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결혼 전 점검할 12가지 사항

 진짜 혼수준비는 예물이 아니라 '성숙도'

- 결혼전 점검할 12가지 사항


“이 사람과 정말 결혼을 해도 되는 걸까”
“결혼 후에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데 그래도 다른 건 괜찮으니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결정하고도 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잘 하는 건지, 해서 행복할 수 있을지, 상대를 믿을 수 있는지, 사람이 지금과 달라지면 어떻게 할지 등 결혼을 결정하기 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수없이 떠올랐다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고려해야 하고, 행복한 결혼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는 채 결혼했다가 결혼 뒤 상대방에게서 생각과는 다른 ‘현실적인 차이’를 발견하고, 결국 그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대구효성카톨릭대 제석봉 교수(사회복지학)가 소개하는 ‘결혼 전 점검해 볼 12가지 사항’은 결혼을 앞두거나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꼼꼼히 체크해볼 만하다. 이 점검 사항들은 가족과 부부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외국 심리학자들의 오랜 상담경험을 종합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될 만한 것을 뽑은 것이다.

제 교수는 “이 가운데서도 특히 결혼할 사람을 앞에 두고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상대방과 내가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지, 의견차이가 있을 때 조정할 능력이 있는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는지 등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하나. 그에게 어떤 결점이 있다면 결혼 후에도 고치지 않을 경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면 변하거나 상대방의 나쁜 점을 뜯어 고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 후 깨닫는 것은 ‘상대방이 변하길 기다리느니 내가 참고 말지’라는 것이다. 이십년 이상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변화하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 사랑에 빠지면 정말 눈이 멀고 콩깍지가 씌어버리는 나조차도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남자친구의 특징이 하나 있었다. 그건 그의 까다로운 입맛과 결벽증세였다. 빵도 안 먹고 떡도 안 먹고 매운 음식 싫어하고 길거리 음식 못 먹고 물수건이 아니라 물티슈가 나오는 식당에만 가야 하고 식당에서 제공되는 생수가 싫어서 늘 가방에 탄산수를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 결국 정결하고 좀 비싸다 싶은 식당에만 가게 되니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매번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온 음식에 대해선 완죤 환영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오로지 그가 편안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일념 아래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했다. 김밥도 안 먹었기 때문에 늘 완두콩을 넣은 고슬고슬한 밥에 제철에 나는 재료로 만든 밑반찬과 적당히 잘 익은 김치(총각김치나 깍두기같은 무 김치를 특히 좋아라 했음)를 준비해서 그를 만나러 가곤 했다. 물론 그 당시에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 그 자체였다. 하지만 때때로 제 손으로 계란 후라이 하나 부칠 줄 모르는 그와 하루 세 끼를 같이 먹어야 한다는 상상을 하면 무한정 피로가 몰려오곤 했다. 그와 헤어지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늘 "나의 까다로운 입맛만은 좀 이해해 달라"고 했으나 옆의 테이블에서 너를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으며 아무거나 참 잘도 먹어대는 다른 여자들의 남친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기나 했을까. 사람은 변하기 어렵고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 분식집에서 매운 떡볶이를 사먹고 나서 남친은 오후 내내 화장실을 들낙거리며 내 속을 태웠었다. 네가 바라는데로 했더니 이 꼴 좀 봐봐, 라는 식으로. 그뿐인가. 입맛 까다로운 남자는 다른 면에서도 다 까다롭다. 사람은 의식주 면에서는 둥글둥글 무난한 취향을 가진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남들 다 먹고 남들 다 입고 남들 다 사는 데 왜 자기만은 유독 다르다는 것인지. 각종 인간들이 두루두루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한 면만을 보며 고집을 부리는 사람과 과연 평생을 즐겁게 동고동락할 수 있을까? 그가 아무리 나를 사랑하고 내가 그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까탈스런 입맛과 취향, 나는 자신 없다.     

둘. 상대방이 나를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나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그리고 과연 위기에 처했을 때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지지를 해줄 것인가.

-  이건 그래도 남보다는 가깝다는 연인이나 부부 관계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 하지 않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고, 서로가 바라는 것이 있으면 힘닿는 데까지 해주려고 노력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결국 게으르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결혼하기엔 좀 곤란한 사람이라는 뜻 아닐까. 자느라고 전화도 잘 안 받고 춥고 쌀쌀한 날 바람도 막아주지 못하면서 "내 마음 알지?"라고 말하면 "웅~ 알고 말고~"라고 말할 여자가 몇이나 될까. 사랑과 믿음은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백 번을 말하는 것보다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것 한 두가지 정도는 자신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반드시 밀어 공세 및 물질 공세를 퍼붓지 않아도 사람은 직감으로 안다. 이 사람이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맹물인지 아니면 성실하게 나를 사랑하는 진국인지.      

 

셋. 서로에게 깊고 지속적인 우정이 가능한가.

