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 - Shutter Islan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처음 봤을 땐 서스펜스 스릴러, 그런데 두 번째 봤을 때는 가슴 먹먹한 슬픈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헌법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7
이국운 지음 / 책세상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세상에서 출간한 비타 악티바: 개념사 시리즈는 글자 그대로, '개념'에 관한 책이다. 시공사에서 나온 디스커버리 총서나 책세상문고의 고전의 세계 시리즈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쉽게 이해할 듯 하다. 그러니까 총 200쪽을 넘지 않는 얇은 두께, 작은 판형의 책.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 만만찮은 책. 특히 저자인 이국운 씨가 이야기하는 '헌정주의'에 대한 개념은 고대 폴리스와 동아시아의 역사로부터 시작해 지금 현재의 헌정주의까지 다루는 것이라 그 범위가 상당히 깊고 넓다. 

   이 비타 악티바: 개념사 시리즈가 다 그런지는 확인을 안해봐서 모르겠으나, 이 『헌법』은 다른 개념사 시리즈와는 다른 구성을 취하고 있다. 다른 책들이 '개념' 그 자체만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이 『헌법』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연관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2008년 촛불정국 이후에 쓰여진 책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 책에 쓰여진 대로 표상정치이다. 투표를 통해 '나'를 투영할 수 있는 후보를 선출하는 것. 말 그대로 표상으로의 정치다. 문제는 이 표상정치의 표상성이 정치인들의 폭정으로 갈 수도 있고, 국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무정부상태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2008년에 우리 모두가 보았던 일들이다. 그렇다고 표상정치를 포기하기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저자는 촛불에서 보았던 또 다른 가능성,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던 '대한민국 헌법 1조'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 있다.  

   저자는 바로 대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권력의 가장 최상층을 헌법이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역사에 기록된 고전적 헌정주의에 대한 개념부터 16세기 종교혁명에서 비롯된 '자유와 민주의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정치'로서의 헌정주의, 왕권신수설로 대표된 권력이 어떻게 주권이란 개념을 도출하게 되었는지, 그럼으로써 인간의 지배에서 성문화된 법의 지배로 이행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2년여에 걸쳐 배운 국사, 세계사,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교과목이 200여쪽이 채 안되는 페이지에 압축되어 들어있기 때문에 읽기는 녹록치 않다. 하지만, 어떻게 대다수의 국가에서 정치인과 국민들 사이의 견제 도구로 법이 상위에 위치하게 됐는지에 대한 개념을 얻을 수 있다. 쉽지 않지만, 한번 부딪혀볼만한 주제다. 

   그렇다면,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한 표상정치의 새로운 모델은 무엇인가? 그것은 직접 이 책을 읽고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만, 더 다른 대안도 없는 것도 같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최장집 교수의 일갈이 생각나지만...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아직 3월 31일은 안 됐지만, 3기 무비매니아 활동이 채 사흘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지난 3개월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3월 28일까지 3개월간 극장에서 본 영화는 총 12편이었습니다. 그 중 시사회가 4편이었고, 재개봉작 1편과 나머지 7편은 유료관람이었습니다. DVD나 TV, IPTV의 영화는 헤아리지 않았으니까, 실제로는 이보단 많겠지만 뭐 대중 소급하면 이정도일 것 같습니다.  

   무비매니아 활동을 하면서 일신상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극장에 간 횟수가 평소보다 늘어낫다는 것이겠지요. 전 개봉관, 특히 멀티플렉스에서 영화관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입니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려면 굉장히 많은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앞 뒤에서 풍기는 나초와 팝콘 냄새, 주위에서 쏘아대는 휴대전화 레이저빔, 여자친구(혹은 후배)에게 친절히 내용을 암송하는 아이들, 회사일과 집안일을 극장에서 전화로 처리하시는 어르신들, 뒷자리에서 발길질하는 아이들까지. 정말이지 집중을 하기가 힘이 들지요... 

   이렇게 극장을 싫어하면서도(정확히 표현하자면 멀티플렉스의 분위기이지만서도), 이 3개월동안, 극장에서 두 번 관람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위에서 열거한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저를 다시 극장으로 이끌었습니다. 왠만한 영화는 2차 판권(DVD)이 풀릴 때 다시 감상하지만, 이 영화들은 그 기간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저를 다시 불러들인 경우입니다. '위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저 개인적으로 가슴에 울린 영화들이겠지요. 3월 마지막 주, 무비매니아 마지막 영화 미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맺을까 합니다. 

