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쉬운 문제야. <13일의 금요일>에 나온 살인자 이름은?
시드니: 제이슨! 제이슨!
살인자: 안됐지만 틀렸어.
시드니: 무슨 소리야! 제이슨이 맞아. 난 그 빌어먹을 영화를 스무 번도 넘게 봤다고!
살인자: 조용히 해 이 멍청아! <13일의 금요일>의 살인자는 제이슨 어머니인 부어히스 부인이야. 제이슨은 2편부터 나온 거라고!  

 

10여 년 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스크림>에서 이 장면을 봤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하다. <13일의 금요일>이란 제이슨이란 이름 그리고 하키마스크는 공포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도 알 정도로 이제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리메이크와 외전을 포함한) 12편의 작품을 각기 기억하기 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한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올해 12편의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를 보고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하거나 언급할만한 가치가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한 게, 분명 볼 이유가 없는 한심하고 지루한 작품인데도, 매 편이 끝나면 바로 다음 편을 데크에 걸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 영화에 무언가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이 다 죽어가는 시리즈가 30여년을 세월을 견뎌온 이유는 강력한 팬덤과 돈 냄새를 맡은 영화 제작자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정리해봤다. 이 글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가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 진화하는지(혹은 망가지는지)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무지막지한 복수극 <왼 편 마지막 집>을 제작하기도 한 숀 S. 커닝햄은 당시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 당시 극장가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 그는 <할로윈>과 마리오 바바 감독의 <피의 만>을 참조해 그와 비슷한 스릴러 영화를 한 편 기획했다. 도시에서 외떨어진 캠프장에서 젊은 남녀들을 피해자로 만들면 볼거리도 되고, 무엇보다도 저예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목은 <캠프 블러드에서의 긴 밤>으로 결정했다.  

버라이어티에 영화를 광고하기 직전, 숀 커닝햄 감독은 제목을 <13일의 금요일>로 바꾸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무의식적인 공포를 끄집어내는데 있어서 이만한 제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숀은 이 제목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렇게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제목이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숀은 이 영화를 시리즈로 기획했었다. 그가 생각한 시리즈는 동일한 이야기의 연속이 아니라, <13일의 금요일>이란 제목으로 매 해 다른 공포영화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화의 판권을 가진 파라마운트는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자기 완결성을 지닌 <13일의 금요일>이야기의 속편을 무리하게 늘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13일의 금요일>에서 제이슨은 분명 죽은 존재였다. 하지만, 파라마운트는 죽은 제이슨을 살아있는 존재라 생각하고 시리즈를 만들어갔다. 시리즈 2~4편의 제이슨은 달리기도 하고, 때론 비명(물론 컥컥거리는 소리에 불과했지만)도 지르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야기는 <13일의 금요일>의 지루한 반복에 불과했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하키마스크를 쓰는 모습과 갈수록 잔인해지는 살인 방법에 따라 인기를 얻게 됐다. 하지만 생각보다 돈을 벌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파라마운트는 4편에서 제이슨을 죽이고 시리즈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4편이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되면서 파라마운트는 다시 속편을 제작하게 된다. 돈은 귀신하고도 통하게 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를 제이슨의 관점에서 보자면, 2~4편을 1기, 6~8편을 2기, 9~11편을 외전(감히 3기라고 표현하기에는 신성모독 수준이다!)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는 제이슨 말고도 고정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4~6편에 출연한 토미가 바로 그렇다. 4편에서 토미는 제이슨을 죽이고, 5편에서는 그 살인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제이슨의 영혼이 빙의됐으며 6편에서는 다시 살아난 제이슨을 봉인하는 시리즈 사상 가장 위대한(!) 역할을 맡았다. 개인적으로는 팬들에게서 가장 괴작으로 평가받는(시리즈 중 괴작 아닌 게 어디 있겠냐만) 5편이 마음에 들지만, 이 영화는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이면서도 제이슨이 나오지 않는 기이한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6~8편은 대부분의 팬들이 기억하는 제이슨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는 다시 부활하면서 인간이 아닌 초자연적인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다. 웬만한 충격에는 꿈쩍하지 않으며 살아난 시체답게 언제나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은 쇼크가 아닌 느긋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이때의 시리즈는, 캐릭터는 점점 완성형에 가까워졌지만, 이야기는 점점 산으로 향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제이슨은 초능력자 여자에게 농락당하기도하고(7편), 크루즈에서 드라큘라 행세를 하기도하고, 뉴욕에서는 킹콩 행세를 하기도 한다(8편). 상황이 여의치 않자 파라마운트는 뉴라인 시네마에 판권을 팔고 시리즈를 끝낸다.   