- 요거요거 중요하다. 우정이란 매우 동등하고 공평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권력이 기울기 시작하여 마치 주종관계처럼 되어 버린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항상 공평할 수는 없어도 주고받는 것이 어느만치 공평한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상대방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이 비슷할 때, 오래오래 만나도 어느 한 쪽으로 꽈당하고 기울어지는 일이 없는 균형감이 있을 때, 나라면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넷.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는가.

-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 사람을 한 번 안아보고 싶다는 느낌은 저 사람과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느낌보다 때론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 매력이 전부는 아니다. 신체적인 매력은 별로여도 정말 이런저런 면에서 쿵짝이 잘 맞는 상대라면 얼마든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개인적인 내 취향은 작고 다부져 뵈는 남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그 놈 참 딴딴해 뵌다."라고 하시는. 그런데 이상과 현실은 역시 다르다. 나를 좋아했던 남자들은 대개 키가 크고 호리호리 하거나 낭창낭창하고 이쁘장하거나 그랬다. 어쩌면 요즘 트렌드에 들어맞는 사람들인데도 여전히 내 취향은 시대를 거슬러 딴딴한 떡두꺼비같은 남자다.      

 

다섯.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나 내 느낌이 마음에 드는가.
주눅이 들거나 남자다워야, 여자다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또는 환상을 깨기 싫어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결혼은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다. 생활이다.

- 솔직히 이 항목은 나와는 별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늘 너무 자연스러웠고, 좋으면 너무 들이대는 게 탈이면 탈이었지 주눅이 들거나 여자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더 어릴 적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쳐 본 적도 있고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선 청바지를 벗어던지고 고무줄 치마라도 입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심사숙고 해 본 적도 있지만 나답지 못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안감과 어색함은 나다운 것을 드러냄으로써 얻는 결과에 비해 언제나 마이너스였고 마음 상하는 후회만을 남겼다. 여자는 이래이래야 한다~ 면서 주욱 늘어놓는 남자치고 제대로 남자다운 남자를 못 봤다는 것도 한몫했다. 사람은 사람다운 게 가장 좋고 나는 나다운 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연기는 배우가 하면 되고 사람은 한 번 뿐인 인생을 솔직하고 부담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섯. 결혼에 거는 기대와 목표를 서로 비교해보았는가. 그리고 차이가 있다면 이를 받아들이거나 서로 충분히 이야기 해 타협을 보았는가.

- 같이 있고 싶어서, 밤 늦게 헤어지기 싫어서, 등등의 로맨틱한 이유를 넘어서 왜 결혼을 하려고 하는가, 왜 하필이면 결혼 상대가 바로 당신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혼자 사는 인생보다는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인생이 훨씬 더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혼자 먹는 밥도 맛있지만 같이 먹는 밥이 더 맛있을 것 같고 혼자 보는 영화도 재미있지만 같이 보는 영화가 더 재미있을 것 같고 혼자 잠드는 것보다는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더 따듯하고 든든할 것 같고 나에게 기쁜 소식이 있는데 옆에 누군가가 같이 기뻐해 주면 더욱 기쁠 것 같고 나에게 슬픈 일이 있을 때 누군가 함께 슬퍼해 준다면 왠지 안심이 되고 고마울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닮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서 함께 정성껏 키우는 것도 왠지 한 번 해보고 싶은 아름다운 일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해도 좋을만큼 믿음직한 사람, 나와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재미있게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넉넉한 사람, 그런 사람과 말이다.  



일곱. 상대방에게 헌신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나를 희생시킬 수 있는 조금의 여지가 있는가.

- 엄마는 늘 그러신다. 사람이 누군가가 미워지려고 할 때 잠깐 동안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수만 있다면 갈등도 줄고 싸움도 많이 없어질 거라고.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고. 나 자신도 그렇고 나와 사귀었던 사람들도 그렇고 앞으로 만날 사람도 그렇겠지만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상대방이 내가 필요할 때 나를 쓰고, 내가 상대방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결혼을 해서 함께 사는 의미가 그런 데 있지 않을까.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인 것보다는 둘인 것이 훨씬 낫기 때문에. 부족한 두 사람끼리 기대고 살면 외롭고 막막한 인생이 조금은 더 수월해질거라는 기대에서. 희생이라기보단 양보인 것 같다. 사랑해서 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끼리는.



여덟.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상대방은 받아들이는 자세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인가.

- 그 사람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 참 중요하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하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며 너무 많이 배려하다보니 늘상 예스맨인 사람이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배려라곤 없어서 늘상 벽창호같은 사람이나 모두 아니올시다이긴 마찬가지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받고 싶은 욕구만큼 다른 사람의 그것 또한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 나의 표현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또는 지나치게 논리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일단 한 번 이야기해 보자는 식으로 여유 있게 대화의 물고를 틀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과 평생 조곤조곤 큰 소리 내지 않고 정직하게 대화하면서 살고 싶다.

