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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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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는 이미 우리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공기 없이 살 수 없듯이 석유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석유는 우리의 삶 전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니까. 석유에 의존한 20세기 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반대로 얘기하자면, 석유가 없으면 곧 (신기루처럼) 사라질 운명인 셈이다. 그러니까 석유가 고갈된다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문명의 끝', 종말인 것이다. 

   이 책, 『석유 종말시계($20 Per Gallon)』는 석유 없는 미국의 변화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다. <포브스 매거진>의 수석 보도 기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Christopher Steiner)는 자신이 다년간 취재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어느날 갑자기 석유가 없어진다면" 이라는 극단적인 상상이 아니라, 글을 쓰기 시작한 2008년의 유가(갤런당 4달러)로부터 시작해, 유가가 갤런당 2달러씩 계속 오르게 되면, 미국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조곤조곤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그는 지금 미국인의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싼 유가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어느 정도 무절제하고 풍족하고 낭비하는 미국인들의 삶은 '갤런당 2달러'라는 저유가에서 비롯되어 왔다. 배기량이 큰 자동차와 값이 싼 비행기, 교외의 넓은 집에서 한적하게 사는 삶. 황무지 복판에 위치한 라스베이거스와 월마트. 이런 것들은 정책적으로 싼 유가 덕분에 미국인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이자 '아메리칸 드림'으로 불려져 왔다. 저자는 이렇게 싼 유가 덕분에 그들이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 오일 피크를 겪게 되면서 유가는 점점 더 오르게 될 것이고, 미국인들의 삶은, 올라가는 유가에 따라 삶의 방식이나 가치가 바뀌게 될 것이라 예견한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은 어느정도는 고통스럽고 어느정도는 절망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이지 '아름답다.' 유가가 갤런당 6달러가 되면 기름을 버려대는 SUV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매연 배출량이 줄어 대기가 맑아지고, 사람들이 그만큼 움직이게 되어 비만인구가 감소하게 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유가가 10달러가 되면,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고, 그와 관련한 사업이 뜰 것이라 예견한다. 유가가 16달러가 되면 선박에 대는 기름을 감당못해 의미없는 수입과 수출이 줄어들 것이고, (일반적인 의미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붕괴될 것이며, 결국 자급 자족의 생산과 소비가 일어날 것이라 예견한다. 유통 또한 전국적인 유통보다는 지역대 지역의 규모가 작은 유통이 이뤄질 것이고, 그것은 지금처럼 획일화된 시골이 아닌, 개성있는 소도시로의 면모를 갖출 것이라 얘기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하지만 그의 이 '낙관적인 비전'을 무턱대고 믿어야 할지는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유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하이브리드 차종의 개발이나 항공 산업의 수상찮은 움직임을 판단한 글들은 공감할만 하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고유가'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특히 글을 읽으면 어느정도 저자의 편향된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하는데, 인도와 중국의 엄청난 인구와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갤런당 12달러"를 대비하는 새로운 도시의 모델을 "송도신도시" 예로 든 점은 좀 뜨악했다. 아직도 개발중인 이 논란이 많은 도시를 새로운 모델이라 치켜세우는 것은, 글쎄... 혹시 도시 개발에 참여한 미국 기업 '게일 인터내셔널(Gale International)'때문에 예로 든 것은 아니라 믿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미국 기자가 미국을 대상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구석이 많이 있다. 일단은 저자가 제시한 갤런당 12달러 도시의 모델 중 하나인 서울은 이미 포화상태인데, 더 이상 어떻게 조밀하게 할 수 있을까. 월마트가 사라지고 도시에 상권이 살아난다고 했지만, 한국의 월마트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대도시 상권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그것도 모자라 "동네 슈퍼"까지 잡아먹으려 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가가 오를 수록 우리의 삶은 고달퍼질 것이다. 중하층은 더 고통스러워 질 것이고, 상류층은 더 살만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처럼 더이상 석유를 못쓰게 되어서 우리의 삶의 속도가 전보다 느려지고, 앞뒤를 돌아보며, 삶의 가치를 느끼고, 맑은 하늘에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가족과 함께 같은 동네에 살게 된다면, 가난해지고 불편해지더라도 차라리 석유 없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대책없는 낙천가인가 보다. 

