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월요일 회의자료를 보내며 중간 싹둑!



편의적 발상인지 모르겠으나,


*주) 기준은 전적인 혼자기준이구 엄밀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세로는 점수, 가로는 참터활동과 활동반경과 폭에 따른 활동도(Activity)




 




 



 



 



 



 



 



 




 



현재 참터사업과 참터활동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덧붙여보면, 참터사업을 만들기위해  사무국, 선전교육, 조직구성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것으로 보이나 초기 참터만들기에 비해 여전히 참터 본연의 활동은 부족하고, 이에 따른 참터와 회원간의 관계, 회원간의 참터로 인한 친밀도(다른 관계로 인한 내용은 제외함.)는 바닥을 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그간 논의와 준비를 거듭한 참터활동을 보다 잘 하기 위해선 연구과제에 대해 현재 할 수 있는 부분, 자원활동이 진척이 되면 가속할 수 있는 부분, 과제별 유사성에 대한 분석 등 전체적인 과제를 단중장기 과제로 나누어 보아야 할 것 같고, 현재의 회원들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정책적인 면이 강하다고 봄. 또한 활동반경이 넓어 간접적인 참여방법을 통해야 할 것으로 봄.그룹핑도 필요함)을 중심으로 우선 진도를 나가야한다고 봄.




교육홍보 겸 대학내 제도화를 위한 활동은 가히 모범적으로 생각함. 노웨어에 대한 부분도 이젠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봄. 하지만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과제별 경중분석-과제별 자료조사-회원참여도의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바닥을 치고 땅을 파고 있는 듯함. 현재 수준에서 회원간의 친밀도와 현 회원의 참터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선 현 회원중심의 모둠 및 의견타진(하시오 말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을 거쳐 단기과제-중기-장기과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음.




그리고 성과가 날 수 있는 작은 일(단기과제)부터 그 일을 좋아하는 회원을 매개로 맡기고 진행을 해보았으면 좋겠음.(AU가 되고, 타과제가 들어오고, 팀구성의 외연을 확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것 같음.)




암튼 참터곳간에 무엇이 있는지, 잘 쓸 수 있는 쟁기가 있는지? 같이 쓰면 잘 놀 수 있는 보물이 있는지? 어떤 회원분들끼리 궁합이 맞는지? 참터 활동을 들여다보고 이것을 중심으로 현재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먼 훗날의 일들은 냉정히 해부하듯이 분석해내야 한다고 봄. 그리고 현재의 수준에 맞게 일을 모으고 아프지만 나중을 위해 보류할 것은 보따리에 싸서 참터곳간에 쳐 넣어야 한다고 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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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모임이 만들어지고 이제 6개월을 접어든다.  여러 회원들의 헌신적인 동선을 보면 열정과 감동이 서려있다. 하지만 주변의 충고나, 새로운 모임이 출발의 산고만큼 제대로 크려면 갓난아이처럼 손길도 필요할테고,  혼자걷기까지 험난한 세상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시민****센터 이름에 걸맞게 사무국****센터 --> 집행위 ***센터--> 운영위참여연구센터 ---> 회원참여연구센터,  각박하고 험하고 모진 세상에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무리수일 수 있으나, 어쩌면 참관만 하여도, 아니 후원만 하여도 감지덕일지도 모른다.  과정이나 방법이나 시도자체가 새로 발명이 되지 않으면 요원할지도 모르겠다. 집행위**센터에서 적어도 운*위**센터로 만드는 묘책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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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arine님의 "자유인 루쉰"