 

아홉. 나의 주장을 나의 입장에서 들어주는 일이 있는가

- 응, 나같아도 그럴 땐 정말 속상했겠다... 무뚝뚝한 남자친구가 울먹거리며 토해내는 나의 푸념을 오랜동안 듣다가 저 말을 해주었을 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나지 않았어도 큰 위안을 받았었다. 다들 자기 입장에 서서 자기 주장만 하는 상황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온 나에게 내가 너였어도 별 수 없었을 거라고,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겠냐며 토닥여주는 모습에 이 세상에 내 편에 서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시선으로 사물과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사려깊음. 서로서로 갖춰주면 고마운 항목이다. 

 

열. 취미가 비슷한가. 달라도 비판하지 않고 서로 존중해 주는가

- 취미가 비슷하면 차암 좋다. 예전 남친은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쓰는 나에게  "고등학교 때 이후로 소설은 끊었다"고 과감히 말하는 사람이었다. 담배도 술도 아닌 소설을 끊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이 사람, 안되겠네? 라는 예감을 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는 음악을 사랑했고 이런저런 악기를 다룰 줄 알았으며 활자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 특유의 순수함과 단순함을 지니고 있었기에 매력적인 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을 수혈받으며 나는 더욱 성장했고 새로운 세계에 눈떴으나 취미의 교집합이 없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차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나는 폴 메카트니가 존 레논보다 훨씬 더 훌륭한 뮤지션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그를 보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취미가 달라도 비판하지 않고 존중했으나 그러다보니 영 재미가 없었다. 취미는 기왕이면 비슷한 게 정말 좋다.      


열하나. 내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그리고 결혼으로 비롯돼 맺게 되는 여러 관계에 대해서 현실적인 안목으로 살펴보았는가.

- 엄마가 늘상 말씀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결혼은 너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둘만 달랑 떨어져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못된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든 집안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든 짐이 되든 얽혀 살게 되어 있다면서 집안에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성실하고 정직한 가정에서 바르게 자란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신다. 나도 좀더 어릴적엔 두 사람이 사랑하기만 하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리요, 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따듯하고 반듯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열둘. 각자 상대방에게 무조건 의존하지 않고 자기생각과 견해를 자유로이 표현하고 있는가.

- 연애를 하면서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네가 알아서 해."였다. 나는 의논하려고 다가서는데 상대는 귀찮다는 듯이 떠밀어 버린다. 특히 자칫하다간 나만 나쁜 뇬이 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저러한 반응을 보인다는 건 상당히 서운하고 힘빠지는 일이다. 다른 일에 있어서는 고집을 피우다가 체면이 깎일 것 같거나 불리한 상황에서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멀찌감치 빠져버리는 참을 수 없는 소심함. 고집이나 땡깡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마주했을 때 확실히 자기 견해를 표현하며 의논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제석봉 교수는 “이 점검사항들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면 결혼을 재고해봐야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결혼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의사소통과 갈등해소 능력과 방법을 배우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며 차이를 인정하는 성숙함과 서로의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결혼 전 혼수준비는 예물이 아니라 ‘각자의 성숙도’”라는 게 제 교수의 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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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일주 2일째 - 이라코뷰 호텔에서 유카타를 입고 한 컷

들르는 호텔마다 일본 전통 실내복이자 잠옷이기도 한 유카타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라코뷰 호텔에서 입었던 사진 속의 유카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야쿠자의 후예들처럼 보이는 우리의 든든한 남학생들과 함께 가셨던 선생님, 그리고 나. 잘 먹고 잘 쉰 덕분에 사랑니를 앓으며 살짝 갸름해졌던 턱선이 다시 빵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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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0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어울리세요. 잠옷 같아 보여요.

BRINY 2006-02-0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과 같이 여행 다녀오셨군요. 좋은 추억 되셨겠어요.

깐따삐야 2006-02-0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 고맙습니다. 워낙에 저의 생김생김이 서구적이고 세련된 데라곤 없다보니 한복이나 유카타 같은 동양의 전통 의상이 그런데로 어울리는듯 합니다. 아, 그리고 유카타는 잠옷이기도 하답니다. ^^

BRINY님 - 학생들 덕분에 호사를 했네요. 아이들 졸업 전에 다녀온 여행이라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조만간 일본 일주 기행문을 올려야겠습니다.
 

