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 - Three Bad Men In A Hidden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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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를 수직, 수평으로 오가는 구로사와 감독의 활극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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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13 (21)
        타이틀 Chckmate
        각본 Harley Peyton
        감독 Todd Holland
        방영일 1991
년 1월 19일 
 

 

 

1. 이야기  

DEA 요원 드니스 브라이슨과 데일 쿠퍼는 어니 나일스를 이용해 마약 거래 현장을 급습, 데일의 혐의를 벗기려 하지만 실패하고, 데일은 장 르노에게 인질로 잡힌다.  

앤디와 딕은 꼬마 니키의 비밀을 독자적으로 캐기 시작한다. 벤자민 혼은 점점 남북전쟁 놀이에 빠져들어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제임스 헐리는 에블린 마쉬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고, 급기야 살인을 저지를 결심을 한다.  

빅 에드 헐리와 노마 제닝스는 그들의 사랑을 견디지 못해 결국 선을 넘고 만다. 행크 제닝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빅 에드에게 주먹다짐을 하지만, 네이딘 헐리가 행크를 묵사발로 만든다.  

바비 브릭스는 벤자민 혼에게 얻은 직업을 핑계로 셜리를 떠난다. 그날 밤, 정전이 일어나고 리오 존슨이 깨어난다. 그리고 같은 시간, 데일의 전 파트너 윈덤 얼이 보안관 사무실에 끔찍한 메시지를 남긴다.  

 

 

 

2. 위선과 허위의 장치  

장 르노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데일 쿠퍼라는 인물에 집착을 했었다. 처음엔 그저 구실일 뿐이라 생각했으나, 그의 한결같은 집착은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데일이 장의 인질로 잡히고 서로 대면하고 나서야 우리는 드디어 그 이유를 듣게 된다.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 <트윈 픽스>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다.  

쿠퍼: 내 죽음이 그렇게 의미가 있나?
르노: 내 동생들이 죽었어.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지.
쿠퍼: 난 베르나르를 딱 한 번 봤어. 자끄의 경우 역시, 난 그를 체포했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
르노: 하지만, 다 당신 탓이야, 쿠퍼 요원 나리.
쿠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르노: 당신이 여기 오기 전까지, 트윈 픽스는 평범한 곳이었어. 내 동생들은 트럭 운전사들과 10대 아이들에게 마약을 팔고, 애꾸는 잭은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과 사업가들을 맞이했지. 조용한 사람들은 조용한 삶을 살았어. 그런데 한 예쁜 여자아이가 죽었지. 그리고 당신이 이곳에 왔어.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지. 내 동생 베르나르는 총에 맞고 숲 어딘가에 묻혀있어.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베게로 살아남은 내 동생을 질식사시켰지. 방화, 유괴. 계속되는 죽음과 파괴. 갑작스럽게. 이곳의 조용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조용한 삶을 살지 않아. 사람들의 평범한 꿈이 악몽이 되어 버렸거든. 그러니까 너만 죽어주면, 아마 모든 게 끝날 거야. 네가 여기 올 때 악몽을 몰고 왔을 테니까.   

 

데일은 이곳 트윈 픽스에 와서 대도시에선 느낄 수 없었던, 지금은 잊힌 미국적인 가치(품위, 명예, 존엄성 등)를 느꼈다. 하지만 이곳은 특별한 곳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마을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가식과 허위, 위선으로 마을의 평화로움을 지키고 있었고 그것이 곧 질서가 되었다. 마을의 이런 기형적인 질서에 기생해 지내던 장은 이 질서의 무너짐에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했고, 이 모든 원인을 데일 쿠퍼에게 돌리고 있다. 그는 마을의 시스템과 상관 없는 인물이 중심에 자리잡게 되면, 그 질서는 무너지기에 충분한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트윈 픽스의 가식과 위선을 모두 들추어내길 바라는가, 아니면 여기서 그만 덮어버리길 원하는가. 조금은 다르지만, 김훈 작가도 이와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옮긴다.  

