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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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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와 철학(哲學). 하나만으로도 벅찬 대상이 둘이나 모였다. 문학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언어의 정수라고도 표현되는 시와,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읽는이에게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철학. 이 둘이 만난 책이라니. '도대체 저자는 무얼 얘기하려는 것일까.' '잘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어렵고 힘든 춘추전국 시기에, 저자의 자뻑을 읽어야 하는가.' 책을 펼치기 전, 심난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불안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나서, 글을 읽기 시작하자, 그런 불안한 마음은 이내 봄눈 녹듯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 책은 두 무시무시한 사유의 결정체인 시와 철학을 한데 묶어 감상한다. 서양의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시를 분석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그 반대로도 볼 수 있다. 난해한 주제이고 시도이긴 하지만, 어렵지 않다. 저자는 시와 철학을 마치 '장르 영화'를 다루듯이 다양한 해석과 분석을 통해 시와 철학이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많이 밀접해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두 주제는 철학도나 문학도라면 관심을 갖고 덤벼들만한 매력적인 주제여서, 자칫하면 '자뻑'으로 흐를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지만, 저자는 과욕을 부리지 않고, 적정선에서 시와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즉, 본격적인 연구서라기 보다는 입문서에 가깝다. 빼놓고 이야기했는데,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동녘 출판사에서 발행됐다. 동녘이라면, 바로 그 『철학 에세이』의 동녘아닌가! 그러니까 이 책은 '현실에서의 철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동녘의 그 꾸준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물론 철학을 순수하게 학문으로 다루지 않고, 시를 해석하는 도구로써 사용된 것에 대해 분개하는 원리주의자 철학도들도 있겠지만, 그대들은 그대들의 머릿속 우주에서 무한사유 하시고 이 비천한 땅에는 감히 오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은 고상한 그대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철학과 시 따위는 고상한 사람들의 것이지 우리에겐 TV나 어울려"하는 현실에 지친 고단한 우리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저자는 21개의 시와 21명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야기하며, 이 모든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우리가 사는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는 우리의 현실을 시인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노래한 것이고, 철학은 우리의 현실을 여러 철학자들의 개념을 빌려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로 풀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와 철학은 우리의 삶에 밀접한 것이다. 

   강신주 씨가 언급한 21명의 철학자 - 네그리, 비트겐슈타인, 아렌트, 알튀세르, 바타이유, 벤야민, 레비나스, 니체, 푸코, 가라타니 고진, 하이데거, 들뢰즈, 사르트르, 아도르노, 데리다, 아감벤, 퐁티, 리오타르, 바디우, 호네트, 박동환 - 의 사상과 21명의 시인 - 박노해, 기형도, 김남주, 강은교, 박정대, 유하, 원재훈, 황동규, 김수영, 도종환, 김춘수, 최두석, 최영미, 최명란, 오규원, 한하운, 정현종, 이상, 황지우, 박찬일, 김준태 - 의 시는 무작정 읽으면 그 언어의 사유세계에 헤어나오지 못해 절망에 빠져들기 쉽지만, 적절한 인용과 친절한 소개로 읽는이가 '이거 한 번 읽어볼만 하겠는걸?'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진중한 무거움(혹은 어려움과 난해함)은 없지만, 쉽게 읽히고, 더 나아가 시인의 다른 시와 철학자의 다른 사상까지도 관심갖게 만드는 책이다. 시와 철학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진정한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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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2010-03-02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 강신주님에 대한 신뢰가 강한 편입니다. 리뷰를 읽어보니, 더욱 읽어봐야겠다 싶어지네요!

Seong 2010-03-03 09:14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 기회에 알게 됐습니다. 다른 저서도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어려운 주제를 굉장히 찰지게 쓰셔서 그 내공이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03-2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철학자가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게 저는 아쉬웠습니다. 현대로 범위를 좁혀놓았대도 윤노빈이나 김영민, 김상봉 같은 이들을 넣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Seong 2010-03-29 16:02   좋아요 0 | URL
그만큼 한국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나, 혹은 의제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저는 철학에는 문외한이라 이정도 언급만이라도 정말 좋았어요. 언급하신 철학자들의 저서를 찾아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03-29 16:21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이 책 소개할 때도 댓글을 달아봤는데, 박동환은 저자의 대학 스승이기도 하죠. 책에서 간간이 언급하는 김상환도 모두 같은 대학 출신인데 그 대학 철학도들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주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김상봉도 그 테두리안에 들겠지만요.
윤노빈이야 기구한 인생 때문에 단 한 권의 책 밖에 우리에게 남기지 않았지만 그 책을 보고 저는 경이감을 가졌습니다. 그의 제자 김영민은 자신만의 견고한 철학을 만들어가고 있구요.
중언부언했습니다.