어제 우리집에 친구 K가 왔었다. 지난 가을 내가 다리를 다쳤을 때 출장 겸 문병 겸 우리집에 들렀던 이후론 처음이다. 일단 나도 참 좋아하는 친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애라고 우리 엄마가 좋아라 하시는 친구라서 만날 일이 있으면 꼭 집으로 부르게 된다. 엄마는 전복을 넣은 미역국을 끓이고 더덕을 무치고 잡채를 하고 만두를 빚고 수정과를 내오는 등 마치 큰 손님이라도 맞이하듯 친구를 대접했다. 딸의 친구는 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며 부지런을 떠는 엄마 덕분에 우리는 실컷 먹고 떠들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K는 엄마 말씀처럼 참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나한테는 친구라기보단 언니같고 선배같은 그런 존재인데 철 모르고 어벙벙했던 대학 새내기 시절, 내가 별 무리 없이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누릴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던 친구다. 짧게 올려 친 머리에 헐렁한 후드티와 물빠진 청바지를 즐겨입던 그녀는 보이시한 외모뿐만 아니라 남자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처음부터 선배들과 동기들의 눈에 띄어 당당히 과대표로 선출되었다. 학기초부터 대외적인 활동에 참여하느라 공사가 다망했던 그녀와 공사가 다망해질까 두려워 일과가 끝나면 거의 기숙사에만 틀어박혀 사는 나는 학과 내에서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같이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학교를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되었다. 고만고만한 범생으로 지내오다 처음으로 자유의 전당이라고 하는 캠퍼스에 발을 들인 나는 한 마디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모르며 갈팡질팡하는 미운 오리 새끼같았다. 그런 나를 알아보고 기꺼이 손을 내밀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물론 내 곁에는 K보다 더 친하게 지내게 된 단짝 E가 있었지만 E와 나는 여러모로 성향이 비슷해서 함께 있으면 편하고 다정하기는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K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대개 유쾌하면서도 역동적이었다. 당시의 나는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해가 지기 전에는 E와 함께 도란도란 차분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기울면 K와 함께 기숙사를 빠져나와 흥청망청 고성방가도 마지 않으며 젊음을 소진하고 또 소진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여리고 예민했던 나와는 달리 무감하고 털털했던 그녀는,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나를 충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진심을 다해 나를 아껴주었고 난 온갖 까탈스런 변덕으로 그녀를 지치게 하면서도 언제나 힘든 일이 있거나 버거운 일이 있으면 그녀에게 구원 요청을 하곤 했다. 나는 솔직한 것 빼고는 봐줄 것이라곤 없는 눈치 없고 철 없는 어리광쟁이였고 그녀는 언니처럼, 엄마처럼 그런 나를 얼렀다 혼냈다 하면서 나를 키웠다. 난 아직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는 그녀를 불러내 도서관 앞 벤치에서 찔찔 눈물을 흘렸던 내 모습을 확연히 기억한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고 안아주니 훌쩍거리던 것이 꺼억꺼억-으로 바뀌어 버렸던 것도 기억한다. 푼수였던 나는 지금으로서는 그저 의아할 뿐인 어떤 상대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아프고 괴로웠던 짝사랑을 접으면서 북받쳐 오르는 설움과 대학생활 전반에 대한 환멸과 우울로 이성을 잃은 채로 울고 또 울었다. 동갑내기인 친구 앞에서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울어보기는 K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K는 휴학을 했던 나보다 일 년 먼저 교단에 섰고 임용고시를 며칠 앞둔 날, 그녀는 자취방 주인 아주머니께 내 앞으로 찹쌀떡과 편지를 전하고 갔다. 내가 복학을 하고 그녀가 졸업반이었던 시절, 우리 사이엔 말도 안되는 오해가 있었고 복학을 해서 우왕좌왕하던 나나 시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그녀나 복잡하게 엉켜버린 오해의 실타래를 풀기엔 둘 다 너무 여유가 없었고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런 상태로 세월은 잘도 흘러주어 다행히 그녀는 순조롭게 사회에 첫발을 들였고 나는 4학년이 되어 행주처럼 흐물흐물 찌든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는 심리적인 거리보다 물리적인 거리가 우리를 떨어뜨려놓고 있었고 가끔 K를 그리워 하면서도 우리는 아마도 그냥 이렇게 멀어지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날 잊지 않고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드디어 내가 교단에 섰을 때 우리는 언제 우리가 멀어졌었냐는듯 반갑게 재회했다. 보이시하던 그녀는 공들여 다듬은 손톱에 치마 정장만을 고집할 정도로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해 있었고 토실토실한 볼안에 개구리처럼 팔뚝 핫도그를 잔뜩 씹어삼키고 있던 나도 갸름해진 턱선의 변화를 겪으며 어른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만나면 언제나 옛날처럼, 너만한 여자가 어딨겠냐고 서로를 부추겨주며 웃고 까불고 수다를 떨곤 한다. 딸부잣집의 둘째딸인 그녀와 달랑 남매 있는 집의 막내인 나는 무엇 하나 썩 닮은 점이 없지만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며 여전히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고 있다. 이번 방학에 청소년 단체 활동의 일환으로 중국에 다녀온 그녀는 그 느끼한 음식도 아무 불만 없이 다 먹고, 벽에 기대기만 하면 코 골며 잠들고, 가이드의 수완에 두리뭉실 얼결에 바가지를 쓰고도 허허 웃으며, 무디고 대범한 성격의 편리함을 몸소 보여주었다. 곧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는 나는 낯선 이국땅에서도 쉽게 먹고 쉽게 잠들고 손해를 보고도 웃어넘길 수 있는 그녀가 부럽기만 했다. 엄마가 늘상 K 좀 보고 배워라, 하시는 것도 이해가 간다.