 

   본래 조악한 것일수록 당당한 외양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내가 사는 이 무인지경의 산골마을에서도 밤이면 강 건너 러브호텔의 불빛은 찬란하다. 러브호텔들은 그 조악한 건축양식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네덜란드풍의 풍차나 이슬람 양식의 돔 지붕, 디즈니랜드풍의 뾰족지붕과 어렸을 때 읽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술의 성이 국토의 구석구석에 창궐하였다.  

   이제 러브호텔에는 도농(都農)의 격차가 없다. 본래 욕망은 평등한 것이다. 전에 살던 서울의 외곽 신도시에도 러브호텔은 창궐했다. 러브호텔 사이사이에 교회가 수없이 들어섰다. 큰 사찰도 세워졌다. 러브호텔은 지붕의 외곽선에 네온사인을 둘렀다. 교회의 십자가도 네온사인이었고 사찰의 용마루 곡선도 네온사인이었다. 밤마다 그 거리는 성(聖)과 속(俗)이 뒤엉켜 번쩍거리며 욕망의 분화구와도 같은 세속도시의 장관을 이루었다.  

   그 신도시는 러브호텔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민들과 허가를 내준 행정기관 사이에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분노한 기독교인들은 ‘종말이 가까워왔다. 회개하라’는 현수막이 걸린 트럭을 저녁 무렵의 러브호텔 앞에 세워놓고 죄 많은 세상을 통탄했다.  

   그 신도시 주민들은 자꾸만 번져가는 러브호텔에 대한 도덕적 분노로 끓어올랐다. 연일 시위가 벌어졌다. 시장과 교육감은 속수무책으로 쩔쩔맸다. 시장은 시위대 앞에 나와서 "러브는 규제대상이 아니다. 행정력으로는 러브를 막을 수 없다"라고 절규했다. 좀 희화적이기는 하지만 시장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행정력뿐 아니라 군사력이나 경찰력을 동원해도 러브를 막을 수는 없다. 종교나 교육의 힘도 러브 앞에서는 무력해 보인다.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겁주어서 될 일도 아니다. 욕망에는 종말이 없고, 욕망에는 회개가 없다.  

   시장의 그 절규는 틀린 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사람이란 뻔한 일을 대놓고 뻔하게 말해주면 약올라하게 마련이다. 그러자 행정력을 동원해서 러브호텔 주차장의 비닐커튼을 걷어내라는 분노의 함성이 일었다.  

   이것은 될 일이 아니다. 호텔 주차장 입구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가려주는 이 비닐커튼은 그 신도시의 평화를 지켜주는 완충장치다. 이 커튼을 걷어내면 가정은 거덜 나고 불화는 증폭된다. 비닐커튼은 물론 위선과 허위의 장치다. 세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위선일 때가 많다.  

   현행법에는 학교 울타리로부터 150미터 안에는 숙박업소를 허가해주지 않도록 되어 있다. 아이들이 150미터 안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산지사방으로 다니면서 논다. 그러니 이 150미터 안에 무슨 유효한 도덕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나마 부질없는 장치라도 있어야 세상은 덜 민망하고 덜 쑥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비닐커튼이 부도덕하고 150미터 규정이 도덕적인 것도 아니다. 다 똑같은 것이다. 세속도시에는 그 두 개가 다 필요하다.  

   아마도 선(善)이 악(惡)을 몰아내는 방식으로 세속도시의 러브를 몰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러브호텔들이 그 내부에서 세련된 익명성을 완성하듯이 그 건물 외양에도 그 같은 은밀성을 도입해서 점잖은 위선의 포즈를 갖는 일이 필요하다. 러브로 장사를 하려면 제발 좀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비닐커튼 시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러브호텔을 애용하는 남녀들은 되도록 학교 근처 호텔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불륜을 하더라도 이만한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지금 러브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권장하지 않더라도 러브는 더욱 번창할 것이다.

데일은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그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 트윈 픽스는 (말 그대로) 지옥이 된다. 이것은 시리즈 마지막 회에서 다룰 것이다.  

