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공포 만화로 분류되지만, 모로호시 다이지로와 이토 준지는 장르로 규정짓기가 딱히 애매한 작가들이다. 굳이 장르를 규정짓자면 ‘환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는 순정 만화의 틀을 빌려, 규정할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은 시침 뚝 떼고 진행한다. 귀신과 요괴는 물론이고 (H. P. 러브크래프트에게서 빌려온 게 분명한) 이계의 존재들을 끌고 와 소소한 일상(?)을 풀어내는 솜씨는 작가의 투박한 그림체를 잊을 만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항상 시미코네 집에서 하고 있는 헌책방이라는 점이다. 헌책방이라기보다는 고서점이 더 어울리는 우론당에는 신기한 책들이 넘쳐난다. 귀신과 악마를 불러들이는 주술을 다루는 책은 평범한 편이며, 직립어류에 관한 책, 잘린 목을 키우는 방법에 관한 책 등은 물론이고, 생물처럼 살아있는 책들도 있다. 이들 살아있는 책은 글자를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독서하는 사람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책이 사람을 잡아먹다니! 

   

 

하지만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중 책에 대한 가장 압권은 『밤의 물고기』에 실린 「헌책 지옥 저택」이다. 이 헌책 저택엔 거의 쓰레기로 분류되는 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중 독서가들이 정말로 읽고 싶었던(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갖고 싶었던) 절판된 책들이 숨어 있다. 운이 좋아 원하는 책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함부로 책을 빼서는 안 된다. 책을 함부로 빼면 헌책(으로 이루어진) 저택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원하는 책을 얻기 위해선 이 안의 룰을 따라야 하는데 그 방법이 참으로 기막히다.   



 

하지만 책 욕심이 앞선 시미코는 룰을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책을 빼내고 결국 저택은 무너지고 만다. 알고 보니 이곳은 헌책을 모으다 죽은 원귀들이 있는 헌책 지옥이었다. 이들의 사연은 참으로 박장대소하게 만들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나 자신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 섬뜩하기도 하다. 나는 책을 읽는가, 아니면 책을 모으는가. 읽는 것과 모으는 것, 사는 것과 빌리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항상 내 독서습관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아직까지 쉽게 나지 않고 있다.

 

시오리는 시미코가 가지고 싶었던 책을 뺏아 지옥에 던짐으로서 현실 세계로 나올 수 있었다. 저승에서 원하는 책을 갖는 게 나을까, 아니면 현실에서 책 없이 지내는 게 나을까?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제괴지이: 호중천』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제시했었다. 이상적이지만 너무도 쓸쓸한, 그래서 염세적으로 느껴지는 대답.   

 

이토 준지도 책에 대한 공포를 다룬 적이 있다. 『신 어둠의 목소리: 궤담』의 「장서환영」이 바로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토 준지는 콜렉터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화자인 부인은 장서가인 남편과 결혼했는데, 남편은 이 장서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15만 권이 넘는 책을 세 번 씩이나 완독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져있다. 그는 그 많은 책의 위치를 다 꿰차고 있으며, 한 권이라도 제 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질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아버지가 아꼈던 『유극지옥』이라는 책이 사라지는 일이 생긴다. 남편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출하자 아버지는 어린 남편에게 밤마다 공포소설을 읽어주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책이었던 것이다. 책이 사라진 날, 남편은 꿈에서, 사라진 책이 아버지로 나타나 책을 읽어주는 고문을 당한다. 지옥과도 같은 고문을 견디어내자, 『유극지옥』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번엔 어머니가 아꼈던 『겨울바람의 르네』가 사라진다. 『겨울바람의 르네』는 남편의 어머니가 가출하기 전, 밤마다 어머니가 읽어주었던 책이다. 남편은 『겨울바람의 르네』를 꿈꾼다. 그리고 그 책이 낭독을 끝마치자, 『유극지옥』처럼 사라지고 만다. 남편은 더 이상 어머니를 추억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기억을 모조리 간직하려는 듯, 집에 있는 모든 책을 암기하기 시작한다.   







 

책은 정보의 기능도 있지만, 지워버리고도 싶은 악몽 같은 기억이자,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기도 하다. 악몽과 추억이 서로 공존하는 서가라는 공간. 그리고 그 기억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매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시간을 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이라는 물리적 매체를 소유하는 것일까, 아니면 책에 담긴 정수를 느끼는 것일까. 독서를 하면서 우리는 이런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Reader와 Collector의 차이. 그 차이마저 수집하고 싶어 하는 이토 준지의 무시무시한 공포.  

