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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인문학 산책 - EBS 이택광의 어휘로 본 영미문화
이택광 지음 / 난장이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영어는 이제 언어와 학문의 위치를 넘어서 계급을 구분하는 척도가 되어 왔다. 명문대의 물리적 압박은 학창 시절에만 괴로울 뿐이지만, 이 영어라는 괴물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따라다닌다. 몇 년 전에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고등학교 때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 친구는 그 당시에 조숙하게도 술과 여자를 일용할 양식으로 여기고, 등교는 무슨 건수가 있을 때만 했으며, (동기와 선배와의) 싸움과 (선생님들에게) 개갬을 구분 못하는 소위 '개고기' 같은 평판을 얻었었는데,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며 했던 말은 그때 나를 충격에 빠지게 했었다. "내가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면, 다른 것 안하고 영어만 하겠어." 그랬다. 영어는 공부와 인륜에 별 상관이 없어 보였던 그 친구조차도 무릎을 꿇게 한 위력적인 존재였다. 하물며 다른 사람은 말해 뭣하랴.  

영어는 어학(語學)이다. 말에 관한 학문. 여기 방점은 학문(學)이 아니라 말(語)에 있다. 말은 문화다. 그러니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배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학교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머리말에 다 언급되어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어를 문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험과 점수로 받아들인다. 중고등학교 때에 시험의 홍수에 빠져 지내고 졸업하면 토익과 토플이라는 괴물과 맞서야 한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점수의 줄서기이다. 토익을 예로 든다면, 솔직히 700점대와 900점대의 큰 실력 차이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는 895점과 905점의 차이를 분명히 둔다(실제로 나 자신이 받아본 점수다. 웃긴 일인데, 정말 차이가 존재한다).900점이 넘으면 930점대, 950점대, 970점대의 차이를 스스로 파악하고 '알아서 행동한다.' 이쯤 되면 시험 중독에 가까워지는데, 만점을 받기 전까지 시험을 끊기는 쉽지 않다. 이러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문화를 점수로 매기고 그 결과로 계급을 나누니, 무슨 어학에 낭만이 있겠는가. (북한의 영어가 민족해방을 위한 도구라 한다면) 남한의 영어는 잣대다. 자신의 몸값과 계급을 구분해주는 잔인한 잣대.  

내가 대학 시절 철학대신 영문학을 택한 이유는, (6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게 아깝기도 해서였지만) 영화 때문이었다. 당시 난 영화에 거의 빠져 지내다 싶어 했는데, 내게 관심이 있는 영화들이 대개가 영어권 영화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태국이나 베트남 혹은 이란이나 아이슬란드 영화에 빠졌었더라면, 내 전공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하여간 그랬다. LA와 뉴욕에서 만들어진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빠져 있다가, 남부 지방(대개가 텍사스)을 다룬 영화를 보고 그 독특한 억양에 놀랐었고, 흑인들의 음악 같은 말투에 경악을 했고, 후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의 지방색이 뚜렷한 영화들을 만나고 그 자잘한 문화와 역사에 대해 놀랐었다. 그러니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시험이 아닌 관심과 놀이, 더 나아가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런 낭만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힘든 상황이 되어있지만.  

이택광 교수의 『영단어 인문학 산책』은 (수험자의 입장에서는 아쉽겠지만,) 수능이나 토익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로 채워있다. 간혹 어근 풀이나 어원에 대한 탐구도 있지만, 영단어를 외우는 비법은 아니다. 제목에 ‘인문학’이라고 쓰여 있듯이, 이 책은 하나의 영단어를 들여다보며 그 단어가 만들어지고 쓰이기까지의 과정을 탐구하는 책이다. 경어 체를 사용하고, 분량도 6페이지를 넘지 않게 짧은 호흡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썼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고대와 중세를 넘어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고,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의 어원을 다룬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소에 쉽게 접하는 단어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단어를 둘러싼 문화 전반을 (가볍게) 아우르는 셈이다.  

