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원작의 관점에선 허섭하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보기엔 원작에 너무나 기댄 안일함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10-07-20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럴 줄 알았어요! 역시 주변의 말을 믿어선 안되고 여기 알라딘 와서 평을 봐야해요. 전 어쩐지 이 영화가 완전 별로일 거 같았는데 다들 재미있다길래 이상하다 그러면서...그래도 감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볼래 그랬거든요.

Seong 2010-07-20 15:15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보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저희는 별로였습니다. 전 원작을 읽은 경우고, 아내는 원작을 보지 않고 갔었는데, 둘 다 만장일치로 '허술하다'는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 강우석 감독의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면, 그가 그린 캐릭터는 좋아하는 편인데, <이끼>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그런 매력이 반감되어 있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지금 찍고 있는 <글러브>는 어떤 인물을 그릴지 궁금하긴 하지만, 영화를 볼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재영 씨가 나오니까 볼 것 같긴 하지만요. :D
 
오페라의 유령 - Phantom of the Oper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925년 작, <오페라의 유령>은 흑백영화이자 무성영화입니다. 영화는 발명품으로 시작했고, 그 자신이 수많은 테크놀로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옛날 영화를 보는 것은 (지금 영화의 기술력과 비교해서) 촌스러움과 지루함을 감안해야 합니다. 더구나 무성영화는 대사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들은 과장된 연기와 표정으로 극을 이끌어 갈 수 밖에 없지요. 관객은 그저 진득하니 눈으로만 영화를 봐야 합니다. 그렇기에 감독은 잔재주를 피울 수 없지요. 감독은 우직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책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이야기는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음모, 공포, 서스펜스, 사랑 등 거의 모든 장르가 담겨있습니다. 소설은 이 매력적인 소재를 잘 직조하지 못한 반면, 영화는 이 이야기를 굉장한 볼거리를 담아 진행합니다. 늘어졌던 원작의 이야기는 더욱 탄탄해진 것 또한 장점으로 다가옵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실제로 유령을 봤다는 직원이나 단원들도 상당수 존재하지요. 하지만 새로운 극장주는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어느 날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돈나 카를로타는 이상한 편지를 받습니다. 주연 자리를 크리스틴 다에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큰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내용이죠. 카를로타는 이 편지를 무시하지만, 그 저주는 현실이 되고 극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결국 크리스틴 다에가 주인공을 차지하고 화려한 데뷔를 합니다. 실은 오페라의 유령이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크리스틴을 좋아하는 라울 자작 때문에 크리스틴은 갈등을 합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속이고 라울에게 돌아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안 유령은 엄청난 복수를 준비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엄청난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거대한 오페라 극장의 위용과 그 안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무대는 스펙터클(spectacle)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1막의 클라이맥스라 부를 수 있는 샹들리에도 말 할 것 없고, 극장 지하의 유령의 거처 또한 화려한 볼거리를 수놓습니다. 하지만,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오페라의 유령, 에릭의 모습입니다. 소설에서 묘사한 해골에 가까운 모습의 끔찍한 모습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백미입니다. 물론 어느 판본의 영화를 보더라도 아름다운 크리스틴 다에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이 영화에서는 매리 펠빈(Mary Philbin)이 크리스틴 역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세월이 흘러도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새겼습니다.  









제가 본 판본은 오리지널 원본이 아니라, 1930년 사운드를 입힌 인터내셔널 판본입니다. 필름엔 여러 색과 필터가 들어가 있으며, 특히 중간에 가면무도회 장면에서는 일부 칼라로도 나옵니다. 하지만 가장 특별했던 것은 새로 만들어진 음악이었습니다. 이 음악은 <오페라의 유령> 영상에 맞춰 만들어졌는데, 어찌나 잘 맞아떨어지던지 무성영화가 아닌 유성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성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새로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문법과 지금 영화의 문법이 워낙에 다르기 때문에 ‘보는 방법’을 따로 배우거나 익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섣부르게 다가가면 "무성영화는 지루한 영화"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무식하게도 그냥 부딪힌 경우였습니다. 그리피스 감독의 <국가의 탄생>이 첫 무성영화였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지요. 고정된 카메라와 과장된 연기와 드문드문 등장하는 자막, 게다가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은 저를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 왜 이 영화가 명예와 불명예로 점철된 영화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무성영화를 접하는 게 그리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왜 이 영화들이 고전 대접을 받는지 몸소 느낄 수 있게 되었지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무성영화를 처음 접하고 싶지만,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야할지 망설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전 <오페라의 유령>으로 시작하시라고 감히 권해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라는 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맛볼 수 있는 전체요리로서 충분한 작품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7-1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영화죠? 저도 최근에 봤는데, 압도되었습니다.
43년도 Claude Rains 주연의 영화도 꽤 좋았는데,
이 무성영화를 보고 나니 갑자기 비교되더군요.^^
완벽하다고 해도 될 영화였습니다.
저도 무성영화를 좋아합니다. 특히 버스터 키튼의 희극영화요.

