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CinDi) 영화제 (8.18~24)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2주
제4회 CinDi영화제 섹션별 추천작

올해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압구정 CGV에서 4번째 시네마디털서울(이하 CinDi) 영화제가 열립니다. 전 4년 전부터 이 영화제에 꼭 참석하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언제나 마음뿐이었습니다. 변명하자면, 제가 몸을 담고 있던 세상은 "영화 따위"에 신경 쓰기엔 너무나 정신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올해, 드디어 처음으로,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CinDi 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 모든 영광을 제게 시련을 전해주신 전 직장 상사, 동료, 후임 분들께 전합니다.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도 20회나 30회 즈음에나 참석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때쯤에는 영화에는 관심도 없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예요.  

제가 짠 시간표에는 18일 개막작을 제외하고, 19일부터 23일까지 총 19편의 영화가 담겨 있습니다. 아시아 경쟁부문에 출품된 15편을 모두 넣었고, 개막작 1편, 그리고 제 호기심을 끄는 2편의 극영화와 2편의 단편 영화 모음으로 목록을 채웠습니다. 물론 이게 욕심이고 만용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루에 4편씩의 영화를 5일간이나 채운다는 것은 정말 미친 짓임에는 틀림없지만, 새로운 영화를 만난다는 설렘 앞에서 두근거림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욕망임을 압니다. 한계를 돌파하는 디오니소스 신도들처럼. 비록 그 끝이 타락일지라도.  

 

 

총 20편의 목록 중에서 15편은 아시아 경쟁부문의 목록입니다. 아시아 경쟁부문에 오른 15편의 작품을 목록에 넣은 이유는, 전 부끄럽게도 경쟁부문에 출품한 감독들의 영화를 한 편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미지의 감독들이고, 이 영화들은 미지의 영화들입니다. 그 어떤 정보도, 참고자료도 없이,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영화들입니다. CinDi의 공식 경쟁부문인 이 영화들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는 2010년의 서울을, 아시아를 바라보고 질문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미지의 영화들을 먼저 본다는 영화광적 욕망이라기보다는, 영화를 통해 지금 나(혹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앎의 욕구입니다. 물론 첫 만남이라는 설렘도 있고요.  

아시아 경쟁부문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오 원동 감독 <개미촌>, 양 루이 감독 <크로싱 마운틴>, 헤이워드 막 감독 , 쉬 통 감독 <점술가>, 성지혜 감독 <여덟 번의 감정>, 츠보타 요시후미 감독 <미요코>, 리우 지엔 감독 <나를 찔러 봐>, 왕 유린, 에세이 리우 감독 <천국에서의 일주일>, 고이데 유타가 감독 <이토록 어두운 밤>, 로샨느 새드나타 감독 <살아남아라>, 리우 용홍 감독 <올가미>, 하이더 라시드 감독 <우울과 매혹>, 총 펑 감독 <미완성 생활사>, 리 홍치 감독 <겨울방학>, 이나바 유스케 감독 <너와 엄마와 카우보이>. 각 영화는 두 번 상영합니다.    

 

 

 

(저에게 있어) 이번 CinDi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 <엉클 분미(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입니다. 이 영화를 목록에 채운 이유는 이 영화가 올해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 얼마 전에, 아주 우연히, 이 감독의 <세계의 욕망(Worldly Desires)>이라는 단편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무언가 말로 설명하기에 복잡합니다. 영화는 두 개의 영화 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밤에 찍는 뮤직비디오, 다른 하나는 낮에 찍는 극영화입니다.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와 이미지와 사운드가 서로 충돌하면서 영화는 이상한 기운을 품기 시작합니다. 감히 주술적(呪術的)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이 기이한 충돌 혹은 그럼으로써 기어이 발생하는 서사. 전 이 영화를 보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우리 시대에 정말 새로운 영화를 찍는 감독이거나, 아니면 사기꾼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애하는 당신>, <열대병>, <징후와 세기>를 보지 못한 저에게는 <엉클 분미>가 바로 시금석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영화는 개막식과 21일 두 번 개봉하는데, 개막식은 모두 매진됐으며, 21일은 온라인 예매분이 매진되었습니다. 21일 현장 판매는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CinDi 익스트림 2: 퍼스널 아카이빙>은 (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단편 모음입니다. 굳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CinDi 영화제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정성일 평론가의 강력한 추천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 영화에 포함되어 있는 단편 <에메랄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굳이 이런 찬사가 아니더라도, <CinDi 익스트림 2: 퍼스널 아카이빙>은 아마도 영화제가 아니라면, 아마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은 작품일 것입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이번 CinDi 영화제의 104편에 해당하는 작품 거의가 다 그럴 것이지만, 아무래도 한 번 끌리기 시작한 감독의 작품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19일 17시, 21일 11시에 상영합니다.  