 

 

*덧붙임: 

145쪽 밑에서 13째줄 "1987년 필라델피아의 Electric Carriage & Wagon 사는" 부분에서 1987년이 아니라 1907년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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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3-17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 어느 정도 토메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요즘 하이브리드 차 선전 하던데, 저는 몇 년 전부터 벼르고 있었습니다.
'기름 차'를 끌고 다닐 땐 꼭 지구에 죄 짓는 기분이었죠,늘.

10여년 전인가? 코엑스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수소 버스를 보았을 때 감격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것은 대중화의 현실이 되었죠. 이젠 자동차 시대입니다.
나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일단, 고집센 미국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겠지만 말입니다.-_-
좋은 책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Seong 2010-03-18 09:29   좋아요 0 | URL
세상은 분명 나아질 것 같은데... 문제는 결국 "돈"이더군요. 스타이너 씨가 전망하는 미래 자동차는 "전기차"가 승리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그 가격은 엄청나게 비쌀 것이라 해서요. "리스" 혹은 그나마도 여력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선택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하더군요.
그래도 <매드 맥스2>나 <더 로드> 같은 묵시록적 비전이 아니라 그나마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L.SHIN 2010-03-18 10:47   좋아요 0 | URL
전기차...휘발유차랑 가격대비 별 차이 없던데요..
오히려 아직도 휘발유차 중 비싼게 더 많죠.

Seong 2010-03-18 11:53   좋아요 0 | URL
아, 지금은 유가를 견딜만하니까 전기차량이 괜찮을 것 같아요. 차량 가격이 일반 차량의 두배정도 비싸고, 충전 인프라가 전무해서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휘발유차량 보다는 더 낫겠죠. 10여년 전에 LPG차량이 보급된 것처럼 경쟁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스타이너 씨가 책에서 얘기한 것은, 유가가 올라가면, 그만큼 전기값 또한 오를 것이고, 전기차량의 가격과 배터리 교체 비용이 발목을 잡을 거라는 얘기였어요. 그게 유가가 갤런당 10달러일 때로 시작될 일로 예상하고 있으니, 아직은 먼 미래죠. 그 얘기였습니다. ^.^;

카스피 2010-03-1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은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정보 감사합니다^^

Seong 2010-03-18 09:31   좋아요 0 | URL
"인문" 서적이라기 보다는 "문학"서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라 그런지, 왠만한 소설보다는 흥미진진 하더군요. 감안하시고 읽으시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고맙습니다. ^.^;

LAYLA 2010-03-2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날개 작가사진이 훈남이라서 일단 기대하고 있는 책입니다^^*

Seong 2010-03-20 22:20   좋아요 0 | URL
이번에도 LAYLA님 좋은 글 기대하고 있습니다. ^.^;
 

 

                
               <TWIN PEAKS>
               시즌  1    
               에피소드  3 (4)
               타이틀  Rest in Pain
               각본  Harley Peyton
               감독  Tina Rathborne 
               방영일  1990년 4월 26일
 

 

   
                 <지난 회 보기>
               0. Prologue - Chaos
               1. Pilot (aka Northwest Passage)
               2. Traces to Nowhere  
              
3. Zen, or the Skill to Catch a Killer
 
   

 

 

1. 이야기 

   데일은 지난밤에 꾼 꿈을 해리 보안관과 루시에게 이야기한다. 그는 꿈에서 로라를 죽인 범인을 알아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꾼 꿈이 복잡한 암호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이 암호를 깨야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검시소에서는 윌과 알버트가 로라의 시신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윌은 오늘이 장례식이니 시신을 내주라고 요구하지만, 알버트는 땅에 묻기 전에 해부를 해야겠다고 한다. 데일이 로라의 시신을 인계해 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와 동시에 로라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촌 매디 퍼거슨(Sheryl Lee)이 트윈 픽스에 온다. 

   알버트가 데일과 해리에게 검시 결과를 보고한다. 그녀의 일기장에 마약성분이 검출되었고, 그녀는 죽었을 당시 약에 취해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두 번 팔이 묶여 있었고, 그녀의 어깨에는 무언가가 문 자국이 있었다. 그녀의 위에서 작은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조각에는 'J'라고 쓰여있었다. 

   로라의 장례식에서 바비는 소란을 피우고, 로라의 아버지 리랜드는 로라의 관 위에 뛰어들어 장례식은 난장판이 된다. 

