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그보다 더, 그들이 스스로 되게끔 허락한 그것에 대가를 치른다. 

그 대가는 아주 단순하게 치러진다. 그들이 살게 되는 삶의 형태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도 여러 저명인들에 의하여 여러 번 변주됐을 듯. 

오래전 이 말 처음 들었을 때, 아니 무슨 당연하지 않나. 생각이 삶이고 삶이 곧 생각이지 않아? 

같은 덜떨어진 반응 했었다. 이게 언뜻 보기보다, 무시무시한 진실이 있는 말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나. 


오늘 수업에서

"올해 내 삶을 가치있게 했던 것들" 주제로 얘길 해보았다. (<도리언 그레이> 읽고 나서 우디 앨런 Manhattan과 

함께, Why is life worth living? 주제로 했던 토론의 변형....) 회화 전공 남학생이 "예술가로 산다는 건, 된다는 건 

단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게 아니라 감각이나 실력이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와 함께 똑똑해야 해요. 내겐 

그게 없어서, 계속 포기했던 한 해인데..."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나는 "똑똑해야" 이 말 들으면서 바로 하이라이트. 바로 윗점. 

그 똑똑함엔, 제임스 볼드윈의 위의 말이 전하고자 하는 "네가 너에게 되게끔 허락하는 그것에 네가 치를 대가" 

이런 걸 아는 바로 그 (그 방향의) 지성도 포함되지 않나. 정신의 어떤 강인함..... 정도로밖엔 지금 표현 못하겠. 

물론 그와 함께, 마티스나 피카소, 샤갈 등등이 그들의 문장으로도 보여준 똑똑함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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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12-13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인용하신 말이 무시무시한 말이라는 데 동감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으로 값을 치르는 것이군요. 우리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요. 뭔가 파우스트적인 냄새도 나네요. 젊음이 지나고 나서야 이런 각성이 찾아옵니다. 하긴 젊어서 이런 것을 알았다면 애늙은이 같은 삶을 살았을 것도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이런 진실을 아는 것이 좋을까요, 모르는 것이 좋을까요? ...

몰리 2016-12-14 10:49   좋아요 1 | URL
전에도 많이 생각해보던 주제라서 (알고 시작하는 게 좋을까, 살다가 알아가는 게 좋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예전엔 명확히 ‘이게 답이다..‘ 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답없다‘ 하게 되네요.

그런데 제임스 볼드윈이 전해 주는 진실 정도는
누구나 일찌감치 (심지어 어린이도;) 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삶을 잘못 살 수도 있다는 것. 잘 사는 삶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는 것.
좋은 삶과 나쁜 삶, 있다는 것. 좋은 삶은 기쁨, 축복이지만 나쁜 삶은 고통일 수 있다는 것.

바슐라르 책들에 여러 번 등장하는 구절 (˝잘못 살았던 삶의 무게˝ ˝잘못 소모했던 열정들˝) 생각하게 됩니다. 바슐라르는 무척 고상한; 고차원적 얘길 하시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시는 바슐라르 포함해서 ˝좋은 삶˝을 깊이 탐구했던 사람들을, 진지하고 진심으로 논의하는 풍토....;;;; 그런 게 있어야겠단 생각도 듭니다.
 




대학원에서 ta할 때

킹 목사의 저 말에서 justice에 괄호치고 괄호를 채울 말 묻는 퀴즈 문제를 냈었다. 

그러니까 두 괄호에 다 justice 넣으면 되는 문장. 


(Justice) too long delayed is (justice) denied. 


이걸 어떤 놈이 


(Sex) too long delayed is (love) denied. 라 답 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근데 진실은 진실 아님? 그 나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문화에서는. 등등의 단서를 달면? 

미국에서 초등, 중등학교 다니는 아이라면 킹 목사의 말을 모를 수 없고 누구든 일찌감치 

킹 목사의 말과 함께 저 말도 듣고 배우고 말하고인 것일 거라 짐작한다. 


섹스의 연기는 사랑의 부정. 

섹스의 미룸은 사랑의 부정. 음. 우리말로는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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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밀러가 진행했던 The Atheism Tapes에서 

콜린 맥긴 편. 유튜브에서 가져오려고 했더니, 유튜브 서비스가 하루 사이에 

개편되었나 보다. 지금 동영상 퍼오기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퍼오지 못하고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하여튼 그가 출연해서, 위와 같은 얘기도 하고 다른 출연자들이 그랬듯이 종교(믿음)의 면에서 

자기의 성장과정, 자신의 전기... 를 들려주는데 


"이 세계가 사악한 사람이 번영하고 덕 있는 사람은 그러지 못하는 곳임을 알 때 

종교의 어떤 가르침들이 진실이길 믿고 싶은 마음은 오래 갈 수 있어요." 이런 말 한다. 


Wicked people prosper and virtuous people don't. 

이 간단하고 지극히 상투적인 말이 듣던 당시 순간 가슴을 쳤는데 

콜린 맥긴이 대단히 매력적이거나 뛰어난 철학자는 아니라도 (이것 보기 전에 거의 모르던 분이다) 

어쨌든 열정적으로 생각하는 현실의 인물이 자기 경험을 뒤에 두고 하는 말이라서 그랬나. 그랬을 것 같고 

또 영어 어휘도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wicked = clever + evil. 우리말로 "사악한"에서는 꼭 그렇지 않지만 

영어에서 wicked는, 지능이 (나쁜 쪽으로) 높음.. 이런 의미 거의 반드시 있는 것. 그리고 주로, 매력이 암시되기도 하고. virtue, virtuous의 경우에도, 좋은 인격과 인격의 실행. 이 면에서 전혀 허황하지 않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 같고. 우리의 경우엔 "덕 있는" 이런 말이, 공허하지 않게 들리기가 어렵지 않나. 


