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미래 - 재앙을 희망으로 바꾸는 녹색혁명
프란츠 알트 지음, 모명숙 옮김 / 민음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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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환경에 관한 책을 주로 읽는다. 역시 환경운동도 인간이 하는 일이라 사람마다 제각각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촘스키 씨의 견해대로라면 전세계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환경을 걱정하고 있다는 징조이니 그렇게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글쎄올시다. 본인도 이 책에 반발하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전철을 적극적으로 만든다는 의견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아마 독일이 대륙 사이의 평지인지라, 우리나라같이 산이 많은 국가에서 전철을 전국적으로 만들면 피해가 얼마나 커지는지 잘 알지 못하는가보다. 지리산이 고속도로와 철도로 인해 밑이 뚫린다면, 다음엔 강원도 산맥도 뚫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결국 본인이 찬성하는 의견도 있지만 반대하는 의견이 몇몇 있어서 높은 점수는 주지 못하겠다. 전기차는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전기차도 개인 자가용이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스포츠카처럼 달리는 전기차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연료 값은 다시 제자리가 된다. 그리고 전기도 언제나 펑펑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연료를 개발하기보다 승용차를 아예 줄이면 해결되는 일이 아닌가! 파시즘과 전체주의는 나쁜 이데올로기라고 하지만, 지구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평화전체주의'라도 강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개인적인 분노는 이쯤에서 생략하고. 

 그러나 물론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다. 이 책도 다른 환경에 관한 책들이 그렇듯 재생에너지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태양의 아이들>의 저자 앨프리드 W. 크로스비와는 달리 원자력 발전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태양의 아이들>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던 본인도 <지구의 미래> 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비록 50억년에 한 번 일이 터진다 해도 사람이 죽지 않은가. 그것도 자연스럽게 죽지 않고 인간이 만든 에너지시설 때문에 죽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결국 살인이고, 살인방관자가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최소한의 매너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상식이다. 지네들이 나자렛의 예수마냥 원자력 관련 사고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다면 모를까, 과학자들이 더이상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밀로 난방을 한다?'라는 코너에서도 그는 그의 상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감상적인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는 그의 명쾌한 해답은 그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 시원한 감동을 준다. 특히 대중교통에 대한 규칙에서 '늦은 시간대에 유동적 버스하차'라는 제시는 본인이 적극 찬성하겠다. 한밤중에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법이다. 대통령께서 한 번 청와대에서 나와서 대중교통 출근제로 지내보신다면, 아마 반나절도 안 지나서 대중교통에 혁명이 도입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바이다. 그 날이 언제쯤 올까? 이외에도 그는 재생에너지, 윤리교육, 경제와 생태학의 관계, 심지어 영성과 생태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 넘치는 필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믿음가는 정보에 의하면 2010년 7월 남극에서 드디어 기온이 30도에 도달했다고 한다. 유럽은 친환경기업을 위해 대규모예산을 쏟아붓는 중이고, 저자는 독일을 친환경 연료개발도상국으로 비난하고 있다. 저자가 중국과 우리나라에 대해 은근한 기대를 담아 말씀하시는 걸 보면 너무 부끄러워서 낯을 들지 못하겠다. 이 글을 쓴 때는 2006년이다. 이제 2010년, 우리나라는 지금 복지예산을 줄이고 4대강을 흙탕물과 구정물 천지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는 우리나라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셔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던 우리나라가 독일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만큼 독일 사람의 환경에 관한 글은 우리나라에도 꽤 도움이 된다.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 책에 적혀있는 모든 일을 시행하려면 모든 인간이 똑똑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는 똑똑하다. (여자로서는 철없고 우둔하기 그지없는) 남자분임에도 불구하고 가사일을 50 대 50으로 분담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계신다. 배운 여자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원낭비라는 것이다. 그 대목을 보는 순간 난 이 분이 희대의 천재임을 깨달았다. 왜 남자들은 일에 있어서 레이디퍼스트를 주장하지 않을까? 정보화시대에 여자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D.I.Y가 유행했던 때를 본인은 직접 목격했다. 아마 우리 다음 시대에는 가구를 만들듯이 '직접 에너지 만들기'가 유행할지도 모른다. 자연엔 생존법칙이 있다. 인간이란 종이 뒤쳐지면 말 그대로 '다음 후손을 남길 수 없다'. 생태학으로 가는 길은 곧 현명해지는 길이다. 환경에 대한 책을 윤리나 교양서보듯이 하자. 일단 본인은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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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처님은 주지를 하셨을까? - 원철 스님의 주지학 개론
원철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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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그대로 주지가 되는 법에 관해 적힌 책이다. 그러나 주지가 되는 법에 대해 중국의 에피소드와 함께 우리나라 절 이야기를 살짝살짝 곁들여주는 센스를 갖추고 있다. 어쩐지 표지에서부터 남다른 포스가 있다고 생각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심하게 짧은 책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만큼 절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는 책이 드물 것이라 한다. 성철스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도 몇 날 며칠을 졸라서 출입한 사찰들이 꽤 있다고 하니, 서양의 수도원 못지않게 뚫기 힘든 곳이라 짐작해본다. 불교에 관한 책이다보니 절에서 쓰는 용어도 알지 못하면 곤란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용어들을 찾아야 한다는 불편함이 따랐지만, 지식의 부족함을 어디에 탓하겠는가. 

