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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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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영희'라는 이름은 이제는 보통명사가 된 느낌이다. 물론 나는 그를 책에서 표현하듯 '사상의 은사'로 모신 그런 70년대 세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수정주의자라 여기며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여긴 80년대 세대도 아니다. 오히려 '리영희'라는 이름을 듣고도 "이게 뭥미?"하고 뜨악하게 쳐다보는 지금의 보통 세대들과 거의 다르지 않은 90년대 세대다. 

   '리영희'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그의 저서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놀고 술마시느라 바빴으니 당연하지). 96년 어느날 동아리방에 너덜너덜해진 책 한 권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 제목의 계시와도 같은 강렬함에 이끌려 난생 처음으로 책 도둑질을 했다(도둑질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빌리고 반납하지 않은지 14년이 다 되어가니 훔친거나 다름없다. 깊이 반성한다...). 국제 정세와 한국 정세를 판단한 그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으나, 대결의 구도가 아닌 조화의 구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문학보다도 감동적으로 다가온 경험이 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 선생이 중풍에 쓰려졌다는 소식을 접했을때도, "아, 어쩌나"라는 생각뿐이었고, 구술 자서전 『대화』가 나왔을때도 "아!"라는 감탄뿐이었지, 그의 저작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상은 어차피 잘만 돌아가니까. 

   『리영희 프리즘』. 이 책을 읽고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가를. 이 책에 있는 글들은 '리영희'라는 존재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우리들을 바라본다. 어떤 것은 놀랄만한 경탄을 이끄는 글들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참신한 시선이라며 무릎을 치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어떤 것은 "이건 뭥미?"하는 핀트를 벗어난 글도 있다.  

   열 명의 저자들이 얘기하는 담론들- 생각하기, 책 읽기, 전쟁, 기독교, 영어, 지식인, 기자, 사회과학, 청년문화, 자유 -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진단할 수 있는 열쇳말이기도 하다. 이 담론들이 '리영희'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이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겐 당연한 중언부언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리영희'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놀라움과 경의감을 느낄 것이다. 

   홍세화 씨가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은 '리영희'라는 우상 만들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우상 파괴를 역설한 사람이 스스로 우상이 되는 것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이 책은 이제는 우리가 잊어버린, 그래서 '폐기처분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지닌 '리영희'라는 인물이, 사상이, 삶이 아직까지 우리 시대에 유효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일제시대와 해방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를 말 그대로 "온몸으로" 견디어낸 인물의 생각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늙었지만 낡지 않았다. 지금이나마 "선생님"을 알게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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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3-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씨를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소갤 받았는데, 그때의 울림은 아직도 설명이 안되요.


Seong 2010-03-12 10:01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느꼈어요. '정수리에 찬 물을 끼얹은'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사상과 인물이 이렇게 일치할 수도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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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일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난 이 영화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영화 버전인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이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를 경유한 그 후속편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이 영화는 199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었던 『피터 팬(Peter Pan)』의 속편격인 <후크(Hook)>의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2. 성장담 

   원작에서는 앨리스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제대로 된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판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 소녀의 백일몽같은 이야기에 굳이 시대상황을 넣을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훌쩍 커버린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다루는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다. 이 기간에 영국에선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수많은 식민지를 점령했다. 귀족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수많은 격식과 그 이면에 드러나는 난삽한 모습들이 앨리스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녀 역시 관심없는 남자와의 청혼으로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힐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숨막힐듯한 세상에서 그녀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머뭇거리는 앨리스를 부쩍 자라게 할 장을 마련한다. 현실에서는 자신이 결혼할 상대를 결정할 수 조차 없는, 시대의 분위기에 짓눌린 피동적인 소녀이지만, 원더랜드에 들어가고 나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을 한다. "이건 꿈이야. 꿈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3. 신경쇠약 직전의

   처음 원작을 접했을 때 '이상한 나라'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느낌은 '맛이 갔다'는 느낌이었다. 모두들 비이성적인 행동과 말을 해대는 말 그대로 '이상한' 존재들. 하지만, 팀 버튼이 그린 이상한 나라(영화에서는 '원더랜드'와 '언더랜드'를 혼용하며 사용하고 있다)의 존재들은 맛이 갔거나 미쳤다기 보다는 '히스테리컬'하게 보인다. 영화상에서 보여지는 내용이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이 하얀 여왕(앤 해서웨이)을 물리치고 공포 정치를 펼치는 것이라 그런지 앨리스가 처음 만난 하얀토끼나 쌍둥이 형제들의 모습이나, 모자 장수(조니 뎁)와 그 일당들에 대한 묘사는 '분노' 때문에 정신이 홱 가버렸거나, 갑자기 들이닥치는 '공습'때문인지 '신경쇠약 직전'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깃들여 있고, 이 나라의 존재들은 그 공포에 거의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다. 

