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함박 핀 눈, 함박안은 눈, 날카로운 키스처럼 뺨에 부딪는 눈들. 아침 눈들이 서성인다. 지나치는 차의 속력에 맞춰 눈들은 음표를 달고 날린다. 그렇게 모든 음표를 붙인다. 하나 둘. 굵고 작은 변주들. 부유하는 음표들의 현란함. 느티나무 가지들 사이로 내리는 화음. 솔잎 사이로 바람을 밀어 부딪는 음들의 잔치. 후박나무 오동나무 댓잎 숲들의 반주. 강물을 반음을 끊임없이 적시는 노래... 한참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음에 취해 혼미하지만 그래도 도돌이표를 넘어서는 반주에 흠뻑 취하다. 어제도 그러했다. 날카로운 새벽은 되돌이표를 넘어선 생각이나 고민의 성찬으로 가득하다.0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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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9-12-18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눈~ 이다 요~~ 이만~~~한.ㅎㅎ

여울 2009-12-1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출근하느라 애~ 먹었습니다. 아니 식겁했슴다. 빙판길에...에공. 제가 그때그때 잊어버리니...조금있다 눈오면 또 좋아하겠죠. ㅎㅎ. 아직도 다른 분들은 출근 전입니다. ㅎㅎ

조심 조심. 폭설에 대비하시구...
 







겨울이 익어가는 것일까? 햇살은 아니오라구 한다. 그늘은 냉기를 품고 있지만 그래도 따듯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한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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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의 비늘] 그녀를 바라보려해도 바라볼 수가 없다. 그와 시선을 피한지가 오래되었고, 그녀를 만나도 도통 눈빛 한번 줄 수가 없다. 그녀가 꼬리를 감출 무렵에서야 그의 여운을 바라볼 뿐, 아니면 그녀가 다가 올 무렵에야 그쪽을 응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그녀의 금빛 향香을 받아 안는다. 그녀가 준 햇분粉을 볼에 바른다. 반짝이는 만개의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 안는다. 

 



#2. [달의 비늘] 달과 사귄지도 아마 이천여일이 되었을게다. 그런데 난 지금에서야 그 녀석이 저렇게 둥둥 떠있는 것이 아니라 저기 저렇게 걸려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 시냇물처럼 흐를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걸린다. 바스락거리기도 하고, 파르르 떨리기도 하고, 부서져내릴 수 있는 것이라는 상상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바닷가에 호수에 저혼자 천개의 비늘로 멱을 감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아마 난 그녀가 너무 가까이 있어 늘 그려러니 했을 것이다. 

 

뱀발. 퇴근길 보름이 가깝다. 달이 많은 도시. 호수를 지날 무렵 비친 달은 잔물결에 흐느낀다. 밝은 조명등아래 도시인들은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난 시인이 필요했고, 저기 달에게 말한번 건네줄 이가 가까이 있으면 했다. 가까이 함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이 이렇게 몸의 유격에서야만 발견해내는 어리석음에 곡한다. 해가 많은 도시.섬으로 돌아서는 노을에 비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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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서재에 다녀오다. 납기일을 갓넘긴 책들을 마저 마무리짓고 반납할 마음으로 산책을 나선다. 제법 쌀쌀하여 모자와 장갑을 챙겨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름달은 어김없이 구름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동백꽃들은 화투장처럼 화사하게 마중나와 반긴다. 팔광은 아니지만 그래도 ... 신간을 뒤적이다 몇권 함께 추스린다.  

