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가 계속 말썽이었다. 가장 좋았던 기계가 20여년 전에 당시 100만원 주고 산 인켈 제품이었는데, 10년 넘어가면서 특히 CDP에 문제가 가끔 발생하기 시작했다. 방음장치 할 수 없는 작은 아파트 살면서 그 정도 음질, 음량이면 나무랄 곳이 없었다. 결정적 실수는 좀 큰 아파트로 옮기면서 시작했다. 거실도 전과 비교해 넓직해 홈 씨어터도 개비를 하는 김에 인켈 시집보내고 소위 말해 돈 부족한 매니어 층을 위한다나 어쩐다나 특별히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전문 장비를 덜컥 들여놓고 시험삼아 바흐의 곡 비올라 다 감바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를 탁 올렸는데, 아, 마음에 안 드는 거다. 전문 장비가 인켈보다 훨씬 못했다. 거기까진 뭐, 그래도 들리니까. 더 큰 문제는 구입한지 5개월 만에 작동이 안 되는 거다. CDP와 앰프가 동시에 지랄이고 스피커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고. AS를 받으려면 장비를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라는데, 그것도 확실하게 고쳐준다는 보장이 없단다. 그냥 한 번 보내보라고. 그때부터 고난의 행군. 상상에 맡긴다. 벽 한 면을 꽉 채운 CD들은 나 좀 틀어달라고 아우성이고, 그 사이 CD장 하나를 더 짜서 이제 일렬로 도열해 있는 3천 장의 CD들 볼 면목도 없는데, 지난 토요일, 아 씨, 마누라가 50만원짜리 소리통을 이마트가서 사왔다. 나더러 선물이란다. 이렇게 생겼다.

 

 

다음과 같이 얘기하지 않으면 그나마 밥도 못 얻어 먹으니, 일단 고맙다고 하고, 첫곡으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 세시간 반짜리를 올렸다. 흠. 값하고 비교하면 괜찮고, 무엇보다 책 읽고 음악듣는 조그마한 방, 3 x 3.5 미터 공간에선 충분히 즐길 만한 음량이다. 특별히, 이름가르트 제프리트의 목소리가 이렇구나, 젊은 카를 리히터가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판, 아 이제야 내가 제프리트의 진짜 노래를 듣는구나, 하는 소감. 비브라토가 거의 없는 맑은 목소리가 바흐에 그렇게 어울릴 수 없었다. 특히 수난곡임에야. 아하, 이렇게 쓰고보니 내일이 성탄절인데 지금 수난곡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여간에 첫곡으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 카를 리히터 지휘하고 아름다운 테너 에른스트 헤플리거가 복음사가를 하는 판.

 

 

 

지금 보니까 카를 리히터가 1959년과 79년 녹음이 있다. 이건 59년 녹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판은 왼쪽 거. 지금은 오른쪽 그림으로만 나오나보다.

 


 

다만 한 가지, 이 글을 읽고 덥석 <마태 수난곡>을 들으려 음반을 사시려 하는 분은 설마 읎겠지만, 에헤라, 혹시 계시다면 먼저 유튜브에 가서 과연 내가 수난곡을 끝까지 들을 수 있을까를 먼저 시험해보시라.
수난곡을 듣는 일 자체가 사람에 따라서는 대단한 수난이 될 수도 있고,
말 그대로 수난곡passion을 듣는 일이 열정이 될 수도 있다.
그건 당신이 옳고 그르고, 경건하고 아니고, 이 따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당신과 이 곡이 안 맞고의 차이일 뿐인데, 그게 생각보다 오지게 중요하다. 그러니 꼭 확인 부터 먼저 하시라. 난 수난곡하고 친해지기 위해 근 20년 이상이 필요했다.

 

 

 

 

 두번째 들은 곡은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 바단조 작품 34.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람스.

 

 

내가 가지고 있는 판은 왼쪽 그림인데 이젠 CD 장 수 늘려 오른쪽 그림으로 나온다. 장삿속이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또 올린 것이 모차르트의 현악오중주 사단조 K.516

  

 

 이것 역시 모차르트의 모든 기악곡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몇개 되지 않는 단조 작품 가운데 K.516 과 K.516 b. 두 현악오중주가 단조로 되어 있다. 낭만주의 음악은 이미 모차르트에서 찬란하게 만개해 있었던 것이다. 3악장 느리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이어서 하이든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작품 77-1, 77-2

 


코다이 사중주단의 하이든 전곡은 낙소스 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하이든 자체가, 모차르트로 하여금 현악사중주 작곡을 자제하게 만들 정도로 일정의 고전적 규범을 완성한 이. 하이든의 사중주가 내 가슴을 쌈박하게 송곳으로 찌르는 것은 그러나 저 아득하고 아득한 잠깐의 휴지기. 완전한 고요. 희한하지. 잠깐의 고요, 적요가 주는 날카로운 긴장은 또 뭐야!

