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사무라이 - The Seven Samu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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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감독의 경이로운 활극 액션! 활동사진의 쾌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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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벡 로니 스콧 라이브 - Jeff Beck at Ronnie Scot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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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공연, 멋진 연주. 다만 실황이 아닌 필름으로 봐야하는 서글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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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TV 시리즈-1990) - [초특가판]
토니 리차드슨 감독, 버트 랭카스터 외 출연 / DVD 2002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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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리처드슨 감독이 1990년에 연출한 <오페라의 유령>은 2부작 미니시리즈입니다. 편당 1시간 30분가량으로 두 편을 합치면 3시간이 넘는 엄청난 러닝타임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다른 판본의 <오페라의 유령>에 비해 한결 여유로운 진행을 합니다. 중요한 모티프는 가스통 루르의 원작소설에서 가져왔지만, 디테일한 요소들은 조금씩 바꾸었으며, 새로 들어온 인물이나 사건도 있습니다. 유령-에릭의 부모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과도한 플래시백이 두 번 등장합니다. 하나는 라울 백작과 크리스틴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에는 없는) 유령-에릭의 부모 이야기입니다. 이런 플래시백은 영화에서였다면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치로 쓰여 역효과를 일으키겠지만,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중간 중간 광고가 삽입되어 극이 끊기는 드라마의 입장에서는 이런 플래시백이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지요. 오히려, 한 회의 드라마를 한 편의 영화처럼 받아들이는 대한민국의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어울리지 못하는 문법이기도 합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 혹은 단막극과 영화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따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가 의미 있는 것은 소설 『오페라의 유령』 영상버전의 완전판에 가까운 모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스터리 구조의 이야기와 크리스틴의 천상의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드디어 화면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미스터리 구조를 포기한 대신 멜로를 택했습니다. 영화의 초반에 미스터리의 주인공들이 패를 펼쳐놓기 때문에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의 긴장이 없습니다. 대신 유령-크리스틴-라울의 삼각관계가 펼쳐지고, 크리스틴은 이 매력적인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할 뿐입니다. 아! 이건 완전히 『공포의 외인구단』이야기입니다! 혜성과 동탁 사이에서 번민하는 엄지의 이야기이죠!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이 영화의 결말부를 소설이 아닌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에서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유령과 크리스틴이 서로 노래로 화답하는 것은 소설에는 없고 뮤지컬에만 있는 장면이지요. 아더 코빗의 각본은 뮤지컬을 너무 많이 참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소설과 뮤지컬 사이에 위치한 아쉬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기획된 것도 뮤지컬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오페라의 유령>은 이 드라마에 빚을 진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매력적인 배우들로 가득합니다. 크리스틴 다에를 맡은 테리 폴로는 역대 크리스틴에 비해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배우는 카를로타 역을 맡은 안드리아 페레올입니다. 온갖 악행과 온갖 고난을 겪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도저히 웃음을 견디기 힘들 지경입니다. 거대한 오페라 극장과 오페라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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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0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 주인공 정말 청순하군요.^^

Seong 2010-08-06 13:28   좋아요 0 | URL
<미트 패어런츠>시리즈에도 나왔다는데 어디에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반면 TV에서는 많이 활동했다는데, 제가 본 작품은 하나도 없어서...
ㅠㅠ

2010-08-06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7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할로 2013-07-04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팬텀을 연기하신 분의 이름은 뭐에요??

Seong 2013-07-11 08:0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크레디트를 확인해야 될 것 같은데, 지금 상황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phantom 2014-03-10 01:3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찰스 댄스입니다 ..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도 출연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팬텀이라 지나가다 댓글 달고 갑니다

