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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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 보고 이 책을 돈 버는 방법 정도의 가벼운 자기개발 서적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건 600페이지를 넘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역작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가 얘기하는 '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부'보다 훨씬 넓은 개념인데, 아마 일반적인 부의 개념으로는 프로슈밍과 같은 무임금 노동을 포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를 모아,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눠준 다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될까? 대다수가 동의하는 바는 세상의 부를 모으기 전의 부자와 가난한 자가 다시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부자였던 자는 다시 다른 사람들의 부를 모아, 부자가 되고, 부자 나라는 다시 부자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의 근거는 부자는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낚시하는 방법만 알고 있다면, 언제든 고기를 낚을 수 있는 것이나까. 이 방법을 앨빈 토플러는 '부 창출 시스템'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급속히 변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양한 사회 현상들로부터 살피고 있다. 새로이 창조되고 있는 부 창출 시스템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양의 부를 생성하고 있으며, 부의 매커니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삶이 열리는 환상적인 시기에.

인류 역사 속에 이런 환상적인 변화, 성장의 시기는 두 번 있었는데, 첫번째는 농업 혁명이며, 두번째가 산업혁명이었다. 이제 우리는 세번째 인류 역사의 변혁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책 속에서 꾸준히 표현되는데, 그간 인류가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세계 빈곤의 퇴치나, 세계 파워 게임에서 NGO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 역시, 이런 저자의 긍정적 미래관에 기초하고 있다.

미래 세계 힘의 구도는 누가 새로운 부 창출 시스템들을 얼마나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있는데, 이런 변화의 기저에는 시간, 공간, 지식이라는 3가지 요소의 변화가 깔려 있다. 즉 미래 부의 흐름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 3가지 기반의 흐름을 연구하고 주시해야 할 필요를 역설하고 있다.

여러 주체 간의 속도의 차이를 동기화하는 이슈, 아시아와 우주로 이동하는 공간의 확장, 지식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방법의 도전 등 시간, 공간, 지식에서 일어나는 변화 방향을 진단하고, 이런 변화의 대표적인 예로서 프로슈밍을 소개하고 있다. 프로슈밍은 스스로 소비, 사용하려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을 의미하는데, 오픈소스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거나 mp3 파일을 제작하는 전통적인 프로슈머 개념을 넘어, 계좌이체를 위해 인터넷 뱅킹이나 봉사활동 등 무보수 노동들을 통칭하고 있다. 프로슈밍은 과거 자기 옷은 자기 짜 입고, 자기 음식은 자기가 키우던 그 때의 방식과 비슷하다. 여분이 있다면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비화폐 경제의 폭발적 성장은 기존 화폐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사례는 제 블로그를 참조)

또 그는 섬뜩한 통찰력으로 현대 기업들의 전략적 오류를 정확히 꼬집고 있는데, 바로 민첩성과 속도에 대한 숭배이다. 환경 변화가 빨라짐에 따라 모든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을 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경영을 컨설팅하는 곳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IT와 소프트웨어도 기업의 민첩성을 증진시키데 크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민첩성에 대한 인기 뒤에 숨은 그림자는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이렇게 꼬집고 있다. "민첩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전략이 없는 민첩성은 조건반사에 불과하다." 속도가 중요하다고 해서 그때그때 생각없이 대응하는 것은,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끝부분 하나의 섹션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데, 점진적 연방 통일을 원하는 남북한 양국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통합의 진도가 정부 통제를 벗어나면서 한 순간 급격하게 통일이 되어버리는 시나리오를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있다.

부를 축적할 구체적인 기회에 대한 언급을 두리뭉실한 상태로 두어서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과, 번역이 다소 껄끄러워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의 이해를 방해한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그것이 책의 가치를 그리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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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습관 1 - 동사형 조직으로 거듭나라
전옥표 지음 / 쌤앤파커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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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아침 열리는 임원회의. 이번주에는 이례적으로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이구동성으로 일독하기를 강력 추천하신 책이 있었다. 그것을 이미 읽었던 나는 강추의 의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임원들에게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고, 강한 동사형 조직을 만들어내라는 간접적인 압력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겉으로는 성공하는 직장인과 기업을 위한 조언을 표방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삼성 배우기의 다른 형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저자가 삼성전자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해 마케팅 임원에 오르기까지 20여년을 삼성이라는 울타리에서 살아온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 직원들의 정신자세, 삼성 기업의 분위기,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내부시스템 등이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또 하우젠이라는 유명브랜드를 탄생시키기도 했던 저자의 마케팅 지식도 한 몫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주제는 '강한 조직'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는데, 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구성원들의 여러가지 태도, 자세와 방법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열정, 성실과 위기의식, 창조와 혁신, 문제해결의 힌트 등 이론서처럼 아주 체계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소설처럼 허무맹랑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강한 조직이 갖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데, 강한 조직은 기업 발전의 대의명분이 있다. 그리고 목표는 높게, 평가는 냉혹하게, 보상은 철저하게 시행한다.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지만, 일에는 프로세스가 있고 규범이 철저하게 지켜진다. 끝으로 이것들을 열정이라는 조직문화가 받치고 있다. 눈치가 있다면 금방 이것들이 삼성의 특징을 나열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삼성 따라하기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로서 이 책이 널리 읽히고 추천되는 이유는 저자의 마케팅 수완도 한 몫 거들었겠지만, 결국 모든 기업들이 가려워하지만 혼자 긁을 수 없는 곳을 이 책이 시원하게 긁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더우기 한국 굴지의 회사에서 임원까지 올라선 성공한 직장인이 한국이라는 틀 속에서 제안하는 해결책이기에 더욱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린 시절, 명절 때면 친척들이 사다주던 종합선물세트를 기억하시는지. 껌부터 사탕, 스낵, 쿠키, 초코파이까지 온갖 잡다한 것들이 잔뜩 들어있는 큰 상자말이다. 동생과 함께 맛있는 것을 차례차례 꺼내 먹고 나면, 나중에는 야채크래커 같은 별로 인기없는 품목들이 상자에 가장 오래 남아있곤 했다.