 

 

*덧붙임:  

예전에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고 합니다. (⇒ 클릭)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정말이지 끔찍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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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7-1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토 준지 책은 정말 대단해용^^ 재밌긴한데 무서워서 소유하고 싶은 생각은 없더군요^^

Seong 2010-07-16 08:23   좋아요 0 | URL
저는 두 번 정도 빌려보다가 기어이 샀습니다. 이상하게 빨려들더라고요..
:)

라로 2010-07-1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패스해야겠어요,,,워낙 겁이 많은지라,,^^;;;

Seong 2010-07-16 08:24   좋아요 0 | URL
그래도 한 번 읽어보시면... :D
 
환상의 빛 - Maboros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幻の光)>은 이야기를 대신 일상의 순간을 다룹니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면, 아마도 (막장극까지는 아니더라도) TV 아침드라마에서 다루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야기의 뼈대만을 남겨놓은 채, 남겨진 사람들의 결을 따라갑니다.  

어린 시절 유미코는 할머니의 가출을 막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죽기 전에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어린 유미코와 작별을 합니다.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유미코는 자신의 실수로 할머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지니고 삽니다. 시간이 흘러 유미코(에스미 마키코)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왔던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절을 보내는 유미코와 이쿠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이쿠오가 자살을 합니다. 세월이 흘러 유미코는 중매로 오사카에 사는 타미오(나이토 다카시)와 결혼을 합니다. 유미코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지만, 간간히 떠오르는 남편의 기억과 자살의 의문으로 괴로워합니다.   

 

아무런 내색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가져올까요? 자살은 의지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부재는 수많은 질문을 가져옵니다. "도대체 왜 죽었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그래서 죽었을까?", "왜 아무런 말 내색도 없이 갑작스레 죽음을 택했을까?" 남편을 잃고 유미코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수없이 했을 것입니다. 유미코는 남편의 부재를 견뎌냄과 동시에 남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까지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이런 끔찍한 경험을 한다면, 유미코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유미코의 기막힌 인생유전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런 기막힌 삶의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환상의 빛>은 담담한 영화입니다. 아마 다른 감독이었다면, 유미코의 고통을 굉장히 강렬하게 찍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유미코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트라우마 같이 각인된 할머니와의 작별과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을 겪은 후에도 유미코는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어찌됐건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죠. 때론 즐겁고 행복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일상의 어느 순간, 갑작스레 자살한 남편의 기억이 찾아옵니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기억과 후회, 번민, 미련, 의문 등이 점철되면서 우리의 일상은 갑작스레 휘청거리기도 합니다. <환상의 빛>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결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 또한 평범한 일상을 지내면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고통스런 기억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끝까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 물론 해답으로 볼 수 있는 말이 있기는 합니다. 전남편의 알 수 없는 자살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유미코에게 현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바다에 나가 있으면 저 멀리 지평선 너머 반짝 반짝 빛나는, 어떤 빛이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대. (전 남편도) 아마도 그 빛이 불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말은 남편의 죽음을 설명하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인생은 의문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삶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사 대부분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은 희미해지기 마련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이라는 해답'을 추구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우리는 그토록 할리우드 영화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상업) 영화는 모든 것이 명쾌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정확히 나누어져 있고, 선과 악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명쾌하게 설명되는 할리우드의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고 나쁜 영화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태도(attitude)의 영화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해답을 제시하는 영화는, 영화를 보는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도록 요구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주입식 영화와 주체적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환상의 빛>은 주체적인 영화입니다.  

 

 

*덧붙임: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주제 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과 김연수 작가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생각을 조금 옮겨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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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1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이벤트 참여하고 싶었는데, 알라딘도 예스24도 다 안 됐어요.
아까워라...ㅜ
이동진 씨는 이 시간에 뭐했나요?

Seong 2010-07-14 19:10   좋아요 0 | URL
영화 끝나고 대담시간이 있었어요. <환상의 빛> 영화와 원작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과의 인연, 관객과의 질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전부 참석하지는 못했지만요... :)

2010-07-14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7-1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다 오해하는거죠~ 자기만의 방식으로다가~

Seong 2010-07-14 19:15   좋아요 0 | URL
그렇기 때문에 노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herenow 2010-07-15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이동진님과의 만남도 궁금했는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네요...
덧붙인 김연수님의 글귀도 좋았습니다.