 

   처음에 봤을 땐, 사랑스런 하나 氏 때문에 봤습니다. 신연식 감독이나, 안성기 氏는 모두 제 고려대상에서 벗어났지요. '영화야 어찌됐건, 최소한 <식객>때보다는 괜찮게 나왔겠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이 블로그에서 얘기했지만, <페어러브>는 50여년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그래서 이제는 자신을 가둔 그 벽마저 자기 자신의 일부가 된 형만(안성기)이 남은(이하나)을 만나 그 벽을 깨고 나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한 50대의 나이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신연식 감독은 그 진부한 소재를 어찌보면 다소 자극적인 소재로 버무려 다루었습니다.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지저분한' 이야기로 흐를수도 있지만, 신연식 감독은 이 이야기를 잘 다루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페어러브>는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읽혀졌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서로에게 공정한 사랑은 인생을 오래 산 형만이나, 형만의 절반정도만 산 남은이나 어느쪽이나 유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고통은 사랑을 하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평하게 찾아갑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그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시작'할 여지가 생겼겠지요. 

   하지만, 다시 감상했을 때, 결국 이 영화는 '인생'을 생각하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스스로 달리지 않고, 이제는 쳇바퀴의 관성에 편안히 몸을 맡기는 멈춰진 삶. 대부분의 인생은 다 그렇지 않을까요? 형만은 남은 덕분에, 자신의 공간,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직시하게 됩니다. 관성에 안주한 삶을 포기하고, 쳇바퀴에 내려, 스스로 다시 달릴 준비를 합니다. 이것은 굉장한 결단이지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형만과 남은의 사랑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장면, 남은이 형만의 병원 침대의 가려진 커튼 밖에서 얘기하는 모습은 실제인지, 형만의 꿈인지는 제게는 더이상 상관 없습니다. 어찌됐건, 형만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할 것이니까요.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결과는 "오십 대 오십"입니다.  

   남은의 "우리, 다시 시작해요"란 말은 형만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다시 시작합니다.

 

   7년이나 지난, 이미 잊혀진 사건을 지금에서야 꺼내는 것은 감독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거물 간첩' 송두율 교수에 대한 이야기에서 2010년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지요. 이 영화, 절대로 가벼운 영화가 아닙니다. 

   처음 봤을 때는, 갈팡질팡 진술을 번복하는 송 교수에 대한 실망감과, 그를 둘러싼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 '찢어죽이지 못해' 안달하지 못하는 보수 단체들과, 운동성에 흠집을 냈으니 전향하라고 윽박지르는 진보 단체들의 장단에 맞추어 정신 없이 봤습니다. 이것은 홍형숙 감독의 의도한 편집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이렇게 급박하게 사건이 진행된 면이 컸었지요. 언론이 나선 점도 있었지만, 이 모두를 미쳐버리게 만든 장을 마련한 주체는 '대한민국'과 '국가 보안법'이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제 안에 자리잡고 있는 '레드 컴플렉스'와 사투를 벌이며 '전투적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 사는 대한국민은 그 크기는 다를지라도, 모두 저마다의 '레드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체험해준 영화입니다. 

   어느정도 머릿속을 진정하고 난 후, 두 번째 재감상했을때, 드디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두율 교수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학자이자 자연인으로써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신념과 37년간의 저항이 어떻게 한순간에 이리도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와 우리 사회를 둘러싼 '집단 광기'가 어디서 발현됐는지를 천천히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두 번 봐야 그 의미가 제대로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별 기대하지 않고 봤습니다. 예고편을 봤을 때, 대충 어떤 느낌의 영화일지 그려졌거든요. 영화를 봤을 때도 계속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스포일러를 언급하지 않고 영화를 이야기하기가 워낙 쉽지 않아, 영화를 본 제 반응을 알려드리자면, "음, 그렇군. 그렇군. 그렇게 되는군. 그렇게 되겠지. 그렇지. 그렇지. 응? 뭐라고? 헉! 헉!! 헉!!!" 뭐 이랬습니다. 저는 끝까지 음모론을 놓지 않았습니다. 분명 뭔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결국 자승자박에 걸린 셈이였지요. 영화의 초중반에는 50년대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인 2차 세계대전, 핵폭탄과 매카시즘의 공포를 음모론과 다룬 수작이라 생각했으나, 영화의 말미에 가서, 지금까지의 생각을 다시 재구성해야 했지요. 그래서 다시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봤을 땐, 이 영화가 잘 짜여진 스릴러라 생각했으나, 두 번째 봤을 땐, 참으로 슬픈 영화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내용을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보안관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둘러싼 수 많은 조연들의 연기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런 미묘한 균형을 세우는 영화를 만든 공은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공이 큽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이 영화는 그에 합당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하필 1950년대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택시 드라이버>나 <좋은 친구들>같이 동시대를 다루는 영화는 나올 수 없는 것인가하고 짧게 탄식을 했지만, 이내 지워버렸습니다. 스콜세지 감독은 <갱스 오브 뉴욕>에서 하층민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애비에이터>에서 상류층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그렸습니다. (실망스러웠던 <디파티드>를 제외한다면) 그는 <셔터 아일랜드>로 미국 중산층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쓴 셈입니다. 스콜세지는 그만의 방식으로 미국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급한 세 편의 영화는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페어러브>와 <경계도시2>는 극장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3기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어 시원 섭섭합니다. 다음에는 더 즐거운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겠습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3-29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9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SS, KISS, KISS!
스위트피 (Sweetpea) 2집 - 하늘에 피는 꽃