우린 서로 다르지만 아이들에 대한 고민, 가르치는 일에 대한 고민,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 대개의 관심사들은 비슷했다. 같은 또래이고 같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겹치는 생각거리들이 많을 수 밖에.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작년보다는 올해 아마도 처음의 그 열정이 더욱 식어버릴 것이라는 점에 아쉽게 동감했고 아이들을 대할 때 잘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상처만 주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부분이 있더라는 점에 긍정했다. 욕심과 열정부터 앞지르는 무리수를 둘 때 어떠어떠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을 겪어왔기에 이젠 위험할 정도로 휘청대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 위험천만한 휘청거림에 대해서 둘 다 그리움을 표했다. 연애나 결혼 문제는 그랬다. 노처녀로는 늙지 말자고. 죽어도 시간이 안 나는 수억대 연봉의 전문직 여성도 아닌데 그냥 왠만하면 남들 갈 때 가자고. 한 때 하늘을 찌를듯한 오만으로 원기충천했던 우리는 그렇듯 세월과 쓸쓸히 타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요즘 쓸만한 남자 찾기가 왜 이렇게 힘든거냐며 또 다시 예전처럼 주제 파악 못하는 소리로 결론을 맺었다.

대학생활이란 인생의 한 페이지를 함께 넘겼던 우리는 이제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한창 살아가고 있다. 겉모습은 조금 변했지만 K나 나나 예전 모습의 일정 부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고 그 동안의 경험과 상처들 덕분에 새롭게 추가된 또 다른 모습도 지니고 있었다. K는 낙천적이고 씩씩하므로 의롭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그녀는 예전부터 어느 자리에 두어도 항상 능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였다. 남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 그녀를 부지런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각자 변해갈테지만 중요한 면에 있어서는 늘 한결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이로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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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2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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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6-02-0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드려요~
 

영화 '발레교습소'를 봤다. 2004년작인데 못 보고 지나간 영화였다. 2004년도에 난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졸업을 하고 발령을 받고 오전에는 출근을 하고 오후에는 퇴근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자주 감기에 걸렸고 가끔 몸살에 시달렸고 교감 선생님과 아이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던 한 해였다. 눈물 젖은 밥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 했던가. 경험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먹는 일은 참 힘들다. 머리는 띵하니 아프고 입술은 뜨겁게 부어오르고 목구멍은 평소보다 좁아진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 위해 밥을 밀어넣어야 한다. 무게감이 느껴질만큼 굵다란 눈물방울이 밥 속으로 뚝뚝 떨어지고 입술과 함께 부어오르는 콧 속으로 찌걱대는 콧물. 된장! 2004년에 난 가끔 그 짓을 했다. 싸나이 마인드를 지니고 사는 사람답게 우는 게 창피해서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겉으로 보기엔 발랄하고 씩씩했지만 내면의 삶은 신파 그 자체였다.

2004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대개 남자친구와 같이 보았을 것이고 남자친구는 미묘하게 감정의 결을 건드리는 영화를 함께 보길 원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건 나도 그랬다. 이 영화는 코메디도 아니고 액션도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서 제외당했다. 사실 나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고 있지만 말이다. 앞으로 나는 이런 영화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 나 흔들렸어. 그래, 나 눈물도 난다. 그래, 나 지금은 웃기 싫고 진지하고 싶거든. 그래도 뻘쭘하지 않을 사람. 그러나 오늘은 2004년도에 대한 이야기나 발레교습소란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청춘에 대해 끄적이고 싶었다. 내 주변의 청춘들. 아름답지만 가엾은 그대들. 그리고 이제 점점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진 채 아둥바둥 돈 좋아, 명예 좋아, 하면서 살고 있는 청춘 언저리의 아무개들.

친척 동생인 Y는 이번에 수능을 쳤다. 내가 학부생 때 부모들마저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그녀를 반 년 정도 가르쳤었다. 난 좀 이상한 게 그런 종류의 얼라들이 참 좋다. 마구 끌려버린다. 부모 말 드럽게 안 듣고 자기 세계가 너무 뚜렷해서 난 아무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아, 라는 식의 시니컬한 표정을 하고 있는 얼라들 말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본 Y는 재미있는 아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포청천 눈썹에 안경을 벗고 대충 보면 언뜻 신민아처럼 보이기도 하는 집안의 왕싸가지였던 그녀. 공부를 봐주러 가면 비스켓을 아삭아삭 씹으며 학교의 이상한 쌤들을 비판하고 그녀만큼이나 별나 보이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다가 고작 두 문제 풀고 오늘 공부는 그만~ 하고 외치던. 그리고는 "언니는 나중에 분명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말거야, 순진해 가지고는~" 이 따위 언사를 과감하게 내뱉던. 나는 그런 그녀가 귀여웠고 당차고 똑똑한만큼 제 앞가림은 하고 살테니 크게 걱정하지 마시라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그랬던 그녀도 대학 입시 앞에서는 예민해졌다. 수능 100일전에 불안하다는 메시지를 송신해왔던 그녀가 요즘은 제 방에 꽁꽁 틀어박혀 두문불출이란다. 그 소식을 듣고 난 또 우리나라가 싫어졌다. 정말 비호감이야. 귀여운 그녀를 우울하게 하다니. 썩을, 망할, 오 쉣!

