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와 꿈. 이 책에
놀라운 문장이 782개쯤 있다. 그 중 하나가 니체에게 공기라는 물질에 대해서.
"니체에게, 공기가 우리 자유의 질료, 우리의 초인적 기쁨의 질료다.
공기는 모종의 정복된 물질이며, 이는 니체적 기쁨이 정복된 인간적 기쁨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건 영어판에서 내가 번역한 것. 영어판 문장은 이렇다:
"For Nietzsche, in fact, air is the very substance of our freedom, the substance of superhuman joy.
Air is a kind of matter that has been mastered, just as Nietzschean joy is human joy that has been mastered."
이학사의 한국어판에서는:
"과연 니체에게 있어 공기는 우리 인간 자유의 질료, 위버멘쉬적 환희의 질료 바로 그 자체이다.
니체적 환희가 초극된 인간의 환희이듯, 공기는 일종의 초극된 질료이다."
불어판에서는:
"En effet, pour Nietzsche, l’air est la substance même de notre liberté, la substance de la joie surhumaine. L’air est une sorte de matière surmontée comme la joie nietzschéenne est une joie humaine surmontée."
.
.
영어판에서 "matter that has been mastered" 이 구절 별 생각없이 지나갔다가
한국어판에서 "초극된 질료"라고 읽고 나서, 영어판의 master 이 동사 선택이 잘못이고 보기보다 중대한
잘못이라 생각이 듬.
"극복" 혹은 "초극."
니체 세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 개념이 영어로는 거의 일관되게 overcome (overcoming)으로 번역된다.
불어에서는 surmonter 이 동사가 그에 해당할 것 같다 짐작되고
그 짐작이 맞다면, matter mastered, joy mastered, 이런 영어 번역은
단어 하나의 선택만으로 바슐라르의 니체 읽기가 얼마나 탁월한지 알지 못하게 하는 번역.
"니체에게 기쁨이란 인간적 기쁨의 극복/초극이듯이,
니체에게 공기는, 물질의 극복/초극인 물질" : 바슐라르의 이 얘기는 (어쨌든 나한텐. 온리 노바디라서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일인)
천재적이다.
영어에는 surmount, 불어의 surmonter와 거의 똑같은 동사가 있고
<공기와 꿈>의 "서론"에서는, 니체 세계의 탁월한 한 줄 요약으로 바슐라르가 밀로슈의 시 구절을 인용한다.
"우월/탁월하므로, 그는 극복한다. Superior, he surmounts." 불어로는: Supérieur, il surmonte.
참으로 탁월한 한 줄 요약이라 생각되고
이 구절에서 surmonte를 surmounts로 번역했듯이
위의 "초극된 질료" "초극된 기쁨"에서도 surmount 동사로 번역했다면
master, 이 단어가 하고 있는 왜곡을 (지배한, 통달한. 내 것으로 삼아 소유한... 같은 의미) 피할 수 있었을 것임.
overcome, 이 단어를 쓰고 역주를 붙였다면 더 좋았을 수도. "독어로는 --- 인 이 동사는 영어로는 overcome, 로 번역되고 불어에서는 surmonter를 쓰는데 이 문장에서 바슐라르는 중요한 니체적 어휘를 그대로 쓰면서 니체 세계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고 있다" 같은 내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