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작가 - The Ghost Writ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는 주인이 없는 자동차와 파도에 밀려온 한 시체로 시작합니다. 죽은 사람은 영국의 수상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작가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새로운 대필 작가(이완 맥그리거)가 수상의 자서전을 대필합니다. 수상은 이라크 전쟁 포로들을 고문하는 것을 용인해, 그들 중 일부가 살해당한 혐의로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고, 대필 작가는 그의 자서전의 내용과 그의 전임자가 발견한 사실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는 전임자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타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수상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나가는 중, 그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유령 작가>는 늘 자신이 만드는 영화보다 더 큰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삶을 들추어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간단하게 굵직한 사건만 언급해보면, 그는 폴란드계 유태인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수용소에 부모와 함께 끌려갔습니다. 한창 아름다워야 할 유년기에 그는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종내에는 그의 어머니 또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배우로써 영화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연출에 관심을 두어 데뷔작 <물속의 칼>로 이름을 알립니다(이 영화는 배라는 한정된 공간과 단 세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영화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긴장감은 정말 뛰어납니다). 할리우드에 정착해 <악마의 씨>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지만, 배우이자 아내인 샤론 테이트가 연쇄 살인마 찰스 맨슨과 그의 패거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충격을 받습니다. <차이나타운>이라는 느와르 걸작을 만들지만, 이후에 그는 13살 미성년자 강간혐의로 미국에 추방당하고, 유배를 돌 듯,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다국적 자본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합니다. 추방과 동시에 미국 사법당국은 미성년 강간 처벌을 위해 그를 30여 년간 추적하지만, 그가 거주하는 국가에서 수사를 공조하지 않아 체포를 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다룬 <피아니스트>로 칸느와 아카데미에서도 수상을 해 어느 정도 화해의 제스처를 보여준 듯 했으나, 200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금상태입니다.    

영화 <유령 작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굳이 감독의 일화를 언급한 것은 그가 이번에 만든 영화가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령 작가의 정확한 표현은 ‘대필 작가’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유령 작가'라는 작명이 원래의 뜻보다 영화의 내용을 더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 존재성을 드러내지 않는(혹은 못하는) 유령 같은 존재. 로만 폴란스키 감독 역시 그의 이름은 있지만,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 삶을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홀로코스트의 경험과, 아내의 잔혹한 죽음, 미성년 강간 그리고 정착할 수 없는 유배의 삶. 하지만 영화가 있는 곳엔 언제나 존재감을 드러내는 감독. 존경할 수도 그렇다고 경멸할 수도 없는 이율배반적인 인물. 그는 언제나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그의 신작 <유령 작가>는 <물속의 칼>, <시고니 위버의 진실> 이후로 한정된 장소와 소수의 배우들만으로 만든 스릴러입니다. 그의 전작들을 보신 분들은 눈치 채셨겠지만,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스릴러는 (거의 언제나) 느릿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요즘의 스릴러처럼 정신없이 진행하고 관객의 뒤통수를 치기 보다는 이야기와 미스터리를 쌓아가는 고전적인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같은 진행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조바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 느릿한 진행이기 때문이지요. <유령작가>의 영화평을 보면 "이게 무슨 스릴러야", "정말 지루하다"는 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요즘 관객들은 괴롭힘을 당하기 원하지 유혹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로저 에버트 옹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지루함을 전적으로 관객의 잘못이라고도 미룰 수가 없습니다. <유령작가>는 미스터리의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최종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추리 소설의 클리쉐입니다. 이 간단한 트릭을 그 날고 기는 CIA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미스터리 장르로서는 힘이 빠지는 구성입니다. 물론 이렇게 평이한 내용을 최고의 배우들로 극을 이끌어가는 솜씨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정작 관심이 있었던 것은 '유령'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는 주인공 말고(그는 스스로를 ‘유령’이라 소개합니다) 수많은 유령들이 나옵니다. 주인공 유령은 아무런 힘도 없는 작가이지만, 다른 유령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주인공인 유령작가 같이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 진실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그 진실을 덮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령작가는 움직이고 행동했습니다. 물론 그의 행동은 그를 진짜 유령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유령들은 그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을 겁니다.  