 

 

 

3. 러브  

<트윈 픽스>의 절반은 로라 파머(와 그를 죽인 범인)에 관한 이야기였고, 나머지 절반은 마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로라 파머의 살인 사건이 (표면적으로) 해결된 이후, <트윈 픽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중 이번 회에서는 그동안 벌렸던 사랑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회에서 언급하는 사랑은 모두 불륜이라는 점이다.  

 

  

3-1. 노마 제닝스 & 빅 에드 헐리  

에드: 먼저 얘기해.
노마: 알았어. 내가 잠들 때, 가장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건 너야.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 가장 먼저 내 맘에 떠오르는 것도 바로 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줄어들어서 결국에는 우리가 서로 떨어져 지낼 것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괘념치 않아.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잖아, 에드. 그리고 우린 견뎌낼 거라 생각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동안 그토록 지키고 있던 선이 한 번에 무너진 것은 에드의 부인 네이딘의 기억상실과도 관련이 있다. 에드는 네이딘이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 노마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네이딘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 때, 그의 죄의식은 옅어졌으며, 노마에게 그간 가두어놓았던 감정을 발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드는 노마의 남편 행크를 잊고 있었다.  

"오, 에드. 우리가 사랑 때문에 하는 짓 좀 보라지." 

 

 

3-2. 네이딘 헐리 & 마이크 넬슨  

네이딘: 마이크 넬슨, 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멋진 남자야! 난 널 진짜로 좋아할 수 있어, 네가 나랑 데이트만 한다면!   

네이딘은 10대의 규정지을 수 없는 생동감과 충동감으로 마이크에게 직접 행동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를 괴물 취급하며 피하기만 하던 마이크도 조금씩 심경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3-3. 제임스 헐리 & 에블린 마쉬  

제임스: 왜 남편이 때리는 대로 맞는 거죠?
에블린: 남편이 곧 떠날 거야. 난 네 도움이 필요해. 도와줄 거지?   


에블린은 자신의 매력을 한껏 이용해 순진한(로라의 말에 따르면 멍청한) 제임스를 농락한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계속 남편에 대한 암시를 준다. 게다가 에블린의 오빠 말콤도 계속 제임스를 자극한다. 결국 제임스는 이들에게 넘어가지만, 그들이 예상치 못한 점이 있었다. 에블린이 제임스를 정말로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닳고 닳은 뻔한 이야기지만.  

 

 

3-4. 바비 브릭스 & 셜리 존슨  

바비: 넌 지금 벤 혼이 가장 신뢰하는 직원을 보고 있는 거야. “절호의 기회”라는 말이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이건 나한테 정말 큰 기회라고. 그리고 이건 리오 존슨을 거품 목욕 시키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야.
셜리: 그럼 나는? 난 뭐 할 일이 없는 것 같아?
바비: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은데.   

바비는 보험금을 타려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온갖 감언이설로 셜리를 꼬드겨 그 끔찍한 리오 존슨을 감옥 대신 집에서 간호하게 됐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나 적은 보험금에 실망한 바비는 셜리를 떼어 놓고 자신만의 길을 떠난다. 남편 리오나 애인 바비나 다 그나물에 그밥인 놈들만 만난 셜리는 기막힐 따름이다.  

  

3-5. 조시 패커드 & 해리 S. 트루먼  

트루먼: 당장 우리 집으로 옮겨요. 어서.
조시: 여기가 제가 머물 곳이에요.
트루먼: 모든 것을 내게 다 이야기한 후에도? 캐서린과 함께 있는 곳이 집이라고?
조시: 다른 선택이 없어요.
트루먼: 내가 당신을 보호하게 해줘요.
조시: 아직도 이해 못하겠어요? 난 여기가 안전해요. 그런 만큼 당신도 안전해지고요.
트루먼: 난 당신을 원해요. 좋건 나쁘건 내겐 상관없어요.   

