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005 

1700  우연히 암진단 오진을 받은 분 이야기를 듣다. 오진 덕에 모든 것을 정리해야했던 심경, 2주간의 심적물적 고통을 느낄 기회를 가졌는데... 듣다보면 우리 속내가 내것만 밝히거나 너무 죽음과 동떨어지거나 삶과 없음의 경계가 깊은 계곡이 있는 듯.  동시대인의 어쩔 수 없는 속내인가??? 의문이 들다.  그런 경험을 하면 왜 갑자기 주변에 잘해주고 싶은 것인지? 잘 해주어야만 되는 것인지? 갑자기 동감에서 생각이 튀다.

2300 고딩\대학후배를 만나다. 같은 성장기 그늘을 가진 터라, 이야기하기가 수월하지만 역시 삶의 과정이나 벽은 5-6년의 세월은 흔적을 가지고 있다. 조금 더 내 생각이 아니라 남 이야기가 묻어날 수 있어 좋지만, 역시 맘틀이 서로를 옥죄고 있음을... ...문득 이야기하다 사람이 치대고 볶게 되면 싫어진다고, 우리는 도시자체가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말에 동감!! 제작년 어느 미국땅 밟은 녀석의 말고 똑같이 겹쳐지구. 우리도 20-30만 규모만 되어도 알콩달콩 사람 그리워하며 살 수 있는데, 150만, 천만이 버걱거리고 살고 있으니 사람에 질려 살고 있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1830 일터 일로 급선회, 내일 집알이가 이렇게 앞당겨졌다. 덕분에 내일 저녁모임은 수월치만, 오늘 겹친 일정을 맘을 담기가 버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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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5-10-0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심한데, 아직 안주무시나요? ^^

여울 2005-10-0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다녀가셨네요. ㅎㅎ. 퇴청할 쯤. 어찌하여 모임이 겹치다보니 어제는 세탕이었네요. 가을산님 한번 뵈야하는데, 번개나 한번...ㅎㅎ
 
 전출처 : 가을산님의 "잘나지 못한 이유 "

문화적 자본, 상징적 자본.... 여러모로 깜짝 놀랍니다. 모두 대단하시다는 느낌.  하지만 조금은 집안이 보수적인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개인적으론 지금도 무의식 중에 고기를 생선과 쇠고기, 돼지고기조차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냥 고기일 뿐입니다. 스테이크 조차 구워지든, 그렇지 않든 게의치 않습니다. 술도 다 술입니다. ㅎㅎ. 양주가 어떻고, 맥주... 등등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는 가르침에 익숙해져서 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살아온 경험 탓, 부모님의 문화적 그늘. 여건 등이 베여서인 듯합니다. 엄연히 사람마다 계급?적인 표현이 그렇기도 한데, 차이는 있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여깁니다. 부끄러워할 일도, 자랑스러워할 일도 아니고, 유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내가 가지고 품고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나이에 따라 벗겨지는 것도 더 더구나 아니라고 여깁니다.

저의 학교생활도 가관이었는데, 한마디로 푸욱 빠져 살았습니다. 가족이 필요하냐? 등등 친구들이 영원히 서로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인냥 너무 당당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가치관의 급변은 세상을 모두 부정하거나 거꾸로 보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자산 못지 않게 가지고 있는 친구들 역시 부모님의 직업이나 자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여러 배경들로 다시 자리잡게 되는 것 같더군요. 대학생활의 열정이 살아 있어 고맙기도 하고, 그들의 든든한 배경이 보탬이 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 현실은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죠.  

저도 상징적 자본이나 문화적 자본의 소유가 이전보다 질적,양적으로 높아지거나 많아지거나 했으니 개인적인 부담으로 가급적 끊고? 지내는 편이지요?  그런 덕분에 아이들이 겪거나 배우는 방식에서 문턱값이 많이 낮아졌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게되다보니 남보다 가진 것이 많아진 듯하고, 여전히 나눠가져야 한다고 여깁니다.

자본의 다소나  배경, 이전의 경험 등 많은 것이 사회적 무의식을 지배한다고 여깁니다.

