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 A Nightmare on Elm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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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둘, 프레디가 와요
               셋 넷, 어서 문을 잠가요
               다섯 여섯, 십자가를 꼭 쥐고
               일곱 여덟, 늦게까지 깨어있어요
               아홉 열, 절대로 잠들면 안 돼
 

 

사무엘 바이어(Samuel Bayer)가 감독(했다고 하지만, 제작자 마이클 베이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 게 분명)한 2010년의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는 이벤트 무비와 리메이크 무비의 사이에 있는 작품입니다. <나이트메어>시리즈를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향수를, 몰랐던 관객들에게는 고전의 투박함을 현재 기술력의 세련함으로 포장해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 영화입니다. 팬심을 제거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도, 제게 <나이트메어>는 60% 정도 아쉬운 영화입니다. 

웨스 크레이븐(Wes Craven)이 창조한 꿈속의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는 유머 감각이 있는 아동살해범입니다. 80년대에 탄생한 다른 살인마들과 비교해볼 때 특별한 점은 바로 그가 유머를 이해한다는 것이죠. 그는 살인마이긴 했지만, 아이들의 특성을 정말로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천부적인 살인마였습니다. 특히 '꿈'이라는 그의 무대는 그의 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장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세계는 고딕 미술의 세계서부터 팝 아트와 코믹스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이 예술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원하거나 바라는 것으로 유혹한 뒤,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에 빠졌을 때 나타나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시리즈의 일곱 번째이자 <나이트메어>의 창조자 웨스 크레이븐이 감독한 진정한 속편인) <뉴 나이트메어(Wes Craven's New Nightmare)>에서도 언급하는 것처럼, 프레디 크루거는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와 같은 존재입니다.  

 

원작의 이런 유머는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도착한 프레디 크루거의 모습에서는 이런 면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원작의 프레디가 유머 감각이 있는 아동살해범인 반면, 리메이크의 프레디는 냉혹한 아동학대범입니다. 웨스도 처음에 프레디를 기획했을 때도 이렇게 그리려 했지만,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학대 사건 때문에 방향을 틀었습니다. 리메이크의 프레디는 더 이상 이죽거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변태로 나옵니다. 그렇기에 그가 만든 꿈은 정말이지 한심합니다. 어떻게 할 줄 아는 놀이가 술래잡기밖에 없는지... 그는 아이들을 유혹하지 않고 겁만 잔뜩 줍니다. 그는 면도칼 장갑으로 아이들을 베고 찌를 뿐입니다. 창의적이어야 할 장면에서는 답습을 하고, 그대로 가져가도 될 설정들은 비틀어버린 경우라 해야 할까요? 

 

프레디는 시종일관 베고 찌르기만 합니다. 그의 매력은 꿈을 현실화시켜주는 건데 말이죠. 

 

가장 아쉬운 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별 개연성 없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 아이들이 죽는 이유는 그들 부모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프레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그는 아동살해범이었으니, 일거양득이었겠죠. 이 무서운 연좌제의 공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약성서의 율법! 공적 복수와 사적 복수의 차이! 그런데 리메이크는 오직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 수많은 아이들을 살해합니다. 리메이크의 프레디 크루거는 원작의 프레디 크루거와는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씬 시티(Sin City)>의 노란 녀석(that yellow bastard)과 흡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프레디와 노란 녀석이 노리는 여자아이의 이름이 같군요.    

 

"그렇지, 낸시(Nancy)?"

 

하지만, 원작에 관심이 없는 관객들에게는 재미있게 다가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아내는 굉장히 즐기면서 봤거든요. 사운드 디자인은 꽤 뛰어납니다. 꿈속의 프레디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기에 그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여기저기에서 출몰하고 꽤 근사하게 들립니다. 

이래저래 원작의 팬인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나름 개연성도 있고 즐길만한 영화였습니다. 어차피 공포 영화는 항상 쓰레기 취급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이 영화가 시간의 흐름을 견뎌 고전의 위치에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돈은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속편을 제작한다니 말이죠. 