   데일은 해리에게서 트윈 픽스의 숲에는 '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마을은 오래전부터 '북하우스 보이(Bookhouse Boys)란 자경단을 만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보안관 해리와 보안관보 호크, 주유소를 운영하는 에드와 그의 조카 제임스가 자경단원들이다. 이들은 마약밀매 혐의가 있는 자끄 르노의 동생 베르나르 르노를 심문하고 있다. 자끄 르노는 위험 신호를 받고 리오에게 전화한다. 리오가 떠나자 셜리는 총을 집에 숨긴다.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서 딸을 잃은 슬픔에 어쩔줄 몰라하는 리랜드를 데일과 호크가 집에 데려다준다. 

 

 

 

2. 데일의 꿈 

   데일은 해리와 루시에게 자신이 어제 꾼 꿈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원래 데이빗의 영화에는 친절한 설명이 없다. 그의 영화는 관객들이 그가 설명없이 던져주는 이미지와 캐릭터와 상황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재구성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에 대한 해석은 정답은 없지만, 오답 또한 없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영화가 된다. 

   그러나 <트윈 픽스>는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다. 제한된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위한 드라마다. 때문에 데이빗의 영화와는 달리 어느 정도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데이빗과 마크가 판을 벌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이제 다른 작가들의 손에 넘어가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세번째 에피소드를 쓴 각본가 할리 피튼은 이야기를 조금씩 확장해나가면서도, 지난 회에서 보여줬던 데일이 꿨던 난해한 꿈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전 에피소드에서 데이빗이 보여준 데일의 꿈 이미지는 파일럿 또다른 결말부에 비하면 조금 더 제한적이었던 반면, 이번회에서 설명은 또다른 결말부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 데일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꿈에서 로라의 어머니가 딸을 죽인 범인의 모습을 봤다고 했어요 (이 부분은 꿈에서 벌어진 게 아니라, 에피소드 1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보안관보 호크가 몽타주를 그려왔죠. 난  마이크라 불리우는 외팔이 사내의 전화를 받았는데(여기까지는 지난회 꿈에서 보여준 사실이 아니다), 그가 살인자의 이름은 밥이라고 했어요. 그들은 편의점 위에서 사는데(이 대사는 아무래도 각본가의 오독이거나, 극 중 데일이 잘못 이해한 것으로도 보인다. 마이크와 밥은 마치 편의점에 들리는 것처럼, 육체를 선택할 수 있는 영혼들이라 했다), 둘 다 왼팔에 "불이여, 나와 함께 걷자"라는 문신을 새겼다고 했어요. 하지만 마이크는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것을 견디지 못해 문신이 새겨진 팔을 잘라냈다고 했어요. 하지만 밥은 또다시 살인을 하겠다고 맹세를 했고, 그래서 마이크는 밥을 쐈어요(이 부분 역시 꿈에서 설명되지 않았다).  

혹시 꿈을 어떻게 꾸는지 아나요? 아세틸콜린 뉴런이 전뇌로 고전압의 자극을 발화시키면, 이 자극이 영상이 되고, 이 영상들이 꿈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왜 우리가 이런 특별한 영상들을 선택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갑자기 25년이 흘렀고(이 부분 역시 꿈에서 설명되지 않았다), 난 늙어있었어요. 빨간방에 앉아 있었죠. 그곳에는 빨간 정장을 입은 난쟁이와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어요. 난쟁이가 내게 말하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껌이 다시 유행을 탈 거라 하며, 자신의 사촌이 로라 파머와  똑같이 생기지 않았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그녀는 진짜 로라였어요. 그녀는 비밀로 가득 차 있었죠. 가끔씩 그녀의 팔은 뒤로 묶여있다고 했어요. 그녀가 온 곳에서는 새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항상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했어요. 난쟁이가 춤을 추었고, 로라는 내게 키스하고, 내 귀에 자신을 죽인 범인의 이름을 속삭였어요(이 부분 역시 꿈에서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요.  

해리,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내가 꾼 꿈은 암호로 가득찼어요. 이 암호를 풀면, 범인은 잡힙니다.

 

   데일이 꾼 꿈 중, 난쟁이가 말한 "자네가 가장 좋아하는 껌이 다시 유행을 탈거야"라는 말과 로라가 얘기한 "가끔 내 팔은 뒤로 묶여 있어요"라는 말은 로라의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데일은 이런 종류의 꿈을 두 번 더 꾸고, 그 꿈들 역시 이해못할 암호로 가득 차있다. 

 

"해리,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해요. 암호를 깨면, 사건은 해결됩니다."

