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 - 다이어트와 심리의 비밀에 관한 모든 것
캐런 R. 쾨닝 지음, 이유정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비만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불치병 같은 비만이 있고, 그저 음식이 좋아서 비만인 경우도 있다. 병이든 음식 사랑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만을 의지의 문제로 본다. 참으로 이상한 게, 담배와 술에는 그렇게도 인자한 사람들이 어째서 비만이나 대머리에는 적대적(혹은 비하)인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현대사회에서 비만은 자기 관리의 실패, 의지 부족, (좀 넓은 의미로서의) 루저(loser)로 여겨진다. 이 말은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리다. 분명 비만은 음식에 탐닉하는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걸린다. 하지만, 이 질문은 다르게 할 수 있다. 왜 비만인 사람들은 음식에 탐닉할 수밖에 없는가?  

심리 치료사인 캐런 R. 쾨닝은 이 문제를 ‘착하다’는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비만인 여자들은 대부분 착한 여자들이다. 여기서 ‘착하다’는 뜻은 ‘선하다’라는 뜻이 아닌 ‘친절하다’ 혹은 ‘잘 대하다’라는 뜻에 가깝다. 캐런 R. 쾨닝이 그동안 치료한 ‘착한 살찐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 맞춰서 자신의 삶을 운용한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자신의 남편과 친구가 바람이 나서 밀월여행을 간 것을 안 순간에도 집에 찾아온 친구를 웃으며 맞이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우선한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없는 힘들고 바쁜 상황에서 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은 음식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 몸은 데친 브로콜리나 연두부를 원하는 대신 달디 단 초콜릿이나 티라미슈 케이크를 원한다. 당분 섭취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몸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때문이다. 가족들 사이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나를 버리고 다른 이들의 고민과 요구를 하루 종일 짊어 맨 착한 여자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오직 먹을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먹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먹는 것만큼(그것도 인스턴트)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책의 제목인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는 친절하기 때문에 음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음식에 대한 의존은 그녀들의 순교자 같은 성격 때문인 것이다.  

어쩌면 비만에 대한 단순한 접근인 것 같기도 하지만, 비만에 대한 일반론적 접근이 아닌, 착한 성격과 여자라는 특별한 상황에 관한 책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편한 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비만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 인식과 그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거의 매 장(章) 반복되는 이야기들이라, 읽는데 좀 지루함을 느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저자가 밝혔듯이, 살을 빼기 위해선 자신의 성격을 개조해야하는데, 그것은 하루아침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배우듯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단련시켜야 하기 때문에,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것이라 생각한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아야 하는 것처럼, 살을 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성격을 바꾸는 것 또한 평생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캐런 R. 쾨닝은 비만인 착한 여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는 남을 그만 신경 쓰고, 음식에 의존하는 대신 자기 자신에 의존하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 같다. 시지프스의 돌처럼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요구를 들어주고 인내하는 반복되는 삶에서 지쳤던 당신이라면, 굴러 떨어지는 돌을 무시하고 그녀의 손을 잡기를 권한다. 세상에는 음식 말고도 의지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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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8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8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8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10 (18)
        타이틀 Dispute Between Brothers
        각본 Tricia Brock
        감독 Tina Rathborne
        방영일 1990
년 12월 8일 
 

 

1. 이야기  

로라 파머의 살인 사건이 종결되고 데일 쿠퍼는 트윈 픽스를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나 로라 파머 살인 사건의 용의자 수사와 오드리 혼의 구출을 위해 불법으로 캐나다 국경을 넘어간 사실이 발각되고, 데일은 직무를 정지 당한다.  

캐서린 마르텔은 해리 트루먼 보안관에게 자신이 살아 돌아왔음을 알리고, 그날 밤 조시 패커드가 상처를 입은 채로 해리를 찾아온다.  

데일은 트윈 픽스에서 브릭스 소령과 함께 낚시를 하며 밀린 휴가를 즐긴다. 브릭스 소령은 데일에게 하얀 오두막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숲에 강렬한 빛이 비추고 브릭스 소령이 사라진다.  













 

 

2. 패착  

로라 파머의 살인 사건이 해결됨으로 데일 쿠퍼는 더 이상 트윈 픽스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그 말은 더 이상 이 드라마를 이끌어갈 동력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빅 에드 헐리 - 노마 제닝스 - 행크 제닝스의 삼각관계와 벤자민 혼 - 캐서린 마르텔 - 조시 패커드의 쫓고 쫓기는 비즈니스 관계,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불길한 리오 존슨, 네이딘의 고등학교 생활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로라 파머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와 같이 진행된 이야기들이다. 수수께끼의 정답을 안 순간, 나머지 퍼즐은 관심을 잃기 마련이다. 결국 <트윈 픽스>를 이끌어가기 위해선, 데일 쿠퍼를 트윈 픽스에 머물게 해야 한다.   

