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림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하도 절실하여 글이 되어 나올 수 밖에 없는 간곡함이 없었다.

그렇다고 신선한 재미나 깨달음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한 두 작품 정도는 모르겠으나 나머지 작품은 책을 내기 위해 묶었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요즘 이 책과 함께 읽은 것이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었다.

그 책은 나를 홀렸다.

문장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며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읽고 나서 보니 플로베르는 이 한 권의 책을 쓰는 데 꼬박 5년이란 세월을 보냈단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적어도 2년 6개월 정도는 걸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으로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책을 몇 년에 걸쳐 몇 권을 묶어내든 그것은 작가의 수완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앞으로 책을 사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만 <홀림>을 읽으면서 적잖이 실망했다.

다시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이 요즘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고 너무나 쉽게 글을 쓰려고 덤비는 건 아닐까 우려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홀림>에 홀리는 대신 앞에 여섯 장, 뒤에 두 장, 그리고 사이 사이 작품을 분류한답시고 끼워넣은 종이까지 참 아깝다는 생각만 내내 들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감히 말하자면, 책을 만들지만 말고 책을 쓰는 작가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혼신을 다해 써낸 작품에 홀딱 홀려보고 싶은 바람이 나에게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아이들과 옥신각신 다투기나 하고, 보고 또 봐도 에러가 발생하는 서류 꾸러미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하루를 보냈다. 이눔의 하루는 어찌 된 것이 하루도 똑 떨어지지가 않는다. 1+1=2, 2x2=4, 이런 식으로 똑 떨어지지가 않는다. 하나와 하나를 더했는데 어느 하루는 0치는 날이 되기도 하고 분명히 둘을 둘로 나눴는데 하나가 아니고 넷이 되는 하루도 있다.

밥벌이의 열망이 시시각각 지겨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다들 이렇게 산다고 해도 절대 위안이 되지 않고 나 혼자만 이렇다면 속상하고 억울해서 죽을 것만 같은 하루였다. 내일은 다르겠지? 라는 기댈랑은 초등학생용 다이어리 표지에나 실어버려랏. 정말이지, 하루에 잠깐이라도 나는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서 똑 떨어지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짜릿하고 시원한 사이다 한 모금처럼 청량감으로 충만한 순간!

지랄맞은 하루. 얼른 소화 되어라... 소화 되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 김점선 - 개정판
김점선 지음 / 깊은샘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마냥 자유롭다 - 김점선 作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보다 어릴적의 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참 많이도 헤맸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목록을 밤새도록 써보기도 하고 사주나 관상 같은 운명철학에도 기웃거리는 등 나를 규정하기 위해 참 오래도 방황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고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혼자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몰두할 수 있는 용기도 없으면서 나를 규정하는 일이 그만치 중요한 것일까?

그리고 오히려 나를 규정하는 것은 그만큼 나를 어떤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보다 많은 자유였고, 자유롭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보다 나라는 인간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한 탐색보다는 나를 살아내는 것. 그 살아내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나다움.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따라서 솔직하게 투명하게 살다보면 나는 아무도 닮지 않은, 단 하나뿐인 특별하고도 멋진 존재가 되어 있지 않을까?

마냥 자유롭고 행복한 경지에 이르러 머리를 풀어 헤치고 신발도 벗은 채로 하늘을 걷는 느낌.

<나, 김점선>에서 그러한 '자유'를 보았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행복했던 기억, 사랑받았던 기억은 우리의 남은 생에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야 만다는 '애정의 효능'을 실감했다.

사랑은 고통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면역제가 되어준다.

화가 김점선이 인생 앞에서 그만치 두려움 없이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녀의 책 속에서 발견되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현명하고 따듯한 사랑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는 떳떳하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

그것은 필요한 것 모두를 코앞에 갖다 주면서 울타리 안에 가두는 교육이 아니라 너른 세상을 보여주고 잘하는 점을 찾아내 부지런히 칭찬해 주는 교육을 통해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 교육에 대한 tip까지 나른하고 각박한 삶 속에 휘둘려 지내던 사람들이라면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혹시 'TV 책을 말하다'를 보면서 화가 김점선의 언행에 호기심 내지 호감을 느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난 참으로 오랜만에 겉과 속이 똑같은 착한 사람을 발견한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부터 내린 눈이 월요일을 느리게 만들고 있다. 미끄러운 길 때문에 출근이 늦어졌고 몇몇 아이들은 눈을 핑계로 학교에 늦게 왔다.

어젯밤엔 호된 꿈을 꾸어서 오늘 아침은 좀 멍한 상태. 낮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워하면 꿈에 나타나지 않던데, 낮에 별 생각을 안하고 있으면 꿈에 나타난다. 억눌린 욕망이란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것은 여전히 나에게 억눌린 욕망인걸까?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거기에 없는 것이 아니다. 있지만 덮여 있는 것이다. 오늘 눈은 그래서 예사롭지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품집을 읽으면서 삐삐 밴드의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방법' 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유쾌한 씨는 삐뚜름히 머리를 까딱거리다가 장난스레 송곳니로 껌을 가르기도 한다.

유쾌한 씨는 큰 눈을 천천히 깜빡대면서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얼굴을 덮을만한 풍선을 불기도 한다.

세상을 보는 방법도 여러가지라서 앞으로도 보고 옆으로도 보고 나누어서도 본다.

기쁨도 알고 슬픔도 알고 환희도 알고 고통도 알지만 유쾌한 씨는 좀처럼 직접 내색하질 않는다.

기쁠 땐 보조개가 패이도록 어금니로 씹고 슬플 땐 껌 향기가 콧구멍까지 전해지도록 크게 풍선을 분다.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모습은 항상 유쾌하다. 

이건 좋지 않다라는 느낌이 들면 껌으로 씹어버리고 풍선을 불어 터뜨려 버린다.

이건 좋다라는 느낌이 들면 단맛과 향기를 음미하며 즐겅즐겅 즐기며 씹는다.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모습은 항상 감동적이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 김애란이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방법처럼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쾌하고 감동적이고, 그리고 신선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그녀가 긴 호흡을 가지고 꾸준히 성장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