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해우소 문학의전당 시인선 191
서효륜 지음 / 문학의전당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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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갑작스레 죽어버린 돼지 한 마리가 베풀어준 잔치에 삐쩍 말라 비실거리던 황구도 졸지에 호강을 했다 온몸 번지르르하게 온 동네 암캐 집을 제 집인 양 싸돌아다니느라 황구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가 공유할 만한 경험이 있을까?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고대적부터 땀을 흘려왔고 결국 '대다수'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때부터 어쩔 수 없이 사용되어온 필요악 같은 무엇이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이것을 이 서효륜이라는 시인은 글쓰기, 그 중에서도 특히 시로 풀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한을 풀기 위해 굳이 이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굳이 장황하게 자신의 속사정을 풀어놓을 필요 없이 결론만 던져 놓아도 그럭저럭 이야기가 되는 축약성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시집에서 나오는 그녀의 시는 대부분 짧다. 그러나 그 짧은 시 중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꼭꼭 압축해서 담아놓았다. 마치 농축액같이 씁쓸한 맛이 나는 시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실비아 수수께끼처럼 보다보면 독자까지 힘들어지는 시는 아니었다. 처음에 나온 굴렁쇠 관련된 시가 둥글어지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상징하듯이, 마지막에 나온 시는 더이상 질문하지 않고 쿨하게 넘어가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독자에게 너무 깊숙히 물어보지 말라는 신신당부였는지 모르겠다. 과거가 복잡한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사랑시도 범상치 않게 썼지만, 빠짐없이 등장하는 '당신'이 한 사람이 여러 인물인지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버지를 애인처럼 쓴 것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애인을 아버지처럼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서 보면 시집 끝자락에 붙어있는 평론은 아무 의미도 없다. 적어도 서효륜의 시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진짜던 거짓말이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과거를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지는 책의 판매량을 좌우하겠지만, 그래도 책의 질을 좌우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아버지에 관련한 시를 높이 평가하는데, 평론가는 이상하게도 자꾸 명품 구두라는 시에 꽃혀서 한참을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 또한 당시 평론가가 겪은 일과 시인의 경험이 우연히 맞아떨어졌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불교에서 달팽이를 귀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읽은 시집들을 회상해보건대 은근히 불교를 믿는 시인들이 달팽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심지어 시에 대해선 걸음마 수준으로 읽고 있는 나조차 시집 제목으로 택하는 시인들을 둘이나 봤으니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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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2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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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여자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 여자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
스물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 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
발전소 같은 정열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그녀를 나는 미워하지 못하겠네
충남 당진 여자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처음 입술 비빈 여자와 공들여 아이를 낳고
처음 입술 비빈 여자가 내 팔뚴에 안겨주는 첫 딸 이름을
지어주는 것 그것이 내 평생 동안의 나의 소원
그러나 너는 달아나버렸지 나는 질 나쁜 여자예요
택시를 타고 달아나버렸지 나를 찾지 마세요
노란 택시를 타고 사라져버렸지 빨개진 눈으로
뒤꽁무니에 달린 택시 번호라도 외워둘걸 그랬다
어디에 숨었니 충남 당진 여자 내가 나누어준 타액 한 점을
작은 입술에 묻힌 채 어디에 즐거워 웃음 짓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없다고
후후 웃던 충남 당진 여자 어린 시절엔
발전소 근처 동네에 살았다고 깔깔대던 충남 당진 여자
그래서일까 꿈속에 나타나는 당진 화력 발전소
화력기 속에 무섭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까만
여자 얼굴 충남 당진 여자 얼굴 그 얼굴같이
둥근 전등 아래 나는 서 있다 후회로 우뚝 섰다
사실은 내가 바랐던 것 그녀가 달아나주길 내심으로 원했던 것
충남 당진 여자 희미한 선술집 전등 아래
파리똥이 주근깨처럼 들러붙은 전등 아래 서 있다
그러면 네가 버린 게 아니고 내가 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심으로 서로를 버린 건가 경우는 왜 그랬고
1960년산 우리 세대의 인연은 어찌 이 모양일까
만리장성을 쌓은 충남 당진 여자와의 사랑은
지저분한 한 편 시가 되어 사람들의 심심거리로 떠돌고
천지간에 떠돌다가 소문은 어느 날 당진 여자 솜털 보송한
귀에도 들어가서 그 당진 여자 피식 웃고
다시 소문은 미래의 내 약혼녀 귀에도 들어가
그 여자 예뻤어요 어땠어요 나지막이 물어오면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충남 당진 여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엠씨로도 그렇고 아예 방송계에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던 신동엽이 갑자기 다시 3사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그의 최고 경지에 다다른 섹드립이라는 이유가 크다. 그래서 한때 여러 남자들이 그의 드립을 따라했었지만 지금은 어쩌다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린 메갈 때문에 그런지 자중하는 분위기가 크다. 하지만 장정일은 무려 14년 전인 2002년 때부터 섹드립을 사용해왔음을 주시해야 한다. 아빠라는 시를 보면 맥도널드의 '소시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신동엽이 혹시 그의 아이디어를 이용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섹드립을 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몇몇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반미적 정치적 감정들이 들어간 단어들을 빼버리며 사용한 교묘한 점에 대해선 칭찬을 해야 하지만. 어쨌든 장정일도 그런 섹드립을 혼자서 창작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터득했겠지.

