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비슷한 취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관해서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 역시 같은 뜻입니다. 제가 읽어본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리스트입니다. 한 번 더 강조. 제가 읽어본 것들입니다. 양서를 소개하는 것도 부족한 시간에 굳이 이런 리스트를 작성하는 건, 나만의 '비추' 목록도 몇몇 분에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일은 "난 이 책들이 좋다" 라는 제목으로 추천 리스트 역시 올릴 예정입니다. 혹시 열린책들 관계자 분들이 보시면 열 받지 마시라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순서는 열린책들 시리즈 번호를 그대로 썼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9. 막심 고리키, <어머니>

 

 

 

 이거, 교재다. 소설 아니다. 특정 운동을 위한 좋은 입문서일지언정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 하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회의하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책. 오직 하나, 혁명에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작정한 철인같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행위만 구경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계몽주의의 대표 작품.

 

 

 

 

 

 

 

 

 

17. 조지 오웰, <1984년>

 

 이미 화석화된 옛 시절의 유물. 기본적으로 조지 오웰이란 작자의 개념이 매우 맘에 들지 않는다. 정치를 하지 왜 소설을 썼어? 나 한테 욕 먹으려고?

 

 

 

 

 

 

 

 

 

 

 

 

18.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이것도 옛 시절의 유물이자 아무리 열씨이이미 읽어봐도 도무지 문학의 분류에는 넣지 못하겠던데, 하여간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런 시절의 추억이 듬뿍 담긴 책이라 서슴지 않고 읽어봤는데, 이건 영어를 모국어 비슷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림. 당신이 스무살을 넘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책 읽은 다음엔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함.

 

 

 

 

 

 

 

 

 

 

 

24. 25. 어윈 쇼, <젊은 사자들>

 

 그냥 통속 전쟁소설. 한 여자를 매개로 하여 극적인 인연이 생긴 세 남자들이 소위 젊은 사자들인데, 두 명은 미국군, 하나는 독일군. 공통점은 대단히 용맹한 군인들이라는 거. 이들이 책 말미에 서로 조우하여 총질을 해대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400쪽이 넘는 책 두 권을 다 읽어야 이들이 어떻게 된다는 걸 알게 되는데, 전쟁영화의 결말하고 아주 똑같다. 뭐 시간 죽이기엔.....

 

 

 

 

 

 

 

 

 

60. 존 스타인벡, <의심스러운 싸움>

 

 어차피 스타인벡을 읽으려면 <분노의 포도>를 피할 수 없다. 만일 <분노...>를 읽었다면 이 책은 전혀 고려해볼 필요가 없고, 읽지 않았다면 나중에 <분노...>를 읽을 때, 아 그때 <의심스러운....>을 읽은 것이 시간과 돈 낭비였단 걸 확실하게 인식할 것이다.

 

 

 

 

 

 

 

 

 

 

 

63. 대실 해밋, <몰타의 매>

 

 

 후대 미국문학에 큰 영향을 준 추리소설. '샘 스페이드'란 이름의 탐정이 소설의 주인공인데 현대 미국 소설책에서 스페이드를 아주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게 유명한 작품. 문제는 처음 나온지 벌써 100년 가까운 추리소설을 지금 읽으면서 재미나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 그게 비록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 가운데 하나라도 말이지.

 

 

 

 

 

 

 

 

 

64.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끼, <마야꼬프스끼 선집>

 

 난 번역한 시는 읽지 않는다! 근데 이 책이 시집인 줄 모르고 샀다. 돈이 아까워 다 읽기는 했는데 도무지 건질 만한 시가 많지 않다. 석영중 선생의 번역이 아까운 건 알지만 그래도 어쩌랴, 번역한 시하고는 어떻게 해도 친해지지 않는 걸.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이 책 하나 가지고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렇게 훌륭한 텍스트를 어째 이따위로 만들어 팔 수 있는가. 더구나 Mr, Know 시리즈에 이은 중판임에도 불구하고. 번역한 홍성광은 또 뭐하는 인간인가. 자기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인데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거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있을까. 교정, 교열을 대한민국의 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외국인이 했다는 데 만원 건다. 이렇게 책 만들 바에 차라리 출판사 문 닫는 게 훨씬 양심적이다.

 

 

 

 

 

 

 

 

 

70. 71. 72. 제임스 존스, <지상에서 영원으로>

 

 

 시간을 죽일 목적 딱 한 가지면 뭐 좋을 수도 있겠다. 미 육군에 헌정한 책. 따라서 무수한 마초들의 울뚝불뚝한 근육 구경은 실컷 할 수 있다. 읽어보니 이미 용도폐기된 남성성에 대한 옛 시대적 찬가 이상이 아니다. 흑백 영화, 몽고메리 크리프트와 프랭크 시나트라가 열연하는 흑백 영화를 보시는 것이 훨씬 좋을 듯.

 

 

 

 

 

 

 

 

 

 

 

79. 알렉산드르 세르게이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

 

 운문소설? 그런 것도 있어? 소설은 산문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행위가 아니었나? 혹시 모르겠다. 그리스 시대부터 유구한 서사시의 전통을 자랑하는 서양에선 그게 가능한지. 근데 그걸 번역하면,아냐, 아냐. 다른 사람은 감격할지 몰라도 나한텐 영 아냐, 아냐. 이건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냐. 그냥 오페라 대본이야.

 

 

 

 

 

 

 

 

 

 

 

84.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너무 지독한 사소설, 이라고 읽었다. 근데 읽어본지 하도 오래라 의견에 자신이 없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건, 그때 지독할 정도의 사소설이라고 머리 속에 확 박혀, 무지하게 오랜 세월 뛰어난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를 읽지 않게 했다는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102. 아서 코난 도일, <바스커빌 가의 개>

 

 

 소년 시절의 추억은 건드리지 말고 그냥 내비두는 게 좋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했다. 1970년 쯤 소년중앙을 통해 처음 읽어본 코난 도일, 그 위명에 혹해서, 물론 소년시절처럼 극적인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홈스의 환상적인 추리가 끝내주겠지, 싶었는데 똥 밟았다. 영국 드라마 <셜록>이 훨씬 재미있으니 그리 아시라. 역시 당신이 20세 이상이면 절대 비추.

