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터다이크는 일기도 책으로 냈는데 (두껍게 여러 권) 

일기도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생전에 자기 일기를 책으로 내는 저자. 

그러면 딱 들만한 반감이 그에게는 들지 않는다. 낼만해서 냈겠고 

자기 일기의 가치를 정확히 그 자신이 알았겠지. 하게 된다. 


그가 왜 우파로 여겨지고 진지한 철학자로 대접받지 못하기도 하는지 알겠다 싶은 대목들이 

그의 책에 꽤 있기도 하다. 읽다 보면 나온다. 권 당 세 번? ; 그러니 많지는 않은. 그러나 그렇다고 

가끔 예외적으로인 것도 아닌. 꾸준히, 일관되게 있긴 있다. 


그는 하버마스를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 고도의 조롱을 하기도 한다. 

그의 저술들은 "미디어 이론의 순진성의 고전이다" 같은. 의사소통 행위에 관한 하버마스의 이론은 

"맑은 날, 기분 좋은 날에만 진실이다" 하기도 하고. 


그런데 아도르노에게는 애착, 존경, 동일시 이런 것들이 있다. 

"비판 이론이 내게 이론적 고향이다" 같은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비판 이론은 아도르노. 

비판 이론 1세대와 2세대를 비교하면서, 2세대의 패착은 1세대의 이론적 과잉을 내다버린 데 있다 같은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1세대의 이론적 과잉을 말하면서 "overkill" 이 단어를 쓴다. 


overkill. 독어로는 어떤 단어였길래 이렇게 번역된 건가 몰라도 

<계몽의 변증법> <부정변증법> 아도르노의 이런 책들을 말할 때 아주 딱인 단어. 그러나 아무도 쓰지 않았던 단어. 

그에게는 1세대의 그 과잉이 그를 그곳으로 이끈 그것. 


그에게 비판이론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는 면들도 아주 많고, 이미 이 주제로 나온 글들이 꽤 있을 거 같기도 하다.

영어로는 아직까지 내가 찾아낸 건 없는데 독어로는 있지 않을까. 없다면 (그런데 이걸 읽는 당신이 혹시 철학도라면) 이 주제로 쓰시는 것이....  


그리고 solidarity, 이것의 엄청나게 열정적인 이론가이기도 하다. 

이 주제로도 아직 내가 찾아낸 글은 없는데, 좋은 글/논문이 나올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한다. 


하튼 나는 그에게서 많이 배웠고 

적지 않은 위로를 받은 거 같음. 절대로 불가능하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긴 한데 

그가 선생이라면 그를 능가함으로 보답하는 제자가 되어보고 싶음. 망상. 너무 쉬운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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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2-23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망상이라는 말로 급 수습하시는 겸소함 ㅎㅎ

2021-02-23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3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3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3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4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4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은 공간을 만드는 존재고 

그 공간엔 그 공간의 기후가 있다. 

그리고 기후학은 면역학이다. 


저런 것이 슬로터다이크의 (특히 Spheres 3부작에서 그렇지만 다른 데서도) 기조다. 

아니 이건 우리가 언제나 알고 있던 것 아닙니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같은, 이니셔티브를 뺏긴 듯한 느낌이 들만도 한 아이디어이지 않나 한다. 되게 흥미롭게 들리지만 한편 너무도 당연한. 그가 하는 논의들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 참 예민한 사람이구나, 감탄스러운 대목들이 있다. 나도 알았던 것이긴 한데 알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냥 다 흘려 보냈던 감정, 생각들을 포착하고 과하게 집중하고 확대하는 대목들이 아주 많다. 아니 철학이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아무튼 나는 그의 "공간, 기후, 면역" 논의 보면서, 다른 많은 주제들이 있겠지만 일단 대학에서 "학풍"이라는 것, 그것의 정체와 그것의 가능성의 조건을 생각하는데 그의 논의가 무척 도움될 것임을 알아보면서 


짝짞작. (짝짝짝). 


그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인도로 가서 7년을 보냈다. 인도 철학을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그 시기를 "격렬하게 자기 인식에 몰입했던 세월" 같은 말로 요약하기도 한다. 그의 삶에서 이 시기에 대한 그의 말들은 (인도, 오쇼 라즈니쉬, 인도철학, 요가, 자기인식 등이 키워드) 어떻게 번역하든 다 미심쩍게 들릴 법한 말들이다. 그런데 자기 인식이 생애의 과제였던 사람, 그리하여 어쨌든 적어도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는 투명하게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는 사람 -- 여하튼 그의 책들은, 이런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책일 것임인 것이다. 


