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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콘서트 ㅣ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1
팀 하포드 지음, 김명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간단하건 복잡하건 모든 현상은 그것을 지배하는 원리에 따른다. 따라서 당연히 각각의 현상을 기억하고 파악하는 것보다 원리를 이해하고 현상에 적용하는 것이 현상을 이해하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또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떤 현상의 다음을 예측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다수의 현상들로부터 원리를 뽑아내는 추상화 작업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이를 통해 인간은 많은 것을 기억하고 응용할 수 있다.
수학, 과학, 경영학, 심리학 등 ‘학’이 끝이 붙는 것들은 모두 이런 추상화를 결실들이라 할 수 있겠다. 경제학 역시 경제라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속에 숨어있는 원리들을 뽑아내어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경제학 콘서트는 그런 경제 영역의 현상과 그 속의 경제 원리를 명쾌하게 매치함으로써 독자가 경제 원리를 이해토록 하고, 나아가 그 원리를 독자 주변의 다른 현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매력이 있다. 물론 두꺼운 하드커버의 경제학 원론 책을 펼쳐놓고 이론과 실제를 머리 속에서 그려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마치 커다란 강당에서 대중음악 교수로부터 락음악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과 같다. 박자는 이렇고, 리듬이 어떻고, 밴드 구성은 어떻게 되며, 락의 역사는 어떠했고… 따분하고 졸립기까지 하다.
락을 더 재미있게 배우는 길은 락 콘서트에 가서 직접 느끼는 것이다. 대형 스피커 앞에서 박자를 온몸으로 느끼고, 리듬을 따라 몸을 흔들며 락을 배우는 것이다. 싱어가 악기 연주자를 하나씩 소개할 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밴드 구성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 책이 경제학 콘서트이다. 책으로 만나는 콘서트의 찌릿한 감동을 느껴보시길…
경제학 콘서트에서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던 중 수많은 현상의 핵심을 찌르는 원리 하나를 발견했다.
‘희소성의 원리’
모든 경영학 서적과 보고서들은 혁신을 이야기한다. 창의적이어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고 한다. 저 푸른 바다(blue ocean)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언제나 빠져있다. 혁신함으로써 어떤 결과를 얻기 바라는가? 당신의 상상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가장 손 쉬운 대답은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이다. 비전과 미션을 들먹이며 혁신과 변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 기업의 이익과 시장가치의 증대를 원하는 모든 조직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하나뿐이다. 업종이 무엇이건, 규모가 크든 작든, 기업의 이념이 무엇이든 추구해야 할 답은 하나다. 오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이것이 목표로서 전제하지 않은 기업의 전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기업이 혁신과 변화를 통해 추구해야 할 유일한 전략적 목적지는 바로 ‘독점(monopoly)’이다.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역사를 통틀어 모든 성공하는 기업은 ‘독점’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다. 기업이라는 말을 국가로 바꾸어도 성립하고, 개인이라는 말로 바꿔도 마찬가지이다. 그 조직이 한 명이건, 수 억명이건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구석시 시대였건, 미래 시대이건 마찬가지이다. 또 합법적이건, (걸리지 않는다면) 불법이건 독점이 발휘하는 엄청난 효과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은 단연 매출이나 이익, 시장가치 등 모든 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라 불리는 개인 컴퓨터의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와 오피스라 불리는 문서관리 소프트웨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이미 윈도우에 익숙한 엄청난 수의 사용자와 마찬가지로 윈도우에서 실행되는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이 익숙해진 엄청난 수의 개발자와 개발업체를 우군으로 삼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력은 대단하다. IBM조차 마이크로소프트의 철옹성에 도전했다가 패배한 후로는 사실 어떤 기업도 도전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리눅스나 구글이 도전장을 던지고 있지만 아직 윈도우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선 많은 것이 부족하다. 이것이 삼성전자의 3배에 이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가치의 기초이다.
