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특히 막 담근 김장김치 먹고 싶어져서 

검색하다가 갓김치 주문하려고 죽 보다가 누가 상품 후기에 


"이거 정말 맛있어요. 

오죽하면 김치가 갓김치겠어요. ㅜㅜ" 


이렇게 쓴 것 보고 

어처구니가 없으면서 동시에 매우 웃겨서 ;;; 터짐. 

갓김치를 김치의 신으로 부르는 사례는 흔한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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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세르비아 출신 퍼포먼스 아티스트, 뉴욕에 살고 있다는 

그녀가 올해 출간한 회고록, Walk through Walls. bbc radio3의 그녀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저런 단어를 쓰는 걸 들음. aerie faerie, 혹은 airy fairy. 


"우리 존재는 빈곤해졌어요. 영성, 꿈에 대한 이해가 얕아졌어요. 

고대의 여러 문명들을 알아가면서 나는 이 문명들이 가졌던 자연과의 관계를 재발견하고 거기서 많은 걸 배웠어요. 

이 문명들은 (우리 몸의, 자연의) 에너지들을 이해했어요. 공연을 할 때, 우리 육체가 그것이 가진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그 지점까지, 나의 이해와 진실을 추구해야 해요." 


그녀가 대략 저런 얘기를 하고 (영어가 그녀에게 외국어기도 하지만 

여하튼 분명치 않거나 부정확한 대목들도 적지 않고 억양도 강한 편이라 잘 알아듣기는 힘들다) 그러자 인터뷰어가 하는 말: "It might sound to listeners as if we are talking about something a little bit aerie faerie, but of course as you say your work is very grounded in the body. And indeed in pain. (...........)"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던 (여기서 처음 들은) 단어인데 

조금 감탄했다. 허황한. 뜬구름잡는. 공허한. 환상적인. 등등의 의미로 쓰기에 이렇게 좋은 말도 있었구나. 

바슐라르에 대해 비판적인 어떤 사람들이 바슐라르 문장의 특징을 말하면서, 예를 들어 "diffusely evocative" 같은 구절을 쓸 때, 그들이 실제로 쓰고 싶었던 말은 "aerie faerie"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물론 저런 사람들에겐 

"당신은 이해하지 못합니다"고 해야 한다. 

언뜻 그렇게 보일 언어가 실은 그러니까 프루스트처럼 (프루스트는 무엇보다 "극상의 감수성과 극상의 강인함의 결합 combination of the utmost sensibility with utmost tenacity" 보여준다 했던 울프, 그 지점에서) 작고 일시적인 것이 품은 위대함... (그런 거)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날카롭고 강인한 지성 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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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어떤가. 

판단하려면 물론 출전과 맥락 봐야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세상의 변화에 적응함' '태세전환이 빠름' 같은 걸 말한 건 아닐 것임 

자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지성(지능)의 척도는 변화의 능력에 있다"고 하면, 바로 위와 같이 

이해되는 일 많지 않을까. 


아주 대단히는 아니라도, 저런 피상적 차원 아니라 심오한 차원의 변화를 말한 것일 거라며 어제 수업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인데.............. 저 말도 인용했었다. (아인슈타인도, 그가 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인터넷에 떠다닌다고 하니, 저 말도 실은 출전불명일 수도. 그런데 아인슈타인을 몰라도, 그가 했을 만한 말 같다.) 


현대 과학의 합리주의에 충실했던 과학철학자가

상상력을 연구하고 한다면 그는 이전의 그의 연구 습관과 결별해야 한다. : <공간의 시학> 첫문단에서 바슐라르. 이런 걸 말했을 거라 상상함. (저런 대강의 요약엔 바슐라르의 그..... "정신의 위대함" 담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부를 다 옮겨올 수도 없고. 이미 옮겨왔던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을 긴 세월 여러 번 읽었긴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거 정말, 첫문단만이 아니라 이 책 전체가 그렇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이 책은 정말 좋은 삶 혹은 진리에 바쳐진 기념비 같은 책이고. 어쩌고 저쩌고 감탄 많이 했다. 고요함에 감싸인 굉음이랄까 하여튼 조용히 급진적인 책.) 





혹은 이런 것. 

자신이 자유인이고 친구에게도 자유를 주는 사람. 그러기 위해 필요한 변화력. 


오늘은 쓰다 만 페이퍼로 돌아갈 날. 

잘 완성될 수 있기를, 그리고 '시작할 때의 흥분'을 조만간 체험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아침. 

아아아아 안될 거야. vs. 하고 안됐음을 아는 건 실은 된 것임.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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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11-24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the ability to change˝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새롭게 나아감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intelligence가 없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쉽지 않잖아요. 개인의 잘못 차원을 넘어 적용하면, 시대의 잘못을 깨닫고(기존의 관념을 넘어 서서) 새롭게 나아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몰리 2016-11-25 04:42   좋아요 0 | URL
네 ˝지성˝을 정의하고 논의할 때 이 점 정말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아요. 반성의 능력. 아도르노는 ˝단기적 이득에 맹목적으로 흡수됨˝ 이것이 반지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맹목적이지 않고 ‘장기적 비전‘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개인과 사회의 잘못을 똑바로 보는 능력...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수업에서 같이 얘기를 해보았는데, 다들 공감하더라고요.
 



"세계 어딜 가든 멍청함은 거의 같다. 

멍청한 사람의 관념과 감정은, 그의 주변 사람들 사이에 지배적인 관념과 감정으로부터 

자신하며 추론해낼 수 있다. 자신의 본성,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의견과 감정이 발원하는 이들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stupidity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라는 위의 말도 볼 수 있다. 

이것 몇 방향으로 확장 가능할 것 같다. 어느 시대 어느 집단에서 지배적인 관념과 감정은, 그 자체엔 

진실의 계기 같은 것이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들의 표본이 될 사람들 안에서는 멍청함이 되지 않나? 적어도 멍청함과 

협력하지 않나. 


상투어가 멍청한 이유가 정확히 이것 아닌가. 


여기 보태 적어둘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에선 적어둘 가치 있어 보였던)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비아그라 후속 소식들 찾아보던 중. 아침 지하철에서 관련해 올라오는 "속보" 보면서 현실 웃음 터지던데. 


라고 쓰고나서 할 말이 없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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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말한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여러 사람들이 반복해 말했나 보다.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출전이 로버트 하인라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기타 모르는 사람들, 아인슈타인까지. "멍청함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을, 악의로 설명하지 말 것. 하지만 악의도 배제하진 말 것." 


어떤가. 어떤 진실이 있나. 멍청함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을 악의로 돌리지 말 것. 이건 멍청함이 

무해하거나 우호적인 형태일 (그런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몰라도) 때만 그렇지 않나. 그런 경우 제외하면 

멍청함은 반드시 악(악의)이지 않나. 





그래서 이 쪽이 더 진실이지 않나. 

루이즈 보건이란 분은 처음 보는 이름인데 

그녀의 말로 이것 말고도 구글 이미지에서 찾아지는 것들이 있으니 유명한 분인가 봄. 


어쨌든 그래서 교육의 목표엔 반드시 "지성"(어떻게 정의되든) 이것 들어가야 하지 않나. 

"남자가 없는 여자는 자전거가 없는 물고기 같은 것"처럼 당연한 말이지만 자명함이 자명하지 않을 때. 않은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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