정적, 행동적 적응이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위상을 평가하기 위해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하고 유혹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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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오스텐이 말에게 무의식적으로 신호를 보냈다는 단순한 해석만으로 모든 정황을 설명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가장 단순한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을 우리는 최절약원리 또는 최소 놀람의 원칙Principle of Least Astonishment(POLA)이라 부른다.

누구나 ‘텍사스의 명사수Texas sharpshootersb’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곳간 벽에 총을 쏘아 구멍을 여러 개 낸 다음 그 구멍들을 중심으로 원을 그려 과녁을 만들면 총알이 모두 과녁의 중심에 명중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가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만일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의식을 가진 로봇이 출현다면 이에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스스로를 보존하도록 프로그램된 인공지능은 자신의 전기 플러그를 뽑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을 것이다. 로봇은 미래를 예측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해보고 인류를 전복시킬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언어는 추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고, 사회를 계획하고 조직하는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능력을 갖춘 인류는 함께 힘을 합쳐 사냥에 나설 수 있었고, 생존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할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지능과 표현 능력이 강화되자 부족의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해 파벌이 형성되면서 정치가 등장했다. 이 같은 발전의 핵심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었다. 가쿠는 인간의 심리학과 관련해서 ‘의식의 시공간 이론space-time theory of consciousness’을 제시했다.

미셸은 유전의 영향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뜨거운 충동 시스템hot system’은 제어하고 ‘차가운 억제 시스템cool system’을 활성화하도록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을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아동과 성인의 자제력을 후천적으로 키워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뇌에 뜨거운 시스템과 차가운 시스템이 있다는 비유는 뇌가 서로 다른 상황을 다루기 위해 진화해온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력과 원심력 때문에 두 개의 껍질로 분리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난센스였다. 토성의 고리는 지구 공동설과는 관련이 없었다. 토성의 고리는 그저 달처럼 토성 주위의 궤도를 도는 것뿐이다. 이와 달리 지구의 자전은 중력에 맞설 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발밑에서 지구가 돌고 있어도 우리가 지구 표면에 흔들림 없이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지구 안쪽 세계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자전한다면 지구 바깥쪽 세계에 있는 우리들은 저 멀리 우주로 튕겨져 나갈 것이다. 또 이 상황에서는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 때문에 지구 속 세계 주민들은 ‘불안정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 지구 속 주민들은 껍질에서 떨어져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낙하할 것이다. 지구의 껍질 자체도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붕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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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논쟁에서는 흔히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인용된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은 법칙이라기보다 관찰의 결과일 뿐이다. 또한 무어의 법칙은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것의 성능(속도, 용량 등)이 18개월마다 두 배가 되는 법칙이라고 잘못 해석된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은 복잡성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계산주의의 기본 전략은 자연어natural language라는 비형식적인 상징들informal symbol을 형식적 상징으로 다루는 것이다. 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의 초창기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인 프로그래밍 기법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다뤄야 할 자연어는 사실상 사고 언어가 아니며 형식적인 상징으로도 다룰 수 없다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가 ‘강한 인공지능’이 그들의 실제 목표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들은 인간의 뇌가 기계 장치의 사고 모델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계가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을 ‘들을’ 수 있다. 사람은 이 목소리를 ‘자아’라고 부른다. (이러한 추측은 자기동일성에 대한 물리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신뢰할 수 없는 이 내면의 소리를 자기 자신이라고 상상하지만, 사실 이 소리는 ‘자기’가 아니다. 언어 이전에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언어적 사고와 심상적 사고는 일정부분 이 과정에서 유래한다.)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그 소리는 옳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으며, 정확하지도 않다. 언어 이전의 과정은 전적으로 감각적 경험 그리고 감정을 지표로 삼는 신뢰하기 어려운 내적 상태들과 관련을 맺고 작동한다.

어떤 부류든 창조론자는 인격신을 믿고 과학과 종교 사이에 근본적인 갈등이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크다. (고전적 창조론과 신창조론 양쪽 진영에서 나오는 일련의 간행물로 볼 때 그렇게 보인다.) 고전적 창조론과 신창조론의 주요 차이점은 후자가 더 철학적으로 세련되고, 과학적 용어와 유사과학의 개념을 더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창조론자들은 ‘지나치게 지적’이라고 여겨지는 탓에 고전적 창조론자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정치에 대한 이해도는 고전적 창조론자보다 훨씬 높다.