 

 

 

 

 

 

 

 

 

136. 137. 138. 139. 140. 141. 앙투안 갈랑, <천일 야화>

 

 여섯권의 <천일 야화>를 읽어보고 남은 하나는, 알라딘이 중국 북서부 지방의 회교도라서 청나라 식 변발을 하고 있었다는 거. 영국인 리처드 버턴 판은 어떤지 몰라도 앙투안 갈랑의 책은 차암 재미 없더라. 근데 그거 아셔? 셰헤라자데가 밤에 미친 왕한테 이야기를 해주고 둘이 드디어 침대에 들어 찐한 애정을 나눌 때, 침대 옆에서 셰헤라자데의 친동생 두냐자데가 광경을 빤히 바라보면서 침을 꼴깍 넘기곤 했다는 거.

 

 

 

 

 

 

 

 

 

148. 149. 150. 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놀라울 정도의 인종차별적인 작품이 어떻게 아직도 읽히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지나간 시절의 지나간 소설가에 의한 화석이라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거 참. 그리고, 세상에나 스칼렛 오하라가 미인이 아니라니! 그것도 책의 제일 앞에 스칼렛 오하라더러 미인은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할 거냐고. 전형적인 대중소설. 대중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인종차별적 소설이라 이건 마땅히 도서관 지하창고에 짱박혀 있어야만 한다.

 

 

 

 

 

 

 

 

 

152.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예술을 위한 예술, 이란 관점을 빼면 하나도 남지 않는 소설. 영화나 만화 기타 매체에 의하여 과도하게 미화, 찬양된 작품. 프리즘을 통과한 파우스트가 바로 도리언 그레이.

 

 

 

 

 

 

 

 

 

 

 

 

 

159. 사드, <미덕의 불운>

 

 

 솔직히 말하자면 사드란 이름에 혹해서 읽었다가 망했다. 뭐 이런 작자가 다 있어. 머리통 속에 딱 하나, 가학성애 말고는 아무것도 들지 않아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다행. <미덕...>을 읽어 사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 그의 다른 작품 <소돔...>을 아예 제쳐놓을 수 있었으니.

 

 

 

 

 

 

 

 

 

 

17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네프, <루진>

 

 

 루진이란 이름의 잘 생긴 남자가 왜 사브르를 높이 처들고 파리 꼬뮌 한 가운데 있게 된거야? 결정적으로 너무 작위적인 설정 하나 가지고 이 리스트에 오름. 물론 <악령>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뚜르게네프를 좀 비아냥 거린 것에도 영향을 받았음을, 흠, 숨기지 않겠음.

 

 

 

 

 

 

 

 

 

 

 

212.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울프는 "이 책들이 좋다"에도 리스트가 한 권 올라갈 거고 "이 책들이 싫다!"에도 하나를 올렸다. 이 책은 도무지 정이 안 가는데 물론 이건 내가 소설을 읽는 교양이 일천하기 때문이리라. 하여간 나하고 맞지 않는 책. 세상의 모든 소설가는 나 하나를 위해 소설을 쓰다가 죽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싫으면 그건 이유가 있건 없건 간에 적어도 나한테는 진리다. 아냐?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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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8-3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몇몇 작품 빼고는 대체적으로 공감합니다. 읽다가 정말 포기하거나 전혀 손이 안 가거나 읽고 나서 욕 바가지로 한 작품이 저도 저 리스트 가운데 많군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제 심금을 울리는 명작 중 하나인데, 열린책들 버전 교정교열은 어떤지 궁금해서라도 서점 가서 한 번 펼쳐봐야겠습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영화보고 나서 원작이 궁금해져서 원작도 읽어볼까 싶었는데 관둬야겠습니다. 무려 거기다 상중하 3권으로 나왔지요? 워매..... -_-

Falstaff 2017-08-31 10:20   좋아요 1 | URL
ㅎㅎ 전 어느 책들이 잠자냥님 하고 제 의견이 다른지 안답니다. ^^
그리고요,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정말 읽지 마세요. 영화가 원작보다 좋은 몇 안 되는 진기한 소설이예요. ㅋㅋㅋ 그리고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넘 잘 생겼잖아요!
 

 

20172/4분기 읽은 책 중에서 ① 재미있게 읽은 것, ② 감명깊게 읽은 책, ③ 재미있지 않았고 감명깊게 읽지도 않았지만 다 읽고나서 뭔지 하여간 뿌듯하게 만족감을 준 책, ④ 읽은 거 하나 가지고 어디가서 폼 잡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물론 아직 퇴근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나 오늘 밥값은 다 해서 노닥거리는 겁지요.

 순서는 책읽은 날짜 순입니다.

 

 

 

1. 스콧 핏제럴드, <밤은 부드러워>

 

 대단히 재미있는 텍스트. 그러나 최악의 번역. 페이지에 비문이나 이상한 단어 하나 이상 나오지 않으면 섭섭해지는 신묘한 경지에 이른 책. 하지만 핏제럴드가 마지막 숨을 모아 스스로의 절망적 인생을 뒤돌아본 역작. 알콜 의존으로 빈곤 속에서 생을 마감하며 그가 마지막 남긴 말. 밤은 부드러웠어. 하지만 읽어보실 분은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함. 번역이 워낙 개판 무인지경이다.

 

 

 

 

 


 

 

 

 2.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광신자 베르나노스가 이런 소설도 쓸 줄은 미쳐 몰랐다.