 

 

장철수 감 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제겐 필견의 목록입니다. 처음엔 서영희 씨의 연기가 궁금했으나, 지금은 영화 자체가 더 궁금합니다. 그토록 피하려고 노력했으나 어쩔 수 없이 얻어지는 정보들에 따르면, 이 영화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뒤바뀐 구도, 그리고 장르의 쾌감을 포기한 과감한 연출이 돋보인다고 합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장르의 쾌감을 포기한 장르 영화는 정말 새로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장르의 쾌감을 느끼러 온 관객들에게는 그 쾌감 대신 어떤 다른 자극을 전해줄 수 있을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제 질문에 대한 답이 되 줄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합니다.  

19일 18시, 23일 17시 상영합니다. 19일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되어 있어서 그런지, 온라인 예매분은 매진인 상황입니다. 현장 판매는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2일 14시 <하하하>상영 후 진행하는 홍상수 감독과 샤를 테송과의 CinDi Talk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샤를 테송은 홍상수 감독을 최초로 서방 세계에 알린 평론가입니다. 우리에겐 『까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이 둘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정말 기대됩니다. 분명한 것은, 무분별한 주례사 비평이 울려 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목록에 올린 <콰트로 홍콩>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라는 것, 그리고 단편 중 한 편인 <13분 만에 마스터하는 홍콩영화사>의 감독이 <메이드 인 홍콩>의 프룻 챈(아, 옛날에는 프루트 챈이라고 불렀것만...)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어쩌면 프룻 챈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영화는 대개가 놀라움과 진부함 사이를 반복합니다. 최근작일수록 진부함에 더 많은 행보를 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작의 놀라움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일 20시, 22일 17시에 상영합니다.  

 

 

영화제(祭)는 축제(祭)입니다. 축제는 즐겨야 합니다. 영화제를 즐기는 것은, 영화 그 자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개막식과 폐막식을 제외한) 5일간의 (짧은) 영화제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이름으로 이 뜨거운 여름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임:  

1.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아래는 공식 트레일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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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미츠 오브 컨트롤 - The Limits of Contro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모든 예술엔, 한계도 없고 통제도 없다. 분노한 킬러 짐 자무쉬의 원 샷 원 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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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8-16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이 갈려서 고민했는데 봐야 되겠어요! 그런데 서재를 장식하고 있는 아리따운 여성분은 누구신가요. 지난 번에 낙엽사이에 바바리 입고 누워있는 모습이 매력적이던데 >_<

Seong 2010-08-17 07:49   좋아요 0 | URL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이긴 한데, 제겐 좋았습니다.
아리따운 여성분은 이하나 씨예요. :)
 
디센트: Part 2 - The Descent: Part 2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장르 영화로는 나쁘지 않지만, 장르 영화로만 묶어두기엔 1편의 영향이 너무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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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김성동 지음 / 청년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분명 쉬운 책은 아니다. 법운과 지산으로 갈리는 수도승과 파계승 혹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이야기는 불교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3년 만에 다시 손에 들고 읽은 이 책은, 3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달음에 읽게 하는 힘이 있다. 김성동 작가의 『만다라』는 분명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깨닫는 책은 아니다.  

법운은 수도승이다. 그는 인간사의 허무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위해, 그래서 이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의 윤회를 끊기 위해 수도에 매달린다. 법운은 불교의 엄격한 계율에 자신을 맞추고 수행을 정진한다. 법운이 중이 된 것은 속세의 인연을 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자신과 누나를 버리고 도망간 어머니에 대한 충격과 증오, 그에 대한 인간사의 허무. 그는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을 뛰어넘기 위해 수도에 정진한다.  