이택광 교수는 이 책과 거의 동시에 출간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에서 인문좌파란 "학문을 입신양명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이라고 규정했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영단어 인문학 산책』은 어학좌파를 위한 실전 가이드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시험과 취업의 도구가 아닌 문화로써 만나는 영어! 이 당연한 사실이 이렇게 특별하게 외쳐진다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세상에 맞서 살아간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언어가 더 이상 시험과 취업이 아닌, 문화로 당당히 받아들여지기를 꿈꾸며, 한국의 빌 브라이슨을 꿈꾸는 이택광 교수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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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6-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이제 한국에서 영어는 신분 상승의 계단이 되었지요^^

Seong 2010-06-21 08:56   좋아요 0 | URL
부끄럽고 아쉬운 현상입니다... ㅠㅠ

LAYLA 2010-06-21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

Seong 2010-06-21 08:5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이택광 교수의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인문 ‘좌파’라니, 세상에. 이젠 학계에서도 서로 정치 성향의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 물론 그런 내용은 아니다. 이택광 교수는 남한에서 협소하게 쓰이는 ‘좌파’라는 용어를 원래의 의미대로 사용했을 뿐이다. 때문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 뻘그죽죽한 표지를 보고 지레 놀랄 필요는 없을 듯하다.  

(<경계도시 2> 리뷰 썼을 때도 밝혔던 이야기지만,) 난 철학과를 졸업했다. 점수에 맞춰서 지원한 게 아니라, 내 신념대로 지원한 것이기에 부끄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철학과를 지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였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원인을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그러니까 94년에서 95년 사이에 참 많은 대형 사고들이 일어났었다. 한강 대교가 부서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가스 송수관이 폭발하고, 신문사는 연일 끔찍한 사진을 사회면에 쏟아내던 그런 시절(그러고 보니 생애 가장 화끈한 민방위 훈련도 그 때 이루어졌던 것 같다). 입신양명을 위해 사춘기마저 저당 잡히고 숨 막히게 살아갔던 시절이었지만, 너도 나도 비판만 일삼을 뿐, 대안이나 원인에 대한 고찰은 거의 없었던 답답한 시절에 새로운 사유에 대한 필요성과 그 시원은 철학에서 탐구해야한다는 내 유아적 망상은 날 철학과로 이끌게 했다. 게다가 95년 철학가 질 들뢰즈의 투신자살은 나를 더욱 더 철학이라는 학문으로 이끌었다.  

내가 철학에서 바랐던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 혹은 거리두기였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원한 철학은 그 자체로서의 학문이 아닌, 도구로서의 철학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나 세속적인 사람이어서, 지금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며 끼니를 때우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내게 있어 실용적인 학문으로 여겼다. 하지만, 철학과의 분위기는 달랐다.  

내가 겪었던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상당히 지루했다. 철학의 역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칸트와 헤겔의 관념론은 거의 사람을 미치게 하는 학문들이었다. 나는 세기말을 살고 있는데, IMF를 겪어 세상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범람으로 세상은 점점 더 개인에게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교수님들은 18세기의 독일과 20세기의 박정희에서 벗어나지를 않으셨다. 세상과 담을 쌓고 숭고하고 순결한 인식론의 우주에서 유영하는 것. 이게 철학이었고 이게 학문이었나? 너무나 속상해서 입대하기 전, 연합 엠티에서 술기운에 “왜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이론만 배워야 하는 거냐?”고 헛소리했다가 집단 다구리를 당한 경험이 있다. 뱉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 경솔하게 떠들었던 게 아닌가 반성하지만, 그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군대 제대 후, 21세기의 첫 해에 난 철학을 버리고 영문학을 택했다. 살면서 더 이상의 철학은 나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돌고 돌아 2010년을 맞았다. 그동안 내 밥벌이가 되어준 영어는 점차 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고, 난 직장을 관두었다. 지옥이 되어가는 세상의 원인을 파악하길 원했던 내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해서였다. 세속적이란 표현은 때론 민만하고 때론 유치하지만, 영혼을 판다는 말은 아니다. 해방적이기도 하면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던 와중에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읽었다.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이 책이구나!  

