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낯선 번호가 떠서 궁금해 하며 받아보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 K였다. 2년 전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서울의 지하철역에 있었다. 낯선 도시에 와서 7년 전에 헤어졌던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는 것이 하도 반갑고도 얼떨떨해서 그 날의 통화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 메모리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그 때도 겨울이었는데 그 겨울 이후로 오늘이 처음인 셈이다.

이제 근무 중에 회사 전화를 마음대로 써도 좋고 메신저를 켜놓고 일해도 터치 하는 일이 없고 주말에는 당근 쉬어주어야 할만큼 그녀의 위치는 좋아져 있었다. 물론 이만큼 자리를 잡기까지 주말도 없이 3교대로 일을 하는 등 그녀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진득한 성품답게 한 회사에 오래 성실히 머무른 덕분에 이제는 능력도 인정 받고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착한 그녀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에 진심으로 기뻤다.

구슬같은 눈에 웃을 때마다 귀엽게 보조개가 패이던 그녀는 남자 아이들 서넛은 너끈히 때려 눕힐만큼 체격 조건이 좋다는 점, 선생님이 판서하신 내용을 가장 빨리 옮겨 쓰고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비슷하다는 점, 맛있는 음식 앞에선 식구도 몰라볼 정도로 사족을 못 쓴다는 점 등에서 나와 확실히 통하는 면이 있어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운동회 때만 되면 짧은 하얀색 반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함께 고민했고 남자 아이와 싸움이 붙으면 서로 편을 들어주다가 놀이터같은 곳에서 급작스런 기습을 당할 때도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본래 성품이 착하고 여리던 그녀는 전적으로 나와 어울리게 되면서 남자 아이들의 공격 대상이 된 것 뿐이었기에 솔직히 미안했다. 가끔 학교와 집이 가까웠던 그녀의 집에 놀러가면 어머니께서 강된장을 만들어 주셔서 밥을 먹곤 했는데 정말이지 K네 집 장맛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잊을만큼 맛이 기가 막혔다. 나는 그녀로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전수받아 들었고 그녀는 나로부터 읽을만한 책들을 빌려가거나 소개받곤 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예쁜 편지지 세트를 사거나 혹은 맨 종이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부지런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지금도 잘 뒤져보면 편지 몇 통 쯤은 나올법하다.

물론 우리 사이가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언제였더라, 아무튼 나는 내 짝궁 J를 몹시 미워했더랬다. 다른 남자 아이들처럼 나를 심하게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고 대개는 조용한 편이었던 그 애를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참 이래저래 싸가지가 없던 나는 담임 선생님께 자리 교체를 요구했고 다행히 반 아이들도 찬성을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조성되어 드디어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J 이후에 누구와 짝이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나는 그냥 J만 아니면 된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연히 J와 짝이 된 K.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둘이 뭐가 그렇게 즐거울까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재수 없는 J와 단짝 K가 친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도 싫었다. 이 세상에 둘도 없을만큼 유치했던 나는 아예 대놓고 두 사람으로부터 쌀쌀맞게 멀어져갔다. 오냐, 그래. 잘 먹고 잘 살어랏. 하지만 K는 나를 어려워 하면서도 변함없는 친절로 대해 주었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우리 둘은 예전처럼 꽤 잘 지냈다. 변덕스럽고 예민하던 나를 그녀는 항상 귀여운 보조개 띤 웃음으로 반겨주곤 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더 욕심꾸러기가 되어가던 나와 왠일인지 자꾸 시니컬해지던 그녀는 다소 멀어진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반겼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서로 다른 진로를 택한 우리는 각각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편이었다. 무엇 하나 그냥 넘길 줄을 몰랐다. 지금은 무엇 하나 똑부러지게 걸고 넘어가는 일이 없으면서 그 때는 왜 그렇게 똑똑 부러졌는지.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먼저 연락을 해오는 친구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부터 앞선다. 마음이 좋은 친구들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상처주는 말을 했던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말들이 많다. 어린 아이들끼리 잘못을 했으면 얼마나 했을 거라고 거기다 대고 그런 심한 말을 쏟아부었는지, 상상만 해도 나 자신이 참 싫어진다. 그런데도 나의 착한 친구들은 나를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해준다.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저절로 얼굴이 빨개지는 에피소드가 숱한데 친구들은 그런 것은 다 빼고 나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나의 멋진 모습들만  기억했다가 알려주곤 한다. 늘 내 이름 석자만 대면 치를 떨던 남자 녀석들조차 말이다. 참 민망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대화에 어색함이나 막힘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철없던 시절을 함께 공유한 어릴적 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 오랜만에 한껏 들뜬 목소리로 누군가와 신나는 대화를 해 본 것 같다. 조만간 가까운 곳에서 K를 한 번 보기로 했다. 지금 공근이라는 남동생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짝달막한 몸집에 머리카락이니 눈썹이니 숯검댕만큼 새카맣던 녀석이 이젠 신장 180에 가까운 어른 남자가 되었다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쏘냐. 연년생인 누나한테 혼나고서 참 잘도 울더니만. 울고 나서는 꼭 자기 누나를 때리고 그러다가 엄마한테 다시 혼나고. 그 귀엽던 얼라가 누나가 늦게 들어오면 마치 오빠처럼 깐깐히 구는 어른이 되었다니 우리를 지나쳐 간 세월이 새삼 놀랍다.