흔히 음악 좀 들었다 하는 인간들이 하이든 알기를 우습게 알고 그러는데, 그거야말로 정말 웃긴 일이다. 당시에 어쩔 수 없이 대공의 그늘 아래에서 먹고 살았을 뿐, 후배 작곡가 누구와 비교해도 절대 뒷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오늘은 멘델스죤의 피아노 오중주를 들을 예정이다(사실은 이거 쓰면서 다 들었다). 비오시는 겨울의 휴일 아침. 책 읽고 음악 듣기 정말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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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1-0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도 사랑받는 남편이셨군요! ㅋㅋㅋㅋ 오디오도 떡하니 사오시고 ㅋㅋㅋㅋㅋ
좋은(?) 오디오 시스템도 갖췄는데 최근에 나온 이 앨범 한 번 들어보세요. (헐 근데 품절이네요..;;)

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998349

Falstaff 2018-01-09 13:39   좋아요 1 | URL
헉, 페차의 <비창>인가요?
아, 클래식 음반, 그것도 CD가 인기를 끌 수 있군요!
처음 들어보는 연주단체인데 ㅎㅎㅎ 이런 거 소개하시면, 제가 음악에 관해선 지조가 없는 편이라 집구석 기둥뿌리 뽑힙니다.
옙, 기억하겠습니다.
근데 <비창>은 다 듣는 순간 갑자기 멍~하니 허탈, 허무, 허망해지지 않나요? ^^;

잠자냥 2018-01-09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비창>에 대한 폴스타프 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이 앨범은 2월 중순쯤에 재입고 되는 것 같아요. ㅎㅎ 그토록 많은 <비창>이 나왔음에도 또 나오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공감하실 음반이라고 생각됩니다. ㅎㅎㅎ

kyle 2018-03-28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분이 계셨다니 그저 반가워서 문자 남겨요

Falstaff 2018-03-28 08:22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탄하실 수준은 아닙니다. ^^;
고맙습니다.
 

 

 

 며칠 전, 이야기 끝에 이젠 너무 자주 입끝에 올라 식상한 주제, 무인도에 가면 어떤 책? 이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고……. 진짜 아무 생각 안 났다. 그리하여 책 대신에 가스 라이터, 코펠, 칼, 3인용 텐트와 (낚시대 말고) 통발. 이렇게 다섯 개 골랐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인도 운운이, 내가 평생을 두고 읽는다면 어떤 책을 선택하겠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고, 그게 또 멋을 좀 부리느라 만일 내가 자유로운 독서가 가능한 정치범 또는 사상범으로 교도소에 간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겠는가, 라고 바꿔봤다. 그러니 교도소 운운도 소위 "필생의 책"을 선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제 마침 하던 일이 일찍 끝나 한 번 골라봤다. 다섯 개를 고른다는 전제로 시작했다.

 

 

 

1. 소포클레스, 천병희 역, <소포클레스 비극전집>

 누가 20세기에 그리스 비극을 읽어! 일갈을 하고 절대 나한텐 그리스 비극을 읽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건 내 장담대로 이루어졌다. 20세기에 난 그리스 비극은 절대 읽지 않았으니까. 세월이 흘러흘러 21세기가 되고, 카를 오르프가 작곡한 <외디페>를 보고 듣고, 어느새 내 책상엔 <소포클레스 비극전집>이 올라와 있었다.

 하루키가 나에게 가르쳐준 거의 유일한 가르침은 <노르웨이의 숲>에서 말하기를, "30년 이상 된 책을 읽어. 그건 이미 검증이 끝났다는 얘기야."란 대사.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30년 씩 100번을 더 지나 완벽하게 검증이 끝난 위대한 작품. 시대를 초월한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의 비극적 절망과 종말은 독자의 심장을 저며 놓는다.

진정으로 불쌍한 인류는 소포클레스를 읽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자들이다.

 

 

2. 베르길리우스, 천병희 역, <아이네이스>

 목마를 타고 침공한 그리스 군대에 의하여 완벽하게 괴멸된 트로이. 카산드라의 정확하지만 공허한 예언은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고 스스로 멸망한 가운데 장군 아이네이스는 늙은 아버지를 업고 불타는 트로이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약속의 땅 로마를 찾아 긴 항해에 나선다.

 영웅과 사랑의 서사. 서양 문학을 알기 위한 기초 텍스트가 아니라 정말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답고 영웅적인 개척자 이야기.

 

 

 

 

3. 황순원 전집

 

 

 

 

 

 

 

 

 

 

 

 위 책들. 모두 11권 가운데 열 권만. 11번째 전집은 황선생의 시들을 모아놓은 거다.

 조선어로 글을 쓸 수 없는 시절이 닥치자, 교사 직을 내려놓고 낙향해 침묵 속에 굳건하게 조선어로만 소설을 썼던 대나무 같은 이. 오직 작품으로만 말을 남긴 세계문학의 위대한 교사. 언어는 선생에게 종교였을 것이다. 개별 작품에 대한 호오는 다음으로 하고 시절을 뚫고 당대의 서정을 간결하게 품은 글의 만찬을, 교도소 안에서라면 만찬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4. 김수영 전집 1.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만, 김수영과 신경림으로 나는 시를 알았다.

 비록 이이가 혁명도 못하고 울화가 돋아 수유리 집구석의 방만 바꿔버리는 양계장 주인이었을망정, 그리하여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을 망정, 전후 폐허 속에서 진정한 선비였음이 그의 시 속에 온통 들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5. 최명희, <혼불>

 우리나라 소설문학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

 

 

 

 

 

 

 

 

 

* 이것들 말고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최인훈 전집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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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대로입니다. 올해 3/4분기에 읽은 60권의 책 가운데 재미있는 것들을  각각 짧은 촌평을 붙혔습니다.

