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1 - 의지 1889~1936 문제적 인간 5
이언 커쇼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왠만하면 책의 시리즈가 아무리 많아도 완결판까지 다 읽고 후기를 쓰는 편이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일단 독일에 대해서 쥐뿔도 몰라서 주석까지 들춰가며 꼼꼼히 읽으려 노력했다. 이 책에서는 히틀러 이야기와 같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와 1차 세계대전, 심지어 바그너 등등 예술에 대한 이야기, 더불어 볼셰비즘 이야기까지 뭉뚱그려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책을 거의 다 읽고나니 주석란에 손자국까지 선명하게 찍혔다. 그 뿐인가. 두께가 예전에 읽었던 율리시스만하다. 덕분에 걸어가면서 이 책을 읽기도 힘들었고(하지만 결국 난 산책하면서 읽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빤히 보는 시선도 무지하게 부담스러웠다. 양장으로 나온 건 좋지만 좀 나눠서 출판해달라고 버럭.
 아무튼 어언 반 달동안 나와 함께 있던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덕분에 연체료는 잔뜩 나오게 생겼지만, 아깝진 않다. 그만큼 자세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던 책이기 때문이다. 시험때문에 맘이 급해지지만 않았더라면 한 달 정도 여유를 두고 느긋하게 읽었을지도 모른다. 1권은 일단 히틀러의 전성시대 이야기. 이름없는 병사에서 총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스펙타클하다. 아무리 풀빵을 팔며 다니는 가난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서민을 이해해주는 능력있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준다. (이 정도면 누구를 말하는지 잘 아실듯?) 히틀러의 매력과 연설가로서의 타고난 기질도 설명하지만, 이 글을 쓴 저자는 그가 매우 시대를 잘 타고난 인물임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와 부하들의 터무니없는 막무가내에 사람들이 힘없이 넘어갔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역시 사람은 돈과 식량이 떨어지면 눈이 뒤집히나보다. 어느 정도의 피와 어느 정도의 운을 등에 뒤집어쓰고 열심히 파닥거리며 정상에 오른 히틀러. 다음엔 그의 추락을 볼 차례다.
 사진부터가 범상치 않다. 무심코 그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순간 흠칫했다. 사진만으로 위험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증을 길들이다 과학과 사회 10
베르나르 칼비노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간호조무사를 할 때 굳이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는다면, 환자가 아파할 때 억지로 차분한 표정을 유지해야 하는 점이었다. 아파하던 사람들이 사망했을 때는 그 안타까움이 더했다. 차라리 마지막 순간에 아프지 않고 죽었다면 더 편했을텐데... 나 자신도 몸이 정말 아픈 적이 있었고 초등학교 땐 수차례 입원했었으니, 입원환자 모두의 통증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통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그 통증에 대한 유럽의 발표대회 연설문을 매우 짧게 써서 낸 책이다. 그냥 의학에 관련된 책이라 하니 간호조무사 일을 하는 데 도움이 좀 될까 싶어서 얼른 신청한 책이지만, 느낀 점이 많았다. 통증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간략한 그림과 일목요연한 설명이 처음부터 내 관심을 끌었다. 더 읽어 나갔다. 

 그들은 신체의 통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통증, 특히 의학계에서 아직도 신체적 원인을 정확히 해명하지 못하는 두통까지도 고려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환자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의사들의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간호조무사로 일할 때 환자의 아프다는 호소를 무심코 넘긴 적이 없었나, 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하는 순간이었다. 주사를 투입할 때도 고통을 주지 않는 의료원이 최고의 의료원이라는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문득 떠올랐다.

