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은 하나의 세계요, 사멸한 동물이 살아 돌아다니는 과거의 주머니이다.  - P167

그들이 정말 이 방안에 있는 한 두 사람에겐 어떤 재난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어렵고 위험하지만 일단이 방에 들어오면 성역에 온 것 같다. 마치 윈스턴이 문진의 속을 들여다보며 그 유리 세계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일단 그 안에 들어가면 시간은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그대로다. 때로는 둘이서 도망칠 공상도했다. 그들의 행운이 영원히 계속돼서 나머지 생애에도 지금처럼 뜻대로 돼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캐서린이 죽으면 묘안을 써서 둘이서 결혼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함께 자살을 할까. 아니 슬쩍 숨어서 신분을 바꾸고 노동자의 말투를 배워 공장에 취직해서 뒷골목에 몸을 감추고 살까. 그러나 이것은 모두 넌센스다. 그들 둘 다 이를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도피할 수 없다. 실제로 가능한 단 하나의 방법인 자살마저 그들은 실행할 의사가 없었다. 하루하루에, 미래가 없는 현재 속에그냥 매달려 사는 것이 마치 공기가 있는 한 허파가 숨을 모아쉬듯, 어찌할 수 없는 본능인 것 같았다. - P169

당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요, 언제나 똑같을 것이다. 기껏 반항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남모르는 불복(服), 잘해야 몇 사람을죽이고 몇 가지를 부숴 보는 고립된 폭력행위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녀는 윈스턴보다 훨씬 예민하고 당의 선전에 넘어가지 않는 편이다. 한번은 그가 우연히 유라시아와의 전쟁에 관해서 말을 꺼내자 그녀는 자신이 보기에 전쟁은 현재 없다고 잘라 말해서 놀라게 했다. - P170

그녀는 언제 좋아하고 언제 경멸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으니 그것이면 된다는 것이다.  - P174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정상적이다. 마치 한 알의 곡식이 소화되지 않고 새 몸뚱이를 거쳐 탈없이 그대로 나오듯, 뒤에 아무런 찌꺼기도 남기지 않으므로 그들이 무엇을 삼키든 목을넘어간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해로움도 줄 수 없는 것이다. - P174

지금 일어난 것은 몇 년 전에 시작된 준비의 결과일 뿐이다. 첫 단계는 남 모르는 무의식이었고 둘째 단계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을 말로 옮겼지만 이제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애정성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는 그것을 각오했다. 결말은 시작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경악할 만한, 더 정확히 말해서 마치 죽음을 시식하는 듯한, 이제 다 살았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 P177

당이 행하는 무서운 일은 물질세계에 대한 인간의 힘을 모두 빼앗아가는 동시에 단순한 충동이나 감정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설득시키는 것이다. 일단 당의 손아귀에 들어가기만 하면 느낀다든가 못 느낀다는 것, 한다는 것과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자 그대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그에게 일어난 일은 사라지고 그와 그의 행위도 다시 알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역사로부터 깨끗이 지양(止揚)되어 버린다. 그러나 두 세대 이전 사람에게는 역사를 변경시키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그리 중요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사사로운 충성심으로 살았고 이를 회의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 관계였고 죽어 가는 사람에게 포옹하고 눈물 흘리고 위로를 하는 등 전혀 무익한 행동도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 P183

"자백을 말하는 게 아니야. 자백은 배신이 아니야. 자백을 하든 안하든 그건 관계없어. 감정이 문제지. 그놈들 때문에 내가 당신을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것이 정말 배신이야."
그녀는 되씹어 생각하더니 마침내 "그럴 수 없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어요. 당신이 무엇이든 결국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 속까지 지배할 수 없거든요."
"정말이야." 그는 약간 생기가 돌았다. "당신 말이 옳아. 사람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 보람있다고 믿는다는 자체가 별다른 소득은 없다 하더라도 그놈들을 패배시키는셈은 되는 거지."
- P185

어떻든 사실은 숨겨 둘 수 없다. 심문으로 알아낼 수도 있고 고문으로 족쳐낼 수도 있다. 그러나 목적이 살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라 할 때 그런 것이 궁극적으로떤 차이가 있는가? 그놈들은 우리 감정을 바꿔놓을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도 아무리 원해 봤자 그들의 감정을 바꿔 놓을 수 없다. 그들이 우리가 한 행동이며 말이며 사상을 빼놓지 않고 세세히 다 케낼 수 있다 하더라도 깊은 속마음은, 우리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신비로운 속마음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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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목구멍이다. 그에게서 나오는 건 단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말은 아니다. 그저 오리 울음처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소음이다. - P64

그가 갖추지 못한 것은 절제와 무관심과 일종의 우매성이다.  - P65

열성만으로는 안 된다. 정통성이란 무의식적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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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해, 혹은 과거를 향해, 사고가 자유롭고 인간의 개성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고독하지 않을 시대를 향해, 진실이 존재하고 한번 이루어진 것은 없어질 수 없는 시대를 향해.
획일성의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로부터, 대형의 시대로부터,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 축복있으라!
"나는 이미 죽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고, 지금 그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되었다. 모든 행위의 결과는 그 행위 자체 속에 포함된다. - P36

그리하여 나날이 시간시간마다 과거는 현재의 것이 돼버린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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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요? 나는 되물었다. 네? 어떤 장소여도 좋고, 어떤 시간이어도 좋아요. 어떤 사람도 좋고요. 선뜻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글쎄요・・・・・・ 그러자 아감이 말했다. 잘 생각해봐요 그리고 그곳에 가요. 몸은 여기에서 귀를 뚫고 있지만, 영혼은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요. 지금 따위는 까맣게잊을 수 있는 어디론가로요.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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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문화적이고 문학적이 된다는 것이 진보와 해방을 의미했지만 점점 자본과 체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행위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안타까운 것은 ‘문화의 덫‘에 걸린 인간은 분노나 슬픔에 둔감해진다는 거예요. 분노하고 슬퍼할라치면, 문화라는 바셀린 연고가 자본과 기술 문명에 얻어맞고 찢긴 상처에 살포시 내려옵니다. - P117

자본주의 체제의 많은 작가가 그렇듯이 빌 헤일리·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가 ‘먹튀‘였다고 저는 의심하고 있는 거예요. 이들은 어디든 침투해서 꿀을 빨죠. 그러나 무너진 세계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요. - P118

하지만 인간의태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자립의 환상은 더욱 붙잡아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거치고도 무너지지 않은 존재론적 한계와 처음부터 부딪혀볼 생각도 않고 체념적으로 수용된 한계는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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