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결혼, 행복한 결혼이 주제였을 때 

"결혼은 삶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다"(읽은 글에 나오는 문장)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학생이 다수고, 그런가 하면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한다면 

내 편을 만나 삶을 공유한다면 그건 좋을 것이다...... 이런 의견들 듣고 나서 


그런데 그게 꼭 그러지 않을 수도 있어. 

결혼이 반드시 내 편과 삶을 같이 하기가 아닌 건, <적과의 동침>이라고... 


이런 얘길 하는데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에 여러 학생들이, 특히 여학생들이 갑자기 웃었다. 

아하하. 아하하. ㅜㅜ 하하하. 이런 웃음. 고통의 승화인 면이 반드시 있는 웃음. ;;;;;; 

그래서 웃기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가 잠시 말을 멈추기도 해야 했고, 속으로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우정, 연애, 결혼 포함해서 "인간관계" 이것을 우리가 진지하게 탐구한 적은 아마 없을 것임. 있었든 없었든 

어쨌든 경험의 공유가 내밀하게 일어나진 않지 않나. 꼭 이 문제만은 아니고 삶의 모든 면에서 그렇지만 특히 이 문제도. 


어쩌면 그냥 내가 웃겨서 웃은 걸수도. ;;;; 

저 사람은 뭐지? 말투가? ;;; 이런 웃김이었을 수도. 


타인과 맺는 어떤 관계든 나 자신과의 관계이기도 함. 

이런 관점에서라도, 연애와 결혼은 굉장히 (안하겠다 작정한 사람의 경우라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침 수업에서 쓰는 책에 그게 주제인 글이 있어서 같이 진지하게 

눈을 반짝이며 얘길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좋았던 일. 사실 시간을 연장해서, 몇날며칠 해야 할 그래야 마땅한 

주제긴 하지만. 


Somebody is trying to kill me, and I think it's my husband. 이것이 현대 고딕의 주제다.. 

Joanna Russ의 이런 글을 놓고도, 정말 재미있고 (울고 웃는) 수업도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트럼프는 부동산이 배경이죠. 부동산은 win-lose의 세계에요. 

그런데 오늘의 세계에서 미국을 이끄는 일은 win-win의 세계여야 해요. 

한 세기 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다음, 미국은 알기 시작했어요. 평화롭고 더 통합된 세계가 우리에게 더 이득이므로 미국이 돈을 좀 더 내고, 일을 좀 더 하고, 좋은 강대국이 되는 것이 사실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Maybe it was actually smart for us to pay a little more, do a little more, be a benign superpower, because a world at peace and more integrated will benefit us). 


현실 세계에 부동산의 가치를 가져오면 

한국을 트럼프 타워에 입주한 딤섬 식당처럼 대하게 되겠죠. 

그리고 "헤이, 미스터 킴. 다음 달부터 월세를 더 내야겠어. 못 내겠다면 나가도록 해" 그럴 겁니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 그 미스터 킴은 그 말을 듣고, 식당을 접은 다음 핵무기를 개발할 겁니다. 그리고 그의 옆 집, 일본이라 불리는 스시 식당은 미스터 킴을 따라 하겠죠. 그러면 이들의 옆 집인 중국 식당은 얼마나 놀라겠어요." 



토마스 프리드먼이 그의 신간 Thank You for Being Late: An Optimist's Guide to Thriving in the Age of Acceleration 이 책 얘기하기 위해 npr 서평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하던 얘기다. 


프리드먼이 누군지 몰랐고 (어렴풋이, 정상세계의 언론인 정도...) 

그의 주제에 (세계화,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 크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의 얘기를 별로 집중하지 않고 듣고 있다가 "when you treat South Korea like it's a dim sum restaurant" 이 대목에서 순간 완전 집중. 근데 왜 딤섬? 일본은 스시 식당, 중국은 중국 식당(차이니스 레스토랑). 중국이 딤섬 식당이어야 하징 낳나. 


이 얘기가 오바마 정부의 어떤 정책, 그에 대조될 트럼프가 하려는 선택의 어떤 면을 부각하는 얘기인지 

(오바마의 국제주의, 트럼프의 국수주의 정도 외엔) 모른다는 게 답답하고 좀 부끄럽기까지 해서, 앞으론 이런 걸 들으면 위키피디아라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랬다가 집에 와서, 아니다 당분간은 그냥 바슐라르만 읽어야겠다. 아도르노나. 세상엔 세상이 갈 길이 있겠지. 


그런데 어쨌든 "benign superpower" 이것에 대한 믿음이 있고 

미국이 그럴 수 있는 길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이 미국에 있는 것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딱 그 정도까지만 생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치, 특히 막 담근 김장김치 먹고 싶어져서 

검색하다가 갓김치 주문하려고 죽 보다가 누가 상품 후기에 


"이거 정말 맛있어요. 

오죽하면 김치가 갓김치겠어요. ㅜㅜ" 


이렇게 쓴 것 보고 

어처구니가 없으면서 동시에 매우 웃겨서 ;;; 터짐. 