 제가 읽은 순서로 했습니다. 앞에 나왔다고 뒤에 쓴 것보다 더 좋다는 의미 아닙니다.

 

 

 

 

 

 

1.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잘 쓴 성장소설이 그렇듯 곳곳에 눈물샘을 터뜨리는 지뢰가 묻혀 있다. 저 먼 먼 추억 속의 낡고 해져 이젠 누추한 그림을 꺼내 보는 일이 가끔은 아름답다.



 

 

 

 

 

 

 

 

2. 헨리 제임스, <워싱턴 스퀘어>

 세상살이에 통달한데다가 돈도 무척 많이 번 의사. 게다가 인생살이 모르는 게 없는 재수 적은 인간인데, 또 1830년대에 연 수입 1만 달러의 지참금을 가져온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떴다. 이런 사람을 아빠로 둔 캐서린. 부녀 사이에 멋진 외모, 딱 하나만 가지고 나타난 모리스. 세 명이 결혼을 두고 벌이는 쇼 케이스. 재미 하나 확실하게 보장함.

 

 

 

 

 

 

 

 

 

 

 

 

 

3. 아나톨 프랑스, <신들은 목마르다>

 

 대혁명의 높은 파고에 휩싸인 열혈청년. 비록 순수했으나 왼쪽 팔뚝에 완장 하나 채워주니 순결한 공화국의 이상을 위하여 완장의 힘을 구사하기 시작하는데, 민중의 선두에 선 책 표지의 저 사내. 팔은 이미 잘려나갔고 땅을 짚은 발목이 방금 잘려 우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4. 프랜시스 스콧 핏제럴드, <아가씨와 철학자>

 핏제럴드의 단편소설. 행위와 사고의 필터를 제거해버리고 마음 내키는대로 살아가며 상대를 봐 가면서 적당히 엿을 먹이기도 하는 두 전쟁 사이 시대의 젊은 군상들. 본격적인 자유의 도래에 관한 웅변.


 

 

 

 

 

 

 

 


 

 

 

 

5.로베르토 아를트, <7인의 미치광이>

 

 세계혁명을 꿈꾸는 도라이들 속에 하구한날 아버지한테 엉덩이에 채찍을 맞고 자란 우리의 에르도사인이 재수없게 회사돈 600 페소 7 센타보를 횡령한 사실이 뽀록이 나 참여하게 된다. 혁명은 오늘도 안녕하실까?


 

 

 

 

 

 

 

 

 

 

6. 프랑수아 모리아크, <독을 품은 뱀>

 가족이라는 이름의 원수들. 이 우라질 것들은 내가 뼈빠지게 한 평생을 바쳐 모아놓은 돈에 대한 증오와 탐욕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는데, 가족 구성원 전체한테 따돌림을 받는 노인, 어디 곱게 죽을 줄 알아?

 

 

 

 

 

 

 

 

 


 

 

7. 클라우스 만, <메피스토>

 

 <파우스트 박사>를 쓴 토마스 만의 아들 클라우스 만이 <메피스토>를 쓴 거 이거 우연이야, 아니면 고의야? 자기 매부를 실제 모델로 해 쓴 소설. 아무 생각 없이 입신양명을 위해 평생 별 짓을 다 해온 독일판 꺼삐딴 리.

 

 

 

 

 

 

 

 


 

 

 

 

8. 커트 보니것, <제5 도살장>

 

 시간여행과 순간이동이 가능한 빌리 필그림의 2차대전 참전기. 작센의 수도이자 우아한 고도 드레스덴에 하필 그때 떨어져서 인간을 이렇게 망가뜨리나그래. 뭐 다 그런 거긴 하지만 말씀이야.

 

 

 

 

 

 

 

 

 

 

 

9. 정이현, <오늘의 거짓말>

 

 졸업 후 잠깐 취업, 그리고 결혼이란 사이클에 아무 생각없이 또는 별 생각 없이 탑승했던 거의 마지막 세대. 이들의 20대는 그러나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내려앉는 우화의 시대였는데

 

 

 

 

 

 

 

 

 

 

 10. 존 치버, <팔코너>

 

 

 자기 친형을 떠밀기만 했는데 자꾸 검사님은 제가 칼로 푹 찔렀다고 하네요. 여기나 거기나 무전유죄는 별로 다르지 않아서 이 팔코너 교도소에 들어오긴 했지만 말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도 알고보면 미합중국 정부란 거 아세요? 그러니 내가 억울하겠어요 안 억울하겠어요.

 

 

 

 

 

 

 


 11. 아이작 싱어, <쇼샤>

 

 이 사람의 소설은 다 찡하게 슬픈 아름다움이 있다. 이 책, 품절. 중고책 말고는 구할 수 없다. 근데 발품 팔 이유는 충분하다. 차마 폴란드를 떠나지 못하는 아쉬케나지 유대인 이야기. 그 속에서도 이들은 사랑하고 예술을 애호하고 서로를 가여워하다가, 죽어갔다.

 

 

 

 

 

 

 

 

 

 

12. 아르투로 페레스 로베르테, <검의 대가>

 

 재미난 스릴러 소설. 순문학만 좋은 거, 절대 아님. 가끔가다가 이런 작품도 읽어줘야 소위 말하는 다양성을 찾을 수 있다, 고 하고 싶은데 솔직히 말하면 순문학이고 장르문학이고, 하여간 재미난 게 장땡이다.