(감정 자제하고 이어서 쓰자......)

얼마전에 만난 후배 W는 한 마디로 골때리는 녀석이었다. 복학을 했던 나와 첫대면을 한 녀석은 시력이 안좋은 건지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허옇게 야려보길 즐겼다. 저보다 백만스물두배는 잘난 현존 작가들의 작품을 싸그리 무시했으며 선배는 어떻게 그토록 뻔한 생각밖에 못하냐고 나의 걸출한 사고력을 단번에 짓밟곤 했다. 아무도 못 알아듣는 시를 써와가지고는 그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배들을 답답해하며 천재인 척 하는 것도 심히 못마땅했다. 후배 품귀 현상을 겪고 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서 어떻게든 승질을 참아보려 했으나 그다지 오래 참는 것에 익숙치 않은 나는 번번히 볼썽사납게 폭발하기 일쑤였고 녀석은 뭐든지 익숙해지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나의 지랄을 의연하게 패스, 하고 있었다. 참으로 짜증나는 것은 역시 변태스러운 나의 취향 탓에 매일 싸가지를 집에다 쑤셔박고 오는 녀석을 속으로 많이 귀여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유 있는 반항은 신선했고 손해를 보더라도 미움을 받더라도 할 말은 하고야 말겠다는 고집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밍숭맹숭해진 선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아무튼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이 맞는 건지 졸업하고나서 학부 시절의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뜸해지던 동안에도 녀석과는 용케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에 그 녀석을 만났다. 무사히 공근 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했던 W는 여드름이 많이 가라앉고 그 사이 키도 자란 것 같았다. 므하핫. 얼라들의 성장을 보는 기쁨이 이런 것인지. 나한테 선생티가 좔좔 흐른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선뜻 악수하자고 손을 내미는 녀석은 이제 더 이상 그까짓 얼라가 아니었다.

우리가 간 술집 이름은 '체 게바라'였다. 가게 유리창에는 깜찍한 엽서로 화한 체 게바라가 인물 자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고 둘 다 그저 그랬다고 말하며 함께 웃었다. W는 요즘 취업이 어려워서인지 이제 교수들도 학점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일이 줄어들었다면서 처음으로 4.0을 넘겼다고 말했다. 요즘은 다들 너무나 열심히 해서 그 학점으로도 장학금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방학 중에도 지인들을 모아 독서 클럽을 운영 중인데 마치 교수가 되어 지루한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것처럼 모임 때마다 매번 혼자서만 열을 내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W가 공들여 서평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듣는다. W가 묻는다. 아무개씨, 의견은 어떻습니까? 아무개 대답한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아무개에게 묻는다. 어떻게 읽으셨어요? 다른 아무개 대답한다. 어제 영어 학원 갔다 오느라 책을 못 읽었어요... 클클. 그래도 다들 모임에는 나온단다. 나 대신 누가 심각한 책 한 권을 열심히 읽어주고 요약, 정리, 서평까지 해주니 일단 출석해서 흡수할 건 흡수하자는 얘기다. 하도 사는 게 살벌하니 요즘 얼라들은 학부 때부터 참 겁나게 영악스럽다. 선배같은 사람 하나만 있어도 정말 재미날 거에요... 옹, 네가 드뎌 나란 사람이 내뿜는 독창적 에너지의 희소성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구나! 흐흐. 똑똑한 애들은 많아졌는데 너같은 미친놈들이 음써. 미친놈들이 있어줘야 대학이 대학스러운 건데.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마지막으로 건네고 온 충고는 앞으로를 대비해서 영어 공부를 좀 해두라는 것이었다. 또 선생 티 낸다고 할까봐 네눔이 좋아하는 레이먼드 카버 단편선을 원서로 읽어보고 싶지 않냐고 귀가 솔깃하게 꼬득였다. 시큰둥하고 자신없어 하던 표정에 잠시 뻐꾸기가 날았다. 어쨌거나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라. 그게 젤루 좋아. 대충 살고 있는 주제에 이런 시건방진 충고를 날리고 왔다. 옛날 같았음 나를 향해 지랄 마시라는 냉소를 날렸을 법한 녀석이 이런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선배밖에 없었다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뭐가 녀석의 오만을 꺾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부드러워진 W의 눈빛에 잠시 속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W와 연루된 모든 사회적 조건과 상황들에 대하여 쌍시옷을 뱉었다. 세상을 다 엎어버린 다음 물 말아 먹고 싶었다.