 일상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만든 조합이 이렇게나 아름다울지는 몰랐다. 인생과 선의 삶에 대한 꾸밈없는 이야기. (천주교를 포함한) 모든 기독교, 라고 하면 일단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나도 참 좋게 읽은 책. 유물론자들도 읽어두면 인생에 도움이 될 듯.

 

 

 

 

 

 

 

 

 

 

 

 3. 안나 제거스, <제 7의 십자가>

 

 이미 죽었거나 생존해 있는 모든 독일의 반 파시스트 운동가들에게 헌정한 책. 히틀러 치하의 살벌무지한 공포 아래서 전체주의에 반대해 이미 수용소에 갇힌 반 파시스트들의 탈출기. 일곱명이 탈출하자 십자가 일곱개를 만들어 며칠 안에 다 잡아들여 십자가에 묶은 다음 처형하겠다는 수용소장의 결심이 과연 이루어질까. 도시로 잡입한 이들에게 옛 동지들은 그들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며 새로운 도피처를 알선해주었을까?

 

 

 

 


 

 

 

 4.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재능>

 

 나보코프 예술의 발원지인 러시아에 대한 진지한 송가. 이국땅에 망명한 러시아 사람들의 좌절과 고국의 모든 것에 관한 진한 회한과 추억,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비판. 나로 하여금 러시아 언어로 쓴 나보코프는 읽지 않겠다는 선입견을 깨 준 작품.

 

 

 

 

 

 

 

 

 

 

 

 5. 조르조 바사니, <금테 안경>

 

 우라질 문학동네가 총 여섯 편의 작품 가운데 두번째 것만 똑 따와서 단행본 한 권을 만들었다. 단편소설 하나로 책 한권을 만드는 신출귀몰한 문학동네의 편집기술에 의해 나는 모든 인류에게 이 책을 읽기 위해 냅다 도서관으로 달려가시라 권한다. 믿었던 무솔리니 새끼가 히틀러하고 한 편을 먹는 바람에 졸지에 범 사회적으로 찐따가 된 한 인간에 관한 소고. 이렇게 얘기하니 별 거 없겠으나 천만에, 짧은 단편 하나로 이리 심금을 울리다니. 라면은 직접 끓여 먹어봐야 맛을 알고, 책을 읽어봐야 맛을 안다. 명품 단편. 그러나 절대 사지 말고 도서관으로 달려가시라. 뭐? '경장편'? 하여간 말은 잘 만든다. 하긴 미국에선 여섯 권으로 잘라 팔기도 하더라.

 

 

 


 

 

 

 6. 이노우에 야스시, <둔황>

 

 나만의 명작. 당신에겐 콕 집어서 권하지 않음. 오랜 시절 내 로망이었던 실크로드의 한 걸음 걸음을 눈 앞에 삼삼하게 만들어준 책.

 

 

 

 

 

 

 

 

 

 


 

 7. 에드워드 올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부부간의 소외, 고독, 불통, 가학, 그리고 권력.  단 하나 남은 소통의 가능성을 고통스럽게 탐구하다가 절망하는 가족을 한 걸음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위.

 

 이거, 정말 대박!

 

 

 

 

 

 

 

 

 

 



 8. 크리스타 볼프, <나누어진 하늘>

 

 사랑을 하여 부부가 되기로 약속을 했으나 박사 남편 예정자는 서쪽 독일로 떠나가고 아내 예정자는 동쪽 하늘을 버릴 마음이 없는 상태. 거기다가 전쟁 시절의 천형을 짊어진 아버지. 체제는 부부,연인 간에도 하늘을 쪼개버리고 이들은 결합의 희망 없이 그저 나누어진 하늘을 바라보는데, 문제는 한때 한국 괴테 학회장이었던 전영애의 번역. 좋은 책이지만 선뜻 권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9. 오에 겐자부로, <개인적인 체험>

 

 오랜 진통 끝에 아내가 사내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의 두개골에 이상이 생겨 뇌의 많은 부분이 두개골이 벌어진 틈으로 흘러나왔다는 진단을 받는다면? 그리하여 아무 처치를 하지 않으면 조만간에 짧은 인생을 끝내게 될 것이며,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애 전체를 지적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면? 이제 갓 세상에 나왔으나 바로 그 아이를 위해 지적 장애란 길고 긴 고통을 주는 것보다 일찍 생을 마감시키는 것이 아이를 위해 좋은 일 아닐까? 물론 나를 위해서도. 오에 겐자부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심정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나오는데 그게 다가 아니다. 또 있다. 재미있는 뭔가가.

 

 

 


 

 10. 보흐밀 흐라발, <영국 왕을 모셨지>

 

 자유국가로 도망치지 않고 프라하에 눌러앉아 깡다구 있게 소설을 써온 작가 흐라발의 재미난 소설. 인생의 유일한 목표를 백만장자가 되는 것으로 정한 열 다섯 먹은 소년이 중소도시를 거쳐 프라하의 거대 호텔 사장님이 되는 과정. 내가 이래뵈도 한 때 영국왕을 모신 몸이야. 웨이터 보조를 할 때 선임 웨이터의 폼잡는 말에 심취하여 나중에 백만장자가 되고나서는 '귀한 인간'이 되고자 엉뚱한 해프닝을 벌일 수밖에 없던 키 작은 돈 키호떼. 진짜 재밌다.

 

 

 

 


 

 

 11. 막스 프리시, <몬타우크>

 

 독일의 염병할 47그룹과 뜻을 같이 한 프리시의 단편. 이 책을 읽고 그의 책을 검색해 하나를 선택, 보관함이고 지랄이고 없이 걍 즉시구매했다. 내내 쓸쓸한 풍경의 해변 몬타우크가 머리 속에 삼삼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재미난 줄거리 기대했다간 헛물 켜는 대표적인 작품

 

 

 

 

 

 

 

 

 



 12. 페터 바이스, <저항의 미학>

 내 인내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측정할 수 있는 매우 정확한 계측기. 읽어내기는 쉽지 않으나 다 읽으면 책 속에서 벌어지는 미학의 향연과 여태 몰랐던 현대사의 숨겨진 놀라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참 어렵게 읽어서 다신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지금 새삼스레 이 책에 관해 쓰려니 그 많은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휙 화면처럼 지나간다. 진짜다. 바이스가 묘사한 예술품들과 독일(과 친독 주변국)에서 벌어진 파시스트들의 야만적 행위들이. 이런 걸 명작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기억하시기를. 처음에 읽을 때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거.

