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나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

토요일에는 TV 퀴즈 프로그램에 같은 과 선배가 학생들과 함께 출연하여 1등을 하더니만 오늘은 동기 어르신 하나가 순회 나오는 중국어 선생님과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혼을 한단다. 한 때는 매일 얼굴을 마주치며 수업을 들었지만 이제는 일상에서 멀어진 사람들의 소식이 이렇듯 간간히 들려온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세상은 어찌나 좁고 내가 사는 이 지역은 어쩌면 이렇게 손바닥 만한지 뛰어봤자 벼룩이구나, 싶은 섭섭하고도 우스운 느낌이 든다. 졸업생의 대부분이 같은 직종에 종사하여 엇비슷한 길을 가게 되기 때문이긴 한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도 그들이 먼저 걸어간 길을 비슷하게 따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심란한 마음마저 들 때가 있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언어가 통하고 의식주가 해결되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몽상에 빼앗기지 않을만한 일이 있다면 낯선 도시의 익명의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그것이 매우 사소한 일이든 아니면 매우 중대한 일이든, 나의 측근들이 그 소식을 모르고 그 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나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고 주말이 지나면 나를 시장 모퉁이나 가지도 않은 도시의 버스 안에서 보았다는 생뚱맞은 발언들이 꼭 귀에 들어온다. 그런 순간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길가의 돌맹이나 풀 한 포기로 化 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불쑥거린다. 하긴 이 곳처럼 좁은 지역사회에선 길가의 돌맹이가 닳아가는 모습이나 풀 한 포기의 흔들림조차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될지도 모르지. 돈을 많이 벌어서 웡카 씨처럼 초콜릿 공장을 세운 다음 모든 문을 폐쇄시키고 내멋대로 살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늙으면 찰리처럼 착하고 의젓하고 용감한 어린 아이를 선발해서 공장을 물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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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검색 사이트나 인터넷 신문에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은 다름 아닌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을 둘러싼 공방들이다. 여기에 이들 사이에서 병원과 대학을 오가며 연구를 도왔다는 김선종 연구원, 함께 연구하는 과정에서 뜻이 맞지 않아 이탈했다는 익명의 연구원. 저마다 진실 규명을 위해 수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편파주의 보도에 휩싸여 있는 언론들. 정치적 이윤을 감춘 채 황우석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대책 없이 지원하고 다시 대책 없이 기다리고 있는 정부. 단 한 개의 줄기세포라도 좋으니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장애자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하나의 사안을 두고 서로 얽혀 있고 갈등하고 있다.  

아이들은 설마하니 과학자가 거짓말을 하겠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선생님 중의 한 분은 남편이 비슷한 직종에 있는 연구원이라며 황우석 교수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학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쇼맨십과 사기성이 뛰어난, 학자적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듯 얘기했다. 그밖의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기 보다는 누가 세상을 상대로 엄청난 뻥을 치고 있는지는 좀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거나, 황우석 교수가 자신의 시대에서는 빛을 보기 힘들겠다는 아쉬운 전망도 내놓았다.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다. 다만, 황우석 교수가 소처럼 맑은 눈으로 뻔뻔하게 사기를 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노성일 이사장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친구였던 과학자를 궁지에 빠뜨리고 있다는 생각도 안하고 싶다. 그렇다고 김선종 연구원이란 사람이 전후로 다소 엇갈리는 응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한 당사자로는 생각이 안 된다. 언론의 치밀한 유도심문 앞에서 때론 그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면 알겠지만 나는 그 사람도 이번 사안의 피해자라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이다.결국 누구 하나를 콕 찝어 의심하기엔 뭔가 대단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설마하니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누군가를 사주해서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눈같은 명징함이 목마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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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에 따른 궁합을 보면 용띠와 돼지띠가 상극인 이유가 나온다. 용은 자신이 매우 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유독 자신 없는 부분이 다른 곳도 아니고 코라고 한다. 용의 코를 유심히 살펴보면 돼지와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용은 돼지같이 못난 동물의 코와 멋진 자신의 코가 닮았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어서 돼지를 무척 싫어하고 돼지만 보면 재수 없어 한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우리나라 오랜 속담에 첩이 첩 꼴을 못 본다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점을 다른 누군가에게서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빠는 언니가 무뚝뚝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여자라면 상냥하게 조잘대는 잔재미가 있어줘야 한다나 모래나. 오빠는 자기 자신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무뚝뚝하고 가끔 꺼내는 말조차 멋 없기 그지 없으면서도 함께 사는 언니의 그런 점을 못 견뎌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다르진 않다. 나는 생활력 없는 남자를 정말 싫어한다. 아무리 장점을 많이 가진 남자라도 몽상가와 게으름뱅이는 NEVER NEVER 다. 그러나 생활력 없는 몽상가에, 어떻게든 일 좀 덜하면서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러고보면 상대를 볼 때 무의식적으로 나를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를 은연 중에 보게 되는가 보다. 자신이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에 큐를 던지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돼지코를 싫어하는 용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못 견뎌한다는 것은 마치 거울 속에서 나의 못생긴 부분을 발견했을 때 그 부분을 서둘러 외면하고 싶은 심리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호리호리하고 매끈하게 잘생긴 코에 밥벌이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과 능력을 가진 남자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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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5-12-16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공감합니다. 저도 그러고 보면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유에서 제 자신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마늘빵 2005-12-29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무슨 띠세요?