 

 

 

 

 

 

 

 

 

 

 

 

 

13. 위화, <가랑비 속의 외침>

 

 아, 이 사람 어째 이리 하나같이 궁상맞아? 소설 써서 돈벼락 맞은 위화의 데뷔작. 이거 읽어보면 처음부터 부자 소설가 될 싹수가 보인다. 궁상맞고 우울한 얘길 어찌 이리 재미나게 만든데?

 

 

 

 

 

 

 

 

 

 

 

14. 뮈리엘 바르베리, <맛>

 

 햐, 참. 정말 맛있게 쓴다. 음식을 구강 안에 넣은 다음 벌어지는 모든 것에 관한 글. 미각? 이거 뿐 아니라 후각, 촉각, 신경각(이로 씹을 때 신경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내가 만든 말) 등과 인체 분비물과의 화학작용 기타등등을 통해 인류가 느낄 수 있는 향연을 맛나게 써버렸다.

 

 

 

 

 

 

 

 

 

15. 존 맥그리거,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책은 품절도 아닌 절판. 약오르지? 북잉글랜드 한 동네에서 벌어진 사고.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 동네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까에 관한 드라이한 관찰. 몇 년 후 임신한 내 앞에 나타난 한 청년이 바로 누구냐하면, 안 알려줌.

 

 

 

 

 

 

 

 

 

16. 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뭐, 전적인 구라이긴 한데, 아마도 윤이상 선생을 감안해서 썼을 거 같은 책. 유럽에 정착한 조선인의 후예가 독일에서 훌륭한 작곡가 였는데 <토카타와 푸가>라는 제목의 저작을 내고 느낀 바가 있어 독일 땅에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전제 하에, 사건은 벌어지는 거디었다.

 

 

 

 

 

 

 

 

 

17. 움베르토 에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돈 많은 고서적상 얌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책만 들여다보고 있노라 체중관리에 실패, 어느날 드디어 혈압상승에 이은 뇌졸중으로 꼴까닥 넘어갔다가, 회복됐지만(참 불행중 다행이다) 대신 기억이 싹 날라가 마누라도 몰라본다. 이 늙은이가 옛집을 찾아 기억을 되살리려 별 걸 다 찾아보다가 드디어 로아나 여왕까지 찾아내는 거잖아 글쎄.

 

 

 

 

 

 

 

 

18. 김혜나, <제리>

 

 

 이미 읽어보신 분이, 어머 미쳤어 이걸 고르게, 하는 지청구가 들린다, 들려. 왜 이러셔, 다 읽는 사람 마음이여. 외롭지 않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청춘들. 얘네들 하는 거 보면 처음엔 참 불편하고 징글맞고 심지어 더럽고 짜증나다가도 마지막 가면 그냥 한 번 얼싸안고 함께 울어주고 싶다

 

 

 

 

 

 

 

 

 

19. 잉고 슐체, <아담과 에블린>

 원초적 남자, 아담. 동쪽 사회주의 독일에서 안분하게 먹고 살고, 적당히 바람 피우고 잘 살고 있는데 그놈의 자유가 뭔지도 모르면서 꼭 서쪽 독일로 넘어가야겠어? 거기 가면 내 직업, 재단사가 필요 없다고들 하는데 말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동독 사람들의 진퇴양난.

 

 

 

 

 

 

 

 

 

 

 

 

20. 나딤 아슬람, <헛된 기다림>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영국인의 집에 모인 러시아 여인과 미국 남자. 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자 원주민 청년.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벌어진 폭력은 과연 어떻게 시작했으며 어떤 악순환을 만들어냈을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폭력과 피해자들과 이미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조종.

 

 

 

 

 

 

 

 

 

21. 베른하르트 슐링크, <계단 위의 여자>

 

 그림 한 점을 사이에 두고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벌이는 난장판. 예전엔 몰랐는데 이젠 어마어마한 가격이 나가는 그림을 들고 40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튀어버린 여자가 이제 인생의 막바지에 관련한 인간들을 차례차례 자기가 사는 섬으로 부르는데, 인간은 늙으나 젊으나 그저 그저. 믿고 읽는 작가의 한 사람 슐링크임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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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0-0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작 싱어 <쇼사> 메모해 둡니다~ 남은 추석 연휴 즐겁게 읽으시고~ 술도 많이 드시고 ㅎㅎ 잘 보내세요!

Falstaff 2017-10-06 19:47   좋아요 0 | URL
근데 문제는 <쇼샤>가 지금 품절이고 출판사 다른우리는, 망한 거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든 책이 2013년이예요. 도서관을 이용하시거나 중고책을 사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읽어보시고 진짜 마음에 드시면 도서관에서 빌린 다음에 잃어버렸다고 돈으로 갚겠다고 땡깡을 부려보시든지요. ㅋㅋㅋ 진자 그런 궁리하시는 분 봤습니다. ㅋㅋㅋㅋ
 

 

 

 


 위 사진이 올해 4/4분기 읽을 책들입니다. 순서 없이 그냥 꽂아 놓았습니다.

 역시 초간 발행 순으로 읽되 사이사이에 시집과 우리나라 문학을 삽입했습니다. 그래서 읽을 순서, 즉 내일부터 올라올 독후감의 순서는 아래 표와 같습니다.

