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Indignez Vous!

    

  스페판 에설 저, 임희근 옮김, 돌베게, 2011.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 투사이고 외교관을 지낸 93세 노인이 외친 연설을 출판사의 적극적인 권유로 책으로 만들어 엮은 것이다. 연설을 묶은 책이라 지극히 짧다. 연설문이라서인지 전하는 메시지가 확실하고 내용이 불충분하지 않다. 또한 힘이 있다. 거기에 저자인 스테판 에셀에 대해 소개하고 특히 인터뷰를 통해 저자의 인생과 메시지를 더 이해하게끔 해주고 있다.

   저자가 전하는 핵심은 프랑스가 처한 지금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고 호소한다. 대한민국에도 확실히 딱 알맞은 메시지 아닌가!

 

p22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글’의 문장력 때문에, 전하는 메시지 때문에 흡인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오늘날의 사회를 살다보면 한번쯤 듣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100세에 가까운 노인이, 젊은 시절 나치에 맞서 투쟁하고 수용소를 전전하며 목숨을 잃을 뻔했던 당사자가 오늘날의 현실을 보며 전하는 메시지이기에 더 울림이 크다. 스테판 에셀은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이 프랑스에 산 덕분에 프랑스 예술가들을 보며 자란 그는 이후 1937년 프랑스인으로 귀화한다. 하지만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징집된다. 1941년에 런던으로 가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하여 방첩・정보・행동 담당 총국에서 일하는데 1944년에 그는 게슈타포에 체포된다. 이때 그의 체포는 누군가의 밀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물 담긴 욕조에 머리를 밀어 넣는 고문을 많이 받은 모양인데, 교수형을 당하기 전날 극적으로 탈출한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티푸스로 사망한 프랑스인과 신분을 바꿔치기 해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수용소로 이감되던 중 탈출하고 또 다시 잡히고 또 다시 탈출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그는 그렇게 살았다.

 

“이렇게 삶을 되찾았으니, 이젠 그 삶을 걸고 참여해야 했다”

 

   이 말이 그의 회고록에 있다는데, 수없는 시도 끝에 그곳에서 살아남은 그의 인생에 대해 대변하는 말 같기도 하다.

   저자가 단지 지난날 나치에 대항한 레지스탕스였다는 이력만으로 이런 메시지를,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외에 그의 이력 또한 중요하다.. 저자는 이후에도 외교관 활동을 했고 유엔에서 비서직을 맡아 1948년에 세계 인권 선언문의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를 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회에 관심을 쏟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아프리카 노동자 교육협회를 창설했고, 1996년에는 80세의 나이로 교회를 점거한 이주노동자와의 협상주재에 나서기도 했고 환경문제, 인권문제 등등에 관심을 쏟으며 관심을 쏟는 만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저자, 자신의 경험과 그리고 실천적인 활동이 함께 했기에 그의 메시지는 진정성이 있고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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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

윌리엄 브리지스 저, 이명원 옮김, 이끌리오, 2008.


The way of Transition



 저자, 윌리엄 브리지스는 이 책을 통해 ‘변화’와 ‘전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화와 전환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인생에 있어서의 변화와 전환이 왜 필요한지를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변화가 새로운 시작이라 강조하고 우리가 가지게 되는 변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변화가 외적인 사건을 이야기한다면 전환은 심리적인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아내가 암으로 사망하는 경험을 함으로써 ‘변화’와 ‘전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상황과 그에 따른 변화와 전환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화와 전환은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것으로서 이 변화와 전환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전한다. 또한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아내와의 사별’이란 경험을 녹여 풀어 가고 있으며 단락의 전환은 다른 저자들의 인용구-격언, 소설이나 시의 글귀 등-를 제시하면서 하고 있다. 자신의 글에 관련된 의미의 문장을 삽입하면서 저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뒷받침하게 하고, 나아가 공감하도록 하고 있다. 저자의 책에 대한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p298-299 이 책은 내가 저술한 10권의 책 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나는 처음 경험했던 때만큼이나 기억하기도 힘든 개인적인 경험을 모두 드러내야만 했다. 또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 나의 경험에 일반화라는 옷을 입혀 대부분의 이야기를 감추어두었다.


p299 소로가 자서전에서 말했듯이, 내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나는 다른 누군가를 이용했을 것이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나의 생각을 각각 다른 장에 실어서 서로 대비되는 방식으로 써나가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제를 깊이 파고들수록 일은 더 어려워졌다.

    첫 번째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나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얼마나 오랫동안 오해받고 있다는 느낌에 우울한 날들을 보냈던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가 반으로 나뉜 것이었다.


