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연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1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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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난 새 새끼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로도
노려봄 직하지만, 깃털이 다 자란 새 앞에
그물을 치거나 활을 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지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연옥편은 신곡 중 호불호가 상당히 심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첫째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너무 지루하고 길게 쓰여져 있으며, 두번째로 지옥 특유의 스릴과 잔혹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읽어보니 연옥편이 나로선 제일 재밌는 부분이 될 듯하다. 그 두 가지 문제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긴 했지만, 베르길리우스를 반가워해서 얼싸안으려는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 수록 베르길리우스가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선명히 드러나서 다른 모든 문제를 덮어주고 있었다. 지옥편에선 단테를 질책하고 가는 길을 재촉하기 바빴던 그 베르길리우스가 말이다! 중간에선 급기야 단테마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게다가 '재물에 욕심내지 말고 의로움에 굶주려 살지 말라'는 메시지가 반복될 수록 점점 단테가 열혈적인 인간으로 변모되어서 그게 또 재미있었다. 이마에 새겨진 P(죄를 상징하는 글자)가 하나씩 지워져서 그랬는지 아님 사후세계에 익숙해져서 그랬는지 미지수이다. 특히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장면은 굉장했다. 단테가 연옥에 있는 와중에서도 두 강 사이에서 죄를 씻어주는 역할을 하는 어떤 여자에게 한눈을 팔았는데 그게 하필 베아트리체 재회 장면과 겹쳐져서 그녀에게 딱 걸린다. 그래서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호되게 혼낸다. 다 큰 남자인 단테가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 쓰러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천사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로 ㅋㅋㅋ 현재 서울로 가는 버스가 된통 막혀서 상당히 지체되었음에도 나는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모름지기 지옥과 연옥을 벗어나 구원에 다다르려면 일곱 개의 대죄의 근원인 재물 욕심과 쓸모없는 행복을 추구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함을 이 책은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절조없이 욕정에 이리저리 한눈파는 인간들은 베아트리체 같이 다부진 누님에게 호되게 엉덩이를 얻어맞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눈물을 질질 흘리게 되리니 ㅎㅎㅎ

 단테가 직접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고, 첫사랑을 천국의 길잡이로 넣었으니 보나마나 잘난 척을 해대며 그들의 만남을 꽃 투성이로 미화시켜 버리리라 멋대로 짐작했었다. 찜찜하고 씁쓸한 기분이었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될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서 지옥 의외의 장은 일부러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예상은 통쾌하게 빗나갔다. 이래서 작품은 보지도 않고서 지레짐작하면 안 되는구나... 왠지 머쓱해진다.

 

 

P.S

아이올로스가 시로코를 놓아 보낼 때
키아니 해변의 소나무 숲에서 가지에서 가지로
지나다니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걸 명문장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제타건담에서 나오는 유명한 적 이름이 팝티머스 시로코이기 때문.
일상생활불가...
역시 보라색 머리가 진리입니다 밍나 외쳐요 보오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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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기원 랜덤 시선 23
조연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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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야외

계절풍 탓이다. 아빠에게 척추 부근을 얻어맞고 눈물 글썽이며, 이건 여행인데, 떠나온 건데, 어째서 떠난 것들이 모두 부러운 걸까, 생각했다. 좁은 바늘귀를 가진 빛의 기둥에 기대어 창은 더 이상 얇아져서는 돌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전신주와 변압기의 수역. 바닥에는 잠든 선단. 포플러의 혀가 만드는 풀무질. 한 묶음의 거품알들이 모두 방계로 흩어져간다. 가끔 약산성 눈물이 여공들을 싸구려 은박지로 포장해주었다. 너무나 많은 여행이 달력 밖의 길을 택했다. 구름 아래 흐르는 더러운 물을, 달의 바다에 떨어지던 태양의 물을, 나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상수리 숲에서 물결 소리를 듣기 전까지 나는 윤회가 꼭 둥근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술 마시고 읽었던 적은 있었지만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 시는 문장이 정말 아름답고 좋았다. 특히 여성에 대한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문장이 아름답게 느껴져서 느긋하게 읽어보고 싶었다. 왠지 일본어 문체 같은 단어배열 때문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왠지 읽는 게 쉽지 않았다. 번번히 '접속사로 보이는 부분'을 틀렸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었고, 발음이 꼬여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착오를 몇 가지 읊은 다음엔 두세번 확인하면서 읽게 되었다. 이 시를 읽은 문학평론가의 후기를 보고서야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인은 일부러 이런 장난을 쳤다. 문학평론가가 지적한 '구름 속엔 얼음 고치처럼 단단히 물고기 울음만 떠다녔다' 구절은 나도 틀렸었다. 시 한구절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는 습관을 지닌 나 정도가 아니라면 쉽게 '단단한'으로 읽고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시인은 어째서 이런 장난을 쳤을까? 책을 의무감으로, 혹은 자기 과시를 위해 속독을 써서 읽으며 느릿느릿 조용히 질문을 던질 줄 모르는 요즘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리고 싶었던 것일까?