이 책 '이기는 습관'는 그런 종합선물세트 같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건 아니지만, 대신 사장부터 말단직원까지 어느 위치에 있는 직장인이든 맘에 드는 것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만큼 풍족하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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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인간관계론 (반양장)
데일 카네기 지음, 최염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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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그의 불멸의 고전, 군주론에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에 근거해 리더가 이를 통치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면, 카네기는 이런 비슷한 인간 본성에 근거해 성공적인 인간관계 공식들을 내놓았다.

책 속에는 인간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문장들이 있는데, '사람은 논리적이지 않다. 상대는 감정의 동물이고, 심지어 편견에 가득차 있으며 자존심과 허영심에 의해 행동한다', '세상 사람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 세상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와 같은 것들이다. 인간의 부정적인 면들이 크게 부각된 것 같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적인 대안들이 도출된 건지도 모르겠다.

책 전체의 밑바탕에 깔린 기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사람은 누구나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상대가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즉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 염두하고 상대를 상대한다면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기반에서 나오는 구체적이고 실행적인 방법들이 칭찬과 존경, 이름 기억하기, 미소짓기, 관심 표현하기, 경청, 무비판, 무논쟁, 간접설득, 자기실수의 인정들이고, 카네기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 상대에게도 열렬한 욕구를 일으켜 자신을 따르게 하라는 리더십 이론은 흡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시된 대부분의 방법들은 냉정하고 현실적인 전제와는 달리, 실제 그것들이 우리 삶에서 실현되었을 때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 내 존재의 중요성을 인정해주고, 나를 기억해 주고, 나의 관심사에 함께 관심을 기울여주고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준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설령 그 속에 나를 이용하려는 속셈이 들어있다해도, 내가 모르고 있는 한에서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속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세상을 경쟁으로 보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런 성격의 사람들에게 카네기가 전하는 블루오션 전략을 책 중간에서 찾아냈다. 그런 이기적 성향의 사람들을 이타적 사람으로 개도하는 가장 적절한 설득논리가 아닌가 싶다.

"이 세상은 자기 것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려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기회가 따른다. 그런 사람에게는 경쟁상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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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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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 근 20년만에 갑자기 인터넷 서점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2007년 10월, 이 책의 저자, 레싱이 노벨문학상을 탔기 때문이다. 올해 88세의 영국여성인 레싱은 노벨상 수상의 변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그들(노벨 평가위원회)은 언젠가 그 여자(레싱 자신)에게 상을 줘야 할텐데 하면서 걱정했을 거예요. 난 이미 유럽에서 많은 상을 받았어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거친 페미니즘의 기수이기도 한 그녀의 대단한 자신감이다.

난 운이 좋게도, 왜 운이 좋은 건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그녀가 노벨상을 타기 일이주 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알라딘의 편집자추천을 극진히 신뢰하는 나의 취향과 이 책의 가격이 딱 맞아 떨어진 우연한 행운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 책은 가족소설, 공포소설, 사회소설 등 어느 것으로 분류하기 애매하지만, 재미있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고, 다 읽고 나면 뭔가를 더 갈구하게 된다. 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찾았다. 왠지 영화로 만들어져 있을 것만 같았고, 영상 속에서 다섯째 아이, 벤을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이 책이 영화화되면 좋겠다는 나의 동지들을 여럿 목격할 수 있었다.

난 이 책의 심오한 의미나 사회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공포소설로 분류하고 싶다. 이 책에는 귀신이나 유령도, 피 튀기는 칼부림도 없다. 괴물도 없고, 총격전도 없다. 그런데 무섭다. 온몸에 쏴하고 소름이 돋도록 섬뜩하다. 이것은 정말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공포였다. (정말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공포를 영상으로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감독이 몇이나 될지 의심되지만...)

