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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기획된 책을 읽다보면 우리 어린이책은 기획(이른바 논픽션) 부분에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쓸만한 작가가 부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초등학교 전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습그림책으로 서양 역사 천년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입니다. 우리 기획책들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사실을 외우도록 강요한다면, 이 책의 경우 아이들에게 어떠한 학습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천년에 역사에 대한 호기심의 씨앗을 잔뜩 뿌려주는 구성입니다. 책의 주인공은 아이들입니다. 백년의 단위로 구분한 것이 좀 작위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딱딱 떨어지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 시대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도 훌륭합니다. 아무리 역사를 싫어하는 아이라도 이 정도의 책이라면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요? 전문적이고 상세한 역사는 아니지만 각 시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역사에 흥미를 돋구기에는 그만인 책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한국동화를 읽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여성동화작가가 그렇게 많은데도 여자 아이의 이야기는 무척 드뭅니다. 대부분 이야기의 주인공은 남자이고, 여자아이는 무척이나 전형적인 캐릭터(왈가닥이나 얌전이 혹은 모범생, 새침이)로 등장할 뿐이지요. 외국 책이긴 해도, 이 소피 시리즈는 참 마음에 드는 여자 아이가 등장합니다. 무조건 착하지도 않고, 무조건 못되지도 않은.. 독특한 아이의 일상이 짧은 에피소드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권이 3권인데요. 갈 수록 분량은 약간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이 초등학교 1학년 정도고 문장도 무척 쉬운 편이라 그림책에서 읽기책으로 넘어가는 아이들이 보기에 좋습니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겪는 평범한 일들이니까요. 이 작품을 쓴 딕 킹 스미스의 다른 작품들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여우잡이 암탉 삼총사>나 <도도새는 살아있다>도 무척 유쾌한 작품이지요.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 청소년 문학상은 아동문학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상당히 많은 부문에 상을 주는 종합문학상이랍니다. 그림책에서 중.고등학생을 위한 논픽션까지 방대한 부분을 아우르지요. 테드 반 리스하우트의 <형제>는 일반 소설로 보아도 되는데, 특히 사춘기 남자 아이의 성장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청소년 소설로 분류됩니다. 이 작품은 동생의 죽음에서 시작합니다. 형제라는 것은 생각보다 소닭보듯 지내기가 쉽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바쁘게 사는 세상에서 내 동생이 혹은 내 형이 무슨 고민을 하고 사는지를 일일이 물어보고 생각하고 살기란 쉽지 않지요. 이 기묘한 형제는 동생이 죽은 후에 일기장을 통해 소통을 시도한답니다. 이 형제의 고민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바로 '남자'를 좋아한다는 고민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죽음, 동성애, 성장, 가족... 무척 무거운 주제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그 무게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읽고나서야 참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고단한 것이었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자녀교육서를 읽다보면 질린다고 할까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 동어반복적인 이야기가 책들마다 수북하지요. 솔직히 자녀 교육서 한 10권 정도만 읽으면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뻔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 책 <아이들과 함께 단순하게 살기>는 그 중에서도 요즘 삶에 설득력을 갖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제목은 '단순한 삶'이지만 이 책은 상업문화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미디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까 하는 고민을 하는 책입니다. 사실, 많은 자녀교육서들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부모가 자녀양육에 모든 책임을 진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많지요. 아이가 폭력적인 성향과 학습장애, 정서장애를 가지는 것은 부모가 제대로 그 아이를 키우지 못했다는 '암묵적인 비난'까지 느껴지는 책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테두리를 벗어납니다. 무엇보다 광고나 영화 속의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미디어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지 정확한 연구 결과와 데이터를 토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볼 때 참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이상한 물건에 열광하기도 하지요. 그 심리에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나면 참 이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할지 참담한 마음까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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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동화작가가 굳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동화는 자기 아이에게 읽히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자기 안의 어린이를 위해 쓰는 글이라는 것이 그녀의 요점. 나는 그 글을 읽는 순간 이 <내 친구 비차>가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교 때에도 읽었던 비차. 무려 나이가 반세기다. 이번에 새롭게 개정판이 나왔다. 달라진 점은 러시아어를 전공한 사람이 번역을 했고, 이전의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것.