이 말이 참 와닿았던 데다가 

이 말과 직접 이어질만한 내용의 글을 수업에서 읽게 되어서 

토론 질문으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 말 뜻을 설명하는데 어려움 겪음. 

성공한 사람은 사악하고 가난하고 실패한 사람들이 착하다는 건 편견 아닌가요? 

(패자들의 정신 승리 아닌가요?) : 이런 반응 앞에서. 


한국의 현실에서 인문학이 칭송하는 미덕들을 말할 수 없다... 같은 때가 많았기 때문에도 

꼭,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이 침몰하지 않음을 보고 싶다.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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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12-0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세상의 부조리를 설명하기(납득하기) 위해 종교가 생겨났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텐데 이 세상에서 실현이 안되니 죽은 다음에라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거지요. 착한 일 하면 천국에, 나쁜 일 하면 지옥에 가는 식으로요...

몰리 2016-12-07 12:01   좋아요 0 | URL
가인박명, 재인박명 이런 말도
아름다운 사람 뛰어난 사람이 비명에 가는 일이
하도 부당해서, 남은 사람들이 하게 된 말이겠지요.
(아닌가요, 혹시 실제 고사가 있을 수도요 ;;)

그런데 현사태 이전엔
정말 어딜 어떻게 보든,
진리 정의 양심, 기타 등등 인문학이 탐구하는 가치들을
맨정신으로 진지하게 말할 수 없다고 언제나 느꼈었는데
앞으로 적어도 덜 그래질 것 같긴 해요. 이게, 참 신기할 지경입니다.
 



어제, 12월 5일은 조앤 디디온의 생일이었다고 

Writer's Almanac이 전해 주었다. 34년생. 그녀의 에세이집 The White Album에 실린 에세이 하나가 

"We tell ourselves stories in order to live." 이런 첫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그 문장이 아주 유명한 문장이라고. 


불어 문법 공부할 때, 대명동사...... 이거 불어의 매력이겠다 (그 말고도 여러, 중요한 매력들이; 있겠지만) 

생각하고 불어 문장 볼 때 대명동사가 나오면 (아주 자주 나온다, 영어엔 없는 거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나 몰라도) 오호. 잠시 반색. 대명동사와 비할 바 아니겠지만 영어에선 재귀대명사. 우리말 번역하면서 직역하면 거의 예외없이 어색해지는 재귀대명사. 저 짧은 문장도 피해가지 못하지 않나, 번역하면 거추장스러워지는 일. 




34년생이니 지금은 많이 늙었고 

노년의 사진 보면 젊었을 때의 이런 사진들과는 많이 다르다. (당연..... ㅋㅋㅋㅋㅋ; 당연 안해도 될텐데;;;). 

패션 아이콘으로 유명했다고. 셀린 모델도 했었다던가, 그런 얘기도 들은 것 같다. 어쨌든 여러 사진에서, 미국보다 프랑스 분위기. 






우리가 의미를 생산하는 중요한 수단, 방법이 이야기(서사)다, 

인문학 옹호를 할 때도 자주 등장하는 이 말에 대해, 나는 유보적인 것 같다. 

바슐라르라면, 유보적일 것이다. <순간의 직관> 같은 책을 쓰셔서만은 아닌 

'총체화하는 충동' 이런 것에 깊이 기질적인 반감이, 바슐라르에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슐라르라면, 디디온의 위의 말에 더 오래 반응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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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9일에 좀 이르지만 송년 모임이 있다. 

정말, 어떤 기분으로 술을 마시게 될지. 대취할 것임은 분명한데 

어떻게 대취할 것인가. 12년의 송년 모임이 아마 최저점을 찍은 것일 거라서 

무슨 일이 있든 그보다는... 혹은 (이것도 실은 가능했다며) 고점의 체험. 송년 모임까지 

진정 keep calm 하고 그 날 대취하려고, 오늘 이 저녁도 맥주 한두 캔 정도 마시고 싶어지지만 참고 있는 중. 


식스핏언더엔 

참으로 아름다운 파티 장면들도 많다. 가족 파티. 연인 파티. 

저런 게 사랑이다, 우애다.. 실감되는 장면들. 




그런가 하면, 화질이 좋지 않지만 

이 정도 이미지만 구글 이미지에서 구해지니 이 이미지.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쓰고 보통 "쓰리썸"으로 읽어야 한다는) 파티 장면. 섹스중독인 브렌다가 네이트와 결혼 확정되고 나서 미친 짓을 많이 하는데, 이런 파티에 가서 난교 비슷한 걸 한다. tv에서 보여줄 수 있는 노출, 섹스 장면의 아마 최고점; 찍은 장면들 연달아 나온다. 


물론 그게, 대단히도 인류학적인 장면이지 성애 묘사 같은 게 아닌 것인데 

이런 걸 한국 tv에서도 만든다면 좋지 않을까. 여기서 브렌다의 방식으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 그녀가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 섹스하는 캘리포니아의 여피들, 그들의 보여주는 황량하고 고통 가득한 얼굴들.... ;; 그런 것 말이다. 


저건 정말 인간의 탐구고 사회의 탐구고 

저들이 극단적이든 않든 저들이야말로 진정하게 인간적이고....... 이런 생각을 <식스핏언더> 보면서 무수히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했던 한국 드라마는, 아주 옛날에 보았던 (주찬옥 극본?) 것들 중엔 있었던 것 같지만 대학 이후엔 없었던 듯. 어쩐지 혹은 노골적으로 모두가 가짜였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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