 

 

*덧붙임: 

1. 이 글은 장르영화에 관한 글이지 현실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2.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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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 The housem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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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61년 작 <하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리메이크라고 해야 한다면,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 역시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의 리메이크라 해야 할 것입니다. 임상수 감독은 원작의 기본 설정 -부잣집에 하녀가 들어와 그 집안을 파탄 낸다- 만을 가지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때 그 사람들(1970년대)>, <오래된 정원(1980년대)>, <바람난 가족(1990년대)>에 이은, 임상수 감독이 2000년대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한 여인의 불안한 표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먹고 담배피고 술마시고 노는 여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 돈을 내는 사람들과 돈을 받는 사람들. 임상수 감독은 현대 사회를 가감 없이 심드렁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순간, 갑자기 한 여인이 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비명도 들리고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한 여인을 구경거리로 여깁니다. 너도나도 구경하려 애쓰고 감탄사도 들려옵니다. 자본주의의 한 복판에 자살한 여인의 죽음은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나중에는 희미한 핏자국과 하얀 실선으로 표시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구경꾼들 중에 은(전도연)도 있습니다. 은은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하녀장 병식(윤여정)의 면접을 보고 저택의 가정부로 들어갑니다. 이제 영화는 현실에서 시작해서 알레고리로 점철된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녀가 들어간 대저택은 현실의 축소판입니다. 그녀는 그 안에서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한 일들을 당합니다. 심지어 목숨도 잃을 뻔 하지요. 그래도 그녀는 묵묵하게 웃으며 버팁니다. 주인들이 그러는 것은 다 이유가 있고, 자신이 제대로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은은 이 영화에서 완전히 바보로 나옵니다.  

아무리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원작과 별 관련이 없다 해도, 약간의 비교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기영 감독이 그린 <하녀>의 권력은 문화입니다. 여주인공들은 (부인을 포함해) 모두 노동자들입니다. 세 명의 노동자 여인들이 피아노로 대표되는 문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노동자 여인들은 돈을 벌수는 있지만, 교양을 돈으로 살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 안에서 무력한 남편은 세 여자들에게 이리 저리 휘둘릴 뿐입니다. 60년대에 (이층집과 피아노로 대표되는) 부유층은 노력하면 될 수 있는 계급이었습니다. 반면 임상수 감독이 그린 권력은 자본입니다. 지금의 모든 권력은 자본의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저택의 주인 훈(이정재)은 (거대한) 자본을 차지하고 있기에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자본은 문화를 종속시키고 윤리를 뛰어 넘습니다. 물론 오만함과 자의식은 덤이지요. 그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답게 <하녀>는 시종일관 차갑습니다. 임상수 감독은 적을 정해놓고 공격하지 않고, 우리 모두를 조롱합니다. 영화는 클라이맥스가 없습니다. 카타르시스도 없습니다. 관객들은 1시간 50분 동안 대저택에 사는 부유층들의 기만과 위선을 조롱하고 동시에 '병신 같이' 당하고만 사는 은, 아더메치하지만 그래도 살아야하기에 이곳저곳에 박쥐처럼 붙는 병식을 조롱합니다(그녀는 바보에게 따귀도 맞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0분, "찍소리라도 내야겠"다는 은이의 복수는 너무나 참담합니다. 임상수 감독은 모든 계급을 시종일관 조롱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처음, 우리는 한 여자의 죽음을 구경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극장을 나서면, 우리는 영화를 잊어버리고 현실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임상수 감독은 우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들도 이 바보 같은 여자와 다를 게 없다고. 당하고만 살지 말고, 좀 깨달으라고. 

  

 

*덧붙임:  

배우 이야기를 뺄 수 없습니다. 전도연 씨야 워낙에 뛰어나니 별로 언급할 게 없습니다. 단, 워낙 답답한 역이라, 본인도 연기하는데 애를 먹었을 것 같습니다. 대신, 결말부에서 폭발하는 전도연 씨의 연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은 화면보다는 스크린에서 알아챌 수 있는 디테일한 모습이나 표정 때문에 깜짝 놀랐으니까요. 