 

 일단 영미시 투의 문맥이 격렬하게 눈을 사로잡는다. 미국의 세계패권에 대한 격렬한 비난은 후반대부터 상당히 격렬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문법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망가뜨리는 게 독특하다. 미국 문화에 대해 통렬한 비난을 하는 와중에도 번역투에 대한 비난이 들어있지 않다. 물론 속 안동에서 울다라고 불리던 세일즈맨의 죽음을 담던 시에서는 우스꽝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아예 유서에 영어를 써두기는 했지만. 상당히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는데, 그렇다고 요즈음 주눅이 든 남자들 특유의 주눅듬이라거나 열등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책이 그렇게나 유명해졌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나라 교육체계를 거부하고 책을 많이 본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자신감은 물 속의 집이라는 시에서도 느껴지는데, 그는 명백히 이상의 시 가정을 패러디하면서 비꼬고 있다. 그가 바라는 물 속의 집도 문이 열리지 않지만, 물에서 눈을 들어보니 산 중턱에 집이 있었음을 알았으며 나르시스처럼 사람이 물 속에 집을 만들어 살 수 없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그러고보니 자신의 경계를 정해놓은 사람도, 자신을 찾으려 물 속만 계속 들여다보는 사람도 일종의 나르시시즘이 아닐까. 이런 식의 자기고백과 자기계발적 메시지를 계속 남김으로서 그는 대담하게 자신의 사상을 시 속에 전개해 나가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장정일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중졸 출신이니 그들에겐 딱히 꼬집을 것도 없을 것이다. 딱한 일이다. 요즘 일본에서 중졸 노동자에서 시작하는 고등학교라는 만화도 나오는데, 주인공이 좀더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걸 보면 이런 사람이 그래도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나라 지명을 적절하게 사용한 점도 내 마음에 들었다. 남쪽 지방의 이름이 많이 나왔는데 다들 기회가 있으면 여행하고 싶은 곳들이었으나 시에서는 비판적인 어투가 상당히 많았다 ㅋㅋㅋ 제주도 강정 하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고보면 지금 나름 엄청난 유명세를 탔지만, 예전부터 강정은 아는 사람들만 찾는 관광명소로 유명했던 듯하다. 전반적으로 더블린 사람들을 연상시키게 하는 리얼리티였으나, 한 번쯤은 나올 법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같은 게 등장하지 않은 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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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섬
세이머스 히니 지음 / 한겨레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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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션 아일랜드 중에서

9
'내가 빨리 내 주제를 알았던게 증오스러워.
난 증오한다 내가 태어난 곳을, 증오한다 모든 것
나를 유순하게 또 기어들어가게 만든 모든 것을,'
나는 면도 거울 속 반쯤 침착한 내 얼굴에 대고
소리쳤다, 잔치 중에
목욕탕에서 취한 사람처럼,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누그러져 또 혐오감을 느끼며.
마치 돌무덤 돌이 돌무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처럼.
마치 소용돌이가 연못을 개혁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마치 폭포수 아래 소용돌이치는 돌멩이 하나,
그 노반에서 부식되고 부식하는
그 돌멩이 하나가 스스로를 으깨어 내려 다른 핵심으로 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때 나는 생각했다 종족을 그들의 춤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 종족
왜냐면 그들은 사슴을 목도할 때까지 계속 춤을 추므로.