 무엇보다 의학 발표의 장에서 철학과 종교의 견해를 끌어들인 게 놀라웠다. 게다가 그들은 통증을 없애야 한다는 기존의 새로운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다수결 의견 통일' 체제와는 매우 다르게 자신들과 전혀 상반된 의견마저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충 철학과 의학 중 어느 쪽에서 더 심하게(그러나 조심스럽게) 반대했는지는 짐작하셨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의 말은 옳았다. 고통으로도 쾌락을 느낄 수 있으며, 쾌락까지는 아닐지라도 인생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고 자신을 소홀히 한 지난 날을 반성하는 계기를 겪을 수 있다. 물론 끝없이 통증을 느끼는 불치병이나 만성통증환자에게는 모르핀을 투여해야 하겠지만.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통증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이 나눌 수 없는 통증이 있다. 그 통증을 존중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통증을 무서워하는 자들이 아파하는 환자를 수수방관 하는 것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격증을 따고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된다면 환자의 통증을 최대한 고려하겠다. 그리고 이 회의를 시작으로 일반인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통증전문서적이 출판되기를 기다리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를 본받아 - 토마스 아 켐피스의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박동순 옮김 / 두란노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서 종교가 좋고 나쁘고 하는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 그러나 당장 1시간 뒤에 수업을 들으러 가야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잘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 이분법으로 하기 참 까다로운 이야기인 것을 알지만 가톨릭교의 부정부패 역사를 꼬집으며 분연히 일어난 루터의 용기덕분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흘러, 우리나라엔 현재 참으로 많은 종류의(가톨릭 교구의 수를 뛰어넘으리라 짐작되는) 교회가 있다. 그들의 의견도 천양지차라서 아마 그 모든 의견들을 통합하려면 수억년이 걸려도 해결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무신론자들은 그들을 접하면서 대체 어느 이론이 진실에 가까운지, 대체 하느님과 예수님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하리라. 그 혼란 속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이 저서는 많은 깨달음을 준다. 

 물론 시대에 맞지 않는 이론들도 있지만 매우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이니 이해하길 바란다. 굳이 토마스 아 켐피스만 아니라 중세시대 수많은 지식인들은 대중들이 책을 읽어선 안 된다며 주장했다. 그런 시대다. 더군다나 머리를 깎고 수도 중인 수도승들의 책인데 오죽하겠는가. 그들은 몇 달 몇 년에 걸쳐 침묵훈련을 받으며, 철심이 박힌 옷을 입는 등 육체의 고통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분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예수를 본받으라는 범상치 않은 핵심주제 때문이다.  

 설령 그리스도가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는 분명 우리 같은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죽지 않으려는 본성이 있으며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마저 그 장애물에서 벗어나려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 분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십자가에 매달리기를 택했다. 그는 유달리 체포되기 직전에 자주 하느님께 기도하고, 원망했다. 그러나 그가 구하려는 사람들이 유태인들이었던 인류였던간에, 아무튼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는 체포되기 직전까지 스스로도 확신치 못했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 사랑이 수많은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첫째로, '천국에 가지 못하는' 기득권층에게 저항하는 법을 새롭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직접 나서서 성전을 뒤엎었다. 분명 그 시대에도 극단적인 유태인 혁명 단체가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분들의 도움을 평생 받지 않았다. 어찌보면 간디보다 더 철저한 비폭력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사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참고하려면 김규항이 쓴 '예수전'이라는 책을 보시길 추천한다. 둘째로, 만일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바치지 않았더라면 가톨릭교는 아직도 제사를 위해 양을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에까지 들어오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순화시키긴 했지만 이 책에서도 분명히 쓰여져 있는 내용이다. 그의 영광과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이 두가지 이유들만으로도 그를 숭배하지 않고 '본받는' 일은 대단히 어렵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도를 그야말로 열렬히 찬양한다. 두번째 장에서 등장하는 예수와 제자의 대담 방식에선 더욱 심화된다. 예수님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신은 그 논리를 찬미하는 제자가 되면서도 은근슬쩍 말씀을 풀이하고 예수님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는 숭배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제일 마지막에는 성체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비록 토마스 아 캠피스는 옛날 시대의 사람이라 그 단어를 제대로 표현할 줄 몰랐겠지만, 우리는 그 성체가 맡은 역할을 오늘날 비전이라 부른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도 그 단어를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요즘 그리스도의 리더십이라던가, 정치관에 대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실용서를 읽기 전 고전부터 파악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신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손색없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에 눈뜨는 아이들 - 어른들이 꼭 알아야 할 우리아이 정신건강 클리닉 8