 

  

뉴라인 시네마에서 만든 두 편의 제이슨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이다. 제이슨은 외계 생명체가 되어 다른 사람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존재이기도 하고(<라스트 프라이데이>), 아주 먼 미래에 과학의 힘을 빌려 우주에서 다시 탄생하기도 한다(<제이슨 X>). 시리즈 초반의 어리바리 제이슨을 압도하는 시리즈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프레디 vs 제이슨>은 시리즈의 외전이지만, 이 영화는 원래 시리즈보다 제이슨의 모든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제이슨은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마련인데, 1기 때에는 물에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히려 외전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시켜서 허술한 시리즈의 캐릭터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준 청출어람격의 영화라 할 수 있다.   

 

 

2009년에 리메이크된 <13일의 금요일은> 1편의 결말부터 시작해서 1기 때의 제이슨을 다룬 영화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뛰어다니는 제이슨이 어색하다는 평이 꽤 있었는데, 그것은 2기 때의 제이슨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를, 바꿔 말해 1기 때의 제이슨이 얼마나 허술했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리메이크의 2편이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오게 된다면 2기 때의 제이슨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난 또다시 피리 부는 사내를 쫓는 쥐처럼 극장으로 향할지도 모르겠다. 툴툴거리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법. 어찌됐든 제이슨은 무시하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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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4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13일의금융일 2012-06-15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메이크편그것은시리즈축
애두못든다..

Seong 2012-06-15 09:37   좋아요 0 | URL
나도그렇게생각했었지만
그래도제이슨때문에긍정하련다...

죄이슨니 2015-05-15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궨시리리할로윈이리메이크되니까만들어가지고재이슨이미지만흐렸따

죄이슨니 2015-05-15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할로윈은몰라도13일의금요일만큼은그냥놔두고마음속으로간직할때가훨좋았다,,.결과는2나와도망

Seong 2015-05-26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어쩌라고.
 
리미츠 오브 컨트롤 - The Limits of Contro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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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이삭 드 번콜)가 공항에서 누군가(알렉스 데스카스, 장-프랑수아 스테브냉)의 지령을 받아 마드리드에 잠입합니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마드리드에서 그는 접선책들(루이스 토사, 파즈 데 라 후에르타, 틸다 스윈튼, 쿠도 유키, 존 허트,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히암 압바스)의 연결로 목표물(빌 머레이)에 접근, 그를 제거합니다. 임무를 수행한 그는 옷을 갈아입고 공항을 떠납니다.  

시놉시스를 읽으면 장르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짐 자무쉬입니다. 그는 장르의 틀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고독한 킬러의 여정"이라는 멋진 문구 때문에 스타일리쉬한 장르 영화를 생각한 분들이라면, 재고하시기 바랍니다. 짐 자무쉬 감독의 <리미츠 오브 콘트롤(The Limits of Control)>은 예술에 관한 짧은 우화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이름이 없고 하나의 기호로써 등장합니다. 영화는 그의 단편 모음집 <커피와 담배>처럼 진한 에스프레소 두 잔을 앞에 두고 매 번 다른 인물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한 후 퇴장하는 순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와 행동은 메시지에 가까우며 영화에 등장한 모든 것은 대부분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주인공 킬러(엔드 크레디트에 '외로운 사내'로 표기된)는 거의 대사가 없습니다. 그의 대사는 "예""아니오" 정도일 뿐. 대사뿐 아니라 표정도 그대로입니다. 그에게는 희로애락이 없는 듯 보입니다. 영화의 초반, 의뢰인은 목표물에 접근할 때 "상상력을 써서 창의적으로" 접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말을 쓰지만, 킬러는 통역이 없어도 그의 진심을 이해합니다. 예술의 세계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진심의 세계니까요. 

그가 만나는 접선책들은 예술작품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거나 혹은 그 자체입니다. 바이올린을 든 사내와 누드 여인은 회화에서 나왔습니다. 백발의 여인은 영화에서, 기타를 든 사내는 음악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모두들 킬러를 존중합니다. 그들의 대화중에 공식처럼 들어가는 "스페인어 할 줄 알아요?""혹시(By any chance)..."로 시작하는 질문들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어법이지요. 킬러가 그들의 말을 모두 이해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는 그 자체가 기호이자 암호인 인물들의 말과 쪽지를 진한 에스프레소와 함께 삼켜버립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예술가적 탐욕.  