깐따삐야 2005-12-2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숭이띠요. 제가 얼핏 님의 페이퍼를 읽은 기억에 의하면 원숭이띠에 관한 안좋은 사연이 많으신 걸로 사료됩니다만. ㅋㅋ

마늘빵 2005-12-2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런. 80년생이신듯하군요. ㅎㅎ 여지껏 여친들은 모두 원숭이였습니다. 원숭이가 양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머 첫사랑의 경우는 예외였지만. 사람 나름이겠죠. 괜한 원숭이에 대한 편견이었습니다. ^^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S의 어머니는 곧 재혼을 하게 되었다며 S의 앞으로의 진로 및 거처에 대해 나와 의논하기를 원했다. 통화를 하면서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부분까지 다 알게 된 셈이었는데 별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난 줄곧 "S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란 아이같은 말만 나왔다. 다행히 재혼을 계기로 살림을 합쳐 같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사정이 더 나쁘다고 하더라도 아직 미성년인 아이에겐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어머니가 필요하고, 어머니가 없다면 어머니를 대신할 사람이라도 필요한 법이다. 일 년을 보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아이고 나를 가장 실망시켰던 아이지만 S를 알면 알수록 저만큼 커 주는 것도 다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환경이 불우하다. 그렇다고 부모를 탓하자니 그의 어머니는 가장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혼자 억척스럽게 살아가기엔 너무 곱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걷어차이면 걷어차일수록 더 강해지는 사람도 있지만 걷어차인 이후 그 상처를 그대로 내보이며 사는 연약한 사람도 있는 것이니까. 어쨌든 S는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졸업을 하게 되었고 가까운 상업고등학교로 원서를 낸 상태다.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어 새 교복도 입을 것이지만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도 꼿꼿이 자신을 추스리기엔 너무 마음이 좋고 심하게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다. 나는 자기 자식을 믿지 못하는 부모들도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자식을 너무 믿는 부모들 역시 나쁘다고 생각한다. 자식에게 해줘야 될 기본적인 것들을 해주지 않으면서 "저는 제 자식을 믿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는 제 자식이 어찌 되든 상관 없습니다."와 똑같은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S의 어머니가 좀더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란 멀리 떨어져서 무언의 사랑과 응원을 보내는 것보다 엄마가 차려주는 따듯한 밥상 한 번을 더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이 S를 키우되 치명적인 독이 되지 않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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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대문 中 - 진아와 혜미 >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과정을 유심히 봤다. 역시 추측했던 대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었다. 지금까지 김기덕 작품의 영화는 <나쁜 남자>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전부인데 케이블 tv에서 하는 이 영화를 보고 김기덕을 떠올렸다. 김기덕 감독 작품같은데, 김기덕 감독 작품 아닐까.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혜미네 집이다. 혜미네 집은 새장여인숙이라는 여관을 운영한다. 방 하나에 아가씨를 들이고 그 아가씨가 밤에 묵어가는 손님들로부터 벌어들이는 화대가 혜미네 식구의 밥벌이가 되어 왔다. 여대생인 혜미는 이 사실을 한없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녀는 새로 들어온 아가씨인 진아를 자기와는 전혀 다른 부류, 전혀 다른 계급 정도로 무시하고 진아가 있다는 이유로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것을 거부한다.