내숭의 여왕이었던 S가 이것저것 다 내놓아도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대학 다니던 동안 밥 얻어 먹고 옷 얻어 입고 차 얻어 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보다 더 학벌도 좋고 여러모로 조건 좋은 남자랑 새로 시작했다. 영문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부모가 돈을 쥐어주며 어학연수를 다녀오라고 해도 시큰둥한 채 풀XX 다이어트에만 매진하더니 농약을 뿌린 잡초처럼 누렇게 말라갔다. 남자들은 밥을 안 먹어 항상 기운이 없는 그녀의 창백함에 반하고 말없이 새초롬한 그녀의 신비주의에 뻑이 갔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림이나 해가며 사는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방은 사놓고 안 입는 옷들로 먼지 구덩이가 된지 오래다. S는 아마 결혼을 해서도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녀는 힘들이지 않고도 남자를 조종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그것만을 몸소 실천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재미있고 성격 화끈하기로 유명했던 H는 정체 불명의 한 남자와 속도위반을 내지르며 쥐하고 새만 불러다가 결혼식을 치뤘다. 선생님 앞에서 시험지를 박박 찢어버리며 한 승질하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가끔 노래방에 가면 나는 김현철이 되고 그녀는 이소라가 되어 그대안의 블루를 함께 부르곤 했다. 함께 있으면 즐겁지 않고 못 배길만큼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웃겨주던 밝고 착한 그녀였는데. 몇 년 전만해도 할머니로부터 꼭 부잣집 장남한테 시집 가란 소리를 들었다며 깔깔거리던 그녀가 어쨌든 부리나케 결혼을 했고 현재 임신 중이다. 겁나먼 인생, 누가 더 잘 살았다고 하는 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겠지만 아... 그래도 이 밤 왠지 심란한 건 어쩔 수 없다. 

얼마전에 anger management에 대한 글을 썼는데 요즘 나는 뭔가에 잔뜩 화가 나 있는 사람같다. 인생이 내가 예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주질 않는다.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게 막막하고 힘든건지. 주로 나같은 인간 유형들이 사서 고생하는 스탈이란 말인가. 그냥 생각 없이 남들 가는 방향대로 따라가줘야 하는걸까. 모순과 위선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세상 안에서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시류에 심신을 맡긴 채 평화롭게 살 수가 있는거냐고. 다들 생각이 있긴 있는데 그냥 대충 모른 척 하고 사는건가. 사람들 꿈은 여러갠데 왜 하나로 보일까. 왜 젊은 사람들은 하루 빨리 늙어버리지 않으면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걸까. 나란 사람, 뭔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 하에 손익을 따져 결정할 수 있을까. 왜 젊고 뜨겁고 물불을 가리지 않던 그들이 그렇게 김 빠진 맥주처럼 변해버리고, 누구보다 대접 받을  자격이 있고 성품이 훌륭한 그들이 고생을 자처하게 되는 것일까. 요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청춘의 시기가 다 해야, 실수로든 고의로든 뭔가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지긋지긋한 깨달음, 지나고 나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깨달음 하나가 삐죽이 얼굴을 내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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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2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함. 나도 그런 얼라들 좋아라하는데, 아무 것도, 목표의식도 없이, 그냥 하라는대로 공부만 하는 범생이(그때의 나)보다야 자기주체성있는 그런 얼라들. 자기가 원하는게 뭔지 확실하게 아는 얼라들. 홧팅.

깐따삐야 2006-01-23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자의식이 있는 인간덜은 고생을 바가지로 하는 시스템으로 점점 굳혀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구만 없지 고문인 셈이죠. 짱나요. 증말.

blowup 2006-01-24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싹수가 분명한 녀석들이 이쁘죠. 아주 오래 전 교생 실습을 나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 알아버렸어요. 내가 어떤 녀석들을 편애할지.

깐따삐야 2006-01-2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大공감이에요.
 

웨딩 싱어의 아담 샌들러와 잭 니콜슨이 주연으로 나왔던 '성질 죽이기(Anger Management)'란 영화가 있었다. 같이 보았던 사람과 계속 킬킬대며 재미있게 본 코믹 영화였다. 어리버리한 양과 교활한 늑대처럼 보이던 두 사람. 과연 사람의 분노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전문가와 프로그램이 있어 도움을 받는다면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고 삶도 더 행복해질까?

