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잘못 날아왔다 창비시선 288
김성규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가 기르는 개를 쏘아라

며칠째 밥을 먹지 못했어 내가 먹은 밥을 녀석이 핥아 먹고 있어

녀석이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어 잠이 오지 않아 한 번 눈을 붙이면 다시 깨어나지 못할지도 몰라

동생이 맞던 주사기, 누나의 속옷까지 내가 버리려고 모아둔 것을 녀석이 물고 다녀

나를 볼 때마다 꼬리를 쳐 깨진 유리병을 머릿속에서 굴리는지 이빨자국이 눈동자에 퍼지고 있어

뇌 속에 새끼를 낳을지도 몰라 그러면 내가 잃어버린 더 많은 것을 물고 오겠지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녀석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나를 약올리지 못하도록

오늘밤 내 머리를 쏘아야겠어 녀석도 나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깊은 잠에 빠지면 나도 눈에 핏발을 세우지 않아 굶기지 않은 개는 주인을 물지 않아

 

  

 분명 시는 스토리가 짧다. 옴니버스 식의 구성이 아니라면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주인공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 두 편 중 하나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시집은 이게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주인공 카미죠는 애니메이션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해~!"라고 외치고, 또 다른 주인공 절망선생은 애니메이션 처음부터 끝까지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들 앞에서 자살쇼를 벌이며 결국 모두와 같이 하늘에서 동반자살하듯이 떨어지며 미사일들이 되는 것 같은 결말을 연출한다. 그러나 깔끔하고 약간 권태스런 남성의 미모를 이들은 지니고 있다. 또한 아름답고 젊은 여성들이 옆에 무지무지하게 꼬이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인은 면도를 하지 않으면 금방 텁수룩해지는 검은 수염을 계속 의식하고 있으며, 할머니와 누나를 포함해서 신세망친 여성들이 등지고 있으며, 결국 자기 자신조차 철저히 늙어가는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어쩌다 시에서 동물이나 사람이 죽지 않으면, 어디서 벌레가 새까맣게 튀어나 온 사방을 뒤덮는다. 시인은 중력에 개의치 않는 세상, 혹은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공중에서 목을 매달지 않으면, 도저히 땅에서 떨어져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람이 없는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본격적으로 세상을 혐오하는 것 같다. 유일하게 초월의 잠이란 시에서 글쓰기로 안도감을 찾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도 후반부에서 자신을 히키코모리라 표현함으로서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꾼다. 하긴 인생 살면서 모든 게 정답이 있고 해결책이 있을까. 핵발전소를 중단한다면 부족한 전력을 충당할 다른 대안이라도 있느냐 촉구하는 마피아들에게 시인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에서 떼어낸 '오물'을 던진다. 매우 근면성실하게 교훈적인 시를 쓰지 않으려는 그의 발버둥은 존경받을 만하다 생각한다. 독산동에서 반지하동굴을 만들다 죽은 시체들이 웃을 법한 밤에 읽기 좋은 시이다. 행복의 빛은 어쩌면 그 동굴 가장 안쪽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은 분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어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인형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왜 사랑하는 데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직감처럼 느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의: 위의 이야기는 제 20대 초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 전반과 중반 대부분을 차지했던 남자 아이와 헤어지고 나서 며칠 혹은 몇달 후에 남자 아이는 다른 여자 아이를 사귄다. 놀랍게도 혹은 이전부터 남자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어렴풋이 예감하며 몸을 떨었던 그 여자 아이와 사귄다. 조용히 SNS를 뒤졌거나, 아님 나와 남자 아이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친구 관계가 넓다고 공공연히 과시해 오던 어떤 친구에게서 듣고 싶지 않았는데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에게 질렸을 지도 모르고, 그 여자 아이의 눈이 좀 더 높아져서 결혼은 걔보단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람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남자 아이와 사귀었을 때처럼 말이다.