Seong 2010-07-19 10:50   좋아요 0 | URL
정말 굉장한 영화죠! 어쩜 이렇게 놀라울 수 있는지!
1943년 작은 만듦새는 좀 나아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실망인 작품이었어요. 유령의 탄생과정 따위는 정말로 궁금하지 않은데! ㅠㅠ

stella.K 2010-07-1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건 무성이 아닌데 이게 몇번 만들어졌나 봅니다.
너무 오래된 영화라 괜찮을까 싶은데 안 그런가 봅니다. 흠...

Seong 2010-07-19 10:53   좋아요 0 | URL
1925년, 1943년, 1964년, 1989년, 1998년, 2004년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전 1964, 1998년 작품 빼고 다 본 것 같습니다.
영화 재미있으니 꼭 한 번 보셔요. :D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 The Bad Sleep We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悪い奴ほどよく眠る)>는 악(惡)과 죄의식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악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인간으로서 발동하는 죄의식은 그 악함에 따라 어떻게 얼마나 작동하는지 구로사와 감독은 보여줍니다.  

영화의 시작은 정부 주택공사의 부회장 이와부치(모리 마사유키)의 딸 요시코(카가와 쿄코)와 그의 비서 니시 코이치(미후네 도시로)의 결혼식으로 시작합니다. 이 축하의 자리에 갑작스레 신청사 뇌물 수수 건으로 후루야가 투신자살을 했던 건물 모양의 케이크가 도착하자, 그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이와부치, 모리야마(시무라 다카시), 시라이(니시무라 코우)는 안절부절하지 못합니다. 알고보니 니시는 후루야의 숨겨진 아들이었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호적을 교환하고 원수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니시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을 옥죄기 시작하지만, 모리야마가 니시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사건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는 명백히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모티프를 따왔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맹세하는 니시는 햄릿이고, 탐욕수런 이와부치는 클로디어스며, 이와부치의 아들 타츠오와 딸이자 니시의 부인인 요시코는 레어티즈와 오필리아의 현현입니다. 니시와 호적을 바꾼 친구 이타쿠라는 호레이쇼로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를 <햄릿>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인간의 악(惡)한 기질을 다루었습니다. 인간의 악은 인간 내부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제도라는 시스템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그 바로미터를 죄의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와부치, 모리야마, 시라이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죽음을 강요했습니다. 그렇게 죄를 미루면서 그들은 편안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편안함이 죄의식과 맞부딪힌 순간, 이들은 인간으로서의 염치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염치는 직급이 낮을수록, 그러니까 시스템의 상층부에 있는 거대한 악(惡)에서 멀어질수록 느낄 수 있습니다. 와다와 시라이는 적어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이들은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또 다른 악을 자행합니다. 특히 영화에서 이와부치로 대표되는 악(惡)은 자신의 피붙이마저 이용하면서까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러면 악을 응징하는 니시는 선(善)한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니시 또한 복수를 위해서 이와부치의 딸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는 원수와 같이 지내면서, 자신의 복수심이 나약해지는 것을 깨닫고 더 큰 증오로 자신을 단련합니다. 그가 행하는 복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편법을 통해 정의를 행하는 주인공들을 그렸습니다. <요짐보>처럼 기회주의적인 주인공의 모습이 그렇고, <붉은 수염>조차도, 병원의 경영을 위해 때로는 관청 직원의 약점을 이용하기도하고, 부자에게는 엄청난 약값을 뜯어내기도 합니다. 구로사와 감독이 그리는 세계는 똘레랑스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미 이 세계는 지독히 나빠져 있고, 나쁘면 나쁜 만큼 그 나쁨을 이용해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나쁜 놈 대 나쁜 놈의 이야기. 그래서일까요? 구로사와 감독은 니시를 정말 갑작스럽게 퇴장시켜 버립니다. 정말 그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는가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영화의 마지막, 자식은 아버지를 저주하며 떠나고, 아버지는 자식을 붙잡는 대신 울리는 전화기를 듭니다. 잘 해결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그동안 신경 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며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을 전합니다. 우리가 악(惡)의 실체라 생각했던 이와부치는 결국 악(惡)이라는 거대 시스템의 한 줄기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누가 ‘나쁜 놈’인줄 압니다. 그리고 누가 숙면을 취할 것인지 압니다. 그리고 암전되며 화면을 가득 채우는 글씨. “悪い奴ほどよく眠る(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구로사와 감독은 누가 나쁜지, 무엇이 나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바로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덧붙임 

