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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 

조금 특이했던 ('파격적'까지는 아니라도) 과제를 주셨던 선생님 있다. 

아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시절의 모든 기록, 행적을 잘 모아두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푸코와

세즈윅 (이들 외에도 다수) 등이 포함된 이론 수업에서, "이들 논의에서 까다롭거나 분명치 않아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점 하나를 선택하고, 3페이지 분량의 주석을 쓰라." 나는 세즈윅의 저 책 "서론"에서 푸코가 인용되던가 인유되던가 아무튼 그가 등장하는 지점 택하고 썼던 과제.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좋은 과제라고 생각함. 


한 저자만 읽은 수업으로 

프로이트 세미나가 있었는데 

이 수업에서 기말과제를, "프로이트와 너의 주관심대상인 다른 저자가(저자들이) 나누는 가상의 대화를  쓰라"는 것으로 냈다면 재미있고 (재미있는 쪽으로 골치 아프고) 많이 배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바슐라르를 택해서, 바슐라르가 시도한 정신분석의 새로운 활용 혹은 재주조... 에 대해, 프로이트와 대화하게 하면서 생각하고 상상했다면, 그 과정에서 아주 좋은 페이퍼감 적어도 세 개는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중국발 스모그가 유입될 예정이라는 오늘. 

일찌감치 오늘치의 걷기를 하고 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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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 벨의 (그녀를 20세기의 선구적 예술가로 보는) 최초 단독전시회가 열린다고. 

위의 사진은, 정확한 연도는 찾아봐야 하는데 각각 아마 10대, 30대 후반, 70대 초반. 


미인이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인물. 삶의 방식에서는 

버지니아 울프보다 바네사 벨처럼 (그럴 수만 있다면)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랬었다. 


노벨 문학상이 8시에 발표된다니 

누가 받나는 알고 자야겠어서 일찌감치 졸리지만 버티고 있다가 

노벨 문학상이 비켜간 거인들 ;; 조이스, 프루스트, 울프. 이들. 그런데, 그러게 아일랜드는 네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나. 예이츠, 베케트, 히니, (*그리고 한 사람은, 지금 찾아보니) 쇼. 조지 버나드 쇼. 


아일랜드에선 와일드, 조이스와 베케트가 나왔는데, 한국에서는? : 이것도 

"우리는 왜 편지쓰지 않았는가?"와 같이, 명쾌한 해명을 원했던 무엇이었다. 해명불가인가? 역사의 우연 혹은 변덕만이 작용하나. 



*앤 드루얀이 세이건과 같이 했던 세월에 대해 했던 말에서 

"삶이 얼마나 짧고 소중한가" 이것 찔리듯 절실한 말 아닌가. 

오랜만에 찾아본 바네사 벨의 노년 얼굴 보면서, 다시 절감. 

내일부터는 시간을 아끼고 잘 쓰면서 글을 써야 할텐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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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6-10-1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딜런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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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카스트로-스탈. 

클레어의 미대 은사(?!). 그에게서 수강한 과목 명칭이 "공간과 형식 Space and Form"이던가. 

그는 바이섹슈얼이고 boy year, girl year, 이 해는 남학생, 다음 해는 여학생, 자기 제자들과 염문

('염문' 이 단어 쓰고 나니, 이어서 무슨 단어를 써야할지. 염문 '갖는다'고도 할 수 있나? 염문 '뿌리다'는?) 

여하튼, 이십대 초반 한때엔 프랜시스 베이컨과 비교되던 천재 화가였으나 지금은 여러 모로 부적합, 부적절, 부도덕한 삶을 살고 있는 인물. 


클레어 남친 러셀이 올리비에의 정부(....) 비슷한 것이 되고, 

그걸 안 다음 깊은 환멸, 실망을 겪은 클레어가 올리비에와 독대하고 싸우는 장면 있다. 

클레어는 그에게 예술가의 윤리적 책임, 의무.... 를 강조하고, 올리비에는 '너 그렇게 계속 너의 심장과 cunt를 부정하면,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없다'며, 


하여튼 그런 방향 말들로 클레어의 환멸을 더더욱 깊게 하는 장면. 


클레어가 그에게 쏟아내는 말들 중 이런 것이 있다: 

"당신은 언제나 앞서 한 말과 반대되는 말을 해요. 그래서 당신이 하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You constantly contradict yourself. Nothing you say ever makes any sense." 