이택광 교수는 ‘좌파’라는 단어를 남한에서 통용되는 소위 ‘빨갱이’라는 뜻이 아닌, 비판적 시각을 가진 존재로 봤다. 그가 바라보는 인문학에서의 우파는 학문을 취업, 승진 혹은 진학의 도구로 쓰는 존재들이다. 그가 언급한 인문좌파 역시 인문학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게 아닌,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는 사용가치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 마르크스를 시작으로 비평과 이론을 구분해내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현대 철학가들의 이론에 비추어서 바라본다. 벤야민의 만보자(flaneur)를 통해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새로운 주체를 읽어나가기도 하고, 랑시에르와 바디우를 끌어들여 2008년 촛불을 이끈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읽어나가기도 한다. 이택광 교수가 정의하는 ‘인문좌파’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거리를 두며 바라보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동하는 양심들을 말하고, ‘이론 가이드’란 그런 인문좌파 중 한명인 그가 꾸려내는 사상의 연속을 묶어낸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책이다. 사상의 흐름과 철학가들의 반론과 주장 그리고 저자의 진단 등 설렁설렁 읽는 대신 전투적으로 읽어야 겨우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들은풍월이 있어서 끝까지 손에 들고 읽을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끝까지 읽기는 읽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해 내 도구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는 못했더라도 읽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의 효용성에 대해 회의하던 사람들이나 인문학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던 사람들이라면, 그 때 인문학에 기대했고 다가갔던 첫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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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6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7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섹스 앤 더 시티 2 - Sex and the City 2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상대적으로 1편 보다 볼거리가 없다는, 다소 실망"이라는 평을 마음에 안고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근데 이게 왠걸, 1편보다 100배는 더 웃어버렸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드라마틱했던 1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결혼생활을 디테일하게, 그러나 시리즈의 매력답게 코믹하고 쿨하게 그려냈습니다.  

반평생을 그렇게 소원해마지 않던 빅과의 결혼 생활에서 sparkle을 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캐리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말도 못하게 지치는 샬롯 , 워킹 맘으로 직장과 가정에서 수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미란다, 그리고 갱년기로 치닷고 있는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고야 말겠다는 데 혼혈을 기울이는 일에서나 연애에서 당당하고 쿨한 사만사!  

이 네명의 여인네들은 전보다 더 늘은 주름을 갖고 돌아왔지만 그들의 주름을 능가하는 공감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자신합니다. 특히나 2편에서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왕언니 사만사로 인해 제아무리 극장에서 숨죽여 보는 소심맨이라 할지라도, 최소 한번은 손벽을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들뜬 가슴으로 신명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 내내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들던 멋들어진 음악들도 한 몫했고요.  

당장 답답한 마음을 풀, 수다를 떨을 마땅한 친구가 없다면 극장으로 향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네명의 여인들이 스파클링 와인처럼, 당신의 마음을 뻥 뚫리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특히나 아직 신혼 부부인 분들이라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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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7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8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06-1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못봤지만, 더 재미있을 거라 예상했답니다. 기혼자의 직감으로 말하자면, 서로의 살이 시큰둥해지면, 뭔가 신나는 꿍꿍이가 생기거든요(뭐래~)ㅋㅋㅋ
주말에 그녀의 옷장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Seong 2010-06-19 07:40   좋아요 0 | URL
예상외로 재미있었어요. 고맙습니다. :)

baboco79 2010-06-26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선 여자들이 모두 그녀들처럼 dress up하고 영화를 보러옵니다. 영화는 전혀 현실적이지않지만 여자들이 모두 '갈망'하는 삶이지요..특히 30대가 넘어간 저같은 싱글들에게는 더욱이..ㅎㅎ 하지만 남자들도 이 영화의 비현실성을 알아야합니다. 사만싸같은 여자 없습니다.ㅎㅎ

Seong 2010-06-27 22:01   좋아요 0 | URL
본국에서도 갈망하는 삶이라니... ㅠㅠ

2010-06-27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엽문2 - 葉問 2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루한 100분을 견디다 마지막 1분에 눈이 번쩍 뜨였다! 벌써부터 3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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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6-1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견자단이야 말로 현역 최고 무술 배우죠(실제 무술인이라고 합니다)

Seong 2010-06-19 07:41   좋아요 0 | URL
문제는 영화가 배우를 도저히 못 담아냈죠... ㅠㅠ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7 (15)
        타이틀 Lonely Souls
        각본 Mark Frost 
        감독 David Lynch
        방영일 1990
년 11월 10일 
 

 

   
 

        <시즌 2 지난회 보기>
       
9. May the Giant Be with You
        10. Coma
        11. The Man Behind Glass 
        12. Laura's Secret Diary 
        13. The Orchid's Curse 
        14. Demons

 
   

 

※ 시리즈 가장 큰 비밀이 밝혀지는 에피소드입니다. 혹여 나중에라도 감상을 원하시는 분들은 절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1. 이야기  

데일과 해리는 마이크를 데리고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서 밥을 찾지만, 소란만 일으키고 찾지 못한다. 해롤드 스미스가 로라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에 호크가 찾아가지만 해롤드는 자살하고 일기장은 찢어져 있다.  