 

4. 기시감(旣視感, Déjà Vu) 

   팀 버튼의 영화를 계속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통로의 나무는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슬리피 할로우>에서 본 나무와 같다. 하트 기사(크리스핀 글로버)의 등장은 <슬리피 할로우>의 호스맨이 생각나고, 모자 장수의 마지막 춤은 <비틀 쥬스>의 비틀 쥬스를 연상시키며. 하얀 여왕은 <슬리피 할로우>의 아보카드의 모친(리사 마리)이 떠오른다. 시종일관 "목을 베라"는 붉은 여왕의 명령은 <비틀 쥬스>, <크리스마스의 악몽>, <화성침공>, <슬리피 할로우>, <스위니 토드>의 '잘린 목'들이 연상되고,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빅 피쉬>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떠오른다(물론 이것도 그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나타난 것이다. 이전까지 그의 영화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부재 혹은 제거의 대상이었으니까). 이런 익숙한 이미지들의 나열로 영화는 루이스 캐럴의 비전과 팀 버튼의 비전이 합쳐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가 훌륭한지는 모르겠다. 새롭다기 보다는, 너무 '안전하게' 익숙하다고 할까? 조금 더 팀 버튼스럽게 밀고 나갈수도 있겠지만, 엄청난 제작비와 전연령 등급의 제한은 그에게도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했을 것이다.

 

5. 붉은 여왕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앨리스도, 모자 장수도 아닌, 붉은 여왕이다. 그녀의 대사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나마도 "목을 베라(Off the head)!"는 말 뿐이다. 하지만, 이 짧은 말 속에서 붉은 여왕의 도도함, 냉혹함, 우아함, 행복감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목을 베라(Off the head)!"는 말보다 "저들의 목을 베라(Off the heads)!"라고 말할 때 그녀의 행복지수가 조금 더 상승함을 느꼈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이상한 걸까? 

 

6. 『나니아 연대기』를 경유한 성장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재바워키와 싸운 용감한 기사는 앨리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기사를 앨리스로 만들었다. 앨리스는 재바워키와 싸움으로써 원더랜드의 판세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 가상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의 변화에 일조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접했던 내용이다. 얼핏보면 뜨악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앨리스의 성장담이라는 내용면에선 잘 각색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이 싸움으로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란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명제를 온몸으로 체득하니까. 원더랜드에 평화를 가져온 앨리스는 이제 진짜 '원더 랜드'로 모험을 떠날 것이다. 

 

7. 달콤쌉싸름한 결말

   현실로 돌아온 앨리스는 자신을 짓누르는 영국을 벗어나 '원더 랜드'로의 모험을 떠난다. 그녀의 목적지는 '중국'이다. 그녀는 중국에 가서 어떤 무역을 할까? 그녀가 아편전쟁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역사는 이미 기록되었다. 현실의 앨리스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만, 그녀의 무대는 '원더 랜드'로 시작해 '엠파이어'에서 끝낼 것이다. 이 영화가 마냥 달콤하지만은 까닭이다. 이런 결말도 '팀 버튼'스럽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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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1주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자라지 않아)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 王昭君(왕소군) -              

 

   경칩을 하루 앞둔 오늘, 밀려가는 겨울은 꽃샘 추위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키워보지만, 다가오는 봄의 따스한 숨결로 그 독한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추위를 견뎌낸 나무들과 대지는 한껏 녹색을 드러낼 준비에 바삐 보내고 있고, 조금씩 길어지는 아침해와 저녘해는 벌써부터 여름을 준비하는 것 같다. 계절은 완연한 봄기운을 흘리고, 난 그 향기에 취해있지만, 주위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겨울인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저번주, 이번주, 다음주 개봉하는 영화들을 훓어보니까 흥미로운 영화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관련된 주제로 걸러보니 두 편이 나왔는데, 옛날 영화를 한 편 더 보태 '정치-인'에 대한 주제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백하건데, 난 정치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화염병을 들고 쇠파이프를 들었을 땐, 대학생이라면 의당 그래야하는줄 알았었다. 하지만 의식화가 되지 않고 의무감으로 하는 '운동'이 얼마나 지속적일 수 있을까? 약 1년 반동안 하는둥 마는둥 시위를 하고 군대에 갔다. 제대를 하고, '데모'라고는 이제 학내 등록금 투쟁정도 밖에 없던 시절, 교양으로 듣던 정치외교 수업에서 처음으로 '정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때 그 교수님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신문을 보더라도 정치면은 안보고 스포츠, 연예면만 보는 너희들! 너희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얘기는 왜 그리 읽어대냐? 그게 너희들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 박세리가 LPGA에서 우승하는 게 너희에게 무슨 이득이 있냐? 김미현이 우승한다면 모르겠다. 아버지가 고깃집을 하니까, 혹시 알어? 우승하면 그날 고기는 공짜! 뭐 그런 게 걸릴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그 소식은 나에게 이득이 될 수 있지. 하지만, 옌예인 가쉽이나 박찬호 승수가 너희 인생에 이득을 주진 않잖아? 좀 실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지만 정치는, 너희들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다. 정치란 부패한 시스템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그 어떤 청렴한 사람이라도 부패하기 마련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뽑은 우리는 두 눈 똑바로 뜨고 그들을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는거야. 뽑아놓으면 끝이 아니라고.  
   

