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특공대 - The A-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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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로 돌아온 양키 영웅들의 구라 액션 향연. 본 시리즈의 피로를 여기서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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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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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회화는 감정이다. 아니, 감정의 발산을 캔버스라는 틀 안에 가두어 놓은 것이다. 화가가 누구건, 어떤 화풍이건 간에 우리는 그림을 보는 순간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머리로 하는 회화도 존재하고, 권위를 조롱하는 회화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회화는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울리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붓과 물감을 통해 투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일상과 소재를 향해 자신을 투영시키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음악 또한 감정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리 중에 화음을 발견하고, 그 화음을 조화시켜 음악을 만들어낸다. 회화와 달리 음악은 순간적이다. 우리는 음악을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다. 시간 속에 흐르는 음률과 화음을 느낄 뿐이다. 음악엔 실체는 없지만, 연주되고 흐르는 순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 이유는 회화와 마찬가지로, 작곡가와 연주가가 음률과 화음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 또한 예술이다.  

눈으로 보는 회화와 귀로 듣는 음악은, 감상 방법은 전혀 다르지만, 감정의 고양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장르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린 그림과 작곡한 음악이 있고, 질투의 감정, 공포, 새로움의 열망, 발상의 전환 등 여러 이유로 창작된 그림과 음악이 있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의 저자 노엘라는 같은 감정에서 출발한, 혹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그림과 회화를 서로 연결한다. 회화의 역사, 음악의 역사를 통해 지식으로만 예술을 접했던 나로선 꽤 신선한 접근이었다. 감정의 고양, 마음이 흔들리는 것. 그게 예술의 가치가 아닐까?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저자의 회화와 음악을 연결하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너무 강렬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음악과 미술의 인문학적 접근을 원했던 내게 에세이에 가까운 감정의 과잉은 초반에 책을 견디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과 소재를 향해 자신을 투영시키는 것이 예술이듯이 그녀 또한 책에 언급한 예술 작품들을 통해 자신을 강렬히 투영했다는 점에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예술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인문지식을 모두 동원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느냐 이고, 그런 감정의 고양을 설명하기 보다는 같이 느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예술을 우리의 일상으로, 우리의 보편적 감수성으로 내려놓았다. 설명은 부차문제다. 일단은 접근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썩 괜찮은 입문서이다. 항상 처음이 중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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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0-06-30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하튼 이렇게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예술의 창작이 그 창작하는 작가를 떠나 대중과 호흡하며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내요.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예술영역과 대중 사이의 다리를 놓아주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서평 잘봤습니다.