 

 

  

내부자들 영화에서 사실 하나 더 주목한 게 있는데 차마 어머니에게 고백할 수 없던 건 창녀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머니가 그 부분이 너무 끔찍하다며 몸을 부르르 떠셨기에 함구해야 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녀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그 영화에 반전을 일으킨 것도 그녀였고 몸을 바쳐 희생한 것도 그녀였으며 그 모든 일이 다 끝나고 그녀의 사랑하는 이병헌에게 동영상을 넘긴 다음 쿨하게 해외로 떠나간 것도 그녀였다. 얼굴도 예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불태울 수 있으며 전국에 혁명을 일으키고 운전도 잘 하는 그녀. 그녀는 영화의 말미에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안녕 내 사랑. 모든 연애가 그렇게 쿨하게 끝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거리의 여자가 되고 꼬리가 길어야만 여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현실이 슬프다. 이 책에서는 그런 성공을 거둔 사람이 프린세스 안나밖에 없다는 것도. 청부로 사람을 죽였으니(그것도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노아가 아닌 허세밖에 없는 핑크를 신뢰해서.) 그 지배의 쾌감도 어차피 짧겠지만.

  

무튼 내가 이 단편소설집 중에서 그나마 좋았던 소설은 포도 상자 속의 뮤리다. 내가 왠만하면 충격과 공포의 반전 소설 좋아하고 힐링 이런거 싫어하는데 아... 프린세스 안나가 너무 독하고 지독하고 군인한테 강간당하던 소설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도 너무 끔찍하고 진짜 ㅋㅋㅋ

 리제로 작가 사망하면 캐릭터가 불쌍해서 애도한다더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수아 누나 ㅋㅋㅋ 왜 캐릭터로 오우야 묵직한 미사일을 만들어서 펙트 공격하고 있어 차라리 죽여줘 쓰발 ㅋㅋㅋ 왠만하면 읽은 직후에 리뷰 쓰는데 이건 좀 생각을 정리하고 나중에 차분하게 썼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뒤숭숭하고 우리나라에 배수아라는 작가가 있다는게 감사하고 100페이지 남짓 되는 책 읽고 인생 다 산 거 같다 생각되는 건 처음이다. 진짜 늙어가는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원한 친구

이 시는 알아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 죽겠구나
오늘 밤이구나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저녁이 오고 밤이 오고 겨울이 옵니다 몇 개의 문장은 더 쓰입니다 겨울밤에 죽기로 결심한 사람은 장을 보고 돌아와서 차를 마시고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 있던 일을 다 적습니다
차는 천천히 식어갑니다 열은 원래 흩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저 사람은 집을 떠나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불이 꺼집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쓴다면 겨울밤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이 걷는 모습이 나오겠지요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
써 놓고도 구분이 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

오늘은 죽어야지, 생각하면서
씩씩하게 잘 걷습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몸이 굳어 갑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이 시는 끝이 날 겁니다

그러나 몇 개의 문장은 자꾸만 쓰이고, 자꾸만 걷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겨울밤은 자꾸만 추워지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몇 개의 문장은 더 쓰이지 않고

그래도 사람은 걷고 시는 계속되고 겨울의 밤입니다
차가 따뜻하군요

이 시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페북에서 자살하겠다고 글 올렸다가 사과하거나 글 삭제한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나는군요. 

 

 희지의 세계라는 제목이 미지의 세계 웹툰에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웹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 웹툰이 모종의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지자 책으로 발간된 것들조차 모조리 회수되었다.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황인찬조차 의도하지 못한 멋진 실수였다. 페미니스트를 자칭했던 문단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실패함으로서 멋지게 성공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미지의 세계 웹툰은 결국 세상에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웹툰 작가도 피해자인 10대 여성도 가해자인 남성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를 주제로 삼은 시집으로서 너무나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가.

 첫번째 시집에서 실연에 대한 깊은 절망이 묻어났다면 두번째 시집에선 사회를 이바지하기 위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 점에 대해선 나와 정말 똑같은 케이스인 듯하다. 단지 그는 이야기를 꺼낼 뿐이다. 그것도 남들이 침울하다고 기피하는 이야기를 자꾸만 꺼내고, 그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꾸지람을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사회를 바꾸는 히어로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꺼냄으로서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없다. 어차피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늙어가고, 선생님을 욕하던 사람이 결국 선생님이 되며,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시에는 서툰 점이 귀엽기도 하다. 어쩌면 자신에게는 이별에 관한 시가 주제에 맞는다고 체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황인찬만 소설과 이야기에 주목한 시를 쓴 건 아닌데 평론가 분이 너무 오바하시는 것 같다. 이전에 리뷰했던 글로리홀이라는 시집에서도 소설을 써라 소설을 어쩌고 하는 연작 시리즈가 있고, 이후에 리뷰할 김언의 시집 제목도 소설을 쓰자이다. 아무래도 시짓기를 가르치는 선생님 중에서 습관적으로 '시를 쓰라고 했지 언제 소설 쓰라고 했냐?' 식으로 꾸중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이래서 사람이 훈계를 적당히 해야 하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 서점원이 찾은 책의 미래, 서점의 희망
다구치 미키토 지음, 홍성민 옮김 / 펄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그런데, 여기서는 원래 사려던 것도 아닌 책을 늘 두세 권씩 사게 되네요. 하하하."

