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Read It!

- 표정훈 / 탐서주의자의 책 /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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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봤어요. ^^

깐따삐야 2005-12-2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고 절판되어서 구하기 힘든 책을 쓱싹했던 경험이 떠올라 흐뭇(?)했습니다.
 

요즘 들어 사랑니가 속을 썩이고 있다. 그것도 누워서 배 째라는 식으로 올라오는 중이라서 대학병원까지 방문해야했다. 내 몸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건방지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쓸데없는 막니 하나가 아주 매트릭스를 찍고 앉았다. 05년 후반기는 참 고단하기도 하다. 튼튼한 것으로 보자면 이십세기 마지막 히로인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건강을 자랑하고 다니던 내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차츰 모든 것이 좋아질 무렵 방학을 즐겨볼까 했더니만 기어이 사랑니가 경종을 울리는구나. 어쨌거나 마지막 경종을 울리다, 가 되었음 좋겠는데.

한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도착한 대학병원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참 많기도 하다.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은 아들의 네 번 째 다리 수술의 예약을 확인하러 온 것 같았는데 병원 측에서는 예약이 빠진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아주머니는 그럴리가 없다고 의사 샘과 전화 연결을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참 안쓰러웠다. 네 번 째 수술이라니. 세상에 그걸 빠뜨리면 어쩌자는 건데. 접수원들의 기계적인 손놀림을 보고 있자니 나도 불안해졌다. 파바방 도장 찍고 드르륵 카드 긁고 찍찍 영수증 구분선 뜯어내고 눈이 오락가락했다. 엄마는 대학병원 특유의 복잡다단한 진료 절차를 밟으면서 내 돈 내고 이렇게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는 일도 드물다면서 다 때려치고 식구 중에 하나를 의사 만들던지 해야지 불편해서 못 살겠다 하셨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 기왕 하는 거 아주 오지게 열심히 해서 의사나 될 걸 그랬나, 에혀. 암튼 산골에서 줄창 미끄러져가며 여기까지 왔다는 엄마의 기지가 없었다면 아마 어둑어둑해진 지금쯤에나 간신히 집에 도착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랑니 발치는 실패했다. 오늘 확 빼버리고 왔음 좋았을텐데 염증이 있어서 가라앉힌 다음 뽑아야 한단다. 그것도 열흘 뒤에나. 어쨌거나 열흘 동안 이 쥑일놈의 사랑니와 한 몸 한 뜻으로 동고동락 해야 하는 것이다. 네모난 마스크를 쓴 얼굴이 네모난 의사 샘은 차분차분한 말투의 여자 샘이었고 뭐 그런 얼굴이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냥 내 느낌 상 이를 잘 뽑게 생기신 것 같았다. 마치 영구치 중의 하나인 두 번 째 어금니처럼 억세고 튼튼하게 생기셨다. 그나마 다행이다.

사랑니 뽑기 전에 이틀 정도 학교에 나가서 근무를 해야 하고 입시 때문에 아이들도 봐야 될 것도 같다. 만나려고 했던 친구들을 만나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고. 어차피 맛난 것도 못 먹고 볼이나 싸매고 앉았을텐데 귀찮아서 얼른 집에 보내려고 들겠지. 이 쥑일놈의 사랑니, 방학을 아주 통째로 잡아먹을 심산이구나. 켁! 샘들은 지금쯤 제주도 앞 푸른 바다를 내다 보면서 싱싱한 바다회를 먹으며 간만의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겠구나. 사랑니를 마지막 액땜으로 다가오는 2006년엔 본래의 건강하고 발랄했던 내 모습을 찾고 싶다. 아프면 다 소용 없다. 정말루.

※ 사랑니가 영어로는 wisdom tooth라는데 지혜를 알 나이에 나기 때문이란다. 처음에 솟아날 때의 아픔이 첫사랑의 고통과도 같다고 해서 사랑니라는 설도 있고. 근사한 이름과 그럴듯한 의미에 비하면 생긴 거나 하는 짓이나 당최 꼴 뵈기 싫어 미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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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랑니가 났는데 안뽑아도 된대요. 저도 모르게 다 났어요.