 우선, 마음에 드는 글귀를 적고 보니 저자의 글보다는 저자가 인용한 다른 이들의 문구가 훨씬 많았다. 어떤 장은 저자의 글은 없고 인용구만 나열된 장도 있었다. 장마다 인용된 다른 이들의 글귀가 그만큼 내게 와 닿았다.

 인용구 이외 저자의 글을 많이 기록한 것은 1장이다. 전체적인 글이 시작하는 첫 장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드러나는 것이었다. 저자 또한 시작할 때는 심혈을 기울인 듯하다. 이렇게 저렇게 읽다 보니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막 쏘아댄다. 저자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저자 자신은 힘들게 고민하고 토로한 것을 바탕으로 너무 쌍심지를 키고 읽는 건 아닌지 싶다가도. 어쩌랴........


1) 인용구의 조절


  저자는 영문학 전공자답게 문학작가들의 글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마음을 흐르게 한다. 여러 사람들의 글들을 인용하여 자기의 생각인 것 마냥 글 속에 배치를 하고 있다. 적절하게 배치된 인용구는 좋다. 글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면 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이들의 이름에 기대어 저자의 글에 대한 명확성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너무 많다. 이 책에서 이 글들을 다 빼버린다면 어떨까? 내가 마음에 드는 글귀로 적은 글들은 보다 보면 저자의 글보다 다른 이들의 인용구였다. 이 책은 인용한 글들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타인의 글의 인용은 자신의 글에 맞게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경험과 이론 사이의 조절


 이 책은 무슨 책인가? 자서전인가? 지난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인가? 전환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가? 이 책의 지금의 모양은, 자기계발서도, 자서전도 아닌 듯하다. 책의 원제를 보면 더욱 그렇다. “The way of Transition”(전환의 방법). 저자는 전환의 방법적 측면보다는 아내와의 사별과 재혼하는 과정에서의 감정 토로를 더욱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책은 자신의 영혼 치유, 상실감 극복의 치유책인 듯이도 생각되기도 한다.

 감정적인 토로와 그 감정을 겪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미칠지 염려한 부분이 있던데, 오래동안 전환관리의 전문가의 책이라고 보기엔 경험과 이론 사이의 조절이 적절하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아내의 사별을 핵심으로 두고 모든 내용을 전개하기에는 오히려 무리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감정적인 토로를 하다 ‘전환’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전개와 방법이 자연스럽게 가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글의 배치나 문장 부분의 차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많은 컨설팅을 하고 수많은 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턴트로서 생각할 수 있는 사례가 많았을 것인데 아내와의 사별만을 이야기하며 ‘전환’을 재생각 했기에 차라리 6장의 제목을 이 책의 제목으로 하는 것이 더 이야기의 흐름이 맞는 듯이도 생각했다. ‘결혼이 인생의 전환점이다’라는 제목 아래, 결혼과정과 자연스러운 사별 과정, 재혼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생의 ‘전환’으로.


3) 번역, 장의 구분과 제목


원제목과의 차이가 있다. 책의 원제목은 “The way of Transition”(전환의 방법)이다. 글을 읽어보니 우리나라 번역 제목이 더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이다.

 11장으로 나누어 소제목을 서술형으로 달고 다시 개념 정리 형태의 제목을 두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는 개념 정리 형태의 제목이 없다. 이것이 번역과 편집상의 누락인지, 원본 자체에 없는 것인지 확인하려 했으나 확인을 못했다. 그래서 제목 구분 역시 저자에 의한 것인지, 번역자와 출판사에 의한 것인지의 확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제목과 내용의 조합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념적인 개념 설명, 개인적인 경험 토로, 개인적인 감정 토로, ‘전환’의 이론적 방법 소개 등등.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중언부언하는 부분이 있기에 조절이 필요하다.

4) 그 외


 ‘전환’에 저자는 너무 집착한 듯하다. 자신이 전환관리자이며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전환’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경험도 ‘전환’이란 틀을 거치는 것일 게다. 물론, 개인적 경험이 그간 자신이 강조해 왔던 ‘전환’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론은 같지 않은가. 인생에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오히려 ‘전환’의 방법적 측면을 빼고 저자가 혼란을 느꼈던 경험과 감정적 토로의 형태로, 그간의 이론적 측면을 강조했던 부분에서 ‘심리적’ 측면이 강조된 전환의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책의 흐름이 이어졌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이미 저자는 ‘전환’의 이론서들을 널리 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용적인 분리와 서술방식의 분리를 했다면, 조금 과하게 반응하여 이 책이 개인의 재혼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느낌을 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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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입니다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

리처드 N. 볼스, 조병주 옮김, 동도원, 2005.