<유령 작가>는 누가 진짜 유령인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령들을 어떻게 몰아낼지에 대한 영화입니다. 물론 이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영매가 되어 이들을 보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그의 커리어에 부끄럽지 않은 묵직한 '정치'선동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덧붙임: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늦게 우리에게 도착한 것 같습니다. 6월 2일이 아닌, 그 전 주에 도착했더라면, 선거 결과는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의 유령들은 정말 영악합니다(혹은 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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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백 사장과 선우가 할 말이 있다고 하길래... 여러모로 달콤 쌉사름한 결과지만,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여기까지는 괜찮아
     중요한 건 추락하는 게 아니라
     착륙하는 것이야
 

- <증오(La Haine)>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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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5 (13) 
        타이틀 The Orchid's Curse 
        각본 Barry Pullman 
        감독 Graeme Clifford 
        방영일 1990년 10월 27일
 

 

   
 

        <시즌 2 지난회 보기>
       
9. May the Giant Be with You
        10. Coma
        11. The Man Behind Glass       
        12. Laura's Secret Diary

 
   

 

 

 

1. 이야기  

데일은 방에서 오드리의 쪽지를 발견하고 오드리가 ‘애꾸눈 잭’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안다. 데일과 해리는 인질범이 요구한 약속 장소로 나가는 대신 애꾸눈 잭으로 가서 오드리를 구해낸다.  

다나는 해롤드가 가지고 있는 로라의 일기장을 훔치려다 실패한다. 다나는 매디를 끌어들여 자신이 해롤드의 관심을 끄는 사이에 로라의 일기장을 훔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하고, 해롤드는 배신감에 자해를 한다.  

순회 법정에서는 리랜드 파머의 보석이 결정되고, 리오 존슨 또한 혐의가 분명치 않고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판단되어 재판을 무기한 연기한다.  

일본인 사업가 토지무라가 벤자민을 찾아와 유령숲 개발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벤자민 역시 그 제안을 고려한다.  

 











 

 

2. ABC  

드라마를 보면, 이번 회는 <트윈 픽스> 시리즈 내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로라 파머의 부재다.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이 드러나기까지, 드라마는 직간접적으로 로라 파머를 언급함으로써 드라마의 동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번 회에서는 로라 파머가 빠져 있다. 드라마는 오드리와 해롤드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으며 서브플롯 또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빗과 마크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트윈 픽스라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는 듯했다. 로라 파머는 그 자신이 마을을 규정하는 아우라가 됐으며, <트윈 픽스>는 로라 파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물론 ABC의 간섭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내가 바로 마을이다!" 이 대사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트윈 픽스>의 원래 의도를 고려해보면 의미심장하다.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의 실마리조차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경험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ABC 방송국 내에서도 조급증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데이빗과 마크에게 범인을 빨리 드러내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했고, 결국 데이빗과 마크가 <트윈 픽스> 시리즈를 떠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세한 사항은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의 실체가 드러날 때로 미룬다.  

 

 

3. 그레임 클리포드 (Graeme Clifford)  

그레임 클리포드는 편집기사로 경력을 시작해 감독이 되었다.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를 찍었는데, 그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여배우 프랜시스>와 <마지막 대부(The Last Don)>인데, 아카데미와 에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그는 인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주어진 서사를 꾸려나가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데, 감독을 맡은 이번 회에서도 그런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4. 해롤드 스미스  

다나는 로라의 일기장을 훔치고 집밖에서 해롤드에게 이야기한다. "나랑 같이 나가요. 어서요. 뭘 그렇게 무서워하고 있어요?" 해롤드는 두려워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만 곧 쓰러지고 만다. 햇볕을 쬐지 못하는, 알비니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스크립트에는 그 이유가 희미하게 설명되어 있으나, 드라마에서는 그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삭제된 대사는 다음과 같다.  

해롤드: 내...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갔어요.
다나: 어디를요? 무슨 말이에요?
   



 

해롤드가 얘기하는 것은 ‘악(惡)’이다. 일전에 해리가 데일에게 설명했듯이, 이곳 트윈 픽스의 숲에는 악이 만연해있다. 하지만 해롤드는 악은 숲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 전체에 걸쳐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집밖을 나서지 못하고 집 안에서 난초와 같이 지낸다. 그렇기에 로라가 해롤드와 가까이 지네고, 그녀의 일기장을 맡긴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 순수한 공간이야말로, 자신의 이야기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에 악이 존재해요."

"내가 조언 하나 하는데, 숲을 주시하게나."  

 

로라와 해롤드의 이야기는 극장판 <트윈 픽스>에서도 언급된다.  