Seong 2010-03-29 18:3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몰랐던 사실이였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명의2>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명의 2 : 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2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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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장사꾼은 많지만 의사는 없다는 이 세상에서, 이 책에 나와있는 17명의 의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일까? 혹시 이 책도 TV 3사의 맛집 소개프로그램처럼, 촌지와 과대포장으로 얼룩진 그런 내용이 아닐까? 책을 읽기 전, 온갖 잡다한 생각이 다 들었으나, 책을 읽고난 후 그런 생각은 말끔히 사라졌다. 지독한 열정과 고집, 그리고 성실성. 명의(名醫)를 정의하는 말은 많이 있지만, 이 책에서 정의하는 명의는 바로 저런 조건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의사들이다. 

   이 책에서 '명의'라 여기는 의사들은 다음과 같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의사 역시 '기능공'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다른 기능공들은 나무나 돌 등 무생물을 깎아내지만, 의사들은 사람의 몸을 다룬다. 의학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을 뜻한다. 의사들 역시, 매일 새롭게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가기 위해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외과의사들은 기질상 승부욕 같은 게 큰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못하는 거라면 더 하고 싶고, 어려운 병일수록 공부하고 연구해서 수술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물론 어려운 수술을 해내고 환자가 드라마틱하게 살아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성취감을 주는 일도 없죠. 

-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전문의 김선회 교수            

 

   지금까지는 아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위험부담은 따르지만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수술해서 살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당연히 도전해봐야지요. 산과를 전공하는 교수로서 꼭 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사명의식이 있었지요.  

- 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이근영 교수          

 

   그리고 그런 노력이 환자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 힘들더라도 의사가 해야할 의무라 생각한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아무래도 가야 할 길인 것 같았어요. 복강경 수술을 하게 되면 환자들에게 많은 장점이 있잖아요. 우선 아주 조금만 절개하니까 흉터도 거의 안 남고, 많이 아프지 않으니까 회복도 훨씬 빨라져요. 결국 입원기간도 단축되면서 환자들의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가 굉장히 빠르거든요. 개복수술보다 수술비가 비싸지만 입원기간이 짧으니까 충분히 상쇄가 되는 부분이 있으니 환자한테는 더없이 좋은 방법입니다. 문제는 의사들이 새로운 의술을 배우기가 어렵고 시간이 거린다는 것뿐이죠. 하지만 만약 그런 이유라면 그 길은 가는 게 맞는 거죠. 

-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남주현 교수            

 

   자신의 길이 사명이라 생각하고 신념이라 여기며, 그에 관한 일이라면 그 어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영훈 교수는 언제, 어디서든 '응급처치'의 중요성을 알리는 자리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응급처치든, 진료든 환자의 심장을 살리는 일이라면 모두 '심장내과의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의사가 진료실에서 환자의 심장을 살리는 일 못질않게 절실한 것은 누구나 응급처치로 다른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이라는 신념 때문에 그토록 '심폐소생 교육'에 열정을 다하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환자의 그 아픈 고통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고 이겨낸다. 

   엄마가 된 다는 것.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어요. 우울증 때문에 못 버티겠다고 울면 모성애가 없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는 분들이지요. 하지만 호흡기를 낀 아기를 보면 저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어요.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면 전 야단도 치고, 원망도 듣고 욕도 먹으며, 또 같이 울어줄 겁니다. 

- 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이근영 교수           

 

   천상천하 유아독존, 독불장군이 아닌, 각 파트의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는, 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생각하며, 각 스태프들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감싸안는 위대한 지휘자이기도 하다.  

   중환자치료가 힘든 게 어떤 한 부분의 노력이나 능력에 의해 되는 게 아니라 많은 부분 오케스트라랑 비슷한 면이 있어요. 저나 장윤실 교수가 중심이기보다는 지휘자의 역할 같은 거죠. 각 파트의 연주가 잘 될 수 있는 게 지휘자의 역할이듯이 저의 역할도 스태프 선생님들이 가장 편안하고 능력 발휘 잘해서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거니까요. 

-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박원순 교수          

 

   숱한 시행착오로 힘들게 개발한 치료법이나 의료 기술들을 조건없이 가르치며, 더 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훌륭한 의사들로 키워내기 위해 끊임없이 담금질한다.

