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 - 마을공동체를 위한 전망과 대안을 찾아서
정기석 지음 / 펄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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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주민들의 절반은 냉소적이지만 나머지는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요. 절반이나 말이죠."

1. 저자만 말을 많이 안 했으면 참 깔끔했을 책이었다. 정치적 러다이트라니. 7년 전쯤 자꾸 되도 않는 아나키즘을 주장해서 촛불집회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그 다음 다시는 집회 안 갔던 악몽이 새삼 떠오른다. 근데 이 책은 더 지독하다. 개인주의랑 아나키즘을 헷갈리지 말아줘?! 그야말로 아나코 생디칼리즘이 어리둥절할 이야기이다. 이 때부터 전통적인 시골공동체에 대한 동경과 회복을 뭔가 그럴싸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어서 그 이론에 대해서 책 한번 안 읽어보고 주화입마한 티가 확 났다. 뇌피셜이냐? 중2병이냐? 이 책을 읽은 내 혈압은 어쩌란 말인가. 심지어 환경 관련된 책이 재활용 용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베어낸 나무가 아깝다고 생각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제목에서 자신을 전문가라 소개하다니. 책 이름이 길어지면 망한다는데, 꼭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걸 넣었어야 했는가. 엘리트주의와 아나키즘이 합쳐지면 국가의 심판도 받지 않고 설치는 무적의 엘리트가 될 뿐이라는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제멋대로 서울을 빈민 천지의 지역으로 만드는 건 참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요즘 부자들만 농사할 여유가 있으니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빈민에 대한 경멸과 두려움과 미움을 도시 그 자체로 착각하면 곤란하지.

 그거야 물론, 나도 사회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 결혼은 해도 아이를 낳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당신이 먹는 음식도 정치다. 달걀이 비싼 이유는 조류성 독감 때문이고 조류성 독감은 4대강의 호수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며(학교에서 안과 관련 질병이 잘 퍼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4대강의 호수화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진해서 맨 처음으로 삽을 들었다. 그리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이유는 노무현의 자살에 기가 질린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투표를 거부해서 치매에 중풍 걸린 노인네들이 기를 쓰고 1번을 찍는 걸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리 국가를 부정하더라도 우리는 국가를 벗어날 수 없고 정 벗어나고 싶으면 구글 기업에 붙어라. 그 분들은 섬에다 구글 월드를 세울 생각이더라. 테슬라처럼 사기가 아닐까 싶지만.

 

 2. 진안 진안마을주식회사 마을기업가 강주현 대표를 보면 직접 메주 쑤셔서 간장 만드시던 어느 할머니가 생각난다. 농민이 아니어도 그냥 옛날 분들은 다 만들 줄 아시던데. 그리고 높으신 분들은 왜 자꾸 '하찮고 무식한' 농민들에게 어려운 질문하기를 좋아할까.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해도 될걸. 자기가 기업할 생각이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역성을 세계화하는 방법을 쓰면서 치밀하게 팔아볼 수 있게 노오력을 해야지 남들이 우리 역사 우리 생각을 알아줄거야 라고 자위만 하는 건 파멸의 지름길이다.

 

 3. 노원구 마을이 학교다 사업은 슬로건이 잘 되었다는 것 외에 뭐가 성공했는지 잘 모르겠다. 방과후 학교가 구단위로 잘 되었다지만 그건 솔직히 어느 지역에서나 잘 되고 있지 않나...?

 

 4. 홍성군에 면이 홍동면만 있는 게 아닌데 왜 농가 인구는 홍동면만 계산하고 예산은 홍성군 것으로 잡았을까? 지역 이기주의도 아니고 홍성군 예산을 쓰려면 홍성군 내 2개읍 9개면 농가인구 전체를 계산해서 기본소득을 줘야지. 홍동면 빼고 다른 지역에서 농사하는 사람들은 농민도 아니냐? 홍동면 인구가 홍성군의 3.48%라는데 이건 완전히 1% 부자들만 잘 살게 해주는 식의 자본주의 정치랑 다를 게 뭐냐? 각 읍면의 농가인구비율이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홍성군 모두에게 50만원씩 기본소득을 주려면 약 80%의 예산이 소모된다고 한다. 리뷰에다가 대놓고 썼으니 이 문구의 무시무시한 사기성을 눈치채는 건 홍성군의 몫이다. 저자 자신이 뿌린 말, 당신이 책임지고 거두시길 바란다. 잘해봐라.