 여러 이야기들이 많지만 결국 이 책의 결론은 주지되기 어렵다는 한탄이다. 절에서 있다고 해서 아무나 주지될 수 없는가보다. 절에서 얼마간 생활해봤다는 분의 말에 의하면 절에서는 위계가 철저하며, 무엇보다 수행과 관직(?) 사이에 갈등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단순히 '절의 리더'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부족했다. 복도 갖춰야 하고 절의 풍수와 맞아야 한다니, 그 까다로움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본다. 목숨을 걸어 절을 지키는 주지들도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찰과 주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지, 절에 대한 책들은 많지만 정작 주지에 대한 책들은 많지 않았다. 이 책으로나마 주지에 대해 알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러나 아무리 까놓고 털어놓는 절이야기라고 해도, 책에서 등장하는 스님들의 대화는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외계어같을 뿐 정상인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철스님도 아직 내공이 그 곳까진 달하지 못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하시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스님들의 운치있는 대화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깊은 지혜는 읽는 사람들이 감탄하도록 만든다. 여태까지의 고고하고 조용한 이미지를 확 깨뜨리는 박력있는 스님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다. 스님들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려 하셨는지, 원철스님의 구수한 입담때문에 절이야기가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스님이 나라를 걱정해야지 나라가 스님을 걱정하는 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라는 따끔한 비평은 읽는 사람마저 후련하게 만들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그 비평이 맞다면.) 

 본인은 최근에 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경전도 좋았고 밀교도 좋았지만 우리나라에서 꽤 오랜 역사를 지낸 우리 선종불교의 모습도 소박하고 넉살스러우며 지혜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사찰사건으로 인해 요즘 사람들은 사찰의 부패에 대해서 한탄하고 헐뜯고 있지만, 그렇다고 불교까지 싸잡아 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성범죄가 많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 전부가 성범죄자가 아니듯, 우리나라 불교의 대중들이 모두 다 썩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게다가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갖가지 시민운동을 일으킨 스님들도 많다. 본인은 단지 우리나라 덕성과 복과 법력과 시기를 잘 타고 난 주지가 우리나라에 한 번 더 와서 불교계를 한 번 벌떡 일으켜 세워주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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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인간관계의 맥을 짚는 외모 심리학
사이토 이사무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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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살때만 해도 "사람의 외모가 그렇게 중요해? 중요한 건 마음이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엄청난 오류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스캔하거나 투시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내 마음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결국 다른 사람이 내 속마음을 판단하는 기준은 외모라는 소리가 된다. 언뜻 딜레마로 보이는 이 문제를 이 책에서는 간략하면서도 핵심만 파고들어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까지 차근차근 분석해 나간다. 외모를 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수박겉핥기마냥 훑어보고 오랜 시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게 문제이다. 왜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사에서도 이렇게 나오지 않던가.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
 이런 옷 이런 머리모양으로 이런 춤을 추는 여자는 뻔해
 네가 더 뻔해
 

 이 노래가 부담이 간다면, 속으로 찔린다는 말이 아닐까?