조금 샛길로 벗어났는데, 오히려 그런 면에서 학교생활 중 부모님과 싸우기도 많이 싸운 것이, 지금에는 덕을 많이 보기 합니다. 처가에도 비슷한 처지나 어려움들, 경험들로 인해 한결 수월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그렇게 대들고 지낸 탓으로 서로에게 통금시간은 없습니다. 활동반경이나 영역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소홀할 수 있으나 그리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없으면 없이 산대로 검소, 살뜰함, 단순함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고, 있으면 있는대로 유복함, 배려, 과정의 즐김 등등. 서로를 인정한다면 차이로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여건에서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 무엇이냐. 삶도 생활도.  구조적인 틀은 바꾸고 서로의 유연함은 섞고, 문화적 자본도 문화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니  여건하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무척 필요하지 않나하는 느낌이 듭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가을산님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정말 멋지죠. 가을산님같은 분들만 있으면 이 세상은 벌써 변해 있을 듯 싶습니다.

활동이 약간은 수월한 마당이 잘난 척?하고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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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5-10-0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친구들이 있으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저는 과연 "영원히 서로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인냥" 한 사람이 있었나..... 돌아보게 되네요.
여울마당님, " 학교생활 중 부모님과 싸우기도 많이 싸운 것이, 지금에는 덕을 많이 보기 합니다." -- 이 말 진짜에요?
전 요즘 우리 큰애 때문에 정말 고민이 많아요. 으으....... ㅡㅡ;;
담에 뵙게 되면 코치좀 부탁드려야 할 것 같아요.
 

 

 (학*위)(학*예산감시학교) 050929

 1700  학군조정 회신문서로 학부모회, 운영위분들이 모여 대책위를 하다. 임시대책위원장의 장황설에 다들 어이없어 하는 표정과 권위적 태도가 내내 걸린다. 독선적 표현과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것이 익숙한 듯, 회의자리임에도 자신의 주장만 퍼부어놓고 이리저리 의견도 좌충우돌하다 입장마저 돌변한다. 갑자기 개그콘서트 생각이 났다. "이거` 저질이구만..." 사람들 많이 만나보았지만 명예욕과 내위주로 세상은 세팅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점철된 사람, 손바닥 뒤짚듯 입장도 원칙도 없는 부류는 접한 적이 거의 없어...황당과 황망을 오가는 느낌이다.

학부모의 이기심엔 다른 지역, 학부모들의 의견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은 듯하다. 내새끼 내동네만 생각하면 되었지? 다른 입장, 다른 여건을 생각하기도 벅찬 것인지? 투쟁의지가 굳건하다. 그렇게 그렇게 하다가 좀더 단단해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의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다. 각론을 통해 행정편의주의를 뚫는 돌파구는 생기겠지만, 원론은 동의할 수 없다. 어떤 각론이 나올 수 있는지는 학부모님들 감성 노력에서 파묻혀서나 보일까?  학부모총회에서 안건을 다루기로 하다. 학군조정 및 추진위원회구성으로...

2000 서울 교육위원의 "학교예산"에 대한 강의를 듣다. 생생한 설명과 전*조교사분들의 질의가 쏟아진다. 하지만 답답한 느낌도 교차한다. 많은 질문 속엔 전*조라는 틀만 있지 그것을 넘어 사회나, 약자나 다른 고민이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조합의 권익만 보장되면 되었지? 골치아프게 다른 고민까지 그것으로도 벅찬 것은 아니냐?는 항변을 느끼는 것은 과장된 것일까?

2300 "학교예산감시 학교의 개설 2강", 친구인 전 대*덕사랑주민*장과 주최측인 참* 금국장과 1강에 소홀히 하여 한담을 나누기 하다. 여러 이야길 나누다. 친구의 고민도 근황도 유사함에 놀란다. 여전히 공동체를 희망하고 준비하고, 권력을 얻더라도 바뀌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것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이 그의 고민의 중심부에 있어,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시간이 지나 세월에 때를 묻혀 혹시나 변하지 않았을까 걱정스런 맘도 있었는데 ...다행히 한결같다.  금국장의 자치(교육,경찰), 최근 분권관련 기존정당의 담합 등 우려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분권에 대해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나누다.