갓김치를 김치의 신으로 부르는 사례는 흔한가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세르비아 출신 퍼포먼스 아티스트, 뉴욕에 살고 있다는 

그녀가 올해 출간한 회고록, Walk through Walls. bbc radio3의 그녀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저런 단어를 쓰는 걸 들음. aerie faerie, 혹은 airy fairy. 


"우리 존재는 빈곤해졌어요. 영성, 꿈에 대한 이해가 얕아졌어요. 

고대의 여러 문명들을 알아가면서 나는 이 문명들이 가졌던 자연과의 관계를 재발견하고 거기서 많은 걸 배웠어요. 

이 문명들은 (우리 몸의, 자연의) 에너지들을 이해했어요. 공연을 할 때, 우리 육체가 그것이 가진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그 지점까지, 나의 이해와 진실을 추구해야 해요." 


그녀가 대략 저런 얘기를 하고 (영어가 그녀에게 외국어기도 하지만 

여하튼 분명치 않거나 부정확한 대목들도 적지 않고 억양도 강한 편이라 잘 알아듣기는 힘들다) 그러자 인터뷰어가 하는 말: "It might sound to listeners as if we are talking about something a little bit aerie faerie, but of course as you say your work is very grounded in the body. And indeed in pain. (...........)"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던 (여기서 처음 들은) 단어인데 

조금 감탄했다. 허황한. 뜬구름잡는. 공허한. 환상적인. 등등의 의미로 쓰기에 이렇게 좋은 말도 있었구나. 

바슐라르에 대해 비판적인 어떤 사람들이 바슐라르 문장의 특징을 말하면서, 예를 들어 "diffusely evocative" 같은 구절을 쓸 때, 그들이 실제로 쓰고 싶었던 말은 "aerie faerie"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물론 저런 사람들에겐 

"당신은 이해하지 못합니다"고 해야 한다. 

언뜻 그렇게 보일 언어가 실은 그러니까 프루스트처럼 (프루스트는 무엇보다 "극상의 감수성과 극상의 강인함의 결합 combination of the utmost sensibility with utmost tenacity" 보여준다 했던 울프, 그 지점에서) 작고 일시적인 것이 품은 위대함... (그런 거)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날카롭고 강인한 지성 담고 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말은 어떤가. 

판단하려면 물론 출전과 맥락 봐야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세상의 변화에 적응함' '태세전환이 빠름' 같은 걸 말한 건 아닐 것임 

자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지성(지능)의 척도는 변화의 능력에 있다"고 하면, 바로 위와 같이 

이해되는 일 많지 않을까. 


아주 대단히는 아니라도, 저런 피상적 차원 아니라 심오한 차원의 변화를 말한 것일 거라며 어제 수업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인데.............. 저 말도 인용했었다. (아인슈타인도, 그가 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인터넷에 떠다닌다고 하니, 저 말도 실은 출전불명일 수도. 그런데 아인슈타인을 몰라도, 그가 했을 만한 말 같다.) 


현대 과학의 합리주의에 충실했던 과학철학자가

상상력을 연구하고 한다면 그는 이전의 그의 연구 습관과 결별해야 한다. : <공간의 시학> 첫문단에서 바슐라르. 이런 걸 말했을 거라 상상함. (저런 대강의 요약엔 바슐라르의 그..... "정신의 위대함" 담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부를 다 옮겨올 수도 없고. 이미 옮겨왔던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을 긴 세월 여러 번 읽었긴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거 정말, 첫문단만이 아니라 이 책 전체가 그렇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이 책은 정말 좋은 삶 혹은 진리에 바쳐진 기념비 같은 책이고. 어쩌고 저쩌고 감탄 많이 했다. 고요함에 감싸인 굉음이랄까 하여튼 조용히 급진적인 책.) 





혹은 이런 것. 

자신이 자유인이고 친구에게도 자유를 주는 사람. 그러기 위해 필요한 변화력. 


오늘은 쓰다 만 페이퍼로 돌아갈 날. 

잘 완성될 수 있기를, 그리고 '시작할 때의 흥분'을 조만간 체험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아침. 

아아아아 안될 거야. vs. 하고 안됐음을 아는 건 실은 된 것임. 사이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lueyonder 2016-11-24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the ability to change˝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새롭게 나아감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intelligence가 없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쉽지 않잖아요. 개인의 잘못 차원을 넘어 적용하면, 시대의 잘못을 깨닫고(기존의 관념을 넘어 서서) 새롭게 나아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몰리 2016-11-25 04:42   좋아요 0 | URL
네 ˝지성˝을 정의하고 논의할 때 이 점 정말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아요. 반성의 능력. 아도르노는 ˝단기적 이득에 맹목적으로 흡수됨˝ 이것이 반지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맹목적이지 않고 ‘장기적 비전‘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개인과 사회의 잘못을 똑바로 보는 능력...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수업에서 같이 얘기를 해보았는데, 다들 공감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