 

   거의 10년전에 들었던 강의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난 정치에 조금씩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열성적이진 않으나, 그저 매일 뉴스를 체크하고, 선거때면 투표하는, 일상적인 관심은 지니고 있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정치란 부패한 시스템"이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정치와 정치인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대개는 부패하고 악덕한 인물들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뭐 멀리 볼 것 없이, 지금 정치인들을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오지 않는가. 이런 때에 정치인들에게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정치인을 다룬 영화가 나온 것이 반갑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라기 보다는 숀 펜의 영화라는 게 더 어울리는 영화 <밀크>는 하비 밀크라는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을 다룬 영화다. 그에 대해 알려진 바를 간단히 서술한다면, 그는 동성애자다. 그는 뉴욕에서 증권사에 근무하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작은 카메라 가게를 차리고 그의 친구들이 부당한 편견과 폭력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게이 인권운동을 펼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다.

   하비가 꿈꾸는 세상은 인종, 나이, 성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는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그 자신이 세상의 편견과 부딪혀 싸워왔다. (자신도 게이인) 구스 반 산트는 하비라는 인물을 드러내기 위해 가능한 개입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하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숀 펜은 그 스스로 하비가 되어 하비의 정치를, 하비라는 정치인을 보여준다. 우리 정치인들도 (집에서 말고) 극장에서 꼭 좀 보셨으면 한다.

 

   넬슨 만델라. 27년간 옥중생활을 한 대통령.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 그는 복수의 정치를 펼친 게 아니라 화합의 정치를 펼쳤다. 그 모든 사감을 털어내고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를 펼친 위대한 인물. 클린트 이스티우드 감독은 이 위대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럭비 월드컵으로 풀어낸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스포츠 지상주의를 혐오하지만, 그래도 스포츠에는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힘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럭비라는 스포츠를 통해 인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구성원으로 하나가 되는 기적을 그렸다. 이만큼 간단하고 명료하게 넬슨 만델라의 업적을 그릴 수 있을까? '인간'으로써 하나되는 평등한 세상. 만델라 대통령은 그런 세상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또한, 경제나 강이 아닌,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계층간의 경계를 허무는 게 아닐까?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상 극단적인 평가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날 1979년 10월 26일에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이 벌인 행동은 그야말로 웃음만 나게 만든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언제나 문제작만 만들어내는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를 가감없이 "보고서에 쓰여있는 그대로" 찍었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들은 얼마나 한심한 사람들이며, 이런 한심한 사람들을 믿고 살아왔던 우리들은 얼마나 더 한심한 사람들이었나. '박정희'라는 우상이 깨어진날, 이 영화에서 우리는 일반 시민들이 그의 영정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담긴 기록필름을 볼 수 없다. 영화가 다룬 '그 때 그사람들'의 행동도 코미디였지만, 이 영화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신경질적인 반응 또한 코미디였다.  