그런 그가 우연히 만난 법운은 파격의 연속이다. 말이 좋아 파격이지, 불교의 계율이란 계율은 모조리 무시하는 땡중의 모습이다. 법운은 이런 지산을 처음에는 경멸하지만, 그의 파격적인 행보가 결국엔 자신이 가는 길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같이 객질을 하며 다닌다. 산 속 선방서 수도만을 정진한 법운에게, 지산은 이 세상의 더럽고 추악한 면을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불교가 다시 제대로 서기 위해선 그들만의 불교가 아닌, 이런 세상을 껴안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법운은 지산과는 달리 수도승이 먼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중생을 교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법운과 같은 중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끔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법운과 함께 선방에 있던 수관의 모습이 특히 그러하다. 수관은 깨달음을 위해 자신의 왼손 손가락을 매년 한 개씩 부처님께 공양했다. 각(覺)을 깨치기 위해 자신의 생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쯤은 쉬이 견뎌낸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부처가 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법운과 지산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법운의 죽음 때문이다. 지산이 산에서 동사하고, 지산의 잡기장을 읽은 이후, 법운은 심한 무력감 혹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자신이 가는 길이 맞는지, 지금의 불교에 소승이 맞는 것인지 때늦은(혹은 제때 찾아온) 방황을 한다. 파계와 같은 온갖 계율을 뛰어 넘음. 그리고 법운은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이 책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중 어느 것이 더 위대한가를 구분하는 소설이 아니다. 소승과 대승은 불교라는 종교에서 다 각기 필요한 부분이다. 법운은 자신의 방식으로, 지산은 자신의 방식으로 각을 향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타락한 불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감, 인간의 육신을 지니고 어떻게든 살아 나감, 그게 바로 이 땅의 불교가 살아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치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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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8-14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문학과 종교'라는 수업 강의 교재로 이 소설을 읽었어요. 책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불교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겠죠. '구원은 어디로부터 오나?' 고민을 했는데, 해서 제겐 깊이 다가왔던 소설이었어요.

Seong 2010-08-15 07:16   좋아요 0 | URL
처음엔 불교의 비리 혹은 치부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서 엄청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생각해보니 인간의 치열함을 다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화두를 가지고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종교적 숭고함을 끌어내는 것 같아요.

카스피 2010-08-15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소승 불교란 말은 없다고 하더군요.대승불교쪽에서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 자신을 대승으로 개인 수행이 위주인 쪽을 소승으로 폄하했다고 합니다^^

Seong 2010-08-16 06:47   좋아요 0 | URL
처음 알게 된 사실이예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D
 