 

 

3. 매디 (Madeleine Ferguson) 

   로라의 사촌 매들린 퍼거슨이 로라의 장례식에 참석할 겸, 충격에 빠진 삼촌을 위로해주기 위해 찾아온다.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로라 파머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로라의 사촌 매디의 역을 로라 파머 역을 맡았던 셰릴 리가 맡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삼촌 리랜드가 극 중 극 <사랑의로의 초대(Invitation to Love)>를 볼 때 등장하는데, TV화면에서 보여지는 크레딧을 자세히 보면, 한 배우가 두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머랄드, 제이드 역에 셀리나 스위프트"

 

   매들린 퍼거슨의 이름과 외모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Vertigo)>를 떠올리게 한다. <현기증>에서 킴 노박(Kim Novak)은 두 명의 여인을 연기했다. 매들린(Madeleine Elster)과 주디(Judy Barton)였는데, 메들린은 금발의 모습으로, 주디는 갈색 머리의 모습으로 나온다. 로라 파머 역시 금발이고, 매디 또한 갈색 머리다. 

   매들린 퍼거슨의 이름은 <현기증>의 인물들에서 따왔다. 매들린은 킴 노박이 연기한 매들린 엘스터에서 따왔고, 퍼거슨은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가 연기한 존 스카티 퍼거슨(John "Scottie" Ferguson)에서 따왔다. 그녀의 고향은 몬태나주 미줄라(Missoula, Montana)인데, 그곳은 데이빗의 고향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매들린(킴 노박), 존 스카티 퍼거슨(제임스 스튜어트), 주디(킴 노박)

 

   한 영화에서 한 배우가 두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데이빗 린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로스트 하이웨이>의 패트리샤 아퀘트(Patricia T. Arquette),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나오미 왓츠(Naomi Ellen Watts)와 로라 해링(Laura Elena Harring), <인랜드 엠파이어>의 로라 던(Laura Elizabeth Dern)은 각기 한 영화에서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인물을 연기했다. 

 

<로스트 하이웨이> 르네, 앨리스 (페트리샤 아퀘트) 

 

<멀홀랜드 드라이브> 베티, 다이앤 (나오미 왓츠) 

 

<멀홀랜드 드라이브> 카밀라 로즈(로라 해링), 카밀라 로즈(멜리사 조지) 

 

<인랜드 엠파이어> 니키(로라 던), 데븐(저스틴 테록스) 

 

<인랜드 엠파이어> 수잔(로라 던), 빌리(저스틴 테록스)

 

 

4. 검시 결과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밝혀졌던 검시결과 보다 조금 더 자세한 결과가 나왔다. 알버트의 말에 따르면, 로라는 살해 당하기 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팔이 뒤로 올려진 채 두 번 묶였다. 그리고 살인범은 로라를 죽인 후 강물에 손을 씻고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로라의 목과 어깨에 있는 자국은 무언가가 물거나 쪼은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위 속에서 소화되지 않은 플라스틱 조각을 발견했는데, J라는 글자가 써 있다. 

 

"로라는 살해 당하기 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팔이 뒤로 올려진 채 두 번 묶였어. 이렇게." 

 

"살인범은 로라를 죽인 후 강물에 손을 씻고 그녀에게 키스를 했어. 이렇게" 

 

"가끔 내 팔은 뒤로 묶여있다..."

 

 

5. decency, honor and dignity (품위, 명예, 존엄성)

   검시소에서 소란을 피워 해리에게 주먹다짐을 당한 알버트가 데일에게 보고서를 올려달라고 하자 데일은 반대한다. 이 마을에 도착한지 고작 4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당시 미국 대도시에서 사라진 미국적인 가치- 품위, 명예, 존엄성 -를 이곳 트윈 픽스에서 봤다고 한다. 

 

알버트, 내 말을 잘 듣길 바라. 난 비록 트윈 픽스에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그 시간 동안, 품위, 명예, 존엄성을 봤어. (살인은 이곳에서 흔치 않은 사건이야. 하루가 끝날 때 통계치로 환산되는 그런게 아니라고. 로라 파머의 죽음은 제각기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어.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삶이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모든 삶이.) 그것들은 우리에게선 이미 사라져버린, 삶의 한 방식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 알버트. 여기 트윈 픽스엔 그게 있다고.

 

"마치 이 지역 버섯을 간식으로 따먹은 것 같이 들리는군."

 

   실제로 이곳엔 대도시와 다른 삶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트윈 픽스가 자랑하는 미국적인 가치는 마을 사람들의 위선으로 감추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마을의 외부사람인 데일과 장 르노(후에 등장)에 의해 밝혀진다는 사실은 흥미를 일으킨다. 그런점에서 로라의 장례식에서 소란을 피우는 바비의 일갈은 귀담아 들어볼만 하다.   