   제가 먼저 길을 가봤고 또 답을 줄 수도 있지만 아무리 높은 산도 헬기타고 올라가면 모르지 않습니까? 과정을 알 수도 없고. 저희 치료라는 게 대개 응급으로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판단과 직관력을 기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각 장기의 기능이 모두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처치나 수술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 하는데 이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 진료는 직관력을 기르기 위해 일죵의 'Q'를 준다고 할까요? 다가서기도 힘들 정도의 작은 아기인데, 그런 애들의 침습적인 치료를 한다는 게 굉장히 두려운 일인데, 그런 거를 두려움 없이 할 정도의 숙련도를 익히기 위해 어떻게 보면 좀 순도 높은 담금질이라고 할까요? 

-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박원순 교수          

 

   이것이 이 책에서 밝히는 명의의 조건들이다. 가족의 관계를 거의 끊어버리듯 하고, 오로지 환자와 병만을 생각하고 살아온 '무정'한 의사들. 1%의 확율을 높이기 위해서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마치 디오니소스처럼 한계를 돌파하는 아폴론의 후예들. 이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 아닐까. 물론 가족을 제쳐두고 의술의 소명과 사명에 빠져든 명의의 가족들에겐 정말로 미안한 일이지만. 이 자리를 빌어 그들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에는 17명의 명의들과 그의 가족들, 환자들이 벌이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론 방송을 위해 선별해서 실었겠지만, 그 어떤 소설이나 시보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다. 현실은 그 어떤 (가공된) 예술보다 절절한 법이니까.  

 

   전 34란 숫자가 제일 좋습니다. 꿈의 숫자기도 하구요. 10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도 태아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이 바로 34주입니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수술을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일주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엄마의 뱃속 안에서 보내는 태아에게 일주일은 엄청나게 중요해요. 엄마가 일주일을 더 버티느냐 마느냐에 따라 태아의 생존은 물론이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아기의 평생이 결정됩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최후의 마지노선이 34주인 셈이지요. 그러니 아무리 어려워도 일주일만 더 버티자! 그게 제 모토입니다. 

- 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이근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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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2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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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음'이란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회한의 시절이기도 할테고, 다른 누군가에겐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미성숙의 혼란한 시절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하자면, 젊음이란 설익은 지식과 일천한 경험으로 사회를,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혀 나가는 시기일 것이다. 그렇게 쉴새없이 부딪혀 나가며, 깨어지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세상에 맞추어 살아나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젊음'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만다.  

   돌이켜보면 '젊음'은 완전한 인간으로는 미성숙한 시기이지만, 그때의 열정과 치열함, 그리고 무모함은 이제는 더이상 젊지 않은 기성세대들에겐 다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이상향'의 그리움이 묻어있는 단어다. 이문열 작가의 『젊은날의 초상』은 이런 '젊은날'을 자신의 작법으로 그리고 있다. 

   책은 총 3편의 중,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은 개별적인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고, 장편의 한 부분으로 읽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은 각각 따로 발표되었었는데, 「그 해 겨울」→「하구(河口)」→ 「우리 기쁜 젊은날」순이다. 아마도 작가는 각각의 개별적인 사안을 중시하는 단편의 모음보다는,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소설로 이 작품들이 기억되기를 바라서 장편으로 구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1부 「하구(河口)」에서 '나'는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이다. 2년여간의 방황생활에서, 이렇게 인생을 마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하나뿐인 혈육인 형에게 연락을 한다. '나'가 머무는 강진(江盡)은 글자 그대로 낙동강물과 남해안 바닷물이 만나는 이도 저도 아닌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만난다. 그들은 더이상 강에서 버틸수도, 바다로 나아갈 수도 없는 인생들이다. '나'는 이곳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를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기회. 이번에 떨어지면, '나'는 군대에 가야하고, 아마도 '나'의 인생은 이곳 강진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머물러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대학이야말로,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자신의 처지를 격상시켜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나'는 그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나'는 미련없이 서울로 떠난다.

   2부  「우리 기쁜 젊은날」에서 '나'는 (그렇게도 꿈에 그렸던) 대학생이다. 그러나 대학생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숨막힐듯한 학교 수업과, 끊임없는 가정교사 생활로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생활속에서 동기인 김형(金兄)과 하가(河哥)를 만나 친한 친구사이가 된다. 그들은 서로 어울려 다니며 말술을 마시고, 문학 서클에 가입하고 치열한 토론을 해나간다. 하지만 60년대 말의 시대상황은 그들을 낭만적으로 머물게 하지 못했다. 그들을 둘러싼 상황은 모든 것이 정치적인 분위기로 물들었으며, 그런 '나'는 대학 생활의 가치와 '나'의 가치가 서로 상충하지 못하는 모순 속에서 괴로워한다. 힘든 시기에 '나'는 우연히 혜연이란 여학우를 만나는데, 서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나'의 가부장적인 태도(지나친 간섭과 여자에 대한 우월감)로 결국 헤어지고 만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김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나'는 학교를 떠난다. 