역시 만만찮은 주제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특히 화면이 '우수수 쏟아지는 듯한' 역동적인 미장센은 볼수록 감탄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결말부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대부 1, 2>편에서 ‘거의 인용 수준으로’ 활용했습니다. 결혼식 장면은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 소개와 이야기의 배경을 영화적인 방법으로 친절히 설명해줍니다. <대부 1편>도 그랬지요.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모든 것을 지켰지만, 결국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홀로 남은 권력자의 모습에선 <대부 2편>의 결말부가 그대로 오버랩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붉은 수염 - Red Bear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항상 '인간'을 다뤘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항상 서로 속이고 기만하고 질투하며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그가 그리는 인간군상을 보고 있자면, 정말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하는 탄식을 불러일으킵니다. 신뢰와 사랑이 무너진, 지극히 염세적인 세상.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항상 먹먹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65년 작(作) <붉은 수염(赤ひげ)>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여전히 염세적인 세상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인간들을 그리지만, 이 영화의 인물들은 서로를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야스모토 노보루(가야마 유조)는 나가사키에서 서양 의학을 배운 의사입니다. 그는 막부의 의료원에서 의사 생활을 할 야심을 갖고 있는데, 아버지의 강권으로 하층민들이 진료를 받는 시골의 진료소에서 인턴 생활을 합니다. 붉은 수염이라 불리우는 이곳의 원장 니이데 쿄조(미후네 도시로)는 강건하고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합니다. 이 진료소를 벗어나려는 생각에 야스모토는 엉망으로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야스모토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요약한 줄거리로만 본다면, 너무나 뻔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이 뻔한 이야기를 전인미답의 경지로 찍었습니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야스모토의 성장담입니다. 그는 이 진료소에서 많은 일들을 겪으며 진정한 의사로 거듭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야스모토는 여러 환자를 맡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종종 환자의 이야기로 빠져듭니다. 중구난방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는 야스모토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처음에 표면적으로 등장합니다. 성교 후 남자들을 죽여서 진료소에 갇힌 미친 여자, 12살의 나이에 유곽에서 손님을 받아야하는 어린 소녀 오토요, 진료소에 몰래 들어와 환자들 죽을 훔쳐가는 7살 꼬마 쵸보는 너무나 전형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왜 이런 삶을 살아가는지, 왜 이들이 경계를 풀지 않고 항상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안 순간,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을 너무 표면적으로 단정 짓고 산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을 불러일으킵니다. 게다가 이들은 의사들의 치료를 받을 뿐 아니라, 의사들(더 소급하자면 야스모토)의 비뚤어진 삶마저 치유합니다. 의사니까 병을 고치고, 환자니까 진료를 받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먼저 다가가고 서로 소통하면서, 인간들 사이를 둘러싼 오해의 껍질을 벗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이런 형이상학적 주제는 보통 인물들 간의 대화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위대한 점은, 절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진득하게 보여줍니다. 같은 이야기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온갖 영화적 기교를 동원해가며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는 감독의 진심을 느낍니다. 그것은 구로사와 감독이 영화를 보는 우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교훈을 주는 영화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배움을 얻는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가 바로 그렇습니다. 영화의 상영시간이 3시간이 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배움에는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영화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덧붙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인 미후네 도시로는 이 영화를 끝으로 구로사와 감독과 결별했으며, 20세기 폭스에서 제작한 진주만 공습 영화 <도라 도라 도라>는 미국의 베트남전과 일본의 반미감정으로 인해 취소됩니다(이 영화는 후에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과 후쿠사쿠 긴지 감독의 공동 연출로 제작됩니다). 심기일전하여 1970년 처음으로 칼라로 찍은 <도데스카덴(どですかでん)>은 처음으로 흥행 참패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자살미수... 이후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다시는 따뜻한 세상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07-17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라 도라 도라>가 무산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그리고...배우 이름은 미후네 도시로입니다.

이하나 누나가 우리 옆집에 살면 좋겠습니다.가끔 가다가 제가 요리도 해줄텐데요.

Seong 2010-07-17 16:36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님, 지적 고맙습니다. 기억에 의지하고 쓰니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수정했습니다.