 

               I'm gonna believe in your eyes
               So please don't say love is blind
               I wanna be reading your mind
               In secret communication
               Do you like toffee and lemonade?
               It used to taste so good hand-made
               Where are the smiles of yesterday?
               Our childhood conversation
               Please kiss, kiss
               Will anybody kiss me, please?
               Please, please kiss, kiss
               Give me strawberry kisses please 

               I'm gonna become sunshine
               And kiss everything in sight
               Could be a star in the night
               Just use your imagination
               I'm only holding back the rain
               So many rain drops, so many pains
               I wanna find my train someday
               As seasons go pass the station
               Please kiss, kiss
               Will anybody kiss me, please
               Please, please kiss, kiss
               Like a strawberry colored dream 

               Please kiss, kiss
               Will anybody kiss me, please?
               Please, please kiss, kiss
               Like a strawberry colored dream 

               Please kiss, kiss
               Will anybody kiss me, please?
               Please, please kiss, kiss
               Give me strawberry kisses please 

- sweetpea 「kiss kiss」-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절로 2010-03-2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 더러 어쩌자는 거예욧!!..것도 신성한 근무중에.
자제해 주시길..낄낄(레드카드!)

Seong 2010-03-29 12:1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먼댓글이었어요 ^.^;

2010-03-29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9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9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9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0-03-2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달콤한 토멕님. ^---^

Seong 2010-03-29 16:06   좋아요 0 | URL
이런 상찬을... ^.^;

치니 2010-03-2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근데 저기 이하나 <메리대구공방전>에 나왔을 때 모습인가요? 그 드라마, 아무도 안 보는데도 전 디게 재미나게 열심히 봤던 기억이 새삼 나네요. 여기서의 이하나, 참 괜찮았는데. <페어러브> 보셨어요? 거기선 심히 안타까웠어요. ^-^;;

Seong 2010-03-29 16:06   좋아요 0 | URL
저도 엄청 재미있게 봤어요. ^.^; 다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딱 맞아떨어지는 역할이었죠. >,.<
<페어러브>도 저희는 꽤 괜찮게 봤습니다. <식객>은 기존의 황메리 이미지를 그냥 차용한 느낌이었는데, <페어러브>에서는 다른 이미지로 나왔으니까요. 여배우로 느껴졌어요. ^.^;
고맙습니다.

저절로 2010-04-0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음악..매일 들으니, 위로를 주네요..'감사해요~!'

Seong 2010-04-02 20:46   좋아요 0 | URL
좋으시다니 다행이예요~ ^.^;
 
지리멸렬한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다
경마장 가는 길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장선우 감독의 세 번째 영화(선우 완 감독과 공동 연출한 <서울 황제>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 <경마장 가는길>은 전적으로 원작자인 하일지 작가에 기대어 있다.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의 각색과 시나리오를 하일지 작가에게 맡겼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줄거리는 원작 소설과 거의 똑같다. 심지어 그 지난한 문어체의 대사까지 거의 그대로 진행한다. 장선우 감독은 이 소설을 옆에서 읽어주듯이 정말 그대로 영상화 시키길 원했던 것이었을까? 그럴 의도도 있었던 것 같지만, 꼭 그런것 같지만은 않다. 장선우 감독의 악동 기질이 어디 가겠는가? 하일지 작가의 『경마장 가는 길』이 새로운 소설의 가능성을 알렸다면,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길>은 영화의 기존 문법을 거의 와해시키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R이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5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R은 프랑스에서 3년 반동안 같이 지내고, 논문도 대신 써줬으며, 한국에서 문학평론가로 데뷔시킨 J와 섹스를 하려 하지만, 계속 거부당한다. R은 부인과 이혼을 하려 하지만, 그 또한 거부당한다. R은 프랑스로 다시 떠날 생각을 하고, J와 함께 가자고 권유한다. J는 알았다고 했으나, 거부한다. R은 J의 비밀을 J의 부모에게 다 이야기하고,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그가 쓰기 시작한 글은 소설 첫 장의 묘사와 똑같이 진행되고, 소설 제목은 『경마장 가는 길』이다.  