그림1의 두 좌표축은 믿음의 대상이 되는 신의 인격성 정도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의 개념과 과학이 밝혀낸 세계 간의 충돌 정도를 나타낸다. 즉, 이 도표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 그리고 과학-종교 논쟁의 주요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련의 사고 영역areas of thinking을 대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당신이 그림1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이 세계에서의 당신의 삶의 궤적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달라질 것이다. 이 세상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필자의 추측으로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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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트롱은 고대 또는 근대적 형태의 폭력은 그 근원을 종교 그 자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과 국가에 내재된 본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신명기에 나타나는 제노포비아Zenophobiaa적 신학사상은 유대왕국이 정치적으로 붕괴에 직면했을 때 나타났"고, 무슬림의 지하드Jih?db나 타크피르takfir(배교자 혹은 불신자를 규정하는 절차)의 부활은 "주로 서구 제국주의(기독교와 결탁한)가 초래한 정치적 긴장상태와 팔레스타인 문제"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러는 모든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 성향을 갖는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그러나 그는 일신교의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이분법적 성향이 "돌이킬 수 없이 적대적"이며 "투쟁과 폭력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두 영역을 만들어냄으로써, "세계의 기본 구조에 분쟁의 씨앗을 심었을" 뿐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한 박해는 필수불가결하고 중요한 행동이라고 여기도록 하는 맹렬한 신념을 추종자들의 마음속에 새긴다."라고 주장한다.

성소聖所와 신의 영감을 받았거나 그와 유사한 권위를 부여받은 성서聖書가 애벌로스가 언급한 첫째와 둘째 희소자원에 해당한다. 이것들이 희소자원인 이유는 이것에 접근하거나 이것을 통제하고 해석하는 자격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특권 의식과 구원이 나머지 희소자원인데 이것들은 종교적 전통에 따라 특별한 경우 외에는 개인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네 가지 자원은 분명 서로 관련되어 있는 한편, 여러 측면에서 상호독립적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일신교는 대단히 효율적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별을 만들어냈으며, 또한 그것을 강화하고 정당성을 부여해왔다. 아브라함 종교는 모든 동정심을 없애고("너희의 눈이 그들을 동정하지 말 것이며", 신명기 7:16) 모든 형태의 폭력을 허용한다("그들의 머리와 손가락을 잘라 버리라", 수라 8:12). 1차 십자군전쟁은 이런 유혈폭력의 좋은 보기이다.

수컷 동물들 (특히 유인원과 원숭이) 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끔찍한 진화적 전략은 영아살해다. 오직 수컷만이 그런 행동을 저지르며, 특히 다른 수컷을 권좌에서 밀어낸 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영아살해의 번식적 이득은 명백하다. 경쟁자 수컷의 자손을 살해함으로써 살해자(그리고 그의 수컷 자손)는 미래에 암컷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이렇게 자식을 잃은 암컷은 즉시 발정기에 들어가 살해자에게 추가적인 번식의 기회를 제공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폭력이 폭력보다 목적 달성이란 측면에서 더 뛰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민중의 힘"이라고 체노베스는 말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민중이 저항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녀의 데이터에 따르면 "일단 전인구의 3.5%가 능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참여한 저항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으며, 많은 경우 그보다 작은 참여율로도 성공했다." 또한 "실제로 3.5%의 문턱을 넘어선 모든 투쟁은 비폭력적인 것이었다. 순전히 비폭력 수단에 의지한 투쟁의 규모는 평균적으로 폭력적 투쟁의 네 배였다. 그리고 성별, 연령, 인종, 정치세력, 사회계층, 그리고 생활 영역권에서의 대표성도 훨씬 높았다."

테러리스트는 자신보다 강한 적들로 하여금 그 칼날을 스스로에게 향하도록 하는 전술을 쓴다. 그리고 그런 전술이 미국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사법제도와 법 집행의 왜곡, 프라이버시의 침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선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자원의 낭비 등을 자초했다. 미국에 진정한 위협은 테러리즘이 아니라 공포의 문화다.

의식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수록 자아의 실재에 대한 믿음은 약해진다. 그러므로 자아의 환영에 현혹되지 않고 의식의 실체를 직접 경험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압박감을 극복할 수 있으며, 보편적인 사랑을 비롯해 명상이 약속하는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피케티는 조세와 재정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이 아니라 경제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불평등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정치적 상황이다.

피케티는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소득불평등은 노동과 자본 영역 모두에 널리 퍼져 있지만 자본 투자 영역에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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