반영한 자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Production on Tora! Tora! Tora! took three years to plan and prepare for the eight months of principal photography. The film was created in two separate productions, one based in the United States, directed by Richard Fleischer, and one based in Japan. The Japanese side of the production was initially directed by Akira Kurosawa, but after two years of work with no useful results, 20th Century Fox turned the project over to Kinji Fukasaku and Toshio Masuda, who completed it.

http://en.wikipedia.org/wiki/Tora_Tora_Tora

노이에자이트 2010-07-17 18:42   좋아요 0 | URL
아...원래 구로자와 상이 일본측 감독을 하기로 되었군요.

Seong 2010-07-19 08:15   좋아요 0 | URL
확실히 시기를 잘못 잡았던 것 같아요. 조금 더 빨랐던가, 아니면 늦었던가. 영화 역사에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전쟁 영화 한 편을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많이 아쉽습니다.

L.SHIN 2010-07-1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포스터를 보니까 생각이 난 건데요.
저는 <자토이치> 영화를 재밌게 봤답니다. 순전히..'기타노 다케시'라는 배우이자 멋쟁이
감독때문에 본 거지만..( -_-)ㅋ 내용은 괜찮았어요.
특히, 코믹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 엔딩에서 다같이 (나쁜놈이든 좋은놈이든)
춤을 추는 모습을 좋아하는 외계어린이 취향의 추천이었습니다. ㅋㅋㅋ

Seong 2010-07-18 07:35   좋아요 0 | URL
<자토이치> 저도 봤어요. 아무도 보러 가지 않아서 씨네코아에서 혼자 봤던 기억이... 영화 자체로는 재미있었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으로 봤을 땐 너무 아쉬운 작품이었어요...
금발의 맹인 검객이라! 가타노 아저씨 확실히 나르시즘이 강해요! :D

L.SHIN 2010-07-18 17:01   좋아요 0 | URL
엥,금발이 아니라 백발 아니었어요. 내 기억에는 그렇게...
그래서 '젊지만 백발 검객' 이러면서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기타노 아저씨의 영화들은 뭐랄까, 자세히 뜯어보면 독특한 철학을 숨기고
있죠. 그리고 그 특유의 유머러스까지. 그래서 전 그가 좋습니다.
괴짜잖아요. 전,괴짜를 좋아하거든요.(웃음)

Seong 2010-07-19 08:23   좋아요 0 | URL
백발이 맞군요! 제 기억력이 탈색되어 가는지... 아니면 제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만 기억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ㅠㅠ

저도 기타노 아저씨 좋아해요. 그런데 아무래도 감독이자 배우, 화가이자 시인인 자아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는 아직까지도 당황스러운 면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자토이치> 이후의 영화는 사요나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다시 하드보일드-야쿠자 세계로 돌아온다고 하는데, 결과물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소나티네>가 나오든, <브라더>가 나오든 굉장하기는 하겠죠!

김기영 감독 영화는 어떠세요? L.SHIN 님이라면 정말 좋아하실 것 같은데!(웃음)

노이에자이트 2010-07-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후네 도시로 영화를 처음으로 본 것은 텔리비전에서 해준 '레드 선'이었어요.알랭 들롱 찰슨 브론슨과 함께 나오는데 검객역을 했지요.미후네는 무사 역을 하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Seong 2010-07-19 08:29   좋아요 0 | URL
저는 <1941>에서 처음 봤습니다. 물론 그 때는 누군지도 모르고 봤었어요. 나중에 그 장군(!)이 미후네 도시로라는 것을 알았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3~4년 전 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정말 굉장한 배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스크린으로 보니까 그 매력이 엄청나게 다가오더군요!

조금 다른 의미로, 왕우와 함께 '무뢰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인 것 같아요. :)
 
이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유명한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원작을 충실히 따르던가, 아니면 모티프만을 가져와서 감독이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던가. 강우석 감독의 <이끼>는 원작의 관점으로도, 독립적인 영화로 보더라도 선뜻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원작과 강우석 감독의 작품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작품입니다.  