 

   왜 우리에겐 존경할만한 정치인을 다룬 영화가 없을까? 그건 아마도 지금까지의 정치 자체가 코미디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치인은 코미디를 하고 코미디언은 정치를 하는 세상. 동혁이 형을 국회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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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10-03-1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 그것은 탐욕을 위한 성찬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네요. 존경할만한 정치인이 없다, 참 가슴이 아픕니다. 그 원인을 찾아가보면 기막힌 사연들이나 이유가 나오겠지만 인간 자체가 문제란 생각도 듭니다. 올바른 정치인을 뽑지 못하는 풍토, 언제나 그게 현실적 벽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치 일선에 있어본 적도 있었고 친구들 역시 보좌관이니 비서관으로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막힙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국민이 잘못하고 있기도 하고 그것에 목매단 정치인 역시 엉망이긴 마찬가지고. 이렇게 보면 나라발전이란 것이 과연 가능한지조차 모르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Seong 2010-03-10 13:34   좋아요 0 | URL
'之'자로 걷더라도 어떻게든 앞으로는 가겠지요. 대안을 발견 못함을 절망으로 여겨야할지 희망으로 여겨야할지 모르겠지만, 희망으로 여길 수 있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역시나 이상적인 말이네요.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세상이 점점 무섭게 변해간다. 고매한 이상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정말 1년에 7%씩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저 아득한 숫자가 실체가 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저 매직 넘버가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며 살아갈까? 

 

   몇 시간전에 온라인 게임에 빠져 아이를 굶겨 죽인 부모의 기사를 읽고 잠시 든 생각이다. 그 부모가 PC방에서 탐닉했던 게임은 '사이버 딸을 양육하는 게임'이었다고 한다. (기사보기)  

 

   예전에 『조대리의 트렁크』를 읽고, 말도 안 돼는 끔찍한 소설이라고 진저리를 쳤었는데, 이제는 그 평가를 철회해야겠다. 백가흠 작가님. 당신이 그렸던 세상은 끔찍한 악몽이길 바랐었는데, 이제는 현실이 되었네요. 당신도 아마 이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을테지요. 「웰컴 베이비!」, 「웰컴 마미!」는 이제 사회면 기사의 좋은 예가 된 것 같습니다...  

   무정할거면 차라리 '컴―퓨―터씹'을 하던가!

 

               새로운 시간을 입력하세요 
               그는 점잖게 말한다 

               노련한 공화국처럼 
               품안의 계집처럼 
               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준비가 됐으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그는 관대하기까지 하다 

               연습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메뉴로 돌아갈까요? 
               그는 물어볼 줄도 안다 
               잘못되었거나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져나갈 키를 갖고 있다 
               능란한 외교관처럼 모든 걸 알고 있고 
               아무 것도 모른다 

               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게 그는 길들인다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오른손 왼손 
               빨간 매니큐어 14K 다이아 살찐 손 
               기름때 꾀죄죄 핏발선 소온, 
               솔솔 꺾어 
               길들인다 

               민감한 그는 가끔 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쿠테타를 꿈꾼다 

               돌아가십시오! 화면의 초기상태로 
               그대가 비롯된 곳, 그대의 뿌리, 그대의 고향으로 
               낚시터로 강단으로 공장으로 
               모오두 돌아가십시오 

               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 
               친절하게도 그는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준다 
               깨끗이, 없었던 듯, 없애준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박거리는 
               친구보다도 낫다 
               애인보다도 낫다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이게 사랑이라면 

               아아 컴―퓨―터할 수만 있다면!  

- 최영미 「퍼스널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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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onwho 2010-03-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제가 사랑하는 최영미님의 시군요.
개인적으로,사랑의 절절함을 이보다 더 마음에 와 닿게하는 시인은 없더라는...
상처의 힘으로 오롯이 버텨야 하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저도 뉴스보고 백가흠씨 소설 생각했었는데...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들이
사회병리현상으로 나타나는 세상이 온 것 같아 착잡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성석제님의 글로 헝클어진 마음 좀 달래야 겠어요.

tag. 홍상수,생활의 발견!

Seong 2010-03-04 16:37   좋아요 0 | URL
무서운 세상입니다...

근데 밑에 쓰신 tag는 무슨 뜻인지...
 
미숙하지만 아름다운, 기쁜 우리 젊은날
젊은날의 초상 (HD텔레시네) - [할인행사]
곽지균 감독, 이혜숙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0. 들어가며 

   곽지균 감독의 <젊은날의 초상>을 2010년에 본다는 것은 이 영화가 개봉한 1991년에 보는 것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문열 작가의 원작소설은 1981년에 출간됐지만, 이야기의 시대는 (정확히 지칭하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해보면) 1960년대 말이다. 동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버린 시절을 회한에 차 이야기한다. 그에 반해 영화는 80년대를 이야기한다. 1991년은 80년대를 '추억'하기에는 너무 빨랐고, 아직 그 부채도 청산하지 못한 시기였다. 오히려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1. 소설  

   소설 『젊은날의 초상』은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소설은 주인공의 심적 상태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1부「하구(河口)」에서 '나'는 철저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주변인물들을 관찰한다. 강진(江盡)이라는 지명처럼, 이곳은 낙동강 하류와 남해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강에 머무르지도 못하고 바다에 나아가지도 못하는 이도저도 못한 인생. '나'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고 하고, 검정고시와 대학입학은 그에게 하나의 목적이자 목표가 된다. 