문득 문득 몸에 붙어있는, 때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일상의 파시즘 잔재로 깜짝깜짝 스스로 놀랍니다. 그러려니 하지만,,, 넘 어려운 문제죠. 지식이라는 넘 자체가 다분히 이런 기질이 있죠...? 암튼 집중은 문제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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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arine >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
스가야 아키코 지음, 이진영 외 옮김 / 지식여행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서점에서 발견하고 꼭 읽고 싶던 책이다
나는 요즘 도서관에게 엄청난 애정을 쏟고 있는지라 도서관 사랑에 관한 책을 읽고 싶었다
책사랑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도 도서관 사랑에 관한 책은 없어서 좀 아쉬웠는데 이 책 역시 도서관에 대한 개인적인 에세이는 아니다
제목에서 말해 주듯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 뭐 이 정도다
약간 실망스러웠던 것은 일본인이 뉴욕 공공도서관을 소개하는 선에서 그쳤다는 점이다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라든가, 도서관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이라든가, 여러 도서관 시스템의 비교 등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을 것 같은데 단순히 가장 앞선 모델을 소개하는데 그친 것 같아 기대에는 못 미쳤다
선진국의 문화에 관한 책을 쓸 때는 이게 문제다
자기도 모르게 그 문화에 경도되어 찬양 일색이 되기 일쑤다
뉴욕 공공도서관의 다양한 기능들은 충분히 감탄할만 하지만, 부러움 수준을 넘어 보다 깊이있는 분석을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만 미국 도서관의 소개만으로도 의의는 충분하다
솔직히 나도 너무 부럽다!!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의 기능은 기껏해야 자료 대출 아니면 공부방 정도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의 문화 행사들을 보면 좀 낯설게 느껴지고 실제로 이용한 적도 거의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도서관이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지난 9.11 테러 때였다
일반 도서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뉴욕 공공도서관이 해냈다
테러가 발생한 후 언론 매체는 선정적인 보도만 할 뿐 실제로 뉴욕 시민들에게 도움될 내용은 없었다
그러자 사서들이 도서관 홈페이지에 의료기관 전화번호라든가 생존자 확인 방법 등 구체적으로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들을 올렸다
인터넷의 장점을 잘 이용해 매 두 시간마다 정보들이 업데이트 됐다
또 이슬람 문화라든가, 위기 대처 방법 등에 관한 책 목록을 편집해서 올리고 테러 공포로 시달리는 시민을 위해 상담 치료도 시작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죽은 끔찍한 테러 바로 다음 날 이 정도의 실제적인 정보를 즉시 제공해 줄 수 있는 도서관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도서관이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인드 자체가 놀랍고 부럽기 그지 없다
테러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사를 가면 병원이나 슈퍼 등 실제적인 지역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으로 갈 정도라고 하니, 도서관이 지역 주민들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만 하다

영화 "로렌조 오일" 을 보면 불치병을 앓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도서관에서 열심히 의학 정보들을 검색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주민들은 도서관에서 많은 의학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의료 정보가 개방되면서 더 이상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의사에게 일임하지 않고 스스로 치료 과정에 동참하길 원한다
또 의사들 역시 환자가 질병과 치료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길 바란다
이 때 환자들에게 올바른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더구나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책임감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도서관은 치료는 물론 예방의학적 관점에서도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어떤 병원은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도서관에 기부금을 내기도 하고, 일반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의학 도서관을 따로 둔다고 한다
또 건강 강좌도 자주 열고 사서들이 원하는 건강 정보를 찾아주기도 한다
도서관이 예방의학 기능을 수행하리라곤 생각조차 못해 봤다

더욱 부러웠던 것은 도서관의 헬퍼 기능이다
뉴욕 어린이들 역시 열쇠만 맡겨진 채 방치되기 일쑤이므로 방과 후 숙제를 도서관의 헬퍼들이 도와준다
도서관에 인터넷과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고 헬퍼들이 배치되어 학생들의 숙제를 지도해 주고 다른 취미 활동도 지원한다
우리나라의 학원이 하는 기능을 도서관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사회가 기른다는 말이 생각난다
경제 상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내몰리는 젊은 엄마들에게 도서관은 든든한 후원자가 돼 준다
아이들이 학원 대신 도서관에서 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서관은 비단 어린이들만 도와 주는 게 아니라 노인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시니어 어시스던트를 채용해 노인 스스로 다른 노인을 도울 기회를 제공한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 빌려 주고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역 사회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취미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장소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 의미로 저자는 도서관이 민주적인 정보의 장이라고 정의한다
빌 게이츠가 자신을 키운 것은 도서관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도서관들도 지역 사회에 좀 더 가까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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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살 누나 해윤이가 자판기 코코아를 마시다 엎질렀다.