조시가 굳이 온갖 모욕을 감수하며 캐서린의 집에 머무는 것은 트루먼 보안관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트루먼과 멀리 떨어지고, 캐서린과 같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나쁜 상황을 겪더라도 최소한 혼자만 당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하지만, 캐서린은 이미 겹겹의 안전 막을 쳐놓은 상태다. 조시는 캐서린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  

 

 

3-6. 캐서린 마르텔 & 벤자민 혼  

캐서린: 사실이야. 난 여기 비웃으러 왔어. 당신은 날 속였어. 당신은 날 죽이려고도 했지. 그리고 난, 이와 같은 훌륭한 이유로 인해, 당신을 아주 깊숙이 묻어버리려 했지. 먼 훗날 미래의 아이들이 땅을 파서 당신의 유골을 전시하기 위해서. 그 밑엔 이렇게 쓰여 있겠지. "비열한 미국인 쥐새끼: 먹이를 주지 마시오. 믿지 마시오."
벤: 내 생각에도, 난 전혀 믿음이 가지 못한 놈이야.
캐서린: 집어치워.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게 준 그 모욕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여기에 왔어. 당신을 원하기 때문에.
벤: 농담이 지나치군.
캐서린: 난 당신을 원해, 벤. 그런 사실이 무섭긴 하지만,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 당신은... 내 몸을 깨어나게 하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캐서린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벤자민을 능욕함과 동시에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왔다. 정말 무서운 여자다.  

 

 

 

4. 기억할만한 지나침  

브릭스 소령과 관련 있는 공군의 ‘블루 북 프로젝트’는 UFO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만, 트윈 픽스에서는 ‘하얀 오두막’과 관련이 있다. 트윈 픽스 인디언들의 전설에서 시작한 하얀 오두막은 정부가 개입된 거대한 사건으로 보인다. 비밀을 숨기는 자와 비밀을 풀려는 자의 이야기. 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드니스 브라이슨이 처음으로(!) 남장을 했다. 데이빗 듀코브니의 팬들은 이제야 감격의 눈물을 흘릴 듯 하다.   

 

윈덤 얼이 움직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과격한 방법을 사용해서. 시체의 신원은 외부 사람이다. 윈덤 얼이 앞으로 살해하는 사람은 모두 외지인들이다.  

 

 

 

5.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생각의 나무
- 『TWIN PEAKS #2.013』 스크립트, 7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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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라쇼몽 - Rash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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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은 인간의 불신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정말 간단합니다. 한 나무꾼(시무라 다카시)이 숲에서 나무를 하던 중, 무사(모리 마사유키)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범인이 잡히는데, 그는 이 근방에서 유명한 산도적인 타죠마루(미후네 도시로)입니다. 그리고 이 살인 사건에서 몸을 피한 무사의 아내(교 마치코)가 관청에 불려옵니다. 이들은 각자 사건을 진술하는데, 큰 줄거리는 대략 맞으나, 자세한 내용은 각기 다릅니다. 관리는 무당을 통해 죽은 무사의 혼을 불러 진술을 듣지만, 귀신의 진술 또한 이들과 각기 다릅니다. 진실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지켜본 나무꾼만이 알고 있습니다.  

타죠마루, 무사, 그리고 그의 아내는 각기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진실을 새로 구성합니다. 타죠마루는 무사의 아내를 보고 음심이 발동해, 무사를 함정에 빠뜨려 묶은 후, 그의 아내를 겁탈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진실입니다. 문제는 이 이후부터 각자의 상황에 맞게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타죠마루의 기억 속에서, 그는 무사의 아내를 데려가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된 이상,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승부를 걸어 자신을 택해달라는 말에 타죠마루는 무사와 긴박한 일전을 벌이고 그를 죽입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무사의 아내의 기억 속에서, 타죠마루는 그녀를 겁탈하고 그냥 떠나버립니다. 아내는 무사에게 다가가 눈물을 흘리지만, 무사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봅니다. 단검을 꺼낸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지 말라고 말을 하다 정신을 잃습니다. 그녀는 무사를 죽인 것입니다.  

무사의 기억 속에서, 타죠마루는 그의 아내와 함께 떠나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된 이상, 남편을 죽여 달라고 합니다. 분개한 타죠마루는 부인을 짓밟고 무사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더러운 년을 죽여 버릴까?" 그리고 그는 무사를 풀어주고, 알아서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부인을 보내고, 그는 단검으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영화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이 일련의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사악한 동시에 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약함을 숨기는(혹은 드러내는) 방어기재입니다. 결국 이런 것들이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이끌게 됩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의 세상은 곧 지옥입니다.   