그리고 

"신이여, 당신 얼마나 졸라 가짜인가요. God, you are such a fucking ph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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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표방한다고 주장하는 바와 실제로 자신이 표방하는 바가 정반대인 인물인데 

미국 대학(학계)에서 이런 인물은, 희귀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소수, 극소수에 속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게 거의 생활의 양식 아닌가? 더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자신이 표방한다고 주장하는 바와 

정반대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그런 자기 압박같은 것마저 있는 것 같지 않나. 그것이 정언명령. 

모두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 표방하는 바와 실천하는 바를 정반대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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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대적 고찰>엔 4편의 에세이가 있는데 

니체의 계획으론 그보다 훨씬 많이 (계획이 여러 번 수정, 확장되었을 거라서 

"애초 계획에 따르면 -- 편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적어도 12편?) 구상했지만 

완성된 것이 4편, 해당 주제로 해두었던 노트들의 취합 수준을 꽤 넘어, 초고 직전까지 갔달 수 있는 것이 1편. 그 1편이 "우리 고전학자들 We Classicists" ("우리 문헌학자들 We Philologists"로도 번역된다). 


그 "우리 고전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반시대적 고찰>은 

예일 출판부 판이다 (아래 이미지). 책임편집자가 윌리엄 애로우스미스. 

그가 책 전체의 "인트로덕션"을 썼고 "우리 고전학자들"은 그가 번역하고 해설도 썼다. 


니체 번역 외에

파베제, 몬탈레 등 이탈리아 시인(작가)도 번역했고 

아리스토파네스, 에우리피데스 등 그리스 고전 저자들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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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건 이 <반시대적 고찰> 뿐인데 

여기 실린 그의 글들, 순수히 좋은 의미에서 "남성적" 글들이다. 

lean and muscular. 무르거나 끈적한 것 없는 근육질의? 곳곳에 '펀치'가 있고 그 힘이 강하다. 

이런 종류의 문장을 쓴 여성 작가는, (당연히 있어왔고 지금도 있겠지만 내가 읽은 작가들로 한정해서) 못 본 것 같다. 많은 ㅋㅋㅋㅋ ;;;; 여성 작가들이 이런 문장들도 썼으면 좋겠다. 


좋은 의미에서 "남성적"인 문장들은 반드시 우아하고 유연하기도 할텐데

강인하며 유연함.... 문장의 이런 특징은, 외국어 공부를 오래 한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지 않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닐까. 아닐 것 같.. 기도; 한데, 어쨌든 애로우스미스의 경우엔 

어쩐지 영어같지 않음..... 이 저 좋은 특징들에 크게 기여하지 않나 한다. 


일급의 문장가이며 일급의 학자. 

감탄하며 읽고 나서 (난 안돼, 아무렴. 그만하자) 울다 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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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 중 하나를 자기 손에 넣는다는 것. 

이것이, 인간이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희귀한 품위에 속한다. 

책을 손으로 들기 전, 그는 아마 신발을 -- 장화는 말할 것도 없고 -- 벗을 거라고 나는 예상하겠다. 


하인리히 폰 슈타인 박사가 <차라투스트라>의 단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극히 정직하게 내게 불평했을 때, 그건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나는 답했다. 

그 책에서 여섯 문장을 이해한다는 일. 다시 말해, 그 문장들을 진정 체험한다는 일. 

그 일을 해낸 사람은, "현대" 인간이 가 닿을 수 있는 그 어디보다 더 높은 곳으로 자신을 고양한다.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서두에서. 

좀 더 종합적인 니체 연구서와 <차라투스트라>에 집중하는 연구서들을 

이제 꽤 모아두고 대강은 본 다음인데, <차라투스트라>는 이런 책이다..... 고 완결적으로 (그게 편파적, 혹은 한정적, 일시적으로 그럴 따름이라도) 알게 한다. 같은 책이나 논문은 없었다. 정말 <공기와 꿈>에서 바슐라르의 그 한 챕터가, 그나마 그것에 가장 가깝다. 바슐라르의 읽기로 (그의 관점으로) 해명되지 않는 부분이 <차라투스트라>에 당연히 아주 많고, 그에 대해선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혹시 융의 <차라투스트라> 세미나(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들의 심층의미를 탐구한다는?)가 이 책의 세부 모두를 면밀히 보면서 종합하는 시도인가 아닌가... (분량에 놀라 펴보기 힘든 이 책, 펴봐야겠다...) 


그런데 어쨌든 바슐라르는 그 책의 여섯 문장, 혹은 예순 문장 쯤은 이해했고, 진정 체험했던 분이라 

(그의 읽기는, 그로부터 니체 세계의 재구성, 재체험이고) 바슐라르의 글엔 중언부언, 횡설수설, 혹은 '필러'가 없다. 

수많은 연구서들에, 그것들이 가득한데 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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