매디는 사라와 리랜드에게 다음날 고향인 미줄라로 떠날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코마에서 깨어난 네이딘은 자신이 여전히 고등학생인줄 알고 있다.  

오드리는 아버지 벤자민에게 로라와의 관계를 실토받고 데일에게 알려준다. 해롤드의 집에서 발견한 로라의 일기장에 쓰인 문구와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서의 정황을 파악한 데일은 영장을 발부해 벤자민을 체포한다.  

통나무 여인에게 로드하우스에 가라는 말을 전해들은 데일은 로드하우스에서 거인의 환영을 본다. 바로 그 시각, 매디는 실체를 드러낸 밥에게 살해당한다.   

 













 

 

2. 밥 (BOB)

애초 이야기했듯이 데이빗 린치와 마크 프로스트는 로라 파머에 대한 이야기를 동력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놓으려고 했었다. 최소한 두 번째 시즌의 5번째 에피소드까지는 그들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었다.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생각지 못한 것이다.  

1990년대 문화 현상으로 불리는 <트윈 픽스>의 인기는 이제 데이빗과 마크의 통제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로라 파머라는 매력적인 장치는 이 시리즈를 매주 챙겨보는 시청자들이 꼭 알아야 할 문제가 되었고, ABC의 중역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압력을 매주 데이빗과 마크에게 행사하고 있었다. 

"누가 로라 파머를 죽였는가?

 

게다가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다. 데이빗은 잘 직조된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기 보다는, 항상 현장의 즉흥성에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해왔다. 그가 처음에 작업한 시나리오와 그 결과물인 영화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처럼 이야기의 재현보다는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런 그에게 매주 완성된 이야기로 정해진 시간 내에 드라마를 ‘납품’해야 하는 사실은 <트윈 픽스> 시리즈를 조금씩 멀어지게 했다. 한창 시즌 2를 준비해야 할 때에 그는 <광란의 사랑>을 만들었고, 시즌 2가 진행할 때는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줄리 크루즈와 함께 뮤지컬 공연까지 기획했었다. 게다가 계속되는 압력으로 그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시즌 2의 초반부에 그는 결국 밥의 실체를 드러냈다.   

 

데이빗은 이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는 이것을 "매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라 얘기했다. 원래의 시놉은 장 르노와 윈덤 얼, 그리고 밥이 시즌 2의 중반부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것으로 정했었는데, 밥의 등장으로 장 르노와 윈덤 얼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일 계획대로 했었다면, <트윈 픽스>는 현실의 위협과 초자연적인 공포가 뒤섞인, 지금보다 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3. 또 다른 살인  

문제는 과연 밥의 영혼이 씐 인물을 누구로 할 것인 지였다. 대부분의 시청자들과 심지어 드라마의 스태프들조차도 로라를 죽인 범인은 벤자민 혼이라 생각했었다. 그것은 당연한 추리다. 그는 이 마을에 사는 그 누구보다도 사악했으니까. 그리고 처음 시작된 아이디어도 ‘금발의 소녀가 지역 유지와의 스캔들로 살해당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했으니 이는 얼핏 당연하게 느껴진다. 드라마가 아무리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하더라도, <트윈 픽스>는 현실에 바탕을 둔 드라마지 <환상 특급>이 아니기 때문이었다(물론 지금은 그 계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데이빗과 마크는 범인을 벤자민, 자코비, 리랜드로 압축했다. 그리고 로라의 사촌인 매들린을 살해하는 장면을 찍기 전, 자코비를 탈락시키고 벤자민 역의 리차드 베이머와 리랜드 역의 레이 와이즈를 불러 촬영 준비를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데이빗은 의자에 앉아있는 레이에게 다가가 그 앞에 쭈그려 앉은 뒤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네, 레이. 자네가 살인자야.”    



 

레이 와이즈는 이번 에피소드를 찍기 전까지, 한 번도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밥의 실체가 드러나고서부터 그의 연기 톤이 달라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범인의 실체에 관한 사실은 데이빗 린치, 마크 프로스트, 레이 와이즈, 리차드 베이머만 알고 있었다. 때문에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까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밀 유지를 위해 매들린이 밥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한번은 벤자민 혼, 다른 한 번은 리랜드 파머, 마지막 한 번은 악령 밥, 이렇게 세 번을 찍었는데, 상대역인 쉐릴 리가 거의 죽을 고생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살해당한 로라 파머 역까지 맡았으니, 왠지 안쓰럽게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4. Cinematic Magic  

걸작으로 칭송받는 영화를 보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들어있어서 감동 혹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데이빗 린치의 작품에서도 이런 장면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로드하우스 장면도 그 중 하나다.  