 

 

  

5. 만장일치제라니.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나 갑자기 오와리모노가타리의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나가지 못하는 교실 생각났는데. 모두가 만장일치로 내가 이 마을에서 강제탈퇴되는 걸 찬성할 때까지 아무도 이 사무실에서 나갈 수 없어요! 법대로 하자면서 법정이나 안 가길 바란다. 다수결의 법칙이 왜 안 맞느냐는 내부에서 문제가 있는 걸로 가정하고 고민해야지, '인간은 욕심이 많으니까'로 대충 퉁치는 건 이제 좀 그만해!

 

 6. 보은 선애빌 생태공동체연구소의 임원은 예전에 녹색당에 있을 때 한 번 만나본 적이 있다. 대뜸 모임에서 혼자 포교를 하시더라. 시골 마을에서 살고 싶다면 원주민이 조금이라도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게 안전하다. 텃세보다 더 무서운 게 고립과 사이비 종교단체다.

 

 7. 이 책을 보는 것보다는 여기서 소개된 책을 읽는 게 훨씬 낫다. 리뷰를 쓰는 참에 스쳐지나가는 책들을 직접 하나하나 소개하겠다. 

http://vasura135.blog.me/220913628430<-클릭

 기타: 항상 어떤 책을 받고 리뷰를 남겨야 할 때는 이 점이 참 곤란하다. 지적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특히 책을 쓴 의도는 좋으나 시작부터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책을 볼 때는 훨씬 난감하다. 하지만 책에서도 나오듯이 이로 인해 무턱대로 농촌과 시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가 귀농하고 마을을 도리어 망쳐 놓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 사는 동네 다 똑같다. 그냥 공기와 물이 조금 더 좋아질 뿐이지, 먹고 사는 게 전쟁인 건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본능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훨씬 더 치열해질 수도 있다. 일단 최저임금이 거기서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실 시골에서도 다 적용이 되야 하는데 말이지.

 무엇보다 마을주의자들은 여자들에게 연애하니? 결혼해야지! 라는 말부터 안 했음 좋겠다.
 소개팅 시키지 않았음 좋겠다.
 그냥 여자들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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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詩 -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엮음 / 마음의숲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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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심우도 10. 입전수수

무산 조오현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 차고 나온 저자

장가들어 본처는 버리고
소실을 얻어 살아 볼까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

일금 삼백 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
일금 삼백 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해 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어, 진문둥이어.

 

  

추억들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일상이다. 

 

 검정고무신을 보면 일단 냉차는 저쪽으로 밀어놓더라도 아이스께끼가 5원이다. 아무리 머리는 그 시대에 5원을 현재의 돈으로 환산하고 있더라도, 가슴은 제발 자신의 월급을 싸들도 그 시대로 가고 싶을 것이다. 딱히 아주 옛날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친구들이 팔짱을 끼고 '내일은 해가 뜬다'를 목청껏 부르며 집으로 직장으로 돌아가던 그 한밤중으로 향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노래를 그렇게 목청껏 부를 수 있을까? 스노 하레이션? 우주키스미?

 

 

  