반면 그가 제거하려는 미국인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썼고, 상스런 말을 사용합니다. 그는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과 과학이 쓸모없고 위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지요. 하지만 통제를 벗어나고, 한계를 뛰어 넘는 게 예술입니다. 그리고 짐 자무쉬는 통제를 벗어나고, 한계를 뛰어 넘는 수단은 바로 창작자의 '상상력'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으로 킬러가 미국인에게 접근해서 임무를 완수했듯이 지금 예술과 과학을 둘러 싼 위기는 바로 이 상상력을 통해 돌파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임무를 마치고, 킬러는 마드리드에 가서 텅 비어 있는 듯한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그림을 감상합니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텅 빈 화폭은 그림을 감상하는 킬러의,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의 상상력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덧붙임:  

『씨네 21』시사회 당첨으로 8월 10일 20시 30분 스폰지 하우스 광화문에서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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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8-1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는, 보고나서 다음날 또 다음날도 자꾸 생각나는 게 좋은 영화인 거 같아요. :) 이 영화도 그랬구.

Seong 2010-08-12 09:24   좋아요 0 | URL
의외로 흠뻑 젖었던 영화였어요. 이렇게 영화를 찍을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영화였습니다. :D

stella.K 2010-08-12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개봉 안했군요.
짐 자무시 영화는 참 독특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천국 보다 낮선>보고, 영화를 이렇게도 만드는구나 감탄했는데 말이죠.

Seong 2010-08-12 23:23   좋아요 0 | URL
오늘 개봉했습니다. :)
저도 <천국보다 낯선>을 제일 먼저 봤어요. 그때가 1995년 11월. 동숭아트센터였죠. 수능을 마치고 제일 먼저 봤던 영화. 앗! 이러면 연식이~ :D
전 이 영화를 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먼저 귀로 들었어요. 예상했던 것 이상의 영화여서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남쪽으로 튀어! - South Boun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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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원작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부족한, 하지만 영화로 봤을 때는 달콤쌉사름한 만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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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가 영화화 된 것은 여러 편이 있다. IMDB를 검색하면 Macbeth라는 타이틀로 51편의 작품이 뜰 정도니 가히 엄청난 숫자라 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내가 본 작품은 고작 세 편에 불과한데, 그 세 편 모두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부족함을 무릅쓰고 조금 끼적여볼까 한다.   

  

 

1948년에 제작된 오손 웰즈 감독, 주연의 <맥베스(Macbeth)>는 정말 굉장한 영화다. 이 영화는 같은 해에 제작된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 주연의 <햄릿>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화사를 뒤흔든 작품들 혹은 걸작들을 가장 쉽게 판별해내는 방법은 책에 쓰인 말이 아니라, 그 해에 나온 영화들과 비교해보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은 배우들의 영화다. 영화는 가능한 배우들의 호흡을 자르지 않기 위해 롱테이크로 일관한다. 카메라는 배우들을 비출 뿐, 그 이상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화면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보인다.   

반면, 오손 웰즈의 <맥베스>는 영화적 문법으로 가득 차있다. 그 역시 세트에서 극을 진행하지만, 카메라는 인물을 쫓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기나긴 내레이션과 컷이 바뀌지 않는 장소의 이동 그리고 제때 떨어지는 방백과 대화는 수학적 계산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들이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극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오손 웰즈는 연극을 영화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연기한 맥베스의 모습에서, 영화사의 천재였지만 할리우드의 저주로 그 자리에서 쫓겨난 불운의 인물이 겹쳐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1957년에 제작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집의 성(蜘蛛巣城)>은 『맥베스』를 일본의 전국시대로 각색한 영화다. 구로사와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기획 중이었는데, 오손 웰즈의 <맥베스>를 보고 이보다 더 잘 만들 자신이 없다고 탄식을 하며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었다. 그 후 이 프로젝트는 구로사와 감독이 제작을 하고,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했으나, 도호영화사에서 구로사와 감독이 연출할 것을 부탁해 결국 그의 필모그래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거미집의 성>은 『맥베스』와 같은 이야기지만, 세부묘사는 조금 다르다. 일례로 맥베스가 뱅쿠오를 죽이는 이유는 마녀들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자신의 추악한 행동이 결국엔 뱅쿠오를 빛나게 할 것이라는 공포, 그리고 자신이 차지한 왕위가 언젠가 뱅쿠오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하지만 구로사와는 조금 다르게 묘사했다. 와시즈는 영주가 되었지만, 미키의 자식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어차피 와시즈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와시즈의 부인이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와시즈는 영주의 자리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탐욕을 느끼게 되고, 그는 미키를 살해한다. 와시즈의 탐욕이 없었다면, 이후의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탐욕이 없었다면, 와시즈는 영주를 살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맥베스』의 이야기로 탐욕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을 이야기했다.   