벌써 결혼을 한 친구들은 어째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아직 미혼으로 남아 있는 우리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머하느라 이렇게 나이만 잔뜩 먹었는지. 더 나이 먹고 아이까지 생기기 전에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야겠다. 친구들을 보면 내가 정말 내가 될 것 같다. 아무도 아닌 바로 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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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할 곳이 마땅치 않아 안방 구석 자리에 박스 채 모셔둔 책들이 있었다. 이번에 동네 과일가게 주인 부부에게 텔레비전을 주면서 텔레비전이 짓누르고 있었던 박스 두 개가 몸체를 드러냈다. 2년 전에 이 곳으로 발령을 받아 이사온 뒤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박스였다. 몇 개 안되는 책꽂이와 책장들은 포화 상태인데다가 박스 안에 들어있는 책들의 종류도 대개는 다시 꺼내보기 싫은 전공책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그 박스를 개봉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갑자기 열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박스 두 개에는 역시 대학 때 보던 전공 도서와 이런저런 자료를 모아둔 바인더들로 가득했다. 세상에 내가 이런 어려운 책들을 봤단 말야. 깨알같은 영문으로 빼곡히 채워진 페이지마다 내가 공부한 흔적이 여기저기 발견되었다. 바인더에는 시험에 관한 자료부터 전공과 관련된 신문기사 스크랩까지 꼼꼼하고도 착실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성실했단 말야.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좀 심각해 보이는 책을 한 권 골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문제를 한 번 풀어봤다. 맞힌 걸로 표시되어 있는데 나는 내가 왜 그 문제를 맞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쩐 일인지 그 단어가 알듯말듯 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갑갑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멍청해졌단 말야...

사회에 나온 후로는 공부와는 꾸준히 담을 쌓아온 것 같다. 그래도 하던 장단은 있어서 가끔 신문 쪼가리도 좀 읽어주고 원서로 나온 어린이용 도서도 찾아보곤 했지만 무언가 절실함이 부족해서일까. 예전에는 단어 하나의 뜻이라도 모르고 지나치면 영 찝찝해서 자다가 일어나서도 사전을 찾아보곤 했는데 요즘은 모르는 단어는 술렁술렁 패스, 한 다음 대충 글의 요지만 파악하고 만다. 혹시 입이 굳을까봐 거울을 보고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던 현상도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말로 내 생각을 표현하기도 귀찮은데 다른 나라 말로 내 의견을 얘기하라니 귀찮아. 된장.