한국의 교육에 시사하는 극히 중요한 무엇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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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유럽 사상사에서 하이데거가 갖는 독특한 위상의 개요를 주는 글이라고 

슬로터다이크 자신이 소개하는 에세이가 Not Saved: Essays After Heidegger, 이 책에 실려 있다.

오 그래요? 이걸로 하이데거 입문을 하면 되겠군요. 다른 누구보다 당신의 글이 가장 잘 입문시켜 줄 거 같습니다. 

(....)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하이데거 논의하기 전까지는 극상의 즐거움을 (존재의 색조, 음조가 변화하는) 주다가 본격적 하이데거 논의가 시작하면 한 줄의 진도를 나가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뼈를 깎을 수 없으니 한 줄의 진도도 나갈 수 없는..) 


하튼 그런 글이다. 

본격적으로 하이데거 논의하기 전 극상의 즐거움을 주는 몇 페이지는 

아렌트의 묘지와 하이데거의 묘지를 비교하는 내용이다. 하이데거는 그의 고향 독일 시골마을, 성당 묘지에 묻혔다. 

아렌트는 그의 남편이 재직했던 뉴욕주 바드 칼리지의 대학 묘지에 남편과 함께 묻혔다. 슬로터다이크는 자신이 바드 칼리지에 방문했다가 거의 우연히 아렌트의 묘지를 발견했다고 쓰고 나서 


대학이 그 대학에 재직했던 이들을 위한 묘지를 따로 갖고 있다는 것의 의미, 이런 것을 성찰하기 시작한다. 





Bard College 구글 이미지 검색하면 

작은 리버럴 아츠 칼리지 캠퍼스로 바로 상상할 법한 이미지들 찾아진다. 찾아보면서 

저 공간, 건물과 나무들 사이에서 부는 초록의 시원한 바람, 이런 것이 바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세속 세계를 밀어내는 에너지 때문에, 고요가 말을 하는 곳, 귀가 멍멍해지는 곳일 것이다... 느낌.  


캠퍼스란 "이론을 통한, 세계의, 도시로의 유입" : 이런 말을 한다. 이 구절에서 두 개의 콤마는 

번역불가라 느껴지는 구절을 어떻게든 번역해 보려다가 선택한 궁여지책. 슬로터다이크가 쓴 구절은 

the irruption of the world that has been extended by theory into cities, 이렇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 사람이 쓰는 세련된 문장들이라 그의 문장들 속에서는 이 좀 이상한 구절도 이상하게 깊이 매혹적이고 바로 말이 된다. 바드 칼리지는 뉴욕의 시골에 있는데, 대학의 캠퍼스란 "이론을 통한, 세계의, 도시로의 유입"이기 때문에, 바드 칼리지가 소재한 그 시골 마을은 코스모폴리탄 도시가 된다고 슬로터다이크는 말한다. 이 세계도시에서, 교수들은 최초의 인간으로 걸어 나온다. 


아렌트가 살았던 망명자의 삶에서 

이렇게 구유럽의 전통이 (도시, 세계시민성, 보편성) 지속되었고 그에 반해 유럽을 떠나지 않은 하이데거는

그 모두와 절연하겠다는 의지를 자기 묘지의 선택으로도 보여주었다.... 고 슬러터다이크는 말함. 


이런 논의를 하는 세 페이지 남짓은 슬로터다이크가 어떻게 자기 독자들을 매혹하는 저자인지 

선명히 보여준다고 할만한 페이지들이다. 뉴욕 시골의 바드 칼리지에서 구유럽의 어떤 (잘 모르면서도 상상하는) 거리, 어떤 정신적 풍경, 어떤 열기까지 다 바로 체험하는 듯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짧은 여행의 기록을 써도 됨. 그러나 하이데거 논의가 시작하면, 아이게 뭡니까. 나중에 뵙겠습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엔 "존재와 공간"이라는 주제가 매몰되어 있다는게 그의 입장이고 

Spheres 3부작에서 매몰된 그 주제를 되살리는 시도를 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Spheres 3부작만이 아니라 어디서든 아 정말 이 분은 "공간"의 사상가다 실감할 수 있다. 그를 읽으면서 서서히 모든 것이 공간의 문제로 보이게도 되는데, 무엇보다 인식/지식의 모델을 "공간화"하기가 한국에서는 절실한 일이 아닌가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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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roslav Pelikan의 

기독교 전통, 기독교 교리의 역사 5부작. 