   가장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을 그리고 있지만 제목은 역설적으로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그 혼란스러움 불안함을 '어설픈 지식'으로 채우고 허기를 달랬던 그 시절. 사랑의 달콤함도 겪지만, 서로 길들이기를 원해 결국 이별을 고하는 젊은 날의 사랑. 끔찍한 시절이지만, 돌이켜보면 상처는 흔적만 남고 그 흔적은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날. 작가는 이 시기를 회한에 찬 시선으로 그렸다. 술자리에서 프랑스와 비용의 유언시를 읊으며 '비용제'를 치르는 것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지만, 대학은,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는 했으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의문점은 해결하지 못했다. 대학은 도구로써 기능할 뿐, 목적이자 목표는 되지 않았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구도자같은 생활을 시작한다. 

   3부 「그 해 겨울」은 '나'의 구도자 생활을 그린다. '나'는 시골 객주집에서 방우(머슴)생활을 한다. 객주집에서 '나'는 술집 아가씨들의 생활을 보다 바다로 가기로 결심한다. 바다로 가는 도중, 수상해보이는 칼갈이 사내를 만나지만 그냥 지나친다. 우연히 먼 친척뻘되는 정님 누님을 만나,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그후 길을 가다 죽을고비를 넘기고 '나'는 유언장을 쓴다. 바다로 가는 길은 자신이 죽을 장소를 찾는 것으로 바뀐다. 바다로 가는 길, 우연히 전에 마주쳤던 칼갈이 사내를 만난다. 칼갈이 사내는 누군가를 죽이러 간다고 했다. 바다에 도착하자 이 모든 방황의 근원이 내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나'는 이제 이 모든 방황을 끝내고 다시 돌아가자는 다짐을 한다. 내 옆에는 칼갈이 사내가 있었고, 사내 또한 복수를 포기하고 칼을 바다로 던진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늦겨울의 날씨는 풀리고 있었고, 곧 봄이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3부에서는 '절망의 끝'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허무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해 점점 가학적이 되어가는 자신. 육체의 고통으로 자신 내부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얼핏 보면 구도자적인 숭고함을 떠올리지만, 한편으로는 '젊은날의 치기'로 보여진다. 하지만,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라고 얘기한, 정님의 말은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이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해 겨울, 그 바다에서 '절망의 끝'을 봤다. 부정과 부정으로 끝까지 밀고 들어간 그 사유의 끝에서 발견한 희망.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움은 모든 가치의 출발이며,끝이었고, 모든 개념의 집체인 동시에 절대적 공허였다. 아름다워서 진실할 수 있고 진실하여 아름다울 수 있다." 

   그 해 겨울, 그 바닷가에서, '나'는 방황을 멈춘다.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만, '내'가 대학으로 다시 돌아갈지, 다른 길을 걸을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내'가 걸을 길은 더 이상 춥지 않은 따스한 봄날일 것이고, 다시는 '젊음'의 방황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나'의 젊은 날은 늦겨울의 추위와 함께 물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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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젊은날의 초상』멜로로 풀어낸 젊은 날의 방황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3-03 14:34 
      0. 들어가며     곽지균 감독의 <젊은날의 초상>을 2010년에 본다는 것은 이 영화가 개봉한 1991년에 보는 것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문열 작가의 원작소설은 1981년에 출간됐지만, 이야기의 시대는 (정확히 지칭하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해보면) 1960년대 말이다. 동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버린 시절을 회한에 차 이야기한다. 그에 반해 영화는 80년대를 이야기한다.
 
 
Forgettable. 2010-03-0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문열의 책 한권 읽어볼까 생각중이었는데 리뷰 보니까 이 책 제가 좋아할 것 같네요.
이문열의 작품은 [황제를 위하여]하나밖에 안읽었는데 꼰대같은(?) 캐릭터가 짜증나고 막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았었어요.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책 한권 보고 작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한 것 같아서 다시 읽어보려고 해요. ㅎㅎ


Seong 2010-03-02 14:14   좋아요 0 | URL
저 좀 전에 Forgettable님 블로그에 글 남기고 왔는데.... ^.^;

근데 이 책도 좀 그렇습니다. '올드'해 보인다고나 할까. 이 책 읽으면서 즉각적으로 떠오른 책이 홍세화 氏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였거든요. 그 6~70년대의 감수성이 그대로 정체해있다 90년대에 나온 듯한 느낌. 『젊은 날의 초상』을 읽으면서도 그런 그 감수성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읽을만 한 것 같아요. 소설인지 인문서적인지 당췌 분간이 안가는 초창기 시절의 작품.