 

 

 


 

 

 

 13.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내게 딱 맞는 단편소설. 역시 돈벌레 문학동네에서 단편소설 하나 딸랑 싣고 책을 만드는 야만행위를 저질렀다. 읽어보실 분은 절대 사지 마시고 도서관을 이용하실 것. 경제논리에 입각해 이렇게 양심없이 만든 책은 안 사면 안 만들거나 못 만든다. 두권의 흐라발을 읽었는데 둘 다 마음에 딱 들었다. 책을 압착하는 직업을 35년을 보내며 어느덧 자신이 압착한 책을 보면서 근면한 지식인이 된 우리의 주인공 한타. 인류의 지성은 무섭게 변하는 세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4. 존 케네디 툴, <바보들의 결탁>

 

 거구 뚱보. 끝없는 식탐에 남의 사정은 결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기주의자에다가 사회 부적응자. 대학원 졸업 학력에 아직도 홀엄마한테 빌붙어 사는 룸펜 인텔리겐챠. 하는 일마다 주변 사람을 극도로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구제불능의 루저, 이그네시어스. 그러나 생은 지상 최고의 루저에게 살아야 한다고, 살아내야 한다고 애가 타게 호소하지만 결국 작가 존 케네디 툴은 이그네이셔스와 같은 나이 서른 두 살에 자살하고 만다. 코메디 소설. 코메디를 읽으며 목이 컥컥 메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한 책.

 

 

 


 

 

 15. 찰스 부코스키, <호밀빵 햄 샌드위치>

 

 독일 이민자의 아들이 부모한테 얻어 터지면서 세상의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의 성장소설. 이제 다 자라 성인이 될지언정, 식당에서 접시를 닦더라도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할 수 있다면 허름한 건물의 다락방에서라도 자유스럽게 두드릴 타자기 한 대 사서 인생을 꾸리고 싶다는 진정한 자유인의 자유선언. 동네 깡패, 그러나 맘 좋아서 동네 꼬마들한텐 절대 손 안대는 착한 형 이야기.

 

 

 

 

 

 

 


 

 16. 에니타 부르크너, <호텔 뒤락>

 

 나 이런 소설 정말 좋아한다. 스위스의 숱한 호수 가운데 하나. 그 옆에 붙은 휴양 호텔이 있어 이름을 '뒤락'이라고 한다. 때는 휴가기가 거의 끝나가는 늦여름 또는 가을. 몇 안 남은 객실 손님 사이의 탐색과 관계. 쉼없는 눈치보기와 각자의 삶과 애로. 그것들이 얼키고 설키는 장면들.

 

 

 

 

 

 

 

 

 


 17. 오르한 파묵, <하얀 성>

 

 왜 나는 나지? 누구나 한 번 쯤, 아니, 한 시절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고민. 이게 세계적인 공통점인줄 처음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심한 건 시간.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는 또다른 나가 되어가는 것을 서서히 느끼다가 드디어 내가 또다른 내가 되고야 마는 이야기.

 

 

 

 

 

 

 

 

 

 

18.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칠레 현대사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 여기서 가볍다라고 하는 건 다른 책에 비하여 그렇다는 뜻이지 결코 이야기 자체가 경미하다는 뜻 아님. 노벨문학상의 계관을 쓴 거구의 노 시인과 시인 전담 우편배달부 사이에 계급과 빈부를 떠난 우정의 따뜻한 시선. 누구나 읽을 만한 아름다운 소설.

 

 

 

 

 

 

 

 

 

 

19.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틴 아메리카의 전형적인 환상소설. 요리를 주제로 한 카르사 집안의 막내딸 티타의 이야기. 티타가 만든 요리에 티타의 어떤 성분이 포함되느냐에 따라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온갖 현상을 직접 겪게 되는데, 사랑과 허튼 약속과 집안의 말도 안 되는 전통과, 하여간 이런 것들이 와장창 섞여 한 편의 재미나고 흥미있고 생소한 작품을 하나 만들었다.

 

 

 

 

 

 

 

 

20. 움베르토 에코, <바우돌리노>

 

 세상에서 가장 선의로 똘똘 뭉친 거짓말장이 이야기. 그가 만들어낸 거짓말에 의해 역사는 바뀌고 전쟁이 끝나며 한 집단은 인도의 동쪽에 있다고 하는 기독교도를 찾아 멀고 험한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온갖 황당하고 신기한 경험을 하는데, 이거 뭐, 그 얘기가 진짜야 구라야? 진짜면 어떻고 구라면 어떠랴. 그에 의하여 인간사 선한 기운이 충만하게 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안 그랴?

 

 

 

 

 

 


 

 

 21. 마거릿 애트우드, <눈먼 암살자>

 

 진짜 재미난 책. 주인공 노파 아이리스의 친동생 로라가 수십년 전 아이리스의 자동차를 몰고 전속력으로 달려 낭떠러지 아래로 자유낙하한다. 그래서? 죽는 거지 뭐. 근데 로라가 죽기 전에 소설 한 권을 써서 언니한테 남겨주어 언니가 사후 출간을 했고, 그 책 제목이 바로, <눈먼 암살자>. 시절이 1910년대 부터 1990년대 까지니까 여성들이 남성에 의해 심한 차별을 받았다. 근데 역시 세월이. 이제 어느덧 1990년대. 아이리스는 다 늙어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전단지 뒷면, 호텔 메모지, 낡은 편지지에 볼펜으로 마지막 메모를 시작하여 아 썅, 모든 걸 홀랑 까발리는데!