문제는 이야기 운용에 있었다. 드라마를 새로 이끌어 가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회의 절반이 지난 이야기의 에필로그에 할애됐다. 쉼표가 아닌 마침표. 시청자의 입장에선 드라마가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파머 가족과 데일 쿠퍼에게 지나치게 할애했다.   



"해리, 난 정말로 이곳을 잊지 못할 거예요."

 

더 심각한 문제는 시나리오 작가들 조차도 이야기의 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 타이틀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생뚱맞은 “Dispute Between Brothers(형제들 간에 싸움)”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들은 트윈 픽스 시장 드웨인 밀포드와 신문사 사장 더기 밀포드를 가리킨다. 리랜드 파머의 장례식에서 아주 잠깐 언급한 이들 형제는 앞으로 드라마 운용에 있어서도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마크 프로스트와 데이빗 린치가 로라 파머의 살인범을 드러낸 이후에 대한 Plan B를 세우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것은 ABC TV의 살인적인 압력 때문에 결정한 사실이긴 하지만,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결정은 드라마를 패착으로 이끄는 결과를 만들었다.  

 "여기 왜 오셨는지 좀 생각해 보세요."

 

가장 큰 문제는 로라 파머의 살인범을 드러내고 난 후, 마크와 데이빗이 <트윈 픽스> 프로젝트에 관심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마크는 자신의 연출 데뷔작인 <스토리빌(Storyville)>을 준비하기 시작하고, 데이빗 린치는 안젤로 바달라멘티, 줄리 크루즈, 그리고 <트윈 픽스>와 <광란의 사랑>의 멤버들을 데리고 뮤지컬 <산업교향곡 1악장(Industrial Symphony No. 1: The Dream of the Brokenhearted)>을 공연했다. <트윈 픽스>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두 명의 관심이 시들해지기 시작하니, 이야기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되고, 결국 시리즈는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3. 아우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姬)>에서 신(神)들이 사라진 숲이 평범한 모습으로 바뀌었듯이, 밥의 정체가 드러난 후 <트윈 픽스>를 둘러 싼 특별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불길함과 불온함이 넘쳐났던 숲은 평범해 보이고, 긴장감이 넘쳐났던 마을의 분위기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트윈 픽스를 규정하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정장을 벗은 캐주얼 복장의 차림인 데일 쿠퍼의 모습은 규정할 수 없었던 그의 독특한 성격마저 희석되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더 이상 꿈과 티베트와 거인과 난쟁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트윈 픽스>를 통해 미스터리에는 질문과 대답만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라, 특별한 분위기까지 담겨 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4. DEA & FBI  

데일 쿠퍼가 협약을 어기고 국경을 넘은 사실은 다른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르노 형제의 마약 거래를 캐나다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착수하고 있었는데, 데일이 망쳐놓았다는 것이다(물론 장 르노와 캐나다 경찰이 짠 음모임이 밝혀진다). 게다가 장 르노는 사라지고, 그의 은신처에 있어야할 다량의 마약까지 사라진 상황이라, 특별 수사관 로저 하디는 이런 복잡한 문제로 트윈 픽스를 방문해 데일을 추궁한다.  

그는 조만간 DEA에서 이 사건을 수사할 것이라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FBI와 보안관(Sheriff)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DEA는 마약국을 의미한다. 향정신성 의약물에 대한 연방수사 및 해외수사까지 맡고 있으며 남미 쪽에서도 활동하는 '준군사조직'화된 팀도 있는걸 보면 기관의 명성이나 권위가 막강한 것을 알 수 있다.  