Seong 2010-07-15 08:0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소설도 좋다고하니 조만간 읽어보려고요. :)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11 (19)
        타이틀 Masked Ball
        각본 Barry Pullman
        감독 Duwayne Dunham
        방영일 1990
년 12월 15일 
 

 

 

1. 이야기  

데일 쿠퍼와 함께 캠핑을 즐기던 브릭스 소령이 사라졌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한다. 호크가 데일에게 브릭스 소령이 사라지기 전에 했던 ‘하얀 오두막’과 ‘검정 오두막’에 관한 전설을 말해준다.  

데일에 관한 심리가 진행되고 예정대로 DEA 요원 드니스 브라이슨이 트윈 픽스에 도착, 사건을 맡는다. 그와 동시에 데일은 윈덤 얼에게 편지를 받는다.  

제임스는 트윈 픽스에서 조금 떨어진 바에서 에블린이란 여인을 만나고 그녀 남편의 차를 수리한다. 네이딘은 학교에서 빅 에드 대신 레슬링부의 마이크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유령숲 개발과 패커드 제재소를 잃은 벤은 실의에 빠진다. 행크가 나타나 벤에게 애꾸눈 잭의 소유권이 이전되었음을 통보하고 떠난다. 벤은 충격에 빠진다.  

조시는 조직의 수장인 토마스 에크하르트가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트윈 픽스로 돌아왔다. 그녀는 캐서린을 찾아가 남편 앤드류를 죽인 일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빈다. 캐서린은 그녀를 하녀로 삼는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앤드류 패커드가 나타나 캐서린과 음모를 꾸민다.  









 

 

 

2. 가득 찼지만 텅 비어있는  

<트윈 픽스>의 19번 째 에피소드는 거의 파일럿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등장인물과 사건이 쏟아져 나오지만, ‘로라 파머의 죽음’ 같은 강렬한 구심점이 없는 관계로 이야기는 각자 따로 진행하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이제는 트윈 픽스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극을 이끌게 된다.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가 "이상한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을 떠올려보면, <트윈 픽스>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딴 곳으로 향해 가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큰 실패는 제임스에 관한 에피소드다. 애당초 제임스 헐리는 그렇게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그를 이야기의 한 축으로 설정했다. 게다가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트윈 픽스를 벗어난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다. 이것은 명백한 기획 의도의 오류임 동시에 시즌 오프의 개념이다. 트윈 픽스의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과 그 장소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 기본 전제인데, 작가들은 그 전제에서 자꾸 벗어나고 있다.   



 

 

 

3. 흰 오두막, 검정 오두막  

브릭스 소령이 사라지기 전, 데일은 브릭스 소령으로부터 ‘흰 오두막’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호크 보안관보가 데일에게 '흰 오두막'과 '검정 오두막'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걸 대체 어디서 들은 거죠?"

 

호크: 지역 전설이죠. 흰 오두막은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자연을 지배하는 영혼들이 거주하는 곳이에요.
데일: 한 번 보고 싶은 곳이군요!
호크: 많은 사람들이 그랬죠. 하지만 그곳은 오로지 영적인 단계로만 존재해요. 또 ‘검정 오두막’에 관한 전설도 있죠. 흰 오두막의 어두운 면이자 이 세계를 어둠의 힘으로 이끄는 장소이죠. 악몽의 세계에요. 주술로 아이들이 사라지고, 성난 영혼들이 숲에서 나오며, 꽃이 만개하는 것처럼 무덤이 열리죠.
데일: 무시무시하군요.
호크: 전설에 따르면 모든 영혼은 완전한 세상으로 가는 길에 그곳을 거쳐야 한다고 했어요. 그곳에서 자신의 어두운 자아를 만나죠. 우리 종족들은 그것을 ‘문지방의 거주자’라고 불러요. 하지만 만일 그 영혼이 검정 오두막에서 부족한 용기로 자신의 자아를 대하지 못하면, 그 영혼은 완벽하게 파괴된다고 하지요.
데일: 세상에나.  