 

  

예전에 백수 3개월 생활했을 때 어느 동네 서점에서 일하려 한 적이 있다. 확실하게 거절당했다.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도 미혼의.

 

 결혼하면 그만두고(어차피 내가 그만 안둬도 자기들이 막 해고할 거면서), 힘들다고 질질 짜고, 최저시급 정확히 따지고 들고, 섹드립만 했다하면 씍씍대는 여자이니까.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기업 서점에 이력서를 냈다. 취직해서 잘 지내고 있다. 물론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는다 욕먹고 기타 갖은 수모를 당하지만 어쨌던 입사지원 때 여자란 이유로 면접부터 거절당하진 않았다. 처음엔 그 동네 서점에도 라노벨 알아보러 좀 다녔는데 지금은 발길을 끊었다. 이유 없이, 그냥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원인은 있었다. 동네 서점이라. 동네 도서관도 그렇듯이 난 동네 서점을 좋지 않게 본다. 아니, 더 안 좋게 본다. 그들은 이윤까지 따지기 때문이다. 교보문고나 알라딘이 대기업이라 욕먹지만 그들이 낫기도 하다. 슈발 있는 욕 없는 욕 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차별없는 취직을 시켜주잖어.

 

 

  

일단 단점부터 까고 시작하겠다.

 아무리 장사에 잇쇼겐메이를 강조하는 일본이라지만 서점에서 책 파는 거 가지고 카리스마라니 무슨 곰방대 피는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여성에게도 카리스마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저자는 전혀 책 파는 여성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알라딘 관계자도 지적했지만 그 외의 편협한 의견이 너무나 많다. 서점은 문화공간이 아니라는 둥, SNS로 자신의 서점이 취직하기엔 일이 너무 많아 별로라 하는 서점직원들의 지적이 짜증난다는 둥. 한 마디로 그가 마초이자 꼰대라는 데서 이 서적은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꼬우면 자신도 SNS를 하며 적극적으로 서점의 인터넷 홍보를 전개하면 된다. 그깟 자존심 때문에 트렌드를 거부하다니 분명 장사하는 사람으로서는 마이너스이다.

 역시 여기서도 열정페이가 문제다. 서점직원에게 서점을 방문하는 고객의 로봇을 만들어주게 한 것은 정말 아닌 것 같다. 자신이 로봇 만드는 법을 직접 연구해서 만들어주는 방법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단 말인가? 그리고 가능한 한 정직원으로 사원을 뽑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서점 일이 어렵더라도, 하물며 '커피 값을 줄이더라도' 직원의 임금에 대해 신경을 써준다면 직원들이 SNS에서까지 불평을 했을까? 서점 직원이라면 서점에 들어오는 모든 신간에 대해 파악을 해야 하는 건 맞다. 특히 서점에서 강조하는 책이라면 예의주시를 해야지. 하지만 노동을 집까지 끌고 들어온다는 문제도 분명히 있다. 오버워킹과 과로사는 최근 노사 모두가 걱정하고 신경쓰는 문제인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고 젊은이들만 탓하고 있으니 정말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과 서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글쎄, 반경 3미터 정도는 거리를 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귀하다. 나도 아무 지식없이 서점직원 일에 뛰어들었다가 잡지도 제대로 반품 못해서 출판사 직원들에게 한소리 많이 들었고, 매장을 청결하게 가꾸면서 내 방식대로 진열하는 방법을 너무 힘들게 연구했다. 이 책은 내가 몸과 정신에 상처입고 치받아가며 공부했던 걸 굉장히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어디서 서점일에 대해 제대로 배우기 힘든 상황에 처한 서점 직원은 의외로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서점 직원이란 직업을 미화하는 책이 많은 게 현실이고... 적어도 이 책을 접하면 서점 직원들에게 막말하고 편견을 뒤집어 쓴 채 접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자녀 혁명 -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메들린 케인 지음, 이한중 옮김 / 북키앙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여러분과 여러분의 결정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그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게 심하게 자기 감정을 상대방에게 강요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말입니다. (...) 어떻게 하면 그들이 여러분에게 아이를 가지라고 요구하는 대신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dd

 

  

내가 무자녀로 살기로 결심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동학과에 간지 3년 되었을 때다.