기왕 살펴보는 것, FBI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내란, 간첩, 태업이나 군대에 대한 방해 행위 등 국가안보에 관한 범죄
2) 몸값을 요구하는 등의 유괴죄
3) 은행 강도, 절도죄 및 은행 임직원의 횡령부정사건
4) 2개 주에 걸친 자동차 절도 및 강도 범죄
5) 연방공무원이 관련된 뇌물죄
6) 주를 넘나드는 도난품 운반 범죄
7) 수표위조 및 행사 범죄
8) 항공기 및 여객용 자동차에 대한 파괴 범죄
9) 중요 도망범죄자의 수사
10) 연방정부에 대한 사기범죄 및 민사사건
11) 저작권 등에 관한 범죄  

데일 쿠퍼가 트윈 픽스에 온 것은 4), 9) 항목 때문이고 로저 하디가 온 것은 데일 쿠퍼의 5) 혐의로 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각 기관끼리의 서열은 동등하지만, 수사권에 대한 알력싸움은 항상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트윈 픽스> 파일럿에서도 수사에 들어가기 전, 데일이 해리에게 먼저 한 말도, 수사권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보면 기선잡기란 항상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FBI가 왔을 때는 FBI에 책임이 있습니다."

"가끔 문제가 생기곤 하거든요."

 

 

5. 기억할만한 지나침  

 

특별 수사관 로저 하디의 등장은 그동안 <트윈 픽스>에 유색인종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함과 동시에 무언가 모를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백인들만 존재하는 판타지라는 관객들의 불만을 듣고 란도 칼리시안 역에 빌리 디 윌리엄스를 캐스팅한 것 같이 급조된 느낌이 든다.  

사실 데이빗 린치의 영화에서 유색인종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과 함께 백인들만 나오는 영화를 찍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 불만이 없다. 모든 감독들이 “위 아 더 월드”를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비전을 원한다.  

 

 

루시가 밴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확률을 반씩 지닌 딕 트레메인과 앤디 브레넌은 루시가 택하는 사람이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로 합의 한다.  

 

"난 내 직업윤리를 어길 수가 없었단다."



"윤리라고요? 난 엄마 딸이에요."
 

노마는 M. T. 웬츠가 자신의 식당에 대한 악평을 쓴 것을 보고 실의에 빠진다. 그녀는 어머니가 M. T. 웬츠임을 알고 분개한다. 비비안은 가족의 사랑보다는 자신의 직업 윤리를 우선해서 솔직하게 비평을 썼다고 밝히고 노마는 어머니를 쫓아낸다. 노마가 왜 어머니를 오랜만에 봤을 때 그렇게 꺼려했는지, 왜 모녀사이가 그렇게 어색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리오 존슨은 분명히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것이다. 문제는 언제 깨어날 것인 가다.  

 

 

6.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10』 스크립트, 6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잡학] 영화로 보는 미국의 경찰기관, 텅빈거리 님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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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독 사람 얼굴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특히 여배우들의 경우는 거의 최악입니다. 제 눈에는 다들 비슷하게 보여서 영화를 보다가 종종 사람을 놓쳐 이야기를 엉뚱하게 이해하곤 합니다. 거의 안면인식장애 수준이죠. 그래서 사람을 기억할 때는 어떤 특별한 분위기나 특징들로 인식을 하곤 합니다. 생김새는 다르더라도 그 사람의 특징을 구분하는 분위기는 개인마다 다르니까요. 곽지민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에서였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배우(의 연기)가 기억나지 않는, 영화의 테마가 지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얼 씨와 한여름 씨가 워낙에 강렬한 연기를 했기 때문에 묻힌 느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곽지민 씨는 이 영화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볼 때면, 영화에 이상한 긴장감이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 이 영화에 드리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로 그녀를 본 것은 드라마 <메리대구 공방전>에서였습니다. 황제슈퍼 사장님의 딸로 등장한 최비단.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춤바람에 빠진, 사랑에 굶주린 문제아. 드라마 초반, 황메리(이하나)와 강대구(지현우)의 포복절도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는 와중에서도 최비단이 등장하면 드라마는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코미디로 흐르던 드라마가 갑자기 자신의 장르를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 많지 않은 출연이지만, 그녀는 자신이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비중이 원래 계획보다 더 컸었더라면, 아마도 <메리대구 공방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제가 과장해서 쓴 말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시리즈 <다세포 소녀>를 보고 그런 생각을 철회했습니다. 그녀는 분명 작품을 장악하는 배우입니다.  