지금의 러시아가 소련이라고 불리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다. 하지만 이야기는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먹힌다. 그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놀이를 좋아한다. 방학 동안 실컷 놀고 개학을 걱정하며, 제일 싫어하는 수학 숙제는 맨 뒤에 하는 비차. 어차피 해도 모르니까 숙제는 베끼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비차. 그런 비차가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로 거듭난다. 스토리만 보자면 굉장히 교훈적이고 설교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생활에 밀착해 아이들의 동일시할 수 있는 아이 비차가 있다. 50년 동안 이 동화가 사랑받은 이유는 아마도 이 작가가 자기 안의 아이를 위해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14마리 시리즈로 유명한 이와무라 카즈오의 장편동화.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았더니 글솜씨도 훌륭하다. 나는 그동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현실을 언어로 빚어내는 것은 잘 못할거야하는 근거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읽고는 그림을 잘그리는 사람이 동화까지 이렇게 잘 쓴다말이야. 세상은 참 공평치 않다고 궁시렁거렸다.

모두 8권으로 구성된 동화로, 뾰족이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무당벌레 친구와 함께 뾰족산을 오르는 모험을 담았다. 나이 든 할아버지가 매일 밤 손자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구조로 한 장이 무척 짧다. 바람과 구름, 뾰족쥐와 물방게, 나무들이 태어났다는 뾰족산을 찾아가는 여정은 야단스럽지 않다. 초록톤의 표지그림처럼 한없이 차분하게 '성장'과 '만남'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다만, 일본과 제책방식의 차이 때문에 그림 순서가 반대로 보이는 부분(2권에서 줄무늬뱀이 서로를 먹는 부분)이 조금 거슬렸다. 글과 그림이 나무랄데 없는 모처럼 만난 좋은 작품이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는데 청소년에서 어른까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아직 소프트한 가족 소설이다. 어머니의 자살로 고아가 된 삼남매가 그때까지 있는지도 모르는 이복형제를 찾아가 함께 살게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초콜릿에 탐닉하는 판사, 남편에게 매맞고 하는 여자, 지독한 독점욕으로 애인을 괴롭히는 동성애자와 같은 주변인물은 오히려 얌전한 수준이다.

남자 친구(애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진정제나 수면제를 탄 커피를 마시게 하는 이복형, 피는 한방울 안섞인 이복누나, 주방세제를 마시고 자살한 어머니, 집을 나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고아가 된 삼남매의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데 이들 다섯 명이 가족공동체로 거듭나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아와 병자와 동성애자라는 주변인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만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복형 바르와 백혈병에 걸린 시메옹이라는 캐릭터가 참 흥미롭다.

내용보다 섬세한 세밀화풍의 그림이 압도적으로 멋있다. 굴토끼와 멧토기의 아기 토끼 기르기가 내용이다. 보통 그림동화의 틀을 깨고 글보다 그림이 주가 디고 있다. 텍스트 면에도 섬세하게 그림이 들어가 있으며 때로 그림이 글 중간에 끼어들기도 한다. 갑자기 개미들이 두 페이지의 글 숲을 가로지르며 지나가기도 하고, 아기 토끼들이 뛰기를 배우는 장면을 묘사한 '깡중깡충 뛰며 뒷다리로 힘껏 내닫기 시작했어요'에서는 깡총거리는 멧토끼들이 행간 사이로 뛰어 들어온다. 다양한 포즈의 토끼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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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클린 윌슨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닉 샤랫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편식과 올바른 식습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그림책은 참 많지요. 예를 들면, <난 토마토 절대 안먹어!>, <뱃속 마을 꼭꼭이>, <왜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할까요> 같은 책들이요. 이 그림책들이 하나같이 아이들에게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설득했다면 이 책은 조금 다름니다. 아이의 엄마는 어떻게 꼬셔서도 콩을 먹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애는 요지부동입니다. 별의별 말로도 콩 앞에서 고개를 가로젓는 아이. 그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가 방울양배추를 다 먹으면 나도 콩을 다 먹을게요." ㅎㅎㅎ 그렇죠. 사람에겐 누구나 먹기 싫은 음식이 한가지 정도는 있기 마련이죠. 골고루 먹이는 것이 엄마의 희망이자 꿈이긴 하지만, 싫어하는 음식 한 가지 정도는 안먹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엄마들은 이 책을 읽히고 나서도 어쩌면 '그래도...' 라고 말할지 모르겠어요.