 

050928

2300 "처사촌동생(대학생), 안해와 동네 선술집에서 한잔."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기위해 인근 연구소 알바를 하다 하루밤 묶고 간다는 연락이 와 급귀가.  존경하는 큰삼촌의 아들도 장성?하여 여러 이야길 나눌 수 있었다. 생각보다 깔끔한 성격,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대견해보인다.  택시*조, 집안일 분담, 자식키우는 것 어느 하나 흉볼 수 없는 처*촌의 삶, 쏙 빼닮은 아들과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학교, 공부에 기를 쓰며 연연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간결하고 아니면 아닌 것, 할 수 없으면 할 수 없는대로 자식이 스스로 알아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도록 공부하고 결혼하고, 모든 것을 자식에 목놓아 자신의 삶마저 묻어버리는 ...사회 속의 끈을 놓아버리는 생활이란 끔직하지 않을까? 

한편  손위동서 부부는 관계가 소원하다. 자식도 가지지 않고, 여러 사회관계나 활동이 전무한 상태라 끊임없는 둘 만의 갈등, 관계에서 벗어나질 못해 안스럽다. 처남과 처남댁 역시 남편바라기, 아이바라기...그러다보면 불신의 고리가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작은 탈출구. 각자의 활동영역을 갖는다. 너무 많은 것은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꼬옥 쥐려고 하면 할수록 물은 손바닥에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까? 자식도  사람도, 

 너무 많은 벽과 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자식이나 내것만 집착하다가 남것이 보이지 않아 내것마저 잃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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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을산님의 "생명윤리 관련, 어떻게 생각하세요?"

복잡하군요. 역시 가을산님 다운? 신선한 접근법!!!이란 느낌이 드는군요. 뼈대만 보아선 잘 모르겠어요.ㅎㅎ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면 더욱 좋았을 걸..ㅎㅎ. 더욱 깊이 들어가실거죠. (다음편을 기대하면서..)

  단순하게 생각해서 인류가 불과 몇백년만에 자기 주변 것에 칼?질을 하다 이제 제 몸까지 손을 댄다. 탐구욕이 과연 그쳐질 것인가? 더구나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현실에서 제어를 할 수 있겠느냐? 그럴만한 제어력이 있느냐?

기술의 속도가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무모한 도전이 계속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제어가 가능한가? 한번도 기술과 융합한 인문-사회-제도적 시스템은 발현된 적은 없는 것은 아닌가?  기술의 위력을 소화시킬만 제도나 시스템 역시 없는 것은 아닌가?

부국을 위한 경제의 세계화는 되었으나, 정치의 세계화는 그야말로 걸음마 수준인 것처럼, 기술은 자신만의 증식을 위해 부단한 반복을 하지 않을까? 정치나 시스템을 배제하면서, 정치나 시스템은 그것을 안에 포섭할 능력마저 없고, 시도해볼 도리마저 없으므로.

생명윤리 등등 원론엔 동의하지만, 나의 존재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주민이거나 고립되어 경제적 결핍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북에 살거나,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연명할 수 있는 상황이나 시스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는 조건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GMO...원자력발전, 환경..이라는데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생존수준에 머물르는 시스템에 들어가면 모두 무력화되는 것은 아닌가?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력과 경제력은 한번도 지구적인 불균일한 시스템을 해소하기 위해서 써보거나 시도해본 적도 없는 것은 아닌가? 어떤 재앙과 맞딱뜨려야 다시한번 재고를 해보려 할 것인가? 내나라 속에서 인권과 기본권이지 제3세계를 감안한 인권과 기본권은 있는가? 농산물은 내나라에서 부족분은 다른나에 적기 공급이 가능하지 않으란 법은 없지 않는가?

생존권이란 수평선아래서 어떤 논의도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정치의 세계화와 기본적인 경제력을 분산하지 않으며 논의되는 틀은 어찌보면 논리의 자체완결성이라는 발목을 잡히는 것은 아닐지?  기술이라는 것이 모든 낡은 기술을 배제시키는 자본의 시스템이 아니라 낡은 기술이라더라도 기본적인 생존권 확보를 위해 발전시키거나 배분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위해서도 좋고,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것은 아닐런지?