 

아멘! 도대체 뭘 보고 있는거예요? 여러분들은 날 토하게 만드는군요. 당신들의 그 빌어먹을 위선이 날 역겹게 만든다고! 모두들 로라가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우린 아무일도 하지 않았지. 당신들 모든 선(善)한 사람들, 누가 로라를 죽였는지 알고 싶어? 당신들이 죽였어! 우리 모두가 죽였다고. 이런 아름다운 말 따위로 그녀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웃기지마, 그러니까 기도 좀 작작해. 로라는 이런 꼴을 보고 어딘가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을테니까.

 

"우리 모두가 죽였어."

 

 

6. 네이딘, 빅 에드, 노마 

   드라마에서 가장 이상한 커플은 빅 에드와 네이딘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빅 에드와 노마는 서로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고, 모습 또한 준수해 보인다. 그에 반해 네이딘은 괴팍한 성격에 기이한 외모를 지녔다. 에드가 네이딘을 바라보는 모습은 사랑하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안쓰럽다는 느낌의 표정을 지닌다. 이 장면에서 네이딘의 과거 회상 대화가 잠깐 나오는데, 그 내용이 꽤 안쓰럽다. 이들의 과거- 왜 에드가 노마와 헤어지고 네이딘과 결혼했는지 -는 시즌 2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밝혀진다.  

 

에드, 고등학교 때, 난 풋볼 게임에서 노마와 당신을 보곤 했어요.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죠. 그리고 당신과 노마는 정말 근사한 커플이었어요.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요. 비록 내가 존재감 없는, 단지 작은 갈색 쥐같이 보이더라도, 당신이 나를 알기만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하리라는 것을 난 항상 알고 있었어요. 

 

"빅 에드, 노마와는 얼마나 사귄거죠?" 
 

 

7. 북하우스 보이(Bookhouse Boys) 

   빅 에드, 해리 보안관, 호크 보안관보가 외부인인 데일에게 자경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경단이란 "지역 주민들이 도난이나 화재 따위의 재난에 대비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조직한 민간단체"를 뜻하는 말로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선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해리가 데일에게 자경단을 설명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그는 '범죄'라는 대신에 '악(惡, a sort of evil)'이라는 단어를 썼다. 해리가 언급한 '악'은 숲에서 벌어지는 지저분한 범죄를 지칭하지만, 앞에서 보여준 데일의 꿈 때문에 무언가 초자연적인 더 큰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래의 설정이 어디까지였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포괄적인 단어의 사용으로 드라마의 허용 범위가 더 늘어난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인 것 같다. 

 

내가 하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더라도,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요. 트윈 픽스는 달라요. 당신도 알아챘겠지만, 이곳은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죠. 물론 우린 그점을 좋아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과 차이가 있어요. 어쩌면 그건 모든 선한 것들을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비용일지도 몰라요. ... 이곳에 악(惡)이 존재해요. 오래된 숲에 아주 이상한 무언가가. 어둠이라고 불러도 되고, 유령이라고 불러도 되요. 그것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니까.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기억할 수 있을만큼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 있어왔어요. 그리고 우린 그것과 항상 싸워왔고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비밀 조직을 말하는 거군요." 

 

 

 

8. 기억할만한 지나침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있는 노마의 남편 행크 제닝스(Chris Mulkey)의 죄수번호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 나오는 장 발장(Jean Valjean)의 죄수번호와 같다. 좀 더 상상을 한다면, 그는 '원 아이 잭'으로 대표되는 캐나다쪽 범죄 조직(르노 삼형제)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로라의 장례식장에서 리랜드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딸의 관에 뛰어든 장면을 셜리가 손님들에게 재현하고 있다. 슬픔과 우스꽝스러움을 불러일으켜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기괴한 장면이다.  

 

   베르나르 르노(Clay Wilcox). 르노 3형제 중 막내로 마약 밀매를 맡았다. 이후로 나오는 장면은 없지만, 두 형 자끄 르노와 장 르노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베르나르는 다음 회에서 시체로 한 번 더 등장한다.
 