깐따삐야 2005-12-28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받으셨구랴. 부럽소. 부러워!
 

The truest poetry is the most feigning, and lovers are given to poetry.

 진정한 시일수록 거짓투성이야. 연인들은 시에 취하고 시에 맹세하지.

- 셰익스피어 / 당신이 좋으실대로 / 3막 3장,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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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long a time lies in one little word.

얼마나 오랜 시간이 작은 한 마디 말 속에 잠겨 있는가.

- 셰익스피어 / 리차드 2세 / 1막 3장,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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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中 - 리버피닉스

 

예전에 리버피닉스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새 이름인 줄 알았다. phoenix가 원래 이집트에 사는 불사조라는 뜻이 있으니 river phoenix. 얼마나 근사한 이름인가. 나중에 요절한 젊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이 일어 이미지를 찾아 보았는데 과연 완벽한 젊은이였다. 마치 이완 맥그리거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키아누 리브스를 교묘하게 섞어 놓은듯한.

정부를 살해한 어머니 때문에 고아가 된 마이크(리버 피닉스 분)는 남색을 즐기는 남자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젊은이다. 그에게는 흔하지 않은 병이 있는데 긴장을 하게 되면 갑자기 잠으로 빠져 드는 수면 장애가 있다. 한편 거부인 아버지를 향한 반발로 거리를 떠돌게 된 스코트(키아누 리브스 분)는 이러한 마이크가 어머니를 찾는 것을 돕게 되고 두 사람은 우정을 넘어서 동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스코트는 로마에서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오토파이를 팔고 남은 돈을 쥐어주며 마이크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포틀랜드의 사창가로 돌아온 마이크는 지난날 두 사람이 의지했던 밥과 함께 지내게 되는데 어느 날 밥은 아버지가 죽고 재산을 물려받아 신사가 된 스코트에게 인사를 건넸다가 초라하게 외면 당한다. 이 충격으로 밥은 세상을 떠나고 스코트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뤄지는 반대편에서 밥의 초라한 장례식이 함께 치뤄진다. 마이크와 스코트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두 사람은 이미 다른 길에 서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크는 길 위에서 다시 잠이 들고 짐과 구두를 빼앗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이크가 불쌍해서 죽는 줄 알았다. 아, 나는 고작해야 이렇게 밖에 감상평을 못하겠다. 어머니도 없고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새파란 젊은이가 먹고 살 줄 아는 방법은 몸을 파는 것. 몸을 팔던 젊은이가 태어나서 처음 어머니 다음으로 애착을 느낀 상대는 제 또래의 젊은 남자. 그 남자에게 구걸하다시피 말을 건넨다. 난 돈을 받지 않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 난 너를 사랑해. 돈은 안 내도 돼. 그러나 그 남자는 제 또래의 젊은 여자에게 떠나고 마이크는 다시 혼자 남겨진다. 어머니도 못 찾은 채로. 그리고는 밥을 먹기 위해서 다시 몸을 판다. 아, 이 조각처럼 아름답고 병든 사슴처럼 슬픈 남자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나는 지적이지 않은 채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는 남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안다.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러한 남자를 사랑해 본 경험이 있고 시시때때로 내 안에서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는 모성애를 느꼈다. 매우 위험한 남자였다. 그러나 영원히 크지 않은 채로 방황하는, 신발도 벗겨가고 짐도 빼앗아 갈지 모르는 적막한 길 위에서 혼자 웅크리고 잠들어 버리는, 그 대책 없음은 여자를 어머니로 키우고 모성애의 힘은 사랑보다 강하고 질긴 것이다.

이 영화는 리버 피닉스를 위한 영화다. 길 위에서 어머니를 찾아 방황하는 마이크의 모습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다. 밥은 죽어가면서 God를 외치고 마이크는 기면증으로 쓰러질 때마다 어머니를 본다. 스코트는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회의 출발선에 선다. 우리는 의지할 대상을 그리워하며 인생에 던져지고 빈 손으로 길 위에 선다. 

 

"나는 길의 감식가. 난 평생 길들을 맛보며 살아갈 것이다.

이 길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고 틀림없이 이 길로 온 세상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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