저 위에 내달리고 있는 정신나간 기술의 발전이란 테마는 수평선으로 끌어내리고, 생존권이나 비혜택, 반혜택의 수준은 끌어올려 논의를 하는 것이 보다 원론에 치우치지도 않고, 현실을 고려하며 제어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기술과 인문-사회-정치 시스템이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영원한 악순환의 질곡으로 지구를 대상으로 무모한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아닐까? 보다 중요한 원흉은 자본주의라는 비겁한 시스템때문에 인류가 잘 나눌 수도 있으며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논지를 벗어난 마당이 흔적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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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정치론에서 홉스 사회계약론의 수용과 변용", 진태원 논문을 읽다가


(중략)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의 상상과 정념에 기초하여 전능한 신 야훼에 대한 표상을 만들어내고 자신들의 국가를 야훼의 국가로, 또 자신들을 야훼의 백성으로 간주했지만, 오랫동안 안정된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념과 대립하는 이성, 또는 개인적인 능력으로 이해된 이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어리석은 이러한 표상과 믿음이 역설적으로 매우 유익한 결과, 제도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스피노자의 관점에 따르면 "모세가 {...} 우중이 공포 때문이 아니라 신앙심 때문에 자신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국가 안에 종교를 도입했기"때문이다. 곧 사람들의 정념과 상상, 신앙심을 억압하지 않고, 그것들을 국가의 발전에 활용할 수 있었던 모세의 정치적 능력이 히브리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온 것이다.

이는 곧 사회계약, 또는 국가의 구성과 보존을 위해서는 홉스식의 인공적인 법적 절차, 또는 고유한 의미의 정치적 계약만으로는 부족하며, 각각의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권리와 역량을 양도 할 수 있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보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또 하략)


모음..-------홉스는 계약론에서 자연상태와 사회상태, 국가사이에 단층이 있다고 하지만 스피노자는 사회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자연권의 논리가 지배한다한다. 사회상태 안에서도 여전히 갈등, 기만, 증오의 메카니즘이 존재하고, 사람이 유덕하든, 배덕하든, 이성적이든 무지하든 간에 모든 사람을 이끄는 가장 원초적인 규칙은 바로 충동의 법칙이다라는 것이다. 홉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상적인 상태를 가정하여 나온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어 역량을 양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며, 국가에 대한 견해나 관점마저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의견 및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부당하다는 이유때문이라기 보다는 본성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금지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불가능한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판단 및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되, 이를 국가 보존에 유용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1.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집단, 이성을 빌미로 가공하고 만든다는 발상차체가 무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이성이란 틀에 아니면 짧은 지식으로 삶과 생활을 기획하려는 무모한 의도가 사람을 잘 모르기때문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신의 자리에 인간을 넣어 인간은 같다라는 근대적 기획, 발상의 전환 만큼이나 사회속의 인간은 그만큼 알기어려운 것일까? 사회 속의 인간의 개념을 또 한번 비트는 발상으로 출발한다면 가공물로 만들어진 제도도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숱한 정치-행정의 구축물도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 출발하지 않고, 선도나 교화라는 주장이나 발상으로 여기는만큼 위험한 것은 없는 것은 아닐까?

2. 무신론자인 나는 사실 여러 행태로 인해 종교생활에 매우 부정적이다. 학생때 얕은 지식과 강박적 교화덕에 아직도 사람을 갈라서 인지하는 버릇이 남아 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의 아름다움보다 늘 강박증으로 연꽃만 아름답다고 연꽃만 심으려는 허황함이 생활의 언저리에 베여있는 것은 아닐까? 논문 몇쪽을 읽다 별별 생각을 다해본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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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5-09-2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님 논문이었군요. 이런 뒷북. 즐찾을 해놓고도 이리 관심이 없었다니, 후배가 권해 읽었는데 이런 무관심이라니. ㅎㅎ 트랜스토리아도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