 

 

5. 유령숲 사업  

벤자민 혼이 혼신의 힘을 다해 개발하려고 하는 유령숲 프로젝트는 처음의 계획보다 굉장히 멀리 나아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 노르웨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거의 계약할 뻔 했으나, 딸 오드리의 방해로 실패했고, 동생 벤자민 혼의 도움으로 아이슬란드 투자자들의 계약을 이끌어낸다. 한편 유령숲 개발에 방해가 되는 패커드 제재소를 없애기 위해서 캐서린 마르텔과 음모를 꾸미는 듯하면서, 조시 패커드와도 모종의 음모를 꾸민다. 그 결과로 제재소는 불에 탔고, 조시 패커드는 보험금을 챙기고, 캐서린 마르텔은 실종됐다. 이렇게 여러 상황이 겹친 상황에서 일본인 사업가 토지무라가 등장한다.   

 

토지무라는 유령숲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벤자민에게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이미 많은 것을 얻었지만, 벤자민은 탐욕으로 이 거절을 제안하지 못한다. 토지무라의 등장은 또 다른 미스터리를 유발한다.  

 

 

6. 로라의 일기  

다나가 해롤드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은 <트윈 픽스> 시즌 2가 시작하기 전 출간된 『트윈픽스 로라의 일기(The Secret Diary of Laura Palmer)』에 실린 내용이다. 1985년 10월 18일, 다나와 로라가 13살일 때 경험했던 첫사랑의 짜릿한 내용을 이번엔 다나의 기억으로 기술하고 있다.  

음... 내가 13살, 아니 어쩌면 14살 때 이야기에요. 나와 로라는 몸에 꽉 끼는 미니스커트를 입었어요. 너무나 꽉 꼈지만, 로라는 나보고 그걸 입으라고 했죠. 그리고 우리는 로드하우스에 가서 남자 아이들을 만났어요. 그들의 이름은 조시, 릭, 팀이었죠. 스무 살 정도 됐을까. 그들은 우리에게 잘해줬고 우리를 성인으로 대해줬어요. 릭은 우리에게 나이를 묻지 않았고, 로라는 대충 얼버무렸어요.
숲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시냇물은 어슴푸레 어두운 듯 보였어요. 남자들은 모닥불을 피웠죠. 난 팀이 제일 맘에 들었어요. 그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과묵했거든요.
릭이 보드카를 가지고 오더니 로라가 마시기 시작했어요. 난 로라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줄 그 때 처음 알았어요. 로라는 내게 술병을 건네줬고 난 한 모금 마셨어요.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로라는 남자들 주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면서. 릭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팀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로라를 바라보기만 했어요. 그게 날 미치게 했죠.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우리 다 벗고 물에 들어가요."
우린 옷을 벗었어요. 남자 아이들은 우릴 쳐다보고 있었죠. 물은 정말로 따듯했어요. 난 물 속에서 그 아이들의 하얀 다리를 볼 수 있었어요. 로라가 조시와 릭하고 키스를 하기 시작하자, 난 어찌할 줄을 몰랐어요. 그래서 난 그냥 수영을 했죠. 내 생각엔 난 아마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죠. 그때 팀이 내게 다가왔어요. 그는 내게 키스했고, 날 애무하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들은 끝까지 우리에게 잘해줬어요. 우리를 놀리거나 깔보지 않았죠. 그리고 작별인사를 할 때, 팀은 내 손에 키스를 해주었고, 우린 작별의 입맞춤을 했어요.
난 아직도 그 때의 입맞춤을 느껴요. 그의 입술은 따듯하고 달콤했죠. 내 심장은 거칠게 뛰고 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요. 그냥 키스뿐이었어요.
그 이후로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어요. 그게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진 때였어요. 하지만 로라는... 그만할게요. 미안해요.
   

 

『로라의 일기』에서는 이 부분이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해 마지막 부분만 옮긴다.  