이정재 씨는 정말 (아마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역을 만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만함과 자의식 과잉의 인물이면서도 젠틀함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정재 씨 이미지와 가장 맞는 것 같습니다. 서우 씨의 인공적인 외모와 아이 같은 이미지 또한 영화의 분위기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윤여정 씨는 김기영 감독의 71년 작 <화녀(하녀의 첫 번째 리메이크)>로 데뷔해 감계가 무량할 것 같습니다. 윤여정 씨가 맡은 병식 역은 71년의 하녀가 지금까지 하녀 생활을 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말 그대로 자본주의를 온 몸으로 견뎌온 인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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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시>의 표를 끊으며 <하녀>도 볼까 곁눈질 했는데 리뷰를 보니 보고 싶은 마음이 부쩍 생기네요^^

Seong 2010-05-16 10:48   좋아요 0 | URL
호불호가 갈리지만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한 번 보시길 바라요. 아마도 2010년의 <박쥐> 같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2 (10)
               타이틀 Coma
               각본 Harley Peyton 
               감독 David Lynch 
               방영일 1990년 10월 6일 

 

 

1. 이야기 

알버트는 데일에게 자끄 르노가 질식사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살해한 것이라 보고한다. 그리고 그는 나쁜 소식을 전해준다. 데일의 전 파트너인 윈덤 얼이 정신 병원을 탈출해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무료 급식 봉사 활동’ 첫날, 다나는 트레먼드 부인에게 음식을 전한다. 부인은 손자와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어딘가 기이하게 보인다. 트레먼드 부인은 로라에 대해 알려면 옆집에 사는 해롤드 스미스를 만나라고 얘기한다. 

로라를 죽인 범인이 밥임을 확인한 데일은 마을에 전단을 붙인다. 리랜드 파머가 그 전단을 보고 그가 누군지 알아챈다. 

벤자민 혼이 딸 오드리가 실종됐다고 해리 보안관에게 신고한다. 오드리는 ‘애꾸눈 잭’에서 로라가 이곳에서 일한 것, 그리고 아버지 벤자민 혼과 로라의 관계를 알아챈다. 

마가렛(통나무 여인)이 브릭스 소령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통나무의 말을 전한다. 브릭스 소령은 자신이 수신한 “올빼미는 올빼미처럼 보이지만, 올빼미가 아니다”라고 쓰인 메시지를 쿠퍼에게 전달한다. 그날 밤, 데일은 오드리의 전화를 받지만, 곧 끊어진다. 

 

 

2. 윈덤 얼 (Windom Earle)  

시즌 2 초반에 윈덤 얼(Kenneth Welsh)의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된다. 윈덤 얼은 데일의 전 파트너였으나 정신병원에 있는 상태였다. 아직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조금만 밝힌다면 데일이 사랑에 빠졌던 여인이 윈덤 얼과 관련이 있다. 어쨌든 윈덤이 정신병원을 탈출했다는 사실과, 알버트가 이곳 트윈 픽스에 온 이유가 로라 파머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윈덤 얼 때문이라는 점은 윈덤 얼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윈덤은 로라의 사건이 진행되는 중간쯤에 등장했어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ABC의 지나친 압력으로 전체 이야기가 흐트러지고, 윈덤 얼은 <트윈 픽스>의 아우라가 모두 증발하고 난 후에야 등장한다. 너무 늦은 출현에 아쉬워해야할지 아니면 드라마가 산으로 간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등장해 드라마를 이끈 것을 고마워해야할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캐릭터다. 

 

 

3. 트레먼드 부인과 손자 

스크립트에서는 다나를 해롤드 스미스와 연결해주는 역으로 설정됐지만, 데이빗은 이들을 다른 세계(Another Place)와 현실의 인물들을 연결해주는(link) 역할로 표현했다. 실제로 이들의 집안 분위기는 불길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직 정확히 언급되진 않지만, 이들은 실제 인물이 아닌 유령 같은 존재다.  

극장판 <트윈 픽스>에서 이들은 밥과 마이크와 함께 오두막(lodge)에 거주하는 존재로 나온다. 시즌 1에서 “오래된 숲에 악(惡, evil thing)이 존재한다”고 했던 말이 시즌 2에서는 ‘오두막(lodge)’이라는 구체적인 실체로 표현된다. 시즌 1에서 데일의 꿈에서만 출몰했던 이들이, 이제 점점 현실세계로 나오고 있다. 이제 이야기는 숲의 정령들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3. 통조림 옥수수 (크림 콘, garmonbozia) 

다나가 트레몬드 부인에게 음식을 배달했을 때, 부인이 음식을 보고 “통조림 옥수수가 있다”며 나무란다. 스크립트에서는 단순히 ‘싫어하는 음식’으로 표현했으나, 데이빗은 이 장면을 상당히 공들여 찍었다.   