내 인생에 언젠가 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숱한 분량의 번역과 레포트 과제를 하느라 항상 머리와 눈과 손가락이 피로에 절어 있던 당시에는 늘상 피로가 몸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러한 빠듯함 속에는 오묘한 행복같은 것이 있었다. 학교 생활에 지치다 보면 한 며칠만 먹고 자고 뒹굴고 해가면서 푹 쉬어봤음 좋겠다, 라고 생각이 들지만 하루 정도 놀고 나면 다시금 빡빡한 일상이 그리워지곤 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는 앎의 즐거움과 반드시 어느 경지에 오르고야 말겠다는 성취욕이 심신을 충만하게 해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립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곤 했다. 꿈 앞에 서면 왠지 두려웠고 언제나 나보다 백 배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 앞에서 기가 죽었지만 나름대로 긴장의 끊을 놓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참 열심히 살았던 그 때 그 시절이다.

요 근래에 친구가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시험에서 낙방했다. 내가 사회에 먼저 나오게 된 이후로는 연락을 자주 못하며 지냈지만 언제나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던 친구다. 다소 건조하다 싶은 성품에 우아하고 도도한 매력이 있던 그녀는 전혀 상반되는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뭔가 아찔하게 통하는 면이 있었다. 학교 벤치에서, 도서관 계단에서, 카페테리아에서, 팥빙수 집에서, 우리의 수다는 언제나 Never-ending story였다. 김영하의 소설들을 좋아하고 자줏빛 띄는 붉은색을 잘 소화해내던 그녀. 나란히 서면 나의 아름다운 누나 같았던 그녀가 앞으로 일 년을 더 고생하게 생겼다. 시험에 합격해서 겨울에 만나자는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었지만 총명하고 속이 깊은 그녀이니 언젠가는 잘 되리라 믿는다. 시험이란 그런 것 같다. 실력도 중요하고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운 자체가 시험의 당락에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느만치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부디 그녀의 노력에 좋은 기운이 보태어지길 빈다.

방학이 되고나서 더더욱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나지만 그 친구를 생각해도 그렇고 오래된 책들을 들춰봐도 그렇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요즘 너무 퍼져 지낸다. 마치 내 인생의 목표는 여기까지인 것처럼. 물론 요즘 건강 상의 이유로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어제 세상의 이런 일이, 라는 프로그램을 보니 온몸이 굳어가는 병에 걸려 누운 채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아저씨를 보니 나는 건강해도 너무 건강한 편이었다. 휠체어 한 번 타 보는 게 소원이라니 두 발로 걸어다니면서 인생이 이렇다, 저렇다 불평하는 자들은 싹 다 고개 숙여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요즘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이 자꾸 마음에 맴돈다. 언제나 많은 것들을 찾아 헤매도 결국 귀결점으로 택하는 것은 늘 그 말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 하루하루 내 앞에 배당받은 과제물과 시험 공부로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던, 피곤했지만 매일매일의 성취감에 뿌듯했던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싱싱하게 살아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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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볼에 눈깔사탕이라도 물고 있는 것 같다.

쟁쟁거리며 돌아가던 기계음 소리는 분명 공포스러웠지만 수술 내내 간호사와 재미있는 영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어주시던 센스 있는 의사샘 덕분에 모든 것이 예상보다 빨리 끝난 것 같았다.

어젯밤의 고통 이후 오늘은 그래도 살만해졌다.

볼따구가 좀 부었을 뿐 말도 다 하고 밥도 다 먹고, 어쨌든 뽑고 나니 후련하다.

사랑니가 회복되면 충치 치료도 해가며 평소에 치아 관리에 신경 좀 써야겠다.

병원은 모니모니해도 치과 병원이 가장 무서우니까 미리미리 신경 써서 될 수 있으면 안 가는 방향으로 노력해야한다.

생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참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생살을 뚫고 나와서 생으로 뽑아야 하는 사랑니를 비롯해서 생으로 헤어져야 하는 생이별까지.

무엇이든지 이미 썩을대로 썩어서 자리에서 이탈해 들썩거리는 것을 제거하는 것은 참 쉽다.

하지만 여전히 딴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도구와 힘을 이용해, 한 마디로 무력을 이용해 제거하는 것은 참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살면서 이런 일이 많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본다. 고통은 지나가는 거라지만. 그래도.