 

흰 오두막과 검정 오두막은 데일이 꾼 꿈속의 빨간방을 확장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설정은 굉장히 안타까운 결과물을 낳았는데, 데이빗 린치가 애초에 생각했던 선과 악의 모호함이 사라지고 확실하게 갈리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 그 경계의 모호함에 있던 인물/존재들이 편을 갈러 나뉘기 시작한다. 모호함은 사라지고 구분만이 남은 세상. 트윈 픽스는 회를 거듭할수록 그렇게 아우라를 하나씩 잃어 간다.   

 

 

3-1. 앤스락스, 안젤로 바달라멘티, 트렌트 레즈너  

예전엔 고유명사 같은 독특한 이름이었지만, 911 테러 이후 보통명사가 된 헤비메탈 그룹 앤스락스(Anthrax)는 <트윈 픽스>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드라마에 빠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트윈 픽스>에 영감을 받은 곡을 만들었는데, 그 곡이 바로 「Black Lodge(검정 오두막)」이다. 이들은 한 술 더 떠 <트윈 픽스>의 음악을 맡은 안젤로 바달라멘티를 모셔와 공동 작업으로 곡을 만들었다.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나인 인치 네일스(NIN)의 트렌트 레즈너 역시 <트윈 픽스>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트윈 픽스>의 방송일이 제멋대로 잡힐 무렵 NIN은 전미 투어를 잡았었는데 <트윈 픽스>의 마지막 방송일이 잡히자 트렌트 레즈너는 “<트윈 픽스>를 봐야한다”는 이유로 투어를 취소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런 점이 기특해서였는지(?), 데이빗 린치는 <로스트 하이웨이>를 감독할 때 그에게 음악 감독을 맡긴다. 린치의 신임을 듬뿍받은 트렌트 레즈너는 <로스트 하이웨이> OST를 자신의 역작 <올리버 스톤의 킬러(Natural Born Killers)> OST와 같이, 기막힌 노래들로 가득 채워 놓았다.  

    

 

 

 

4. 드니스/데니스 브라이슨  

데일과 관련한 마약 수사를 위해 트윈 픽스에 도착한 드니스/데니스 브라이슨(David Duchovny)은 복장 도착자(transvestite)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물론 지금이야 <엑스 파일(X-Files)>의 주인공 멀더의 흑역사로 치부되지만... 그는 여성 복장을 했을 때는 자신을 드니스(Denise)라 소개하지만, 남성 복장을 할 때는 데니스(Dennis)라 소개할 만큼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확고한 구분을 가지고 있다.   



         

 

그가 여성복장을 입는 이유는 꽤나 독특하다. 수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성 복장을 입었는데, 그 옷이 그렇게 편했기 때문에 아예 여장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이것은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의 <광란자(Cruising)>의 귀여운(!) 오마주다. 차이가 있다면 <광란자>의 스티븐 형사(알 파치노)는 동성애자가 되어버리고 괴로워하지만, 드니스는 스스로 이 상황을 즐긴다는 점이다.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은, 미국에선 1980년대나 1990년대 모두 동성애자나 복장 도착자들을 위험하거나 신기한 존재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때 제작된 <양들의 침묵>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조나단 드미 감독 역시 성도착자이자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테드 라빈)을 ‘미친놈’으로 스케치했다. 199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성애자들은 시위를 벌였고,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인물에 접근했다는 것을 반성하고 그 이듬해 <필라델피아(Philadelphia)>를 만들었다.  

    

 

 

 

5. 기억할만한 지나침  

네이딘은 같이 학교에 다니는 마이크(바비의 단짝!)에 관심을 갖는다. 그녀는 더 이상 에드에 관심이 없다.  

"에드는 집에 있고 마이크는 학교에 있어. 에드는 집에만 있는데 마이크는 나가길 좋아하지. 좀 현실적이 되자고. 가끔 에드는 우리 아빠같이 나이 들어 보이거든." 

에드가 노마와 함께 같이 지내지 못한 것은 네이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네이딘이 스스로 떠나려 한다. 에드와 노마에게는 물론 네이딘까지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물론 호시탐탐 행크가 노리고 있겠지만.  

 

 



죽은 줄 알았던 앤드류 패커드(Dan O'Herlihy)의 등장은 놀라움 보다는 한숨이 나오는 설정이다. 이미 그 자체로 완료형이었던 인물들이 드라마의 연장을 위해 하나씩 불려나오는 설정은 안타까울 뿐이다.  