꼰대들은 자신도 돈에 쪼들리던 시절이 있었다고 청년들에게 훈계를 하려고 들지만 백번 말하느니 이 책에서 나오는 시 한 수 읊는 게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인들이 김밥천국에 그렇게 많은 영감을 받았을 줄은 몰랐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쓰봉 속에 돈을 숨겨둔다는 시를 본 이후부터는 자꾸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어머니에게 비상금을 어디다 숨겨놓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시인들은 항상 돈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는 건 유명한 편견이기도 하며 또한 사실이기도 하다. 시를 싣고 깨알같은 평론을 가지런히 써놓은 이 책만 해도 정가가 만원이 겨우 넘는 11800원의 가격이다. 아마 그가 쓴 시는 만원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배우겠다느니 시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심지어 신춘문예에 당선하지 못한 법적 시인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판이다. 돈이 없으니 명예나 체면이라도 두둑히 차리겠다는 것일까. 어리석다 못해 미친 사람들 앞에 시인은 커피 메뉴처럼 명사들의 이름을 가격과 함께 늘어놓는다. 누가 정해놓았는진 모르지만 프란츠 카프카도 800원인 마당에 나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어머니가 3박 4일 동안 앓아서 나를 낳으신 비용과, 사립대학 비용과, 어린 시절 40도 넘는 고열을 이겨낸 비용은 정녕 내 가격에 쳐주지 않는 걸까. 어머니가 막말로 시체닦이 봉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가족들이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공짜로 요청하는 것 같아 미안해 시작한 일이라 한다. 우리는 우리같은 인간을 받아준 세상에게 미안하다 생각하고, 빚을 갚듯이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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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시선 386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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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연인이 밥을 먹네
헝클어진 머리통을 맞대고 늦은 저녁을 먹네
주방 아줌마 구함 벽보에서 한걸음 물러나 정수기가 놓인 맨 구석에 앉아
푸한 김밥 두어줄 앞에 놓고 소꿉을 살듯
여자가 콧물을 훌쩍이자 그 앞으로 쥐고 있던 냅킨 조각을 포개어 내미는
남자의 부르튼 손이 여자의 붉어진 얼굴이
가만가만 허기를 달래네
때마침 식당 앞 정류장에 당도한 파주행 막차
연인은 김밥처럼 동그란 눈으로 젓가락질을 멈추네
12월의 매서운 바람이 잠복 중인 바깥
버스 뒤뚱한 꽁무니를 넋 없이 훔쳐보다 이내 버스가 떠나자
그제야 혓바닥 위에 올려놓은 김과 밥의 부스러기를 내어 재차 오물거리네
흰머리가 희끗한 주인은 싸다 만 김밥 옆에서 설핏 풋잠에 들고
옆구리가 미어지도록
연인은 밥을 먹네 김밥을 먹네

 

시에서는 어지간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단상이 많이 나온다. 아버지에 대한 시는 맨 끝에 지익이라는 시에서 나온다. 시집에서는 전반적으로 어머니와 언니와 같이 살았던 것처럼 나온다.

 

 이 시집을 쓴 박소란 시인은 세상과 타협을 하기 시작한 시기의 시들을 뒤에 넣은 것 같은데, 지익은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 20대에 혼자 실컷 울음을 터뜨렸던 자취방에서는 이제 이사를 갔다고 하니, 울음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더이상 나오지 않는 삶을 표현했던 그녀였다. 시 속에서의 그녀를 보자면, 말 그대로 박복한 삶이다. 자살은 너무 힘들어서 싫고, 자연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도처에 드러나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절로 우울하고 아픈 시이다. 그녀는 아프다고 중얼거리며 황량한 거리들을 헤메인다. 연인은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고 때리며, 무당은 그 옆에서 차라리 웃으라고 충고를 해 준다.

 

  

신파극의 절정에 있는 이 시는 아무리 음식으로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려 한들 이미 통제가 되지 않는다.

 감동적인 시, 눈물을 쏟는 시라고 할 사람들이 많지만 뒤에서는 심하게 감상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희망적이라 생각되는 시가 김밥천국밖에 없는데, 요즘 사회에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면서 김밥을 먹는다는 건 보통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던가. 좀처럼 오지 않는 파주행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집이란 것도 어떤 곳일지 충분히 머릿 속에서 상상할 수 있다. 독산동만큼은 아닐지라도...

 자기 자신의 불행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사회의 불의를 따지지 않는 것도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 시인이 선택한 길은 다른 여성들의 어려움을 시로 읊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보기에 그 스토리는 너무 짧고 작위적이었다. 초반에 나온 참외를 깎는 여성에 관한 시는 괜찮았다고 본다. 경에게라는 시는 레즈비언성 전복의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업계 여성에 대한 동정심에 그냥 한 번 말해본 듯한 느낌이었다. 여성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는 페미니즘운동의 송경동이 될 것만 같은 가능성이 보인다. 이 시에서는 그 외에도 수많은 가능성이 보이고, 그게 이 시집의 장점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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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시인선 15
장석남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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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의 말

나뭇잎은 물든다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군불 때며 돌아보니 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꾸물대는 닭들

윽박질린 달이여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지졌다

장마 때 쌓은 국방색 모래 자루들
우두커니 삭고
모래는 두리번대며 흘러나온다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

말벌들 잉잉대던 유리창에 낮은 자고
대신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

횃대에서 푸드덕이다 떨어지는 닭,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나뭇잎은 물든다

 

  

일단 시인은 시골같은 외진 데에서 살면서 가난하다면 오히려 청빈하게 살면 된다, 버리면 된다의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말 가난한가?