2월 초순에 아이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갈 것 같다.

오늘 여권을 신청했다.

사랑니 때문에 제주도도 못 가고 아쉬웠는데 방학이 끝날 무렵 아이들 덕분에 호사하게 생겼다.

붓기가 가라앉고 몸이 회복되는 대로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좀 활기차게 살아야겠다.

이제 제발 여기저기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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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1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위에 사랑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있네요. 흠.

깐따삐야 2006-01-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올라오면 상관 없는데 일단 이눔의 사랑니가 드러눕기 시작하면 진짜 고생인거죠. ㅜ.ㅜ
 

10살배기 외사촌으로부터 오늘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녀는 저녁을 먹던 도중 수저까지 놓으면서 미간을 찡그린 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언니, 남자들 앞에선 제발 그렇게 웃지 말고 그렇게 말하지도 마."

그녀가 태어나서 채 눈도 뜨지 못했을 무렵 나는 중학교 최고 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 앞에만 서면 왜 이리 작아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얼짱 포즈 개발에 나선 그녀는 얼마전 매직 스트레이트로 매끈하게 펴 준 머리카락을 요리조리 매만지며 디카로 찍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표정과 각도를 연습하고 있었다.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까 그 웃지 말라던 그 웃음을 쉴 새 없이 웃던 나는 그녀의 표정이 사정 없이 일그러짐에 따라 조용히 거실 구석으로 밀려나 차분히 프로그램 내용을 이해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나는 그 새를 못 참고 다시 집안이 떠나가라 웃어제껴 버렸고 그녀는 못 참겠다는 듯이 다가와 돼지털같은 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언니를 변신시켜 주겠다고 선포했다. 설마하니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도 아닐텐데 모포를 들고 와 내 목 주변에 두른 다음 그녀의 작업은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놀라운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예뻐 보이는지 나 자신보다 열살배기 꼬마가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니는 요기가 예쁘니까 요기를 드러내 줘야 하고 요 부분의 머리카락을 요렇게 올려주면 훨씬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아?"

"오옹... 구래구래."

"언니, 올해엔 좀 다이어트도 해라. 언제까지 나는 귀엽다, 귀엽다 하면서 개길건데?"

"헉......!" 

옆에 계시던 엄마는 혀를 끌끌 차시면서 주근깨만 몇 개 그리면 딱 못난이 인형일세, 라는 현실보다 살짝 과장된 비판을 하셨다. 사실 그 동안 나는 외모에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모든 것을 무난하게, 라는 기치 아래 정말 모든 것을 무난하게 사들이고 입고 달고 꾸미며 살았다. 그 흔한 귀도 안 뚫었다. 생살을 총으로 뚫어 구멍을 낸다니 느무느무 무서웠다. (이러면서 사랑니 수술은 어찌할 건지... 흐음.) 그런데 정말 큰일인 건 나는 나 자신을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 눈에 반하는 미인은 아닐지언정, 보면 볼수록 정드는 타입이라고 홀로 쓸쓸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품이라도 착하냐면? 오, 절대 아니다.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을만큼 까칠한 성격을 보면 오직 내면의 미를 가꾸기 위해 헌신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나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평소 아이들처럼 투명한 시선을 가진 존재도 드물다고 믿어왔던 나이기에 오늘의 충격적 언사는 심히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생긴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나의 웃음소리와 나의 말투가 어디가 어떻다고 그러는 걸까. 나는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남들이 웃는 것이 재미있고 나의 말투를 듣고서 남들이 나를 우습다고 말할 때 정말 즐겁다. 내 측근 중 하나는 그것을 가리켜 변태의 징후이자 망할 징조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우아한 것보다는 우악스런 모습이 어울리고 새침한 모습보다는 까부는 모습이 어울린다. 나는 원체 타고난 게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심어주지만 않는다면야 타고난 대로 열심히 본성을 발휘해 가며 사는 게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꼬마 숙녀의 표정에서 읽은 것은, 그것은 다름 아닌 혐. 오. 였다.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더 이상 개길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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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07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 죄송. 10살짜리 꼬마한테 꼼짝 못하는 님 떠올리니깐 웃음이. 요즘 초딩, 중딩들이 되려 화장품이니 향수니 파마니 온갖것에 대해서 모르는게 없어요.