 (이 시의 말대로 그렇게까지 독서를 하는 건 아니지만, 옛날 집에 컴퓨터도 없었고 고독함을 쫓기 위해 책을 볼 땐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책 읽기를 그만두는 게 좋겠다. 이건 노역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만두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늦었다고 본다. 그 당시엔 집에 있는 책을 모두 읽었었으며 총 몇 권이었는지 세보지도 않았다. 일기를 매일마다 썼으니 데이터 수치화 할 수 있었겠지만 중학교 때 다 버려 버렸다. 그저 부모님이 밥 먹으라고 다그치거나 때리면 그제서야 밥을 먹었고 친구들이 집에 와서 날 질질 끌고 밖에 나와서야 놀았다. 그런 시절이었다.)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게 시의 내용들은 엄청나게 진중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의 제목부터가 '근친의 집'이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구절, 어떤 사람이 자살하는 구절은 수없이 나와있다. 아무리 눈치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금방 눈치챌 수 있는 구절이다. 하지만 시인은 여러 등장인물을 사용한다. 연령대도 할머니부터 약간 연상인 여성에 소녀까지 다양하다. 약간 연상인 여성은 대게 '누님'이라고 부른다. 나도 매력적인 여성은 언니가 아니라 누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시인도 같은 부류가 아닐까 싶어 몹시 반가웠다. 일상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약간 붕 떠있는 그 분위기가 몹시 좋았다. 개인적 이야기를 사회 문제로 부상시키는 그 추진력은 더욱 좋았다. "왜 요즘 시인은 사회적인 시를 쓰지 못하는가" 지적하는 꼰대들에게 조소를 날리는 느낌이랄까.

 아직까지도 이름을 선명히 외우고 있는 내 첫사랑이 생각났었다. 애인이 30명도 넘게 있다던 그녀는 팬티를 그냥 입는 건 '더럽다며' 꼭 팬티라이너를 차고 나서 팬티를 입었었다. 그것도 하루에 한번 이상 갈았었다. 사랑에 눈이 먼 내가 보기에도 그 행위는 엄연한 환경 낭비였다. 더러운 인간관계는 끊지 못하는 주제에 구강성교 같은 건 평생 꿈도 못 꿀 그녀를 떠올리며, '그녀도 많이 힘들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이 시의 겨울을 보면서 그녀가 좋아했던 하얀색, 팬티라이너 색깔을 떠올렸었다. 이전 같았음 이런 쓸데없는 기억을 떠올린 날 저주했을텐데. 사람은 변하는 것인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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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무는 곳 생각 멈추는 곳엔 늘 네가 있더라
노은아 지음, 이인호 사진 / 강단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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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께
사랑해요

그 말
한마디만 전했었더라면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생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
나 당신을 뵈옵거든

그때는 꼭

 

 

  

겉으론 시집이라고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대게 SNS에서 누구나 쓸 수 있는 짧고 간결한 문장들이 비유도 없이 직설적으로, 소박하게 쓰여져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큰 주제로 쓰여져 있지만. 

 

 

 주제를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에 맞추려는 것일까? 아님 다른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배려일까? 분명 결혼도 하신 것 같은데 신기하리만큼 자식 이야기가 없다. 과거에 대한 회상도 자신의 유년 시절이라거나 10년 전쯤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일들에 맞춰져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상처뿐이라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작가가 태어나려 했는데 제왕절개를 할 병원이 근처에 없어서 수원까지 가서 낳았다 한다. 그런데 그날 폭설이 와서 길이 끊기는 바람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인 작가를 눈보라에 노출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꼼짝없이 병원에 갖혀 있었는데 그동안 부부가 운영했던 양계장은 사고로 폐사되었고 조수로 일하던 청년이 전재산을 빼먹고 도망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술로 세월을 허비하다 중장비면허를 따고 농사일 등으로 새출발을 했다고 하니 작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 사실을 전해듣지 않았나 싶다. 작가의 인상에 매우 깊이 남은 사건이었을 테지만, 어머니를 잃은 이후 더욱 아프게 남았을 상처이리라 생각한다. 자신의 남다른 출생?에 대한 죄책감과 둘째 여자아이라 쉴새없이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던, 무기력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억울함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는 데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여 그녀에게 한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시집은 그런 트라우마를 추억으로 남기려는 부단한 노력을 담고 있다.