Seong 2014-03-21 11:16   좋아요 0 | URL
phantom님,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이키루 - 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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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이키루(生きる)>의 뜻은 '살(아간)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사내의 엑스레이가 보입니다. 그리고 들리는 내레이션. "이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의 엑스레이 사진이다. 주인공은 위암에 걸려있다. 그는 얼마 살지 못한다." 아, 시한부 인생의 마지막을 다룬 영화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습니까! 그러나 <이키루>는 신파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죽음을 통해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민과 과장인 와타나베 다케(시무라 다카시)는 30년간 공직을 지켜온 공무원입니다. 그는 30년이란 세월을 그저 흘려보냈습니다. (영화에서 보이는) 공무원이란 직업은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딱히 일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관할이 아니란 이유로 다른 부서로 일을 미루는 게 일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속이 좋지 않은 와타나베는 병원에 가 진찰을 받는데, 위암 판정을 받습니다. 짧으면 반년, 길면 1년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와타나베는 두려움에 떨지만, 직장 동료는 물론이고 심지어 식구들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는 저금한 돈을 찾아 흥청망청 써보기도 하지만, 공허함과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옛 부하직원의 말에 따라,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해볼 결심을 합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탄원서를 읽고, 버려진 땅에 공원을 지을 계획을 합니다. 그리고 반년 후, 그는 죽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 관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일단, 공무원이라는 직군의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그의 영화에서 일관적으로 경찰을 무능하거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렸던 것처럼, 구로사와 감독은 공무원을 거의 혐오하다시피 그렸습니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에서는 말 그대로 '나쁜 놈'으로 그렸고, <요짐보>의 관리는 마을의 질서를 지키기는커녕, 악한 상태의 균형을 즐기는 인물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는 아예 관리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 사무라이들을 고용하지요. 심지어 <라쇼몽>에서 조차도 재판을 맡는 관리는 등장은커녕 목소리조차 존재하지 않으며, 사건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가장 호의적이었던 <천국과 지옥>에서조차도, 경찰들은 항상 늦습니다. 그들이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닌 유괴된 아이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이키루>에서는 이 공무원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초반부, 마을 주민들이 동네 공터에 공원 설립을 위한 민원을 제출하러 토목과에 옵니다. 이때부터 공무원들의 뺑뺑이가 시작됩니다. 각 과의 공무원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하면서 다른 부서로 가보라고 미룹니다. 토목과 → 공원과 → 보건소 → 위생과 → 환경위생과 → 예방과 → 방역과 → 충역과 → 하수과 → 도로과 → 도시계획과 → 구획정리과 → 소방소 → 아동복지과 → 시의회 → 부시장 → 시민과, 그리고 다시 토목과로 이어지는 이 무한궤도. 참으로 웃을 수만은 없는, 아직까지 이어지는 슬픈 현실입니다. 이 수많은 부서와 그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와타나베와 같은 인물들입니다. 모두들 미라입니다. 세월의 흐름을 견뎌내는 죽은 미라들. 마을 사람들의 항의로 이 문서는 일단 시민과에 접수됩니다.  

위암 판정을 받은 와타나베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모릅니다. 그는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지, 스스로 사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돈을 흥청망청 써보기도 하지만, 산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더욱 외롭고 허탈할 뿐입니다. 같이 사는 아들과 며느리는 이런 아버지의 변화에 대해 의심만 할 뿐 직접 묻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돈을 함부로(아버지 돈인데도!) 쓰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합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아버지의 돈이지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여러 번 아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가로막고 자기의 말만 합니다. 와타나베는 가족과 직장동료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오해받는 인물이 됩니다. 

살면서도 죽어있고, 이렇게 진짜 죽음을 향해 시나브로 삶을 갉아먹던 그가, 진정으로 살게 된 계기는 사직서를 제출하던 여직원 때문입니다. 와타나베는 그녀와 있으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는 위의 고통보다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슴의 통증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시간을 함부로 뺐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커피숍. 그는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녀는 간단히 대답합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기뻐요. 책상에만 앉아있는 공무원생활보다는 힘들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절 이렇게 밝게 만드는 것 같아요." 아주 간단하고 진리인 대답. 하지만, 이미 굳어진 공무원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하며 그녀를 남겨두고 자리를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때맞춰 흘러나오는 「Happt Birthday」노래. 그 노래는 새로 태어난 와타나베를 위한 축복의 노래입니다. 오랜만에 출근한 와타나베는 마을에 공원을 만들어달라는 탄원을 보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위대한 결말.   