1차적이고 표면적인 공포의 대상은 단연 다섯째 아이, 벤이다. 기형의 몸에, 감정없는 눈과 엄청난 괴력을 소유한 불행의 씨앗. 하지만 학교의 선생님들의 눈에는 다소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 정도로 보일만큼 정상이다. 이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벤에게서 우리는 연민과 공포를 함께 느낀다. 마치 각설탕과 쓰디쓴 알약을 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진짜 공포는 그의 옆에 있는 정상인 가족들이다. 어렵게 만들어온 대가족의 행복 전체를 위협하고 파괴했던 그 악마를 그가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였을지도 모르는 지옥에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데려오는 모성애가 무섭다. 성한 나머지 네 손가락(정상의 네 아이들)을 위해 기형의 새끼 손가락(다섯째 아이)을 과감히 깨물어 잘라내어 버리는 아버지의 냉정함이 무섭다. 잘려진 손가락을 어딘가 묻어버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지독한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대피하는 네 아이들의 결코 어리지 않은 생각들이 섬뜩하다.

레싱은 우리가 따뜻한 사랑의 울타리로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허울을 새로운 느낌의 공포로 대체했다. 어쩌면 기형아 낙태가 만연하는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공포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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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 마음을 움직이는 힘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1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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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위차장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의 기획실에 있다. 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의 전사 기획팀에 있다. 위차장은 34세 나이에 최연소 차장 승진을 했다. 나는 국내 내노라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33세에, 내가 아는 한, 회사에서 최연소 차장 승진을 했다.

위차장의 아내와 딸아이는 그의 성격 때문에 처가집으로 떠났다. 나의 아내는 힘들다며 딸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2개월간 떠나 있었다. 위차장의 아내와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말들을 한다. '냉혈동물, 가시 돕힌 철갑, 뒤틀린 사람'. 나는 가끔 아내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냉혈한, 가시가 뾰족뽀족 난 사람, 속이 꼬인 사람'.

이 이야기는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인가? 순간 나는 저자가 나를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상황이 똑같을 수 있을까. 이런 류의 사람들이 세상에도 많은걸까. 이 책은 명실상부 베스트셀러니 말이다.

물론 나는 아스퍼거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다. 그런 것 같다. 이 책에 언급된 아스퍼거 신드롬은 지적 능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뇌의 유전적 결함에 의해 상대의 감정이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위차장도 그렇고 나도 그런 병적인 상태는 아니다. 그러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이 책이 '배려'라는 키워드를 통해 제시하는 테라피가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난 잘하고 있는데 구지 개선이라는 것이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위차장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어려움에 빠진 조직(1팀), 신선 같은 조언자(인도자 감사님), 악날한 내외부의 적들(철면, 사스퍼거), 그 속에서 개과천선하는 우리의 주인공, 위. 사실 최근 소설형식의 자기 개발서들의 전형적인 구도이다. 진짜 소설에 비해 묘사나 설명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개연성도 약하고, 가끔 너무 작위적이라 생각되는 부분도 보인다.

따라서 주제를 전개하는 측면에서는 이렇다할 매력을 찾지 못했고, 문제는 주제의 참신성이었다. 배려라는 제목만 보면 왠만한 사람이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떠오를 것이다. 이 책도 상당수의 지면을 이 주제에 할애하고 있다. 만약 내용이 여기서 그쳤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저자는 배려를 자신과 세상을 위한 배려로 더 확장했다. 이것은 배려라는 단어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 자신을 배려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이기적이다는 말과는 다르다. 자신을 자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가식하거나 허영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에게 솔직해지는 것이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보이는 것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답이 떠오르는 문제는 아니다. 책에서도 이런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우리, 특히 위차장 같은 나잘란 인물은 항상 남보다 나아보이고자 한다. 그래서 공격하고 비판하고 울타리를 치고 뻣뻣해진다. 이것을 위해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다보니 항상 힘들다. 이 가면을 벗어던지면 한결 수월해질 수 있을진도 모른다. 자기에 대한 배려, 자기에 대한 사랑은 어깨에 힘을 빼고, 미소를 띠고, 경청하고, 포용하고, 낮아지는 것이다.

세상을 위한 배려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의 영업 1팀의 성공의 비결이기도 한데, 통찰력을 발휘해 고객이 진정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어디서 읽은 '돈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대중의 가려운 곳은 어디인가? 그걸 찾고 창조하는 것이다.

하루 밤만에 다 읽고 나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와 똑같은 설정의 위차장의 변화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나. 솔직히 결말부분에 있던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배려로 살아간다'는 명제에는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배려라는 말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대치하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현대판이 되어버린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걱정하는 것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것으로 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주장과도 큰 차이가 없다.

나와 굉장히 비슷한 주인공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나의 사고가 이미 굳을대로 굳어져 버린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근거나 설명도 없이 그냥 옌날 이야기 한 편 풀어낸 것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책을 덮은 후 새벽에 얻은 내 답은 아직 뭐라 말하기엔 좀 이르다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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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서점, '이주의 마이리뷰'에 당선! ^^
    from We Are The STAR 2007-11-24 12:19 
    배려라는 책 서평으로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이주의 마이리뷰에 당선되었다. ㅎㅎ (여기 클릭하면 발표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배려 - 한상복 지음/위즈덤하우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종진 옮김, 이상권 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