 

 

유령숲 프로젝트와 제재소 소유권을 빼앗긴 벤자민 혼에게 행크는 애꾸눈 잭의 소유권이 이전됐다는 소식을 통보한다. 이제 벤자민에게 남은 것은 그레이트 노던 호텔뿐이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정신 공황에 빠진다. 더 이상 돌릴 필름이 없는 스크린 앞에 서 있는 벤자민의 모습은 그의 인생이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윈덤 얼이 드디어 움직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행보는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한다.  

 

 

6.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11』 스크립트, 3rd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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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 '오페라의 유령'을 접한 것은 다름 아닌 TV에서였다. 아마도 <주말의 명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페라 극장에서 벌어진 아주 기괴한 분위기의 스릴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대 미국을 배경(응?)으로, 성악가 지망생 크리스틴이 오디션에 참가하는데 그 주위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납치당한다는 이야기였다. 오페라와 살인이라는 흔치 않은 주제를 이토록 재미있게 버무린 것에 깜짝 놀라 그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목은 <오페라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원작을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라, 할리우드의 입맛에 맞게 각색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 보면 모르겠지만.  



 
 

몇 년 후, 음반가게에서 독특한 재킷의 음반을 발견했다. 하얀 마스크에 빨간 장미가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모습이었는데, 성음사에서 발매한 <오페라의 유령> OST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타이틀을 보고 바로 몇 년 전에 TV에서 봤던 영화를 떠올리며, 이 음반이 그 영화의 OST인줄 알고 덜컥 사버렸다.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음악도 괜찮았었기에 천천히 감상할 요량이었다. 근데 이 음반이 바로 그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바로 그 유명한 뮤지컬이었을 줄이야...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스피커를 꽉 채우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마음을 뒤흔드는 선율들. 정말 굉장했었다.   

 

2002년 영국에 갔을 때, 그 살인적인 가격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티켓을 끊었다. 4만 원 정도의 가격이었는데 자리는 왼쪽 제일 꼭대기 층이었던가. 무대와 내가 앉은 곳의 거리가 너무 멀어, 망원경이 필요할 지경이었다(좌석 앞에 50P를 내고 망원경을 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투덜거림도 뮤지컬이 시작되자 조용해졌다. 화려한 음악과 마술과도 같은 진행은 나도 모르게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줄은 알 수 없었지만, 창작자와 뮤즈의 관계를 (보는 입장에서는) 재미있게 비튼 미녀와 야수 이야기랄까? 암튼, 그 때의 감동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을 때, 일부러 보러 가지를 않았다. 그 때 받은 감동이 희석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2004년에 제작된 <오페라의 유령>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중학교 때 봤던 <오페라 유령>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페라의 유령>을 검색해보니, 관련 영화가 7편이나 된다는 것을 알았다(TV영화나 모티프를 차용한 작품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목록은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최근에 제작된 것이야 뮤지컬 때문이라고 쳐도, 1925년부터 1998년까지 6편이나 주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면, 원래의 이야기가 굉장히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게 내가 가스통 루르의 원작을 들게 된 이유다(물론 동생이 샀던 책이 집에 있었기도 했지만). 

간단하게 총평을 해보자면, 가스통 루르의 『오페라의 유령』 '지루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좋은 이야기부터.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다.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진짜 유령 같이 신출귀몰하는 '오페라의 유령' 에릭은 그가 정말 사람인지 유령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크리스틴과 라울 백작, 그리고 에릭의 삼각관계는 충분히 애간장을 태우며, 오페라 극장의 지하의 묘사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의 지하세계 모리아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굉장하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살인과 음모 그리고 주술과도 같은 미신의 맹신 등은 이 소설을 굉장히 특별하게 만든다.  