(유명한 사족이지만 다시 반복한다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화살 장면은 특수 효과가 가미되어 있지 않은 실제 상황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실제 궁수를 배치하고 활을 쏘았다. 와시즈 역을 맡은 미후네 도시로는 활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고 싶어 했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도망 다니면서 이 장면을 찍었다. 이 장면에서 그의 표정은 연기가 아닌, 실제 공포였던 것이다.   

  

 

 

1971년에 제작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스(The Tragedy of Macbeth)>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축약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담아냈다. 위의 두 편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 영화는 상당히 잔혹하다는 점이다. 세 마녀들이 사라지고 <맥베스>라는 타이틀이 흘러나오면 살벌한 전쟁터가 보여진다. 그리고 맥베스가 첫 등장하는 장면은 전쟁 포로들의 사형 집행장면을 무심한 표정으로 흘긋 쳐다보는 장면이다. 코더의 영주가 죽는 장면이나, 덩컨 왕의 살해 장면, 그리고 목이 잘려 칼에 꽂힌 채 이동하는 맥베스의 시선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지 않았지만, 로만 폴란스키는 그 참혹한 장면을 화면에 담아냈다.   

가장 끔찍한 장면은 맥더프의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맥더프의 아내와 아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맥베스의 지령을 받은 군인들이 들어와 아들을 죽인다. 계속 흘러나오는 비명소리. 맥더프의 아내는 밖으로 나간다. 군인들은 하녀들을 윤간하고 있고, 밖에서 놀던 아이들은 토막 난 채로 죽어있었다. 이 장면은 로만 폴란스키가 실제로 겪었던 그 사건을 연상시킨다. 1969년 8월 9일 로만 폴란스키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과 그의 패거리가 폴란스키의 집에 들어와 아내 샤론 테이트와 곧 태어날 아이를 참혹하게 살해한 사건. 이 사건 이후로 연출한 영화가 바로 <맥베스>다. 앤서니 버제스가 전쟁 때 자신의 아내가 군인들에게 강간당한 기억을 잊기 위해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집필한 것처럼, 로만 폴란스키는 <맥베스>를 통해 그의 참혹했던 과거와 안녕을 고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다른 사족이 하나 더 붙어있다.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덩컨 왕의 아들 도널베인이 마녀들의 예언을 듣는다.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에서 스코틀랜드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옥은 어둡듯이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같은 상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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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1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머리 잘린 장면 보면 토할 것 같아요.
영화 300도 그렇고, 여왕마고도 그렇고. 그밖에 여타의 영화에서...윽!

Seong 2010-08-12 08:49   좋아요 0 | URL
원래 저 장면이 조금 더 길었는데... 위에서 맥더프가 칼을 든채로 내려다보면 카메라가 이동해서 맥베스의 머리를 보여주는 장면이었거든요. 이와 같은 구도의 그림을 제가 본 적이 있었는데 화가나 제목이 아예 생각이 나질 않아서... 혹시나 아는 분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올려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교양이 부족함을 느끼면 정말 절망에 빠지는 것 같아요...

저 장면은 가짜인 게 너무 티나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stella.K 2010-08-12 10:57   좋아요 0 | URL
아녀요. 여긴 토멕님 서잰데 토멕님 맘대로 할 수 있죠.
전 저 나름의 느낌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토멕님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시는군요.
절망까지 느끼시다니.
영화 정말 공부할 것이 많죠?^^

Seong 2010-08-12 23:25   좋아요 0 | URL
너무 많아서 슬플 지경이에요... ㅠㅠ

카스피 2010-08-12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 머리 좀 섬득하긴 하네요.갑자기 저 머릴 보니 공포영화면서도 웃겼던 기억이 나는 지금이 거장이 된 샘 레아미 감독의 이블 데드가 생각나네요^^

Seong 2010-08-12 23:27   좋아요 0 | URL
제 경우는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좀비오>가 생각납니다. :)
정말 최고의 길티 플레져죠. 잘린 목이 욕정을 느끼는 장면은... :D

댓글이 좀... ^^;

stella.K 2010-08-13 10:31   좋아요 0 | URL
길티 플레져...? 영화 용어인가요?
잘린 목이 욕정을 느끼다니.ㅋㅋ

Seong 2010-08-14 09:58   좋아요 0 | URL
정말 황당한 장면이에요. 혹시나 보실 기회가 있으시면 한 번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제프리 콤즈의 인상적인 연기도 일품입니다. :D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15 (23)
        타이틀 Slaves and Masters
        각본 Harley Peyton & Robert Engels
        감독 Diane Keaton
        방영일 1991
년 2월 9일 
 

 

 

1. 이야기  

윈덤 얼은 리오 존슨의 정체를 알아채고 그를 범죄에 이용하려 한다. 그는 셜리 존슨, 오드리 혼, 다나 헤이워드에게 각기 편지를 보낸다. 그는 데일 쿠퍼에게도 메시지를 남긴다. 