   소설은 J와 R의 아내 이야기 외에 '알랭드롱을 닮은 사내', '뚱뚱한 사내', 'E 교수', 'N 교수' 등과 R이 보낸 이야기와, R의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가 J와 R의 아내 이야기의 분량과 거의 동일하게 삽입되어 있다. R을 중심으로 기록한 '개인사'라 봐도 무관할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어떤 장르에 예속되기 보다는 탈장르적으로 보이고, 지독한 관찰자 시점의 서술로 인해, R을 비롯한 모든 인물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장선우 감독은 이 지난한 이야기에서 R, J, R의 아내 이야기를 꺼내어 재구성시켰다. 이야기가 이렇게 모아지니, 이 영화는 'R이 J와 섹스를 하려는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장선우 감독의 유희가 시작된다.

 

 

   영화는 김포공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R(문성근)이 돌아왔다"는 장선우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R은 공항에 마중나온 재희(강수연)- 소설과 영화 크레딧에는 'J'라고 나오지만, 문성근 씨의 발음은 '재희'로 들린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강수연 씨가 기고한 평론의 이름을 보면 '정재희'라고 쓰여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기호로 이름이 불리는 사람은 R뿐이고, 이 영화의 화자인 장선우 감독은 오직 R만을 이해못하는 타자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의 차를 타고 하룻밤을 지낼 여관에 간다. 

   영화는 크게 3개의 공간을 다루고 있다. 하나는 R이 잠을 자고(그의 집은 대구에 있는데, 그는 서울에 일 때문에 자주 올라온다) 재희와 섹스를 하는 '여관'이라는 공간이다. 두 번째는 거의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다방'이라는 공간이고, 세 번째 공간 또한 거의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재희의 '차 안'이다. 영화는 거의 80% 이상을 이 공간에 할애하고 있다. 

   여관, 다방, 차 안의 공통점이라면, 이 공간은 창작자나 등장인물의 의지가 개입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의) 모든 영화의 공간은 감독의 의지가 개입된다. 공간에 배치된 자잘한 소품과 그 위치까지도, 감독의 의지가 개입이 된다. 특히나 그 공간이 주인공이 기거하는 공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의 사건이 전개되는 주요 공간인 여관, 다방, 차 안은 감독의 의지가 개입될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은 사적 공간인 동시에 공적 공간인 셈이다. R과 재희가 같이 있는 여관, 다방, 차 안의 공간은 그 누가 그 자리를 대체하더라도 똑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한마디로 미장센의 무력화. 장선우 감독은 하일지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의 미학적 기능에 딴지를 걸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의 허무주의에 가까운 이런 미학적 '자살'은 훗날 <거짓말>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 영화는 거의 '여관방'밖에 나오지 않는 포르노니까. 

 

 

   육화된 대사 또한 재미있는 요소다. R은 재희에게 장광설의 이야기를 한다. 이 '지나치게 진지해서 우스꽝스런' 대사가 문자화되어 있을 때는 그나마 진지하게 읽을만한 구석이 있긴 한데, 이게 '문성근'이라는 배우에게 육화되어 나올 때, 그 우스꽝스러움은 정말로 견디기 힘들어진다. 영화를 보다가 킥킥거리기는 다반사고, 벌떡 일어나서 배를 잡고 끅끅거린 것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카메라의 시선이다. 카메라는 R과 재희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대화가 좀 진행된다 싶으면, 카메라는 다른 쪽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대화가 끝날 때 쯤 다시 등장인물을 비춘다. 이 이야기의 관찰자이자 화자인 하일지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R과 J의 이야기와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빠짐없이 다 서술한 반면, 이 영화의 화자인 장선우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지겨워져서 딴청을 피우는 쪽이다. 그는 R과 재희의 현학적인 대화(그래봤자 '한 번 하자'는 얘기다)보다는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른 아침 모텔에서 조심스럽게 나오는 중년 커플들, 단란주점에서 손님들을 배웅하는 아가씨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설파하는 전도사와 '멸공'차량 등 -에 더 관심을 가진다. 장선우 감독은 이 포스트모던한 소설을 가지고 영화라는 형식을 계속 무효화 시키고 있는 셈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보다 1년 앞섰고, 도그마 선언보다 4년 앞섰다.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 <경마장 가는길>이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의 오독으로 보이길 원한 것 같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 타이틀 '경마장 가는길'이 띄어쓰기가 틀린채, 견고딕체로 쓰여 있다. 영화의 마지막, R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 밖의 광경을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글의 제목은 '경마장 가는 길'이고, 영화의 타이틀이 다시 한 번 나오는데, 제대로 된 띄어쓰기에 바탕체로 쓰여있다.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 끝에가서 소설 안 소설과 소설 밖 소설이 맞물려 다시 시작하는 소설이라면, 영화 <경마장 가는길>은 영화로 다시 돌아가기 보다는, "감독이 오독한 <경마장 가는길>을 다 보셨으니, 이젠 제대로 된 『경마장 가는 길』을 읽으시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장선우 감독은 132분 동안 관객을 상대하며 시종일관 낄낄거린 셈이다.  