디센트: Part 2 - The Descent: Part 2
영화
평점 :
현재상영


닐 마샬 감독의 <디센트>는 걸작은 아니어도 수작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장르 팬들보다는 평론가들이 사랑한(혹은 기특하게 여긴)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장르 팬들이 즐길만한 여지는 별로 없었습니다. 100분 정도의 영화이지만, 괴물이 나오는 것은 거의 60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야 나오니까요. 게다가 괴물의 모습은 창의적인 모습은 거의 없는, 골룸의 지루한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장르가 액션으로 탈바꿈하기도 하지요. <디센트>는 순혈주의 장르 팬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고 때론 불경스러운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디센트>는 눈에 보이는 공포를 다룬 것이 아닌, 인간이 숨겨놓은 치부가 밝혀지는 순간의 공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사라는 자신의 딸과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주노는 친구 사라의 남편과 불륜관계인 점 그리고 (피치 못하게) 친구 베스를 죽이고 도망쳤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인간들의 유대를 강화하는 우정과 사랑이 얼마나 나약한 위선인지를 보여줍니다. 괴물의 습격 후 주노가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을 찾으러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근처에 있던 레베카가 동생 샘의 입을 막으며 이렇게 말을 하지요.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돌아다니면, 괴물들이 다 쟤한테 갈 거야." 이것은 간단히 비난할 문제가 아닙니다. 친한 친구가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봐야만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서 윤리 따위는 정말 별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법과 윤리(그리고 하나 더 첨가한다면 자본)로 통제되는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허술하고, 어느 순간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디센트>의 결말이 두 개라는 점입니다. 닐 마샬 감독은 두 개의 엔딩 중 어느 것을 넣을까하다가 아예 두 개 다 집어넣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결말은 그저 사족이 아니라, 보는 입장에서 의미가 있는 결말입니다. 사라가 현실 세계로 나가건, 그 동굴 안에 그대로 있건, 어쨌든 그곳은 그녀에게 죽음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하나 더 추가된) 죄의식으로 미쳐서 살아가든, 동굴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든 결국엔 죽음입니다. <디센트>는 장르적 쾌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감독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인 인상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 이후로 쏟아진 평론가들의 찬사였습니다. 이 영화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에 비견될 만큼 수많은 평론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장르의 궤에서는 심심하지만, 영화에서 무언가를 뽑아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평론가들에게는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영화였지요. <디센트> 덕분에 그의 전작이자 데뷔작인 <독 솔져>까지도 호평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집니다. <독 솔져>의 마지막 장면은 그저 유머에 불과했지만, 많은 평론가들은 그 장면을 "미디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 치켜세웠습니다. 아... 그 장면은 그저 한 번 웃으면 되는 장면입니다. 2002 월드컵 잉글랜드와 독일의 유럽지역 최종 예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별 의미가 다가오지 못하는 내수용 유머를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다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닐 마샬 감독은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 이후로 그는 <둠스데이>라는 정말 끝내주는(!) 무념무상 액션영화를 만들었고, <디센트>로 호의적이었던 평론가들은 "천재감독 아무나 하나"라는 말을 남기며 대부분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붙어있는 '천재감독'이라는 말을 지우기 위해 <디센트>의 속편을 기획합니다. 실제 기획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영화의 속편은 아무리 생각해도 만들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감독직을 존 해리스에게 맡겼다 하더라도, <디센트: PART 2>는 전편을 갉아먹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디센트>의 세계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물들 간에 할 이야기들은 다 다루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감독들이라면, 새로운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디센트: PART 2>는 전편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도록 이야기를 꾸렸습니다. <디센트>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이야기나 주제가 참신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전편(아, <디센트>가 전편이 되어버리다니...)에서 다루었던 내용의 지루한 반복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미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공간의 활용 면에서, 존 해리스 감독은 전편과는 다른 접근을 택했습니다. <디센트>가 양 옆을 어둡게 표현해 꽉 조이는 듯한 동굴의 폐쇄공포를 느끼게 해주었다면, <디센트: PART 2>는 넓은 스크린을 스펙터클하게 활용합니다. 그리고 골룸 괴물들의 잔혹성과 난폭성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전편도 나름 잔인했지만, <디센트: PART 2>에서는 잔혹도가 한층 더합니다. 이 정도면 장르 영화에서 관객들이 바라는 만큼의 영화입니다. 존 해리스 감독은 전편의 사색적 요소를 모두 휘발시키고, 장르의 순수한 쾌감을 위한 영화를 만든 셈입니다.  

<디센트>는 <에이리언>과 비교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하지만 <디센트: PART 2>는 <에이리언 2>와는 비교를 불가합니다. <디센트>는 <언덕이 보고 있다>와 비교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디센트: PART 2>는 <힐즈 아이즈 2>와 비교해도 상관없을 작품입니다. <디센트: PART 2>로 닐 마샬 감독은 자신에게 지워진 평론가들의 찬사를 지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부담감 없이 그의 새로운 신작 <센츄리온(Centurion)>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 덧붙임: 영화를 보신 분들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전편에서 살아남았던 주인공 사라와 주노는 결국 장엄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닐 마샬 감독도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영화에서 겨우 살아남은 엘렌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지요. 아마 감독인 존 해리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기껏 영화를 만들었는데 잊혀질 운명인 셈이니까요.

익스트림무비 시사회로 8월 6일 20시 롯데시네마 4관에서 관람했습니다. 스크린은 크지만, 좌석이 너무 붙어있어 불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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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8-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는 안봤고 궁금하지 않은데...
원작 소설은 많이 궁금하고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재와 설정이 독특하더라구요. 지구의 속에, 지표면 아래에 인류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새로운 종족과 문명이 있다...라는.

2010-08-14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