휴지를 가지러간 사이, 다섯살 동생 해민이가 한마디한다.


"생각주머니가 작은 사람은 흘린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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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4-12-1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에 있는글들 읽어보니 아이들이 참 순수하고, 예쁠것 같습니다.

결혼기념일 선물도 챙기고~ 부럽습니다.

큰애는 우리 큰애랑 동갑인데.... 더 어른 같아요~
 
혁명의 시간 아우또노미아총서 3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정남영 옮김 / 갈무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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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의 재구성에서 유물론이라는 이름과 관련ㄴ하여 가장 주목할 것은 물질 개념의 재정의이다. 유물론(materialism)이라는 이름은 물질 개념의 중심성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네그리의 물질 개념의 혁신성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시간에 의하여 구성되는 것으로 본다는 데 있다. 단순한 시간성이 아니라 창조의 시간성이다. 물질은 카이로스('시간의 화살'을 나타내는 그리스어)에 의하여 매 순간 측정불가능하게 되고 매 순간 새로 창조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물질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고 일정한 법칙에 종속되어 운동하며 우리의 인식의 대상이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새로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이다.-263쪽

맑스 이후 후퇴한 유물론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물질의 운동'이 아니라 '물질의 생산성'이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물질이 그 자체로 생산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유물론이 혁명의 철학 즉 새로움의 발생을 말하는 철학이 될 수 있겠는가?-시간의 테마만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한 네그리의 탐구는, 맑스가 서양의 전통적 시간관(공간화된 시간)을 극복하고, 사건들이 순서를 지어 발생하는 매체로서의 시간(뉴튼,칸트,헤겔의 시간관)과 척도로서의 시간(자본의 시간, 실질적 포섭 이전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존재 전체의 짜임새가 되는 시간(실질적 포섭의 시간)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서 시작한다.-265쪽

유물론적 장은 정태적으로 파악된 물지로는 설명하지 못한다. 구 사회주의권의 철학인 맑스레닌주의의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가 바로 이 정태적 물질 개념의 사례이다. 맑스레닌주의는 '물질의 자기운동'이라는 마로 물질이 그 외부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음을 명시함으로써 유물론의 외양을 갖추려고 애썼으나 막상 물질 개념을 정의할 때에는 그로부터 창조적 활동성을 제거함으로서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이 자가당착은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실재'가 자연과학에서 처한 운명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271쪽

네그리의 재구성된 유물론에서는 물질과 의식, 주관과 객관의 괴리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이 바로 '몸'개념이다. 카이로스(시간)가 곧 물질을 구성하는데, 바로 카이로스의 육화가 '몸'이기 대문이다. '몸'개념은 '물질의 자기운동'이 처한 아포리아를 돌파하여 '물질의 자기생산'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 '몸'은 사유의 능력과 동시에 변신의 능력을 갖기 때문이다. 변신이란 새로운 존재를 창출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성하는, 항상 특이한 이행이다. 이러한 '몸'들의 집합이 바로 존재가 생산되는 '유물론적 장'인 것이다.-272쪽

유물론적 장에서는 진리의 문제가-실천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천할 문제라는 의미에서-그 자체로 실천의 문제가 된다. 이것을 네그리는 (맑스를 따라서) '진리의 프락시스'라고 부른다. 이제 진리는 존재의 문제이며 삶의 문제이다. 그리고 매 순간 존재가 혁신되면서 진리 역시 혁신된다. "진리는 그날그날을 살아간다" 매순간 전과 다르게 살기, 항상 새롭게 살기, 모두 함께 그렇게 하기-이것이 바로 공통적인 것의 목적론이 내세우는 '삶정치'적 구호이다.(281)-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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