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논문

˝누구 사이에서 시작해도 관계의 확장이 가능했다. 어느 논거로부터 출발해도 지금여기를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부분을 발췌해도 새로운 소논문 한편을 쓸 수 있었다. 사소한 것을 찾으려하면 할 수록 그 완결성과 확장성의 흠결을 잡아낼 수 없었다. 치우침이 없었다. 사이사이 사랑은 어떻게 왜 누구와 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등거리였다.˝

발. 이른 잠결에 꿈을꾸다. 일터였다. 한해 선배들의 작업들 가운데 과제 하나를 발견하고 읽어갔다. 논문들 사이 현실의 문제는 농밀하게 녹아있고, 열정도 알맞게 배여있고, 누구와 어떤 답도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관계들이자 근거들이지만 모두와 최단거리로 이어져있었다. 다 읽고난 뒤에야 이어지고 치우치지 않은 사이사이 가장 짧은 길이 사랑이란 것이 각인처럼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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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한켠에
`동굴밖에선 동굴 속이 보이질 않는다.`고
또 한켠에
`알려고만 하고 느낄 줄 모른다.`를 놓아본다

한켠에
`맛만 봐 감별만 하지 음식을 만들 줄 모른다.`고
또 한켠에
`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 수영을 배우지 못한다.`를 놓아본다

관전과 관람들 사이 우아함과 세련됨만 다닌다

안 의자에
`터널 안을 들어서고 어둠에 익숙해져야 터널 속이 보인다.`를 태운다
또 안 의자에
`일상을 낚으려고만 하지 삶을 담그려하지 않는다.`을 태웠다

`물 속에 몸을 담귔는데 무엇을 배우려는지 어디로 가려는지 살피지 않는다.`란 표식을 달아둔다.


생각들이 어설픈 잠 속으로 들어와 균형을 맞추려 오르내린다
고민들을 저울대에 연신 올리고 덜어낸다.
마음의 추가 맞을 무렵 홀가분해졌다.

평온하게 날이 밝았다. 어김없이 기억해내지 못해 맴맴 도는 꿈처럼 꼬리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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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잘살고 신분이 귀했지만 이름이 닳아 없어져 버린 사람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으며 오직 평범하지 않은 사람만이 거론될 뿐입니다. 대체로 문왕은 갇힌 몸이 되어 <<주역>>을 풀이했고 중니(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당하여 <<춘추>>를 지었습니다.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으며, 좌구(좌구명)는 실명하여 그의 <<국어>>가 남겨졌습니다. 손자는 발이 잘리고 나서 <<손자병법>>을 지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어 세상에 <<여람(여씨춘추)>>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한비는 진에 갇혀 <세난><고분> 두 편을 지었으며, <<시경>> 삼백 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에 울분이 맺혀 있는데 그것을 발산시킬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좌구는 눈이 없고 손자는 발이 잘려 결국 세상에서 쓸모가 없게 되었지만, 물러나 서책을 논하여 그들의 울분을 펼치고 문장을 세상에 전해 주어 스스로를 드러냈습니다. 359-360

 

덕이란 인성의 근본이며, 악이란 덕행의 꽃이며, 쇠붙이, , , 대나무는 음악의 도구이다. 시는 그 뜻을 말한 것이고, 노래는 그 소리를 읊은 것이며, 춤은 그 모습을 움직인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난 다음에 악의 기운이 그것에 따른다. 이 때문에 감정이 깊으면 문채가 밝아지고, 기운이 성해지면 변화가 신묘하고, 온화함이 마음 속에 쌓이면 영화로움이 바깥으로 피어나니, 악만은 거짓으로 만들 수 없다. 악이란 마음의 움직임이며, 소리란 음악의 형상이며, 문채와 절주는 소리의 수식이다. 83-84

 

악이란 (인간의) 내심에서 움직이며, 예란 (인간의) 바깥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겸손을 위주로 하고, 악은 풍요로움을 위주로 한다. 예는 겸손함으로써 나아가며 나아가는 것으로 꾸밈을 삼는다. 악은 풍요로움으로써 절제하며 절제하는 것으로 꾸밈을 삼는다. 예가 겸손함만을 따지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침체되고 말 것이며, 악이 풍요로움만을 따지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방종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자기 분발을 요구하고, 악은 반성을 요구한다. 예가 자기 분발에 이르면 즐겁고, 악이 반성에 이르면 편안해진다. 예의 자기 분발과 악의 반성은 이치가 한가지이다.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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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언제부턴가 내년은 늘 시월부터 출발했다.한해 살림은 추수할 때부터 가늠해놓지 않으면 그르치기 쉽상이기때문이다. 보수적이라하면 그래도 좋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싶다.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미리 가늠하고 미리 좌충우돌을 겪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년이 이렇게 접히면 글쎄. 불안도 우울로 접혀 안간힘도 잃는다. 해는 벌써 짧아진다. 드리운 그림자는 서서히 서기 시작한다. 모임과 늘 시차를 앓는 기간이다. 봄을 미리 애걸하려는 지점이다.

발. 시인이 시를 보내왔다. 마음에 담고 있던 12월이라는 주제여서 반가웠다. 마음이 맞거나 대신 앓는 이를 만나면 반가운 김에 마음도 놓았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한다는 건 절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곁에 내길을 남겨두어야 한다. 서로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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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려는데 앞바퀴가 측은하게 주저앉았다. 너무 이른거 아닌가 싶었지만, 마음을 돌려 보험사에 정해진 멘트따라 한참을 가서야 상담원이나온다. 상담원은 스페어를 쓸 거냐 수리를 할거냐는 옵션을 택하게 한다. 떡진 머리에 츄리닝 허리춤으로 비집고 나온 살과 팬티라벨. 타이어도 빼지 않고 쓱쓱 나사하나를 잡아내고 힘을 쑥 쓰더니 사라진다. 아침회의를 늦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기 전 전화다. 고객님, 만족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볕뉘 


1. 체인점에 옵션. 재벌은 업종의 98프로를 점유한지 오래다. 일상도 그렇게 구획된 지 오래다. 넋을 잃고 일이 진행되는 걸 쳐다본다. 온정이나 배려나 지인이 들어갈 틈이 없다. 냉정해져야 한다. 자본은 우리 일상의 디테일을 점거한지가 오래되었다. 이런 일상이 당연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무엇이 먼저겠는가. 당신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속력보다 자본이 당신을 바꾸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2. 루카치 등 맑스주의 비평가들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맑스의 저작이 1920년대에 경철수고가 번역되었고, 1940년대에 정치경제학비판요강이 뒤늦게 완역되었기 때문이다. 변증법의 글쓰기는 결코 쉽지 않다. 긴장감있게 이어가는 모순과 대립은 활자화된 의도를 그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긴박한 서술의 이면에 그 답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베버와 다산은 상대적으로 나열형의 지식체계를 갖기에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이유로 마르크스 혼자일 수가 없다. 마르크스는 여럿이다. 굳이 이런 이유를 하는 이유는 계급의식이나 물화라는 것은 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내지 않으면 지금여기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군상, 그 디테일을 다른 측면으로 서술해낼 때 또 다른 이론이 깃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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