1. 근대일본의 사상가들을 따로 챙겨볼 만하다 싶고, 그리스에 대한 책 가운데, 보고 있던 책의 소크라테스의 죽음편이 상이하게 기재되어 있다. 전공분야 교수인데도 서술의 관점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예전 묵자를 읽으면서 종교를 대입하여 난감했던 상황과 마주치는 것처럼 말이다. 삶이나 인간에 대입하지 않고, 아마 학문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에 자주 사실들을 끼워넣으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관점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주장의 냄새로 자칫 사실도 의도도 읽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2. 동백꽃 단편을 보다. 물론 여기 동백꽃은 김유정이 강원도 사람이니 남쪽의 이꽃이 아니다. 그 동백기름을 바른다고 할때 그 동백은 이 생강나무를 말한다. 읽으면서 우리말의 고움에 다시 눈길이 간다. 읽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전달되는 힘이랄까?  이오덕선생님의 글에 대한 논지에 전적인 찬동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 둔탁하고 무미하고 건조해지는 것 같아 우리말을 일상으로 가져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스럽고 의미전달이 화사하도록 곱게 느껴진다. 지금 흔적을 남기면서도 내말이 거칠다는 느낌이 선다. 뒤에 풀이가 나와 다시 봐도 좋겠다 싶다. 김유정은 폐결핵으로 나이 서른에 운명을 달리했다. 1937년, 1908년생이다.  

3. 나희덕의 [야생사과]를 애벌로 다 본다.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후미 평론가의 말과 저자의 후기처럼 정말 바뀌고 있는 느낌이 든다. 바밤바님의 [좋은 이별]이란 리뷰도 그렇지만, 늘 나란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게 여기지만 내가 흩어지는 꼴을 보지 못하거나 과도한 구심만이 존재해 늘 분산된 나를 구성하려하는 습속에 대한 고민도 겹쳐진다. 늘 남의 심장을 배어 물면서도 나에 대한 집착만 있는 모습이라니... 나를 놓아주는 사이, 사이가 다른 시인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비치는 듯 싶다.  나에 대한 과도한 응축이 손내민 너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의 원심이 너를 받아들이는 공간이라도 만든다.면 아주 조금 너가 섞일 수 있지는 않을까? 알라딘마을 뜨겁다. 구술이 아니라 문자의 논쟁에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지만 공간이 아주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서로 나를 조금 버리거나 나를 줏어담지 않고 내버려둔다면..(새는 날아가고/쇠라는 점묘화)

4. 돌아오는 길. 몸이 후끈하도록 가볍게 날아온다. 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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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출판사 2009-12-04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소개하는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짧지만 여느 보도자료보다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여울 2009-12-04 17: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과합니다. 늘 아끼는 마음가는 곳인데. 열심히 공부하란 충고로 듣겠습니다.
 

바닷내음도 보름을 바라보는 달도 은은하다. 잔잔한 수평선은 얇은 물결로 달을 품어 어른거린다. 아른거리는 달을 감싸면서 치어들이 떼를 지어 노니는 것도 둥글다.  모둠모둠 둥글게 동그랗게 연못같은 보행교에 주위에 핀 파래줄기 곁을 맴돈다.

깜박이는 불빛들. 별빛들. 촘촘히 박힌 배들을 안고 있는 둥근 바닷가를 거닌다. 그렇게 거닐다  벌써 시들해진 동백꽃 주위를 맴돈다
.


 

 

 

 

 

뱀발. 

1.  

* 우리의 고전읽기가 왜곡되었다면, 우리의 인문이란 것이 왜라고 묻지도 않고 지금에 대한 견해도 없어 전혀 다른 곳을 가르킨다면, 정작 왜 책을 번역하는지, 번역했는지? 지금과 아무런 비교도 없고 그저 유행에 따라 번역만 기계처럼 하는 것이라면?

** 그들이 말한 이백년전의 일들의 반추가 눈을 가리고 지금을 되새길 수 없는 능력을 갖고 몸이 시키는대로 한 일밖에 없는 것이 인문학자의 소명이라면?

*** 책들 사이를 맴돈다. 그들이 이백년 뒤라는 시점에 나는 서있고, 그들이 이백년 전이라는 지점에 서있다. 그들의 생각에 난 반론을 펼 수도 없으며, 그들의 열린 마음과 상상력, 현실을 짚어내는 놀라운 시선에 지금은 자꾸 끼어드는 것이다. 별반 달라지지도 않고 점점 단단해지는 키틴질의 각질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 있음을 그들의 시선으로 확인한다.