크림 콘에 대한 설명은 극장판 <트윈 픽스>에서 자세히 언급 된다. 영화에서 크림 콘은 가르몬보쟈(garmonbozia)로 불리는데, 영화의 마지막, 로라를 살해하고 오두막에 돌아온 밥을 보고 마이크가 “가르몬보쟈(슬픔과 고통)를 먹고 싶”다는 말을 한다. 이들에게 있어 크림 콘, 즉 가르몬보쟈는 고통과 슬픔 그 자체다.  

물론 이런 것은 드라마의 내러티브와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평범하게 보이는 일상이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것일지도 모른다. <트윈 픽스>는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비틀어 보여준다. 

 

 

4. 홈 엔터테인먼트 (Home Entertainment)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가장 뜨악한 장면은 제임스, 다나, 매디가 다나의 집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일 것이다. 실제로 이 장면은 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제임스가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 다나와 매디가 코러스를 넣어주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노래를 부르는 중간 중간, 제임스와 다나, 제임스와 매디의 시선 교환을 알아챌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무드’에 빠지는 순간을 데이빗은 다소 뜨악하지만 매우 로맨틱하게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씬은 홈 엔터테인먼트의 방법을 보여준다. 데이빗이 생각하기에 이제 90년대는 거대 자본이 아닌, 집에서 스스로 음반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21세기 들어 데이빗의 작업이 거의 수공업적인 홈 엔터테인먼트 방식으로 변화한 것을 보면, 이 씬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5. 매디의 비전 

원래는 저번 회에서 보여줬어야 할 매디의 비전이 이번 회에서야 보인다. 저번 회에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면, 이번 회에서는 ‘밥’이라는 확실한 실체로 나타난다. 갑작스레 등장하는 밥의 모습은 굉장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데, 다른 장소가 아닌 익숙한 집에서 갑작스레 나타난다는 점이 그렇다. 

 

 

  

6. 로라 파머와 벤자민 혼 

오드리는 ‘애꾸눈 잭’에 온 에모리에게 로라에 대한 사실과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실을 알아낸다. 에모리에 따르면, 로라 파머는 로넷 풀라스키와 함께 ‘애꾸눈 잭’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하지만 로라가 마약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해 일주일 만에 쫓겨났다. ‘애꾸는 잭’의 소유주는 벤자민 혼이고 벤자민은 이곳에 처음 오는 여자들과 항상 잠자리를 가진다. 그러니 아마 벤자민과 로라는 관계를 가졌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질투로 충격을 받은 오드리에게 에모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로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가졌어. 바로 너처럼.” 딸 같은 여자아이와 잠자리를 갖는 근친상간적 이미지는 <트윈 픽스>에서 중요한 이미지가 된다.  

 

 

7. 셜리 존슨과 바비 브릭스 

리오 존슨이 총에 맞아 의식을 잃은 상태가 되자, 바비는 셜리를 설득해 리오를 감옥에 보내지 말고 집에서 돌보자고 한다. 이유는 돈 때문이다. 리오의 보험으로 그가 감옥에 가지 않으면 한 달에 5,000달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셜리는 리오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결국엔 그에게 이용만 당했다. 그녀는 그런 남편 대신 바비를 사랑하지만, 바비 또한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한다. 셜리는 어째서 이런 놈들만 걸리는 것일까?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그녀가 감내해야할 인생이지만. 

 

 

8. 행복 

(남편의 보험금을 담보로) 새 삶을 살게 해주겠다는 바비의 말에 셜리는 대답한다. “난 그저 편안함을 느끼길 원해.” 그녀는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고 편안함을 원한다. 행복과 편안함의 차이는 김수현 작가가 <내 남자의 여자>에서 지수(배종옥)의 말을 통해 정리한 바 있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순간 지나가는 감정이잖아. 편안한건 알맞은 온도의 목욕물에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느긋하고 기분 좋은 거고. 그래서 나는 행복보다는 편안한 감정이 좋아. 행복이라는 단어는 뭔가 불안해. 금방 사라질 수 있고 금방 불행으로 바뀔 수도 있고.” 