 일단 그가 청빈의 코드로 내놓은 메밀베게를 사려면 당장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에서도 메밀베게를 팔지 않아서(혹은 수와 복이 쓰여있는 메밀베게가 우리가 먹는 햄버거보다도 가격이 더 비싸서) 그 베게를 만들려면 우리는 시골에서 얼마 이상 살아야 메밀을 얻을 수 있는가? 10년? 메밀을 재배할 수 있는 땅은 얼마나 돈을 들여야 살 수 있는가? '소시민'이라는 단어는 어감상 '서민'과 비슷한 뜻으로 인식되지만, 실은 '쁘띠 부르주아지'라는 뜻이라는 페친의 글이 머릿속에 너무나 뿌리깊게 각인되었다. 시인은 가난한 서민이 아니라 부유한 소시민이다. 나이드신 높으신 분들은 경제상승의 덕이라도 보았지, 지금 청년 세대는 죽어라 노력해도 성과를 얻는 게 없고 빚은 더욱 쌓여갈 뿐이다. 그런데 단순히 시대의 흐름 때문에 얻은 돈을 가지고 꼼지락 꼼지락 아껴쓰고 살면서 빈의 철학을 논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당신같이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심지어 시골에서 부모의 밥을 축내는 내 형편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는 교활하게도 그의 그런 단점까지 시로 써내고 있다. 그는 사물들을 회초리로 때리면서 민들레를 만드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민들레를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걸 보면서 회의감을 느낀다. 그러자 계속해서 민들레를 때리는 자신을 비웃음으로서 자기비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는 '불임'이라는 시나 '동화'라는 시에서 정관수술을 한 자신을 넣은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하면서도 검은색을 그렇게 좋아하던 남자애를 만난 적이 있다. 아마겟돈이 오기를 바라는 남성들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 이 시인도 자신의 불운을 은근히 즐기고 소멸을 바라는 그 부류에 속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빛으로 둘러싸여 윤곽을 잃어가는 것, 열기에 활활 타서 재가 되는 것,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 녹아드는 것, 추락. 나는 시인이 이미 호랑이, 즉 죽음에 호젓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관심을 절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에 굉장히 영감을 받았는지 자꾸 건축 이야기를 하면서 띄어쓰기도 생략하던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엔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차라리 하이쿠같이 짧은 시들이 더 좋았다.

 

어찌하여 민들레 노란 꽃은 이리 많은가? 중에서

긴 하루 지나고 노을 물들면 오늘도
아무 지나는 이 없는 이 외진 산길을
늦봄인 양 걸어내려가며
길에, 하늘에, 민들레 노란 꽃을 총총히 피워두면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올라오는 이 있겠지
그 말이 누군가를 막 때리는 말인 줄은 까맣게 모를 테지
여전히 나는 민들레 노란 꽃을 남기면서 내려가고 있을 거야

 

 

  