P.S: 오늘 밤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기분이 달라지는 것 같아. 남자들의 나에 대한 태도도 매번 조금씩 거칠어져가는 듯한 느낌이야. 나 역시 더 대담하고 섹시해져서 나와 접촉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들에게 물어보기도 해.
그리고 내가 그들과 접촉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말하지. 어째서 변해 가는지 알 수가 없어... 일어난 그대로 그 자체가 좋을 뿐인데. 하지만 머릿속에서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그들이 실제보다 더 심한 짓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돼버려. 그 편이 훨씬 기분이 좋아지니까 말이야. 그들 쪽은 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로라의 일기』는 데이빗 린치의 딸이자 영화감독인 제니퍼 린치(Jennifer Chambers Lynch)가 썼으며, 몇 안 되는 ‘정식 <트윈 픽스> 관련 상품’ 중 하나다. 로라가 자신의 일기장에서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고, 1984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도서출판 대성에서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됐으나, 등장인물들의 표기로 보아 일역본을 중역한 것 같은 것으로 보인다. 제니퍼 린치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Boxing Helena)>를 감독했고, 이 영화에는 셔릴린 펜이 주연으로 출연한다.  

 

 

7. 기억할만한 지나침  

 

바비: 이건 완전히 사람 잡겠어, 핑클. 리오를 죽이면 안 된다고 내가 얘기 했잖아요!
핑클: 보험 회사는 환자 상태에 맞게 정확하게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당신과 내 몫을 제하고 나면, 지금 이것 아니면 A급 휠체어 밖에 살 수 없어요.
  

바비는 리오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온갖 지저분한 짓을 한다. 바비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셜리는 순회 법정에서 남편 리오가 감옥 대신에 집에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한다. 하지만 이 기쁨이 악몽이 될 줄은 그녀도 바비도 모를 것이다.  

 

 

퇴원한 네이딘은 완전히 18살에 머물러있다. 그리고 엄청난 아드레날린의 분출로 그녀의 성격은 더할 나위 없이 낙천적이고, 힘 또한 냉장고 문을 뜯어낼 정도로 엄청나졌다. 그녀의 퇴행은 빅 에드와 노마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  

 

 

테스트 결과 앤디는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에 기뻐한다. 루시의 아기가 자신의 아이일 확률이 생긴 것이다. 기쁜 마음에 메모에 쓰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는데, 전화를 받은 곳인 Adams Abortion Clinic이다. Abortion Clinic에서는 임신 중절 수술을 하지만, 미숙아나 조산아들을 치료하기도 한다. 루시는 친언니의 출산 때문에 병원에 갔지만, 앤디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데일과 헤일이 오드리를 비밀리에 구출하는 행위는 엄연히 범법행위에 해당한다. 원래대로라면 절차를 통해 캐나다 경찰과 협력했어야 하지만, 사태의 급박성으로 비밀리에 진행했다. 이 사건은 시즌 중반부에 흘러 문제가 된다.  

 

 

8.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트윈픽스 로라의 일기』 제니퍼 린치, 이명희 옮김, 도서출판 대성
- 『TWIN PEAKS #2.005』 스크립트, 2nd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Lynch/Frost Productions, CIBY2000, New Line Cinema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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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5월 4주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다시 개봉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제 기억으로 가장 유명(혹은 요란)했던 재개봉은 <양들의 침묵>이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녀 배우 주연상 등 알짜배기를 독식해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수입사에서 다시 재개봉한 경우입니다. 두 번째로는 고별 로드쇼가 있습니다. 대한극장이 단관에서 멀티플렉스로 바뀔 때, 그리고 최근에는 중앙 씨네마가 고별 로드쇼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2010년 5월과 6월엔 유난히 묵은 영화들이 재개봉했거나 상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오래된 프린트로 다시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최신)의 기술력으로 영화를 복원한 경우입니다. 이벤트성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워낙에 뛰어난 작품들이라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이번 주에는 새로 복원된 옛 영화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거의 40여년 만에 재개봉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이미 1997년에 새로이 복원을 한 적이 있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이번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안으로 디지털 복원을 한 <대부>는 정말 새로운 영화입니다. 빛과 어둠을 나타낸 암부 표현은 뛰어나며, 원래의 색감을 복원한 화면은 정말이지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새로이 복원된 화면 안에서 우리는 돈 비토 콜레오네의 냉정하고도 인자한 모습, 가업을 물려받아 점점 냉혈한이 되어가는 마이클의 모습을 보며 전율을 느낍니다. TV와 DVD는 이 새로 복원된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능하면 극장, 그것도 디지털 영사를 하는 곳에서 이 영화를 감상하기를 바랍니다.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 <하녀>가 재개봉한 것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제작한 미로비전의 의지 때문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어떤 의미에서건) 이미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흥행도 뒤따랐습니다. 미로비전은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재개봉하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의도는 심히 불순하지만, 큰 스크린에서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2층 가옥에서 벌어지는 치정극은 가히 숨을 막히게 합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가 단조롭다고 느끼셨다면,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50년 전 영화라고 무시하시지 마시길. 영화를 보다 소리를 지를지 모릅니다.  