 

 

영문학을 전공할 때 흔히 바이킹들의 문학으로 알려진 베오울프를 번역한 사람으로 소개되는 셰이머스 히니. 헌책방을 갔다가 그냥 노벨문학상을 땄다는 분이 쓴 책이라고 해서 생각없이 산 낡은 책이 설마 베오울프를 번역한 이 분의 책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이름의 정체가 분명히 떠오르자 "아, 확실히 셰이머스 히니는 시인이라고 했지?"라고 혼잣말을 했었다. 

 처음엔 번역에 놀랐다. 원문을 제대로 살리느라고 노력을 했다는 김정환 시인의 인터뷰는 봤지만 단어의 배치 그대로 번역해서 실었을 줄은 몰랐다 ㅋ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매우 불편했겠지만 영문학도들은 이 책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영단어와 그 배치가 어떻게 되어있을지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그 때 김사인의 시시한 다방에서 출연하신 걸 봤는데 이런 번역 방식으로 셰익스피어 전집까지 도전하시고 계신 듯했다 우왘. 과연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개성적이라면 특정 수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리즈 하나 정도 소장할 가치는 있을 것 같다.

 시도 꽤나 이단적이다. 이 시가 나오기 전에 가장 맘에 들었던 시는 슬로우 진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유명해진 양주이다. (역시 같이 술 많이 접하시는 시인이 번역을 하셔서 단어와 문장이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게다가 영국 여왕을 암소라고 하는 등, 정치성향도 상당히 들어있다. "뭐야, 왜 계속 나에게 시로 사회참여를 하라고 강요하는 거야? 시팔 그럼 내 생각을 한 번 말해볼까? 너네 다 X같애!"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처음으로 짧은 시보다는 긴 시가 좋았다. 아무래도 이 시인의 특성같다. 그러고보면 긴 시는 힘들어서 짧은 시만 잘 써진다는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과는 반대된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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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목록 창비시선 381
김희업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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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문득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찾아나서기로 했다
태양이 낙타의 걸음을 느리게 조절해놓은
아프리카로 갔으나
겨우 파리밖에 보지 못했다
세렝게티 초원에선
마라 강을 건너가는 누떼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다
별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다
그는 멀리 못 갔을 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득이란 놈은
혹 성질 급한 생각이나 느낌 앞세워
느닷없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렇다고 당황하지 마라
노크를 하면 망설이지 말고 영접하라
뜻밖에 생각 떠올라 환성 지를 때처럼
평소와 같이 엉뚱하게
제 발로 찾아올지 모르니
기다리는 수밖에
쉽게 눈에 띄지 않거나 섣불리 놓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곁을 피해갈지도 모를 일

 

 

 

 