로드하우스 장면은 스크립트에서는 짧게 묘사됐었다. 다나와 제임스가 해롤드 스미스에 대한 죽음을 언급하고 자리를 뜬 후에 데일과 해리, 통나무 여인이 로드하우스에 들어온다. 그리고 갑자기 데일은 거인의 환영을 본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살인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순히 내러티브의 진행을 간략하게 언급한 장면을 데이빗은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이것은 데이빗의 연출 때문이 아니라, 줄리 크루즈의 노래 때문이었다.   





 

줄리 크루즈가 노래를 부르자 그 자리에 앉아있던 다나 역의 라라 플린 보일이 울기 시작했고 그 분위기는 촬영장을 감쌌다. 데이빗은 이 장면을 매디의 죽음 뒤로 편집해서, 살아있는 자들의 미안함과 무력함 그리고 슬픔을 형상화했다. 이 로드하우스 장면은 극장판 <트윈 픽스>의 마지막 장면과 대구를 갖는다. 끔찍함과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데이빗 린치의 가슴시리는 장면이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줄리 크루즈가 부른 곡은 「Rockin' Baby Inside My Heart」와 「The World Spins」다. 두 곡 모두 데이빗 린치가 작사를 하고, 안젤로 바달라멘티가 작곡을 했다.  

 

  

5. 누락된 이야기들  

마크 프로스트가 쓴 스크립트에는 다양한 이전의 미스터리가 연계되는 이야기가 들어있으나, 데이빗이 감독한 에피소드에는 대부분 삭제되어 있거나 축약되어 있다. 마크 프로스트가 언급한 부분 중 완전히 삭제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범행 장소인 열차에서 발견한 노트는 해롤드 스미스의 집에서 발견된 로라 파머의 일기장에서 찢은 종이와 동일한 것으로 판명됐다. 범인은 로라를 죽이기 전에 일기장에 손을 댔고, 위협을 느낀 로라는 일기장을 해롤드에게 맡긴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크 역시 해롤드의 집에 가보지만, 이곳엔 밥이 왔던 흔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해롤드와 밥의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외팔이 필립 제랄드는 헤로인 중독이지만, 헤로인을 맞지 않으면, 마이크로 변한다. 문제는 오랜 시간 헤로인을 복용하지 않으면, 숙주인 마이크가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사 윌 헤이워드가 데일을 찾아와 필립의 상태를 설명해주지만, 밥을 잡기 위해 데일은 헤로인 투여를 막는다.  

피트 마르텔이 해리 보안관을 찾아와 조시가 떠난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같이 있던 동양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어긋나는 것을 발견한다. 피트는 그를 사촌으로 알고 있는 반면, 해리는 그를 비서로 알고 있다. 이 어긋난 진실은 조시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  

 

 

6. 기억할만한 지나침  







 

데이빗 린치는 의도적으로 매디를 로라의 사진과 함께 보이도록 했다. 매디는 이곳 트윈 픽스에서 로라 파머로 여겨졌다. 매디의 죽음은 로라의 죽음과 반복이며, 이는 첫 번째 살인인 테레사 뱅크스와 대구를 이룬다. 세 번의 살인이 발생했지만, 결국 로라가 세 번 죽은 것이다. 

 





 

사라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주온>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귀신 가야코를 연상시킨다. 그래서일까? 그레이스 자브라스키는 <주온>의 영어 버전인 <그루지>에 캐스팅되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기 전, 사라는 방에서 말(馬)의 환상을 보고 기절한다. 말은 여러 가지를 떠오르게 하는데, 에모리 베티스가 언급한 순결한 처녀인 유니콘을 연상하기도 하고, 로라가 어렸을 적 벤자민 혼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말을 떠오르게도 한다. 그 어떤 것을 연상하든 사라가 본 말은 로라가 연상되며, 결국 이 집에서 또 다른 순결한 처녀가 살해당할 것이란 강한 암시를 나타낸다. 그리고 시리즈의 거의 마지막 회에서 말(馬)은 다시 한 번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해 보는 이를 거의 패닉 상태로 몰고 간다.

 

 

7.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07』 스크립트, 3rd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Lynch/Frost Productions, CIBY2000, New Line Cinema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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