이번엔 따끔한 이야기. 구슬은 서 말이나 있었는데 제대로 꿰질 못했다. 미스터리를 쌓아가는 과정과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나 안일하다고나 할까. 독자와 머리싸움을 하며 차곡차곡 쌓아가는 잔재미를 무시한 채 가스통 루르는 너무 쉽게 자신의 패를 드러냈다. 미스터리의 해결은 등장인물의 고백에서 설명되며, 정말로 궁금했던 초현실적인 미스터리는 그냥 두루 뭉실 지나친다. 게다가 절정부분은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시점이 바뀐다. 물론 소설이 '오페라의 유령' 사건에 대한 진술 모음집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그런 시각이 존재할 수 있지만, 좀 뜨악하게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이 난삽한 이야기는 글로 장황한 설명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와 소리로 보는 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이 이야기는 영화와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책이 지루했던 다른 이유는, 번역의 고색창연함도 한몫했다. 성귀수 씨의 번역은, 원작의 문체가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문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책으로 연극 대본을 만든다면, 배우들이 이 대사를 어떻게 육화시킬지 굉장히 궁금할 정도로, 좀 뜨악한 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원작의 배경이 보헤미안들이 예술의 자유를 누리며 자유롭게 활동했던 시기인 것을 보면, 그 정도의 고색창연함은 감안해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뮤즈가 떠난 창작자의 최후는 어떨까? 그는 뮤즈의 도움으로 불멸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을 원할까 아니면 뮤즈의 사랑을 원할까? 『오페라의 유령』은 바로 이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읽는 이로서 감히 평가하자면, 소설로서의 매력은 떨어지지만,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출중한 작품이다. 이걸 '프랑스 소설의 어떤 경향'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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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1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영화는 정말 좋았는데, 하다못해 고 장국영 주연한 야반가성도 좋았다는 거 아닙니까?
오래 전 이책, 저는 문학동네판 가지고 있는데 읽다가 덮어버린 기억이 나네요.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군요. 그래도 님은 다 읽으셨네요. 축하해요. 박수, 짝짝짝!

Seong 2010-07-13 17:18   좋아요 0 | URL
저도 읽으면서 덮어버렸던 게 한두번이 아니에요. '크리스틴의 고백' 부분만 넘어가면 나머지는 그나마 수월한 편이죠. :D

굿바이 2010-07-1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품을 소설로는 읽지 못했어요, 아마 LG아트센터 개관 공연이 [오페라의 유령]이었을 거예요. 그 당시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무료 티켓을 얻어 첫 공연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몸은 지치고, 여기저기 VIP고객들이라 분류된 분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짝 긴장한 상태였는데, 공연이 시작되자 그 모든 긴장이 턱 풀어지더라구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화려한 무대에 완전히 몰입해서^^ 물론, 스토리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도 그 감동이 참 오래가서, 일부러 영화는 피했다고 할까요. 이제 슬슬 영화도 한 번 볼까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Seong 2010-07-13 17:19   좋아요 0 | URL
우와~ 앞자리에서 본 느낌은 어떤가요? 저도 무리하더라도 그런 경험을 했어야 했는데... ㅠㅠ
저도 조만간 영화 보려고 해요. 옛날에 TV에서 했을 때 오프닝 부분 보고 꺼버렸거든요. 이제는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마그 2010-07-1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굿바이님이랑 비슷한... 경험이.
아는 동생이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아트센터 VIP로 봤지요. 정말... 충격이었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뒤로는 뭐.. 뮤지컬에서도 저런 감흥은 느끼기 쉽지않더라구요
국내 초연이었음에도 너무..진짜 너무 멋진 공연이었거든요.
공연 보고나서나중에 책을 읽었는데. 그닥 재미없었더라는...^^;;;

Seong 2010-07-14 09:37   좋아요 0 | URL
뮤지컬은 정말로 압도적이었던 것 같아요. 화려한 볼거리에 마술적인 요소도 끌고오고, 뮤지컬 넘버도 굉장했고, 뭐 하나 뺄 수 없는 작품이었죠.
근데 소설은 좀... :D
 
축구는 문화다
홍대선.손영래 지음 / 책마루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축구는 유난히 감정이입이 잘 되는 스포츠다. 한국-일본, 잉글랜드-아르헨티나, 독일-잉글랜드, 브라질-우루과이-아르헨티나의 경기는 일반 A매치 이상의 긴장감이 돈다. 선수들은 사력을 다해 경기를 하고, 국민들은 혼신의 힘으로 응원을 한다. 그렇게 해서 이기면 승리의 도취감을 즐기지만, 지면, 그만큼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 이상의 치욕감과 굴욕감을 느낀다. 왜 이런 단순한 공놀이에 수많은 사람들은 일희일비하는 것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다.  