 

전 <이키루>의 결말을 위대한 결말이라 부릅니다. 이 결말은 장장 40여분에 걸쳐 와타나베의 장례식을 보여줍니다. 다른 감독들이었다면, 한 5분 정도면 설명됐을 이야기를 구로사와 감독은 40여분에 걸쳐 보여줍니다. 네, 보여줍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의 처음은 온통 오해로 시작합니다. 마을에 공원을 설립됐지만, 정작 현장에서 뛴 와타나베는 무시당하고, 그 과실을 부시장을 비롯한, 부서의 장들이 나눠 갖습니다. 망자를 모독하는 이 역겨운 인물들을, 구로사와 감독은 그만의 방식으로 퇴장시킵니다. 그리고 남은 직원들끼리 편안하게 고인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와타나베는 자기가 죽을 줄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을까. 다른 감독이었다면 이 장면에서, 죽은 와타나베를 깨웠던 그 여직원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을 향해 호통치고 울면서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영화는 신파가 되었을 것이고, 그저 그런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그런 시시한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에 남은 인물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와타나베를 불러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가 마을의 공원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때론 지친 모습을 보여주고, 때론 죽음도 불사하며 이 일에 매달렸는지. 교훈은 배움을 얻지만, 고루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깨우치는 것은, 그만큼 힘이 들지만, 배움과 감동을 얻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재주를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정공법으로 파고듭니다. 이 영화가 위대한 영화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키루'라는 제목처럼,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죽음과도 같은 절박함에 가까워서야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을 얻은 공무원들은 그 다음날 다시 미라의 삶으로 돌아갔으니까요.  

지금 2010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이 영화는 큰 울림을 전해줍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꿈을 위해) 힘들게 '살아가기'보다는 (돈이 우선한) 편안한 '미라 같은 삶'을 원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우리들도 와타나베처럼 죽음을 앞에 두고 그 사실을 깨달을지 모르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덧붙임: 

이 영화가 아마 필름포럼에서 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10분마다 영화가 끊어지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문입니다. 

한 달간 즐거웠어요, 감독님.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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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8-0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로자와 감독 전문가가 여기 있도다! 대단합니다.

Seong 2010-08-07 08:21   좋아요 0 | URL
에구구...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

루체오페르 2010-08-0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모르는 영화였지만 내공 덕분에 빠져서 잘 봤습니다.

이키루...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참 어렵고도 위대한 일입니다,새삼...

Seong 2010-08-10 08:40   좋아요 0 | URL
볼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영화인 것 같아요. 이런 영화 한 편만 만들어도 부러울 일인데, 구로사와 감독은 이런 영화들만 만들었으니, 심히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런 마음도 들고... 질투와 경의를 동시에 느끼는 감독님이예요. :)
 
테이킹 우드스탁 - Taking Wood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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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 15일부터 3일간 뉴욕 주 북부 베델 근처 화이트 레이크의 한 농장에서 커다란 음악축제가 열렸습니다. 주최측은 10만명 정도로 예상했지만, 공식적인 집계는 30만명, 경찰측 집계는 대략 50만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음악과 평화 그리고 사랑과 마약에 탐닉했습니다. 이 축제는 히피들의 도피처 혹은 이상향의 실현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얻었지만, 정작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인종, 정치, 종교를 떠나 하나의 사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Music and Art Fair)은 이렇게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이안(李安)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사람들의 좌충우돌을 그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페스티벌에 참여한 화려한 뮤지션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컨트리 조 & 더 피시(Country Joe & the Fish), 더 후(The Who),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조 카커(Joe Cocker), 산타나(Santana), 텐 이어스 애프터(Ten Years After),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Butterfield Blues Band), 블러드(Blood), 스웻 앤 티어스(Blood, Sweat & Tears), 존 바에즈(Joan Baez), 알로 거스리(Arlo Guthrie),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Crosby, Stills, Nash & Young), CCR, 더 밴드(The Band),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 제퍼슨 에어플레인(The Jefferson Airplane), 라비 샹카(Ravi Shanka)- 의 실황 혹은 재연이라도 바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이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시대적 재현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거대한 이야기를 통해 한 가족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엘리엇 타이버(드미트리 마틴)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파산 직전에 직면한 모텔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멈추고 고향에 돌아와 삽니다. 그는 고향의 활성화를 위해 작년에 이어 뮤직 페스티벌을 유치하려 합니다. 바로 그 때 옆 동네 윌킬에서 거대한 음악 페스티벌을 취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이 마을에 그 페스티벌을 우여곡절 끝에 유치합니다. 그저 조금 큰 음악축제일줄 알았던 행사에 50만명이 몰려들자 한적한 마을은 거대한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인 축제에서 엘리엇은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짐을 배우게 됩니다.  