 

<라쇼몽>에서 구로사와 감독은 인간의 체면과 욕심이 불신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들은 모두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만을 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체면과도 관계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을 다 본 나무꾼이 관청에 진실을 진술하지 않은 것은, 그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진귀한 단검을 주었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에 덕지덕지 붙은 이런 찌꺼기들을 제거하면, 인간은 불신의 벽을 넘어서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희망이 얼마나 실현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간절히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패전 후 재건의 몸부림을 치는 일본에 살면서, 그리고 바로 옆 한 때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 살육으로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 자신의 조국을 보면서, 구로사와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요? 그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왜 불신으로 시작했을까요? 만든 지 60년이 지난 영화이지만, <라쇼몽>은 여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소 도식적으로도 보이지만, 도저히 외면하고 포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희망에 대한 결말은 그래서 진한 감정의 여운을 남깁니다.  

 

 

*덧붙임:  

<라쇼몽>은 아시아 최초로 해외 영화제(베니스)에서 수상한 영화입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출품한 사실도 몰랐으며, "황금사자상이 뭐야?"라고 한 말은 유명합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한 일본인을 구로사와 감독인양 대신 수상하게 했다고 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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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7-27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포스터 밑에 原作이 芥川龍之介라고 적혀 있는데, 그러고보면 원작보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고민이 훨씬 깊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구로사와 감독의 재능이겠지만요. 실제로 원작소설보다는 영화가 더 많이 회자되는 듯도 하구요.
'羅生門'의 뜻을 삶들이 그물처럼 펼쳐진 곳으로 새기면, 영화 속 캐릭터들은 그 그물의 갖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구요.

Seong 2010-07-28 09:42   좋아요 0 | URL
원작과 영화를 다 본 분들에 따르면,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원작은 산적, 무사의 아내, 무사의 영혼 이렇게 세가지 시선만 있었던 반면,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에는 진실을 목격하는 나뭇꾼의 시선이 첨가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원작을 못 읽어서...
아마도 <라쇼몽>을 가장 잘 창의적으로 이용한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