 

   데일이 호크에게 영혼을 믿느냐고 묻자, 호크가 영혼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고 얘기한다. 데일이 묻자 호크는 "블랙풋 전설에 따르면"이라 얘기한다. 여기서 호크가 얘기하는 블랙풋이란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을 얘기한다. '블랙풋 연합' 또는 'Niitsítapi'(원주민)는 앨버타에 거주하는 세개의 종족과 몬태나에 거주하는 한 개의 종족을 지칭하는 집단 명칭이다. 호크는 이 집단의 마지막 후손인 셈이다. 호크는 뒤에도 흥미로운 전설을 이야기하는데, 그 중 하나가 '하얀 오두막'에 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시즌 2에 나온다. 

 

 

9.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n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Lynch/Frost Productions, CIBY 2000, New Line Cinema
- <
David Lynch The Lime Green Set> Absurda
- <Lost Highway> Universal Studios
- <Mulholland Dr.> Universal
- <Inland Empire> Absurda/Rhino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d. 다음 글은 3월 24일 오전 9시에 올라갑니다. 

 

 

10. Bonus Screen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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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3-1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어서 그림만 흝어본 후 추천만 꾸욱 누르고 말았습니다. ㅋㅋ

Seong 2010-03-17 14:46   좋아요 0 | URL
처음 달린 댓글이예요. 감동이 주르륵~ ㅠㅠ
워낙에 오래된 드라마고, 인기도 없던지라 별로 관심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름 많이들 읽어주시니 감동이예요.
고맙습니다. ^.^;

설진 2013-03-0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방연한지 이십년도 더 넘어서야 트윈픽스를 봤내요.
포스팅이 하나하나 대단 하신 것 같습니다. 덕분에 보고나서 정리가 잘 되내요.

Seong 2013-03-06 18:0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전출처 : Seong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B-side Ourselves

   지난 금요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저자이신 강신주 선생님과의 만남을 위해 홍대 살롱 드 팩토리에 갔습니다. 직장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자리는 이미 만원이고 선생님 말씀은 벌써 시작되었더군요.  

   동녘 출판사 관계자분께서 주신 핸드 아웃을 들고 자리를 앉았습니다. 보통 '저자와의 대화'는 의례적인 강연과 독자들의 질문으로 진행되는 것이 거의 관례처럼 굳어져 있는데, 선생님은 이런 '가벼운' 자리에서도 실제 강연을 하시는 것 같이 준비를 해오셨습니다.  

   자리를 채운 독자층은 굉장히 다양해 보였습니다. 20대의 학생부터 50대의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시'와 '철학'을 한데 버무려 맛깔스런 주제를 뽑아내신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인지 다들 상기된 분위기였지요. 

 

   강연은 책에서 다루지 않았던 시인의 시와 철학자의 사상을 다루었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유방」이라는 시와 여성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이의 '차이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자신의 것이면서도 남편과 자식에게 예속되어 있는 신체기관인 유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내 것이로구나'라는 것을 느낀 것은 그녀가 유방암 검사를 받기 위해 차가운 엑스레이 기계앞에 상반신을 밀착하고 "찌그러진 유두"를 느끼는 순간입니다. 차가운 기계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느낀 시인의 시는 그래서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경험은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지만, 남성들 또한 그 느낌을 (여성들 만큼은 아니지만) 알 수 있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로 여성은 물론 남성들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수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은 문정희 시인의 이런 일련의 작업을 이리가레이의 사상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철학도들에게 '빨간책'으로 불리우는 『서양철학사』를 한 번 찾아보세요. 거기에 여성 철학자가 얼마나 등재되어 있나. 한 명도 없습니다. 철학자 뿐 아니라, 정치가, 사업가, 종교인 등 역사에 남아있는 여성의 이름이 얼마나 있을까요? 여성의 지위는 확실히 남성에 비해 불평등합니다. 이 지위를 평등하게 맞추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지요. 

   

         

 