 

 

 


 

 

 

 22. 강기원,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재미난 시집. 사랑과 섹스에 관한 재치가 철철 넘친다. 은하가 은하를 관통해? 남자는 하나의 은하. 그리고 여자 역시 하나의 다른 은하. 그럼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건, 남자가 여자를 관통하는 밤. 즉 삼삼한 섹스가 벌어지는 밤이란 말씀. 으때, 혹 하시지? 그럼 읽어보셔. 재미나다니까.

 

 

 

 

 

 

 

 

 

 23. 김희선, <무한의 책>

 

 깨는 책. 우주선이 상공 500미터 위에서 동동 떠 있고 그 속에서 어느 날 신이 강림하는데, 햐 이거, 옛 드라마 "V"에서처럼 파충류야. 근데 인간 만한 파충류가 아니라 거대 공룡, 티라노 사우루스 닮은 거. 그게 수천 수만, 수십만. 절대 다신교 아님. 수십만의 신이 사실 한 개체.

왜 파충류냐 하면, 천사는 날개가 달렸다는 데서 시작. 날개를 자유롭고 힘차게 움직이려면 가슴 근육이 무지막지하게 발달한 신체구조를 가져야 하는데, 현대인이 다이어트를 위하여 즐겨 포식하는 닭가슴살 비슷해야 날개를 다는 기본 요건이 되는 것. 거기다가 이젠 다들 아시다시피 새들의 원조가 파충류, 즉 공룡이 진화해서 새가 된 거니까, 이왕이면 공룡중에서 제일 폼나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천사들의 원조, 즉 신이 된 거다. 정말 재미난 상상력 아닌가? 글쎄 읽어봐야 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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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7-1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 안다하시니 마지막 <무한의 책>은 꼭 읽어봐야겠네요.^^

Falstaff 2017-07-12 20:31   좋아요 0 | URL
진심,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매우 색다른 작갑니다. ㅎㅎ

박균호 2017-07-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덕분에 좋은 책 몇 권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Falstaff 2017-07-12 20:33   좋아요 0 | URL
아이고, 말씀이 과하십니다. 백퍼 아마추어 독자가 글을 쓰면 을매나 맛이 있겠다고요. ㅠㅠ
제가 늘상 쓰는 말인데, 제 말을 믿고 읽으신 다음의 감동 여부는 ㅎㅎㅎ 책임지지 않습니다.
 

 

 

 6월 말일 까지 142 권의 책을 읽었다.

 한 마디로 과했다. 취미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제 취미가 생활을 지배하는 수준이다. 완전 주객전도. 주위에 이런 사람 흔하다. 통장 잔고 쌓이는 재미에 밤낮을 가리지않는 워크홀릭 증후군 환자들. 그리하여 수십억의 돈을 벌긴 했지만 결국 돈의 노예가 되고마는 인간. 책도 마찬가지? 줄창 책상에 앉아 책 읽느라 피둥피둥 살찌고, 동무들 만나는 것도 귀찮아하고, 사람과의 대화도 없어지고, 아무래도 모든 증상이 책의 노예가 되고 만 거 같아 고민이다. 좋게 생각하자면 늦게라도 깨달아 다행이긴 하다.

 술도 마찬가지. 어떻게 1년에 400 병 마시던 사람이 올핸 절반으로 줄여 딱 200 병만 마시겠느냐고. 석달은 잘 나갔는데 6월엔 30일 동안 32 병 마셔조졌다.


 9월 말까지 60 권의 책을 골랐다. 책값도 솔찮아 중고책 많이 샀다. 인터넷 동무님 몇 분께서 내신 책을 주시어 그것도 네 권 포함했다. 그분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어느 책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60 권을 9월 말까지 읽으려고 한다. 그 가운데 세 권을 지난 6월에 읽었다. 읽는 속도를 매우 늦추려고 노력해보겠다. 쉬엄쉬엄. 취미에 목 매달면 그게 취미냐. 고생 바가지지. 가능하면 10월 중순까지 늦추고 싶다. 가능하면.


 사진 찍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었는데 이딴 거 하나도 제대로 찍을 줄 모른다. 보시라. 렌즈가 흔들린 듯.


 이번 독서의 특징은 한국 소설을 많이 포함시켰다는 거. 모두 15 권이 우리 작가가 쓴 것이고 13 권이 소설, 두 권이 기행문이다. 독서가 내 생활을 지배하기 전까진 여행도 무지 다녔는데, 참 격세지감이. 원본 출판 연도 순서대로 읽되 중간중간에 우리 작가의 열 다섯 권을 배치했다. 윗줄 오른편에서 왼쪽으로 읽어나갈 거다. 역시 그림보다는 표로 보는 것이 편하다.