윤태호 작가의 『이끼』는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윤태호 작가는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골에 내려가는 류해국의 모습에서, 우리는 왜 이들 부자가 7년간이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는지, 이장과 마을 사람들은 왜 류목형의 시신을 그렇게 빨리 치우고 싶어 하는지, 류해국과 박민욱 검사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류해국이 도착한 그 마을의 이상한 기운을 느낄 뿐입니다. 윤태호 작가는 에둘러 설명을 하지 않고 곧바로 이야기를 향해 돌진합니다. 모호함과 불길함에 둘러싸인 인물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실체를 지니게 되고, 결국 이야기는 가장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서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담론까지 치고 올라갑니다. 이 이야기가 비약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윤태호 작가가 미스터리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동력이 살아있기에,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반면 강우석 감독은 미스터리를 거세했습니다. 그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영화 초반, 박민욱 검사(유준상)의 말을 빌려 영화 제목의 뜻마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책이야 독자 자신의 호흡에 맞추어 읽을 수 있지만, 영화는 한자리에서 한 번에 감상해야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화나는 것은 강우석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을 단순히 구경꾼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입니다. 『이끼』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독자들이 미스터리에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화는 매 회마다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과 해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럼으로써 텍스트는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사건→설명→사건→설명'의 순으로 이야기를 연결해, 관객들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의자에 앉아 팝콘을 먹고 콜라를 마시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만하면 됩니다. <이끼>는 관객이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캐릭터 역시 아쉽습니다. 굳이 원작과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영화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캐릭터들은 모두 텅 비어있습니다. 유해국(박해일)이 왜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에 집착하는지, 박민욱 검사는 왜 유해국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지 전 도통 모르겠습니다. 유목형(허준호)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장(타락천사)처럼 보이고, 전석만(김상호), 하성규(김준배), 김덕천(유해진)의 폭주는 뜬금없이 보입니다. 강우석 감독은 원작과 실제 배우들의 이미지에 기대어 이 캐릭터들을 그려냈습니다.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다면, <이끼>의 캐릭터들은 영화 안에서는 도저히 이해불가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원작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모두 담으려는 강우석 감독의 야심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상업영화로선 재앙인 3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이지만, 영화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저 정신없이 허겁지겁 진행될 뿐입니다.  

강우석 감독은 『이끼』를 <공공의 적 2-1>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장(정재영)이라는 거대한 악(惡)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정의(正義)의 검찰 박민욱 검사와의 한 판 대결! 이건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보입니다. 원작과 비교하면 박민욱 검사의 비중이 굉장히 커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필요 이상으로 검찰청 직원들이 일하는 장면과 회의하는 장면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압권은 이장과의 만남이지요. 원작에서도 언급되어 있는 부분이지만, 강우석 감독은 이 장면을 참으로 오그라들게 찍었습니다. 주인공 유해국이 한 일은 사건의 전말을 박민욱 검사에게 전달했을 뿐입니다. 영화의 절정부에서 가장 멋있게 극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박민욱 검사입니다. 영화가 6월에서 7월로 개봉한 이유가, 월드컵 때문이 아니라 '떡검파문'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괜스런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공공의 적 2> 강철중 검사

<공공의 적 2-1> (혹은 <이끼>) 박민욱 검사

 

원작에서 '이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축축하고 습기 찬 미끌미끌한 것이 손에 들러붙는 듯한, 그래서 불쾌한' 느낌이었습니다. 실제로 만화의 분위기도 이런 것들이 주인공 류해국에게 '들러붙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이끼>는 너무도 매끈합니다. <이끼>는 원작에 대한 오독이자 관객에 대한 모독입니다.  

 

 

*덧붙임:  

1. 그렇다고 영화가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화 자체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한반도>도 그랬습니다.  

2.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명지(유선)입니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그녀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그에 반해 다른 캐릭터들은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전석만이 유해국을 뒤쫓는 장면은 <13일의 금요일> 시리즈가 떠올라 혼자 박장대소했던 장면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도끼를 들고 느릿느릿 걷는 김상호 씨의 모습은 제이슨의 재림이었습니다. +,.+

4. 원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영화에서는 너무 허겁지겁 묘사했습니다. 과감한 각색이 아쉬운 장면입니다. 원작의 팬이라면 이런 장면이 너무 많다는 점이 아쉽지만요...






댓글(2) 먼댓글(1)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이끼moss, 2010 _비평 (심각한 스포일러 경고)
    from 예촌의 영화영상연예 블로그 II 2010-07-16 19:47 
    (심각한 스포일러 경고, 더불어 쓰지 않으면 평론을 제대로 완결할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스릴러물임에도, 스포일러 유출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원작 웹툰 자체가 이미 거대한 스포일러이기 때문이다. 어쨋든 스포일러성이 강한 몇몇 문장은 흐린 회색 처리(나중에 복구 예정) 하였다. 영화 독특하고 전율적인 스릴러, 그러나 다소 이끼가 낀 감독 강우석은 다시 한번, 한국 영화의 여전한 주류 트렌디 요소인 '비주얼' 보다는 '내러티브',..
 
 
잉크냄새 2010-07-1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장역에는 변희봉 선생이 제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Seong 2010-07-16 16:19   좋아요 0 | URL
아마 그랬으면 더 탄탄한 구조의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 목에 방울걸기 같아요. 자신만의 비전이 없다면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