   그런데 이리가레이는 이 페미니즘 운동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페미니즘'이란 여성을 남성의 위치로 끌어 올리는 것이거든요. 그녀가 보기에 '페미니즘'이란 여성을 '남성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판단하는가 봅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여권신장이란, 남성을 여성에 맞추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성의 여성화를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리가레이가 생각하기에 여성은 자신의 몸 안에서 타자를 끌어안는 존재입니다. 여성들은 '임신'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내 몸 안에 내가 아닌 다른 개체를 끌어 안는 경험을 합니다. 임신을 못하는 여성들이더라도 '생리'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몸 속에 존재하는 이물질과 같이 지내는 경험을 하지요. 다른 존재를 끌어안는 행위를 통해 여성들은 남성들의 폭력성과는 다른 모성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런 박애주의적인 경험을 남성들도 배우게 된다면 이 세상은 더 평화롭고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감싸안는 문정희 시인과 이리가레이의 사상은 지금 찢어지고 분열된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강연은 이런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처음 책을 기획했을 때 이 내용을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뺐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내용은 선생님이 강연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선생님이 원고를 쓰는 방식은, 이번에 독자와의 만남에서처럼, 강연 내용을 작성해서 핸드 아웃을 돌리고, 강연을 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그 후에 다시 윤문을 해서 최종 원고를 탈고하는 방식이라는 군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책의 저자는 강신주 혼자가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한 시인들, 철학가들, 그리고 강연을 들은 많은 분들이 공저한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저자 강신주'와 그의 저작들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한 순간이었지요. 어쩌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재판에서는 이 글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7시 30분에 시작한 강연은 10시 30분이 되어도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여러 대화가 있었지만,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선생님은 사랑이란 애초에 '불륜(不倫)'이라고 정의하셨지요.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했던 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철학은 해체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현상을 조각조각 해체하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나 현상을, 우리를 가리고 있는 '위선'이란 치양막을 확 들쳐냈기 때문에 그런 당혹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미화하는 존재"니까요. 선생님의 그런 공격적인 말씀은 우리가 미화하고 있는 그 치양막이 갑자기 벗겨졌을 때, 그 진실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에 대한 대답같았습니다. 우리가 불편하지만 진실을 마주해야하는 이유는, 갑자기 마주칠 수 있는 그렇게 홀딱 벗겨질 수 있는 순간에 대처하기 위해서니까요. 하지만 그 한 순간을 위해 힘들게 진실을 견디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그래서 불가에서는 인생을 '苦'라 칭했나 봅니다.  

   후기를 읽어보니 선생님과의 대화는 새벽 3시까지 진행됐다고 합니다. 저도 계속 있고 싶었지만, 배고픔의 고통 앞에선 견딜 수가 없더군요. 10시 30분에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배운 것은, 시나 철학이 아닌, '진실'에 마주쳐야 할 '용기'인 것 같습니다.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알라딘과 동녘 관계자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강신주 선생님께도요. ^.^; 

 

 

* 덧붙임: 

   강의 중에, "인간에게는 수 많은 자아가 있으며,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그 수많은 자아 중 가장 강력한 자아가 내 안의 여러 자아를 누르고 있는 결과"라고 하신 말씀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분열증을 앓아야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지요. 그런데 여러 예시를 보면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2차세계대전만화』를 그리고 <시사IN>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굽시니스트가 '후기'에서 '자아'를 분리한 모습입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정말 재미있네요. 

   그리고 김연수 작가 또한 사회적 자아와 소설을 쓰는 자아가 있다고 얘기한 걸 보면 문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요. 대신 강신주 선생님의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문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라는 말씀에 위안을 삼아야 할런지... ^.^; 

김혜리: 보통은 그냥 "작가로서 성숙했다"고 표현할 텐데 복잡하네요. 같은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는 순간의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여기시나 봅니다. 

김연수: 왜 소설 쓰는 자아와 제 자아가 다르냐면 창작하는 과정에 단절이 있어요. 처음 사회적 자아로서 뭘 쓰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먼저 스토리를 만드는데 쓰레기 같은 것들이 나와요. 평소의 내가 얼마나 후진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죠. 마감을 앞두고 잠도 안 자고 더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고쳐 쓰다 뻗어버리는데, 내 자만심도, 습득한 지식도 다 부정하고 아무것도 없이 깡그리 벗겨진 그 상태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예요. 그러니 평상시의 저와는 다른 존재가 썼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에요. 그 작품을 끝내는 순간에는 "이것은 소설임에 틀림없다"는 환희가 들었어요. 독자들도 제 에세이와 소설이 다르다는 걸 알아요. 에세이와 평소의 저를 좋아하지만 소설은 어려워하는 분도 있어요. 저 역시 독자들을 만나 소설을 설명할 때면 이미 평소의 자아로 돌아가 있기 때문에 남이 쓴 작품을 말하듯 어색해요. 문예지에 연재할 때는, 첫회가 제일 쉬워요. 마감하고 한달 놀고 한달 자료 찾고 마지막 달에 2회분을 쓰려고 첫회를 읽어보면 너무 잘 썼어요. 도저히 이렇게 쓸 수가 없고 남이 써줬다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겠다 싶어요. 그렇게 비참해하다가 간신히 쓰죠. 그리고 3회에 가면 또 가까스로 썼다고 여긴 2회분이 훌륭해 보여요. 그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웃음) 