The 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 


슬로터다이크 책들 읽기 전이었다면 

아무 관심 없었겠지만, 지금은 


오오 이건 사야해. 이것부터 사야해. 

이 책이 하늘에서 내 책상 위로 떨어졌으면 좋겠다. 


흐으. 1권으로 사기 시작했다. 일단 1권 주문함. 


서두를 보면 어마무시합니다. 

참고문헌도 어마무시하고 

접근하는 방식도, 언어도. 




알고 보면 크리스천인 사람이 니체만이 아닐 것이다. 

바슐라르도 알고 보면 크리스천, 가톨릭이겠다고 슬로터다이크 읽으면서 생각함.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무엇이 얼마나 알려져 있나 모르겠지만 (앞으로 찾아보아야 한다)

성당이 그에게 중요한 장소였을 것으로 짐작함. 


서양사를 기독교 모르면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었..... 

당연하다마다인데 제 일로 닥치기 전엔 모르는.....; (말을 잇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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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2-18 1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몰리님. 영어 공부 하겠습니다. 영어 공부를 해야 이런 책들도 막 읽을 수 있겠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 역시도 성경을 읽어야 독서가 더 재미있어질 것 같아 시도중입니다. 살면서 시도하고 공부해야 할 게 왜그리 많은 걸까요, 몰리님?

몰리 2021-02-18 11:10   좋아요 2 | URL
영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ㅎㅎㅎㅎㅎ 하셔야 합니다!

오 근데 늠 신기해요 성경의 세계도!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어린 시절 유신론자(성당 다님)로 성경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는데, 안다고 생각했던 책이
전혀 달라지는 경험!

세상엔 정말 우리가 열어봐야 할 얼마나 많은 문들이 있으며
비밀의 정원들이 있는 것인지! (한숨...;)
 




슬로터다이크 책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이것저것 내게 주는 암시들이 많아서 

부지런히 읽었다. 작년 12월 중순 그의 책들 읽기 시작한 거 같은데 이 시점에서 사둔 그의 책들 2/3는 읽은 거 같으니 

부지런히, 많이 읽었다 할만하다. 심지어 대학원 시절에도 이렇게 읽은 적은 없는 거 같다. 


기독교 역사와 신학을 활용하는 그의 방식도 여러 모로 놀랍다. 

니체가 알고 보면 크리스천이다, 같은 논의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전엔 

아... 네 (무리데스). 쪽이었다면 슬로터다이크가 같은 주장을 하는 걸 보면서는 한숨 많이 쉬고 감탄했다. 

설득됨의 한숨과 심오함에 대한 감탄. 


기독교 역사와 신학이 그 자체로 공부할 가치가 있다, 어쨌든 아주 재미있을 수 있다.... 고 실감하게 한다. 

이 주제로 읽은 게 부실해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한 번도 이렇게 실감한 적이 없는데 이제는 실감함. 

예를 들어 신약에서 "사도행전" (바울의 서한들 포함, 무엇이든 그렇지 않겠냐만), 이런 것이 참으로 

여러 모로 놀라운 문서가 되는 것이다. 슬로터다이크와 함께라면. 



이제 그러면 관련 책들을 사들여야 하겠는데 




최초의 주문은 이것이었다. 하버드 출판부에서 나온 

꽤 비싼 책. 아 뭐 이젠 내가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오직 집에서........ 돈은 전부 책에만 써도 되는 시절이 언제 또 있겠는가. 인생이 짧은 것도 감안해야 하고.  


관련 주제 책들을 찾아보면서 

이 주제들의 연구에 자기 삶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들이 남긴 역작, 노작들이 적지 않다는 것, 지금도 

좋은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에도 (아니 이런 당연하고 말고인 부분이지 말입니다만) ..... 좀 경건해지는 

심정이었다. 


어쨌든 일단 사막, 수도원 이런 것에 끌린다면 아주 최고의 덕질 주제가 기독교이지 않을 것인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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