 

  이 작가는 수식어가 너무 많다. 불행히도 내가 관심없어 하는 분야에서 많은 타이틀을 수여했다. 끊임없는 베스트셀러 작가라기에 관련 책들을 찾아보니, 제목이 늘 같다. 이건 뭐지?

  우리는 일해야 하고 취업해야 하고 그렇기에 취업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에 천착한다. 이전엔 취업에 관한 노하우를 알려 준 이들이 없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했단다. 그 덕분에 이 사람은 경력개발과 직업탐색 분야에 관한 엄청난 권위자로 등극했다. 사진의 활짝 웃는 노년의 모습은, 나 성공했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력개발 컨설턴트들은 왜 이렇게 많고 이들의 책들은 어쩜 그렇게 잘 팔리는지. 이 세상에서 취업해야 하는 모든 구직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늘 이런 책들은 비슷비슷하게 여겨지는데, 그럼에도 왜 잘 팔리는지 의아함을 가진다. 이 작가는 같은 책을 제목만 조금씩 수정하여 계속 우려먹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것,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고 대단한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정말 대단해라고 말해 지지 않는 것은...

   그런데, 이 작가 배움이 강하신 분인 모양이다. 거듭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다. 화공학과 물리학은 그나마 유사 분야라 하더라고 신학을 다시 공부했다. 신학이니까 이해가 간다. 종교는 가끔 학문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가처럼 다른 전공을 가지고도 신학을 공부하거나 신학을 공부하고도 다른 전공을 가진 저자들을 북리뷰하면서 너무 많이 봐서 또 딱히 ‘놀라운 걸, 대단한 걸’이라기보다는 그렇구나, 하게 된다. 이쯤되면 큰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인데 나는 이 작가를 너무 밍숭맹숭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의 생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쪽 분야의 책들을 몇 권 보고 나니 작가들의 이미지가 겹친다. 윌리엄 브리지스도 리처드 불스도 결국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강연에 나가고 강연활동과 컨설턴트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년의 나이에 재혼을 했다. 77세. 그의 정확한 결혼 과정은 모르지만 이 부분에서는 놀랍다. 우와, 대단한 걸.

    

   

    이 책은 구직자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방법들을 알려준다. 직업 선택의 요령은 자신의 소질에 대한 이해와 개발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소질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이것이 필요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의 소질인 능력을what 어디에where 어떻게how 발휘할 수 있는가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구직자들을 위한 자기계발서이자 취업을 위한 실용매뉴얼로서 이 책은 무엇보다 개인의 ‘소질’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데 힘을 쏟고 있는데 그것이 직업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기 위한 방법으로 ‘전용성 스킬’ 개념을 제시하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어떤 스킬을 자주 사용하고 성취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소질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꽃송이 연습’을 설명하고 있다.

   책의 제목으로 “파라슈트”를 선택했는데 파라슈트는 ‘생존의 위기에서 행복하고 안전한 직업으로서 당신을 구해주는 구조장비(시스템)’으로 저자는 정의하고 있다. ‘What Color is your Parachute?’, 이 제목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1968년도의 모임에서의 한 일화 덕분이다. 이 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조직에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 용어로 bailing out은 파산하기 직전의 회사에서 사람들이 탈출하는 것, 낙하산으로 비행기를 탈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농담으로 ‘그렇다면 당신의 낙하산은 무슨 색깔이요?’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실직을 겪으며 이러한 글을 쓰면서 이 제목을 붙인 것이다. 제목에 대한 일화가 이 책의 제목이 왜 이 제목인지를 확실히 느끼게 한다.

   어쩌면 구직이 필요하고 절절하게 일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면 구절 하나하나가 와 닿았을지 모른다. 저자가 알려주는 매뉴얼을 하나하나 보면서 구직과정에서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새롭게 의지를 불태웠을지 모른다만....나의 절절함이 덜한 탓인지 그렇게 놀라울 정도의 강렬한 인상을 받진 못했다. 아, 43년 동안이나 세계적으로 취업자에게 바이블이 되었다는 이 책은 내게 그저 그런 또 하나의 구직자를 위한 매뉴얼 정도로만 기억되게 되었다.

 

   취업 매뉴얼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에게 고전이 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책은 결국 어떤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결국 방법에서의 실행이 관건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이 어떤 도움을 줄까를 생각해 봤다. 적극적인 구직활동에 있지 않은 내게는 이 책 역시 관련된 분야의 수많은 책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그러면서 그 수많은 책들 중 왜 하필, 이 책이 더 유명한가라는 관점에서 봐야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미국이니까로 시작한다는 점, 그리고 저자가 목회자 신분이었다는 점이 크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외적인 부분이다.