 어떤 분이 시집을 찾길래 이 책을 추천하는데 몇 장 훑어보다 "나는 나이도 많이 먹었고 이런 일들에 대해선 충분히 알고 있다. 좀 더 수준 있는 시를 읽고 싶다."라고 말하는데 우스웠다. 대체 수준 있는 시란 어떤 시인가. 자신도 무언지 정확히 모르는, 사전에서나 나올 법한 비일상적 단어들을 마구 나열하는 것? 아님 시인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만 알고 있을 법한 추상적 비유를 남발하는 것? 하지만 잠시 이 할머니를 이해하려 해 보자. 작가의 경험 자체는 확실히 독자들 모두의 가슴 속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지만,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택 시인은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을 씻기며 그들을 최대한 올바른 길로 이끌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그런 구절을 부모님께 읽어드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도중에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건 아니지만, 아버지는 집안의 가난 때문에 4살 때부터 중학생 정도 될 때까지 남의 집에서 컸다. 나 혼자 있을 때 이 시집을 읽긴 했지만, 만일 아버지에게 이 시집을 읽어드렸다면 그 할머니나 심지어 나 같은 독자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그 할머니는 어린 시절 그래도 어머니 없이 자라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게 아닐까 싶다. 자신에게 흥미가 가지 않는 시집을 '수준 낮은 시집'으로 보는 건 그 자신의 수준을 스스로 낮추는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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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에게 묻노라 겨레고전문학선집 이규보 작품집 6
이규보 지음, 김상훈 외 옮김 / 보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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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도다 자기를 돌아봄이 어렵도다.
성인군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우리.

자기 몸 보기를 남의 몸 보듯
행동거지를 하나하나 살피라.
자기라고 조금도 아끼지 말아야
자기를 돌아본다는 말 참뜻을 알리.

비유하여 내 얼굴이
거울 속에 있을 때는 남의 얼굴 같나니
남의 얼굴을 보고야
밉고 고움 모른다 할 사람 있으랴.

그것마저 알지 못한다면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지.
수많은 선비들 마음속에 새겨 두게
자기를 돌아보는 건 소중한 것 자기를 돌아보게.

 

 

 물론 글쓰는 사람들이 다들 술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과음하다 고막이 터진 시인도 있다고 하는 만큼 그 계열은 예로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문학계의 술타령은 이규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후반대에 나오는 설명과 '누가 더 미쳤는가?'에서 시작하여 '내가 제일 미쳤지'로 끝나는 산문에 의하면 이규보가 칠현을 자청하는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접하고 인생의 다크한 면을 알게 되고 '그들과 술을 접하면서부터' 시의 미학과 중심을 본격적으로 다듬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시로써 진리를 그려내려 했다. 이는 강원도에 부임하는 사람에게 동해의 경치를 시로 써서 전달해달라는 그의 간청이나, 시로 쓰면 초상화보단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람에 대해 알려질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생각에서 표현되었다. 이 책은 이규보 작품집의 두번째에 속하니, 그의 본격적인 작품은 동명왕의 노래를 참조하길 바란다. 조물주에게 묻노라에서는 이규보의 미학과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논하며 아주 방대한 세계관을 피력한다.


 

  

 역시 재밌는 건 술 이야기지만...

 

 이 책을 보면 은근히 자신의 장기를 뽐내는 방법이 드러나서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구시마문>, 즉 시 귀신을 꾸짓는 글에서는 자신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며 만들어낸 시들이 한도끝도 없이 많다며 뻐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은근히 다른 사람들에게 시 귀신이 씌일 경우와 비교하는데, 내용인즉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시 귀신이 씌일 때랑 달라서 출세의 수단이나 자연의 경관을 칭찬할 때만 쓰인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중국 명시인의 시를 베끼는 것만 전념하지만, 자신은 '쓸데없이 망령되어 고독하게' 시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 또한 생각해보면 '혼자서' 고려 특유의 시를 만들어내는 자신에 대한 자화자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언뜻 자기비하처럼 보이지만 속에 들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실루엣처럼 드러내어 사람들의 감탄과 웃음을 자아내니, 정말 훌륭한 풍자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허영에 찬 사람들을 정말 싫어했던 듯하다. 그가 쓴 서평 중 우리나라 평론가?에 대해서 언급한 게 있다. 평론가는 중국 명시인을 찬송하면서 "어떤 중국 사람이 '나는 사람에 대해 칭찬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닌데 왠지 이 중국 명시인만은 좋다'고 말했다 한다."라는 식으로 글을 썼나 보다. 이규보가 그 평론가를 맹렬하게 비난하며 3가지 논리를 만들어 내는데, 다음과 같다.

