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은 것 아니고 구글 이미지에서 "눈오는 연희동"으로 검색. 

매일 산책하는 바로 그 길이다. 작년 12월인가 올해 1월인가 새벽에 나갔다가 보았던 

나무 가지들이 막 내리는 눈을 두껍게 그대로 이고 있고 노란 가로등 빛은 몽환적이고 그리하여 

"magic mountain" 되던 풍경. 이건 낮의 사진임에도 보면서 그 풍경 기억함.  


서울에서 여러 동네 살았던 건 아닌데 이 동네가 나는 참 좋고, 서울 산다면 언제나 (영원히?) 여기 살고 싶어진다. 이미 서재 포스트로도 여러 번 쓴 얘기. 무엇보다 산책하기가 아주 좋다는 점. 산책이 목적인 산책도 좋지만, 걸어서 뭐든 해결할 수 있다. 장보기, 담배사기 ㅜㅜ 술 사기. 세탁소 동사무소. walkability. 최강. 하긴 후자, 걸어서 해결함은 그게 안되는 곳이 한국엔 없겠지만. 새벽이나 저녁에 안전하고 조용한 곳에서 걸을 수 있다는 건, 예전 살던 동네에선 생각할 수 없던 일. 


그런데 여기 보태어 막강한 강점이 그것 아닌가. 광화문 접근 용이. 

집 내놓고 (집이 조금 더 넓고 부엌이 조금 더 좋았으면 이 집에서 계약 연장하면서 계속 살텐데, 그렇지 않아서 집에는 약간 불만이 있다) 내놓으면서 집의 장점으로 그것도 말하자고 생각해 봄. 집회에 바로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점 생각하지 않으며 연희동에 집 구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아, 10월 20일 근방엔 가장 큰 뉴스가 문단성폭력이었다. 그러다... 오늘에 이르고 

거의 한 달을, 책을 제대로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하고 있음. 그냥 휴업이 되고 맘. 바슐라르는 어떻게 휴업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튜브에 있는 사라 처치웰 (이 분 팬이 되었다) 강연 중 

당연히, 그녀의 가장 큰 관심인 <위대한 개츠비> 주제 강연 있다. 

이것도 흡인력 매우 높고 '고퀄' 강연. 꽤 오래 이것저것 강연 많이 들어봤다 자부하므로, 어느 정도 믿으셔도 되는 평가. 


피츠제럴드가 이 소설 쓰던 무렵 (20년대초), 25년 이 소설이 출간되고도 얼마간은 

미국 문학이 유럽에서 조롱의 대상이었던 일에 대해서도 꽤 길게 얘기한다. 유명 유럽 문인들에게 

미국 문학은 농담에 불과했고, 미국 작가들도 그렇게 스스로를 평가했다. 피츠제럴드가 남긴 편지들에 

이 점을 놓고 그가 수신인과 주고받은 굉장히 재미있는 얘기들이 있다. 그런데 <개츠비>는 그가 "위대한 미국 소설 great American novel"을 쓰겠다는 야심과 함께 쓴 작품이고 그리고 출간 직후엔 그 점을 알아본 독자나 비평가가 없었지만 오래지 않아 "위대한 미국 소설"의 시작이 되었다. 50년대면 피츠제럴드와 <개츠비>로 박사학위논문이 쓰여지기 시작한다. : 이런 얘기. 


<개츠비>와 "위대한 미국 소설"을 향한 피츠제럴드의 야심에 대해서는 

내가 이 소설이나 피츠제럴드, 20세기 미국 문학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바 없다보니 

선명히 와닿지는 않았는데, 조금 잘 안다면 꽤 흥미로운 지점이 여기 있음을 알아볼 것 같다. 사라 처치웰이 

(학자로도 그렇겠지만) 연사로 뛰어난 점이, 자기 주제를 만인의 이야기로 들리게 한다. "사실 <개츠비>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까지 미국에서 있었던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이러이러한) 변화와 특히 (이러이러한) 실제 사건들, 그것이 형성했을 정신적 풍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감이 없다면,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라고도 말하겠다" : 이런 얘길 하기도 하는데, 사실 저렇게 말하면 <개츠비>는 미국문학전공 박사과정 2년차 학생에게 기대되는 지식배경을 미니멈으로 요구하는 소설 되지 않나. ;;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고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저런 말을 할 때도, <개츠비>를 알기 위해 알아야 할 그 미국의 정신적 풍경이, 우리 모두 알아야 할 무엇으로 들리게끔 한다. 너도 알아야 해. 이 시대, 이 세계의 인간이라면 알아야 해. 


그렇게 자기가 깊이 공부한 어떤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절박한 무엇이 되게끔 하는 것. 좋은 이유와 함께. 

이것도 학자가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여겠지. 


자 그래서, 한국 문학이라는 농담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이 청산되는 시대에, 개인성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해야 한다." 

사라 처치웰이 '우리 시대의 정전' 이런 주제로 한 발표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전은 엘리티즘과 뗄 수 없는데, 엘리티즘 안에서 특권과 탁월함(privilege and excellence)이 하나가 된다. 문학연구에서 정전의 폐기는 특권의 청산이 목적이어서 해방적, 민주주의적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특권과 함께 탁월성도 내다버린 면이 있다. 하지만 탁월성은 반드시 옹호해야 할 가치인데, 그럼에도 탁월성을 누가 판단하느냐를 놓고 딜레마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주관이 강조되면, 그 판단을 하는 쪽이 거의 반드시 특권도 갖게 된다. 객관을 강조하면, 개별 주체가 아닌 외부적 권위에 호소하게 되어 계몽시대 이전으로 복귀하는 셈이랄까. : 대략 이런 얘기를 한다. 


