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하나의 씨앗 속에는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는 것이지요.
- P26

그래서 인도에서는 씨앗을 뿌릴 때 ‘이 씨앗이 지지 않게하소서.‘라고 기도한답니다. - P28

씨앗을 발명품 취급하는 것은 이 땅에 대한 모욕이자 폭력이나 마찬가지예요. - P53

씨앗은 누군가의 발명품이 아니라 수백만 년에 걸친 자연의 진화와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인간 공동체의 진화의 결과물이에요. - P56

자그마한 씨앗은행들이 볼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씨앗은행의 가치는 엄청나요. 하나의 씨앗에서 수십 개, 수백개의 열매가 달리고, 이 열매들은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니까요. 그리고 씨앗은행에서 보관하고 나누어 주는 토종 씨앗들은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정직하게 보여 주거든요. ‘콩‘이라고 써 있는씨앗을 심으면 ‘콩‘이 열려요. 박테리아 유전자도, 독성 성분도 아닌 그냥 ‘콩‘만 먹을 수 있다니까요.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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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특히 무엇보다도 음악) 안에서 우리는 ‘의지‘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관심과 노력을 잊는다. 쇼펜하우어는 그럼으로써 우리가 자신을 잊고,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 행하는 명상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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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기독교를 떠나려면 인류 역사에 의미가 있다는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는 인류의 역사에 궁극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인류 역사란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일련의 자연적인 순환이었다. 인도에서는 인류 역사란 무한히 반복되는 꿈의 집합이었다. 인류 역사가 반드시 의미를 가진다는 관념은 기독교의 편견에 불과하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인류‘의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인생은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각 인생들의 알 수 없는 총합을 뜻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삶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의 삶은 비루하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역사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구름의 모양에서 규칙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같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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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는 어질지 않으며만물을 추구(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 인간이 지구의 균형을흔들어 댄다면 짓밟히고 팽개쳐질 것이다.  - P56

철학은 인류에 대한 종교적 이미지에 진보와 계몽이라는 휴머니즘의 가면을 씌워 그 이미지를 계속 재생하는 가장무도회 노릇을 해왔다. 가면 까발리기를 가장 잘 하는 철학자조차 결국에는 가면 쓴 사람이 되었다. 가면을 벗겨서 우리의 동물적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동물들은 태어나 짝을 찾고 음식을 구하다 죽는다. 그게 다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다르(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인격체person며,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다른 동물은 자신의 삶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지만 우리는 의식적conscious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러한 이미지는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의식consciousness과 자아selfhood와 자유의지freewill며, 이것들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모든 생명체보다 우월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라는 뿌리 깊은 믿음에서 나온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이러한 견해가 오류임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 삶은 의식적인 자아의 활동이라기보다는 분절적인 꿈의 조각들 같아 보인다. - P59

신경이 쓰이는 중요한 문제들 중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삶에서 가장 중차대한 의사 결정 중많은 부분이 우리가 의식할 새도 없이 내려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인류는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자기 존재를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는 신에 대한 비이성적 믿음 대신 인류에 대한 비이성적 믿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가진 신념이다. 그런데 기독교와 휴머니즘의 공허한 신념을 버리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신, 불멸, 진보, 휴머니티를 읊어대는 이 배경 음악을 꺼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이해하고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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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들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다. ...어떤 방식이건 전통을 되살리는 일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더하는 일이다. 과학이 좌우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아무리 원한다 해도 과학 이전의 세계관으로 돌아갈 수 없다.
... 과학은 희망과 검열이라는 두가지 필요를 충족시킨다. ... 사람들이 진보의 희망을 붙들고 있다면, 그것은 진보를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희망마저 놓았을 때 닥칠 상황이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20세기의 정치적 기획은 실패했거나, 약속했던것보다 훨씬 작은 성취를 남겼다. 그러나 과학에서의 진보는 전자 제품을 사거나 새로운 약품을 사는 것과 같은 일상의 경험에서 늘 확인할 수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윤리와 정치가 주지 못하는 것, 즉 진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만이 이단자를 침묵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있다. 오늘날 과학은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다. 과거에 교회가 그랬듯, 과학은 주류를 따르지 않는 독립적 사상가들을 파괴하거나 주변부로 몰아낼 힘을 가지고 있다. - P36

이 동화같은 이야기에는 더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다. 과학의 기원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탐구 정신이 아니라 신앙, 마술, 그리고 속임수였다. 근대 과학은 자신의 적보다 우월한 합리성과 이성을 가지고있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에 근대과학을 창시한 사람들이 적들보다 정치적 수사를 사용하는 데 더 능숙했기 때문이었다. - P39

테크놀로지와 마찬가지로 과학도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달해 왔다. 그리고, 역시 테크놀로지와 마찬가지로 과학도 인간이 통제할 수 없고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세계를 드러내 왔다.
과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 면에서 인류가 다른 모든 동물과 다르다는 속임수를 지탱하기 위해 사용돼왔다. 하지만 사실 과학의 최고가치는 인류가 그들에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대로 인식하는 세계는 가공의 환상임을 드러내 주는 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43

그러나 소크라테스도, 어떤 다른 고대 철학자도, 진리가 ‘인류 전체‘를 자유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란 당연히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속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인간 종 전체로 보자면, 진리가 인간을 자유케 한다는 희망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휴머니즘에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믿음이 기독교의 가장 의심스런 유산 중 하나와 결합했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 모든 이에게 속한다는 믿음과 말이다.
근대 휴머니즘은 과학을 통해 인류가 진리에 다가설 수 있고, 그래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신념이다. 하지만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옳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마음은 진화적 성공에 복무하지. 진리에 복무하지 않는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과 다르다고 믿는 다윈 이전 시대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 P46

어느 경우든,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만이 사상들 사이의 경쟁에서진리가 승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상들은 경쟁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기는 쪽은 권력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자기 편에 가진 쪽이다.
...
다윈주의 이론은 진리 추구가 생존이나 재생산에 필요한 것은 아님을 알려 준다. 오히려 진리 추구는 생존과 재생산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영장류와 조류는 속임수를 일상적으로 행한다. 베른트 하인리히"에 따르면, 갈까마귀는 음식을 다른 곳에 숨겨 두고서는 엉뚱한 곳에 숨겨 놓은 것처럼 꾸민다. 진화 심리학은 동물의 상호작용에서 속임수가 매우 일반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 왔다. 우리 인간의 경우 가장 잘 속이는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사람이다. 로버트 라이트""""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속이기 위해 우리자신을 속인다"고 말했다.  - P47

참은 거짓에 대해 체계적으로 진화적 이점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진화는 "어느 정도가기기만(거짓)을 선택하고 그 거짓을 유지하기 위해 몇몇 사실들과 동기들은 무의식 속에 남겨 둔다. 미묘한 자기 인식에 의해 그 거짓이 파괴되지 않도록."로버트 트리버스"가 말했듯이, 진화가 택하는 것은 쓸모 있는 오류다. "자연선택이 더 정확한 세계를 전달하는 신경 체계를 선택하리라는 통념은 정신 진화에 대한 매우 순진한 견해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취향은 사치거나 무능력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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