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드는 캄브리아기의 바다에 살았던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그렇게도 많은 생명체가 사라지고 우리의 혈통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유전자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쁘게 말하면 우연성은 결정론의 대안이라기보다는 부정직한 결정론이라 할 수 있다. 진화적 발달의 한 혈통을 전멸시켜버린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 거의 대부분의 혈통은 사라지고 오직 한 종류의 혈통만이 엄격하게 결정된 경로를 따르게 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점진적이고 훨씬 많은 적응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진화보다는 자신의 이론인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갑작스럽게 도약적으로 일어나는 진화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화evolution보다는 혁명revolution을 원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진화를 ‘존재의 대사슬’로 바라보는 개념을 영구히 지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존재의 대사슬이라는 관점에서는 진화를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단계적으로 밟아 올라가는 결정론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으로 바라본다

역사는 고정된 선로의 기차보다는 러시아워에 추월차선과 출구차선을 이리저리 오가며 주행하는 차들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전반적인 교통 흐름은 도로 위에서 발생한 접촉 사고나 충돌 사고의 영향을 받는다. 여러 차선의 운전자들이 거기에 맞춰 적응할 테지만 모든 차선 운전자들이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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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생리학자는 인간의 뇌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물리적 구조물이라고 말한다. 침팬지의 뇌도 인간의 뇌만큼이나 복잡하지만 그래도 이 말은 진실인 듯하다. 이렇게 복잡하게 구조화된 존재자는 무작위로 형성된 존재자가 아니며 따라서 진화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조와 행동은 진화하기 쉬우므로, 그 결과 독립적인 계통에서 수렴 진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진화 가능한 매우 다양한 구조와 행동 중 많은 수가 지구에서 출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와 행동들이 진화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은 분명하다.

요약하자면 일부 인지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여전히 인간의 의식이 자연선택이 선호할 분명한 적응인지를 놓고 논쟁 중에 있다. 다른 행성에서 인간 수준의 지능과 의식이 진화할 가능성은 그것들이 분명한 적응 형질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적분이나 작곡과 같이 현대 지능 체계의 상당 부분은 적응으로 보기 어렵다.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존재자가 진화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다’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와 같은 세계관에 도전한다. 나는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경이로 받아들이는 생물학자로, 인간 중심적이며 근시안적인 세계관 때문에 우리의 친족인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지구에서 멸종하지 않기를 바란다.

천문학자들은 반복적이고, 신뢰할 수 있고, 필연적인 자연법칙에 주목하는 데 반해, 생물학자들은 변덕이 많고, 확률적인 우연한 사건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생물학자들 중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만큼 우연의 역할을 강조한 사람은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1989년에 나온 책인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Wonderful Life》는 이런 관점이 두드러졌다.11 이 책은 복잡성을 연구하는 사람, 특히나 유기체, 사회, 역사에 적용되는 복잡성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생명의 역사와 자연의 법칙에서 발견되는 패턴들은 과연 우리의 존재가 시작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임을 말해줄까, 아니면 우리가 우연한 사건의 무작위적 발생에 따른 결과임을 말해줄까?1 바꿔 말하면 우리의 존재는 필연necessity일까? 즉, 지금과 다를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존재는 우연contingency일까? 즉, 꼭 지금과 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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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은 문화유산에 대해서 관대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과학으로 그 가치를 다시 세우자고 말한다. 현대 과학이 알려주는 경이로움을 전달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 《코스모스》의 또 다른 미덕이다.

2014년 판 〈코스모스〉에서 대외적으로 내세운 상징이 ‘빅히스토리Big History’다. 역사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또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넓혀서 보자는 것이 빅히스토리다. 우주와 생명의 역사를 인류의 역사와 연결시켜서 통합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다시 보자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와 다른 하나의 연결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보이지 않던 진실의 실체를 큰 맥락에서 이해해보자는 것이 빅히스토리다. 따라서 빅히스토리에서는 스스로 거시담론 또는 거대담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빅퀘스천Big Questions’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통합적인 노력을 한다.