Seong 2010-07-01 08:28   좋아요 0 | URL
말씀 정말 공감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특히 클래식 음악 부분이 굉장히 닫힌 느낌이 들더라고요. 꼭 그렇게 계보와 주법, 지휘자의 성향 등을 읊을 줄 알아야 그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인지... 그래서 멀어지는 게 아닐런지 생각합니다. 예술에 이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업은 더 많이 이루어져야할 것 같아요. 인문학적 소양은 그 다음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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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단어는 이미 시효가 다 된 단어라 생각했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마르크스가 낡은 사상이 되었듯이, 87년에 선배들이 직선제를 일구었을 때, 아니 조금 더 써서 93년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미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독재의 반대로써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룬다는 것이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혹은 나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의정치로써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단일화에 실패한 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삼당합당을 통해 정권을 창출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조로 정권을 창출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조 없이 정권을 창출했다. 민주화 인사들이 대통령이 된 과정은 마치 우리들의 정치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했을 때, 나는 (혹은 우리는)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었다. 국민의 힘으로 이렇게 흐름을 만든 민주화의 결산.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나는 (혹은 우리는) 수수방관 했었다. 그에게 모든 짐을 지우게 하고, 훈수를 두고 때로는 쌍욕도 하면서 방관했었다. 그게 민주주의고 대의정치라 생각했었다. 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멋진 제도는 이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잘 작동할 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난 10년간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2010년에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은 시급하고 당면한 문제로 보인다. 우린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선거를 통한 대의정치라는 제도가 얼마나 허약하고 허술한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단지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인데, 지난 10년이 마치 일장춘몽인 것처럼 민주화 이전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가장 극명한 예로 북한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하나회 척결과 금융 실명제를 제하고) IMF사태가 있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이 땅의 이데올로기가 반공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을 우리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물론 그 깨달음은 너무 많은 국민들을 힘들게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종전상태가 아닌 휴전중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실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휴머니스트에서 발간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행동하는 지성들인 김상봉, 김종철, 김찬호, 도정일, 박명림, 박원순, 오연호, 우석훈, 정희진, 진중권, 한홍구, 홍성욱 저자들의 강연을 책으로 풀어 쓴 것이다. 이들 강연은 지금 이명박 정부를 진단하면서,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끌어낸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에서 짧은 시간에 세워졌는지를 설명하고(한홍구), 국가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며(박명림), 국가를 대표하는 국민의 구성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정희진), 토건사업과 강남과 아파트 평수에 따른 진보성과 보수성의 상관관계를 고찰하기도 한다(우석훈). 점점 더 지옥이 되어가는 학벌경쟁의 폐해와(김상봉), 생활속에 깊숙이 개입한 헌법의 중요성(김종철), 인터넷 개인 미디어로 정보의 독점을 끌어내리는 황홀한 현실(오연호),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여전히 토건에 매달려있는 이 대통령의 내면에 대한 성찰(진중권)도 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단 한 명의 대통령으로 이런 다양한 주제를, 그것도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린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민주주의의 완성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우리의 무관심이 지금 이 정부를 만들었다. 저자들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만이 이 불안한 제도를 보완해주는 것이다.  

저자들은 현 시대를 비판만하지 않고, 실천 방안까지 제안하고 있다. 그 실천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마스크를 쓰고 쇠파이프를 들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고 아기자기한 실천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어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엄숙하고 처절한 투쟁만을 접해왔었나. 저자들은 생활 속의 실천, 시민들의 연대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것이라 얘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변화다.  

지금 이 시기는 위기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렇게 후안무치한 정책을 펴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만큼 이 세상에 대해서, 민주주의라는 원론적인 문제에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우리를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회의하고 스스로 깨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며 계몽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세상이 병맛이니 글도 병맛이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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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0-06-1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말 백 번 동감합니다.
요즘 현정권의 실책들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제, 특히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제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또한, 현직 대통령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데, 역설적이고 자조적이지만, 저는 현직 대통령이 지금 이 시대의 대표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소통을 원하지도 않고, 밀어부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돈 되는 일이면 뭐든 서슴치 않고, 편법으로라도 이기면 된다고 믿고... 이 시대의 반면교사로 이만한 분이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시켜놓으면 더 할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엉엉

Seong 2010-06-12 07:38   좋아요 0 | URL
리트머스 시험지 같지 않을까요. 어쨌든 1000여일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좀 절망적이지만요.
민주주의의 굴레라 해야할지. 정치에 관심 없이 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요순시대는 정말 신화속의 국가인지... ㅠㅠ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2주

 

이번에 개봉하는 <H2: 어느 살인마의 가족 이야기>는 롭 좀비 감독의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의 속편입니다. 국내 포스터 제작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단 우측부에 표시된 <2009 충무로 국제 영화제 공식 상영작>이란 문구를 보고 거의 쓰러졌습니다. 이런 센스쟁이들 같으니라고. 이건 누가 보더라도 '칸 영화제'같아 보이는데!  