진아는 금붕어와 곰인형을 좋아하고 그림에 재능도 있지만 매일 밤 자신의 몸을 내주어 돈을 번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다. 그녀에게도 꽃봉아리같은 여고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화가를 꿈꾸던 소녀 시절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의 진아는 비 오는 날 우산을 내주어도 욕을 들을만큼 무시와 냉대 속에서 살고 있다.

이렇듯 다른 두 여자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 혜미(이혜은 분)가 늘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고 진아(이지은 분)는 늘 긴 생머리에 치마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처럼 이들은 서로 완벽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혜미가 혼전 순결을 이유로 남자친구와의 섹스를 끈질기게 거부해 왔다는 점에서,  진아가 밥벌이의 수단이거나 혹은 사람끼리의 외로움을 달래는 위안의 방식으로 섹스를 지속해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차이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숨기면서까지 섹스를 신성시하는 혜미와 달리 진아에게 그것은 아침에 양치질을 하는 것처럼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두 여자가 계속 갈등하다 화해의 길목에 들어서는 지점은 진아의 방을 둘러 본 후 혜미가 진아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더럽고 불순한 여자라고 생각한 진아의 방은 의외로 매우 소박하고 깨끗했으며 밥을 먹으면서 우연히 찍인 혜미와의 사진 한 장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늘 들고 다니던 스케치북에는 혜미네 집 식구들의 모습이 섬세하고 따듯한 터치로 그려져 있었다. 이후 혜미는 진아의 뒤를 밟으며 그녀가 낮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훔쳐본다. 미술학원에 다니고 북적거리는 골목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동전 노래방에 가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노점상에 놓인 머리핀을 구경하는 진아는 지극히 평범한 이십대 아가씨의 모습이다.

진아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혜미. 결국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性이라는 이질감은 점점 화해의 모드로 바뀌고 급기야는 진아가 아플 때 혜미가 대신 손님 방에 들면서, 혜미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편견과 두려움 속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들은 푸른 새장 속에서 웃으며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영화 속에서 혜미의 아버지(장항선 분)가 혜미의 신고로 진아와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했던 말이 있다. "너만 벗고 사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 다 벗고 산다."는 말. 몸을 파는 것은 죄가 되고 양심을 파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 사회를 조롱한 말은 아닐까. 진아는 착하고 동정심이 넘치고 그림을 잘 그리는 모든 점이 아름다운 여자이지만 몸을 판다는 점에서 손가락질을 받는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진아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건 그녀의 몸 뿐이고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먹고 산다는 면에서 정직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하루에도 몇 번 씩 거짓말을 해서 남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것을 뺏어서 부자가 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것은 하나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남의 것을 교묘하게 훔쳐오는 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간혹 돈을 주고 진아와 같은 여자들을 사기도 하고 하룻밤에도 몇 번 씩 다른 여자를 상상하며 아내와 섹스를 하지만 이튿날 새하얀 비즈니스 셔츠와 고급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에겐 돌을 던지지 않고 굽실거리며 인사를 건넨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벗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으며 때론 존경까지 받는다.

창녀와 여대생, 다소 작위적이고 극단적인 구도일수도 있지만 감독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선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모두 챙겨본 것은 아니었고, <나쁜 남자>를 보면서 심히 마음이 거북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만지면 추한 것도 아름다운 것이 된다는 점에서 시선의 새로움과 재능의 탁월함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어떤 소재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 안에 격리된 미추의 룰을 깨뜨릴 것인지 기대되는 작가이며 감독이다.

아, 그리고 그가 배우를 보는 눈 또한 빼어나다고 하겠다. 순진과 퇴폐, 아름다움과 슬픔을 두루 갖춘 "순수한" 얼굴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쁜 남자>의 서원이나 <파란 대문>의 이지은이 그림같은 표정과 독특한 아우라가 있긴 하지만 대사 전달력 면에서는 다소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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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봤어요. 보통 많은 여자들이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치를 떠는데, 그건 '외견상' 그렇게 보이는거죠. 흠. 볼 때 가끔 불쾌한 기분이 들때도 있지만 감독의 의도를 일부러 변형시키는건 옳지 않다고 봐요. 님 영화감상 잘 보고 가요. 정말 잘 쓰셨어요.

깐따삐야 2005-12-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쾌한 것 뿐만 아니라 불쾌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독인 것 같아요. 그 불쾌함도 다만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충격 같은 것일테구요. 기회 되면 이 영화 꼭 보시기 바래요. 케이블 tv에서 종종 우려먹곤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