   2부「우리 기쁜 젊은날」에서 '나'는 그토록 그리던 대학싱이 됐으나, 대학 역시 자신의 이상과 합치하지 못함을 느낀다. 문학에의 열정, 이성과의 연애, 치기어린 토론과 술자리 등 그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쏟아부었으나 내부에 자리잡은 허무함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문학서클에서의 제적과 혜연과의 이별, 같이 다니던 동기 김형(金兄)의 사고사와 과 학우들과의 '악의 서린' 논쟁으로 '나'는 학교를 떠난다. 학교는 내 신분을 높이는 도구였을 뿐이지, 내 허무를 채워줄 목표는 되지 않았다.

   3부「그 해 겨울」에서 '나'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시골 객주집 방우(머슴)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과 지내다가 '나'는 문득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객주집을 나온다. 바다로 가는 도중 수상한 칼갈이 사내를 마주치지만, 별일 없이 지나간다. 우연히 먼 친척뻘되는 정님 누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하루밤을 지낸다. 추운 겨울, 동사할 뻔한 '나'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유언장을 쓴다. 그러다 다시 칼갈이 사내를 만나는데, 그는 누군가를 죽이러 바다에 간다고 했다. 바다에 도착하자 이 모든 방황은 내안에서 벌어지는 모순임을 깨닫고, '나'는 이 모든 방황을 멈추기로 결심한다. 내 옆에는 칼갈이 사내가 있었고, 사내 또한 복수를 포기하고 칼을 바다로 던진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늦겨울의 날씨는 풀리고 있었고, 곧 봄이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는 '젊음'의 방황을 하지 않을 것이다.  

 

 

2. 영화 

   영화는 주인공 영훈(소설에서도 '영훈'이 주인공 이름이지만, 전체를 통틀어 딱 한 번 불리고 나머지는 '이형[李兄]'으로 불린다)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을 제외한 프롤로그를 제외하면(약 5분정도의 길이로 그 사이에 크레딧이 올라온다) 크게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영훈의 대학 시절을 그리고 있고, 2부는 영훈의 고향 먼친척의 장례식, 3부는 영훈의 객주집 방우 생활, 4부는 겨울 여행을 그리고 있다. 소설과 서사를 비교해보자면, 「우리 가쁜 젊은날」과 「그 해 겨울」부분만을 다루고 있다.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소설에서는 가볍게 지나갔던 여자들과의 관계를 영화에서는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80년대의 시대상황과 관찰자로만 머무는 영훈의 괴로움과 고뇌를 그리고 있다. 그의 고뇌와 방황은 현실도피처럼 보이지만, 곽지균 감독은 영훈의 방황을 '첫사랑에 대한 슬픔'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2-1. 대학 

   <대학>파트에서 영훈(정보석)은 동기인 하가(조재현)와 김형(이희도)과 늘 거의 같이 지낸다. 김형은 대학에 들어와서 짱돌을 들고 투쟁의 선봉에 섰지만, 그의 부모가 그를 억지로 군대에 보낸 후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졌다. 그의 부모는 그의 유학을 준비하고 약혼자까지 "미리 준비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기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주변인의 삶을 걷는다. 그에 반해 하가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와 영훈이 속해있는 문학 서클 또한, 투쟁과 민중에 귀속되어 있다. 영훈은 문학이 도구가 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해 서클을 나온다. 어느날 술값을 마련하기 위해 영훈이 한 여학생에게 돈을 빌린다. 그녀의 이름은 혜연(옥소리)이고 영훈과 혜연은 서로 사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훈과 혜연은 서로 다른 계급과 가치관으로 서로 어긋나게 되고, 결국 헤어지고 만다. 삶의 허무를 견디지 못해 김 형은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시위에 앞장섰던 하가는 전경에 쫓기다가 김 형이 뛰어내린 그곳에서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말을 하고 떨어져 죽는다. 그일이 있고 학교엔 휴교령이 내렸고, 영훈은 학교를 떠나 고향으로 간다. 

 

왼쪽부터 하가(조재현), 영훈(정보석), 김형(이희도). 소설에서 하가(河哥)와 김형은 주인공 '나'에 대해 별다른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아니었으나, 영화에서는 큰 영향을 끼친다.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하가는 이상의 고민을, 김형은 현실의 고민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죽으면서 영훈은 더이상 학교에 있을 의미를 찾지 못한다. 