도서명출판사저 역 자간행
1원잡극선을유문화사곽한경 외 지음, 김우석 홍영림 옮김1241
2무한의 책현대문학김희선2017
3라 셀레스티나을유문화사페르난도 데 로하스 | 안영옥1470
4로빈슨 크루소펭귄클래식다니엘 디포 | 남명성1719
5크랜포드현대문화센터엘리자베스 클레그헌 개스켈 | 심은경 1853
6나의 아름다운 정원한겨레출판심윤경2002
7데이지 밀러펭귄클래식헨리 제임스 | 최인자1878
8워싱턴 스퀘어을유문화사헨리 제임스 | 유명숙 1881
9소설, 여행이 되다 작품이 내게 찾아올 때글누림이시묵 외 9인2017
10소설, 여행이 되다 작가가 내게 찾아올 때글누림이시묵 외 9인2017
11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펭귄클래식레프 톨스토이 | 이기주 1889
12켈트의 여명펭귄클래식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서혜숙 1893
13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실천문학사김연2006
14모피를 입은 비너스펭귄클래식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 김재혁1901
15행인문학과지성사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숙자 옮김1907
16목요일이었던 남자펭귄클래식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 김성중1908
17신들은 목마르다뿌리와이파리아나톨 프랑스 지음, 김지혜 옮김1912
18아가씨와 철학자펭귄클래식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 박찬원1920
19만두 빚는 여자자음과 모음은미희2006
207인의 미치광이펭귄클래식로베르토 아를트 | 엄지영1929
21독을 품은 뱀펭귄클래식프랑수아 모리아크 | 최율리1932
22슬픈 카페의 노래열림원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1951
23메피스토펭귄클래식클라우스 만 | 오용록1956
24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실천문학사김우남2006
25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1책세상막스 프리쉬 지음, 이문기 옮김1964
26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2책세상막스 프리쉬 지음, 이문기 옮김1964
27제5도살장 (반양장)문학동네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1966
28행복한 그림자의 춤뿔(웅진)앨리스 먼로 | 곽명단1968
29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정이현2007
30팔코너 (반양장)문학동네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1977
31쇼샤다른우리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 정영문 1978
32십자가 위의 악마창비응구기 와 티옹오 지음, 정소영 옮김1980
33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이프앨리스 워커 | 구은숙1983
34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허연2008
35퀴어펭귄클래식윌리엄 S. 버로스 | 조동섭1985
36검의 대가열린책들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김수진1988
37검은 책 1민음사오르한 파묵 | 이난아 1990
38검은 책 2민음사오르한 파묵 | 이난아 1990
39가랑비 속의 외침푸른숲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1993
40투쟁 영역의 확장열린책들미셸 우엘벡 | 용경식1994
41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문학과지성사조영아2009
42곤두박질열린책들마이클 프레인 | 최용준 1999
43민음사뮈리엘 바르베리 | 홍서연 2000
44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민음사존 맥그리거 | 이수영 2002
45랩소디 인 베를린뿔(웅진)구효서2010
46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열린책들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2004
47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하열린책들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2004
48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뿔(웅진)스티그 라르손 | 임호경2006
49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2뿔(웅진)스티그 라르손 | 임호경2006
50제리민음사김혜나2010
51벌집을 발로 찬 소녀 1뿔(웅진)스티그 라르손 | 임호경2007
52벌집을 발로 찬 소녀 2뿔(웅진)스티그 라르손 | 임호경2007
53아담과 에블린민음사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2008
54나의 아름다운 마라톤현대문학이채원2012
55헛된 기다림민음사나딤 아슬람 | 한정아2008
56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민음사파트리크 라페르 | 이현희2010
57낙타의 뿔은행나무윤순례2013
58구원민음사자크 스트라우스 지음, 서창렬 옮김2011
59계단 위의 여자시공사베른하르트 슐링크 | 배수아2014
60건너간다창비이인휘 지음2017



 이번이야말로 읽다가 읽기 싫으면 팍, 책 덮고 좀 쉴 예정. 죽기살기로 하는 취미는 더이상 취미가 아니니까. 난 즐기고 싶다! 솔직히 특히 올해 들어선 즐기지 못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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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맛나게 먹고 심심해서 한 번 골라봤습니다.

역시 책의 순서는 의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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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순원 단편집 <학 / 잃어버린 사람들>

 

 황순원 선생한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선생의 작품 가운데 백미는 역시 단편이다. 어느 하나 뺄 수 있겠는가만 <학>을 제일 좋아한다. 국어 교사를 하다가 조선어 말살 정책이 시행되자 평양 인근 고향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오직 조선어로만 작품을 썼던 진짜 선비.

 

 

 

 

 

 

 

 

 

 

 

2. 최인훈, <태풍> 

 

 

 우리나라 최초의 가상 역사 소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이 작품이 없었으면 나오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온갖 형식의 소설을 다 실험해본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우화.

 

 

 

 

 

 

 

 

 

 

 

 3. 장용학, <원형의 전설>

 

 

 

 <원형의 전설>은 두 출판사에서 나오는데, 두산동아에서 찍은 건 원래 작품 속에 있는 모든 한자어를 다 한글로 바꾼 것. 그것도 좋지만 장용학은 뜻의 명확한 이해를 위해 조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글자를 한문으로 썼다. 지만지 책이 원본에 의거하여 만든 책. 나 같으면 이걸 고르는데 다른 분을 위해선 암만해도 두산동아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 책엔 <원형의 전설> 말고도 정말로 기념비적인 장용학의 단편들, <요한시집> <현대의 야> 같은 것들도 다 실려있어서. 한국전쟁은 작가들에게 실존에 관한 묵직한 숙제를 내주기도 했고 장용학은 처음부터 실존 문제에 집착, 아예 끝장을 봤다가 정말로 끝장이 난 문제적 작가. 난 이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4. 하근찬, <수난이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절묘하게 묘사해놓은 단편. 하근찬 선생에겐 좀 미안하지만 <수난이대>말고는 히트작이 별로 없는 것이 좀 아쉽다.

 

 

 

 

 

 

 

 

 

 

 5. 김승옥, <무진기행>

 

 

 

 

 <무진기행>도 무진기행이지만 이 책에 같이 실려있는 작품들, <생명연습> <서울, 1964년 겨울> 같은 눈부신 소품들이 즐비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여신의 멘스. <생명연습>에서 여고생이던가, 하여간 청춘학생이 하는 얘기. 우리나라 문학계에 제대로 뒤통수 한 방 때리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사내의 내밀한 감각. 덩치는 이따맣게 큰 인간이 말야.

 

 

 

 

 

 

 

6. 이청준, <소문의 벽>

 

 

 

이청준의 '전짓불의 공포'에 대한 각인이 찍혀있는 나는 전짓불을 빼고 그를 생각할 수 없다. 유년의 기억 속 한밤에 난데 없이 나를 향해 내쏘는 전짓불. 불을 비추는 저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생사를 가르는 대답을 해야하는 갈림길.