데일 쿠퍼는 자신을 쏜 범인에 대한 증거를 찾는다. 그는 윈덤 얼의 체스 게임에 대항할 사람으로 피트 마르텔의 도움을 받는다.  

제임스 헐리는 다나 헤이워드의 도움으로 에블린 마쉬와 맬콤이 짜놓은 덫에서 가까스로 탈출한다.  

빅 에드 헐리는 노마 제닝스와 밤을 함께 보내고, 네이딘 헐리는 새로 사귄 마이크와의 사랑 때문에 빅 에드 헐리와 헤어진다. 셜리 존슨이 다시 더블 알 식당에 돌아온다.  

캐서린 마르텔은 조시 패커드를 이용해 토마스 에크하르트를 끌어들인다.  

 

 

 

2. 다이앤 키튼(Diane Keaton)  

맞다. <대부>에서 알 파치노의 그녀, <애니 홀>, <맨하탄>, <맨하탄 살인 사건>에서 우디 앨런의 그녀,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에서 리처드 기어의 그녀, 그리고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그녀. 지난 회의 울리 에델에 이어 그녀가 감독을 맡았다.  

그녀가 이번 에피소드를 연출하면서, 드라마의 성격이 조금 바뀌어졌다. 이번 22화는 처음으로 <트윈 픽스>에 사는 여성들의 심리를 다룬다. 스크립트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평범한 정도이지만, 다이앤 키튼은 그 안에서 여성들의 감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스크린에 풀어냈다. 특히 이번 회에서 그동안 벌려놓은 재미없는 이야기들이 마무리되고, 윈덤 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그녀의 연출은 참으로 시의 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이번 에피소드를 감독하면서 될 수 있으면 평면적으로 보이게 찍었다. 인물들이 액션을 취하거나 대화를 할 때 대부분 180도로 늘어서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이런 평면적인 구도를 하나의 층(layer)으로 보고, 2차원적인 화면에 계속 다른 층을 겹치도록 화면을 꾸민다. 이것은 마치 <트윈 픽스>의 이야기가 여러 겹으로 쌓여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3. 여(女) 대 여(女)  

에블린 마쉬와 다나 헤이워드는 제임스 헐리를 서로 사랑한다. 에블린 마쉬는 자신의 남편과 정부를 죽이고서라도 제임스를 차지하려 하고, 다나 역시 로라 파머와 매들린 퍼거슨의 죽음으로 인해 제임스를 포기하지 못한다. 차이가 있다면, 에블린에게는 제임스가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점이다. 아니, 너무 늦게 발견한 것이다.   

 

노마 제닝스와 빅 에드 헐리는 서로 사랑했지만, 치기어린 오해로 20여년을 그저 바라만보고 살아왔다. 노마는 네이딘 헐리에게 빅 에드가 어떤 존재인줄을 알기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이 다시 감옥에 들어갈 상황과 네이딘의 기억 상실을 이용해 그녀는 처음으로 빅 에드와 선을 넘었다. 이런 모습을 네이딘에게 들키지만, 네이딘은 오히려 노마에게 사과를 전한다. 다른 이들의 불행이 그들에게 축복이 된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   

 

조시 패커드는 캐서린 마르텔의 하녀로 생활하고 있다. 캐서린은 조시를 이용해 토마스 에크하르트를 끌어들인다. 그들은 조시를 앞에 두고 계약을 한다. 캐서린은 조시를 팔아넘기려하고, 토마스는 그녀를 적당한 가격에 사고 싶어 한다. 조시는 자신이 동물처럼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할 겨를이 없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토마스 에크하르트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 기억할만한 지나침  

윈덤 얼이 리오 존슨에게 채우는 목걸이는 루이스 티그 감독의 <개 목걸이(Wedlock)>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에는 조안 첸이 출연하는데,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애인의 뒤통수를 치는 역할을 맡았다.  

 

 

5.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14』 스크립트, 6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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