다니엘 펑 지음, 안진이 옮김, 문지현 감수 / 즐거운상상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우선 이 책이 싱가포르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으레 미국이나 유럽에서 쓰여진 글일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라에서 출판된 책이라니! 그래서 그런지 낯선 단어들이 등장해서 당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열대과일 두리안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번역자의 주역이라도 있으면 좀 알기 쉬울 텐데. 성에 대한 책의 후기로는 매우 뜬금없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본인이 이 책으로 인해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고환이 열대과일 두리안의 씨앗과 비슷한 크기라는 정보뿐이다. 호기심을 그냥 넘길 수 없어서 검색까지 해봤다. 뭐 고환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열대과일이니 국적에 맞게 밤송이로 대체했더라면 좀 더 이해가 빠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의 장르가 문학이라면 이런 지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성과 관련된 지식을 이해시키려는 게 목적인 실용서적이라면 이런 점은 꼼꼼히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너무 개방적이거나 너무 보수적인 책은 아니라서 읽을 만 했다. 제 3세계의 의견을 듣는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성지식을 가르치는 방법을 소개하는 어른용 도서이다. 대부분은 청소년기의 성적호기심에 성적 호기심에 초점을 모은 글이다. 하지만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아동기에서도 성적 관심이 생겨난다는 사실은 현재 널리 알려져 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남자태아는 자위행위를 한다고 밝혀졌다. 일명 일산 SBS 프로그램에서 김창규 박 사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하기사 본인의 생각에도 그렇게 수긍할 수 없는 보고서는 아니다. 아마도 인간은 미래에 불편한 육체에서 탈피하여 실험관 속 두뇌로 남을지라도 계속 성에 대한 대화를 지속하리라. 다시 말해 우리는 섹스와 성(젠더)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굳이 과학적인 견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성에 대한 아동교육의 필요성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밝혔듯이 아이들은 평균 13세 때부터 이성과 ‘제대로 된’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유치원 때부터 ‘특별한’ 여자 혹은 남자친구를 사귀는 경우를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이 볼 수 있다. 유치원 때야 단순한 친구로 치부하고 넘어가더라도,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성을 가진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언젠가는 생기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아이의 어릴 적 이성친구 관계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고 넘어가지만, 아이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면 어떨까? 만일 어린 시절 이성친구를 대하는 태도 상에서 잘못된 면이 있어도 부모에게서 지적받지 않는다면, 청소년이 돼서 갑작스레 그 태도를 버릴 수 있을까? 이성친구 관계와 인격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유태인을 죽인 히틀러는 24살이 될 때까지도 이성을 대하는 데 심한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순탄치 못한 어린 시절도 고려사항에서 배제할 수는 없지만, 훗날 진지하게 연구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성친구를 사귀는 연령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더불어 이성과의 데이트 체험(?)의 기회는 더욱 늘어난다. 물론 성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관계의 일부분이다. 육체적으로는 여성과 남성이 하나로 결합하기 위해 절묘하게 설정되었으며, 정신적으로는 결합에 의한 헌신과 만족과 애정을 느끼기 위해 설정되었다. 결국 핵심은 결합과 조화이다. 물론 ‘제 3의 성’도 있다. 태국의 ‘까터이’와 같이 여성처럼 사는 남성들을 특별한 성의 형태를 나타내며, 자신과 비슷한 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기도 한다. 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들이 추구하는 건 무엇일까? 단순한 육체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과 결합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섹스가 아니라 단지 자위일 뿐이다. 좀 더 복잡하고 까다롭고 머리 아픈 관계를 추구한다면, 그들의 목표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중세에서의 치밀한 정략결혼과 근친결혼은 현재 와서 줄어들거나 법으로 근절되었으며, 점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사랑받길 원한다. 여자라도 혼자 살기 괜찮을 만큼 사회가 윤택해지고, 사회적 문제로 인해 출산율이 점차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이 세상엔 아직 사랑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사랑으로 기뻐하고, 사랑으로 오만 가지 감정을 겪는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로맨스소설과 연애이야기가 담긴 음악 등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을 볼 때면 답이 더 분명해진다. 그 외에도 자연적 성과는 다른 젠더의 정체성 등으로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국 그들의 고민도 사랑에 기초한다. 꼭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는 자신과 맞는 동성의 연인을 찾아내며, 그들에게 어울리는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사랑도 이성의 사랑과 다를 바 없으며, 심지어 이성관계보다 더 치열한 사랑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을 볼 때 요즘 시대에선 사랑이 밥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사랑은 아무도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미묘한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능하다. ’갑이 을을 더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갑의 성격과 을의 성격, 갑과 을이 만날 때 누가 주도권을 잡는지 혹은 누가 더 배려해주는지 등등을 일일이 계산해서 답을 산출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 답도 가끔은 엇나가기도 하다. 물론 여러 가지 복잡한 개인적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애초에 그 모든 요인들을 완벽하게 통계분석하기란 불가능하다. 세계적으로 실력있는 회계사라고 하더라도 그 답을 얻지는 못하리라. 성적 경험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사랑을 경험하는 날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사랑에 제대로 된 답은 없다.