 

이안 감독은 우드스탁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재현을 포기한 대신, 그 행사를 기획한 엘리엇 타이버라는 인물과 그의 가족 이야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는 유대인이고 그의 부모는 지옥 같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지나칠 만큼 탐욕스럽고, 그의 아버지는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것 같이 생기가 없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화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안쓰러움으로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는 게이지만, 자신의 성향을 숨기며 지내고 삽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지만, "부모님 때문에"라는 생각 때문에 그는 그의 삶을 자꾸 미루어 버립니다. 이 아비규환의 축제 속에서 그는 자신을 돌아보고, (마약의 힘을 빌려) 부모님의 진짜 속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남을 위한 삶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기획합니다. 이런 거대한 음악 축제도 기획을 했는데, 그는 자신의 삶 정도는 충분히 기획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의 전작인 <결혼 피로연>, <아이스 스톰>, <브로크백 마운틴>의 궤에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안 감독이 그린 1960년대, 아니 히피들의 세계에는 낙천성이 있습니다. 공연 기획자 중 한 명인 마이클 랭(조나단 그로프)은 매사에 낙천적입니다. 계약을 파기해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도 그는 항상 밝습니다. "협의점을 찾을 거야. 모두들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니까." 이들의 낙천성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낙원으로 만들었지만, 이곳은 낙원이 아닌 현실의 도피처일 뿐입니다. 축제가 끝나고 끝없이 밀리는 차량에서 히피들은 탈진한 듯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낙원을 떠나는 아담과 하와를 떠올립니다. 다시는 돌아오질 못할 낙원. 푸른 목초지에서 황무지 혹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한 농장, 그렇게 1960년대는 저물어갑니다.  

영화의 말미, 마이클은 롤링 스톤즈를 내세운 다른 축제를 기획한다고 합니다. 영화는 여기에서 멈추었지만, 우리는 그 이후를 압니다. 알타몬트에서 개최된 롤링 스톤즈의 무료 콘서트에서 그들의 경호원이 한 흑인 청년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장면은 그들의 투어 필름 <김미 셀터(Gimme Shelter)>에도 고스란히 실렸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살육과 광기로 얼룩진 1970년대를 맞이합니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안 감독이 쓸쓸하게 바라본 히피들의 실낙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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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8-0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꼭 보려고 했는데 말이죠.
리뷰 잘 보았습니다^^

Seong 2010-08-06 08:55   좋아요 0 | URL
보면서 엄청 웃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치니 2010-08-0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찜해둔 영화, 꼭 봐야겠습니다.

Seong 2010-08-06 08:56   좋아요 0 | URL
상영관이 얼마 없으니 이번 주에 꼭 보셔요. 갈수록 작은 영화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ㅠㅠ

머큐리 2010-08-0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보고 싶은데...상영관이 왜이케 없는건지...ㅠㅠ

Seong 2010-08-06 08:57   좋아요 0 | URL
서울은 CGV 몇 군데하고, 하아퍼텍나다, 아트하우스 모모, 시네큐브광화문 이렇게 개봉한 것 같아요. 다른 지역은 아마도 더 적거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