 

문학 써클에서 영훈이 탈퇴하는 이유는 소설과 거의 같다. 차이가 있다면, 소설에서는 개인적인 이유로 써클 회원들을 한껏 조롱하다가 쫓겨난 반면, 영화에서는 문학의 도구화에 반대하며 탈퇴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80년대 대학가 축제의 광경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위 장면 오른쪽 앞부분에는 대학생들이 투쟁가를 부르고 있고, 그 뒤로는 축제에서 '퀸'으로 뽑힌 여학우들의 카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낭만과 투쟁이 한데 어우러진 80년대 축제의 기이한 공존이다. 

 

학내 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 영훈은 창문 안 프레임 안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아직 현실의 모순에 대항하지도, 자기 내부의 모순에 대항하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지켜보고만 있다.

 

혜연과의 만남은 영훈에게 있어 숨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그 공간은 도피처 이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린왕자와 여우의 관계처럼 서로를 길들이기를 바랐으나, 영훈의 과도한 참견과 남자로써의 알량한 자존심은 그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결국 몇 번의 분탕질로 그들의 관계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들의 사랑이 시작되기 전, 이상한 인서트 컷(플래시백)으로 인해 영훈과 혜연의 문제는 혹시 다른 여자때문이었는가 하는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 앞으로 시작되는 영훈의 방황은 80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대학생)이 가지는 이상과 현실의 고민이 아니라, 혹시 첫사랑에 대한 방황과 여정이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게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인서트 컷의 비밀은 <고향>파트에서 밝혀진다.

 

 

2-2. 고향 

   <고향>파트는 소설에 전혀 없는 부분이다. 이문열 작가의 자전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서 차용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대학>에서 뜬금없이 나왔던 인서트 컷과, 후에 <겨울 여행>에서 정님(이혜숙)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영훈은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이상한 사내(전인택)를 보지만, 곧 잊어버린다. 영훈은 고향의 먼 친척뻘되는(아마도 종가집으로 추정)분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는 그곳에서 어렸을 때부터 따랐던 정님 누님(이혜숙)을 만난다. 영훈은 정님을 짝사랑했으나, 정님은 학교의 국어선생님과 사랑에 빠졌고 영훈은 국어 선생님을 증오한다. 그 후 정님은 혼전임신으로 종가집에서 쫓겨났으나,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 하지만 문중 어른들은 정님을 쫓아내려하고, 그 와중에 정님은 영훈을 보고 황급히 달아난다. 장례가 끝나고 영훈은 고향을 떠난다. 

 

눈 앞에서 영훈은 정님을 놓친다. 정님이 영훈을 보고 놀라 달아난 것을 보면, 이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나기』이후로 누구나 꿈꾸었던 비오는 날, 첫사랑과의 달콤한 한 때. 하지만, 영훈의 기억속에서 비는 정님과의 이별을 뜻하기도 한다. <대학>파트의 초반 인서트컷은 영훈이 정님을 잊지 못하고 계속 마음속에 묻어놓고 살아왔음을 설명한다. 

 

장례행렬의 깃발은 학내 투쟁의 깃발과 중첩된다. 영훈은 깃발을 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죽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장례는 김형과 하가의 죽음 또한 떠올리게 한다. 영훈은 그렇게 점점 허무주의에 빠진다. 

 

 

2-3. 객주집 

   이 부분은 소설 「그 해 겨울」에서 약 10여 페이지에 기술한 짧은 내용을 각색한 부분이다. 영화 전체로 따지자면 영훈의 개입이 가장 적은 부분이기도 하지만, 영화상으로는 가장 흥미롭고 에너제틱한 부분이다. 

   고향을 떠난 영훈은 객주집에 들어가 방우(머슴)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그는 '몸 팔고 술 따르는' 술집 여인들의 모습과 술을 마시러 오는 관료, 유지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영훈은 이곳에서 기차에서 봤던 이상한 사내를 다시 만난다. 그는 칼갈이(전인택)로 이곳 객주집에 잠시 들렀다. 영훈이 있는 마을은 댐이 건설될 예정으로 곧 수몰될 것이다. 그곳에 있는 여인들 중, 김양(방은진)과 윤양(배종옥)이 특히 영훈에게 관심을 보이나 영훈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모욕적인 요구를 받은 윤양이 손님들과 싸움을 벌이자 영훈이 윤양을 도와준다. 윤양은 영훈에게 더욱 관심을 보이고 그날밤 같이 잠을 잔다. 그 이후로 영훈은 객주집을 떠나고 윤양이 영훈을 쫓아간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도중 칼갈이 사내를 만난다.