법적으로 독점을 인정받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은 바로 공사이다. 우리나라 담배인삼공사(KT&G)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담배와 인삼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담뱃값은 공사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기를 독점하고 있다. 전기세가 높다고 해서 우리는 다른 전력제공기업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 소비자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협상력이 그만큼 적다는 것으로 공급자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다.
과거 제국들의 자국 식민지에 대한 독점권한은 제국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사람들은 영국의 공장이 생산해 내는 옷과 신발만을 살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인도의 엄청난 부가 영국으로 흘러들어갔다. 간디가 인도독립의 심볼로 맨발과 베틀을 내세웠을 만큼 영국은 독점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오늘날 인도와 중국은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에서 독점적이다. 글로벌화로 국가 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세계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도의 중국의 노동시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도와 중국에 엄청난 부가 흘러들어가며 고속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소위 니치 플레이어(niche player)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벤처기업 역시 독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니치 플레이어는 자신만이 만족시킬 수 있는 작은 시장(niche market)에 집중한다. 그 작은 시장은 자신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한,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피 흘리는 경쟁없이 생존할 수 있다.
오늘날 정보는 더 빨리 흐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경은 사라졌다. 이제 자신의 경쟁자가 어느 나라에 속해 있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독점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어렵게 되었다.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되려 장기적인 독점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독점 매커니즘을 고집하는 것이 더욱 위험할 수 있다. 경쟁자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하루 아침에 자신의 수익원이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의 기업들의 전략 방향은 ‘일시적인 독점 상태의 계속’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기업이 어떤 연유로 독점상태를 만들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세계의 수많은 경쟁자들과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수익이 나는 곳을 찾아다니는 잠재적인 경쟁자들은 당신의 독점 상태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주변에 열매가 열린 곳에 안주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열매가 풍부한 곳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것이 기습당할 가능성이 적다. 이것이 계속해 블루오션에 머무를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이다.
이런 일시적인 독점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업 전략의 모체이고 마케팅 활동이 되어야 한다. 그럼 독점 상태는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이고 또 장기적인 것이 바로 희소성이다. 희소하다는 말은 가진 자가 적다는 것이다.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쉽게 따라할 수 없고,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챌 수도 없는 것이다. 희소성이 곧 독점이고, 파워이다.
희소하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과 다르다. 인간의 삶에 있어 물은 기름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기름이 물보다 희소하다. 그래서 기름은 더 가치가 있고, 더 비싸다. 희소한 것을 가지고 있는 자는 독점을 만든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은 희소하다. 인도의 싸고 영어를 할 줄 아는 노동력은 희소하다. 나는, 나의 기업은, 나의 나라는 남이 모방할 수 없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경쟁은 여기서 결판이 난다. 희소한 무엇인가를 가진 기업에게 투자하고, 그런 개인을 채용하라. 절대 실패할리 없을 것이다.
단, 앞으로 좀 더 주의깊에 지켜봐야 할 것은 ‘희소성의 원칙’이라는 경제 원리가 계속해서 독점 상태를 만드는데 유효할 것이냐는 것이다. 만약 이 변화를 포착해 낸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희소성은 쓰면 없어져야 하고, 공급의 경로가 제한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석유는 쓰면 없어지고, 몇 나라만이 제공할 수 있다. 그러기에 희소하다. 하지만 지식은 그렇지 않다. 지식은 수확체증모델을 따른다. (이 원리도 경제학 콘서트에 나온다.) 지식은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증가한다. 써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설령 처음 공급은 한 군데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식이 전파될수록 공급처는 늘어난다. 누군가 독점에 대한 경영 전문가가 되어 자신의 지식을 모조리 전파해버리면 전 세계에 엄청난 독점에 대한 경영 전문가가 탄생하고 자신의 독점적 지위는 사라진다. (난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거지?)
하나를 배워 열을 알아가는 것은 공짜로 뭔가 얻는 느낌이어서 좋다. 딱딱하고 지루한 강의보다 흥겹고 재미있는 콘서트가 좋다. 그것이 나에게 경제적 여유를 제공한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경제학 콘서트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마음껏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