 물론 초등학교 때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확인해서 내 아이가 성장할 때 그런 애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면 그 애한테 폭력을 쓰거나 학대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나 막연히 다들 아이를 낳고 키우니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첫째로 아직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병에 걸려서 한동안 심적 방황을 했었다. 또한 이런 안정적이지 못한 국가에서 혹시라도 여자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겪었던 성폭행이라던가 왕따 등의 일을 그 아이가 또 겪게 될까봐 겁이 났다. 세번째로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몹시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나도 그렇고 내 미래의 남편도 재산이 그리 많진 않을 것 같았다. 네번째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주택에 차리는 동네도서관인데 그 일을 하려면 아이를 돌볼 시간은 많이 줄어들 것 같았다. 결국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으니 아이를 낳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라는 말을 그 당시의 남자친구한테 했었다. 그랬더니 그 남자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나중에 키우고 싶으면 입양하면 되지." 마치 내가 반드시 나중엔 아이를 키우고 싶어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듯한 말투여서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험난함은 그 이후부터였다.

 

  

직장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 말한 건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난 숨기는 걸 잘 못하는 데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엔 대놓고 말하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야 하겠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나는 '씀풍씀풍 아이를 낳아야지' 같은 말을 들었으며, '혹시 예전에 임신 경험이 있었는데 낙태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 중 아주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어머니에게 찍혔었다. 그 이후론 나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 그 자체로 나는 어린 아이 취급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일하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그러나 아이가 아플 때 조퇴신청도 제대로 안 한 채 달려가는 직장 동료들을 보면, 마치 그들이 못한 일을 내가 다 하라는 듯한 기분이 들어 씁쓸했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그 어머니는 "여기는 아이를 다 낳고 키운 여성들이 취미삼아서 들어가는 직장이니, 너같은 애는 할 일이 아니다. 당장 그만 두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말을 나에게 했다. 나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직장 동료들과 상사에게 끊임없이 하고, 그걸 실제로 입증해야 했다. 다시 말해 이 직장 말고는 도저히 쓸모가 없는 무능한 인간인 척을 함과 동시에, 유능한 행동을 함으로써 공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아이를 둔 부모가 이런 짓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책에선 남성이 무자녀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성에게 자궁이 있기 때문에, 자녀를 가질지 가지지 않을지의 선택 여부는 궁극적으로 여성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여성들은 유명한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지금 무자녀를 선택한 이유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 본다. 예를 들어 나처럼 말이다. 직장 동료들은 가족 수가 많다고 해도 집도 있고 외식이나 여행도 다닐 여력도 있다. 반면 나는 이리저리 계산을 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유한 여성과 가난한 여성의 대립이 아이 있는 여성과 아이 없는 여성의 싸움으로 표출될 것이라 본다. 실제로 TV에 자주 나오는 우리나라의 여성 탤런트들은 다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미국과는 또 다른 우리나라의 이런 움직임이 상당히 우려되는 바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자식을 키우는 여성들이 무자녀여성을 피라미드의 최하층으로 짓누르고 더 많이 가지려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현실을 직시하며 나처럼 불안한 무자녀여성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지고 있다. 뭐 무자녀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길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모두들 자식을 갖길 꿈꾸는 이 세상에서 자식을 갖지 않을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환경과 정치에 많은 관심을 지닌 여성이 그런 결정을 했다면 그건 그녀가 환경과 정치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증거이다. 페미니즘 사상때문에 그러했다면 그녀야말로 '진짜 페미니스트'라 불리워야 하지 않을까? 자타'공인 독'보적인 진보매체 할 수 있는 팟캐스트에서 대놓고 페미니즘을 비웃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내가 뭘 바라는 걸까 싶지만, 그 점을 인정해줬으면 싶다. 그리고 인신공격을 중단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