<할로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존 카펜터 감독의 원작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감독 롭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겹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4편의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 롭 좀비(Rob Zombie)는 1990년대 음악계의 한 구석을 차지한 화이트 좀비(White Zombie)의 리더입니다. 마를린 맨슨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음악은 온갖 금기시 되는 내용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신다면 청심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듣는 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이 세계를 회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롭 좀비가 감독 선언을 하고 만든 작품이 있으니 바로 <살인마 가족(House of 1000 Corpses)>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토브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젊은 남녀들이 어떤 외딴 집에 들르게 되는데, 그 집은 가족 전체가 살인마라는 이야기! 영화의 원제처럼 그들이 머무는 집에는 1000구가 넘는 시체들로 쌓여있고, 영화는 시간, 악마주의, 생체실험, 인육식사 등 온갖 금기시되는 것들이 흘러듭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유희에 끌려있다는 점입니다. 어떠한 쾌락도 없고 반성도 없이 영화는 그저 변태적 고문 쇼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정말 "내가 왜 이런 영화를 보고 있나"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라는 매체와 공포라는 장르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매체와 장르에 대한 자기반성? 그렇다고 보기에 이 영화는 너무 치기어리고, 야심이 가득하며, 게다가 자신의 취향까지 꾹꾹 눌러 담은 신인감독의 영화입니다. 살인마 가족이라는 구성과 각 캐릭터는 놀랍고 친근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아찔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2001년에 유니버셜에서 제작했으나,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로(롭 좀비의 말에 따르면 너무 끔찍하다는 이유로) 공개를 하지 않다가 감독 자신이 판권을 사서 캐나다 영화사 라이온스 게이트에 팔아 2003년에 개봉했습니다. 뮤지션 출신의 영화감독은 한 편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2005년에 <살인마 가족2(The Devil's Rejects)>를 내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끝까지 간 영화입니다. 영화는 전편의 이야기에서 바로 시작합니다. 경찰들이 이 가족의 존재를 알아채고 들이닥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찰들이 죽고, 살인마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베이비, 오티스, 스폴딩(딸, 아들, 아빠의 관계)만 도망치고 이들은 추격을 받게 됩니다. 이 도주 상황에서도 이들 가족은 끔찍한 유희를 벌이는데,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정말 견디기 힘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정말로 '악마도 거부'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쫓는 보안관 윌리엄 또한 이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는 공권력의 힘을 한껏 이용하여 전편에서 죽은 그의 형에 대한 복수를 합니다. 살인마 가족들은 결국 그에게 잡히고, 그는 가족들에게 그들이 행한 고문을 똑같이 합니다. 여기서부터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데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살인범을 처단한다는 통쾌함의 쾌감보다는 피해자 입장의 안타까움을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합니다. 물론 이런 주제는 크쥐시도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이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이미 다룬 주제이지만, 롭 좀비는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단순한 유희로 1000여명을 학살한 괴물들을 그와 똑같이 고문한다면, 우리는 그 자격이 있는 것인가? 아니,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괴물이 되는 것 아닐까? 롭 좀비 감독은 아주 지독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현란한 액션과 고문 사이에서.   

 

