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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 마음을 움직이는 힘 ㅣ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1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이 책의 주인공 위차장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의 기획실에 있다. 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의 전사 기획팀에 있다. 위차장은 34세 나이에 최연소 차장 승진을 했다. 나는 국내 내노라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33세에, 내가 아는 한, 회사에서 최연소 차장 승진을 했다.
위차장의 아내와 딸아이는 그의 성격 때문에 처가집으로 떠났다. 나의 아내는 힘들다며 딸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2개월간 떠나 있었다. 위차장의 아내와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말들을 한다. '냉혈동물, 가시 돕힌 철갑, 뒤틀린 사람'. 나는 가끔 아내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냉혈한, 가시가 뾰족뽀족 난 사람, 속이 꼬인 사람'.
이 이야기는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인가? 순간 나는 저자가 나를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상황이 똑같을 수 있을까. 이런 류의 사람들이 세상에도 많은걸까. 이 책은 명실상부 베스트셀러니 말이다.
물론 나는 아스퍼거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다. 그런 것 같다. 이 책에 언급된 아스퍼거 신드롬은 지적 능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뇌의 유전적 결함에 의해 상대의 감정이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위차장도 그렇고 나도 그런 병적인 상태는 아니다. 그러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이 책이 '배려'라는 키워드를 통해 제시하는 테라피가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난 잘하고 있는데 구지 개선이라는 것이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위차장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어려움에 빠진 조직(1팀), 신선 같은 조언자(인도자 감사님), 악날한 내외부의 적들(철면, 사스퍼거), 그 속에서 개과천선하는 우리의 주인공, 위. 사실 최근 소설형식의 자기 개발서들의 전형적인 구도이다. 진짜 소설에 비해 묘사나 설명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개연성도 약하고, 가끔 너무 작위적이라 생각되는 부분도 보인다.
따라서 주제를 전개하는 측면에서는 이렇다할 매력을 찾지 못했고, 문제는 주제의 참신성이었다. 배려라는 제목만 보면 왠만한 사람이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떠오를 것이다. 이 책도 상당수의 지면을 이 주제에 할애하고 있다. 만약 내용이 여기서 그쳤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저자는 배려를 자신과 세상을 위한 배려로 더 확장했다. 이것은 배려라는 단어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 자신을 배려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이기적이다는 말과는 다르다. 자신을 자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가식하거나 허영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에게 솔직해지는 것이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보이는 것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답이 떠오르는 문제는 아니다. 책에서도 이런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우리, 특히 위차장 같은 나잘란 인물은 항상 남보다 나아보이고자 한다. 그래서 공격하고 비판하고 울타리를 치고 뻣뻣해진다. 이것을 위해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다보니 항상 힘들다. 이 가면을 벗어던지면 한결 수월해질 수 있을진도 모른다. 자기에 대한 배려, 자기에 대한 사랑은 어깨에 힘을 빼고, 미소를 띠고, 경청하고, 포용하고, 낮아지는 것이다.
세상을 위한 배려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의 영업 1팀의 성공의 비결이기도 한데, 통찰력을 발휘해 고객이 진정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어디서 읽은 '돈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대중의 가려운 곳은 어디인가? 그걸 찾고 창조하는 것이다.
하루 밤만에 다 읽고 나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와 똑같은 설정의 위차장의 변화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나. 솔직히 결말부분에 있던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배려로 살아간다'는 명제에는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배려라는 말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대치하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현대판이 되어버린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걱정하는 것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것으로 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주장과도 큰 차이가 없다.
나와 굉장히 비슷한 주인공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나의 사고가 이미 굳을대로 굳어져 버린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근거나 설명도 없이 그냥 옌날 이야기 한 편 풀어낸 것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책을 덮은 후 새벽에 얻은 내 답은 아직 뭐라 말하기엔 좀 이르다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