<다세포 소녀> 시리즈에서 그녀는 외눈박이의 동생인 두눈박이 역을 맡았습니다. 두눈박이는 겉모습은 여자지만, 남자입니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면 성전환수술을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무쓸모 고등학교의 초거대재벌 F4의 멤버인 명진(윤성훈)은 사랑을 느낍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애써 무시하려하지만, 두눈박이에게 끌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B급 달궁의 원작에서 차용한 명진과 두눈박이의 이야기는 이재용 감독의 영화에서도 쓰였습니다. 하지만 원작과 영화는 인물들의 캐리커처를 다룰 뿐, 깊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원작은 순정변태명랑만화이고, 영화 역시 그 분위기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김주호 감독이 초반에 연출한 에피소드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가벼운 터치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두눈박이, 그러니까 곽지민 씨가 등장하자마자 드라마는 갑자기 진지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대책 없던 원작이 갑자기 성과 계급을 다루는 진지한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곽지민이라는 배우의 역할이 큽니다. 그녀는 두눈박이라는 인물을 가볍게 보지 않았습니다. 두눈박이가 형 외눈박이에게 하는 말을 원작과 비교해보면 다가오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눈박이의 힘겨운 삶을 육화해서 보여줍니다. 그녀의 울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과 그와는 반대로 야무지게 앙다문 입은 지금까지 한눈팔며 드라마를 보던 저를 반듯하게 앉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녀가 연기하는 두눈박이의 모습을 보면, 두눈박이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는 그 모든 것에 냉담하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숨기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명진의 모습에 설렘을 느끼기도, 사랑을 느끼기도, 그리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두눈박이의 입체성은 온전히 곽지민이라는 배우의 연기로 표현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은 가능성에 머물고 있는 배우지만, 저는 이 배우가 더 크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곽지민 씨는 배우라는 스케치북에 자신을 그렸습니다. 그녀가 완성해나갈 스케치북이 같은 그림으로 메워질지 아니면 다양한 그림으로 메워질지는 그녀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배우를 믿습니다. 



 

 

※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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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2010-07-1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눈박이때부터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젼 배두나씨와 비슷한 반항아적인 매력이 있는데 아직은 유망주죠. 영화 1~2편 개봉앞둔 게 있다고 알고 있는데 개봉소식은 아직 없네요.

Seong 2010-07-11 08:38   좋아요 0 | URL
아직은 계속 고등학생 역이라... 성인 연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D 올해 개봉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용돌이 합본판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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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별 레미나』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이토 준지는 장편이라는 호흡에 익숙하지 않다. 그것은 그가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토미에 시리즈와 소이치 시리즈, 사거리의 미소년 시리즈와 오시키리 시리즈 등이 바로 전형적인 이토 준지의 연작 장편들이다(『프랑켄슈타인』이라는 긴 호흡의 장편이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창작이 아닌, 메리 셜리에 대한 오마주임으로 제외하기로 한다). 물론 작가 자신이 단편이나 연작으로 만족할 수 있지만, 거대한 프레스코를 그리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 준지에게 장편이란 프레스코에 합당한 작품이 있을까? 있다. 『소용돌이』가 그렇다.  

『소용돌이』는 이토 준지의 다른 장편 연작들과 마찬가지의 형식이다. 동일한 등장인물이 매 에피소드별로 이상한 일을 겪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소용돌이』는 다른 연작들과는 차별점이 있다. 다른 연작들이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매 회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면, 『소용돌이』는 매 회 같은 인물들이 소용돌이라는 같은 사건을 겪는다.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키리에와 (작가 자신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슈이치지만, 주인공은 이들이 아니라 '소용돌이'라는 현상과 그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마을 '쿠로우즈'다. 소용돌이가 중심을 향해 돌 듯, 이들을 비롯한 쿠로우즈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소용돌이의 저주에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이토 준지는 『소용돌이』에서 소용돌이라는 소재를 거의 끝까지 활용하는 동시에, 장편으로서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한 편, 한 편,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는 마치 소용돌이처럼 각기 하나로 모이고 결국 모든 마을 사람들이 소용돌이가 되고 나서야 쿠로우즈 마을의 저주는 끝난다. 게다가 이토 준지가 『소용돌이』에서 그리는 인물들은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름다운 선으로 연결된 인물임인 동시에 끔찍한 형상들로 탈바꿈한다. 미(美)와 추(醜)를 하나의 흐름으로 잡아내는 이 지독한 악취미! 각 마을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끔찍한 비극은 이 긴 장편을 한달음에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이번에 시공사에서 합본판으로 다시 출간한 『소용돌이』는 지난 판본에서 (별것 아닌데) 삭제했던 장면이 다시 복원되어 있고, 출간되지 못했던 특별편 「은하」가 수록되어 있다. 이번 합본판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종이다. 지난 판본과는 다른 종이를 사용해서 그런지, 눈의 피로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책의 무게가 상당해져서, 보통 누워서 책을 읽는 내게는 굉장히 힘든 독서를 요했다. 물론 이런 면이 내 나쁜 독서 태도를 고치는데 일조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별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에 시공사에서 출간한 세 편의 이토 준지 작품에는 어떤 하나의 흐름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은하」→『블랙 패러독스』→『지옥별 레미나』 혹은 『블랙 패러독스』→「은하」→『지옥별 레미나』의 순으로 읽는다면, 이토 준지의 어떤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토 준지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다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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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7-07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이토 준지 작품은 토미에가 주로 생각나더구요^^