마치 김희업 시인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아이돌 세계를 지켜보는 프로듀서같았다. 자신이 어려운 시간을 겪었고, 그 경험을 지금도 겪어내고 있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자신처럼 자신과는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음에 그는 놀란 듯하다. 인상깊었던 시 문득에서는 그런 기운이 그닥 나지 않지만 그의 시에선 전반적으로 호러 영화에 나올 법한 소재들을 사용했다. 에스컬레이터가 나오는 시를 봤을 땐 그 시의 날카로운 섬뜩함에 주춤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힘든 경험을 암시만 할 뿐 시 전반에 드러내지는 않는다. 여성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지만 동시에 여성이 풍선껌 부는 모습을 우주를 창조해내는 빅뱅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서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이번 시의 소재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이니 자신은 무대 중심에 세울 게 아닌 소품이나 커튼으로 가린 무엇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그러나 어떨 땐 정면으로 드러나는 몸뚱이보다 실루엣으로 어렴풋이 나타나는 정경이 더욱 호기심을 동하게 한다. 그의 첫번째 시집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는 두번째 시집에서 더욱 훌륭하게 자신의 삶을 그려냈는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양비론을 펼치거나 양쪽 다 의견을 들어보려 한다. 그러나 무조건 멀찍이서 지켜본다고 해서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진 않을 것이다. 명백하게 잘못을 했으면 어떤 형태로든 벌을 주어야 하고 신통한 표현을 했다면 그 표현력을 직접적으로 칭찬해주어야 할 것이다. 간혹 자신이 사고 싶은 만화책을 가리키며 "이 책을 사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이게 뭐에요?"라고 물어보는 아이를 본다. 분명 그는 초등학생이고 그 책과 캐릭터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아이를 어떻게 훈육해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부모를 상기시킨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똑바로 제시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이 세상에선 너무나 많다. 왜 그런지 생각해봤다. 첫번째로 자신이 속으로 고집하는 게 틀렸다는 걸 무의식중에 알고 있지만, 자신의 재산이라던가 권리 등이 걸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그 책을 사는 게 부모에게는 불가능하지만 그 책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둘째로, 자신이 무언가를 옳다고 주장하다가 남에게 반박을 당할까봐 눈치를 보는 경우다. 보통 사람들을 편견없이 두루 사귄다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집착 현상인데, 극단으로 치우친 사람들에게 거센 항의와 미움을 받으면 그 눈치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셋째로, 쓸데없는 지식의 범람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다. 이런 경우는 될 수 있는 한 모두가 최대한 피해를 보지 않고 생명을 존중하는 길로 가야 하건만, 이 부류는 퍽 둔감해서 간혹 자기 자신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 즉 인간임을 까먹는 듯하다. 물에 빠진 인간과 개를 본다면, 우선 둘 다 구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걸 욕심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지독하게 욕심이 많거나 혹은 머리가 텅 빈 멍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에서는 산에 사는 다람쥐를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 그러나 그의 무언과 정적에는 사랑이 들어있다. 우리 환경이 아무리 오염되어도 적어도 생명이길 포기하지는 말자는 메시지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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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종교 -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백중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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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개신교는 역사적 고비마다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그 성장은 개신교 권력화로 귀결지어졌다. (...) 미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면,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선거정치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면? (...) 이런 가정이 시사하듯이 한국에서 개신교 성장은 '역사적 축복'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요새 메갈의 재미가 시들해져가고 있다. 남자들이 메갈을 공격한답시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통에 태클 상대가 되지 않는 이유가 크다. 이전에는 대학교 남자들끼리 단톡으로 이야기한 성적인 '농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화가 난 그 남자들이 스스로 단톡을 퍼뜨린 배후를 조사해봤는데, 정확히 그 인원 중에 범인이 있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범인은 그 대화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캡쳐를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장난으로 캡쳐해서 단톡에서 이런 대화를 한다고 자랑하기 위해 SNS에 올린 게 일파만파로 퍼져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SNS가 사회악이라고 욕하기 전에, 이 범인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악하지 않다고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데 주목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이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백중현 씨는 그저 기독교가 우리나라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정치에 불어넣은 악영향과 권력을 쥐기 위해 그들이 그동안 저지른 정신나간 행동이 이 책으로 인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액면 그대로 보여지게 되었다. 수많은 폭행과 폭언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믿을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동성애를 탄압하며 멀쩡한 사람을 좌파라느니 빨갱이라고 뒤집어쓰는 그 셋만으로도 기독교는 국가에 어마어마한 민폐를 끼쳐왔다. 물론 그들이 한 좋은 일도 많지만 솔직히 이들이 벌여온 일들을 보면 제로썸보단 마이너스에 가까울 것 같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반발심이 생긴다. 그럼 당신들은 왜 기독교인들의 과세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인들은 광장에 나가서 시위를 벌여 당신의 자유를 빼앗고 아마도 세금까지 대규모로 빼앗고 있다. 아무리 종교가 내리막을 걷는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쳐먹은 기독교가 쉽게 토해낼 리가 없다. 일을 해야 먹을 수 있듯이 권리는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야 한다. 진보 인사들도 보수가 주류인 기독교의 분위기를 바꾸던가 아님 단호하게 그 종교를 끊어야 할 게 아닌가.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굉장히 의미심장해서 재미는 있었지만 현재진행형인 문제들이 많아서 답답함도 증가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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