 본인은 외모하면 일단 몸무게를 떠올린다. 너무 살찌면 게을러보이기 십상이다. 반대로 너무 말라도 보는 사람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독한 성격을 지녔거나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에게 무난하게 보이기 위해선 적당한 몸무게와 적당한 살집이 필요하다는 게 나의 견해이다. 실제로 그런 내용을 기대하고 이 책을 보았지만 외모심리학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감정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제스처가 세심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재미있는 일러스트로 책 보는 사람의 재미를 더해준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제스처의 사진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책의 정확성과 재미를 더 살릴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 표정을 감정 없이 재현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하에서 일러스트만 첨부했는지도. 무엇보다 '외모 심리학'에선 아는 체하면서 이래라저래라 충고하지 않고 연구로서의 핵심만 집었다. 본인은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주제가 담긴 페이지, 표지 등등이 핑크색이라서 부담이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연애와 인간관계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심리학책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여자들이 보는 연애책이라는 편견을 가지지 않기를. 본인은 남자도 이 책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냉철히 파악할 수 있길 바란다. 남자가 외모를 보고 평가하는 이상, 점점 세계적으로 수가 적어지고 있는 여자가 외모로 남자를 평가하더라도 그들은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여자보다 가꾸기 힘든 게 남자다. 수염이던 헤어스타일이던 패션이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일찍 준비할수록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히 이 책을 소장하시길 권고하는 바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좋은 사람으로 모이려는 마음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였다. 마음으로 우러나지 않는 선행은 동정으로 보이기 십상이고, 괜히 안 하던 일하면 내 몸도 쉽게 지친다. 이 심리학 책에서는 그 핵심을 잘 집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전반적인 부분들에서 일본답게 직접적인 말보다는 제스처 표현을 극도로 강조하고 있으며, 빙빙 돌려서 말하는 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구절로 끝내는 마무리가 참으로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책으로만 보지말고 직접 일상생활에서 보고 실천해라. 그러나 용기도 너무 넘치면 오버와 만용이 된다. 뭘 해도 조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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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지음, 송태욱 옮김 / 알마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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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태어날때부터 공간감각이 없어서 오른쪽과 왼쪽도 제대로 분간을 못하던 본인. 지리시간 때에도 남들 다 찾는 강과 산을 찾지 못해서 남들에겐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선생님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끙끙대던 기억이 있다. 결국 수능 때에도 한국지리를 시험과목으로 택했지만, 선생님이 지도만 그려져있는 부록책을 펼치자고 하면 눈살을 찌푸렸더랬다. 이 책에서 나오는 지도들처럼 그림도 많고 알록달록한 지도, 설명이 풍부한 지도로 공부했더라면 지리 공부에 그렇게 헤메지는 않았을텐데. 판타지 책을 보면 처음에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지도가 딸려나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중세 세계도가 꼭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지구의 형태를 그려놓았지만 땅의 형태가 정확하지 않고 들쑥날쑥하다. 게다가 '미지의 땅'에선 여백을 채우려 괴물들이 그려져 있다. 한자만 빼곡히 나열되어 있는 고금화이구역총요도를 제외하고는 여러모로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지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오지 도시아키의 동서양을 총괄한 지혜와 명쾌한 설명 덕분에 처음 접하는 지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단 설명을 재밌게 보려면 목차가 끝나는 부분에 나오는 지도를 여러 번 펼쳐보고 또 펼쳐봐야 하니, 유의하시길. 일단 지도를 확대한 흑백사진들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그걸로는 설명이 이해가 안 가고 모자란 점도 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 지도를 설명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개인적으로는 중세 기독교에 대한 설명이 가장 재미있었다. 성지순례라던가 기사단이라던가 아는 개념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여정도 지명으로 상당히 세심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지도를 보면서 경로를 펜으로 긋는 것도 나름 재미있으리라 생각된다. 불교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발견할 수 있던 점도 좋았다. 말로만 듣던 오천축도를 직접 보고 일본불교의 여러 사상도 접할 수 있었다. 일본섬을 독고로 표현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지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알고 싶어서 구한 책이지만, 의외의 수확을 거두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시각과 자만심, 탐욕도 지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있었다. 노예를 상품으로 표기하는 포르투갈, 남의 성지에 슬그머니 자기 국가의 깃발도 같이 걸어놓는 영국 등 글이나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시커먼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오지 도시아키가 맨 마지막에 개인적으로 맘에 든다고 말한 대일본연해여지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뭐 그래봤자 일본이 잘났다는 내용의 지도이겠지만, 어디가 어떻게 훌륭한 지도인지 궁금한데 말이다. 또 한 가지. 가뜩이나 실용성과 과학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아마 이런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역시 대동여지도에 대한 미련은 남는다. 만약 그가 대동여지도를 본다면 사방으로 뻗어있는 산들과 강들의 섬세함을 보고 그 미적 중요성을 간파했을텐데 말이다. '고금화이구역총요도'가 인쇄지도라고 설명하는 글을 읽을 때 안타까움은 더 했다. 일본에서도 지도발달사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역사학같은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멋진 학문이 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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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저택
펄 벅 지음, 이선혜 옮김 / 길산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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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의 서평으로는 참으로 보기 힘든 별 다섯개짜리이다. 플러스 1점까지 아낌없이 추가해버리고 싶었으나 본인이 선호하는 소설의 분위기에 비하면 좀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조용히 빼버렸다. 대지 3부작을 읽을 때부터 짐작했지만 펄 벅의 소설에서 단연 주목받는 건 캐릭터이다. 인물묘사에 아낌없이 종이를 투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성은 잊지 않고 넣는다. 평범한 사람의 삶 속에서 휴머니즘을 찾는 그녀의 정신은 이 소설에서 나오는 안드레 신부를 닮았다. 아니면 안드레 신부가 그녀를 닮은 건지? 