이 책은 일종의 수상작품집입니다. 프랑스의 어린이.청소년 문예지인 '주 부퀸'에서 여는 문학콩쿨인데, 대회방식이 참 재미있습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 미셸 트루니에 외에도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타르 벤 젤룬 등 쟁쟁한 문인들이 출제자이자 심사위원입니다. 이 쟁쟁한 작가분들이 앞부분을 쓰면 참가자가 뒷부분을 쓰는 형식으로 진행되지요. 이런 식으로 감상을 쓰긴 참 그렇지만 너무 흥미진진합니다. 무엇보다 기성작가의 글빨에 아이들의 글이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틀에 갇혀있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의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은 참 신선하고 매력적입니다. 엉뚱한 결론들도 많이 있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건축 이야기의 한 권으로 아래에서 소개할 <땅속 세상>과 함께 출간되었습니다. 이로써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건축 이야기 시리즈가 여섯권으로 완간되었네요. 매번 읽을 때마다 정교한 그림과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짚어주는 글에 감탄하고 맙니다. 사실 어린이가 읽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건축에 관심이 많은 어른들이 읽기에 딱 좋습니다. 다리, 터널, 댐, 돔, 초고층빌딩 등 각 건물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지극히 건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들어가는 글에서부터 배를 잡고 웃었네요. 데이비드 맥컬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영화 제작자들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또 웅대한 의지와 애끓는 마음, 환희와 같은 인간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내 마음 속에는 암나사와 수나사에 대한 호기심이 커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왜 저런 모양이 아니고 이런 모양일까? 어째서 콘크리트나 돌 대신 강철을 썼을까? 왜 이것을 저쪽에 놓지 않고 이쪽에 놓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면서 내 관심은 자연히 기본 설계 과정으로 옮아갔다." 읽기에 절대 만만한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꼼꼼하게 한층한층 올라가는 거대한 건출물에서 논리와 상상력을 한 번에 맛보는 즐거움이 있지요. 진득하게 읽기 좋은 책입니다. 저는 언젠가 이 책을 옆에 끼고 실제 건물을 보러가는 여행을 하고 싶더군요.

그리고 <땅속 세상>. 책 표지에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도로공사 때 파헤친 땅 밑을 보면 수많은 관이 땅 밑에 파묻혀 있습니다. 상.하수도관, 케이블, 터널.. 그뿐만이 아니라 땅 밑에는 건물을 떠받치는 벽이나 기둥도 묻혀있지요. 땅속에 묻혀있는 시설들은 현대 도시를 떠받치는 거대한 지지대입니다. 이것들이 조용히 자기들의 일을 별탈없이 해내어 사람들은 무심히 그리고 아무일 없이 길 위를 지나갈 뿐이지요. 이 책은 두 길이 교차하는 지역의 땅속을 파헤칩니다. 좁은 사거리에 묻혀있는 것들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랄 겁니다. 이렇게 복잡한 것들이 서로 체계를 이루어 모든 일을 수행하는 것들이요.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그림책을 정교한 시계 속을 보는 것 같습니다. 복잡한 톱니바귀와 나사가 척척 맞물리면서 다음 시간을 알리는 시계의 속같은 그림이라고 할까요? 이 책 역시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다 읽고나면 정말 현장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진짜 지식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흐아.. 그런데 왜 저는 주먹구구식으로 파헤쳤다 묻었다를 반복하는 우리네 공사가 생각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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