그래서일까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을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여러 감독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낙점된 것은 롭 좀비였습니다. 이 두 작품을 본 관객들은 도대체 롭 좀비가 어떻게 <할로윈>을 그려낼지 궁금했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은 사실 급조된 프로젝트입니다. 제작사측에서 할로윈에 개봉할 기획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존 카펜터가 바로 수락하고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영화를 만들었지요. <할로윈>은 '부기맨' 이야기와 보모 이야기를 결합한 싸이코패스 스릴러입니다. 살인마의 시점으로 그려낸 영화의 오프닝은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에 맞장 뜰만 하고,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를 최대한 활용한 마이클 마이어스의 등장과 제이미 리 커티스의 비명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업적은, 가면 쓴 살인마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이후 80년대 이후 슬래셔 영화에서 <할로윈>의 영향을 벗어난 영화가 얼마나 있는지 한 번 확인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보여주고, 진행을 한 후 조금씩 그 빈자리를 정보로 채워주지만, 그 정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짐작만 있고 설명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무력하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할로윈>뿐 아니라, 70년대에 등장한 많은 영화들, 윌리엄 프레드킨의 <엑소시스트>,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리처드 도너의 <오멘>,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 등의 영화들이 다 그렇습니다. 설명은 없고 불긴한 기운이 감돌며 엔딩은 거의가 배드엔딩이지요. 이런 분위기는 당시 베트남 전쟁의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사력을 다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지옥을 보여주었고, 그 지옥은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는 "아마도 지금이 종말에 가까운 순간"이라 느꼈으며, 그 당시를 반영한 이런 공포영화들은 선은 악을 이기지 못하고 혹은 이기더라도 그 악은 사라진 게 아니며, 진정한 구원은 자신만의 세계로 침전하는 것뿐이라는 탄식에 가까운 절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롭 좀비 감독이 리메이크한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은 원작에서 10여분에 그린 이야기를 한 시간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이 <할로윈> 리메이크의 강점이자 단점입니다. 강점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원작에서 설명을 하지 않았던 부분을 주의 깊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마이클 마이어스가 내면이 텅 빈 인물임을 알고 있지만,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합니다. 롭 좀비는 그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유령같이 보였던 마이클이 리메이크에서는 실체가 부여됩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무차별적인 살인이 리메이크에서는 어느 정도 개연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가족'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개연성이 반대로 영화의 공포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원작의 무차별적 살인은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리메이크에서는 그 공포가 한 발 비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안전장치 때문이지요. 하지만, 롭 좀비의 리메이크는 원작과 버금가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플래티넘 듄스가 어설프게 리메이크한 일련의 작품들보다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고전들의 리메이크보다, 훨씬 창의성 있는 리메이크입니다.  

흥미롭게도 롭 좀비 감독이 그리는 세계는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감독한 가짜 예고편 <나치 친위대의 늑대여자(Werewolf Women of the SS)>를 제외한다면) 모두 1970년대입니다. 그는 1970년대와 가족이라는 구성체에 대해 (스필버그와는 정반대의 접근으로) 끈질기게 질문합니다. 전작 <할로윈>에서는 어린 마이클 마이어스의 내면의 텅 빔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속편 에서는 바로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사 이 영화는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데, 마이클 마이어스의 이야기를 변질시켰다는 분노도 있는 반면, 새로운 접근이라는 찬사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관객의 자유입니다. 

  

*덧붙임: 

롭 좀비 감독의 가짜 예고편 <나치 친위대의 늑대여자>를 보시면 이 감독의 취향이 어떤지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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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좀비라는 그룹에서 음악하는 아저씨가 영화도 아주 자기가 하는 음악 분위기와 딱 맞춰서 만들더군요..^^

Seong 2010-06-10 08:26   좋아요 0 | URL
보기에 꽤 힘들더군요.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만큼의 정서적 고문이랄까. 파졸리니는 파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놓았지만, 롭 좀비는... 아직까지 뭐라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저 그런 시시한 영화들과는 달리 제 맘 속에 남더군요. 일라이 로스의 <호스텔>은 애교 수준인 것 같더군요. ㅠㅠ

Mephistopheles 2010-06-10 10:09   좋아요 0 | URL
음악이나 영화나 극단으로 열심히 달려나가는 아저씨니까..앞으로 어떤 사고(?)를 칠지...궁금합니다. 그리고 전 H20에서 마이클 마이어스의 집착의 대상인 누나(제이미 리 커티스)에거 도끼로 목이 댕강 날라가는 걸 보고 아 이제 프래디와 제이슨만 남는구나 했는데....부활하더군요...ㅋㅋ

Seong 2010-06-10 15:54   좋아요 0 | URL
식칼 하나로 호러계를 평정한 전설인데 그만한 예우는 갖춰야죠~ :)
고맙습니다.