 

김양(방은진)과 윤양(배종옥)의 예사롭지 않은 등장. 택시 운전사가 기어를 변속하는 도중에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는 이유로 이들은 싸움을 벌인다. 이들이 지금껏 '야생 고양이'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장면이기도 하고, 부당한 일은 절대 그냥 넘기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윤양은 소설에서도 꽤 흥미로운 역할이었지만, 그 역할이 매우 축소되어 있어서 아쉽기 그지 없었다. 축소시킨 이유는 윤양의 이야기를 키우면 소설의 주제가 희석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고, 또 이문열 작가 스스로 여성을 심하게 '비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일관적으로 훓어보면 여성을 '무시'하는 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윤양을 '살아있는' 캐릭터로 그렸다. 그 역할이 너무 커져 때로는 좀 버거울 때도 있지만, 이 캐릭터를 생동감있게 그려낸 일등공신은 윤양을 연기한 배종옥 씨다. 그녀는 이 영화로 1991년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댐을 개발하는 관료와 지역 유지들이 술자리에서 술집 여인들에게 옷을 벗고 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한다. 다들 머뭇거리고 있을 때 윤양이 나서서 이 부당함에 대해 저항한다. 그 중 점잖으신 면장나리가 "아버지뻘 되는 어른들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근엄하게 야단을 치자 윤양이 얘기한다. "아버지? 아버지 좋아하시네. 집에 가서 니들 딸년들 옷이나 벗기고 술이나 마셔!" 그 이후에 벌어지는 폭력에서 영훈이 들어와 윤양을 팬 관리를 잡는다. 그러자 윤양이 자신을 때린 관리를 노려보며 따귀를 때린다.  

이 장면은 학내 투쟁장면과 겹쳐진다. 하가(로 대표되는 지식인들)의 투쟁이나, 술집에서 몸 파는 술집 작부의 투쟁이나 모두 기성세대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행동들이다. 그들의 투쟁은 모두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투쟁이다. 하가는 죽었지만, 윤양은 투쟁한다. 하가의 빈자리를 윤양이 채운다.

 

영훈이 꿈속에서 본 정님과 꿈에서 깨 현실에서 본 윤양. 영훈은 윤양과 자면서 자신의 첫사랑 정님이 (자신의) 학교 선생님과 자는 모습을 꿈꾼다. 윤양은 영훈을 사랑해서 그와 같이 자지만, 영훈은 아직 다른 여자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후 영훈은 길을 떠난다. 

 

 

2-4. 겨울 여행 

   윤양과 영훈 그리고 칼갈이 사내(전인택)는 한동안 같이 걷는다. 그들은 칼갈이 사내의 소개로 근처 마을의 교회에 투숙한다. 그곳에서 영훈은 칼갈이 사내의 사연을 알게되고, 그가 자신의 조직을 배신한 사람을 죽이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날밤 교회에 불이나고 윤양은 고아를 구한다. 갈림길에서 칼갈이 사내와 영훈은 헤어지고, 윤양은 교회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날밤 영훈은 빈 폐가에서 얼어죽을뻔 하지만, 영훈을 몰래 따라온 윤양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윤양은 영훈에게 "절대 죽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영훈은 한 마을에서 그토록 그리던 정님을 만난다. 정님은 영훈에게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란 말을 한다. 정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영훈은 눈밭을 헤메다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자 눈은 멎어있고 바다가 보인다. 영훈은 이제 이 모든 방황을 그만두고 돌아가리라 마음먹는다. 바다에 가니 칼갈이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는 복수를 포기했다고 하고 칼을 던진다. 영훈 또한 약을 던지고 서울로 올라간다.

 

한동안 영화는 이들 셋의 로드무비가 된다. '출옥수와 술집 작부와 동행'이라는 설정은 이만희 감독의 <삼포 가는 길>의 오마주로 보이기도 한다(꼭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설정은 영화에서 많이 봐 온 모습이기도 하다). 칼갈이 사내는 타의에 의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뺐겼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조직을 밀고한자를 죽이러 가는 길이다. 그 역시 영훈과 같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잡은 미망을 없애기 위해 길을 걷는다. 대학에서 만났던 하가와 김형을 영훈은 길에서 다시 만난 셈이다. 교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들은 서로 제 갈길로 헤어진다. 윤양은 현실 세계에 남고 영훈과 칼갈이 사내는 자신의 미망을 없애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결국 김형과 영훈은 같은 고민을 지니고 살았던 것이다.  