Seong 2010-07-07 08:49   좋아요 0 | URL
계속 자가증식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 이토 상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토미에로 데뷰를 했으니 작가 스스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지옥별 레미나 이토 준지 스페셜 호러 5
이토 준지 글.그림 / 시공사(만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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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토 준지의 작품은 항상 단편에서 빛을 발해왔다. 유교 문화권에서 장남이 갖는 공포와 굴레를 기막히게 형상화한 「조상님」, 소재주의로 끝날 수 있는 꿈의 설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철학적 흥취까지 얻은 「기나긴 꿈」 등 그의 단편은 소재와 테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을 타왔다. 물론 그도 여러 편의 장편을 발표해왔다. 토미에 시리즈와, 소이치 시리즈, 사거리의 미소년 시리즈와 오시키리 시리즈 등이 바로 그러한데, 아쉽게도 이 작품들은 장편이라기보다는 동일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연작이라 볼 수 있다. 하나의 테마로 이끌어가기 보다는 매 회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꾸미기 때문에, 장편의 긴 호흡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그나마 가장 장편에 가까운 형식인 『공포의 물고기』조차도 중간에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것을 보면, 그가 장편에 대한 호흡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출간한 『지옥별 레미나』는 이토 준지 만화 사상 정말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장편의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소용돌이』처럼 인물이 테마가 아닌, 현상(혹은 사건)이 테마인 작품이다. 서기 20XX년의 미래. 오오구로 박사는 30년 전 발견한 웜홀을 통해 다른 우주에서 온 행성을 발견한다. 그는 이 행성을 자신의 딸 이름인 '레미나'라고 명명한다. 새로운 행성의 발견과 그 이름으로 딸 레미나는 스타가 되어 전 국민의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레미나를 관측하던 중, 레미나가 지나가는 곳에는 모든 행성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바로 그 레미나가 지구를 향해 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하나 둘씩 레미나에게 먹히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행성 레미나가 오는 이유가, 자신의 분신인 스타(!) 레미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십자가에 매달아 화형을 시키려한다. 이제부터 레미나와 공포로 정신을 잃은 사람들 간에 쫓고 쫓기는 마녀사냥이 벌어진다.  

전작 『블랙 패러독스』에서도 약간의 SF적인 요소를 넣었던 이토 준지가 『지옥별 레미나』에서는 본격적으로 SF적인 요소를 끌어왔다. 하지만 SF적인 요소는 배경을 드러내는 것일 뿐, 이야기의 진행상 큰 위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증명을 통해 이룩한 과학 세계에서 비이성적인 일로 인해 사람들의 이성이 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은, 그가 그리는 세계가 중세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아무리 이성주의가 발달한 사회더라도, 결국 인간의 심연 아래에 숨죽여 있는 광기의 본성은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이 끔찍한 마녀사냥은 읽는 내내 불편함과 숨 막힘을 불러일으킨다. 끔찍한 형상의 행성 레미나 조차도 미쳐버린 인간들의 공포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이다. 이 작품에서 이토 준지는 드러난 공포가 아닌, 인간 내부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울림은 굉장히 크다.  

그렇다면, 『지옥별 레미나』는 그의 걸작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러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다루려고 하는 주제나 끌어들인 소재는 참신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들의 익숙한 차용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이토 준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토 준지의 전작을 섭렵한 사람이라면, 즉각적으로 『소용돌이』, 『공포의 물고기』, 『토미에』, 「낙하」, 「궤담」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토 월드의 결정판.  

어쩌면 이 위대한 작가가 매너리즘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행성 레미나의 부정할 수 없는 매혹과 인류의 멸망을 이토록 끔찍하게 그린 이토 준지의 악취미, 살아남은 자의 기쁨과 가족을 잃은 슬픔이 섞인 멜랑콜리한 결말부를 보면, 그래도 역시 이토 준지라는 기대감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이 책 마지막에 수록된 「억만톨이」를 보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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