카스피 2010-06-1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정말 대단한 영화 분석이네요^^ 그나저나 공포 영화라 여름에 보면 더위가 싹 달아나겠죠^^

Seong 2010-06-10 15:56   좋아요 0 | URL
문제는 식상한 공포영화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겠죠. 아마 90% 이상은 쓰레기가 확실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감식안이 철저하게 필요한 장르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6 (14)
        타이틀 Demons
        각본 Harley Peyton, Robert Engels 
        감독 Lesli Linka Glatter
        방영일 1990
년 11월 3일 
 

 

   
 

        <시즌 2 지난회 보기>
       
9. May the Giant Be with You
        10. Coma
        11. The Man Behind Glass 
        12. Laura's Secret Diary 
        13. The Orchid's Curse

 
   

 

 

1. 이야기  

다나와 매디는 제임스의 도움으로 해롤드의 집에서 빠져나온다. 해리는 오드리를 납치한 사람이 르노 형제의 맏형 장 르노임을 확인하고, 그가 데일에게 복수를 원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쿠퍼의 상관 고든 콜이 데일에게 윈덤 얼의 메시지를 전한다. 데일은 장 르노와 윈덤 얼 두 명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조시는 홍콩으로 떠나기 전, 벤자민에게 자신의 몫을 받아낸다. 해리는 조시를 막지만, 조시는 해리의 안전을 위해 떠난다.  

바비와 셜리는 출소한 리오를 집에 데려와 축하 파티를 연다. 하지만, 다달이 받는 보험금의 액수가 예상보다 적어 실망한다.  

외팔이 필립을 보안관보 호크가 데려온다. 필립은 마이크의 모습을 드러내고 살인자 밥이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 묵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2. 클라이맥스  

이번 6화부터 9화까지는 <트윈 픽스> 시리즈의 최대 절정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음산한 분위기만 드러났던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달리,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 밥의 실체가 드러나고 검거되는 이야기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가 갑작스레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이유는 빨리 범인을 드러내라는 ABC 방송국의 엄청난 압력 때문이었다. 이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한 데이빗 린치와 마크 프로스트는 결국 요구에 굴복하고 범인을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때문에 느긋하게 진행되던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달리 이제 이야기는 로라를 죽인 범인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은 데이빗과 마크가 <트윈 픽스> 시리즈를 떠나게 하는 결심을 하게 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데이빗 린치가 감독한 다음 에피소드에서 밝히기로 한다.  

 

  

3. 여성 감독  

레슬리 링카 글래터(Lesli Linka Glatter) 감독은 <트윈 픽스> 시리즈에 몇 안 되는 여성 감독이다. 이들이 감독을 맡은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결을 드러내는 섬세한 부분이 많이 있는데, 이번 회에서도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특히 아카데미로 대변되는) 영화계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보수성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이끌어가는 프로듀서나 감독을 여성이 맡는 것을 상당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된 여성 감독이 몇 명인지, <에일리언 2(Aliens)>에서 여성 프로듀서인 게일 앤 허드(Gale Anne Hurd)가 영화 촬영 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확인해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캐서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받았지만, 아카데미가 정말 ‘여성’ 감독에게 상을 수여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영화는 남성들의 취향에 가깝지, 여성을 대변한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수상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충분히 상을 받을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4. 선과 악  

제임스와 다나는 <트윈 픽스>에서 가장 강력한 민폐를 끼치는 커플들이다. 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해당하거나, 자살하거나, 혹은 살더라도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거나, 감옥에 가는 등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어쩌면 로라도 이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의 주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물론 제임스와 다나는 연인이자 오랜 친구인 로라 파머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서 스스로 고군분투 하는 것이지만, 이들의 개입은 끔찍한 결과만을 불러일으킨다. 로라의 비밀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 정신과 의사 자코비에게는 그가 사랑했던 로라를 현실 세계에 불러내 그의 마음을 상처 입혔다. 그리고 로라의 비밀 일기를 가지고 있는 해롤드에게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후 그를 배신하고 상처입혔다. 제임스와 다나의 의도는 선한 것이지만, 그들의 방법은 악하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악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트윈 픽스에 악이 존재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로라는 악을 피해 해롤드의 집으로 피하곤 했지만, 다나는 악을 이끌고 해롤드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의 안전한 가옥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5. 사랑에 목이 메다  

<트윈 픽스>의 정조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사랑이다. 드라마에는 얽히고설킨 커플들의 사랑 이야기가 수를 놓으며, 이들의 사랑은 애절해 보인다.  