내적인 부분에서는, 잘 모르겠다. 이미 나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핵심적인 내용들을 다른 책을 통해 봤기에 신선하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아마도 그렇기에 저자는 매번 개정판을 내고 책을 보완하고 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을 바꿔서, 내용을 조금 달리하여....우려먹기 식이라도 해도 변해가는 구직세계의 흐름에서 나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보완이 아니라 그냥 아예 처음부터 독립된 책을 쓰라고. 문장 몇 개, 방법 몇 개 달리한 것이 새 책인가, 보완인가하는 물음을 가지게 한다. 이런 종류의 업데이트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미국의 카운슬러의 대가라고, 취업커리어 컨설턴트로 매우 위대한 자라 칭송받는데 받는 이의 태도가 열려 있지 않으면, 결국 와 닿지 않는 방법들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열려 있지 않은 자도 설득할 수 있는 책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로 곰국을 끓여내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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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할 틈도 없이 어느새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오찬호, 개마고원, 2013.

 

   몇 년 전 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에 사는 것을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몇 호선인지 모를 지하철 종점 부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아빠인 저자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인터뷰도 하고 글도 쓰고. 개인 블로그는 사회문화에 대한 비평을 주로 싣고 있으며 우수 블로그로도 선정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분이다. 그가 이러한 불로그를 운영하며 연구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며 관심가지는 것은 이렇단다.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는 사회의 ‘지적 총량’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생각 아래, 현대사회가 개인의 생활스타일을

어떻게 창출하는지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세대담론으로서 이십대가 현 사회를 살면서 가지는 생각과 태도를 바라본다. 기본적으로 이십대가 사회에 대해 가지는 생각, 이들이 생각하는 사고의 틀이 어떻게 틀을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파악한다. 저자는 총 4장으로 나누어 1장에서는 이 글의 발단이 된 이십대의 생각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2장에서는 이십대가 처한 현실을 3장에서는 이십대가 왜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원인들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이러한 현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며 이십대를 위해 해야 할 일, 이십대가 가진 문제의 원인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십대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경쟁논리에 갇혀 무수히 자기계발을 통해 이 길을 벗어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개인적인 자기계발로 바뀌어질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가지는 기본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십대는 현재 극심한 불안에 놓여 있고 그로 인해 사회의 문제들을 자기 일로 생각하기보다 외면해 버리고 개인의 생에만 집착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지방대, 학벌 등 학력 차별을 당연시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에 대한 관심도 적다. 이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별을 당연시하며 ‘차별’을 하고 있는 이십대를 지배하는 담론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엔 이십대를 직접적으로 만나기 어려워 이십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맞닥뜨리니 놀라울 뿐이다. 유머 반 진담 반으로 가장 무서운 것은 10대라는 말이 있었는데, 여전히 있지만, 나도 갈수록 어린 세대와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끔 된다. 서로의 생각의 차이, 방향의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가 말했듯이 슬픈 현실이고 분명 바뀌어져야 할 것이고,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그 길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초인’이 되어야 하는 사회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사회다. 그런데도 초인적 노력으로 사회구조의 장벽을 뚫은 그 미세한 확률에다 사람을 몰아넣는 자기계발의 이야기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다. ‘자기계발서’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이십대들은 자기통제의 고통을 참아내고자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친다. 자신이 경험하는 차별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계발의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 이십대들은, ‘사회적 차별’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 차별에 자신이 당하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남을 차별하는 것 역시 정당화한다. 그렇게 위계화된 학교서열에 대한 집착은 이십대에게 가장 통속적인 자기 방어기제가 되었다. p232

 

   이십대에 대한 담론을 펼치는데 저자는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시작하고 대화를 통해 생각을 이끌어낸다.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직접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고 의문에 대한 토론까지 이어진다. 이십대를 피상적으로 보며 논의를 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방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십대의 전부가 대학생은 아니기에 부분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십대에 대한 담론이라고 보기보다 오히려 대학생들의 담론이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릴 듯도 싶다. 어쨌든 핵심은 자기계발이 강요되는 사회에 대해 말하며 이 담론에 갇힌 이십대 대학생들의 생각들을 파헤치고 있다.