굿바이 2010-07-27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쇼몽>을 연극으로 다시 보았는데, 영화로 볼 때와 다르게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의 진술이 진실인지 그것이 참 궁금했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에서 진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왜 거짓을 만들어 내는지, 그것을 통해 획득하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 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여전히 봐야 할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Seong 2010-07-28 09:46   좋아요 0 | URL
연극은 어떻게 무대를 꾸밀지 궁금하네요. 영화와 같은 이야기를 차용했다면, 무대가 적어도 8번에서 12번은 바뀌어야 할텐데... 장소도 3군데로 한정되어 있고...
세월이 흘러도 남아있는 고전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아쉬운점은, 영화는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발전하기에, 세월이 흐르면 굉장한 작품이더라도 낡아보인다고 할까... 그 낡음이 촌스러움으로 느껴져 대중이 외면하는 사실은 꽤 안타깝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영화에서는 축복이자 저주에요...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요짐보 - Yojimbo the Bodygu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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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用心棒)>를 보면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특히 <요짐보>는 그 정점이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느끼는 모든 설렘이 다 들어있습니다. 매력적인 주인공, 경계에서 위태롭게 움직이는 이야기, 악의 한복판에서 빛나는 휴머니즘, 그리고 장쾌한 액션! 이것만으로도 현대의 관객들이 열광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텐데, 구로사와 감독은 이 이야기에 자신만의 인장을 추가합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어느 이름 없는 무사(미후네 도시로, 영화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쿠와바타케 산주로[桑畑三十郎]라 밝히지만, 이는 '뽕나무밭'과 '서른 살'이라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가 한 마을에 들어갑니다. 이 마을은 비단과 유곽을 장악한 세이베이 패거리와, 술과 노름을 장악한 우시토라 패거리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마을은 이들 패거리의 싸움으로 매일 관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제대로 살지 않고 한탕을 위해 이들 패거리에 몸을 의탁하는 실정입니다. 이름 없는 무사는 양쪽 패거리의 욕심을 이용해 요짐보(보디가드)를 자청한 후, 각자의 세력을 약화시킵니다. 하지만, 우시토라 패거리에 똑똑하고 총을 쓰는 우노스케(나카다이 타츠야)가 돌아오면서, 그리고 방관만 하던 이름 없는 무사가 다른 사람의 아내이자 어머니를 갈취한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면서, 팽팽하던 마을의 세력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요짐보>의 세계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계입니다. 마을엔 항상 비가 내리거나 마치 황무지인양 강한 돌풍이 붑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살기 보다는 한탕을 위해 삽니다. 어른들은 이런 젊은이들을 향해 한숨짓거나 혹은 세이베이가 아들에게 하는 말처럼, 더 독하게 만들 뿐입니다. "도둑질이나 살인을 하지 않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정신 바짝 차려!" 이름 없는 무사는 이런 혼란스런 세상에 들어와서, 이들 악의 세력을 없애버릴 생각을 합니다. 그는 (이미 충만한, 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심을 부추겨 세력싸움으로 서로 살인을 저지르게 합니다. 아니, 살인이라기보다는 '제거'라고 하는 표현이 낫겠죠. 그는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친놈들을 서로 자멸하게 만듭니다. 큰 싸움을 벌려놓고 망루에 올라가 낄낄거리며 세이베이와 우시토라 두 패거리의 싸움을 지켜보는 모습은 영락없는 '죽음의 신(死神)'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조롱하며 방관하던 이름 없는 무사가 이들의 세력싸움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계기는 인간에 관한 일입니다. 우시토라 패거리는 자신의 오야붕(親分)이 원하는 여자를 바치는데, 그녀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입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그저 눈물만 흘리는 이들 부자를 보고 이름 없는 무사는 칼을 빼들고 여인을 구하고, 이 가족을 다른 곳으로 보냅니다. 이런 결정은 그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것을 알지만, 그는 그 위험을 감수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쳤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인륜은 저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짐보>에서 액션의 쾌감은 대단합니다. 실제 칼과 칼이 부딪히는 장면도 대단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투에 다다르기까지의 '무드'입니다. 악(惡)만 남은 세상, 미친 듯이 불어대는 황량한 바람, 서로 칼을 들고 긴장하는 모습. 정말이지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한없이 늘이고만 싶은 영화의 시간! 구로사와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시네마틱 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리즈시절, 이 영화를 완전히 베껴 <황야의 무법자>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요짐보>가 구로사와 감독이 그토록 존경했던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의 설정을 가져온 것이긴 했지만, 그는 분명 창조적으로 변형했습니다. 하지만, <요짐보> 이후의 서부극(!)은 그저 이 영화를 답습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만큼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을 만큼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는 방증이겠지요.  

영화의 마지막, 모든 악을 깡그리 처단하는 이름 없는 무사는 영화 오프닝에서 본, 우시토라에게 붙겠다던 마을 청년을 봅니다. 이름 없는 무사는 그 청년의 부모에게서 물을 한 모금 얻어 마셨지요. 이름 없는 무사는 그 청년을 죽이는 대신 호통을 칩니다. "제대로 살아갈 생각을 해!" 그 호통은 그가 부모에게 전하는 물 값이자, 구로사와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너무 진부한 메시지라고요?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살아라!" 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진심으로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화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덧붙임:  

믹 잭슨 감독의 <보디가드>에서 보디가드 역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가 극장에서 <요짐보>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난, 이 영화를 서른 번도 넘게 봤어요." 산주로(三十郎)에 대한 멋진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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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보고 싶다하면 막 찾아서 대령하는 그런 남친이 가지고 싶어졌어요ㅋ

Seong 2010-07-29 07:23   좋아요 0 | URL
꼭 찾으실 거예요 :D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7월 4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소재로만 봤을 때, 그다지 참신한 영화는 아닙니다. 꿈과 현실, 기억과 망상이란 이야기는 이미 영화사 100년간 숱하게 써먹은 이야기 중 하나니까요. 그리고 이런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장쾌한 액션에 풀은 영화는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에서 한 번 겪었습니다. <인셉션>은 21세기의 <매트릭스>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영화를 가지고 굉장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저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떠들어대는 할리우드 영화가 관객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게 만든다는 점은 놀라운 현상임이 확실합니다.  