제임스, 다나, 매디, 해롤드의 애정 관계는 제임스와 다나의 극적인 화해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때문에 매디와 해롤드는 상처를 입는다.  





 

데일과 오드리 역시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다. 데일은 끝까지 자신의 선을 지킨다. 데일과 오드리의 관계는 자매 혹은 부녀간의 사랑이다. 그 자리에 친부인 벤자민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바비와 셜리는 식물인간 상태인 리오를 앞에 두고 리오의 죄를 물으며, 그 앞에서 애정 행각을 벌인다. 리오는 이때부터 조금씩 (분노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보안관 해리는 떠나는 조시를 붙잡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조시는 머뭇거리며 떠난다. 그녀는 자신이 떠나지 않으면 해리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엔 정답이 없고, 윤리 또한 벗어나지만, 이와 같은 엇갈림은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사랑과 죽음. <트윈 픽스>는 선과 악,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공존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6. 협약 위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항상 선을 지키는 데일 쿠퍼는 트윈 픽스에 와서 협약을 두 번 위반했다. '애꾸눈 잭'은 캐나다에 있기 때문에 수사를 벌이려면, 캐나다 당국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했으나, 데일은 무시하고 바로 감행했다. 그는 그렇기에 오드리가 납치되어 위험에 빠졌다고 자책한다.  

그는 이런 자신의 행동으로 이미 사랑하는 한 사람을 잃었다. 그 사람은 전 파트너 윈덤 얼의 아내였고, 윈덤 얼은 지금 데일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장 르노 역시 자신의 동생 둘을 잃었다. 그 또한 데일 쿠퍼가 이곳에 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고 데일을 죽이려 한다. 데일은 로라를 죽인 살인범 밥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윈덤 얼과 장 르노의 복수도 대비해야한다.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데일의 협약 위반으로 생긴 일들이다. 선의를 가진 행동이 위험을 불러일으킨다.  

 

  

7. 불 (Fire)  

로라의 범행 현장에서 발견한 쪽지에는 “불이여, 나와 함께 걷자(Fire, Walk with me)"는 경구가 쓰여 있다. 불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도구로도 여겨지지만, 불행히도 <트윈 픽스>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고통, 분노, 욕망, 지옥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불은 로라의 죽음과 살인마 밥의 행적을 통해 더욱 더 미스터리하게 나타나고 있다.   



 

로라의 죽음뿐 아니라, 제재소 방화 사건에서도 불을 볼 수 있다. 이 방화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직업을 앗아갔으며, 가진 자들의 음모로 비롯됐다. <트윈 픽스>에서의 불은 죽음과 탐욕을 가리킨다. 그런 불과 함께 걷자는 밥의 제안은 상당히 섬뜩하게 들린다.  

   

8. 기억할만한 지나침  







윈덤 얼은 체스 말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조시와 벤자민 역시 자신들의 밀고 당기기를 체스로 표현했다. 체스는 게임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게임을 치루고 있다.  

 



리랜드 파머는 벤자민 혼의 사무실에서 박제된 동물의 털을 주머니에 넣는다. 아마 이번 회에서야 데이빗과 마크는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을 정했음이 분명하다.  

 



리랜드가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서 부르는 노래는 <왕과 나(King and I)>에 삽입된 「Getting to know you」다.  

 

피트 마르텔은 일본인 사업가 토지무라에게 끌린다. 그의 거칠고 냉소적인 말투에 어딘가 모르게 끌리기 때문이다. 토지무라의 정체는 다음 회에 나온다.  

 

 

9.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06』 스크립트, 4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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