 

바다로 가는 도중 영훈은 정님을 만난다. 소설에서 정님 역시 잠깐 스쳐지나는 인물이지만, '나'에게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게 치열한 정열"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소설에서는 정님의 남편은 도망간 것으로 나오고, 정님은 그를 잊지 못한다. 소설은 한창 내면적으로 피폐해진 '나'의 가학성으로 이 술자리를 잔인하게 밀어 부친다. 

          "누님 결혼하세요."
          "그럴까."
          "아이를 다섯만 낳으세요."
          "그럴까."
          "그리고 빨리 늙으세요."
          "그럴까."
          "그래서 때가 되면 죽으세요."
          "그럴까."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잡고 있다. 이 씬은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들어있다. 장점은 정님과 영훈의 만남으로 영훈이 지금껏 가지고 있던 모든 고뇌와 방황이 해결되는 지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트라우마처럼 각인되어 있던 정님과의 기억/추억을 해결함으로써 그의 내부에서 발생한 방황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단점은 지금까지 치열하게 끌고 온 외부 투쟁과 내부 투쟁의 고뇌를 멜로라는 공식으로 풀어버렸다는 점이다. 어쩌면 소설을 뛰어넘는 청춘의 혼란스런 방황과 갈등을 영화적으로 풀어낼 걸작이 나올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다. 보면 볼수록 아쉬운 씬이다. 

 

영훈은 결국 바다에 도착하고 자신의 미망을 버린다. 칼갈이 사내 역시 복수를 포기하고 자신의 미망을 버린다. 이들은 그들의 고뇌와 고통과 번민이 그들 내부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3. 무리한 원작에 대한 예우

소설에서 한 에피소드를 차지하는 "금시계 사건"은 영화에서 짤막하게 보여진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없어도 상관없는 장면이어서, 원작과의 관계를 위해 예우 차원에서 넣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영훈, 하가, 김형과의 술자리 장면은 소설에서 <비용제> 에피소드를 차용한 것이다. 소설에서 프랑소와 비용의 시 「유언시」를 모티프로 해서 이들 셋은 맘에 들지 않는 상대들에게 유언시를 남긴다. 그리고 그런 비용을 위해 물건을 하나씩 훔쳐오기로 한다. 소설에서 '나'는  술을 훔쳐오려다 무리해 가겟집 주인에게 들키고 만다. 가겟집 주인은 대학생의 젊은 혈기라 생각하고 웃으면서 보내준다. 그들은 훔친 물건들을 다리 밑 거지들에게 주면서 "비용이 준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것이 비용제의 전말인데, 영화는 아무런 설명없이 물건을 훔쳐오고 "비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소설을 읽지 않으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지만, 영화상 굳이 필요한 장면도 아니다. 

 

 

4. 카메오 

영훈이 혜연과 헤어지는 계기를 만든 고급 자제분들의 파티장 장면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장군의 아들>에서 갓 데뷔한 신현준 씨와 김승우 씨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영훈의 첫사랑 정님을 뺏아간 연적 국어 선생님 또한 <장군의 아들>에 출연한 이일재 씨가 맡았다.  

 

 

5. 방황의 끝  

   영화의 끝. 영훈은 서울로 올라간다. 방황을 끝낸 영훈은 어떻게 살아갈까? 현실 투쟁의 삶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이전처럼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고 사창가에 드나들며 '길들인' 여자친구를 사귀게 될까?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그는 이제 방황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의 미망의 원인인 첫사랑과의 부채를 해결했으니까. 이 모든 방황의 근원이 결국 사랑이라니. 유치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게 '젊음' 아닌가?  

   어쩌면 이 영화는 개인 보다는 집단의 가치를 더 중시한 80년대를, 개인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90년대의 시선으로 그린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너무 빨리 도착한 게 아닐까? 

 

 

 

6. 덧붙임 

   뜬금없지만, 하가(조재현)가 사창가에서 옷을 벗는 장면은 <나쁜 남자>의 한기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그가 포주를 연기할줄은 아마 그 자신도 몰랐겠지요. 

 

   짤방보이의 표정을 이 영화에서 딴 게 아닐까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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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3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3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3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3-0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리나라 영화계를 이끈 분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무척 새롭네요^^

Seong 2010-03-05 09:20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젊음'이라는 시간을 봉인하기엔 영화라는 매체만큼 적절한 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