 

 

 

 

 

 

 

 

 7.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난 아이들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이 책을 사줬다. 책을 완전히 다 읽어내면 적어도 지적인 시각으로 다 자란 것에 가깝다고. 인간의 기본적인 공포, 죽음에 관한 박상륭의 깊숙하고 유명짜한 고찰. 내 책은 한 권이었었는데 언제 두 권으로 분책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신자유주의란.

 

 

 

 

 

 

 

 8. 이문구, <관촌수필>

 

 

 

 말이 필요없는 명 문장들의 향연. <우리동네> <장한몽> 기타 등등에서 보인 이문구 식 걸쭉하고 유장한 입심과는 또 다르게 명징한 서정으로 유년과 조부에 헌정한 책.

 

 

 

 

 

 

 

 

 

 

 9. 황석영, <장길산>

 

 

 

 젊은 황석영표 대하소설. 홍명희의 <임꺽정>도 좋으나 역시 좀 오래 전 것이라 황석영의 이 책을 꼽을 수밖에 없다. 힘찬 영웅들의 모험담. 또다른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질박한 조선 민중들의 건강한 알통과 애뜻한 사랑 이야기.

 

 

 

 

 

 

10. 최명희, <혼불>

 

 

 

 길고도 재미있고도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편소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얼마나 섬세하게 썼는지 책을 읽으며 작가 최명희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던 경이. 이렇게 긴 이야기를 썼음에도 진도가 반 정도 밖에 나가지 않은 듯한 아쉬움. 최명희의 단명을 탄함.

 

 

 

 

 11. 신경림, <농무>

 

 

 

 내가 번 내돈으로 처음 사본 책. 세상의 모든 쇠붙이, 총칼을 녹여 호미며 쟁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깨를 걸고 노래하는 한 바탕. 아,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만 18세 청년은 새롭게 눈을 떳었다.

 

 

 

 

 

 

 

 

 

 

 

12. 서정춘, <죽편>

 

 

 

 겉멋이 아닌 진짜 시의 맛을 알게 해준 시집. 데뷔 29년이던가 만에 펴낸 처녀시집. 편편이 알뜰하게 써내려간 시들이라니. 하나의 노래라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내 책은 동학사에서 나온 것인데 그 회산 그새 망했나보다.

 

 

 

 

 

 

 


* 근데 이거 쓰기 정말 힘들다. 점심시간 지난지 벌써 40분 됐다. 괜히 시작해 눈치 보인다. 타의에 의해 그만 쓰겠다. 잘못하면 잘리겠다. 정말 이 포스트는 쓰다 만 거다. 이래놓고 보니까 시간 없어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작가/시인들한테 미안하다. 오정희, 이문열, 김수영, 김주영, 조세희 등등(여기서조차 이름을 빼먹은 작가들한텐 진짜진짜 면목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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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6-0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 서정춘, <죽편>은 처음 들어봅니다. ^^ <원형의 전설>하고 챙겨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Falstaff 2017-06-09 11:34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 읽고 뭐 할 얘기가 없더라고요. 극도로 절약한 단어들로 만든 짧은 문장과 짧은 시. 그러면서 할 얘긴 다 하는 거요.
일갈하더군요. ˝설사하듯˝ 시쓰는 시인에 관해서. 죽여주는 시가 많이 들어있는 아주 얇은 시집입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竹篇·1 ― 여행> 전문

대나무 마디마디가 기차가 되어 고향마을에 가는데, 결코 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백년이 걸린다니 살아생전엔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봄 밤에 술 한 잔 마시고 고향 생각하는 시인이 눈 앞에서 삼삼하지 않으셔요? ㅎㅎㅎ

그의 다른 시집 <봄, 파르티잔>도 역시 절창입니다.

Falstaff 2017-06-09 11:37   좋아요 0 | URL
<원형의 전설>.... 제가 잠자냥 님의 세대를 몰라 드리는 말씀인데요, 학교 다닐 때 한문 배우지 않았으면 두산동아 판으로 읽으셔요. 알라딘엔 품절이고 다른 인터넷 서점엔 재고가 있는 거 같더라고요.
한문 배우셨으면 당연히 지만지 책이고요.

잠자냥 2017-06-0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한글전용세대라 지만지판 잠깐 보니 안되겠습니다. ㅋㅋㅋ
 

 3월도 다 갔고, 어제 마신 술도 아직 덜 깼고, 연초에 세운 계획, 올핸 절반으로 줄여서 쐬주는 딱 200 병만 마시자 했는데 어제 마신 두병 포함해서 3월까지 딱 50병 마셔 없앴으니 정말 기막히게 절주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거디고, 책은 얼마나 읽었나 보니까 어제까지 76권을 읽었다.

 완전히 산수로 계산하면 76권 곱하기 4는 304권. 올 한해 동안 이대로라면 300권을 넘게 읽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반성한다. 앞으로는 독서량을 팍 줄여서 진짜 인간답게 살겠다.

 하여간 3월까지 읽은 책 가운데 좋은 느낌을 받은 것들에 짧게 100자 평을 써보자 한다. 순서는 읽은 날짜. 다른 의미 하나도 없다.

 

 


1. 허버트 조지 웰스, <투명인간>

 

 다양성을 인정/허용하지 않는 사회를 풍자.... 했는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독자는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책. 19세기 생각하면 참 대단한 아이디어

 

 

 

 

 

 

 

 

 


2. 다이허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

 

 오랜 세월 읽었는 줄 알고 있다가 정신차려보니 정작 읽어보지도 않고 그랬거니 했던 책. 그러나 정말로 책을 펼치니 생각도 못하게 넘쳐흐르던 인간애, 그리고 사랑.

 

 

 

 

 

 

 

 

 

 

3.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여명>

 

 여자가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는데 두 사람 말고 또 뭐가 필요해. 거기다가 독특한 글쓰기의 매력이라니.