축구는 전쟁이다. 다른 말로 표현할만한 적당한 것이 없다. 축구는 말 그대로 전쟁이다. 세상엔 정말 많은 스포츠가 있지만, 축구만큼 관중과 선수들이 격하게 반응하는 운동이 없다. 그라운드는 전쟁터이고, 11명의 '전사'들은 승리하기 위해 90분 동안 쉴 새 없이 공을 몰고 뛰어다닌다. 전쟁엔 온갖 전술과 술수와 협잡이 들끓기 마련이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반칙은 용인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온갖 치사하고 은밀한 반칙이 자행되기도 하고, 할리우드 액션까지 선보인다. 특히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 가나와 우루과이의 8강전에서 수아레즈의 '신의 손' 반칙에 대해선 스포츠맨십에 대한 장렬한 토론(이라기보다는 비난내지 비방)이 이루어졌다. 분명 과정은 나빴다. 하지만 수아레즈는 자랑스러워 했다. 전쟁에서는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에는 많은 미신과 주술이 따르듯이 축구에도 많은 것들이 따른다. 프랑스 도미니크 감독의 별자리 맹신도 그렇고, 축구의 신 펠레의 예언은 저주로 굳어진지 오래다. 이번 월드컵에서 엄청난 스타가 된 문어 푸욜의 신탁(!) 역시 화제가 됐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축구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적중률이 높아질수록 그 권위는 공고해진다.  

축구라는 전쟁을 수행하는 각 국가의 팀은 각자 고유의 스타일이 있다. 이것은 전술이나 전략과는 다르다. 축구란 1골을 넣든 10골을 넣든 결국 이기면 되는 경기이기 때문에, 골을 넣기 위한 공격과 상대팀의 골을 막기 위한 수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축구의 스타일은 바로 이 공격와 수비의 과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각국의 국민성에서 기인한다.  

잡설(雜說)이 너무 길었다. 홍대선, 손영래 작가가 공저한 『축구는 문화다』는 바로 축구를 통해 바라본 유럽과 남미의 문화사이다. 남아공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졸속 제작한 책이 아닐까 의심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글들은 <딴지일보>에서 필독의 ‘축구문화사’라는 글로 연재됐던 글을 묶은 책이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공들여 써 온 것이다.  

잉글랜드는 왜 거칠고 투박한 킥 앤 러시의 축구를 하는지, 이탈리아는 왜 카테나치오 수비를 그렇게 신봉하는지, 아르헨티나는 정치적 쇼로서 축구를 어떻게 길들여왔는지, 독일은 어떻게 '게르만 민족에서 '독일 국민'이 될 수 있었는지, 프랑스 대표팀의 전성기와 몰락은 똘레랑스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등을 다룬다. 책 제목대로 축구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 전반을 다룬다. 로마제국에서 도시 국가로 분화한 이탈리아의 역사와 세리에 A의 연고지를 구분한 것과,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앙숙 관계는 프랑코 독재서부터 저 멀리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여왕의 세기의 결혼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두 저자들은 축구라는 공놀이를 매개로 유럽과 남미의 역사, 정치, 문화, 종족, 기질, 경제, 지리를 아우른다. 추구를 보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지식들을 나열한다.  

졸속 제작은 아니지만, 월드컵 기간에 출판하려 해서인지 띄어쓰기, 오탈자가 간혹 눈에 띄어 거슬리지만, 내용만큼은 정말 어디하나 뺄 수 없는 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와 국가를 바라보는 방법을 축구를 통해서 하나 더 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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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7-12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 스타일은 그나라의 국민성이라!
리뷰 읽고나니, '아내가 결혼했다'가 생각나네요. 축구에 대해선 깜깜이라 이 부분에선 쭉 건너뛰고 읽었거든요. 그래선지, 작가가 참 '별종'이다 했어요.
이 책 읽고나면 또하나의 세상을 만나겠죠? (감사)

글구, '간판'바꾸셨네요!

Seong 2010-07-12 16: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에파타 님. 그간 너무 격조했습니다. 잘 지내시죠?

책은 기본적으로는 축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문화사적인 이야기도 꽤 비중이 큽니다. 말 그대로 축구로 바라본 유럽과 남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책 참 재미있어요. :D

느린산책 2010-07-1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잖아도 요즘 제가 축구 문화사에 꽂혀 살림에서 나온 책을 읽고 뭔가 아쉬워 하던 차였는데, 이 책이 해갈이 될 수도 있을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Tomek님~^^

Seong 2010-07-13 17:21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마음에 드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