 그렇기에 더욱더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시키는 날을 좀 더 앞당겨야 한다. 요즘 한국에서 대폭 늘어난 청소년의 ‘자발적’ 성매매나 아동 성학대의 상황을 봐도 성에 대한 한국의 재인식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성범죄 가해자가 청소년인 경우가 점차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요인들을 제시하고 있다. 소위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의 그 엄청난 정보력을 볼 때 매체 단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현재 엄청난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연령 고려도 없이 무차별로 퍼뜨려진 저급 아동 포르노와 아동 성 학대의 증폭은 연관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매체의 극단적 단속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어느 지방에서 음식점을 해서 재산을 꽤 모은 한 아버지는 대학입학을 앞둔 아들에게 ‘남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아들과 소주 몇 잔 걸치고 홍등가로 나갔다. 나름대로 여성을 성적으로 매너 있게 다루고, 골치 아픈 임신을 막는 방법을 직접 지도해주고, 아들의 총각딱지도 떼 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결국 아들은 홍등가의 스타가 되어버렸고, 제법 돈 있던 그 집안은 길거리에 나앉을 형편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적고 있는 본인도 이 이야기가 실제라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홍등가에 미성년자가 드나들지 않도록 법적으로 차단해도, 부모가 홍등가를 ’부모동반 관람가‘ 취급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돈과 성을 주고받는 관계, 여성을 우습게 볼 수 있는 성관계가 남발하는 곳이라면 오히려 아들이 간다고 해도 부모가 차단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창가를 ’남자가 크면서 한 번 쯤은 갔다 올 수도 있는‘ 곳으로 치부한다. 심지어 사창가의 단속강화에 대해서 국회의원들은 앞장서서 심히 유감스러운 심정을 솔직히 드러내었다. ’사창가가 없어지면 남자는 성적 욕구를 참을 수 없어서 해소할 곳을 필요로 하게 될 테고, 결국엔 범죄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엄연히 사람을 짐승 취급하는 이 해명에 대해 남자들이 그닥 강력하게 반발하지 않았다는 점이 심히 유감스럽다. 아무튼 이런 사회구조도 우리가 아이들을 성적 정보의 범람에서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두 번째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말하기 꺼려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교육의 적기를 설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앞의 예시에서 보았듯이 부모의 성적 견해나 지식도 아이의 훗날 성적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프로이트의 성기기에 접해서 사타구니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을 저지하며 부모들은 무의식적으로 더럽다거나 나쁜 짓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성을 공경하는 전통사회의 미덕이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왜곡된 게 아닐까 추측해보는데, 이런 경우가 반복된다면 아이에게 성적 인식과 행동 전체가 더럽다는 잘못된 교훈을 주는 것이다. 성적 호기심에 대한 심한 체벌과 금지는 자칫하면 ’몰래하는 도둑질’의 재미를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격이 되어버린다. 정말 억울한 경우이지만 성 학대를 당한 아이는 학력과 친구관계 모두에서 진척을 보이지 못하며, 때로는 정신이상 증세마저 보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자위과잉증세까지 거론했는데, 놀랍도록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경우에 대처하려면 성적 정보에 대한 적절한 개방과 적절한 폐쇄가 필요하다. 적당한 성교육이 점차로 중요해지는 시대가 왔다. 부모의 성에 대한 인식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성에 관련된 자료들이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 장에 걸쳐서 극구 강조하고 있다. 개방적인 성 추세가 진행될수록 부모의 적절한 가르침은 반드시 필요하다. 여전히 성과 사랑은 상당한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의식적으로 아이와 터놓고 이야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책은 매우 간략하지만 성교육의 지침이 될 알짜배기 요소만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자녀의 성적변화에 대한 바람직한 대처까지 지적하는 꼼꼼함을 나타낸다. 아들은 아버지가 가르쳐야 하고, 딸은 어머니가 가르쳐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다만 아동이 이해 못할만한 이성의 특징(예를 들어 딸이 남자의 유별난 성적 관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할 때는 동성부모보다는 이성부모가 가르쳐야 더 사실적이고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 책에서 또 한 번 더 드러나는 조그마한 흠이라고나 할까.