그리고 좀 엉뚱하긴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에서도 ‘행복’이란 단어는 찾기 힘들다. 문경(김상경)이 성옥(문소리)과 섹스를 하고, 자신의 짝이라 느끼는 순간,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나랑 같이 (캐나다로) 가요. 거기서 내가 매일 재미있게 해줄게요.” 

문경은 행복하게 해준다는 말 대신 재미있게 해주겠다고 한다. <하하하>에서 인물들은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 중식(유준상)과 연주(예지원)가 느끼는 마지막 순간의 행복 또한, 순간적이다.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고, 그들은 또 답답한 삶을 살 것이다. 영원한 행복보다는 편안하고 재미있는 ‘순간’이 더 감정적으로 와 닿는다. 

인생이 불행했던 사람들은 행복을 믿지 않는다. 셜리 역시 행복을 믿지 않는다. 영원한 행복은 어렸을 적 읽은 동화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찾을 수 있지 현실에서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9. 데일의 꿈 

통나무 여인의 말을 듣고 브릭스 소령은 데일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업무는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우주에서 전파를 수신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데일이 총을 맞았을 때 브릭스 소령이 수신한 메시지에는 “올빼미는 올빼미처럼 보이지만, 올빼미가 아니다”“쿠퍼”의 이름이 쓰여 있다. 

메시지를 받은 데일은, 밥과 올빼미, 로라가 사라진 순간 등의 이미지가 한데 섞이는 괴이한 꿈을 꾼다. 이 꿈은 메시지일 수도 있고, 데일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악몽으로 볼 수도 있다. 데일의 꿈은 불길한 기운을 내포한다. 

 

 

10. 기억할만한 지나침 

트레먼드 부인의 손자로 나오는 배우는 오스틴 잭 린치(Austin Jack Lynch)로 데이빗 린치의 아들이다.  

 

트레먼드 부인의 병원 음식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다. 시즌 2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데이빗은 병원 음식에 대한 유머러스한 코멘트를 남긴 바 있다. 

"간호사,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주방에 뭐라고 말 좀 해."

"병 때문이 아니라 병원 음식 때문에 먼저 죽을지도 모르겠어."

  

 

행크의 과거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드라마에서는 행크가 ‘북하우스 보이’ 출신이었다는 것만 밝히지만, 스크립트에서는 조금 더 자세히 진술한다. 행크와 해리 그리고 빅 에드가 서로 친구 사이였으며, 행크가 친구의 애인(노마)를 가로챈 사실 때문에 자경단원에서 쫓겨났다.   

 

리오 존슨의 모습은 <광란의 사랑>의 룰라(로라 던)의 수술 장면이 떠오른다. 

 

앤디가 루시에게 화냈던 이유가 밝혀진다. 앤디는 아이를 가질 확률이 희박하다고 하는데, 루시는 어떻게 임신할 수 있었을까? 루시의 다른 애인은 다음 회에 출현하고 이들의 관계는 기이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꿈이 아닌 사실임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로 쓰인 ‘반지’는 극장판 <트윈 픽스>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 

 

 

11.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nences
-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02』 스크립트, 4th Revisions
-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
David Lynch The Lime Green Set> Absurda
- <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Lynch/Frost Productions, CIBY2000, New Line Cinema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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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0-05-1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같은 영화를 봤는데, 저는 쫌 많이 심란해서 뭐라 이야기도 잘 못했거든요. 그나저나, <하하하>에 그런 대사가 나오는군요. 재미있게 해주겠다는... 그거 위험한 발언인데 말입니다.

Seong 2010-05-14 14:3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하하>의 그 대사는 정말로 좋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괴물들이 사는 나라 한정판 (인형 랜덤 삽입)
스파이크 존즈 감독, 마크 러팔로 외 출연, 포레스트 휘태커 목소리 / 워너브라더스 / 2010년 5월
품절


<괴물들이 사는 나라> 한정판 DVD입니다. 계속 알라딘에서 품절이었다가 어제 아침에 재고가 있는 것으로 나와서 재입고 된 줄 알았는데, 그새 또 품절이네요. 운좋게 제가 구입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DVD 시장은 미루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살 수 있을 때 재빨리 사야지요...

