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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목록 ㅣ 창비시선 381
김희업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문득
문득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찾아나서기로 했다
태양이 낙타의 걸음을 느리게 조절해놓은
아프리카로
갔으나
겨우 파리밖에 보지 못했다
세렝게티 초원에선
마라 강을 건너가는 누떼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다
별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다
그는 멀리 못 갔을 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득이란 놈은
혹 성질 급한 생각이나 느낌 앞세워
느닷없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렇다고 당황하지 마라
노크를 하면 망설이지 말고 영접하라
뜻밖에 생각 떠올라 환성 지를 때처럼
평소와 같이
엉뚱하게
제 발로 찾아올지 모르니
기다리는 수밖에
쉽게 눈에 띄지 않거나 섣불리 놓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곁을
피해갈지도 모를 일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6/08/17/10/lotus5050_0238807016.jpg)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6/08/17/10/lotus5050_0827669802.jpg)
마치 김희업 시인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아이돌 세계를 지켜보는 프로듀서같았다. 자신이
어려운 시간을 겪었고, 그 경험을 지금도 겪어내고 있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자신처럼 자신과는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음에
그는 놀란 듯하다. 인상깊었던 시 문득에서는 그런 기운이 그닥 나지 않지만 그의 시에선 전반적으로 호러 영화에 나올 법한 소재들을 사용했다.
에스컬레이터가 나오는 시를 봤을 땐 그 시의 날카로운 섬뜩함에 주춤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힘든 경험을 암시만 할 뿐 시 전반에 드러내지는 않는다. 여성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지만 동시에 여성이 풍선껌 부는
모습을 우주를 창조해내는 빅뱅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서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이번 시의
소재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이니 자신은 무대 중심에 세울 게 아닌 소품이나 커튼으로 가린 무엇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그러나 어떨 땐
정면으로 드러나는 몸뚱이보다 실루엣으로 어렴풋이 나타나는 정경이 더욱 호기심을 동하게 한다. 그의 첫번째 시집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는 두번째
시집에서 더욱 훌륭하게 자신의 삶을 그려냈는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양비론을 펼치거나 양쪽 다 의견을 들어보려
한다. 그러나 무조건 멀찍이서 지켜본다고 해서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진 않을 것이다. 명백하게 잘못을 했으면 어떤 형태로든 벌을 주어야 하고
신통한 표현을 했다면 그 표현력을 직접적으로 칭찬해주어야 할 것이다. 간혹 자신이 사고 싶은 만화책을 가리키며 "이 책을 사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이게 뭐에요?"라고 물어보는 아이를 본다. 분명 그는 초등학생이고 그 책과 캐릭터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아이를 어떻게 훈육해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부모를 상기시킨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똑바로 제시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이 세상에선 너무나
많다. 왜 그런지 생각해봤다. 첫번째로 자신이 속으로 고집하는 게 틀렸다는 걸 무의식중에 알고 있지만, 자신의 재산이라던가 권리 등이 걸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그 책을 사는 게 부모에게는 불가능하지만 그 책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둘째로, 자신이 무언가를
옳다고 주장하다가 남에게 반박을 당할까봐 눈치를 보는 경우다. 보통 사람들을 편견없이 두루 사귄다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집착 현상인데, 극단으로
치우친 사람들에게 거센 항의와 미움을 받으면 그 눈치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셋째로, 쓸데없는 지식의 범람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다. 이런 경우는 될 수 있는 한 모두가 최대한 피해를 보지 않고 생명을 존중하는 길로 가야 하건만, 이 부류는 퍽 둔감해서 간혹 자기
자신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 즉 인간임을 까먹는 듯하다. 물에 빠진 인간과 개를 본다면, 우선 둘 다 구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걸
욕심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지독하게 욕심이 많거나 혹은 머리가 텅 빈 멍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에서는 산에 사는 다람쥐를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 그러나 그의 무언과 정적에는 사랑이 들어있다. 우리 환경이 아무리 오염되어도 적어도 생명이길 포기하지는 말자는 메시지가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