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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득 찬 책 -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ㅣ 민음의 시 137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06년 12월
평점 :
치한이 되고 싶은 봄밤
너의 이미지는
늘 봄밤이었어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지
불 질러 버리고 싶었어
네
화사함 뒤의 불순함
네 향기 뒤의 악취를
그건 쉬운 일이었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했어
정공법으로는 어림없는
일
나의 아킬레스건을
순식간에 도려내리라
뜻밖에도 급소는
곳곳에 있더군
그렇게 보였어
비수를 들이댈
때마다
스ㅡ윽 너는
그러나 너는
온몸이 수렁인 양
칼을 삼켰지
그래도 나는 다시
칼을 찔러 댔어
그러면
너는 다시
칼을 삼켜 버리는 거야
봄밤이었으니까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1010/pimg_7774821971503067.jpg)
90년대에 이어 불황이 계속 되면서 여성들의 불행도 계속 이어지는 추세로 이어지는지,
여성들을 마법소녀로 만들어서 싸움에 내보내던 양상이 점점 전투로 진화하고 있다. 갑자기 캐릭터가 변해서 1기의 로리로리 천연순수 마법소녀였던
나노하가 사람을 향해 주저하지 않고 대포를 쏘는 '마녀'로 된 게 본격적인 출발이다. 마도카 마기카 시리즈는 이에 이어서 빅브라더 스케일로
세상을 조종하는 호무라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단연코 세상이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외의 몇 가지 요소를 더 합쳐야
하는데, 그 중 두 개로 피해자가 된 여성들의 정보 제공, 그리고 '미러링'을 들 수 있다.
강기원 시인의 시집은 놀랍게도 성적 표현에 솔직하다. 고무장갑 같은 시를 보면 술자리에서 아저씨들이 하는 섹드립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 자신도
그 사실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면이 있는데, 그녀의 섹드립에 반대되는 '노잼'개그로 전남친의 개그를 끌어온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 같이 유식한
척하고 심사가 배배꼬이고 시커먼 농담은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기원 시인에게 돌계집이란 단어를 낙인처럼 찍은 건 누구일까. 같은
성별인 여성에게 입은 상처라면, 그래서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면? 그녀는 시집의 끝부분에서 마치 마녀사냥 시기에 화형을 당해 서서히
불타오르는 마냥 돌계집이란 단어를 곱씹고 있다. 아무리 남자들과 성관계 등 잘 맺고 잘 지내고 싶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이 사람에게 가슴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여하튼 그녀는 '빨간 시집'을 표방하여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 하나 받지 못하고, 한국 사람이라는 게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다는 점에서는 전쟁에
참전한 군인과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요즘 난 비장한 표정으로 일한다는 소리를 일터에서 많이 듣는다. 페미니스트 이전에 남성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여성으로서 살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