영화는 아직 감상을 못했습니다. 극장에서 보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이렇게 DVD로나마 만나게 되어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 있게 됐습니다.

인형은 괴물 인형과 맥스 인형 두 개가 랜덤으로 들어있는데, 전 맥스 인형이 걸렸습니다. 괴물 인형이 생각보다 조악해서 맥스가 걸렸으면 했는데, 바람이 이루어 졌습니다. ^.^; 하지만, 조잡한 것은 어쩔 수 없네요. MADE IN CHINA라는 마크가 크게 찍혀있습니다.

사는 김에 모리스 샌닥의 원작 동화도 같이 샀습니다. 오랜만에 외관만으로도 사랑스런 책과 DVD를 구입한 것 같아 기분이 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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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5-0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무슨 내용일까 궁금합니다. 하지만 인형 나름 귀여운데요? ^^

Seong 2010-05-10 08:03   좋아요 0 | URL
영화도 사랑스럽습니다. 기회되시면 꼭 보셔요.
고맙습니다. ^.^;

LAYLA 2010-05-07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차 귀엽네요!!! 영화이야기도 올려주실거죠?^,^

Seong 2010-05-10 08:04   좋아요 0 | URL
내용물도 귀엽지만 서재에 올려놔도 그런대로 잘 어울립니다. ^.^;
고맙습니다.

아포지 2010-05-0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명작 동화인데.. 영화도 나왔었군요..

Seong 2010-05-10 08:05   좋아요 0 | URL
아쉽게도 흥행에 실패해 국내 개봉이 물건너갔습니다. 극장에서 봤으면 했는데...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년에 대한 포부를 히로에가 묻자, 기리하라의 대답은, 한낮에 걷고 싶어, 라는 것이었다.
"기리하라 씨, 그렇게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내 인생은 백야(白夜) 속을 걷는 것 같으니까.
 

 

박신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는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부터 말이 많았던 영화인데, 그 이유는 원작 소설의 독특함 때문이었죠. 소설은 1973년 10월부터 1992년 12월까,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점층적으로 묘사합니다. 이 기간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시간이죠. 게다가 소설은 총 3권, 11개의 챕터(chapter)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챕터의 화자가 각기 다릅니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은 가라시와 유키오와 기리하라 료지이지만, 작가는 이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이들 주위에 있는 주변인들의 관찰로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지요.  

작가가 주력한 것은 시대상황입니다. 1973년부터 1992년의 시기에 일본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은 오일쇼크와 버블경제 성장 그리고 몰락의 시작입니다. 작가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저작권, 인베이더와 슈퍼마리오 게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즈 등 시시콜콜한 것들을 각 장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가가 관심을 둔 것은 컴퓨터라는 디지털 매체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마주해서 처리하던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인간이 기계와 소통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인간의 인성은 텅 비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을 읽어낼 수 있지요. 이때의 범죄는 버튼 하나로 수백만의 사람을 학살하는 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죄의식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지요. 료지가 범죄의 판을 크게 벌리기 시작하는 것도 컴퓨터라는 새로운 매체를 접하고부터 입니다. 

 

"그렇게 만든 카드는 물론 진짜와는 내용이 다르지. 비밀번호가 다르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것을 기계가 판정할 능력은 없어. 기계가 확인하는 것은 자기 테이프에 기록된 번호와 인간이 누르는 번호가 일치하는지 아닌지, 오직 그것뿐이야."
명백한 범죄였지만 도모히코에게 죄악감은 없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위조카드를 만들기까지의 경위가 너무나 게임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돈을 훔치는 상대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리하라로부터 늘 듣는 말이 머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는 것을 줍는 것과 남의 것을 내 것과 바꿔치기 하는 것이 어디가 달라? 돈이   든 가방을 멍하니 놓고 가는 게 나쁜 거 아냐? 이 세상은 빈틈을 보이는 자가 지는 거야."
도모히코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전율과 함께 오싹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물론 『백야행』은 장르소설입니다. 그런데, 소설의 장르는 분명 ‘미스터리 추리극’이지만, 작가는 독자와 두뇌 싸움을 적극적으로 벌이지 않습니다. 소설은 이들의 범죄 사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원작소설을 읽으면, 이들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렇다고 인물 묘사에 치중한 것도 아닙니다. 하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유키오와 료지의 내면 묘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고통에 빠져 사는지, 아니면 이렇게 벌이는 범죄를 즐기는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의 내면은 텅 비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이들은 가장 믿어왔고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했거든요. 그것도 아주 어렸을 때. 유키오와 료지를 둘러싼 어른들은 모두들 괴물이었고, 이들은 우연한 사건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갑니다. 소설 초반에 유키오와 료지가 읽던 소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스칼렛 오하라의 억센 모습은 유키호에게는 롤모델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 설정은 영화에도 그대로 삽입됩니다.  