   불쾌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그의 의도가 우리를 '경마장'으로 안내하는 방식이 아닐까? 경마장이 실제로 있건 없건간에. 

 

 

 

 

*덧붙임: 

1.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라면, 인물들에 대한 배우의 해석이겠지요. 소설에서 때론 이지적이고 근엄해보인 R은 영화에서 꽤나 찌질하게 보입니다. 소설에서 '아무 생각 없는 것 처럼 보이는' J는 강수연 씨의 해석으로 다소 '적극적'인 여성으로 보입니다. 

 

2. 역시 장선우 감독님도 원작소설의 이 대사를 상당히 재미있어 하신 것 같습니다. ^.^; 

"너의 이러한 태도의 이데올로기는 뭐니?" 

 

3. 그러고보니 R의 아내로 나온 김보연 씨를 뺐습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0-03-25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오래전 본 영화!
얼마전 본 '실종'에서 사이코패스 역의 섬뜩한 문성근을 봤는데
저 찌질했던 역할의 문성근 얼굴도 저땐 비교적 푸릇하네요.
저 대사 기억나요. 너의 이런 태도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냐?ㅎㅎ

Seong 2010-03-25 18:30   좋아요 0 | URL
<실종>은 내용이 무서워서 못봤어요. 역시 문성근 씨는 그런 위악적인 역할이더라도 '먹물'행세 하는 역할이 근사한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경마장 가는길>에서 먹물병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ㅎㅎ 영화에서 자주 봤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

순오기 2010-03-2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볼 때 '한번 하자'는 얘기를 저렇게 지루하게 풀어가야 하나? 생각했던 1인.^^
좀 지루하고 재미없게 보면서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소설은 안 봐서 몰라요...
영화리뷰의 양대산맥인 프레이야님과 토멕님!^^

Seong 2010-03-29 10:03   좋아요 0 | URL
지금보시면 더 재미있으실지도 모르겠어요. ^.^;
헤헷~ 고맙습니다.

novio 2010-03-3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고전도 있네요. 어떻게 이런 작품들을 아시는지 놀랄 따릅입니다. 정말 영화 전문가시네요. 다른 분들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 느껴집니다

Seong 2010-03-31 15:4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아인스에서 한국영화컬렉션을 싸게 팔때 구입해서 하나씩 천천히 보고 있는거예요. 일종의 재고소진이랄까. 영화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제가 쓴 글들은 제가 읽어봐도 재미가 없는걸요. novio님이나 다른 분들의 글들은 읽는 재미가 있는데 말이죠. 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지루해하는 글을 쓰는 것 같아요. 당사자가 이러니 뭐 말 다했죠. ^.^;
좋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pjy 2010-04-1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죽거리길 좋아해서 소설보면서 이 대화는 요지가 모냐..이러면서 보다가 말다가~ 한참 삼천포로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ㅋㅋ

Seong 2010-04-12 10:39   좋아요 0 | URL
결국엔 '한 번 하자'로 귀결되는 모든 대화였죠. ^.^;

혁궁 2012-04-2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경마장 가는길을 보았습니다
R과 J의 대화 중 괜한 장면을 보여주는 등 쇼트를 왜 나누지 않았나 햇는데
이런 뜻이 있었군요 알고보니 매우 혁신적인 영화네요 글 잘봤습니다!

Seong 2012-04-23 09:57   좋아요 0 | URL
그냥 제 생각일 뿐, 어떤 의미였는지는 감독만이 알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