 3/4분기 시작할 때는, 이거 뭐 책만 읽고 사는 인간인가 싶기도 해서 마음 먹고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엔 책 읽지 말아보자,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몇 주 동안 그렇게 했는데, 그만 문제가 생겼지 뭡니까. 심심해서 몸살을 앓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사는대로 살자, 대신 책 읽는 걸 좀 줄여보자. 이렇게 마음 먹었는 바, 솔직히 이젠 눈이 좀 가물가물해서 전처럼 몇 시간 동안 집중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하여간 책 읽기를 좀 줄인 건 맞습니다. 아, 그랬더니 다른 게 늘더라고요. 뭐냐하면, 술입죠, 술.

 만인의 적입니다. 책 읽는 건 저절로 줄어들더군요. 인생입니다. 술도 전같지 않아 이젠 많이 하지도 못합니다만 하여간 마시면 즐겁습니다.

 여전히 읽을 책은 무지 많습니다. 죽을 때까지 읽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리하여 하여간 눈이 허락하는 한까지는 읽을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거 정말 하나도 없고, 재미나니까요. 퇴직할 때까진 사서 읽고 그 다음엔 도서관을 이용할 겁니다. 도서관 개가실의 어여쁜 아가씨가 시침 뚝 떼고 뀐 방귀냄새를 맡아보지 않고 생을 하직하는 사람은, 인생이 불쌍한 겁니다.

그림 잘 안 보입니다. 엑셀을 이용해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주문내역 내려받기 하면 이런 거 금방 만듭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도서명출판사저 역 자간행
1지옥에서 보낸 한 철민음사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 김현1895
2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시공사토머스 드 퀸시, 김석희 1822
3개척자들문학과지성사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장은명1823
4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정이현2006
5보이체크.당통의 죽음민음사게오르그 뷔히너 | 홍성광1835
6피에르, 혹은 모호함 1시공사허먼 멜빌, 이용학1852
7피에르, 혹은 모호함 2시공사허먼 멜빌, 이용학1852
8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기형도1989
9레헨따 1창비레오뽈도 알라스 끌라린 | 권미선1884
10레헨따 2창비레오뽈도 알라스 끌라린 | 권미선1884
11무기를 내려놓으라!뿌리와이파리베르타 폰 주트너, 정지인1889
12너는 모른다문학동네정이현2009
13시라노열린책들에드몽 로스탕, 이상해1897
14산도칸열린책들에밀리오 살가리 | 유향란1900
15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민음사김경후2001
16산시로현암사나쓰메 소세키 | 송태욱1908
17강철 폭풍 속에서뿌리와이파리에른스트 윙거, 노선정1920
18사랑의 사막펭귄클래식프랑수아 모리아크 | 최율리1925
19간결한 배치민음사신해욱2005
20복어문학동네조경란2010
21도롱뇽과의 전쟁열린책들카렐 차페크, 김선형1936
22앙리 4세 1미래인하인리히 만 | 김경연1938
23앙리 4세 2미래인하인리히 만 | 김경연1938
24앙리 4세 3미래인하인리히 만 | 김경연1938
25로테, 바이마르에 오다창비토마스 만 | 임홍배1939
26자라창비문성해2005
27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이숲에올빼미슈테판 츠바이크 | 남기철1942
28바느질하는 여자문학과지성사김숨2015
29상속자들민음사윌리엄 골딩, 안지현1955
30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문학과지성사알프레트 안더쉬, 강여규1957
31성소녀창비쿠라하시 유미꼬 | 서은혜1965
32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창비후안 마르세 | 한은경1966
33정말창비이정록2010
34다니엘서 (반양장)문학동네E. L. 닥터로 | 정상준1971
35노인을유문화사유리 트리포노프, 서선정1978
36바깥은 여름문학동네김애란2017
37이토록 긴 편지열린책들마리아마 바 | 백선희1980
38미사고의 숲열린책들로버트 홀드스톡 | 김상훈1984
39시녀 이야기황금가지마거릿 애트우드 | 김선형1985
40자라는 돌창비송진권2011
41바인랜드창비토머스 핀천 | 박인찬1990
42처녀들, 자살하다민음사제프리 유제니디스 | 이화연1993
43오늘은 잘 모르겠어문학과지성사심보선2017
44야만스러운 탐정들 1열린책들로베르토 볼라뇨 | 우석균1998
45야만스러운 탐정들 2열린책들로베르토 볼라뇨 | 우석균1998
46정체성민음사밀란 쿤데라 | 이재룡1998
47그런데 그런데실천문학사박순원2013
48열정솔출판사산도르 마라이, 김인순1998
49영국 연인한길사홍잉 | 김택규1999
50하얀 이빨 1시공사제이디 스미스 | 김은정2000
51하얀 이빨 2시공사제이디 스미스 | 김은정2000
52코러스크로노스문학과지성사윤해서2017
53누구나의 연인예담플로리앙 젤러 | 박명숙2003
54구구문학동네고영민2015
55나쁜 소녀의 짓궂음문학동네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송병선2006
56즐거운 인생 1이레쟈핑와 | 김윤진2007
57즐거운 인생 2이레쟈핑와 | 김윤진2007
58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김민정 지음2016
59몸의 일기문학과지성사다니엘 페나크 | 조현실2012
60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산지니모니카 마론, 정인모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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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9-2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헨따>랑 <노인> 사셨군요. 안 그래도 사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ㅎㅎ
모니카 마론의 저런 작품이 출간되어 있는지 오늘 처음 알고 갑니다.
몇몇 작품은 읽으신 뒤 후기가 벌써 궁금해지는군요. ㅎㅎ

근데 휴일에 책을 안 읽으셨다니! 이런이런... 저는 책은 휴일 아침에 늦잠자고 나서 뒹굴뒹굴 몇 시간이고 읽을 때가 제일 좋던데 - 그 좋은걸!!!