 이성친구와의 관계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겠다. 앞으로 성과 관련된 행동 모두에 선택과 합의와 책임을 져야하는 시대가 온다. ‘키스에 대한 책임’이라는 문장은 물론 어색해보일 수 있다. “네 귓불에 키스해도 될까?”라는 질문은 더욱 어색하고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점 양성화되어가는 시대를 고려하면 수긍이 가는 태도라 생각할 것이다. 성적 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을 함부로 여기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며, 물론 여성도 남성을 함부로 여기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감정에 생긴 상처는 육체에 생긴 상처보다 몇 배로 치유하기 어렵다. 성추행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추행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자 사람들은 매사의 태도에 조심스러워졌다. 심지어 데이트폭력이나 부부폭력이라는 단어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안방에 법률을 끌어들인다는 항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서라도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원칙은 이미 굳게 우리 사회에 자리잡았다. 아직 경찰의 무시, 집안싸움엔 왠만해서 끼어들 생각 없는 이웃 사람들 등의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사회는 많이 변했다. 적어도 ‘집안싸움 따위에 이혼하지 말고 그냥 참고 살아라‘ 라고 무신경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었다. 피학적/가학적 성적 관계를 제외하고는 모든 성적 관계가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이가 성인이 돼서 선택한 성적 관계라면 물론 부모가 간섭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 아니라면 어떤 사랑을 하던 간에 자기 자신의 책임이고 자기 자신의 자유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성인의 단계에서이다. 아직 사회에 대해 배워야 하는 청소년기라면 성에 대한 부모의 견해를 솔직히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아이는 이미 완성된 하나의 개체지만, 사회를 배워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항시 돌봐주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부모가 아닌 누구에게 얼굴을 마주하고 성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겠는가. 물론 상담가나 보건사들의 지식도 풍부하겠지만, 아이가 부끄러워한다면 부모가 적극적으로 주도해 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아이가 물어보는 성적 질문에 답하는 타인은 편협하고 왜곡된 지식을 가질 수도 있다. 별별 사람들이 다 드나드는 인터넷이 특히 그렇다. 부모는 대부분 자식을 위해 노력하므로, 아이들에게 무엇이 유익한 정보인지 최대한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상담에 적합한 사람을 올바로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성에 대한 지식을 공부해서 올바른 답을 해줄 수 있다.

 문제 있는 아이들에 대한 TV프로그램이나 책을 보다보면 흔히 부모의 잘못된 점을 보게 된다. “너는 애비에미도 없냐?“, ”너네 어머니 아버지가 널 이렇게 가르쳤던?“ 등등의 말은 왠만한 욕보다 더 사람을 상처 입힐 수도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가 아이를 대신 맡아서 키워준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유전자상으로도 사회상으로도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책을 펼치자마자 졸게 된다면 백날 때리고 꾸짖어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한 가정을 만드려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신중하게 생각할 때 전혀 유익하지 않은 결혼이라면 이혼해야 한다. 사회에는 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다. 심지어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지금은 동성애자도 미혼자도 자신의 아이를 가져서 키울 수 있다. 본인은 미국의 여성 주의원이 게이커플의 아이를 낳아주기 위해 대리임신을 한 경우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레즈비언 부부에게 입양된 아이는 성인이 돼서까지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으며 정상적으로 자랐다고 한다. 비록 이 책에서는 동성애를 ‘왜곡된 성 발달’이라고 해석해서 책을 읽는 본인을 매우 유감스럽게 했지만, 동성애에 관한 본인의 견해는 이 책의 취지와 멀어지니 생략하겠다. 아무래도 심리치료 전문가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여하튼 다양한 성적 관계가 발달하고 있는 지금 그에 관련된 지식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생겨날 다양한 가족에 대해 편견 없는 식견과 편견 없는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황금대 시간의 드라마라거나 뉴스에서 동성애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데, 아동이 그 장면을 보고 어머니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제 시대는 아동에게 ‘아기는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라는 초보적 질문보다 더 고차원의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 모든 질문에 올바르게 답해주려면 부모의 기초적 상식과 지식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은 적절치 않다. 모르면 오히려 아동이 쓸데없는 지식에 더 접할 기회만 마련될 수도 있다. 지식을 전달해주는 데에도 신중한 고려와 수정이 필요하다. 수많은 생각과 명상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올바른 도덕심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 불교의 경전에서도 ‘모든 지식을 접하려들고 모든 나쁜 일들을 알려하면 나중에 발을 빼려고 해도 소용없을 수도 있다.’라는 말이 있다. 또 실제 사례를 들어보겠다. 본인은 언젠가 자신의 딸이 청소년이 되면 결혼할 때까지 피임약을 피부에 붙이고 다니게 지시하겠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아주머니를 한 분 본 적이 있다. ”한강에 배 지나가지 않으리란 법 있어?“ 물론, 한강에 배 지나갈 수도 있다. 나름대로 아이를 고려한 방법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 행위를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이라고 해석하지는 않을까? 오히려 성에 대해 더욱 개방적인 행위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차라리 어릴 때부터 혼전성교의 ‘장점’을 가르치는 게 더 경제적이고 바람직한 일이지 않겠는가? 물론 굉장히 어렵고 까다로운 교육이 될 수 있겠지만 아이의 앞날과 부모 자신을 고려한다면 아주 못해먹을 일도 아니다.