https://www.youtube.com/watch?v=zeF-VimaE1k&feature=youtu.be

들국화- 사랑한 후에

전인권씨 노래 가사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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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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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창녀와 관계한 건 포함시키지 말고요' 하는 말까지 웃으면서 태연히 하죠, 그놈들은. 나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참고로 주인공은 이 분처럼 모에하지 않습니다. 손가락과 팔에 털이 많은 타입이라고 하죠. 잠깐 동거했던 남자도 이 여자와 같이 살면서도 몸을 건드리는 것조차 싫어하고요. 이 소설의 그런 점도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내 현재의 모습과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걸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정말 편의점에서 근무한다는 근본적인 점만 빼고는, 이 점원은 나와 많이 닮았다. 성적인 욕망이 극도로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아기를 보면 귀엽다고는 생각하지만 정작 내가 아이를 낳아서 기를 생각은 없다. 한번 사회에 도태된 적이 있는 내가 내 유전자를 뿌려서 내가 이전에 겪은 일과 똑같은 짓을 당하게 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과의 차이점이라면, 나는 일단 '남'과 내 집을 같이 쓰는 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서 애초에 결혼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동거 따위는 죽었음 죽었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오래 전부터 다짐했었다. 또한 내가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내 탓이라기보다는 남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굴고 도태시키는 사회 때문이라 생각하는 점이다. 옛날엔 자급자족이라도 할 수 있었지, 지금은 몸을 망가뜨리고 부서지게 해서 서서히 죽이고 있지 않은가. 이 작가는 자신을 '크레이지' 사야카라고 부르고 있다는데, 4기 죠죠의 스탠드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를 베낀 느낌과 더불어 작위성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도 '세상에서 도저히 써먹을 데가 없는 소설', 특히 범죄소설을 매우 좋아한다는 데서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한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범죄소설에 깊이 빠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티비에서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보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 빨강머리 앤을 따라하려 했던 게 시작이었다. 물론 그 시도는 교무실에 불려갈 정도의 문제가 되어 처참하게 실패했고 '앤은 어딘가 이상하다' 따위의 구절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20대 중반이 되고 나서부터다. 그러고보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소설 속 인물 제제도 도가 넘도록 심한 장난꾸러기라서 어른들에게 '혼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직장에 취직하기까지 수많은 직장에서 쫓겨나는 생활을 했는데, 그 중 한명에게는 쓸데없는 소설 좀 그만 읽고 세상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쓴 자서전이라거나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병원에는 현재 근무하지 않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간호사 중 한 명이 열심히 자기계발서를 읽고 암기한 뒤 그녀에게 열심히 그 구절들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울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당신과 세상 사람들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인식받기 위해, 안도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것일까." 그러나 현재 그들은 만나지 않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편의점에 직원이 없으면 편의점이 운영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구박을 받는 이들은 야간파트가 아닐까 한다. 야간 편의점은 술에 절은 인간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보통 뭔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야간 알바를 뛴다. 그래서 같은 점원이라도 주간보다 더욱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이 소설의 폭은 사실상 편의점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면서 편의점 알바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알바의 이점은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일단 사무직보다는 더 편하게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육체노동자가 아닌 사람들도 육체가 아프면 끝장이 나 버린다. 편의점에서 암컷 취급을 당하는 후루카와가 고로케를 튀기다가 손에 입은 화상보다도 그걸 더 견디지 못하는 데서 그 암시는 뚜렷해진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곧장 육체적인 문제로 직결된다. 내 또래도 공무원이 되었었지만, 현재 스트레스로 인해 피부와 근육이 썩는 질병에 걸려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 그런 병이 항상 그렇듯, 나을 가망이 없어보인다 한다.

 사람들이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는, 그 곳은 회사와 기업을 떠나 중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잠시나마 지닐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세운 대학은 예외다.) 나는 대학교가 딱 그 정도의 가치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교의 그런 가치가 점점 사라져가고, 취업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지고 있는 지금은 수많은 '편의점 인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바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려면 어떤 대기업을 먼저 무너뜨리고 어떤 형태로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편의점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대통령감은 누구이며, 어떤 정책을 통과시켜서 편의점 인간들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위선적인 인간들이 더 이상 우리를 깔보지 않기 위해선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가. 그렇다. 편의점 인간들이 이상한 게 아니다. 우리들이 대다수인 건 확실하니 뭉치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우리들이 '이쪽'이고 이상한 건 '저쪽'이다. 권력을 잡을 궁리를 해야 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들이 "서점 직원으로 일하지 말고 덕질하는 돈을 줄여서 저축을 해 서점을 세워보지 그러세요?"라고 질문할 때 "그럼 니가 세워보세요." 이상의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후루카와나 사야카는 삽으로 머리를 때린다는 답을 내렸지만 그 전에 그 인간들이 그런 말을 할 엄두도 못 내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못 하도록 최소한 속으로만 이야기하고 닥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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