Falstaff 2017-09-28 13:0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레헨따>는 좀 고민입니다. 워낙 길어서요. 긴데다가 지루하기까지 하면 완전 죽음인데 말이지요.
이번엔 형제 작가들을 연달아 읽는 게 재미나요. 하인리히와 토마스 만. 누가 더 지루할까요? ㅋㅋㅋ
요샌 주말에도 조금씩 읽는답니다. 아침에 밥 먹기 전에 읽는 즐거움도 물론 누리고 있고요. ㅎㅎㅎ 그놈의 술이 좀 줄어야 하는데, 그게 힘드네요.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의 매력은 순문학만 고집하고 있지 않는데 있습니다.데실 해밋의 <몰타의 매>, 너세니얼 웨스트의 <메뚜기의 날>, 제임스 존스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같은 대중소설도 기꺼이 시리즈에 포함시키고 있어서 가끔 깜짝 놀랄만한 작품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그게 열린책들 시리즈의 진짜 매력입니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해 놀라운 작품을 발견하는 맛. 정말 기가 막히지요. 물론 완전 반대로 똥 밟을 때도 많긴 합니다만.

 출판사 열린책들, 빡빡한 글씨간격과 줄간격으로 악명과 동시에 매니어 층을 이루고 있는데, 전 글씨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편집을 아주 좋아합니다. 예전에 내려쓰기 두 줄로 빽빽했던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청구문화사의 현대한국문학전집 같은 불멸의 시리즈에 익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열린책들의 조판에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근데 정음사, 청구문화사. 정말 불멸의 문학전집을 냈던 출판사의 공통점은, 다 망했단 겁니다) 말이 길어집니다.

 역시 이 시리즈를 통해서 제가 읽어본 책들만 대상으로 쓰겠습니다. 예를 들어 <마의 산>은 오래전에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었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민음사 책으로 읽어 대단한 작품입니다만 여기에 포함시킬 수 없었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가나다 순서로 하겠습니다.

 

 

 

 줄리언 반스, <10 1/2 장으로 쓴 세계역사>

 

 여권 발급받고 비자 받아 노아의 방주에 탑승한 임종벌레와 눈치보며 밀항에 성공한 나무좀벌레의 입을 통해 서양 역사의 중요 변곡점을 아주 제대로 비틀어버린 명작. 반스의 다양한 시도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송을 해도 아깝지 않다. 그의 작품은 눈에 띄는대로 선택할 만하다.

 

 

 

 

 

 

 

 

 

 

 

 아르투로 페레스 로베르테, <검의 대가>

 

 

 재미있는 점잖은 스릴러. 요새 넘쳐나는 활극하고 비교하면 심심하기 그지 없겠지만 고전적인 검술의 대가들이 플뢰레 검을 베고, 찌르는 역동적인 묘사는 가히 일품. 시간 죽이기에 더없이 좋은 책.

 

 

 

 

 

 

 

 

 

 

 

그레이엄 그린, <권력과 영광>

 

 오역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예를 든 원어를 내가 읽어도 정말 오역시비는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가톨릭 땡초 신부 이야기. 예쁜 수녀와의 사이에 아이도 하나 있는 '위스키 사제'란 별명의 진짜 땡초 신부, 오역 시비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재미가 있어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책.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패전한 전쟁에 참전했던 독일인 이야기. 전후 폐허 독일에서 가난과 황량 속에 팽개쳐진 시민들의 쓸쓸한 뒷모습. 뵐의 다른 작품들도 참 좋다.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 그러나 대표작은 문학동네에서 찍은 <어느 어릿광대의 고백>.

 

 

 

 

 

 

 

 

 

 

 

 

 짐 크레이스, <그리고 죽음>

 

 비위 약하신 분은 아예 책을 열지 말 것. 초장부터 두 죽음과 부패의 상세 묘사 등장. 사람을 역겹게 만들다가 인류 또는 생명의 불멸성에 관한 담론이 펼쳐지는데, 참 볼 만하다.

 

 

 

 

 

 

 

 

 

 

 

 

 보리슬라프 패키치, <기적의 시대>

 

 

 이제 내가 명하노니 눈을 뜨고 나를 보라, 하자 장님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에이 썅, 누가 이놈의 세상을 보게 해달라고 했어? 괜히 오지랖은 넓어서 지랄이야, 하고는 다시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파내더란 얘기. 대단한 역설. 궁금하시지?