정전과 엘리티즘. 

특권과 탁월함. 특권은 청산하되 탁월함을 지킬 방법. 이것도 문학연구가 부활(언젠 활활 살아있던 적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러게요... 겠지만 어쨌든)하려면 진지하게 탐구하고 답해야할 문제.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강력한 통찰들이 특히 <미학이론> 포함 아도르노의 책들에 가득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아도르노 연구자들이 많고 그들 다수가 뛰어남에도, 이 점 포함 그의 저술 여러 면모가 아직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유산. 그래서 내가(나라도) 그 유산 물려받겠다, 그런 건 아니나 하여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라 처치웰이 올해 7월 "인문학의 미래" 주제로 했던 강연. 

강연을 할 때는 그래도 말이 그렇게 빠르진 않다. 그래도 빠른 편이긴 하지만. 

처음 Entitled Opinions에서 그녀 말하던 거 들을 때 매혹되어서, 그 에피소드를 여러 번 듣긴 했는데 

막 첫책을 낸 아직 '주니어' 교수지 않을까 해서 이리저리 찾아보진 않았다. 찾아보니 유튜브에 동영상이 

꽤 많은 편이고, 가디언지 포함해서 영국 미국의 여러 매체에 자주 기고한다고. 책도 <개츠비> 다루는 Careless People

말고도 마릴린 먼로에 대한 책도 썼다. 


어쨌든 이 강연도 매혹적이고 mesmerizing, electrifying. 이런 단어 써도 과장이 아니다. 

인문학은 더 적극적으로 "공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감정교육"이란 그 본질상 정치적 교육이다, 

consumer가 아니라 citizen으로 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를 탐구하고 정립하라... 이런 얘기. 어찌 봄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얘기겠지만 그러나 업계 종사자가 오래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생각한 다음 하는 얘기라 

(아무리 당연한 얘기라도 수시로 기억할 때만 그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기도 하겠고) 강력하고 분명하다. 한국의 

인문학자들 중 그녀가 여기서 하는 얘기를 머리로 혹은 지식으로, 사실로 아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녀처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지식, 사실을 실제로 살지는 않기 때문에.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하는 일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작지 않은 행운. 

한국에서는 그게 무슨 일이든 그런 행운 있는 사람도 드문 편이지 않을까. 

어쨌든, 내겐 없는 행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그래서 유튜브는 신이 한국의 인문학도들에게 보낸 선물이라니깐. 


인문학의 방법론이 확장되어야 할 필요에 대해서 말하는데 

예를 들어, 역사학에서 하듯이 "내러티브"가 문학연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제안한다. 

한국의 문학 전공 대학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선 "논증 argumentation" 이것만이 문학 연구의 방법. 

나도 왜 그래야 하냐고, 대학원 시절 내내 의문이었고 이 문제로 지도교수와 갈등이 있기도 했다. 지도교수는 

당연히 주장과 주장의 정당화, 이것이 학문적 작업이다. 이건 이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라 처치웰은 

이제 자기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방식으로의 문학연구에 아무런 대중적 욕구(public appetite)가 없다는 것도, 이 방법이 어쩌면 그 자체로 잘못이고 자기패배적인 것일지 모른다 생각하게 한다. 문학연구에 대중적 욕구가 없는 데 반해 "내러티브"가 인정되는 방법인 역사학은 꾸준한 그 욕구의 대상이고, 문학연구는 역사학에서 이 점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교육은 사실들의 학습이 아니다. 교육은 정신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다." 

이 말도 아인슈타인의 말로 인터넷을 떠다니고 있는 말. 평범하고 진부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은 아인슈타인 정도 되어야 의미있게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갤럽이 "한국인에게 철학은" 주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철학자 물었을 때 나온 답에서 1위가 도올이던데 (그밖엔 원효대사, 이이, 이황...) 

도올이 같은 말을 했다면, 음 글쎄 당신이 하는 그것이 생각일까? 당신이 생각이라 생각하는 그것을 생각이라 

부르지 맙시다. 같은 심정 될 것 같다. 


한국이 토론 문화가 아닌 이유로 

이 점도 중요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지 않음. "training of the mind to think" 이것이 없었음. 

정신도 부정되고 정신의 삶도 부정됨. 생각과 생각, 정신과 정신이 대화할 때 일어나는 진짜의 접촉과 변화. 이런 거 없음. 


그럼 니가 생각하는 생각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나중을 기약. ;;; 하겠. 플라톤의 대화가 좋은 예를 주지 않나요. 

아니면 바슐라르나 아도르노도 "mind at work" 이것의 아주 좋은 예. 

이들이 탐구했던 주제에 대해 아무리 어설플지라도 나도 관심이 있어 질문을 들고 그들에게 간다면 

생각없는 반응을 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lueyonder 2016-11-25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아인슈타인의 또 다른 멋진 말이네요! 좋은 인용 감사합니다~

몰리 2016-11-25 17:30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더 올려보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