**** 생각의 각질을 벗겨내려는 노력에도 인문의 무지는 응답이 없다. 나의 전공이 아니므로 나는 알 수 없다. 응답할 수 없다. 

2. 

* 책은 사치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식도 그러할 것이고, 기껏 돈의 자양분으로 쓰이거나 삶의 언덕에도 가보지 못하고 중도에 폐기될 위기에 처하거나... 

** 처세 경영서적도 이젠 막바지에 다다른 것일까? 발라낸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이제 개인을 문화와 역사적 맥락에 착근시킨다. 하지만 돈에 경도되거나 성공에 경도된 이들은 아마 자신의 삶과 지금에 뿌리내리지 않을 것이다. 십중팔구. 비틀어읽기는 끊이지 않을 것이기에... 

*** 파란여우님의 책도, 방법이나 기술에 시선에 고정시킨 이라면 삶에 녹이려 부단히 애쓴 몸의 흔적이 별반 읽히지 않을 우려가 있다. 그 많은 책들을 연결시키는 행간을 읽으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3. 

이렇게 맴도는 것이 맴도는 쳇바퀴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 각질의 벗겨낼 수 있을까? 그 허물을 벗겨낼 수 있을까? 어쩌면 삶이란 희망도 삶의 몸의 흔적, 상채기가, 각인이 박히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도 끊임없이 그 배회를 넘어서지 못할테니, 삶도 그 배회를 넘어서지 못할테니 말이다. 발라낸 개인으로 어림도 없는 일일 수 있다. 아마 너 

4. 

시들어진 동백꽃은 그래도 핀다. 겨울내내. 아마 그러면 각질이나 허물은 점점 흐물흐물해질 것이다.란 희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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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0000의 힘 - 고작 또는 이나 (ing)
    from 木筆 2009-12-04 11:33 
    플라톤 다시보기 - 고작과 이나 사이 3만명 중에 1만 2천명을 대통령을 한 셈이고, 민회에서 말한 사람은 면세의 특권도 있었다.(쿡!) 행정부인 평의회는 행정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시민 중에서 추첨된 5백 명으로 구성됐고, 매일 회의를 열어 국사를 처리했다. 임기는 1년이었다. 그 의장은 매일 아침 다시 뽑혔고, 민회의 의장도 겸했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의장
  2. 다시 읽는 민주주의와 활동적인 삶(ing)
    from 木筆 2009-12-04 12:13 
       --결사에 대한 토크빌의 생각 (쿡!)-- 야심있는 사람은 많은데 고매한 야심은 찾아보기 힘드는가? 라는 장에서 말한다. "민주시대 사람들이 고매한 야심을 못 가지게 되는 주된 원인은 그들의 재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산을 늘리기 위해 너무 격렬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야심있는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면 그가 감히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이 없다
  3. 160년 미래로부터 온 소식들(ING)
    from 木筆 2009-12-04 13:56 
      E.P 톰슨은 1960년 [뉴레프트 리뷰] 출간에 맞춰 모두에 모리스를 불러내었다. 모리스의 사회주의에 대한 노력과 삶은 그 지평이 얼마나 넓어져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만든다고 했으며, 그러한 노력이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1890년, 벌써 120년전 이야기다. 모리스는 1951년 혁명으로 바뀌는 2150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140년이후의 일이니 그리 멀리있는 일도 아니다. 읽으면서 1951년 혁명
  4. 10000명이 행복해지는 방법(ING)
    from 木筆 2009-12-04 14:53 
    1. 우리는 생태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생태라는 것이 일상에 돌아오는 순간 모든 관계는 수포로 돌아선다. 1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살린다란 가정이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 IQ에 대한 집착은 터마이트란 삶의 프로젝트에서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경영일선에선 유효하다. 아웃라이어는 다른 대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치라 한다. 당신의 생태학이 얼마나 미세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보자고 한다. --성공은 문화 embed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