   그래도, 사회는 젊은 청춘들에 기대를 건다. 어쩌면 그러한 기대에 대한 부담이 클 수도 있겠다. 그래서일까 이십대들의 말은, 이해가 어렵다. 이해가 어렵다기보다는 그들에 대한 기대로 ‘어찌 그렇게 생각할 수가’가 되는 것일 게다. 그들의 생각이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이십대의 생각의 편린을 통해서 개인이 아닌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끌어 내고 그에 대한 의견을 펼치는 것,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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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묵자>를 두려워하는가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


임건순, 시대의 창, 2013.


  <묵자> 이 책은 <묵자>의 원문에 대한 한문풀이 주해서가 아니라 <묵자>에 대한 작가의 완전한 이해를 설명해 주고 있다. 결국 작가는 <묵적>이 아니라 임건순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우리에게 낯선 사상가인 묵자에 대한 소개에서 시작하여 묵자의 핵심 사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묵자의 사상이 나왔던 배경과 다른 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묵자 사상을 설명해 나간다. 특히 묵자의 사상은 공자 사상에 대한 반론이 많기에 그 비교 대상은 공자의 유가사상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묵자 사상을 설명하며 묵자 사상의 정수들을 추려 이해시킨다. 이후 묵자의 실질적인 원전을 소개하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다만 완전한 원전읽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추려낸 원전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묵자 사상을 이야기하며 유가 사상을 비교 설명한다. 묵자 사상이 공자 사상에 대한 반론적 성격을 띠고 대립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교 설명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묵자 사상이 나름 무리들을 형성하고 다른 사상에 영향을 미쳤음에도 결국 소멸되어 버리는 안타까운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당대의 사회현실의 토대 속에서 분석한 원인들이 와 닿았다.

 또한 아마도 보편적 복지 형태인 겸애에 대한 사상과 반전 사상에 대한 묵자 사상이 와 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묵자는 그러한 사상들을 직접적으로 실천하였으니 그러한 하나하나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도 와 닿을 수밖에.

 오래도록 익숙했던 유가 사상에 이러한 사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유가 사상을 반복하여 비교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 사상의 느낌을 더할 수 있다. 물론, 제목을 봤음에도 잊어버리고 이 책이 묵자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나 싶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은 당대의 현실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더불어 사상적인 흐름에 대한 이해를 통해 특정 사상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음을 알았다.


 누가 <묵자>를 두려워하는가.

 오래도록 <묵자>와 <묵가>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단지 사상의 어려움 때문에 이 사상을 소개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책은 너무 쉽다.

 <묵자> 사상 자체에 대한 어려움이 없게 느껴진다. 모든 사상가들의 사상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봐야 하지만, <묵자>는 정말 직독 직해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읽은 것이 <묵자>원전이 아니었다. 더구나 원전에 아주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책을 펼쳐보니 많은 부분 작가의 풀이가 좌우하고 있었다. 원전에 대한 한문풀이 번역이 아니라 <묵자>가 가지는 주요한 사상에 대한 정리와 해석을 하고 있는 책이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서 언급된 <묵자>의 느낌이 강도를 더해서 전해졌는데 아마도 딱딱한 느낌으로 서술되었다면 <묵자>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많을 듯하다. 그것은 마치 이른바 ‘일베’들이 좌파에 대한 공격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일 게다. 그만큼 <묵자>는 좌파적인 사고를 담고 있다. 단지 사상뿐만 아니라 실천에 대한 강조까지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진보당의 사상과 공약들을 보고 있는 듯했다. 신영복 선생님도 <묵자>에 묵가는 중국 사상사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이 책은 <묵자>의 사상만을 소개하고 있지 않다. 묵자, 즉 묵적에 대한 설명과 묵가 무리에 대한 설명을 통해 오늘날 이 사상이 누구에게서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 이 사상이 왜 소멸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묵자 사상 자체가 공자와 함께 하고 있기에 공자의 사상에 대해서도 설명을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더불어 당시 다른 이들의 사상의 핵심과 비교를 해주고 있어 묵자만이 가지는 특색을 더욱 잘 확인할 수 있었다.

 상당히 쉽게 설명되고 있긴 한데 간혹 너무 어린이들에게 말하는 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문장들이 여럿 보였다. 그로 인해 내가 쉽게 이해하면서도 ‘아니, 이거 어린이용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작가 자신이 야구논객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블로그 글이나 쉽고 유행하는 말들을 사용한 글쓰기를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장점은 너무 쉽게 고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오히려 그렇게 쉬운 말투가 단점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반복적인 설명과 강조로 인해 묵자의 대표적인 사상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학습되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나, 조금 머리가 커졌다고 이것이 완전히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부분, 즉 원문을 보다 많이 살펴보고 해석을 하고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쉽게 <묵자>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니 <묵자> 원전에 대한 욕심이 강하게 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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