지적설계론의 주장이 사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으나, 심리 기록과 관련 법률의 면밀한 검토를 통해 우리는 지적설계론이 과학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지적설계론은 하나만 위배되어도 과학의 범주에서 배제하기에 충분한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위반하고 있다. 지적설계론은 (1) 초자연적인 인과관계를 허용하고 언급하는 점에서 수세기에 걸쳐 확립된 과학의 기본 규칙을 위반하고 있다. (2) 지적설계론의 핵심인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논증은 1980년대 창조과학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 비논리적이며 결함을 가진 부자연스러운 이원론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3) 진화론에 대한 지적설계론의 부정적인 공격은 과학계에 의해 충분하게 반박되었다.

버거에게 호미닌 사이에서 다양한 종분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입장과 폭이 좁게 천천히 진화하면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렀다는 입장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분명하게 태터살의 입장에 섰다. "호모 날레디와 호모 세디바Homo Sediba를 보면 적응 방산adaptive radiationd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하지만 버거는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충고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인류학은 언제나 조각나 있는 분야였습니다. 완전한 골격이 우리에게 말해준 것은 턱이나 치열 또는 두개골처럼 작은 특정 해부학적 부위만을 보고 다른 부분이나 몸 전체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면 아주 엉뚱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버거는 미국의 고인류학자들 중에 특히 계통발생 대신 화석의 연대에 지나친 무게를 두는 사람이 많다는 점도 문제 삼는다. "화석들의 유연관계를 알기 위해 꼭 그것의 연대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고인류학을 지켜보면 무언가의 연대만 알면 그 본질이 밝혀진 것이라는 태도가 팽배해 있어요. 하지만 이것은 호미닌 종들이 어느 한 순간에만 존재했을 경우에만 통하는 얘기죠."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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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은 어릴 때 학대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자기 부모의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통념을 ‘학대의 악순환cycle of abuse’이라 부른다. 아이들은 집에서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학대받던 아이가 자라면 십중팔구 학대하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사건 A가 결과 B에 선행하면 우리는 A가 B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소급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이 오류를 빈번히 저지른 것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발달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면 우리는 연관성이 연속적인 것으로 보여 매우 만족스러운 통찰을 얻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처음부터 시작해서 그 결과를 예측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한 사건이 그 이전 사건들이 야기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인상을 받을 수 없다."

독감 백신이 사망률을 50% 정도 줄여준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이 거의 분명하다. 하지만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다는 거부하기 힘든 증거가 존재한다. 한 실험에서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들에게 백신의 균주와 일치하는 독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자 96%의 예방률이 나왔다.

크리슬립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독감 백신은 이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독감 백신을 맞을수록 모두에게 더욱 큰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할머니를 위해 독감 백신을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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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갖고 있던 믿음을 내려놓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뻔한 속임수를 알기 쉽게 설명해줬을 때도 그러하니,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닐까? 나는 이제 내가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대신 내 논리를 최대한 명확하게 밝히고, 상대방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한 정보와 대안적인 설명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훌륭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설명을 받아들일 거라고 바랄 뿐이다.

나는 교육과 인내 그리고 정직함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중 무엇도 빠른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요약하자면 항성처럼 살아 있지 않은 물질은 자연 법칙 외에 과학이 감지할 수 있는 그 어떤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단기적 목적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 바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은 특정 물리적 분자와 세포 복합체 그리고 신체에 한정되어 있으며, 장기적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 유기체의 진화가 가져온 결과다. 한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은 수천 세대 앞의 미래를 내다보며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형이상학적 목표, 목적,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경험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은 소설 《모비 딕Moby Dick》의 에이햅Ahab 선장을 통해 운명이란 개념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에이햅 선장은 자신의 인생이 운명에 의해 통제되며, 흰 고래 모비 딕을 잡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 고래를 사냥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는 듯 보인다.

목적론적 믿음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종교를 통해 그렇게 된 사람이 많지만, 일부 사람들은 우주 그 자체가 어떤 신비로운 방식을 통해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미리 예정되어 있는 어떤 최종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초기의 일부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미리 운명 지워진 경로를 따라 펼쳐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믿음의 핵심적인 요소는 이렇게 진화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결국 인간이 무대에 등장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목적론은 본질적으로 목적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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