 

1. 자신이 자신의 말로 그 중국 명시인을 칭찬하지 그러느냐.
2. 이 중국 명시인은 누구나 인정하며 따라서 새삼 칭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뻔한 사람에게 이 정도로 낯뜨거운 칭찬을 해대니 우리나라가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3. 대저 남을 잘 칭찬하지 않는다는 건 인간을 싫어한다는 혐오의 표시다. 그 어떤 중국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의 말실수를 굳이 거론함으로써 평론가는 남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이 있는 듯하다. 돈을 많이 들인 애니메이션, 잘 쓰는 작가의 글이 좋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좋고 나쁨'을 '옳고 그름'으로 거론함으로써 자신이 평론가나 된 것처럼 행동하는 인물들이 더러 보인다. 이 블로그에서 예전에 법정스님과 법륜스님, 그리고 이병률에 대해서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상당한 욕을 먹었었다. 그런데 요새 유명한 시인들이나 작가들이 그들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을 한 이후부터는 그들에 대한 '숭배자'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고 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이 유명함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치고 인생이 잘 풀리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 될 일. 아직도 죄와 벌같은 러시아 소설과 우리나라 소설을 비교하며 '우리나라 소설은 광고효과에 의해 잠깐 빛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강 작가같은 분은 이미 맨부커 상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분이며 시대는 다르지만 이규보 같은 천재시인도 우리나라에 있다. 대체 우리나라는 무엇을 더 바라는가? 노벨문학상도 순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대체 언제 깨달으려 하는가? 이규보는 천대만대가 지나도 우리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줄 글을 썼다. 이 글을 읽으며 이규보가 끊임없이 주장하는 진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우리 모두 가져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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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민음의 시 53
사이토우 마리코 지음 / 민음사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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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깨만이 되며 거리에 넘친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되며 우리를 싣고 달린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되며 타닥타닥 걸어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으로 남아 서 있다

사람들이 어깨만이 되며 부딪쳐 간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되며 우리를 버리러 달려간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되며 넘어져 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 남아 짖는다
어깨 너머 잊혀진 달이 헐떡거린다

이 어깨에는 그림자가 없다

 

 

 시인의 글로만 봐서는 이미지가 정확히 이렇게 생겼다. 실제로 책 표지의 사진도 초미인이심 ㅎㅎ

 

 방송에서 한 부분은 생략하고 잠깐 이야기하자면, 이 시인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선 녹색의 기운이 상당히 충만하다. 미루나무는 글쓰는 사람들 누구나 좋아하는 나무인가보다(...) 한국어의 '나무', 일본어의 '키(나무)'라는 단어를 비교하면서 혼자서 즐거워했을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여성이 산책을 하기 시작한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영국에선 여성에서 재갈을 물리기도 했다는 일화는 요새 상당히 회자되고 있지만 그때엔 일상이었다. 지금은 섬에서 태어나 살던 여성이 (삼면이 바다이고 다른 한쪽은 건너갈 수 없지만) 적어도 대륙과 연결된 다른 나라까지 바다를 건너 제법 먼 산책을 나왔다. 밀폐된 섬에서 여성은 얼마나 제약을 받았을까. 한국 시인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의 주위의 눈은 얼마나 매서웠을까... 살았던 시대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시인이 거닐고 시를 쓰고 했던 곳을 직접 겪기 위해서, 그녀는 한국에 왔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목도한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에 기가 꺾이긴 했지만, 그러한 비극이 없었다면 윤동주의 시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시인과 이 시집을 읽는 독자를 같이 감동시키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한국어가 다소 서툰 점이 있었지만 그 점이 오히려 시를 더 빛나게 해주었다. 저 '어깨만'처럼 말이다. 내 시집만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쇄소의 잘못 때문에 군데군데 짤린 시들이 많아서 안타까웠다. 보기 드문 시들이었는데 잘 출간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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