<인셉션>이 놀라운 점은, 영화의 문법을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 접목시켰다는 점입니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동료인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와 의뢰 대상인 로버트 피셔(킬리언 머피)에게 꿈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명확해집니다. "지금 앉아있는 이 카페에 어떻게 왔죠? 과정이 생각나나요? 꿈이란 게 그렇죠. 항상 중간부터 생각이 나지, 명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아요." 영화는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매체입니다. 상영시간이 20시간이건, 1분이건, 컷이 일만 컷이건, 단 한 컷이건 간에,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 붙인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영화에서는 편집이라는 유용한 방법으로 잘라 붙여지는 것이죠. 이런 영화만의 문법을 놀란 감독은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즉,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코브의 꿈일 수도 있고, 놀란 감독 자신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로 놀란 감독이 우리에게 '인셉션'을 한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거의 다 끝나갈 때 갑자기 들리는 에디뜨 피아프의 노랫소리에 흠칫 놀란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셉션>은 꿈의 미로를 빠져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놀란 감독은 친절하게도 꿈에 각각의 단계를 구분하여 설명해줍니다. 각 단계로 진입할수록 빠져나오는 방법은 쉽지 않으며, 자칫 림보에 빠져 영원히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꿈을 설계한 아리아드네는 미로를 만들었지만, 코브를 데리고 나오는 역할도 합니다(미노타우로스 왕궁에서 테세우스를 구출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이 영화는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더 중요해보입니다. 놀란 감독은 이야기를 비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과정을 충실히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꿈의 미로를 탐사하는 영화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디서부터가 꿈인지 현실인지, 그리고 누가 꾸는 꿈인지 도통 알 수 없게 찍었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영화의 내러티브와는 별 상관없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문제는 이 상관없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 장면들로 인해서 이 영화는 베티 엘름스(나오미 왓츠)의 꿈일 수도, 다이엔 셀윈(또다시 나오미 왓츠!)의 꿈일 수도 있으며, 또는 리타 해이워드(로라 해링)의 혹은 카밀라 로즈(또다시 로라 해링!)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 둘 혹은 넷이 꾼 꿈을 한데 뒤섞은 것일 수도 있지요. 놀라운 점은 영화를 보는 이가 아무리 애를 쓰고 영화를 풀어도 정확히 갈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의도적으로 꼬아놓아, 영화를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길을 잃게 만들어 버립니다. 꿈속의 미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 끔찍한 악몽! 어쩌면 꿈이란 기억해내고 이해하려하며 해석하려는 순간부터 길을 잃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꿈에 들어가는 이야기 중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는 곤 사토시 감독의 <파프리카>입니다. 정신의학 연구소에서 개발한 'DC미니'는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아직 불안정한 관계로 상용화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의 치바 아츠코 박사는 '파프리카'란 이름으로 몰래 이 기계를 이용해 의뢰인들의 정신 치료를 하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개발 중인 DC미니 3개가 사라지고, 연구원들이 하나 둘씩 공격을 받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DC미니를 이용해 꿈속으로 들어가 정신적으로 가둬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건은 갈수록 오리무중이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현실이 꿈과 뒤섞이는 일이 발생합니다.

치바 아츠코는 꿈을 통해 인간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트라우마를 치료합니다. 인간 무의식에 깊숙이 박혀있는 트라우마의 원인을 알기 위해 꿈속에 들어가 종횡무진 하는 파프리카의 모습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우리의 꿈이 논리가 없고 이리저리 헤매는 것처럼, 파프리카가 탐사하는 꿈 역시 정신없습니다. 영화로 치자면, 매 컷마다 장르가 바뀌는 것과 흡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꿈이 일상과 관계가 있듯이, 그 계통 없는 꿈도 하나의 흐름을 꿸 수 있습니다. 그렇게 꿈을 통한 치료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됩니다.