내 친구 H는 약 일 년 동안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좀 고집이 있긴 해도 온순하고 너그러운데다 겉으로 보기에 보통 사람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에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놀랐다. 요즘 아무리 정신과 진료가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일 년 동안이나 꾸준히 정신과에 드나들었다는 건 흔히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 속으로 삭이던 것이 한 번에 폭발하면 주체할 수 없기에, 한 마디로 꼭지가 홱 돌아가 버리기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진료 과정은 어떠했냐는 나의 질문에 H는  "의사도 삽질하고 앉았드라구."라고 말하며 싱겁게 웃어버렸다. H는 원체 그런 사람이긴 하다. 분명히 화를 낼 상황인데도 꿈쩍도 않고 침묵한다. 화를 낼 줄 몰라서라기 보다는 화를 내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판단이 앞서는 것이다. 사실 대개의 사람들도 알고 있다. 화를 내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그래도 소용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단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순간 몰려드는 분노의 에너지로 온몸이 뜨끈뜨끈해지다 보면 소리를 지르거나 거친 몸짓부터 앞서기 마련이다. 그런데 H는 "이미 머리가 돌처럼 굳어버린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아."라고 체념한 다음 어떠한 반격도 가하지 않는다. 남들은 그런 그에게 의젓하고 참을성이 많다고, 흔들림 없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말할테지만 H는 혼자 외롭게 일 년 동안 정신과에 드나들며 의사가 삽질하는 소리에 의지했던 것이다. 어느 날 밤 모두가 잠든 사이 머리 꼭지가 홱 돌아버려서 말이다. 프로이드가 짚어낸 것처럼 내가 아는 그는 H란 사람 전체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걸까. 아무튼 나는 H가 이런 고백을 해온 이후로 그의 입 밖으로 간간히 삐져 나오는 썅, 이란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고 귀가 찢어질만큼 사운드가 요란한 음악을 함께 들을 때면 H의 눈빛을 자세히 한 번 들여다보고 싶기도 했다. 너한테도 작은 구멍 쯤 하나 있으련만.

H와는 달리 나는 화가 나면 그 분노를 다 소진할 때까지 난리를 치는 타입이다. 작고 사소한 것 쯤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그와는 달리 나는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나를 열받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대충 넘어가질 못하는 성격이다. 그다지 대범하지 못하기에 나에게 그냥 지나쳐도 좋을 사소한 것이란 없다. 이 세상엔 왜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이 많은건지. 계획이 변경되어서 두 번 결재를 받아야 할 일이 생겨도 화가 나고 나는 열심히 수업하는데 아이들이 떠들고 있어도 화가 나고 된장찌개에 들어있는 두부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도 화가 나고 운동화끈의 남는 길이가 차이가 나도 화가 나고 뽑아든 번호표가 너무 뒷번호여도 화가 난다. 엄마는 이런 날 보시고 항상 "아직 수양이 덜 됐다"고 말씀하신다. 확실히 그렇다. 내 신경선은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짧은 건지 어떤 상황에서든 남들보다 더 빠르게 흥분하고 빠르게 분노하고 빠르게 식어버린다. 가끔 사람이라도 몇 잡을듯 방방 뛰며 난리를 치다가도 한 오 분 쯤 지나면 다시 생글거리며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는 나를 보면 나 스스로 봐도 미친 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된다. 스스로는 이런 자신을 가리켜 "뒤끝도 없고 얼마나 좋아" 억지로 합리화를 시켜보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은 편안히 배겨내질 못하는 것이다. 사랑니 진료 때문에 대학 병원에 드나들고 있는 요즘 치과 옆 복도에 있는 신경정신과 진료실만 보면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다 이러한 나름의 이유에서다. 너무 오래 참았다 한꺼번에 터뜨리는 H나 너무 참지를 못해서 인생 자체가 소방훈련 같은 나나 다들 문제성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항상 너무 많은 기대가 너무 많은 분노를 불러오는 지도 모른다. 사람들에 대해 일찌감치 체념 모드로 전환한 채 일견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H도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아무런 기대가 없다면 무엇인가가 속에서 곪아터지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른의 언어만 사용하고 있을 뿐 마치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거슬리는 것을 보았을 때 흥분하고 분노하는 나도 나를 알아 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간단히 너와 나는 다르다, 고 넘겨 버리는 사람에 비해 우리는 지나치리만큼 인간들에게 의지하고 매달리고 있다. 화를 통제하기보다는 대개의 상황에서 화 자체가 어느 수위 이상까지 넘치지 않는 사람들은 그만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셈이다. 사실 H나 나보다 훨씬 더 강하고 고집 있는 사람들일지도.

새해에 들어와서도 나는 몇 차례나 화를 냈다. 화를 내놓고 별것도 아닌데 그냥 가볍게 농담으로 넘길걸 하는 후회를 여러번 했다. 가끔 그럴 때도 있는데 컨디션이 안좋거나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곧잘 흥분하곤 한다. 케릭터 중에 얼굴이 주전자인 깡통로봇이 있다. 나는 그 로봇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 입구로 김을 뿡뿡 뿜어가며 자기 표현을 한다. 나는 곧 주전자다. 흐흐. 어쨌든 올해는 새로운 계획 하나를 세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내지 않을 것. 아이들에게도 엄격한 모습을 보이되 절대 먼저 흥분하지 말 것. 화를 내서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최고의 해결사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과연 잘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몸 속에서 마그네슘이 빠져 나가는 스트레스로 또 다시 병원에 드나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웃는 얼굴이 가장 예쁘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부족하고 다들 조금씩 힘들고 다들 조금씩 바쁘다.  

어이, 거기. 정말 정신과 진료 받고 싶지 않음 잘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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