 

 

이런 미완성의 소재는 영화나 TV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이지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밖에 없지요. 약간의 터치로 캐릭터에 살을 붙여 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영화는 방대한 내용을 무리하게 압축하는 대신 현재의 이야기와 14년 전에 벌어진 사건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을 즐겼던 분들이라면, 이 설정에 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2시간 분량의 영화에 원작의 그 방대한 에피소드를 다 담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박신우 감독은 원작의 내용을 과감하게 가지치기한 후 원작에 없는 요소를 삽입했습니다. ‘어른들의 사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원작에서 유키오와 료지의 부모들은 모두들 괴물들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스스럼없이 인륜을 저버리는 사람들입니다. 돈과 욕망이 인륜보다 앞서기 시작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드러낸 것이지요. 영화에서도 이들은 괴물로 나오지만, 인성을 지닌 괴물들입니다. 반성을 할 줄 아는 괴물들이지요. 영화에 삽입된 사건을 수사하는 한동수 형사(한석규)의 아들 이야기는 뜬금없기는 하지만, 수사가 끝난 14년 전의 사건을 가슴에 묻어두는 계기가 됩니다. 그 사건은 그의 (사건 해결의) 욕망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피를 흘리며 요한(고수)에게 사과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지향점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차이라면, 유미호(손예진)와 요한의 멜로입니다. 소설에서는 유미호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정확하게 지칭하고 있지 않습니다(언급하긴 하지만, 전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녀가 사랑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돈’일지도).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연인의 사랑이라기보다는 근친간의 사랑처럼 보입니다. 한동수 형사도 이야기하지요. 이들은 샴쌍둥이 같은 존재들이라고. 박신우 감독은 원작의 이야기에(유사) 가족 이야기를 덮었습니다(삐뚤게 본다면, 이 이야기는 14년간 기다려온 남매간의 사랑을 말리려는 부모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삐걱거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현재와 14년 전의 이야기를 오가는 구성이라 플래시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는 씬이 좀 모호합니다. 소설의 서사를 알지 못하면 이 부분은 좀 불친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미호와요한의성장에대한에피소드가없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바로는 이들은 사건이 벌어진 후 14년간 조용히 지내오다가, 갑작스런 계기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모습은 너무나 능숙해 보입니다. 원작에서도 료지가 살인을 벌이긴 하지만 완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영화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요한의 살인과 뒷정리는 거의 해결사 수준입니다. 똑똑하기 보다는 즉흥적으로 일을 벌이는 감성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멜로로 보이는 것이 가능했겠지요.  

 

 

유미호의 모습은 소설보다 더 애매합니다. 유미호의 웃음은 본심을 숨긴 억지웃음입니다. 물론 그녀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진짜 웃음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필로그에서 유미호의 자연스러운 웃음과 이전의 억지웃음을 구분할 수 있는 어떤 ‘차이’가 필요한데, 아쉽게도 그 구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요한에게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하는 장면조차, 저게 진심인지, 그냥 떠보는 것인지 좀 애매합니다. 

 

 

"난 말이지……. 태양 아래에서 산 적이 없어. (…)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 

 

하얀 밤. 유미호의 인생은 태양이 없는, 언제나 밤이지만 그녀는 스스로 빛을 만들어 지금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원작에서 그녀의 빛이 그녀의 삶을 포장해줄 ‘돈’이었다면, 영화에서 그 빛은 ‘요한’입니다. 사회적 함의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영화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문제로 좁혀놓은 것 같아 아쉽지만, 전 이 설정도 마음에 듭니다. 소설의 유키오는 여전히 하얀 밤을 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유미호는 어둠속을 걸을 것입니다. 