 

     

한 때 주성치는 골방의 제왕으로 불렸습니다. 비디오 (대여) 산업이 최전성기를 찍고 있을 때, 유치하고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고 완성도 떨어지는 코미디만 찍어대는 주성치는 불경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완성도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참으로 민망했지요. 게다가 거의 카피에 가까운 인용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지요. 그런 리즈 시절의 주성치가 한 단계 점핑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이번에 개봉하는 두 편의 서유기 시리즈,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입니다. 이 영화에는 주성치 사단으로 불리는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총 출동합니다. 영화의 설정과 캐릭터는 『서유기』에서 차용했으나, 그 내용은 주성치의 영화답게 산으로 갑니다.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웃음과 울음, 재미와 감동, 액션과 멜로의 영역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합니다. “뽀로뽀로미(般若波羅蜜)”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 손오공의 애절한 선택에 기어이 눈물을 떨어뜨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의 설정과 대사가 난무하면서 패러디 영화에 머무는 것 같지만, 결국엔 패러디를 뛰어 넘어 그 자체의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 주성치라는 브랜드를 확립시킨 의미심장한 영화입니다. 만들어진지 15년이 지났지만, 웃음과 눈물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영 그렇다할 신작이 없는 요즈음, 이번 주에는 옛 영화들로 달래보는 게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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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3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싯적 주성치의 저 영화를 눈물을 머금고 보았습니다^^; 가끔 케이블 티비에서도 하던데 말이죠.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Seong 2010-06-01 07:4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골방의 제왕이었죠. 병맛의 일인자이기도 하고. 가장 최근의 병맛으로는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아니었을까... ^.^;

Forgettable. 2010-05-3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주성치 영화 재개봉!! ㅠㅠ 보러가고 싶네요! 어이쿠-
왜 이제서야 ㅠ

Seong 2010-06-01 07:50   좋아요 0 | URL
잠시 들러 보시는 것도..^.^;
잘 지내시죠?

카스피 2010-05-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광보합과 선려기연은 알겠는데 서유쌍기는 무엇인가요? 시리즈 3편인가요?

Seong 2010-06-01 07:53   좋아요 0 | URL
<서유쌍기>라는 이름으로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을 동시 개봉하는 성치폐인 영화제(?)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간 씨너스 이수에서 <월광보합>, <선리기연>을 하루 1회씩, 총 2회 상영합니다. ^.^;
 
페어러브
신연식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버즈픽쳐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는 파란 하늘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하늘. 꿈꾸는 듯 흘러가는 하얀 구름. 파란 하늘은 이내 먹구름이 끼더니 빗방울을 쏟아냅니다. 천변만변하는 하늘아래 매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나이든 사내의 모습. 이런 어두운 하늘에 노을 같은 불꽃이 황홀하게 일어나면서 영화의 타이틀이 뜹니다. <페어러브>.  

 

카메라 수리공인 형만(안성기)은 친한 친구 기혁에게 사기를 당해 조그마한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끊겼던 기혁에게 연락이 오고, 형만은 기혁을 찾아갑니다. 간암으로 투병하고 있던 기혁은 형만에게 자기 딸 남은(이하나)을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애증이 뒤섞인 친구의 부탁으로 형만은 남은을 찾아가고,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ㄴ’자가 붙으면 보통의 삶은 안정적이 됩니다. 뭐 연륜이나 경험이 쌓여서 그렇다기보다는, 20대 때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세상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죠.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결과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길이 아니면서도 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안정감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편입합니다. 안정감을 보장하는 직업은 우리의 전부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관성의 법칙에 몸을 맡기며, 그렇게 삽니다. 신연식 감독의 <페어러브>는 바로 그 굳어진 기성세대들을 향한 이야기입니다.  

형만은 작은 작업대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형이 집에 들어와 같이 살자고 해도, 그는 자신의 작업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래된 LP와 턴테이블, 그리고 수동 카메라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멈춰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형만은 그렇게 수십 년간 고립되어 살아왔고, 그에게 있어 작업실은 형만 자신입니다.   