 

 

 

 

 

 

 

 

 

 

 

 윌라 캐더, <나의 안토니아>

 

 

 미국의 대표적 지방주의 작가. 쉬운 얘기로 촌년이 쓴 재미나고 건강한 소설책. 제발 촌년이라고 썼다고 때리지 마실 것. 난 애정을 담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 쓴 단어다. 광활한 네브라스카 평원으로 이주한 북구 출신 이민자들의 삶과의 투쟁 이야기. 읽어보신 분은 자연스레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릴 것이다. 이토록 쌔가 빠지게 고생해 건강하게 살던 이들이 1930년대에 거지꼴을 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풍경으로 연결된다니,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역시 열린책들에서 나온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도 아주 건강하게 좋다.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재미로 읽는 사람이 있는지는 몰라도 난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스토리의 전개보단 문장과 인물을 가지고 노는 울프의 글쓰기 자체가 대단히 멋있다. 소위 말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고맙게도) 짧은 소설책. 적어도 의식의 흐름, 하나만을 감상하자면 길고 긴 <율리시즈>를 고통스럽게 읽을 필요는 없을 터.

 

 

 

 

 

 

 

 

 

 

조르지 아마두,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

 

 나 이 책 읽고 이렇게 발랄하고 발칙한 상상력을 낼 수 있는 브라질이란 나라가 급격히 좋아졌다. 잘 생기고 털도 많은 남편과 돈 많은 약사 남편, 둘을 거느리고 사는 팔자좋은 플로르 여사가 사랑과 오르가즘이 충만한 섹스를 찾아 선택하고 그걸 누리는 흥미로운 이야기. 아주 딱 내 수준. 지금 글 쓰면서 생각하기만 해도 비실비실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존 파울즈, <마법사>

 

 

 이 책은 끝까지 읽어야 끝난다. 말 이상하지? 읽어보신 분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것. 이마빡 한 번 치고 나중에 결정적으로 뒤통수 한 방 후려갈기는 책. 완전 사기꾼 이야기. 파울즈의 대단한 입담은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바인데, 그 결정체가 바로 여기 있다. 역시 같은 시리즈 <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재미있지만 <마법사>에 비하면 조족지혈, 즉 새 발의 피.

 

 

 

 

 

 

 

 

 

 허먼 멜빌, <모비 딕>

 

 

 

 고전 중의 고전. 이 소설은 자체가 인류의 유산이다. 과장이라고? 천만의 말씀. 읽어보시면 안다니까. 영화 하나 보시고 모비 딕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건, 이 소설과 멜빌에 대한 모욕이다. 포경선이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토록 광대한 서사가 나올 수 있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기념할 만한데, 거기다가 감동까지.

 

 

 

 

 

 

 

 

 

 에밀 졸라, <목로주점>

 

 

 이 책 역시 오역의 극치라는 평가를 즐기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목로주점> 읽었단 얘기하지 말라는 수준. 난 오역에 관해선 모르지만 굳이 그런 평가를 알고 선택할 수 없으니 다른 출판사의 <목로주점>으로 대신하시라. 팔자 드런 한 여인의 생애. 이 책을 읽어야 졸라의 다른 소설들, <나나>, <제르미날>, <작품>, <인간짐승> 같은 것의 배경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설. 자연주의 작품의 전형을 볼 수 있다. 거위 잡아서 파티하는 장면, 알콜 중독자의 금단현상 장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으.....

 

 

 

 

 

 

 

 싱클레어 루이스, <배빗>

 

 미국 사회의 허리를 이루는 중산층의 허위 의식을 절묘하게 까발린 소설. 루이스로 말할 거 같으면 미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입담 죽임. 겁많은 잡놈이자 순진하기도 하고, 완벽한 속물을 구경하고 싶으신 분 계시면 서둘러 책방에 달려가 이 책 고르시라.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백년보다 긴 하루>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런 작품을 번역한다는 거. 이 책 읽기 전에 아이트마토프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아, 가공스런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경의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다니. 난 이 책 하나로 맛이 갔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잠시 우리 부부 커플 사진 한 번 감상하시고 넘어가자. 즉, 쉬는 시간. (오줌 마려)

 

 

 

 

 

귀스타브 플로베르, <성 앙투안느의 유혹>

 

 자유분방한 방귀쟁이, 수다쟁이, 오입쟁이, 설레발꾼 플로베르가 어쩌자고 이런 작품을 썼을까? 이거 역시 끝까지 읽어야 끝나는, 희곡 양식에 입각한 소설. 그냥 산문으론 성 안토니우스와 악마의 유혹에 관해서 설파하기 좀 곤란했던지 난데 없이 희곡을 가져다 댔는데, 거 참. 재미하고는 별개로 읽어볼 만한 책. 난 틀림없이 얘기했음. 재미하고는 별개라고. 흐흐.

 

 

 

 

 

 

 

 

 

아르까지 스트루가츠끼, 보리스 스트루가츠끼,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골때리는 두 형제가 마음 먹고 힘을 합해 한 권의 재미난 책을 내놨다. 흠. 도대체 주인공이 누구야? 지구, 즉 가이아의 항상성. 지구를 파괴할 수도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들.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 나중에 독자한테 숙제 하나 내주는데 그 숙제, 생각해볼 만함. 이게 소비에트 시절에 출판됐었다니 참. 말 하나 보태자면, 이 책을 쓴 형제가 나중에 신, 파충류의 외모를 한 신으로 진화한다는 거. 물론 다른 책에서.