 

 

유미호 역할을 맡은 손예진 씨는 원작의 이미지와 거의 흡사합니다. 원작의 유키오가 우아함과 청순함 속에서 가끔 천박함을 드러냈다면, 영화의 유미호는 천박함 대신 슬픔을 드러냈습니다. 그녀가 무너지는 모습은 관객들이 그녀에게 심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어린 시절의 유미호(이지아) 역할을 맡은 주다영 양은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연기를 합니다. 특히 한동수 형사와의 눈치싸움은 소설에도 언급되어있지만, 영화만의 매력을 듬뿍 드러내고 있는 장면입니다. 

 

요한을 맡은 고수 씨 또한 냉혹함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 원작의 료지의 눈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어둠 그 자체였다면, 요한의 눈은 좀 더 깊은 슬픔과 회한의 감정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한동수 역할의 한석규씨는 (<쉬리>까지 포함한다면) 무려 일곱 번째 형사 역할을 맡았습니다. 본인도 매너리즘에 빠질 것을 우려해 거절할 생각이었으나, 박신우 감독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제는 좀 뻔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석규 씨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다른 성격의 영화가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냉철하면서도 감성 있는 연기로 유미호와요한, 두 아이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연기자는 한석규 씨 외에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소설을 읽으면서도 사사가키 준죠 형사의 대사를 읽으면 이상하게 한석규 씨 톤이 머릿속에 떠오를만큼 정말이지 딱 들어맞는 역할이었습니다. 

 

약통(임지규)은 원작의 소노무라 도모히코를 차용했습니다. 원래는 약통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상영 시간 때문에 삭제된 불운한 캐릭터입니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개연성 없는 캐릭터가 되었지요. 삭제된 장면은 삭제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미호와 결혼할 예정인 대기업 총수의 후계자인 차승조(박성웅)는 원작의 시노즈카 가즈나리, 시노즈카 야스하루, 다카미야 마코토를 합친 인물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돈이 많다는 점이겠지요. ㅡ.ㅡ;;; 

 

차승조의 딸 차영은(홍지희)은 원작의 시즈노카 미카와 후지무라 미야코를 합친 인물입니다. 덕분에 차영은의 행동은 소설에서 보다 더‘지독스러워’ 졌습니다.  

 

그 외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은 소설의 캐릭터를 합치거나 나눈 경우입니다.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에서 원작소설의 캐릭터를 비교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원작의 너비를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는 흥미로운 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열광할 작품은 아니지만, 그냥 넘길 작품 또한 아닙니다. 이제 32세인 신인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덧붙임: 

1. DVD는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감독, 배우들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고, 두 번째 디스크에는 다양한 서플먼트가 들어있습니다.  

 

2. 음성해설은 박신우 감독, 이창재 촬영감독, 손예진 씨, 고수 씨가 참여했습니다. 촬영에 대한 뒷얘기와 영화 제작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가지만, 서플먼트의 다큐멘터리와 대부분이 겹치는 내용입니다.  

 

3. <백야행>은 극장 상영 시에 디지털 버전과 필름 버전으로 상영했었는데, 디지털 버전이 필름 버전보다 10분 정도 깁니다. 이번에 발매된 DVD는 디지털 버전이 수록되었습니다.  

 

4. DVD 서플먼트 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작품은 박신우 감독의 단편 <미성년자 관람불가>입니다. 약 10분간의 짧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마치 『백야행』을 모티프로 한 작품 같습니다. 이 영화 때문에 박신우 감독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편을 찍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5.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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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5-0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의견을 참고하니 급 영화가 보고싶어졌습니다^^

Seong 2010-05-10 08:06   좋아요 0 | URL
최고의 칭찬이세요. 고맙습니다. ^.^;

novio 2010-05-07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봤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그 때의 감동과 충격은 개인적으로 상당했습니다. 이제 CD로 나왔나 보네요. 좋은 영화였습니다. 이 글 역시 좋네요^^

Seong 2010-05-10 08:07   좋아요 0 | URL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의외로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