 

그런 형만에게 남은은 마치 유령 같이 등장합니다. 남은의 첫 등장은 형만이 찍은 사진의 피사체로 등장하고, 두 번째는 울음소리로, 세 번째는 스카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로 등장합니다. 전혀 다른 세대의 애틋한 만남은 마치 현실이 아닌 꿈 같이 보입니다. 그렇기에 형만도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작업실에 다른 사람을 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형만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지만 끊임없이 반문하고 회의합니다. 그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릅니다. 상대가 친구의 '딸'이기 때문이죠. 남은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형만에 대한 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냅니다. 하지만, 형만은 다릅니다. 형만에겐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하찮아 보일지라도) 지금껏 쌓아온 평판 혹은 나잇값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형만이 사랑에 빠지기 위해선 일단 자기 자신부터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너랑 나랑 같이 있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지.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리고 그 후엔 그의 주변사람들의 분노와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실이냐? / 야, 이 새끼야! 이건 아니지. / 늘그막에 연애하면서 유난은..." 그리고 마지막엔 남은마저 설득해야 합니다. "이젠 아저씨 말고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영화에서 그들의 사랑은 우리가 해왔고 봐왔던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처한 상황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들(이라기 보단 형만)은 사랑 말고 윤리적인 판단까지 고려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사랑입니다. 특별한 것 없는 일반적인 사랑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랑(Fair Love)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연인이 되면서, 남은과 형만은 자주 부딪힙니다. 남은은 형만에게 "작가가 되는 게 어때요?”"라며 묻지만, 형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합니다. 형만의 나이는 50이고 이미 무언가를 더 시작할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죠. 형만은 오히려 남은에게 "너도 아차, 아차 세 번만 하면 내 나이 돼. 그러니 어서 독립할 생각을 해야지"라며 잔소리를 합니다. 이들은 서로 처한 상황에 맞게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은이 형만에게 작가가 되라고 하는 것은, 사진 수리공이라는 직업이 창피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형만과 사랑을 시작하면서 그의 작업실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형만은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한 인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즐기고 같이 공유해야 하지만, 형만의 완고한 세계는 그녀가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20대입니다. 남은의 20대는 미숙하고 불안하지만, 가능성이 열려있는 20대입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닌, 과정의 동력이 분출하는 시기죠. 모든 것이 가능한 그 때, 형만은 그녀에게 따분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빠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오빠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오빠는 작업대 유리창 밖으로 안 나와요. 오빠가 그 작업대에서 나오면 밖으로 나오면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길 줄 알았어요. 근데 항상 외로워요. 옆에 있어도 외로워요."

결국 남은은 형만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내가 나이를 더 먹고 무뎌지거나 감당할 수 있을 때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그때서야 형만은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후회합니다. 사랑 앞에서 평등한 존재인데, 조금 더 인생을 겪었다는 이유로 남은에게 함부로 대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쏟습니다. 이별의 아픔은 그의 세계에 처음으로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형만은 남은에 대해,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의 인생과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검진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는 형만에게 남은이 찾아옵니다. 물론 이 장면이 실제인지, 형만의 꿈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만은 자신의 작업대를 벗어나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는 것. 물론 두렵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신연식 감독의 말대로 "뭐가 됐건 50대 50이니까" 형만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며칠 잠을 못 잤어요-
어디선가 남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정신없이 밤을 새고 과제물 제출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커튼 위로 춤을 추는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오빠 버릇 있잖아요? 얼굴 비비는 거. 너무너무 피곤할 때 하는 건지 그때 알았어요. 너무 몰랐어요, 오빠를."
나는 남은이를 보고 있지 않아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말하는지 환히 보이는 것 같았다.
"오빠가 평생 안 변할 수도 있고, 내가 변할 수도 있고, 내가 무뎌질 수도 있고, 오빠가 변할 수도 있고. 어차피 어떻게 살아도 백 프로는 아니니까."
커튼 위로 노을이 붉게 타올랐다.
"매 순간 매순간 어떤 면으로는 오십 대 오십이니까. 우리 다시 시작해요."
남은이 눈동자와 같은 노란 노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덧붙임:  

1. 이번에 발매한 DVD에는 본편만 들어있습니다. 게다가 재생 버튼을 누르면 한글 자막이 나와 일일이 Set up에서 자막을 조절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했으면 조금 더 나은 사양으로 발매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신연식 감독님의 다음 영화의 성공을 기대합니다!   





 









 

2. 마지막 인용은 소설 『페어러브』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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