 줄거리는 우 부인을 주축으로 흘러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여자의 방식으로 시골 안 부유한 저택 안에서 실권(?)을 쥐고 살고 있는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저택도 좁게 느껴지고, 결국 40살 생일을 맞아 남편의 방에서 떨어져 나가기로 결심한다. 가끔씩 그녀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우 부인'이 이름으로 혼동될 정도로 뜨문뜨문 나타난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스토리는 가부장제 세계에서는 어느 땅덩어리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워낙 뛰어난 펄벅의 글솜씨로 인해 얼굴이 좀 다듬어진 중국 사모님의 이야기조차 첨예하고 아름답게 표현된다. 참으로 마법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까지 줄거리를 듣고 나면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은 독자분들은 보통 '인형의 집'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책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설의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마저 가부장제 속에서 그닥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펄벅은 여성주의자보다는 오히려 인류박애주의자에 가깝다. 또한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는 사랑이야기가 더 있다. 안드레 신부와의 사랑이야기에서 육체적인 사랑, 집착 등등을 기대하고 읽으신다면 분명 실망하리라. 그러나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은 분들이라면 분명 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서 숨어있는 광기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비교적 평화롭게 끝난 소설이지만, 난 아래의 글귀 속에서 문득 '죽은 왕녀의 파반느'를 떠올렸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아무런 의무가 없으며 단지 사랑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면 사랑마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강 부인과 달리 좋은 몸매를 유지하고 유모와 달리 침착하게 집안의 일을 정리해가는 우 부인의 모습도 놀랍긴 하다만, 약간 삐딱하게 꼬여있는 본인의 시선으로는 아니꼬운 여자였다. 시대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찾기를 바라면서도 내심으로는 가정이 자기에게 끌려오기를 바라고, 강 부인과 추밍을 위하는 척 하지만 결국은 그들을 자신의 이중적 인생 속에 끌여들여 희생시켰다. 그녀의 미모와 세견된 모습은 하인의 각별한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다. 딱히 그녀의 부를 언급하고 싶진 않다. 어차피 한 사람이 제대로 살려면 몇몇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하니까. 문제는 우 부인이 그녀가 그녀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데에 있다. 아무튼, 아름답지만 숨막히는 삶 속에서 우 부인은 드디어 사랑을 만난다. 

 안드레 신부와 우 부인의 사랑은 우 부인의 결벽만큼이나 지독히 영적이었다. 처음엔 우정으로 넘어갈 뻔했지만 지나치게 서로를 멀리하는 그들이 안쓰러움을 넘어 소름끼쳤다. 시선조차 서로 섞이지 않는 그들의 만남에 오한이 절로 느껴졌다. 아직 20대도 벗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육신을 초월한 사랑을 이해할 레벨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더 놀라운 점은 우 부인의 성장이다. 인생에서 겪을 일은 다 겪은 중년대 여인도 사랑을 하게 되면 성숙해지는 것일까. 아니, '아이낳는 기계'에서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분명 성숙과는 다르다. 어떤 말로 그 숭고함을 표현해야 할까. 펄 벅만큼의 실력도 되지 않는 나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책 줄거리만 보고 단순히 슬픈 소설이 될 것이라 결론지었던 나의 성급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내가 경험하고 있는 사랑이 영적인 사랑일지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문득 노라가 집을 나간 후에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영적인 사랑을 만났을지 궁금해진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기초 조건은 결국 사랑이기 때문에. 나도 노라도, 우 부인만큼 멋진 여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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