 

 

 

 

 

 

 

 

 

 

 

 

4. 벤 오크리, <굶주린 길>

 

 반식민半植民 상태 나이지리아. 굴곡에서 벗어나려는 가난한 자들은 어제처럼 오늘도 부자에게 수탈당하며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인민은 토속신앙의 몽환 속에서 헤매는데, 이를 어쩌랴.

 

 

 

 

 

 

 

 

 

5. 아베 코보, <불 타버린 지도>

 

 너도 나도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고 그걸로 끝일 수도 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꿈꾼다. 어느날 문득 가족, 친척, 친구들로부터 사라져버릴까?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6. 마틴 에이미스, <런던 필즈>

 

 살인이 예정되어 있는 인물들의 좌충우돌 난장판, 야단법석, 또 뭐 이 비슷한 말 없나? 하여간 기발한 유머가 쏟아지는 인간군상들의 '죽여주는' 요지경.

 

 

 

 

 

 

 

 


 

 

7. 장마리 블라 드 로블레스,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

 

 브라질을 무대로 한 인텔리 가족 구성원이 같은 시점에 벌이는 세 가지 골 때리는 사건. 그렇게 가족은 호랑이로 불리는 야만이 제 세상을 이룬 브라질에서 산산이 해체되고.

 

 

 

 

 

 

 

 

 

8. 벤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한 인간의 정체성은? 그걸 만드는 사회적 환경은? 내가 누굴까?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유년시절을 보내 이 자리까지 왔을까? 내가 과연 누구냐고!

 

 

 

 

 

 

 

 

 


9. 다니 라피에르, <남쪽으로>

 

 카리브 해에 둘러 싸인 섬. 더위와 땀과 분비물과 흑인 소년들과 오르가즘에 중독된 사람들. 그들을 중독시키는 섬의 늘씬하게 잘 생긴 소년들. 몽환과 몰입의 장면.

 

 

 

 

 

 

 

 

 

 

 

10. 그웨나엘 오브리, <페르소나>

 

 완전히 몰락해 가난하고 늙은 아버지. 그는 노트와 호텔 메모지와 광고지 등에 끼적인 글을 딸에게 남겨놓고 죽음이란 축복을 맞이한다. 이제 아버지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나이먹은 딸

 

 

 

 

 

 

 

 


 

11. 오노레 드 발자크, <인생의 첫출발>

 

 썩어도 준치. 발자크다 발자크. 평생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소한 일들. 우연과 인연이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라는 흔한 소재를 발자크는 죽여주게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다.

 

 

 

 

 

 

 

 

 

12. 알렉상드르 뒤마, <검은 튤립>

 

 뒤마의 이름만 보고 이 자리에 넣은 거 절대 아님. 19세기 프랑스 소설을 만들기 시작한 인물다운 놀라운 입심과 스토리와 현장감 넘치는 묘사. 완전한 드라마.

 

 

 

 

 

 

 

 

 

 


13.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늦여름>

 

 사람에 따라 길기만 하고 재미는 하나도 없다고 여길 수 있어 추천은 하지 않음. 그러나 내겐 참으로 친근하고 그립던 자연에 대한 애정어린 그림이 절절하게 와 닿았음. 느림의 행복을 선사해준 책.

 

 

 

 

 

 

 

 

 

14. 15.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93년>

 

 위고를 연달아 읽는 일은 넘치는 즐거움. 읽고나서 보니 여기저기서 <웃는 남자>에 대한 찬사가 넘치고 이책 저책에서 거리낌 없이 인용하며, 예를 들고 하는데 그게 다 이해가 되더라는 거.

 

 

 

 

 

 


16. 에밀 졸라, <여인들의행복 백화점>

 

 

 백화점 이름이 "여인들의 행복". 현대적 생산과 소비에 대한 과격한 고찰. 시대는 능률능률 흘러가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세대를 이어간다.

 

 

 

 

 

 

 

 

 


17. 볼레스와프 프루스, <인형>

 

 폴란드 귀족들의 허황하고 교만하고 가식적이고 싸가지없고 그래서 재수없는 행태를 여지없이 까발려버리는, 적수공권에서 시작한 부르주아의 자각 과정. 근데 왜 시도 때도 없이 짠한 거야.

 

 

 

 

 

 

 

 

 

 

18. 나쓰메 소세키, <그 후>

 

 룸펜 부르주아 인텔리겐챠 도련님의 하품나는 어리광. 근데 그거 구경하는 재미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앞으로 노동을 해야하는 노동혐오자의 철없는 고민.

 

 

 

 

 

 

 

 

 

 

 


19.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의 전매특허 의식의 흐름을 싼 값에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이 책을 만족하게 읽은 분은 드디어 <율리시즈>를 재미나게 읽을 수도 있을 걸? 그러 말고도 좋은 성장소설 한 편으로 읽어도 됨.

 

 

 

 

 

 

 

 

 


20. 일리야 일프, 예브게니 페트로프, <열두 개의 의자>

 

 두 명의 소비에트 시민이 쓴 협동작품. 허리 아프다. 하도 웃어서. 한 명의 위대한 사기꾼과 정교 사제와 귀족대표가 벌이는 웃음 만발의 비극적 보물찾기.

 

 

 

 

 

 

 

 

 

 

 

21. 고바야시 다키지, <게 가공선>

 

 지독하게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동은 그 안에 혁명의 기운을 품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리얼리즘 작품. 자본은 언제나 권력과 결탁하고 노동이 믿을 수 있는 건 노동과 단결 밖에 없다. 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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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4-0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열 두 개의 의자> 오늘 챙겨갑니다. ㅎㅎ 근데 어제까지 76권도 만행이십니다! ㅋ

Falstaff 2017-04-02 12:42   좋아요 0 | URL
옙, 재미난 책이더라고요.
아... 정말 야만스런 짓을 했다고 지금 자책 중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