깐따삐야 2006-01-07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것 같죠? 한 수 배워야 할까 봅니다. ㅎㅎ
 

공교롭게도 새해의 첫 번째 출근 도장을 내가 찍게 되었다. 이번주부터 영어 캠프가 시작되면서 근무조로 편성되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행정실에서는 케익과 촛불, 샴페인, 폭죽과 함께한 조촐한 시무식도 있었다. 작년, 아니 재작년 이맘 때엔 그 해의 마지막 근무자로 종무식에 참여했던 기억이 났다. 오늘 날짜로 주사님 한 분이 새로 오셨는데 그 분이 새로 오신 분인 줄도 모르고 뻘쭘하니 슬쩍 눈빛만 마주쳤다가 나중에 소개 받고 민망해서리 일부러 냐하핫, 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방학 이후로 너무 오래 은둔했나 보다. 

업무 처리로 학교에 나오신 몇몇 선생님들과 새해 인사를 교환하고 캠프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챙기고 배치고사 때문에 일부러 나를 보러 온 C와 함께 독해 문제를 풀었다. 방학인데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고 다시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C를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대개 여러가지로 안쓰럽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다들 나름대로 피곤하고 고달픈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원어민 샘은 캠프가 끝나면 곧 고향인 호주에 다녀올 예정이라면서 관사로 도착할 우편물들과 신문 때문에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 관사가 비어 있는 사실을 알면 우체국 직원들이 알아서 학교로 가져오니 걱정하지 말라고, 신문은 신문보급소에 전화 한 통 넣어주면 되니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켰지만 그는 여전히 안심을 못한 눈치였다. 지난번에는 인터넷 카드 결재에 대한 의심으로 일주일 넘게 나를 괴롭히더니만 이번엔 또 우편물이다. 예전에 있던 캐나다 출신의 원어민 샘과는 사뭇 다르다. 호주 사람들이 본래 의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한국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적어서 그만큼 믿지 못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나라에 오기 전에 인도에 가서 지갑을 조심하라는 주의사항과 같은 충고를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은 건지 아무튼 알 수가 없다. 나에게서 빌려간 물품들이나 내가 계산한 점심값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으면서 하여간 자기 것은 되게 챙긴다. 들고갈 사람도 물론 없겠지만 매일매일 오는 영자신문 쯤 누가 나 대신 보면 좀 어때.

출석부 정리도 하고 서류철도 정리하면서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없어서 학교가 평화롭고(?) 조용한 것만 빼면 말이다. 집에서는 입에 거미줄 치도록 침묵하고 들어앉아 있다가 이따금씩 노홍철마냥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식구들에게 허튼 소리나 하던 나인데, 오늘은 간만에 일상으로 복귀하여 공개 방송용 화법을 구사했다. 제주도엔 잘 다녀오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방학 잘 보내세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얘들아, 교실은 이 쪽이란다... 흐흐. 왠지 재미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란 사람이 이러한 일상에 대해 남몰래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나날의 시간, 그 시간이 주는 공백을 채워 줄 너무나 당연한 일상 같은 것 말이다. 방학 내내 너무 많이 놀다보면 갑자기 방학 숙제가 하고 싶고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것 같은 기분. 그러나 역시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오래 지쳐 있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띵가띵가 잠적하고 싶은 기분이 들겠지? 간사하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나란 인간.

오랜만에 각 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수고했더니 노곤하고나. 캠프 때문에 주말에 한 번 더 나가야 하는데 원어민 샘이 다음 번엔 또 뭘 가지고 칭얼거릴지. 자신이 남의 것을 안 가져가면 다른 사람도 안 가져갈 것이라고 믿어보면 안되나?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순박하고 정직한데 말야. 제발 너나 잘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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