 요즘은 정보의 시대인 만큼 쓸모없는 정보도 판을 치는 세상이다. 오죽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첫 경험을 겪을 때 순간적으로 자신이 보았던 포르노나 성인 게임을 떠올린다고 하겠는가? 성적 판타지에 대한 공식적 조사는 우리나라에 아직 전무한 상태이지만, 무척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성적 지식보다는 아이에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도록 도와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성적 지식을 더 쌓기 위해 다른 책들을 읽으며 정보를 쌓는 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맨 마지막 장에 나와 있는 청소년 성 상담 전문센터 사이트라거나, 정신보건센터 전화번호 중 몇몇 개는 이미 노트에 써놓았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집은 이유는 성 피해 아동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지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에서였다. 역시나 성 학대를 받은 아이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영향은 부정적인 것들 뿐이다. ’나중에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한다‘라는 단정이 사실 나를 조금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일일이 화낼 필요는 없다고 나 자신을 진정시켰다. 아동 학대를 당한 3분의 1이 어른이 된 후에 자기 아이를 학대한다면, 3분의 2는 학대하지 않는다는 소리이다. 아동학과에 들어간 이유도 사실 좋은 부모가 되어 아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물론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지만, 이런 속내(?)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가끔씩 이유모를 슬픔과 분노가 터져 나와 당황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식과 노력, 그리고 인내심이 있다면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조심스럽게 세상을 걸어나가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직 요리할 줄도 모르고, 집안일 할 줄도 모르지만 아이가 정신적으로 상처받지 않도록 제대로 감싸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물론 ’우리 아이 정신건강 클리닉‘과 같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훈련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육아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많이 배워야 할 입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정치의 조건 - 미국 유일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서 배우는
조시 맥짐시 지음, 정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상당히 늦게 도착한 책이지만, 그만큼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엄청난 두께이지만 알차게 꽉 짜여진 내용들이 내 흥미를 당겼다.
 다만 문제는 단숨에 읽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묘사하자면, 강은 매우 투명해서 밑바닥까지 보이지만 유속이 빨라 지나가는 물고기를 보지 못하는 기분같다고나 할까..
 어쩌면 내가 빨리 읽으려고 조바심이 났는데 본인은 생전 몰랐던 정치에 대한 내용만 그득하니 머릿속에 혼란이 생긴 듯하다;
 항상 생각하는 일이지만 좀 더 번역을 매끄럽게 해 줄 수는 없는 건가(...)
 4선까지 도전했다는 이 대통령은 본인이 볼 때 매우 흥미있는 정치가이다.
 중도파는 아니지만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잘 조종할 줄 알았고, 때로는 형식과 틀에 벗어나는 과감성도 지녔다.
 그런 차에 이 책이 흥미를 끌어서 읽기 시작했지만, 애써 읽어본 가치는 있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정치를 펼쳤는지, 그의 리더십은 어떠했는지, 
 전시에 세계국가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했는지에 대해 뚜렷이 구분하고 정리하여 주장을 펼쳐나갔다.
 가끔씩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루즈벨트가 극진보파는 아니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대목들도 나와서 충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으리라.
 덕분에 정치에 대한 책을 쉽게 접하게 된 듯하다.
 본인은 제정시대의 왕들을 더 좋아하지만, 앞으로 대통령에 관련된 다른 책들도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