 

 

 

 

 

 

 

 

 

미셸 우엘벡, <소립자>

 

 인류의 멸종에 이르는 과학의 길을 그린 디스토피아 미래관. 주목할 것은 종의 멸망과 비극적 세계관을 그림으로써 오히려 인류에게 서로 사랑하며 살 것을 강조한다는 점. 전철 안에서 읽기엔 좀 버거울 정도의 베드씬은 꼭 필요했을까?

 이 작가는 작품별 편차가 큰 편. 다른 작품 고르실 때 조심하실 것.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악령>

 

 말이 필요없다. 필독서.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주의에 경도된 일당들과 한 인물 스따브로긴의 행적. 단연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으로 거론할 수 있는 걸작, 명작, 명작, 불후의 명작.

 

 

 

 

 

 

 

 

 

 

 

 

 헨리 제임스, <여인의 초상>

 

 내가 읽은 헨리 제임스의 소설 가운데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책. 워낙 널리 알려져 출판사마다 이거 안 찍는 곳이 없을 정도. 세상에 부모 잘 만나 평생 부자로 사는 인간도 있고, 이 책의 여주인공 이사벨 아처처럼 이모부 잘 만나 갑자기 돈 벼락 맞는 일도 있으니, 그대, 아직 생을 포기하지 마시라.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한 시절의 궁중 광대를 만들기 위해 안면 성형수술을 했다고 하는데, 어려서 시술을 받아 베트맨의 조커(히스 레저!)처럼 입술이 귀 아래까지 찢어져 웃는 모습을 지니게 된 불행한 인간의 이야기. 열린책들의 또다른 빅토르 위고, <93년>도 재미있으나 둘 가운데 굳이 하나를 꼽으라는 악마의 독촉을 받는다면 나는 <웃는 남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원수들, 사랑 이야기>

 

 북유럽 출신 아쉬케나지 유대인들 이야기. 뉴욕에 한 기구한 유대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인간이 왜 기구하냐면, 아내가 세 명이다. 유럽에서 나치의 손아귀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구해준 지금의 법적 아내, 법적 아내가 자기 수준하고는 맞지 않아 러시아 유대인 수용소를 거쳐 입국한 유대인 아가씨와 중혼,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유령 속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본마누라. 이 사기꾼을 둘러싼 따뜻한 이야기. 재미남. 이거 읽고 그의 모든 번역 소설책을 읽기로 결심했음.

 

 

 

 

 

 

 

 

 

 조지 버나드 쇼, <인간과 초인>

 

 암만봐도 코메디 맞음. 가정이란 세속적 규법에 끝까지 반대한 인간 버나드 쇼의 결혼에 관한 매우 신랄한 독설이 상쾌하다. 촌철살인의 단어와 가끔 툭 뱉는 한 마디. 근데 사실은 버나드 쇼가 결혼을 못한 건 너무 못생겨서 그랬다나? 읽어보시라 추천하지는 않겠음. 맞지 않는 사람은 무지 지루할 수도 있을 듯.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런 건 읽어줘야 어디 가서 교양 떨 수 있다. 기독교에 관해서 더할 수 없을만큼 무식한 나는 가끔 지루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코의 중세 종교에 관한 지적 탐구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굵직한 기둥과 이를 둘러싼 눈부신 가지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올려다보는 일.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렇다.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카뮈의 성장소설. 그러나 그의 미완성 유작. 알제 출신의 공부 잘하는 똑똑한 청년. 자신보다 더 젊은 시절에 전사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작중 주인공이 알제의 곳곳에서 옛 시절, 평범하고 똑똑한 소년의 뒤를 밟아 나가는데 왜 그가 최초의 인간이 되고 말았을까?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최후의 세계>

 

 명작. 1년에 한 편 나오는 소설. 수준높은 우화적 상상력. 유배지로 떠나 살아 로마로 돌아오지 못한 오비디우스를 좇아 유배지 흑해 연안의 토미로 간 주인공 청년 코타. 토미에서 숱하게 코타의 눈에 들어오는 오비디우스 표 변신의 증거 또는 표식들. 더 이상은 스포. 이런 소설은 아무 정보 없이 읽어야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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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9-0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이 글 보면서 점심 먹다가 밥알 뿜을 뻔했습니다.... 부부커플 사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전 <마법사들> 빨랑 읽어야하는데 말이죠! ㅎ

Falstaff 2017-09-01 14:49   좋아요 0 | URL
우리 부부 생긴 것이 워낙 감동감화 가득한지라 가끔 잠자냥 님 같은 분들이 계시죠. ㅋㅋㅋㅋ
<마법사들>은 일단 뒤통수에 뭐라도 대신 다음에 읽는 것이 만수무강에 좋습니다. ^^

레삭매냐 2017-09-0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의 좋은 책들이 이렇게 많았었나요?

팔스타프 님 덕에 <남쪽으로> 구해서 잘
읽었습니다 :>


하인리히 뵐의 책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읽
은 책은 꼴랑 한 권이네요 반성해야겠습니다.

Falstaff 2017-09-01 15:24   좋아요 0 | URL
저 위에서 얘기했듯이 열린책들 시리즈에선 생각하지 못한 작가들이 툭 튀어나와 상당한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왕왕 있더군요. 그게 이 출판사 최고의 매력입니다.
ㅎㅎㅎ 그리고 <남쪽으로> 정말 괜찮지요? 저도 우연히 중고책방에서 구해 매력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