<인셉션>에서 거대 재벌 사이토(와타나베 켄)는 자신의 경쟁사인 회사를 해체하기 위해 코브에게 인셉션을 부탁합니다. 상속자인 로버트 피셔의 마음에 "아버지의 회사를 쪼개라"는 생각을 심는 것이죠. 피셔의 아버지가 로버트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들 부자관계는 냉랭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자신에게 했던 말은 "실망했다"는 말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로버트는 자신의 무의식에서 아버지의 유언을 듣습니다. "(나처럼 되지 못해서 실망한 게 아니라) 네가 나를 닮으려고 하는 것에 실망했다." 분명 로버트가 자신의 무의식에서 본 것은 코브가 심은 것일 겁니다. 코브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이토의 의뢰를 성공시켜야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야 어찌 됐든, 이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로버트 피셔는 자신의 깊은 무의식 안에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인셉션>의 결말이 어쨌든 간에, 로버트 피셔에게는 분명 해피엔딩일 것입니다.  

하지만 로버트 피셔의 경우가 과연 긍정적인 결과인지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파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무의식의 의식을 넘어설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꿈을 지배하게 되고 꿈이 현실이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단번에 지옥이 됩니다. 꿈에서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이죠. 피셔는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코브가 심어놓은 것에 반응하고 움직였죠. 만약 "나 같은 건 죽어도 싸"라는 문장을 심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무의식을 조종한다는 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입니다. <파프리카>는 그 지옥도를 확실히 보여줍니다.  

 

<인셉션>에는 꿈의 단계가 있습니다. 꿈속에서 죽으면 바로 현실로 돌아오지만(잠에서 깨어나지만), 만약 약물로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 꿈은 림보로 진입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 무의식의 가장 밑바닥이죠. 이 무의식의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 현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죠. 코브의 아내 맬(마리안 꼬띠아르)도 그래서 자살했습니다.  

이토 준지는 단편 「기나긴 꿈(長夢)」에서 이 문제를 그렸습니다. 무코다 데츠로는 2개월 전 뇌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꾸는 꿈의 기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꿈의 내용이라도 즐거우면 좋을 텐데, 불행히도 그가 꾸는 꿈은 악몽입니다. 그의 꿈은 현실을 압도할 정도로 생생하고, 고독하고, 추잡하며, 두렵습니다. 일례로 그는 전쟁에서 적을 피해 10년간 정글에 숨어 있는 꿈을 꿨습니다. 대학 입시로 9년간 밤을 새며 공부를 하는 꿈을 꾸고, 화장실을 8년간이나 찾아다니는 꿈을 꿉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웃기는 일이지만, 본인에게는 정작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꿈을 꾸는 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지면서, 그는 마치 인간이 긴 시간에 걸쳐 진화를 한 것처럼, 겉모습이 변해가며, 현실을 꿈으로 생각하고, 꿈을 현실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를 진찰하는 의사는 생각합니다. 만약, 이 환자가 영원한 꿈을 꾸게 된다면, 이 사람의 육체는 어떻게 될까?  

이토 준지는 질문합니다. "인간이 꿈속에서 영원을 살게 된다면, 인간은 꿈을 선택할까 아니면 현실을 선택할까?" 놀란 감독은 이 질문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당신이라면, 행복한 꿈속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비참한 현실에서 살 것인가?" 마침내 그토록 꿈에서 그리던 아이들과 해후한 코브는 이 상황이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코브의 토템(팽이)이 돌아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팽이가 계속 돌면 꿈이고, 쓰러지면 현실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돌고 있는 팽이를 보여주다 갑자기 끝납니다. 놀란 감독은 우리에게 대답을 미뤘습니다. 어떤 대답을 하건, 영화를 본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셉션>은 놀란 감독이, 꿈꾸는 우리를 깨게 만드는 '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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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7-27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캡쳐 이벤트>를 합니다.
참여해 주세요~ ^^

Seong 2010-07-27 09:06   좋아요 0 | URL
저도 참여해도 되나요?
와~ 고맙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