[김혜리가 만난 사람] 소설가 김연수 중에서, 『씨네21』No.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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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10-03-1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방면에 관심도 많으시고 깊이도 있으시네요. 종종 님의 블러그에 오면 놀랄 뿐입니다. ^^

Seong 2010-03-16 17:05   좋아요 0 | URL
아이고... 깊이는 커녕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은걸요... 그저 이런 저런 글쓰기는 제게 있어서 '치유'의 과정일 뿐이예요.
고맙습니다. ^.^;

2010-03-18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9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계 도시 2 - The Border City 2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붉은 이념이 지배하고 진보와 보수 모두 맛이 간 '이상한 나라'에 오신 걸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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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3.5집 전투형 달빛요정: Prototype A [재발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노래 / 미러볼뮤직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멍멍대면 너는 찍찍대고 나는 개 너는쥐         
              내가 멍멍대면 너는 찍찍대고 나는 개 너는쥐


              나는 개         


              왜 날 빨갱이로 만들어 왜 날 혁명가로 만들어         
              니가 아니어도 나는 개         
              왜 날 광장으로 내몰아 왜 널 상대하게 만들어         
              네가 아니어도 나는 개 너는 쥐 나는 개 너는 쥐


              나는 개 너는 쥐


              왜 날 빨갱이로 만들어 왜 날 혁명가로 만들어         
              니가 아니어도 나는 개         
              왜 날 광장으로 내몰아 왜 널 상대하게 만들어         
              네가 아니어도 나는 개 너는 쥐 나는 개 너는 쥐


              왜 날 빨갱이로 만들어 왜 날 혁명가로 만들어
              니가 아니어도 나는 개         
              나의 혁명은 시작됐어 너의 삽질은 끝날 거야
              그날이 와도 나는 개 나는 개 나는 개 

- 달빛요정 「나는 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그가 돌아왔다. '역전만루홈런'을 떼어버리고, 그 앞에 '전투형'이란 단어를 달고 다시 돌아왔다. "손모가지 분지르고 / 발모가지 잘라내고" 「절룩거리네」를 부르던 그가, '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 스끼다시 내 인생"을 부르며 자학하던 그가 전사가 되어 돌아왔다. 그가 갑자기 각성했다기 보다는, 지금 이 세상이 그가 이런 노래를 부르게 종용한 셈이다. 이전에 부른 노래가 막연하게 '한국사회'를 비판했다면, 이번 음반에서는 명확하게 그 비판 대상을 직시한다.

   이제는 유리상자 류의 "그대는 내 청춘의 무덤"이라든가, "첫눈 오는 날에는" 등의 서정적인 가사는 당분간 듣기 힘들 것 같다. 그의 전투는 적어도 3년은 계속 될 듯 하니까. 다행인 것은, 가사는 전투적이 됐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경쾌하면서 가슴시리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하게 그만의 방식으로 전투를 진행한다. 

   앨범 커버에서 명백히 드러나듯이 그는 무모하게도 MB정권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막강한 각하 로봇과 수세에 몰린 달빛요정 로봇의 모습은 애초부터 무모한 싸움이라는 것을 알린다. 

 

 

   총 6곡의 곡은 지금 이 답답한 세상을 향한 사자후로 들린다. MB시대의 '운동가요'로 불릴만한 네 곡 「축배」,「입금하라」,「나는 개」,「피가 모자라」는 들을 수록 가슴을 치게 만든다. 이 네곡은 확실히 선동성이 있다. 그렇다고 서정적인 요소를 완전히 지운 것도 아니다.「치킨런」은 달빛요정의 서정성을 아직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노래다. 아니, 아름답다기 보단 가슴이 아린 경우라 해야겠지. 굳이 88만원 세대가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뮤지션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세상은 내게 감사하라 말하네 / 그래 알았어 / 그냥 찌그러져 있을게" 

 

 

   전투형 달빛요정의 이번 새 음반은 짧지만,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언젠가 주말 가요프로그램에서 달빛요정이「나는 개」를 부르는 모습을 기대한다. 물론 그럴리야 없겠지. 하지만,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나, 이곳 알라딘 차트에서라도 1위를 차지할 수 있진 않을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큰 실천은 자신의 지갑을 여는 일이다. 그의 전투, 아니 우리들의 전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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