고맙습니다. ^.^;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4주

 

   이주에 개봉하는 영화 중 <러블리 본즈>는 피터 잭슨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만남만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기대와 사뭇 다르다. <반지의 제왕>시리즈나, <킹콩>같은 매끄러운 기성품의 느낌이 아니라, <데드 얼라이브>나 <프라이트너>같이 내러티브나 다른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덜그덕거리지만, 독특한 감성이 영화 전편을 지배하는 그런 영화가 나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현실과 판타지에 걸쳐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포스터 헤드카피에도 당당하게 밝혔듯이, 이 영화는 14살의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소녀는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그녀의 가족들은 거의 붕괴 직전에 처한다. 그리고 소녀는 천국으로 가지 않고, 저승에 머물면서 그녀의 가족들을 지켜본다. 

   이 영화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이다. 혈육의 죽음으로 생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가족이라는 틀을 단단하게 봉합시킨다. 가족주의의 환원. 하지만 영화는 죽은 소녀에게 떠 넘긴 부채를 해결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해피엔딩 같지만, 결국엔 슬픈 결말. 소녀의 죽음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그들이 '가족'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 죽은 소녀는 다행히 천국으로 갔지만, 남은 가족들은 딸의 부채에 괴로워할 것이다. 그래도 자식이기 때문에 이만큼 괴로워하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얘기가 전개된다.

 

   "소화(昭和) 20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 충격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다카하타 아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는 우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영화는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의 폭격과 일본의 패망 시기를 다룬 영화다. 주인공 세이타와 어린 여동생 세츠코는 폭격으로 엄마를 잃고 먼 친척을 찾아간다. 식량이 궁한 힘든 시절, 친척은 더부살이 하는 남매를 냉대하고, 남매는 집을 나와 방공호 생활을 한다. 

   이때의 일본은 무관심의 시대였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누가 죽어나가건,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런 개인주의적인 생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이 두 남매가 "지금 현재(1988년)"의 일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 영화는 "태평양 전쟁 또한 일본도 피해자"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니라, 각박해진 일본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다. 결국, 남매가 죽었을 때,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면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관심받지 못하고 그렇게 힘들게 시나브로 죽어갔다. 어른들의 부채는 전쟁을 지나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가 나온 1988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가 같이 나왔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반딧불의 묘>에서는 하나같이 무관심한 어른/이웃들이 나오는 반면,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다같이 친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공동체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특히 메이의 실종으로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메이를 찾는 장면은 감동을 넘어 뭉클함을 느낀다. 이것은 감독의 시선 차인데, 다카하타 아사오 감독은 그 당시 일본을 '리얼리즘'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았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 때 그랬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희망의 시선으로 묘사한 것이다. 결국 부채는 해결되지 못하고, 냉정하게 바라보거나, 희망사항으로 끝날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안노 히데야키 감독이 <신세기 에반게리온:Death & Rebirth>에서 "그러니까 모두 다 죽어버리면 좋을텐데"라는 자멸의 희망까지 나온 게 아닐까? 싹 치워버리고 너와 나 둘이서 다시 시작하자는 그런 (무서운) 희망.

 

   하지만, 진짜 가슴아픈 부채는 바로 힘들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정태춘의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나온지 20년여년이 지났지만, 이 노래들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슬프다.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였을 때, 다섯 살 혜영앙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각각 독립 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 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 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휠 휠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휠~휠~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퉁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 정태춘 「우리들의 죽음」- 

 

 

* 덧붙임: 

 

다음주엔 부디 상큼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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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 - Mulholland D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렵다기보단 낯선 영화. 'eerie'라는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한 데이빗 린치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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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멀홀랜드 드라이브' - 헐리우드의 매혹적 악몽
    from Film life in Forest 2010-03-03 10:58 
    거의 10년만에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다시 봤다. 10년전에도 그랬지만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리뷰로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의 기이하지만 매혹적인 악몽은 두뇌와 감성이 같이 움직이며, 해석에 나서야 이야기를 온건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두뇌유희'라는 말은 데이빗 린치의 영화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여기에 '미학적 감수성의 발현' 또한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데이빗 린치는 어쩌면 "가장 감수성이 예..
 
 
DaiRo 2010-03-0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erie라는 말이 매우 적절하게 느껴지네요....ㅋㅋ

트랙백 걸고 갑니다..

Seong 2010-03-03 16:13   좋아요 0 | URL
앗! 익무에서 활동 중이신 수위아저씨셨군욧! @.@ 이렇게 만나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